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산을 옮기다” 일본 女정치인 대권 도전사[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9.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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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도이 다카코 전 사민당 총재의 유세 현장. [중앙포토]

고(故) 도이 다카코 전 사민당 총재의 유세 현장. [중앙포토]

‘일본 정가 여풍(女風)…오부치ㆍ이나다 첫 여성 총리 노린다.’

2014년 9월13일, 제가 국제부에서 썼던 기사 제목입니다. 약 7년이 흐른 지난 22일에 쓴 기사의 제목은 ‘아베 걸즈, 가면부부, 프로 망언러...그가 일본 첫 여성 총리 꿈꾼다’입니다. 7년간 일본 정계는 변하지 않은 거죠. 여전히 여성 정치인의 존재감이 약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대권에 도전하는 여성 다윗들은 계속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향과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국적을 넘어 같은 아시아의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이들의 행보는 흥미롭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여전히 남성과 여성이 쓰는 말이 다른 나라일 정도로, 여성 정치인이 마음껏 활약하기가 어려운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도전하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을 다룬 기사에서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남편’을 의미하는 ‘슈징(主人)’이라는 한자어를 보시죠. ‘주인’입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슈징’ 대신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많습니다만, 여전히 ‘남편=주인’인 사회인 것은 팩트입니다.

도이 전 총재는 외교의 외연도 확장했습니다. 1990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오찬 중인 사진입니다. [중앙포토]

도이 전 총재는 외교의 외연도 확장했습니다. 1990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오찬 중인 사진입니다. [중앙포토]

그래서일까요, 일본 여성 정치인의 대모 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고(故) 도이 다카코(土井多賀子)는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1989년 그가 일본 최초의 여성 정당 총재라는 타이틀로 사회민주당을 이끌며 당시 참의원 선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낸 것을 자축하면서입니다. 당시에도 여당은 자민당이었으나, 의석수 과반을 얻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도이 총재의 사민당이 제지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일본 언론은 도이 총재가 선거 승리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두고 ‘마돈나 돌풍이 분다’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남성 중심의 정치라는 거대한 산을 옮기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존재가 도이 전 총재인 셈이죠. 그 자신도 여성 총리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던 도이 총재는 2014년 9월 20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도이 전 총재. 북한 김일성 주석과도 만났고,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하며 외교에서도 외연을 넓혔던 인물이다. [중앙포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도이 전 총재를 접견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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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전 총재는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을 듯합니다. 별세 직전인 그해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개각을 발표하며 내각 장관 중 5명을 여성으로 채웠습니다. 당시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일본의 여성 총리, 먼 미래가 아니다”라는 기사를 송고했죠. 당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물은 오부치 유코(小淵優子)였습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딸로, 당시 41세의 젊은 피였음에도 벌써 4선인 세습 정치인이었습니다.

오부치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미래지향적 한ㆍ일관계를 다짐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주인공이었는데, 딸 유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모양입니다. 유코의 ‘유’와 영국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의 이름을 합쳐 ‘유처’라고 부르곤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의 기사는 오부치 당시 경제산업상(장관)을 인터뷰한 내용이었죠. 그러나 오부치는 현재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비서진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 스캔들이 터진 뒤부턴 해외에서 보기엔 잠행에 가까운 행보 중입니다.

2014년 기사에 함께 게재됐던 중앙일보 그래픽팀의 작품입니다. 대부분이 현재도 활약 중입니다. [중앙일보]

2014년 기사에 함께 게재됐던 중앙일보 그래픽팀의 작품입니다. 대부분이 현재도 활약 중입니다. [중앙일보]

대신 아베 전 총리가 각별히 아끼는, 일명 ‘아베 걸즈’가 부상했습니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국방장관), 그리고 다카이치 전 총무상이 주인공이죠. 둘 모두 아베의 우익 성향을 경쟁적으로 계승합니다. 한국과는 이래저래 악연이죠.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 내각제인 일본에선 자동으로 총리 자리에 앉게 되는데요, 이번에 전면에 나선 건 다카이치였습니다. 아베 총리도 아예 “다음 총리는 100대째인데, 여성이 된다면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며 “다카이치를 지지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죠.

실제로 다카이치가 당선해서 일본의 최초 여성 총리 타이틀을 거머쥘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한 일본 측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왜 다카이치를 지지했는지 아느냐”며 이렇게 귀띔하더군요. “다른 두 남성 후보가 유력하지만 지배적이지는 않은 상황에서, 여성 후보를 일단 지지한 뒤, (남성 후보들 사이의) 결선 상황을 보겠다는 존재감 극대화 전략”이라는 요지였습니다. 여성을 지지하는 이미지는 덤이란 얘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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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민당 총재 겸 총리에 도전하는 네 명의 후보. 절반이 여성인 것은 일본 정치 역사에서 흔치 않습니다. AP=연합뉴스

일본 자민당 총재 겸 총리에 도전하는 네 명의 후보. 절반이 여성인 것은 일본 정치 역사에서 흔치 않습니다. AP=연합뉴스

어쨌든 남성 후보 일색이던 총재 선거에 남성 2명과 다카이치와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여성 정치인 두 명이 나란히 선 것만으로도 산은 조금 더 움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일본 정치의 산이 어떻게 움직여갈지, 이웃 국가로서도 예의주시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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