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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선배 행복하십니까…외신이 묻네요 "이게 무슨 법이냐"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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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언론중재법)' 심의를 위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비교섭단체 조정위원으로 선임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이달곤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뉴스1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언론중재법)' 심의를 위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비교섭단체 조정위원으로 선임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이달곤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김의겸 선배, 2005~6년 청와대 기자실 춘추관 앞자리에 앉았던 후배입니다. 안녕하시냐고 묻지는 못하겠습니다. 안녕을 묻기엔 저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이 안녕하지 않아서입니다. 대신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행복, 하신가요. 그토록 오매불망하시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다음주 본회의도 통과할 것이 확실시되니까 말입니다. 여당과 선배를 포함한 거여(巨與) 세력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면 말이죠.

춘추관 선배 앞자리에 앉았던 코리아중앙데일리 초년병 시절, 저는 행복했습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죠. 다닥다닥 붙어 앉은 독서실 같은 공간을 가득 채우던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아직도 선합니다. 기자실이란 묘한 공간이죠. 소속사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달라도 기자라는 동지의식도 지닌 이들이 함께 하니까요. 때론 출입처에 함께 대항하면서도 대개는 서로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경쟁하는 곳입니다. 마감에 쫓기며 괴로워하던 표정도 자주 봤습니다. 선배의 당시 소속사와는 정치성향이 사뭇 다른 회사의 선배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환히 웃던 모습도 선연하죠. 늦은 밤 겨우 마감한 뒤 기자실에서 다같이 시켜먹었던 하궁표 짜장면도 참 맛있었습니다.

그랬던 선배가 그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향해 정부 대변인으로 선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최근 들어 국회의원이라는 행운을 손에 쥔 뒤 선배가 “언론 개혁”을 외치면서는 걱정스러웠습니다. 선배가 주장하시는 “언론 개혁”의 결정체가 이번 개정안이죠. 이 개정안 자체에 대한 상세한 비판은 이미 많이 쏟아져 있는 기사들로 갈음합니다. 세계신문협회(WAN-IFRA)에 이어 서울외신기자클럽(SFCC)까지 나서서 20일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저만해도 국내외 외신기자 지인들에게 “이게 무슨 법인 거냐”라는 문의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서울로 지국을 옮긴 한 영어권 신문 기자는 “막상 서울로 오니 백신도 못 맞고 언론 자유도 침해되는 거 같아서 불만이 크다”고 하더군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WAN-IFRA의 최고경영자(CEO)인 뱅상 페레네는 저와 19일 인터뷰에서 “이 개정안은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는 “기자들이 위축돼 결국 자기검열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꼽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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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언론중재안은 기자들의 사기를 크게 꺾어놓았습니다. “기자 90.7% ‘최근 1~2년새 사기 떨어졌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을 기념해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분석한 지난 17일자 기사 제목입니다. 부제 중엔 “5년차 이하 40.8% 이직 의향 있다”가 있군요. 가뜩이나 ‘기레기’ 논란부터 각종 악플에 악메일, 포탈에만 좋은 일 해주는 속보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선배가 일하던 언론과 지금의 언론은 현실이 많이 다르죠. 구독료를 지불하고 신문을 위주로 보던 시대는 이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입니다.

언론이 완벽하다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언론 개혁은 지금 선배가 하려는 개혁이 아니라는 게 핵심 요지입니다. 언론 환경에 대한 직시, 진화한 언론관과 독자들에 대한 정의, 기사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선 제일 잘 알만한 분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면 제게는 또 악메일이 쏟아질 겁니다. 악플이 규제 대상이 되자 이젠 미국에 서버를 둔 e메일 주소를 이용해 악메일을 보내는 게 대세이거든요. 이젠 솔직히 무섭지도 않습니다. 신체 특정 부위를 “뻰찌로 잡고 찢어버리겠다”부터 애꿎은 가족에 대한 욕설도 난무하죠. 이제 저는 거리를 걸을 때 생각합니다.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행복한 미소의 저 중년 남성이 그 메일을 보냈을까? 아님 그 옆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커플이 보낸 걸까. 처음엔 마음이 아팠는데 이젠 적응이 돼서 심드렁해졌다는 게 더 슬프군요.

그래도 씁니다.
진짜 지금 필요한 언론 개혁이 무엇인지, 정치적 입장과 고려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언론인 후배들의 현실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봐 주시길. 청와대 대변인으로 옮기기 전, 한 국내 대학 영어신문사에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더군요. 다시 찾아봤습니다. “왜 기자가 되셨나요”라고 묻는 대학생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하신 걸로 돼있습니다. 그대로 번역합니다.

”대학 졸업 후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라는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이 막 창간이 됐고 그 소속 기자들이 우리 사무실에 자주 왔어요. 조직의 리더들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기자들이 서슴없이 하더군요. 나는 차마 말도 걸 수 없는 분들에게 말이죠. 기자들이 글을 쓰는 것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에 감탄했습니다. 저널리즘의 바로 그런 면이 나를 끌어당겼고, 입사 시험 준비를 바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학보사의 기사 캡처. [the Granite Tower, 고려대 영어신문사 웹사이트 캡처]

당시 학보사의 기사 캡처. [the Granite Tower, 고려대 영어신문사 웹사이트 캡처]

비판적인 질문을 서슴없이 하는 기자들, 글을 자유롭게 쓰고 영향력을 갖는 일. 선배가 핵심 톱니바퀴로 역할을 했던 이번 법안으로 상처 받았다는 것, 그 점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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