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대통령실의 상황 인식

    대통령실은 황 수석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은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 철학"이라고 밝혔다. 전날 저녁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 대사 즉각 귀국과 황 수석의 거취 결단을 요구하자 대통령실이 곧바로 반박에 나선 모양새다. 아무리 대통령실 자체 검증에선 문제가 없었다지만 공식적으로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공직에 발탁했던 게 온당한지,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드러나자 법무부가 신속히 출국금지를 풀어준 것은 특혜가 아닌지, 이 대사가 왜 ‘도주 대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쫓기듯 비행기를 타야 했는지 대다수 국민은 사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2024.03.19 00:44

  • 의·정 갈등 한 달…대화 바라는 여론 변화에 주목해야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해선 여전히 찬성(88%)이 압도적이지만 증원 규모로 2000명을 고수하지 말고 중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자 역시 적지 않았다. 꼬여 있는 대화의 실마리를 풀려면 정부가 먼저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한 모든 의제가 열려 있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어제 CBS라디오에 출연해 "그 의제(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오픈돼 있다"고 언급했지만 그 정도론 충분치 않다.

    2024.03.19 00:43

소리내다 (Make Some Noise)
  • [리셋 코리아] 알리·테무 공세, 국내 플랫폼 경쟁력 높여가야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중국 유통망의 글로벌 버전인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해외 직접 판매 플랫폼의 한국 시장 침투가 거세다. 이것은 침체한 중국 내수시장을 해외 수출시장과 연결하여 발전시키고자 하는 중국 정책 당국의 쌍순환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중국 온라인 플랫폼의 막강한 자본력과 글로벌 입지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 제조 공급망과 결합하면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포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의 온라인 생산유통 시스템은 강력한 제조 원가경쟁력과 공급원의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지만, 이것은 동시에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  「 중국 플랫폼 가격·다양성 장점 한국은 소비자 신뢰 계속 쌓아와 국내 규제는 경제 방어력 저해해  」    한호정 디자이너 특히 생활용품과 패션상품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상품은 압도적인 플랫폼 자산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통제 불가능성은 가격 대비 아주 좋은 상품도 있지만, 반대로 가격을 고려하더라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품도 섞여 있다는 걸 뜻한다. 이러한 점이 통제되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어떤 경우 1000원에 횡재를 하지만, 어떤 경우 바로 쓰레기를 받게 된다. 한국 커머스 플랫폼은 지난 25년간 시장 경험을 통해 이러한 허점을 통제하여 소비자 경험을 높였고, 지금도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 1년간 중국 생산유통 시스템 경험은 소비자들을 온라인 쇼핑 유혹에 대해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시켜 왔다. 일회용품에 가까운 생활용품은 알리익스프레스를 사용하고, 일상적 생활과 연관된 소비는 쿠팡 멤버십 프로그램을 사용하며, 자기 이미지에 관련된 상품은 백화점·명품몰·패션전문몰을 사용하는 소비 패턴이 정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의 대응은 비교적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범정부 TF를 구성하여 중국발 커머스 플랫폼에서 유통될 가능성이 있는 위조품·가짜와 같은 지식재산권 문제가 있는 상품 또는 한국에서는 유통이 금지된 성인용품 등에 대한 노출을 차단하도록 요구하여 국내 판매자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 안전과 직결된 주류나 의료용품에 대한 광고 표시, 화재와 같은 불의의 사고를 통해 구매 소비자를 넘어선 타인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전기안전용품의 인허가 문제 같은 쟁점이 더해질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정치가들이 제기하는 관세 면세 한도 폐지와 같은 국제관례를 깨는 조치는 한국과 중국의 면세 한도가 비슷한 수준이고 2023년 기준 온라인 시장 점유율이 1% 남짓으로 매우 작다는 점에서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소비자의 면세제품 재판매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커머스 플랫폼과 온라인 판매자, 택배 물류사업자 등으로 이루어진 플랫폼 생태계는 서로 입장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영역은 중국산 제품을 단순 구매 대행하여 판매하던 온라인 판매자이다. 이들은 유통구조에서 탈락하는 탈중간상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온라인 판매자 중 중견 판매자는 이미 국내 플랫폼용 판매 상품의 제조원을 국내 제조업체로 전환하고, 동남아 등의 신규 시장에서 해당 지역 총판을 구성하고, 중국에서 판매자 합작을 진행하면서 필요하다면 알리익스프레스 등에 입점한다는 기조 아래 체질 전환을 시도하거나 완료하고 있다. 이것이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와 해외 직접 구매의 단순 비교에서 적자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커머스 플랫폼은 더 격한 경쟁 환경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더 큰 적응력을 키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택배 물류사업자는 지난해 매우 큰 새로운 시장 기회를 얻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시스템에서 내수 시장의 강한 경쟁 환경은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소매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역설적으로 알리익스프레스·테무의 공세는 한국 커머스 플랫폼 규제 환경이 우리 경제의 방어력을 저해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우리 유통시장은 글로벌 경제시스템에서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 상황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자생적 경쟁력을 갖추고 더 자유롭게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경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2024.03.18 00:34

  • [리셋 코리아] 필수의료 의사에게 핀셋형 보상책 이뤄져야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산학연구부총장 의대 정원 증원 이슈가 사회적 블랙홀이 되며, 당초 국민 건강을 위해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살리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필수의료는 중증·응급·소아·임산부 환자 등과 같이 의사가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의료서비스이다. 이를 제공하는 의사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정책이 필수의료를 살리는 길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본인·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 거나 비필수 의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다.   건강보험료를 100조원 넘게 쓰지만 필수의료 지원은 보잘것없다. 건강보험료의 낮은 보장성을 보완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실손보험을 도입한 지난 20여 년 동안 의사들은 법적 위험이 적고 경제적 편익이 큰 의료서비스로 급격하게 이동하게 되었고, 필수의료는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  「 실손보험 도입후 필수의료 뒷전 비필수 의사보다 낮은 대우 방치 재정 투입해 필수의료 복원해야 」    김지윤 기자 규제 완화라는 이름 아래 단계를 밟아 진료를 받는 의료전달체계의 빗장을 풀어버린 결과 서울 가서 진료받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지역의료는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필수의료 분야 건강보험수가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여 대학병원조차 필수의료 분야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게 됐다.   고령화 등으로 의료비가 급증하며 건강보험 재정 적자 운영을 이유로 건강보험료 인상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부는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을 2015년 이후 단 한 번도 법정지원액만큼 지원하지 않아 9년 동안 누적된 지원 부족분이 15조원에 이른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온전하게 작동하도록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과 의료 이용의 단계를 건강하게 복원해야 하건만 의대 입학생 2000명 증원에 매몰돼 있다.   우리 국민은 전국 어디 가서든 진료받고 입원할 수 있는데, 세계 어떤 나라 환자도 원하는 대로 모든 병원을 문턱 없이 이용하지는 못한다. 이런 방식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망친다. 또 개인 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쟁하면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없다. 경증·중증 관계없이 대형병원을 찾는 극도의 전문의 선호와 의료의 무제한 이용을 방치한 정책 실패의 결과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주치의 제도 도입 논의가 30년째 되고 있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에 6000병상을 더 지으려 하고, 수십억원 하는 고가 장비를 개인 의원에 수없이 설치하여도 어떤 계획이나 규제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 의료제도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정부가 방치하였기에 필수의료는 내동댕이쳐졌고, 지역의료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 시급한 것은 의사면허 정지가 아니라 필수의료를 복원시켜 지역의료를 살리는 것이다.   중병이 든 의료체계를 중환자실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료체계 개혁과 함께,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에게 핀셋형 보상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복원을 위한 의료 개혁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현장과 환자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고 건강보험료를 합리적으로 인상하는 것을 미룰 수 없다. 건강보험료를 급격하게 인상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부재정을 증액하여 필수의료를 복원시켜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수가 상환만 하는 출납부 역할을 넘어 지역 단위로 보험 재정을 투입하여 지역에서 적정한 의료서비스와 질병 예방정책이 추진되도록 하여야 한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여 의료전달체계를 재구축함으로써 동네 의원의 기능과 대학병원의 기능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의료서비스 생태계를 복원하여야 한다. 무분별한 병상 증가와 고가 의료장비의 설치를 평가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하여야 한다.   서울 이외 지역에 수십 개 설치 운영되는 국가 지정 감염병·암·심뇌질환·응급의료·전문질환 센터가 지역 네트워크를 이끌어 지역 단위로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 국가 지정 필수의료 공공의원을 지정하여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지역의료 공백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홍수 난 마을에 마실 물조차 없는 상황으로 가지 않고 의료계 난맥을 극복하여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되살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경수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산학연구부총장

    2024.03.11 00:32

  • [리셋 코리아] 트럼프 재선은 한국에 큰 기회 될 수 있어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한국석좌 거침없는 미·중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적 여파, 기후변화의 도전, 여기에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까지. 세계는 지금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한 복합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 입장에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은 실질적인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중견국은 대응적인 외교·경제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위기에는 새로운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은 국제 정세가 만든 ‘복합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  「 지난해 한국 해외 투자 유치 최대 복합위기에 매력적 투자처 부상 불안정한 정세 속 기회 포착 가능 」    [일러스트=김지윤] 미국과 중국 간 경제·기술 경쟁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기업인들은 무역 개방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다자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조만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경제안보와 디리스킹(중국과 경제협력을 유지하면서 위험 요인 제거)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빅3’의 산업 정책이 이끄는 세계 경제의 현실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한국에 곤경을 초래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통계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87억 달러의 기록적인 해외 투자를 유치했고, 327억 달러의 기록적인 투자 약속을 끌어냈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는 반도체·배터리·선박·자동차 같은 첨단 기술 부문이다. 외국 기업·정부들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핵심 부문에서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낙관한다는 이야기다.   삼성과 ASML이 한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7억6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 ASML 같은 기업들은 인건비 등 비용을 기준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와 경쟁할 수 없는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요인보다는 정치가 경제적 의사 결정의 중심이 되면서, 한국은 혁신 주도적이고 안정적 경제 환경 덕분에 더 매력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ASML의 클린룸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국 정부·기업들에 있어 한국을 지지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한국의 증가하는 무기 수출도 현재의 복합위기 환경이 전략적으로 현명하고 제조업 기반이 강한 중견국들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방부 추정에 따르면 한국 무기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140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해 사상 두 번째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173억 달러의 무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또 지난해 수입업체는 3배, 무기 시스템 판매는 2배로 증가하는 등 고객이 더욱 다양화됐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러시아의 한층 격화된 공격성에 여전히 경각심을 갖고 있다.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홍해에서 상업용 선박을 위협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의 공격 등으로 몇달 째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폴란드와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이 한국과 무기 수입 및 방위 협정을 강화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 호주와 말레이시아 등 중국의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도 한국의 무기 제조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신뢰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이 다시 취임할 것이라는 전망과 세계 여러 지역의 불안이 맞물린다면 한국에는 위기가 아니라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주요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 기업이 장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의 핵심 이점인데, 한국은 이 부분에서 탁월하다.   따라서 한국은 단순히 강대국의 변덕이나 불안정한 글로벌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장기판의 졸’이 아니다. 불안정한 세계에서 제 역할을 하는 중견국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표명한 글로벌 중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명칭으로 부르든 한국은 복합위기의 세계가 가져오는 복합기회를 포착한 나라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브뤼셀자유대학 KF 한국석좌

    2024.03.04 00:32

  • [리셋 코리아] 저출산 대책, 부총리급 기구가 필요하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조지아주립대 객원교수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난 1월 18일, 총선 공약으로 저출산정책을 발표했다. 윤석렬 대통령은 이어서 30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주형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교체했다. 그동안 공염불에 머물렀던 출산율 정책을 실효성 있게 바꾸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본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복지정책 전반을 논의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서, 어떤 정부 위원회보다 권위를 인정받는 기구다. 도입 시에는 고령화 시대를 중심으로 한 정책위원회였는데 지금은 저출산 정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나 저출산 문제들에 대해 국민이 인식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고령화로 인한 세대 간 갈등과 합계출산율 0.7대의 저출산 문제를 방치한 채 시간만 보냈다.     ■  「 주택·육아·교육 등과 연관돼 대통령 직속 위원회 체제론 한계 실행력 갖춘 정부기구가 맡아야 」    김지윤 기자 고령화는 노인들의 문제인 반면 저출산은 젊은 세대의 문제인데, 이를 한 위원회에 몰아넣고 함께 해결해주기를 기대해 왔다. 노인정책은 노후 준비가 안 된 노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생활 능력이 없는 노인들에게 복지비를 걷어낼 방법이 없으므로, 거의 젊은이들의 부담으로 국민연금·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혜택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 문제는 전혀 다르다. 젊은 부부의 출산 결정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녀들이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20년 이상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어야 하고, 자신들보다 더 안정된 사회에서 살 수 있겠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저출산정책의 핵심은 태어나지 않은 자녀들에게 안정된 주택·육아·교육·일자리까지 보장해 젊은이들의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논의는 구조적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복지 예산 증액에 집중해 왔다. 위원회는 연금개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은 물론 고령화로 급등하는 노인 의료비에 대한 구조적인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저출산이 심화하는 데도 체계적 지원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22명의 위원 중 기획재정부 부총리를 포함해 보건복지부·교육부 등 유관 7개 부처의 장관이 직접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각 부처의 예산을 눈치껏 밀어주는 바람잡이 역할을 해 왔다. 내부 사정이 있겠지만, 과연 위원회에 소속한 관련 학자·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논의했는지 의문인 채 관련 부처에 논의를 맡겨 놓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실무를 맡게 된 부위원장을 경제통으로 위촉한 것은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운영된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위상을 찾으려는 변화로 본다.   첫째, 위원회가 추상적 논의만 하지 말고 책임감 있게 저출산정책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도록 요구한 것이다. 17년간 332조원이 저출산 예산으로 투입되었지만, 출산율은 지속해서 하락했다. 저출산 예산이 새로 출산을 결심하도록 하지 못한 채, 이미 출산을 결정했거나 출산한 가정에 집중된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예산 타령만 하기에는 저출산 위기는 이미 시간을 넘긴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혁신적 정책적 재검토가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부위원장이 경제통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최근 급격히 증가해온 보건·복지·고용·교육 예산이 올해 전체 예산의 50%를 넘고 앞으로 법적 의무 지출 증가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민이나 정치권이 모두 보편적 복지라는 심각한 ‘복지병’에 감염되어 있다. 이제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복지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되어버린 경제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셋째, 앞으로 저출산 문제는 위원회급 정책 논의에서 부총리급 정부 기구로 전환해 저출산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실무형으로 교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출산·주택·육아·교육·일자리까지 모든 부분이 안정적으로 연결 고리가 끊이지 않고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출산을 결심한다.   국민의힘은 총선 공약 1호로 출산율 정책을 제시하면서 ‘인구부’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민주당도 총선 공약으로 ‘인구위기대응부’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이제 대통령이 저출산의 책임을 위원회가 아니라 부총리급 ‘인구부’에 물을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조지아주립대 객원교수

    2024.02.2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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