1200억 '토포키'가 실패한 미션···'미나리 후예들'이 해냈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1.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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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가 '토포키'였던 시절이 있었더랬습니다. 사진은 관계 없음 주의. [중앙포토]

떡볶이가 '토포키'였던 시절이 있었더랬습니다. 사진은 관계 없음 주의. [중앙포토]

‘토포키(Topokki)’를 아시나요.

떡볶이를 세계화하겠다며 과거 정부에서 만든 네이밍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떡볶이’를 발음하기 어려우니 영어 이름을 새로 붙인 거였습니다. 떡볶이를 떡볶이라 부르지 못한 셈이죠. 당시 야심차게 추진했던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엔 세금이 꽤나 들어갔습니다. 당시 기사들에 따르면 12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물론, 한식 세계화는 중요합니다. 김치찌개부터 떡볶이, 비빔밥까지 이 맛있는 요리들을 미국 워싱턴DC부터 프랑스 파리, 케냐 나이로비의 모든 이들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죠.

그래서 더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뉴욕타임스(NYT)의 쿠킹 섹션의 지난 9월의 기사 제목이 말이죠. “Gyeran Bap(계란밥)”이라는 두 단어가 박혀 있더군요. 기사를 쓴 이는 한국계 미국인 에릭 준호 김(아래 사진)이었습니다. 수소문해서 그에게 e메일을 보냈고, 그는 시간을 들여 상세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 사이 ‘Doenjang Stew(된장 스튜)’부터 ‘불고기의 여러 얼굴(Many Faces of Bulgogi)’라는 기사도 계속 인기리에 게재했고, 첫 책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도 냈습니다.

NYT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랭킹 1위였던 '계란밥' 기사. [NYT 캡처]

NYT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랭킹 1위였던 '계란밥' 기사. [NYT 캡처]

지난 4일 게재한 인터뷰(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0860)에 다 싣지 못한 그의 답변 중엔 이런 게 있었습니다. 과거 한국 정부의 한식세계화 노력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요리 외교(culinary diplomacy)라는 건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중요하다. 미국의 어느 수퍼마켓에 가도 태국의 식재료를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도 태국 정부가 수년 전부터 진행한 요리 외교 덕이다. 고춧가루는 반면, 만약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있어도 한 가지 종류밖에 없을 때가 많다. 결국은 교육의 문제다. 한국 음식과 요리에 관한 기사를 쓰는 것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내 경험을 토대로 한식을 소개한다. 하지만 한식을 소개하면서 어떤 틀 안에 갇히면 안 되는 것 같다. 이래야 최고의 한식이다, 이런 건 없다. 한식을 요리하는 방법은 여럿이고, 한국의 정체성 또한 다양하다(many ways to be Korean).”  

에릭 김. [본인 제공]

에릭 김. [본인 제공]

구구절절 옳은 말 아닌가요. 에릭은 또 이런 이야기도 강조했습니다. “과거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입맛을 중심에 놓고 다른 나라 음식을 평가했지만 이젠 다르다”라고요. 이젠 색다른 글로벌 요리를 체험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한식엔 더없이 반가운 얘기죠. 한국계 푸드 저널리스트들의 일부 얘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실제로 NYT가 소개하는 계란밥 레서피부터 김치찌개ㆍ부대찌개ㆍ불고기 레서피가 미국인 독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NYT 쿠킹 섹션을 총괄하는 샘 시프턴 에디터는 냉면부터 계란밥까지 한식의 팬이라고 뉴스레터에 쓰기도 했고요.

에릭의 대선배 격이죠, 멜리사 클라크라는 NYT의 베테랑 푸드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 제가 한식세계화 특별취재팀에 있을 때 인터뷰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클라크가 최근 썼던 기사 중엔 ‘Pajeon(파전)’이 있었습니다. 클라크는 “가장자리는 바삭하고 안에는 폭신한 한국식 팬케이크”라고 파전을 소개하며 흡사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볼 법한 근사한 스타일링으로 파전을 소개했습니다. 클라크를 인터뷰했던 건 2009년인데, 그때만 해도 그는 “한식을 좋아하고 자주 요리해보고 싶은데, 재료도 구하기 어려운데다, 한식당에 가면 메뉴가 다 비슷해서 아쉽다”고 했었죠(https://www.joongang.co.kr/article/3474431). 역시 10년이면 강산도 바뀌고 미국의 한식도 바뀌네요. 그러고 보니 팬데믹 사태 직전에 갔던 미국 출장에서 숙소 바로 옆에 열리던 파머스 마켓에서 미국인들이 만든 김치를 맛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납니다. 너무 맛있었거든요.

멜리사 클라크가 소개한 파전 기사. [NYT 캡처]

멜리사 클라크가 소개한 파전 기사. [NYT 캡처]

‘토포키’의 실패에 이어 2013년 정부 유관기관이 벌였던 한식 세계화 캠페인 중엔 “낭만적 버섯(Romantic Mushroom), 건강한 우유(Fit Milk)”라는 식으로 한국 식재료를 홍보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낭만 버섯 건강 우유라니, 홍보의 대참사입니다. 이런 문구를 달고 한국 뮤지션을 모델로 기용한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버스에 붙어 뉴욕 시내를 누비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의 외국인 전문가들은 “마케팅의 기본을 모르기에 일어난 대참사”라고 평했었죠(https://www.joongang.co.kr/article/13033316).

한국에 거주하며 한식을 알려온 조 맥퍼슨은 당시 대담에서 “한번은 (세계적 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의 편집자에게 한국 정부 관리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이니 부대찌개는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 거절한 적도 있다”라고 했었죠. 이들이 2013년에 했던 얘기와, 에릭이 2021년에 해준 얘기는 일맥상통합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미국인들도 있는 그대로의 한식, 좋아합니다. [중앙포토]

돼지고기 김치찌개. 미국인들도 있는 그대로의 한식, 좋아합니다. [중앙포토]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선 한국인의 일상에 녹아있는 스토리를 토대로 한국 문화 경험을 공유하면 된다”는 겁니다. 한식이 건강에 좋으니 먹어야 하고 한식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것이죠.

에릭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그겁니다. 에릭의 독자들도 “애들이 계란밥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해먹는다”고 댓글을 썼더군요. 이젠 한식이 조금씩 세계에 스민 것 같네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엄마가 해주시던 계란밥이 먹고 싶어지네요. 계란 후라이부터 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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