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스티븐스 프로필 사진

캐슬린 스티븐스

필진

전 주한미국대사 · 한미경제연구소장

전 주한 미국대사
한미경제연구소장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책에 바치는 찬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는 내가 서울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거대한 지하 미로 같은 통로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세대의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 무엇인지 눈여겨보곤 한다. 다양한 번역서, 눈에 띄게 전시된 도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후보작 등 한국에서 유독 두각을 나타내는 해외 작품들이 뭔지 살펴본다. 이곳에선 휴대폰으로 글을 읽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이를 ‘독서’라 부르는 현대사회에서 책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줘 마음도 편안해진다. 서울이나 워싱턴 지하철 출퇴근길에서 휴대폰을 보는 대신 독서를 하는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항상 반가운 일이다. 그럴 때면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몰래 훔쳐보곤 한다.   나는 몇 년 전 미국외교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의 도서 선정위원회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도 바로 수락했다. 이 위원회는 매년 ‘미국 외교 활동에 관한 우수 도서’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역대 수상작 중에서 한·미 관계와 대북 협상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 한국 외교 관련 도서 두 권을 발견했다.     ■  「 한·미 관계, 대북 문제 이해 넓힐 놀랍고 파격적인 우수도서 많아 한국 독자들도 번역서뿐 아니라 정치·외교 해외서적 두루 접하길 」    첫 번째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깊숙한 개입, 제한된 영향력: 카터와 위기의 한국』이다. 2000년 수상작품인 이 책은 그가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대사로 일했던 한국에서의 경험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다른 한 권은 2005년 수상작인 『북핵 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조엘 위트·다니엘 포네만·로버트 갈루치 공저)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미국과 북한의 첫 번째 실질적 외교협상을 거쳐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역사적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책이다.   다른 수상작들도 살펴보면 아카데미가 미국 외교의 성공이나 외교관 출신 저자들의 탁월함을 의례적으로 축하하기 위해 상을 수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외교활동이 얼마나 까다롭고 불완전한지 잘 보여주거나 아카데미가 표현하는 것처럼 ‘외교가 제공하는 기회와 한계에 초점을 맞춘’ 도서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는 한국이나 아시아에 특화된 출품작은 없었지만 교훈을 얻고 선택할 만한 후보들은 많았다.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의 회고록 『변방에서 얻은 교훈』과 피오나 힐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의 『여기 당신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트럼프 정부 시절 두 여성의 전문성과 진실성을 용기있게 담고 있는 파격적인 작품들이다. 트럼프 정부 이전 이들의 빛나는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들어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외교관이나 공무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헨리 키신저와 중동 외교를 다룬 책도 있었고 독일 통일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조치와 실수에 관한 도발적인 서적 『1인치도 용납되지 않는』도 후보 중 하나였다.   2022년 수상작은 스팀슨센터의 공동 설립자인 마이클 크레폰의 『핵 평화의 승리와 패배: 군비 통제의 흥망성쇠와 부활』이다. 이 책은 고강도 줄타기 외교, 일촉즉발 위기, 끈질긴 집념, 엄청난 성공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시에 트루먼 시대부터 트럼프 시대까지 군비통제 예찬론자들과 핵억제 예찬론자들 간의 대격돌, 아이러니한 반전과 예상치 못한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이 북한과 관련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혹자는 ‘군비통제’라는 단어를 읽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북한이나 이란에 관한 게 아니다. 외교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를 살펴보는데 더 적합하다.   책을 권하는 차원에서 외교 분야는 아니지만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두 권을 더 소개한다. 교보문고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해외 서적이 많지만 나는 더 많은 독자들이 한국에만 국한되지 말고 정치·외교 관련 책들을 두루 접하길 권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는 모이제스 나임 전 베네수엘라 통상산업부 장관이 저술한 『권력의 복수: 21세기에는 독재자들이 어떻게 정치를 재창조하는가』이다.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가 ‘3P’라고 묘사한 포퓰리즘(populism)·양극화(polarization)·탈진실(post-truth)은 한·미 양국뿐 아니라 이 ‘3P’가 다른 국가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공통의 관심과 대응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이는 공동의 도전 과제이며 우리가 자유를 어떻게 보존해야 할 지도 생각하게 해준다.   두 번째는 이번 주 백범김구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에 오면서 다시 읽고 있는 책.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이다. 외교관이 쓴 회고록은 아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처럼 외교관 역할을 해야만 했던 한국 민족주의 정치인의 회고록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격동의 세월을 보낸 한국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그 시절의 혼란과 외교를 다룬 영문서적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오늘날의 더 나은 정치와 더 나은 외교에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2.11.24 00:47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역사의 교훈을 오늘에 되새기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6월과 7월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뿐 아니라 한·미 관계에도 중요한 날짜들이 들어있다. 이 날짜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정학적 지형을 바꿔놨다.   그중 하나는 단연 1950년 6월 25일이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엄청난 기습공격을 감행한 날이다. 1953년 1월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그의 퇴임사에서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로 한 것이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69년이 흐른 지금, 6월 25일의 중요성을 아는 미국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  「 6·25와 7·27, 양국 모두 뜻깊은 날 미국선 ‘추모의 벽’ 헌정식도 열려 유족들의 삶에도 의미 부여하고 반성을 넘어 지금의 과제 풀어야 」    지난 6월 25일, 나는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토요일인데다 날씨도 따뜻해 광화문 일대를 산책했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각종 깃발·현수막·확성기를 들고 나온 단체들이 보였다. 대부분 노년층인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념행사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주말 나들이객들에 수적으로 밀렸다. 노년층에게 ‘6·25’라는 말 자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상과 고통스러운 상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이라 부르며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올해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재개관했는데, 거대한 화강암 석판에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과 주한미군 배속 한국군(카투사)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 헌정식도 열렸다.   몇 년 전 이 기념공원을 보수하려는 계획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약간의 모호한 감정을 느꼈다. 1995년에 건립된 원래의 기념공원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국을 포함한 국제연합군에 대한 깊은 감동과 찬사를 훌륭하게 구상한 헌정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기념물을 왜 건드리려 하나.   ‘추모의 벽’ 헌정식에서 줄리가 할아버지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캐슬린 스티븐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추모의 벽’ 헌정식에 유족들과 함께 참석한 뒤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워싱턴DC 내셔널몰의 뜨거운 아침 햇살 아래, 나는 벽에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의 유족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은 줄리(Julie)라는 이름의 키가 큰 50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제복 차림을 한 젊고 잘생긴 청년의 커다란 빛바랜 사진을 들고 있었다.   줄리는 사진 속 인물이 그녀의 할아버지인 에드워드 메어스(Edward Mares) 상사이며 1950년 7월 16일 소속부대가 금강을 건너 퇴각하던 중 전사했다고 말했다. 줄리의 아버지(에드워드의 외아들)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전사한 후 태어났기 때문에 그녀 역시 할아버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줄리는 사진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쏙 빼닮은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를 즐겁게 이어나갔다.   줄리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는데 워싱턴DC는 처음 와봤다고 했다. 뉴올리언스에서 이곳까지는 암트랙(Amtrak) 열차로 30시간 이상 걸렸다며 그 때문에 헌정식 하루 전 날 유족들에게만 ‘추모의 벽’을 사전 공개한 특별행사를 놓쳤다고 했다. 우리는 줄리의 할아버지 이름을 찾기 위해 ‘추모의 벽’을 함께 걸었다. 그녀는 한국에 있는 비슷한 모양의 벽에 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며 고마워했다. 이제 미국의 내셔널몰에서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걸 볼 수 있게 된 데도 감사함을 표했다.   내가 이전 칼럼(중앙일보 2020년 6월 11일자 35면)에서 소개했던 로널드 파커(Ronald Parker) 일병의 이름도 찾았다. 몬태나 주에서 살다가 20살의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참혹했던 여름 퇴각 작전 속에서 메어스 상사가 전사한 지 불과 2주 후에 남쪽으로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전사했다. 행사에 참석한 다른 유족들도 전사자의 이름을 찾거나 사진을 교환하고 꽃을 꽂거나 벽에 새겨진 이름을 연필로 문질러 탁본을 뜨기도 했다. 관련기사[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친애하는 파커 일병에게   줄리는 한국전쟁 이후 그녀의 할머니가 아들을 낳아 키우며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수년간 알고 지낸 많은 한국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 역시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 가족을 부양했고 자신의 삶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한국 자체를 어떻게 재건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이 또한 기념물을 세울만한 가치가 있다.   1953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Mark Clark) 장군은 정전협정에 서명하면서 “이 순간을 기뻐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경제·민주주의·문화강국으로 꽃을 피우고 있고 한·미 동반자 관계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축하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6월 25일과 7월 27일은 좀 더 깊은 의미에서 반성과 추모의 기념일이자 여전히 우울한 날로 남아있다.   한반도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과업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 세기에 한국에서 직면했던 것과 어떤 면에서 유사한 도전을 상기시킨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 교훈들이 당장 필요하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2.08.04 00:40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용산 미군기지 이전의 마무리 과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성공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내용면에서 충실했고 분위기도 훈훈했다. 한·미 공동성명은 길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야심찬 청사진을 바탕으로 1년 후 윤석열 대통령과 채택한 이번 성명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골자로 한·미 동맹의 범위와 세부사항을 더욱 진척시켰다.   이 고귀한 비전을 환영한다.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려는 열의가 양국 모두 뚜렷하다. 정상회담 후 세계적인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것부터 수많은 콘퍼런스, 학술교류, 기업 대표단 방문과 군사훈련에 이르기까지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민간부문이 점점 더 다면적인 관계 확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  「 대통령 집무실 이전, 용산 주목 기지반환·용산공원화 속도 붙어 환경복원은 여전히 민감한 현안 인내·정치적 의지·타협정신 필요 」    최근에는 한·미 관계에 있어서 여전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역사적인 유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서울의 귀중한 도심 부지를 풀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변신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발자취 말이다.   한국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려는 건 아니다. 의견 표명 자체가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최근 상당수의 한국 언론과 외신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주목했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으로 남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비어 있으며 이곳이 용산공원으로 조성된다는 점에 집중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사업은 장기간 진행됐기 때문에 역사적 경과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노무현·조지 W. 부시 정부 시절이던 2004년,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 이전협정 이행합의서’에 서명했다. 2008년까지 서울에 있는 주한미군 대부분을 평택미군기지(캠프 험프리)로 이전하고 용산기지 시설과 구역 대부분을 한국 정부에 반환하는데 합의했다. 하지만 대규모 건설 및 이전에 드는 비용과 복잡한 과정을 미루어볼 때 4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금세 확연해졌다.   내가 신임 주한 미국대사로 서울에 부임했던 2008년 9월, 상징적인 도심 녹지공간으로 계획된 용산공원을 포함해 용산의 미래에 대한 구상이 이미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용산기지 이전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진행이 더뎠지만, 이미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전 움직임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화없이 외딴 초소에 있는 몇 채 안 되는 퀀셋(Quonset) 막사들로 구성된 다양한 크기의 미군 시설들이 폐쇄되었고 해당 부지는 지역 사회에 반환되었다.   점차 주한미군 주둔은 현대 한국과 현대적 한·미 동맹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그 기능과 위치가 통합되었다. 내가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하며 보낸 최고의 날들 중 하나도 2011년 그 당시 국무총리, 부산시장과 함께 캠프 하야리아(Hialeah)를 부산시민공원으로 전환하는 기공식에 참석한 날이다. 땅이 부족한 부산에서 이 공간은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녹색 휴식처가 되었다.   각각의 미군기지 반환은 규모에 상관없이 수많은 이해관계자, 정부 부처 및 관련 단체들, 지자체 등의 참여를 바탕으로 전통적 방식의 군사·외교적 협상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한 토론을 거쳐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환경복원은 오염 기준과 비용 부담 주체에 따라 여전히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다.   역사적인 각주 한 가지를 더 소개한다. 나는 1980년대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 부임시절 미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릴리 대사는 서울에서의 다사다난한 재임 기간(1987~1989)을 기술한 회고록에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의 첫걸음이자 어쩌면 잊힌 단계에 대해 소개했다.   릴리 대사는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 직후 용산기지 내 주요 시설을 이전하는 데 본인에게 협조를 구했다고 언급했다. 서울올림픽이 다가오면서 특히 소련이나 중국은 물론 한국과 아직 국교 수립 전인 국가에서 찾아올 외국 방문객들이 한강을 건너면서 미군기지와 미군 전용 골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데 한국 정부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제안이 ‘너무 야심차다’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인들이 미군 전용 골프장을 특히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래서 골프장을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는데 동의하도록 미군 지휘관들을 압박했다. 이후 용산기지 내 미군골프장 부지는 한국에 반환돼 용산가족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릴리 대사는 미군골프장 이전에 대해 “싹트는 민주주의,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국, 자주독립국가라는 1988년 대한민국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서술했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용산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용산의 미래를 만들어 가겠지만 미국은 그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할 동맹이자 친구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인내심은 물론 우선순위 선정, 정치적 의지와 기량, 타협 정신이 모든 면에서 필요하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2.06.09 00:40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한국 대선 휩쓴 ‘젠더 전쟁’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민주주의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위기에 처해있다. 암울했던 한국의 대선 캠페인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제도가 허위 정보·양극화·스캔들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많은 한국인들이 비호감 대선후보들 속에서 차악을 선택하는 모습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선거가 여전히 중요하며 책임 있고 적법한 지도자를 뽑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 또한 상기시켰다. 후보들에 대한 불만 속에서도 나타난 높은 투표율, 패자의 빠르고 품위 있는 승복, 관대하면서도 적절했던 당선인의 수락연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12일자 사설에서 “35년 된 한국의 민주주의가 우수한 점수로 합격했다”고 언급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연계해 “미국 주도의 안보동맹이 한물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일깨워줬다”고 평가했다. 또한 “매우 필요한 시기의 대미 우호적 전환”이라며 윤석열 당선인이 바이든 대통령과 협력해 한미동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을 촉구했다.   ■  「 대선 기간 젠더갈등, 해외 큰 주목 한·미 모두 여권 크게 성장했지만 임금격차, 유리천장 등 한계 여전 세대·성별·정파 넘어 기회 넓혀야 」    여론조사 결과도 양국 국민 모두 더 긴밀한 동맹관계를 향해 강력한 초당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지난해 5월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을 토대로 모든 의제에 걸쳐 한·미 협력이 확대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여러 국내·외 도전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물가 상승,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장악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길한 예측 등의 과제가 놓여있다. 윤 당선인은 격화되고 있는 강대국 간 패권경쟁은 물론 부동산·일자리·형평성 등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 대선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된 데는 외교 정책의 시사점이나 한국이 글로벌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라는 점 외에도 또 있다.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이번 대선에서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와 선거전략 측면에서 젠더 정치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상당수의 미국 매체들도 이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워싱턴포스트는 선거 결과를 환영하는 사설을 낸 같은 날 “한국의 ‘안티 페미니스트’ 선거가 어떻게 젠더 전쟁을 촉발했는가”라는 오피니언 칼럼을 실었다. 대선 일주일 전에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성차별주의자들의 반발에 맞서 싸우다” “한국 대선후보, 인터뷰 내용이 논란되자 세계 여성의 날에 ‘페미니스트’ 꼬리표 거부하다”라는 기사들을 싣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미국 내 한국 관측통들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질문과 함께 한국 내 여성 지위와 페미니즘, 윤 당선인이 안티 페미니스트인지 여부, 한국의 남성인권 옹호자들의 활동이 유럽과 미국의 우익 남성우월주의 운동의 변형인지에 대해 논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나는 1975년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네 명의 여교사들과 함께 근무했던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한국 여성들의 법적 권리·교육 기회·직업 선택 등에 나타난 엄청난 변화를 지켜봐왔다.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로 1980년대 가족법 개정운동에 앞장섰던 이태영 박사를 그가 창립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만났던 기억도 난다. 주한 미국대사 재직 시절에는 한국 여성들의 노력과 업적을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점은 우려스럽다.   미국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내가 첫 서울 근무를 시작할 무렵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정치과로 발령받았다. 우리 세대의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주한 미국대사를 포함해 수많은 외교 관련 직책에서 ‘최초의 여성’이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이 분야에서 ‘유일한 여성’은 아니다. 내가 1986년 서울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대학교수였다. 그때만 해도 그가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내가 공직에 있는 동안 한 명도 아닌 세 명의 여성 국무장관 밑에서 근무하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젠더 문제에 있어 성별 임금 형평성, 공중보건 및 보육 지원, 금은 갔지만 깨지진 않고 심지어 어떤 분야에서는 한국보다 더 높기까지 한 유리천장 등 나름의 심각한 결점을 갖고 있다.   때마침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코리아 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가 지난해부터 ‘한·미 관계에서 여성의 리더십’을 주제로 웹 세미나(웨비나) 시리즈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는 남성들 틈에서 비주류로 분류될 우려에 여성 특화 프로젝트를 기피했지만 이제는 이런 기회가 반갑다. 지난달 대담자는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과 시안 레아 베일락 바너드 칼리지(Barnard College) 총장이었다. 두 여자대학 모두 1880년대에 설립되었고 당시만 해도 전무했던 여성 대학교육을 최초로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이다. 대선도 끝났으니 이제는 ‘젠더 전쟁’에서 세대·성별·정파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토론으로 나아가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를 위한 기회를 확대하길 기대한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2.04.07 00:44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기다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선택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백악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신임 주한 미국대사에 필립 골드버그 주콜롬비아 대사를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골드버그 지명자는 미국에서 가장 노련하고 숙련된 직업외교관 중 한 명이다. 그의 지명은 한국을 위한 탁월한 선택이다.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왜 그가 한국의 입장에서 적기에 부임하는 적임자라고 보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불식시켜야 할 두 가지 헛소문이 있다. 첫 번째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 동안 주일·주중 대사가 지명됐는데도 유독 주한 미국대사 지명이 늦어진 것은 한국이 미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거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묘한 불만을 반영한 것이라는 억측이다. 이는 모두 사실무근이다. 오히려 바이든 정부가 팀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한국과는 무관한 여러 다양한 이유로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주한 미국대사를 여전히 가장 중대한 해외 주재 외교 직책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로 봐야 한다.   ■  「 골드버그 대사 지명은 탁월한 선택 경험 풍부한 베테랑 직업외교관 ‘대북 강경파’ 평가는 편향된 시각 한·미관계 증진 역할에 기대 커 」    두 번째는 골드버그의 지명 소식을 한국 언론이 어떻게 다뤘는지와 관련이 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골드버그는 3개국 대사와 3년 이상의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담당 차관보 경력을 포함해 미국 안팎의 고위 외교관직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 뽑은 헤드라인을 보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무부 유엔 대북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을 맡아 유엔과 대북제재를 조율한 경력 때문에 그가 선택됐고, 이는 즉 미국이 대북 강경파 ‘제재 집행관’을 서울로 보내는 것으로 읽힌다. 그의 한국 관련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해하지만 골드버그의 시각을 추정하는 치우친 보도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보다는 그의 다양하고 풍부한 외교관 이력에 더 주목해야 한다. 골드버그 지명자는 쿠바·콜롬비아·코소보·볼리비아·필리핀 등 그가 활동했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다양한 이슈를 외교적으로 해결해 왔다. 그는 당근과 채찍, 이익(incentive)과 불이익(disincentive) 등 다양한 외교적 도구들의 유용성에 대한 미묘한 차이까지 숙고하며 진전을 추진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제재는 유용하지만 한계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서울·워싱턴·뉴욕에서 진행될 대북 관련 논의에서 사려 깊고 존경받을만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한국 지인들은 여전히 나에게 “골드버그에 대해 왜 그렇게 열광하느냐”라고 묻는다. 그가 나와 같은 직업외교관 출신이란 점에서 내가 지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직업외교관 경력이 언제나 가장 효과적인지 묻는다면 훌륭한 대사들이 늘 직업외교관 출신인 건 아니라는 게 내 답이다. 나는 전직 주한 미국대사 중 중앙정보국(CIA) 지부장을 지낸 제임스 릴리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학자이자 카터 대통령의 친구이기도 했던 제임스 레이니를 가장 존경한다. 두 대사는 한국에 부임해 있는 동안 중요한 순간마다 중추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나는 두 사람을 후임자들의 멘토이자 롤모델로 여기고 있다.   경력에 상관없이 성공적인 대사가 되려면 해외 부임지에서는 효과적이고, 자국에서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골드버그 지명자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역량을 지녔다. 그는 가장 민감한 상황에 처해있던 해외 각지에 계속해서 파견됐었다. 그 과정에서 친밀한 관계와 통찰력으로 해당국과 굳건하고 진솔한 관계를 수립하는 동시에 정확한 현지의 실상을 워싱턴에 알렸다. 또한 그가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담당 차관보 등 워싱턴에서 활동하면서 쌓아온 인맥과 신뢰는 그를 그저 변방의 목소리가 아닌 행정부의 참가자로 만들 것이다. 이것은 한·미 협력에 좋은 징조다.   나는 골드버그 지명자가 워싱턴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우리는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코소보 주재 미국 공관장으로 일했다. 당시 나는 코소보 전쟁 이후 처리 방안을 모색하는 미국측 주협상가였다. 협상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리슈티나를 자주 방문했는데 전화 통화는 그보다 훨씬 빈번했다. 코소보는 물론 주변국 상황까지 매우 불안해지면서 현장 파악, 상황 평가, 대안 분석 등에 대해 전적으로 그에게 의지했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인간애를 찾아내는 그의 능력과 건전한 정책적 판단력에도 감탄했다. 한국 국민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예리한 지성, 탐구정신, 공감 능력과 유쾌함을 높이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골드버그 지명자는 서울에서 신임장을 제출하기 전에 미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수년 동안 불필요하고 파괴적이며 편협하고 당파적으로 변해서 그의 정확한 부임 시기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또 한 명의 전설적인 미국 직업외교관인 필립 하비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주한미국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에 입성하기를 고대한다. 골드버그 지명자가 ‘하비브 하우스’의 새 주인이 되어 복잡하지만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미 관계를 한층 강화시켜 갈 모습이 무척 기대된다. 오래 기다릴만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2.02.17 00:42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한국에서 돌아와 중국을 생각하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지난 11월 말,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새벽녘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티끌 하나 없이 깔끔했고, 감염병 관련 각종 검사과정도 감동스러울 만큼 매우 전문적이고 효율적이었다. 보건소의 PCR 검사 과정도 수월했다. 미국의 처참한 코로나 대응을 경험한 나에게 한국의 차분한 풍경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온 것을 실감케 했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에 올 때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한국 속담을 실감하곤 했다. 특히 이번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에 쌓인 깊은 피로감과 오미크론 변종의 예측 불가능한 영향으로 일상생활이 악화된 모습에 크게 놀랐다. 한국의 공중보건 제도와 관료적 역량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코로나 ‘블루’(우울증)가 ‘레드’(분노)와 ‘블랙’(절망)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2년간의 도전에 대처하는 한국의 회복탄력성과 적응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도 다른 나라만큼 독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허위정보·정치화·양극화의 바이러스들이 한국에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  「 한·미 모두 일관된 중국 정책 결여 경제·안보 간 경계도 모호해져 동맹간 정책의제 협력 강화하고 중국에 대해 더 깊이 대화해야 」    한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어떻게 풀릴까에 대한 걱정 말고도 고민거리를 많이 안고 있었다. 흥미롭지 못한 대통령선거, 청년층의 경제적 기회 박탈, 세대격차, 페미니즘과 반 페미니즘, 미국의 미래 향방에 대한 의구심, 고립된 북한의 다음 행보, 미·중 경쟁이 냉전(冷戰) 혹은 열전(熱戰)으로 갈 지, 주한미국대사 지명이 왜 늦어지고 있는지 등 다양하다.   이번 2주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든 생각은 무엇보다 한·미 양국이 중국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중국에 대한 이해와 관계 설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세계 지형의 큰 전략적 변화인 만큼 양국 간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모든 수준에서 허심탄회하고 지속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도 미국도 일관된 ‘중국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중국 정책은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중국은 한국의 핵심 경제 파트너이자 남·북한 관계 발전의 필수 요소였고 미국은 안보 파트너이자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만큼 결코 간단치 않았다.   ‘경제를 위해서는 중국,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외교 공식은 진부해졌다. 경제 영역은 이미 안보 영역화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과 민감한 기술 및 지적재산권 보호 정책을 우선순위에 두거나 중국이 싫어하는 안보정책을 추진한 한국과 호주에 대해 중국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취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경제활동과 안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심지어 사라져버렸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여론도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국은 북·중 관계, 지리적 근접성, 중국과의 길고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쿼드(QUAD)부터 대만, 남중국해 의제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관련된 다양한 사안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잘 정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이 ‘대테러 대응(테러와의 전쟁)’에서 강대국 간 경쟁으로 전환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바이든 정부는 집권 초기 특히 아시아 동맹과 파트너십 강화, 쿼드·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등을 통한 다자간 협력 구축에 중점을 뒀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14일 인도네시아에서 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이란 제목의 연설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보다 파트너로서 더 낫다는 ‘소프트파워’를 내세우면서 미·중간의 직접적인 대립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묘사했다.   지난달 15일에 열렸던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의 온라인 정상회담에서 보인 부드러운 담론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에 환영할 만한 접근 방식이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이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는 기존 관점을 바꾸지 못한 것처럼 블링컨 장관의 ‘포괄적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발언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후 무역협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하지만 공급망 복원력·청정에너지·탈탄소화·인프라·민주주의·백신 등 동맹국들과 더 많은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광범위한 정책 의제들의 윤곽은 드러났다. 이런 협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며 지역적·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다양한 민·관 접근법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의 연설이나 정상회담보다는 한국인과 미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자국과 중국간의 역사와 상호 관계에 대해, 그리고 공유된 미래에 대해 지속적이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 예일대 교수의 『제국과 정의로운 국가: 600년 한·중 관계』를 다시 꺼내 읽었다. 베스타 교수는 저서에 “통일되고 평화로운 미래의 한국을 위하여”라는 헌정 문구를 넣었다. 그 미래를 달성하려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순간을 이해하고 더 잘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12.23 00:41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소프트파워와 한국을 보는 미국인들의 달라진 시선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지난 10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영화·드라마·음식 등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K-Wave)’라는 한국의 소프트파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오랫동안 나의 대답은 “라떼는 말이야”의 변형이었다. 1970~80년대에 한국에서 지낸 행운을 누렸고 세계가 한국의 멋진 가능성에 눈뜨기도 전에 이미 그 잠재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악·영화·미술의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호소력이 민주주의와 번영 그리고 글로벌 노출을 통해 세계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말이다. 그래서 한국이 자랑스러웠고 조금은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2008년 신임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돼 서울로 갈 준비를 할 무렵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라고 소개했을 때 그들이 놀란 표정을 짓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진정한 케이팝(K-POP) 팬이든 아니든 최신 트렌드를 따라잡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팬데믹으로 자가격리 중인 대중에게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한국의 문화 콘텐트는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을 알게 되는 핵심적인 렌즈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콘텐트는 계속해서 경계를 허물며 놀라움과 자극 그리고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  「 “오징어 게임 봤니?” 많이 물어봐 K-콘텐트, 한국을 보는 핵심렌즈 한·미 서로의 시선도 변하고 있어 새로운 시선, 한국 위상에도 영향 」    나는 항상 한국에 대한 오만가지 질문을 받는다. 전 주한 평화봉사단원, 전 주한 미국대사,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회 의장 그리고 한·미관계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장으로서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것은 일의 일부이자 개인 정체성의 큰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몇 주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전망도 한국의 대선 상황도 아니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의 한국의 역할도 물론 아니다. 바로 “당신은 오징어 게임을 보았는가?”였다. 봤다고 해놓곤 외교관답게 질문자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기다린다. 이럴 때면 경쟁, 불평등, 공정,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선택의 자유, 폭력, 세대·문화 격차, 한국과 미국의 유사점, 언어, 성 역할 등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대화가 이어진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드라마 시청은 스트레스와 불안에 탁월한 해독제”라고 보도했다. 얼마 전 외교정책 전문가들과 한국 대통령의 임기와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왜 그렇게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라고 말한 참석자도 있었다.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라는 사실 자체보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 실제 한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맥락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호소력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역대 한국 정권과 많은 한국인들은 수십 년간 미국인들이 한국을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는 것조차도 부정적이거나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 198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미국 드라마 ‘매시(M.A.S.H)’에 대해 한국인들이 불평했던 것을 기억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였는데 한국인들은 이 드라마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이 왜곡되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변명을 하자면 그 드라마는 사실 한국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한미친선 조직인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미국인들이 한국전쟁을 잊고 싶어 하던 무렵인 1957년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고 퇴임한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Van Fleet) 장군이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지난해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버추얼 갈라쇼를 통해 한국전 참전 미군 용사들과 방탄소년단(BTS)에게 밴 플리트상을 수여했다. 언뜻 부조화스러울 수 있는 조합이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오래전 함께한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대해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했고 참전용사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활력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올해는 뉴욕의 상징인 플라자 호텔에서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연례 만찬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는 제너럴 모터스(GM)와 LG의 전기자동차 생산 노력을 치하하는 한편 한·미 양국이 기후변화에 공동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번 연례 만찬 행사에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용사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애석했다. 생존한 참전용사들의 숫자가 매년 줄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4일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구역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관 건립을 위해 마지막 일생을 보냈던 한국전 참전용사 존 스티븐스 대령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참배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역사와 그 역사를 일군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그 노고를 연구하고 계속 배워가야 한다. 동시에 미국인과 한국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이런 변화하는 시선이 양국 관계의 미래와 세계 속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정립할 것이기에 앞으로 보다 심도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11.04 00:45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아프가니스탄, 한국 그리고 미국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년 8월은 끔찍한 달이었다. 코로나19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후변화 문제도 시작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거침없이 드러난 여름이었다. 게다가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기울여 온 아프가니스탄 재건 노력의 급격한 붕괴는 장단기적으로 새로운 도전과 불확실성을 안겨주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가운데 미국과 전 세계는 즉각적인 인도주의·이주·안보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수치스러운 패배로 보이는 이번 일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아직은 불확실하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이 여론의 지지와 국내외 전략적 우선순위를 고려한 옳은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사전 조율과 협의 없이 강행해 유럽과 다른 동맹국들의 분노를 샀다. 더욱이 미국은 아프간 군과 정부의 빠른 붕괴와 탈레반의 진격을 예상치 못했다. 혼란스러운 대피 과정은 바이든 대통령의 역량과 판단력에 흠집을 냈다. 지난달 미군 13명과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카불공항 테러는 아프간 미군 주둔 최근 10년 중 가장 치명적인 날이자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장 암울한 날이었다. 부실한 계획과 현지 혼란 속에서도 고무적인 것은 공수작전 자체가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는 초기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와 민간인들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동원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  「 아프간 철수작전 바이든에 흠집내 한국, 아프간 재건에 20년간 헌신 한국의 신속한 구출과 환대 인상적 미들파워 한국의 존재감 주목해야 」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프간 계획 전반, 나아가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과거와 미래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미국이 20년 전 아프간에 들어간 것이 문제였나. 국가 건설 과정이 너무 과하거나 부족했나, 아니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나. 아프간 문화·역사에 대해서도 너무 무지했나. 이런 논의에서 한국은 성공적인 ‘국가 건설’ 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미군 주둔으로 수십 년간 안보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불완전하지만 성공적인 모델로도 거론된다.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을 태운 버스가 지난달 27일 오후 임시 수용시설로 지정된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도착한 가운데 한 아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손인사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신뢰도 하락,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책무와 관련된 인식도 자주 거론된다. ‘서울은 카불이 아니다’ ‘미국의 또 다른 영원한 전쟁터인 한국은 아프간 철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같은 제목의 글들은 “주한미군을 감축할 생각이 없다”라는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과 맞물려 있다. 한국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느낀 점은 미군 철수에 대한 우려가 한국보다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불안이 극심한 유럽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국은 한국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우여곡절 속에서도 추진됐던 한국의 아프간 파병이 보여준 미국과의 보다 성숙한 파트너십과 ‘글로벌 미들파워’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존재감도 주목해야 한다.   2001년 9·11테러 이후, 김대중 정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도 아프간에 공병 및 의료부대를 신속하게 파견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전에 의료지원단과 건설지원단을 보냈다. 이것도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국은 2008년 이라크 파병 임무가 평화적으로 종료되기 전까지 연합군 중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지원한 국가였다. 그러나 2007년 분당샘물교회 교인 23명이 선교활동을 하러 아프간에 갔다가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미국 외교관으로서 납치된 민간인 구출과 더 많은 인질극을 조장할지 모를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했던 당시 한국 정부의 난처함에 공감했다. 결국 인질 석방은 성공했지만 그 여파로 한국 파병 인력 주둔지는 바그람 미군기지에 자리 잡았던 작은 한국병원으로 축소되었다. 2009년 한미 의제로 다시 아프간이 떠올랐고, 2010년 한국은 군인·경찰·구호요원들로 구성된 지방재건팀(PRT)을 파견하는 등 지원을 확대했다.   아프가니스탄은 계속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초창기 주요 수혜국이었다. 한국은 2002년 카불에 코이카(KOICA) 사무소를 개설하고 각종 위협과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지원활동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한국의 최대 양자간 원조수혜국이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나토 외무장관 회의 참석에서 보듯이 나토와 동반자 관계를 계속 확대하고 있는데 그 인연이 시작된 곳도 아프가니스탄이다.   2001년부터 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간 재건 노력에 한국이 보여준 헌신을 지켜봐왔다.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자신감과 정체성, 급성장하는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 특히 중앙아시아에서의 인적 네트워크의 확대도 눈여겨봐왔다. 태권도가 아프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역대 올림픽에서 딴 유일한 메달 두 개가 이란에 있는 아프간 난민 수용소에서 태권도와 사랑에 빠진 선수에게 돌아갔다. 한국 정부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아프간인 구출과 그들이 한국에서 받은 따뜻한 환대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이 앞으로도 아프간 국민들, 특히 여성과 소녀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09.02 00:46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반세기 만에 제자리 찾는 주한 미국대사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내가 서울에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에 처음 들어가 본 것은 1975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서울에 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나와 평화봉사단 동료들은 대사관 맨 위층 회의실로 안내받아 리처드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브리핑을 들었다. 스나이더 대사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 낙관하면서 안보상황은 예의주시하며 우리에게 한국과 미국 정치와 거리를 두라고 조언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시원했던 에어컨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몇 개월이 지난 12월의 어느 토요일, 다시 대사관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당시 나는 충남 예산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 중이었는데 미 대사관에서 치러지는 연례 외교관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험은 미국 외교관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미국 대학과 해외 주재 미 대사관에서 1년에 한 번 실시됐다. 대사관 구내식당에서 진행된 이 날 시험의 감독관은 젊은 미국 외교관이었다. 그는 우리 수험생들에게 “시험에 합격해서 서울에 파견된다면 그땐 근무지가 여기가 아닐 것”이라며 “이곳은 새 청사가 지어질 때까지 사용하는 임시건물”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험에 합격했고 1978년 국무부에 들어갔다. 중국과 트리니다드토바고 공화국에서 근무를 마치고 198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치와 거리를 두라던 스나이더 대사의 조언을 뒤로하고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미 대사관 사무실에서 한국 정치 관련 업무를 다뤘다. 대사관 건물은 위치상 접근성이 뛰어났다. 하지만 미국 이민과 여행용 비자 발급 신청이 급증하면서 대사관을 에워싼 기나긴 비자 신청자들의 대기행렬은 건물의 미흡한 점을 확연히 드러냈다.   미 대사관 건물과 옆에 있는 쌍둥이 건물(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미국의 대규모 개발원조단체의 업무용 시설로 1960년대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1949년부터 반도호텔에 사무실을 두었던 미 대사관은 1968년 지금의 광화문 대사관 자리로 이전했다. 보다 영구적인 소재지가 확보될 때까지의 임시 거처였다. 이후 1960년대부터 1990년대를 거치며 여의도, 안국동, 옛 경기여고 부지 등 다양한 장소가 대사관 부지로 거론됐다. 하지만 서울이 변모하고 한국이 러시아·중국 등 세계 각국과 새로운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다른 대사관 건물들이 세워지는 동안에도 미 대사관은 임시 거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신임 대사로 한국에 돌아왔다. 나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대사관 직원들에게 나는 환영식이 열리고 있는 그 곳이 내가 1975년에 외교관 시험을 본 바로 그 작은 구내식당이라는 사실을 향수와 씁쓸함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에서, 한·미 동맹이 양국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미 대사관을 짓는 것이 왜 이렇게 힘겨웠을까? 대사관 건립 프로젝트 자체가 엇갈린 운명처럼 불운했던 것 같다. 한·미 양국 중 어느 한쪽이 추진할 준비가 되면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했다. 미국의 대사관 신축 공사비 예산 지원 절차는 점점 더 까다로워졌고 한국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전 정부의 결정을 재검토하곤 했다. 어느 현명한 한국인이 내게 말했었다. “한국에서 미국과 관련된 사안들은 외교 문제가 아니라 국내문제”라고. 미 대사관 건립 문제만큼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다. 여기에 용산미군기지 문제도 대사관 이전 건과 얽혀 발목을 잡기도 했다.   미 대사관 건물은 한·미 양국의 관계를 반영하고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주한 미국대사 재임 기간 동안 청사 건립 문제를 진전시키려고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정확히 10년 전, 나는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 주한 미군사령관과 함께 대사관 신축 예정지인 용산구 부지에 기념 식수까지 하는 중요 지점에 이르렀다. 그래서 최근 미 대사관 이전 계획이 확정되었다는 언론 보도에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만약 새 청사를 짓기 위해 우리가 심었던 나무를 희생해야 한다면 그래도 좋다.   공직에 있는 동안 나는 전 세계 수십 개국의 미 대사관을 돌아보며 대사관 건물 자체가 외교의 설계구조(architecture of diplomacy)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봐왔다. 위대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상징적 건축물이 그 지역의 환경은 물론 미국의 포부와 힘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보안과 안전에 대한 우려가 건물 위치와 구조물을 정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보았다.   서울에 제대로 된 미 대사관을 건립하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는 점은 유감스럽지만 어쩌면 지금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리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의 바람은 새로 짓게 될 건물이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공동성명서에서 언급한 한·미 동맹의 새로운 장을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한국, 오늘의 미국, 그리고 우리의 깊고 굳건한 동맹관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양국의 국민에게도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 대사관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리본 커팅까지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07.08 00:4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웨비나 외교를 넘어 대면 정상회담을 향해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지난 1년 동안 한국을 포함해 내가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나와 연결해 준 것은 웨비나(웹세미나)였다. 웨비나와 애증 관계인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비나 없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감을 헤쳐나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멀리 떨어진 다양한 목소리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온라인 세계에서 하나의 대화로 모일 수 있도록 해주는 웨비나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컴퓨터 화면을 응시한 채 언제 음소거를 하고, 언제 다시 해제해야 할지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디지털화된 관계의 거리감을 좁히려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최근 2주 동안 각종 웨비나의 공통 주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00일이었다. 그는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100일’이란 기간은 인위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 이래로 신임 대통령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고 임기의 기조를 잡는 시기로 간주되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루스벨트 전 대통령 이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극복과 경기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동료들과 여러 웨비나에 참여해 한·미 관계의 맥락에서 바이든 취임 100일과 그 의미에 관해 토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패권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동맹복원과 협력 활성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이는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이 첫 해외 순방국으로 한·일 양국을 함께 공식 방문한 점과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주재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에 한·일 정상들을 초청한 점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21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룰 까다롭고 실질적인 의제들의 틀도 구체화되고 있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과거 두 번의 정권교체(오바마·트럼프) 때마다 재협상 대상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이번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 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한·미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다른 많은 의제들이 있다. 백악관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의 리튬이온배터리 생산설비 투자에 영향을 미쳤던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간의 영업비밀 침해 분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타이 대표는 팬데믹 종식을 위해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IP) 보호 면제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는 성명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12일과 22일 각각 주재한 ‘반도체 정상회의’와 ‘기후정상회의’는 한·미 공조가 무르익은 다른 분야들도 부각시켰다.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다자주의는 한국에게 기회이자 도전이다. 이 분야 역시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중국, 미국의 책무에 대한 의구심, 치열한 권력다툼 등 다양한 지정학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미국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한국은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위상을 높이는 등 다자주의에 벌써 적응해 가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3국 외교장관의 런던 회담에 이어 계속해서 한·미·일 협력을 촉구할 것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힘겨운 고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잠재적 격차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의 비공식적이지만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성격과 미래, 그리고 한국의 참여 여부와 관계 방식에 있을 것이다.   북한과 관련해선 오바마·트럼프 행정부의 다소 과장된 접근방식 사이의 절충안 형태로 대북정책 검토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는 싱가포르 합의를 기반으로 북한과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표명하면서 북한의 협상 준비 여부와 시기 등을 포함해 21일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의 논의 토대를 마련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100일을 돌아볼 때 많은 부분에서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미국과 전세계는 아직 글로벌 리더십과 행동을 필요로 하는 현실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한국은 여전히 이익과 가치, 상호보완적인 능력을 공유하는 최적의 동반자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웨비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워싱턴 방문을 적극 환영한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05.13 00:42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2+2는 한·미 동맹의 새로운 시작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지난 4년간 트럼프가 이끈 미국 행정부는 신뢰보다는 예측불허를, 숙고한 정책 발표보다는 트윗을 선호하면서 제도와 관료들로부터 멀어졌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가 보다 전통적인 미국식 국정운영기술로 회귀하는 모습은 특히 과정면에서 편안한 친숙함마저 들게 한다. 정책 자체는 이제 막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과 방식은 이미 명확해 보인다. 그 예로 이번 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서울과 도쿄를 방문해 ‘2+2(외교+국방) 장관회의’를 연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신임 고위 각료가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을 언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점은 초미의 관심사이자 큰 의미를 갖는다. 두 장관의 한국과 일본 순방은 동맹회복과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를 보여준다. 순방 직후 돌아가는 길에는 미국의 수도도 중국의 수도도 아닌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 이는 성가시고 복잡한 미·중 관계를 동맹관계의 맥락속에 의도적으로 넣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팬데믹 이전이라면 새 행정부의 신임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은 해외순방을 도느라 이미 3월 중순에 수천마일의 항공마일리지를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면회의가 훨씬 더 어려워진 지금 그들의 해외순방은 더 큰 가치와 무게감을 갖는다.     이번 순방에서 중요하지만 덜 주목받고 있는 점은 두 장관이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국무부와 국방부 간의 역학관계를 확립하고 있는 임기 초반에 함께 해외순방을 나섰다는 점이다. 두 장관의 동행은 미국과 방문국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 내 국가안보조직 간의 관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2+2 회의는 팬데믹 이전에도 드문 일이었다. 복잡한 순방 일정 조율은 물론 실질적인 의제에 대한 관계부처간 내부 조율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2+2 회의는 미국에게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동맹국이나 협력국 사이에서만 열린다. 개최 사실만으로도 외교·안보·군사문제를 포괄하는 긴급의제가 존재하고 관계의 폭이 넓다는 신호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풍부한 아시아 경험을 바탕으로 이끌고 있는 이번 아시아순방은 수년간 진행된 군사화 전략에서 벗어나 미국의 외교정책을 재조정하고 미국 외교와 국무부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도 강화시킨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나는 국무부 동아시아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과 호주·일본 간의 2+2 회의는 이미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혀 있었다. 나는 두 번이나 공중 급유를 받아가며 워싱턴에서 멜버른까지 논스톱비행을 하는 등 두 차례 진행된 2+2 회의에 모두 참석했다. 상급자들끼리 모이기 전 진행된 몇 번의 관계부처간 합동회의는 내 공직생활 중 가장 길었던 회의로도 기억된다. 우리는 거대한 미 관료제 내의 움직임을 촉진시키는 한편 협력국과 비용 분담에 대한 합의나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들, 다가올 회의에서 다룰 새로운 의제들까지 바로 발표할 수 있는 결과물로 도출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협상을 준비했다.   한·미 2+2 회의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던 2010년에 처음 열렸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함께 양국관계의 전략적 범위와 깊이에 대한 인식이 뒤늦게 생기면서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첫번째 한·미 2+2 회의를 위해 방한한 2010년 7월은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폭침 후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첫 회의에는 방어·억제·안심 등이 주요 이슈였다. 두 장관은 이미 한국 외교·국방장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공개 회담만으로도 유용했지만 대중들에 대한 공개 메시지 또한 중요했다. 한·미 양국의 장관들은 최초로 판문점을 나란히 방문했고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쟁기념관도 들렀다.   이번 한·미 2+2 회의는 이 회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의제들을 다루고 있다. 한·미 양국은 오랫동안 곪아왔던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타결하는 등 케케묵은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다. 중요한 의제들은 이뿐 만이 아니다. 바로 북한, 중국, 한·일 관계,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협력체)와 다른 지역협의체의 역할, 기후변화부터 사이버 보안에 이르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자 및 지역적 노력 등에 대한 의제들 말이다.   나는 2010년에 ‘2+2는 첫번째다(Two Plus Two Equals a First)’라는 글을 썼다. 돌이켜 보면 그건 쉬운 일이었다. 이번 한·미 2+2 회의는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한다. 지정학적 변화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특별한 도전과제들을 함께 인식하고 생각하면서 경청하고, 인적·제도적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공통의 관심과 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다. 좋은 시작은 절반의 완성 아닌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03.18 00:4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이건 우리가 바라는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던 1990년대에 국무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유럽담당 국장으로 파견나가 있었다. 백악관 웨스트윙(집무동)에 있는 NSC의 소박한 리셉션 구역에는 ‘1812년 전쟁’(제2차 미영전쟁) 중 영국인들이 1814년에 백악관과 미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을 불태우는 장면을 그린 작은 그림 몇 점이 걸려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특수관계 때문에 이 곳을 방문한 수많은 영국인들은 이 굴욕적인 역사적 순간을 중요시하는 점에 놀라거나 당황스러워했다. 당시 나는 1814년 이래 어떠한 외세의 침략에도 우리의 수도나 국가가 점령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이 의사당 건물은 유나이티드항공 93편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들 덕분에 파괴 위기를 모면했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세계무역센터(WTC)의 초기 공격 소식을 듣고 항공기 납치범들에 맞서 워싱턴DC에서 멀리 떨어진 펜실베니아주 시골 들판에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9·11 테러를 계기로 의사당과 모든 공공건물 주변의 보안조치가 강화됐다. 외국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다.   지난 6일 의사당을 습격한 무리는 대부분 백인 남성에 스스로를 애국자라 칭하는 사람들이었다. 현직 미국 대통령에 의해 선동된 시위대가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내셔널몰을 행진하는 모습에 마치 다른 나라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외교관들이 다른 나라에서나 경험해 본 미수에 그친 친위쿠데타(autogolpe)였다. 미국은 강력한 기관과 오랜 민주주의 전통 덕분에 이런 종류의 격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신성한 상징이자 미국에서 가장 웅장한 공공건물이 폭도들에 의해 훼손됐다. 선거 결과를 확정짓는 헌법절차를 완수해야 할 선출직 대표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허둥지둥 숨었다.   결국 시위대는 실패했고 사건 직후 현직 대통령을 제외한 사방에서 비난이 빗발쳤다. 캐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는 이번 소요사태를 “미국스럽지 못하다”라고 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 민주주의가 ‘전례없는 공격’을 받았다고 선언했지만 다른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했듯이 의사당에서 펼쳐진 장면들에 대해 “우리를 대표하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버드대 역사학자 질 레포어는 “우리는 미국 역사의 틀에서 이탈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마르 와소우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 7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사실 의사당 습격사건은 참으로 미국스러웠다”고 단언했다. 그는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아프리카계와 유대계가 당선되는 역사적인 승리와 같은 시기에 발생한 이번 폭력사태를 미국의 두가지 오랜 전통간의 경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인종간 현상을 유지하려는 민족주의와 오랜 투쟁끝에 얻어낸 평등권을 지키려는 두 전통간의 경쟁 말이다. 날카로운 통찰이다. 우리는 한국인들을 비롯한 전세계 사람들과 아직도 역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의 역사와 우리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엘리사 슬롯킨 미시간주 하원의원은 미국의 가장 큰 국가안보 문제는 미국 내부의 분열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의사당 습격사건이 전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타격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건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간의 더 나은 본성에 호소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특히 트럼프 시대 이후 등장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민에 대한 믿음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양국간의 동반자 관계를 새롭게 강화하고 보강하는 것도 더욱 중요해졌다.   1월의 암울했던 나날들에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순간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역할도 컸다. 지난 3일 한국계 미국인 4명이 미 연방 하원의원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세 명의 여성 의원 중 한 명은 이례적으로 한복을 입고 취임선서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시위대의 습격으로 난장판이 된 의사당의 청소를 도운 앤디 김 의원은 책임감있는 시민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지난 13일은 도널드 트럼프가 두 번째로 탄핵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계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이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온라인으로 개최한 ‘미주 한인의 날’ 행사에서 한국인과 흑인의 유산이 그녀의 삶과 가치에 미친 영향의 중요성에 대해 감동적인 연설을 한 날로도 기억될 것이다.   미국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은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카멀라 해리스는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이자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첫 여성 부통령에 취임했다. 이것은 저에게 거대한 분열과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을 넘어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라는 확신까지 줬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우리는 미래에 대한 대담한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1.01.21 00:31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바이든, 한국에 기대도 요구도 많이 할 것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미국 대선 4일 후 맞은 토요일, 마스크를 쓴 채 황금빛 은행나무가 우거진 워싱턴 거리를 걷다 조 바이든의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순간 기쁨보다 안도감이 압도했고 다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살아남았고 투표율은 사상 최고였습니다. 자원봉사자를 기반으로 하는 이 거대한 나라의 선거 인프라는 팬데믹과 정치 문제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운영됐습니다. 결과는 미국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명확했습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전체 득표와 선거인단 득표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경제적인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끝까지 승복하지 않고 규범을 방해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대통령 취임식까지 많은 위험이 나라 안팎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미국 공화당 의원보다 많은 해외 정상들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발빠르게 연락을 취한 민주주의국가 리더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정상의 첫 통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직전 한국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한·미 동맹과 재미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일 당선인으로서 필라델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메시지를 반복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직면한 수많은 국내외 문제들을 감안했을 때 한국과 바이든은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는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십을 바로잡고 안심시켜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걸 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바이든은 미국이 주도권을 재확보하거나 공유하기를 바라며 다자주의를 옹호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보호 같은 가치가 다시 의제로 다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국제 신뢰 회복은 반드시 자국내 쇄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바이든주의는 한·미 관계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와 전·현직 공무원들은 부담을 분담하는(바이든의 표현에 의하면 착취하는) 부끄러운 트럼프식 접근을 내려놓고, 합의에 이르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주요 20개국(G20), 유엔 등의 무대에서 기후변화 문제부터 고차원적 국제 무역 규범을 마련하는데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나 보안 같은 새로운 기술을 위한 프로토콜과 보호 방침을 마련하는데 기술적 역량과 정치적인 의지를 제공할 것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한 실질적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동맹국 간에도 신중한 경청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국내 상황과 지정학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 단일 강대국 세계에선 대접받지 못하던 접근법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격식을 차린 합의보다 ‘단품(a la carte)’식 접근을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무게를 둘 것입니다. 그리고 개선하도록 독려할 것입니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동맹과 가치 공유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한국에 더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이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중 경쟁의 궤적을 감안하면 이는 한국에게 있어 피하고 싶은 선택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해묵은 불안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한국은 바이든 정부에 나름의 희망과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북한은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한·미 양국은 서로 선호하는 정책에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검증되지 않은 미완성 정책이지만 말입니다. 초기에 회담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선 바이든이 오바마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거나 북한 문제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지만 이는 기우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정책을 검토하는 동안 한국과 북한은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한·미 두 나라의 대통령은 깊은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에 놓인 공통 과제에서 협력의 기틀을 만들기 위해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오늘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최근 저와 60~70년대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한 미국인들은 감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생존팩’이라는 예상치 못한 우편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한국산 마스크 100장, 은젓가락, 인삼 맛 사탕, 부채 등이 한지로 아름답게 포장돼 있었습니다. 우리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영상이 담긴 USB도 있었습니다. 제 SNS엔 당시 봉사단원이었던 60~70대들의 뜨거운 반응이 올라왔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 우리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그대를 분명히 기억합니다!’   한국, 평화봉사단을 기억해 줘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국,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말했듯 ‘더 나은 재건’을 위해 미국과 협력할 준비를 해줘 감사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0.11.26 00:47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한국과 미국의 시위 문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근래 해마다 여름이 되면 미네소타주 ‘콩코디아 언어마을’의 한국어 마을인 ‘숲 속의 호수’에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지난 수 십 년간 미국의 리더로 성장할 젊은이들이 이 곳에 머물며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처음으로 접해왔습니다. 한국어 마을 ‘숲호’는 가장 최근 생긴 마을이자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마을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미네소타 호숫가 언어마을에서도 정다운 말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미네소타라 하면 조지 플로이드가 떠오릅니다. 지난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 손에 벌어진 그의 잔인한 죽음은 인종 정의와 경찰 개혁을 외치는 ‘흑인 생명도 소중(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촉발시켰습니다.   평소라면 여름 캠프에 갔을 젊은이들은 공부를 위해 또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온라인에 접속하거나 시위에 참여하러 거리로 나오는 등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느 여름처럼 미네소타에서 아이들을 구닥다리 한국어로 괴롭히며 재밌게 며칠을 보내는 대신 워싱턴의 사무실에 앉아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접속한 청소년 25명으로 가득 찬 화면을 바라보면서요. 캠프를 온라인으로 전환한 것이죠.   이날의 주제는 ‘한국의 시위 문화’였습니다. 학생들은 조별로 1960년대 학생 시위, 80년대 민주화 운동, 2000년대 반미 운동, 2016년과 17년 촛불집회 등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네 가지 사건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각 온라인 그룹은 시대별로 시위에 쓰인 노래와 사진, 예술 작품, 시를 받아 공부한 후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은 시위 문화에 스며있는 열정·희생·환멸·이상주의에 감동을 받았지만 운동 자체에 어떤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80년대 중반 서울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상황을 학생들과 공유했습니다. 일명 ‘국가의 양심’인 대학생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경찰 폭력에 맞선 대항이 전국적으로 활기를 불어넣어 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얻어낸 것을 말입니다. 2016년 같은 거리를 걸었던 경험도 이야기했습니다. 부유하고 민주적인 한국이지만 거리는 다시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기 위해 다시 길로 나와야 할 때라고 결심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시위 문화가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시위 문화는 민주주의가 튼튼해지고 디지털 소통이 부상하면서 그 타당성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진화해 한국 정치 문화에 더욱 깊게 파고 들었습니다. 올초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 것과 같이 투표에 대한 새로운 책임 의식과 함께 말입니다.   한국의 정치와 시위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1968년 이후 시민들의 소요가 가장 크고 오래 계속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특히 중요점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위를 직접 보거나 참여한 경험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시위에서 무엇을 했고 언제, 어디서, 어떤 시위를 할지를 어떻게 정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의 경험을 배움으로써 미국의 항쟁 역사와 현재의 상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투쟁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사회와 시민 단체 안의 심각한 정치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가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안전과 질서에 대한 열망을 균형있게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 닳아 해어진 민주주의 기관과 관행 속에서 신뢰와 역량을 재건할 것인가?   칼럼을 쓰면서 인권 운동의 대부이자 하원의원인 존 루이스의 추도식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와 1978년 처음 만나 잠시 함께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을 하며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비폭력 원칙과 인간애를 저버리지 않은 전설적 인물입니다. ‘의회의 양심’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암으로 죽음을 앞둔 지난 7월 병원에 입원하기 하루 전엔 워싱턴 D.C.에 있는 ‘흑인 생명도 소중’ 광장(Black Lives Matter Plaza)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가난하고 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 마을에서 인권 운동에 참여했을 때 부모님은 “괜히 골칫거리 만들지 마라”라고 충고했습니다. 생전 루이스 의원은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좋은 골칫거리, 필요한 골칫거리를 만들어라. 그리고 미국의 영혼을 구하는 것을 도와라”라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또 “투표는 소중하고 신성하다”며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비폭력 도구”라는 점을 누누이 상기시켰습니다.   학생들이 미네소타의 숲호에 직접 모여 한국어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영감이 가득하고 복잡한 그리고 아직 미완성인 한국 현대사의 여정과 시위 문화를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대신 그들은 사회적 대혼란과 투쟁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한국의 경험을 더 깊게 배울 수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하게 우리가 공유한 도전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0.08.06 00:4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친애하는 파커 일병에게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우리는 이웃이에요. 저희 집은 몬태나주 밀너 호수 기슭의 오두막입니다. 일년 전 집 옆에 있는 작은 묘지를 걷다 오리나무와 폰데로사 소나무 사이에서 당신의 삶이 기록된 검소한 묘비를 발견했어요. 저는 뜨내기 이웃입니다. 일 년의 대부분을 워싱턴 DC에서 보내지요. 메모리얼 데이가 지난 지금은 몬태나에 돌아와 있습니다. 밀너 호수 공동묘지엔 미국이 참전한 모든 20세기 전쟁의 용사들이 여기저기 묻혀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의 무덤에는 메모리얼 데이를 기리기 위해 성조기가 꽂혀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무덤에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이들과 달리 살아 돌아오지 못해서, 참전 용사 단체에 가입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당신의 짧은 인생은 약 70년 전 한국에서 마감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광활한 미국 서부에서 자라 21살에 한국으로 갔습니다. 당신은 그보다 어린 20살에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의무로 한국에 갔지요. 당시 미국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가 있었으니까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자 트루먼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방어한다는 중대 결정을 내렸습니다. 갓 20살이 된 당신은 그해 7월 3일 24사단 34보병대대의 일원으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평택에 있는 당신의 대대는 7월 6일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5시간을 버텼지만 결국 천안으로 후퇴했습니다.   7월 12일 공주까지 퇴각한 당신의 대대는 금강을 따라 55㎞를 방어했습니다. 북한군 전차와 병력이 주변을 둘러쌌지만 방어력은 부족했습니다. 결국 당신의 부대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당신은 대전을 방어하기 위해 갑천강을 따라 남쪽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고창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당신의 부대는 동쪽으로 이동했지요. 8월 초, 철수한 생존자들은 낙동강에서 병력을 재편성했습니다. 이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기 전까지 부산 방어선이 구축되고 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으로 방어선은 지켜집니다.   그러나 당신은 낙동강에 닿지 못했지요. 당신은 1950년 7월 30일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많은 한국인과 미국인들처럼 당신의 삶은 전쟁의 끔찍한 도입부에서 끝났습니다. 1950년 7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전장은 계속 남하하고 병력과 화력은 열세에다 체계도 없던 그때, 고통과 파괴 그리고 당신을 둘러싼 죽음을 바라보던 그때 말입니다.   미국 몬태나주 밀너 호수 공동묘지에 있는 파커 일병의 묘비. [사진 캐슬린 스티븐스] 왜 당신은 알링턴 국립묘지나 다른 훌륭한 군인 묘지가 아닌 밀너 호수의 조용한 무덤에 묻혔나요. 어쩌면 파커 일병의 어머니는 당신을 잃은 상실감에 아들을 위로할 산과 호수가 있고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원하셨나 봅니다. 파커 일병의 희생은 의미가 없거나 잊혀진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당신보다 25년 후에 한국에 갔습니다. 천안·공주·대전 사람들과 언덕에 오르고 강가를 따라 걷기도 했어요. 그때 만난 한국 사람들은 전쟁의 고난과 희생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해 치른 인간적 고통의 끔찍한 대가가 헛되지 않도록 나라를 잘 건설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저는 그후 수 십 년 동안 한국의 도약을 직접 지켜봤습니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경제 번영과 탄탄한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가치 공유로부터 나오는 활력이 안보와 경제 협력을 튼튼하게 해 한·미 관계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당신이 직접 목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떻게 한국인들이 지난 70년 동안 미국과 동행했는지, 어떻게 우리가 친구를 넘어 동반자가 됐는지 알 수 있었을텐데요. 특히 전세계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고 미국 국내에서는 평등·정의·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투쟁을 재개하는 요즘 같은 때 말입니다.   파커 일병. 몬태나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와 당신의 삶을 살았다면, 그래서 지금쯤 호숫가에 사는 제 90살 이웃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거에요. 우리는 물수리가 수면 위를 날아 다니고 산봉우리 위로 치솟는 것을 보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담소를 나눴겠지요. 당신의 인생이 너무 빨리 끝난 것에 애도를 표합니다. 1953년 정전협정이 맺어졌지만 불만족스럽고 불완전했습니다. 한반도와 우리가 사랑하는 미국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부상했습니다. 이는 정전협정 후 한국 전쟁의 희생을 ‘무승부를 위한 죽음(Die for a tie)’이라 폄훼했던 것이 틀렸음을 증명합니다.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어요. “조국은 전혀 몰랐던 나라,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파커 일병. 6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당신의 묘비에 꽃을 놓으며 소망합니다. 2020년 한·미 두 나라 국민들이 당신의 희생에서 영감과 겸손을 얻고 역사적 과제에 결의와 지혜로 맞서기 위해 다시 함께 나서기를 말입니다.   진심을 담아, 캐슬린 스티븐스 올림.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0.06.11 00:58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팬데믹과 그 이후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제가 워싱턴 아파트에서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 그러니까 워싱턴 DC 시정부의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한 자가격리 조치를 준수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 지금 미국은 확실히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로 말입니다. 뉴욕주만 따로 놓고 봐도 미국을 제외한 그 어느 나라보다 확진자 수가 많습니다. 늑장대응과 진단 시스템의 결함으로 미뤄볼 때 실제 감염자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미국이 전염병에 노출됐음에도 팬데믹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맞선 미국 주도의 국제공조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미국의 주요 공공기관과 민간기구는 한국 및 다른 주요 국가와 맺은 통화 스와프 계약을 보장하고 기존의 안보 태세와 여러 국가와 쌓은 협력관계로 안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뒤죽박죽된 일상생활과 씨름하는 사이 나라는 시선을 안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쪼그라든 벌이와 사업, 교육의 박탈, 사라진 일자리와 증발한 예금으로 드러난 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의 거대한 구멍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는 일일 브리핑으로 당황스러울 만큼 뒤엉켜버린 국가 정책. 이들로 인해 미국인의 삶은 엉망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은 협력을 추구하기 보다 자신의 공치사를 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떠넘기는 대상은 중국에서 시작해 세계보건기구(WHO), 주지사들, 뉴스 매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올해 의장국인 미국이 이 질병을 ‘우한 바이러스’로 명기할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 공동성명서 채택이 불발됐습니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등 다수의 전직 세계 지도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공조에 큰 역할을 했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활성화해 이번 위기를 극복하자고 촉구했지만 백악관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한국의 대응입니다. 대부분 어느 정도 미국예외주의에 물들어 있는 미국인들에게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벤치마킹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합니다. 그러므로 미국 언론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법을 대대적으로 밀착 취재한 것은 매우 예외적입니다.   외신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를 보도한 것을 보면 주로 한국과 미국 모두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비교 관찰로 시작합니다. 기사를 보면 한국이 효과를 거둔 부분이 바로 미국에서 문제가 된 영역이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속하고 광범위한 검사와 추적, 투명성을 통해 쌓은 신뢰 그리고 전문가와 사실에 의존한 점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BBC 인터뷰와 김우주 고려대 교수가 유튜브 채널 아시안 보스와 한 인터뷰를 시청했으며 정보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을 반겼습니다. 코로나19의 교훈을 이야기하는 한국 외교관들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웹 세미나’ 생태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난주 혼란 속에 치뤄진 위스콘신주 지방선거로 논쟁이 가열되면서 한국이 어제의 21대 총선에서 어떻게 접근성과 안전성을 보장했는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검사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논의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교착상태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의 협상이 타결된다면 더 많은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를 일시 해고하는 것은 팬데믹 기간 동안 불필요하고 추가적인 고통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동맹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떨어뜨립니다.   위기는 변화를 가속시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받아들이면서 업무와 교육 방식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회의·교육 쪽으로 더욱 빠르게 이동한 흐름은 분명해졌습니다. 또 팬데믹과 같은 비전통적인 안보 위협에 더 많은 자원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지역적 불안정과 고통의 원천인 불평등은 어떻습니까. 정치와 세계 질서와 관련해 이번 위기가 전환점이 될지 기존의 기조가 더 강해질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자국중심주의, 무역보호주의, 권위적인 리더십의 유혹이 더 커질까요? 공공의 안녕과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더 많은 사찰이 개인 사생활의 개념을 파괴하고 인권을 무너뜨릴까요? 아니면 한국과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파트너들과 함께 우리의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데 동참하게 될까요? 기후변화 또는 앞으로 닥칠 다른 위기에는 국경이 없다는 인식으로 국제적 참여와 제도를 강화할까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양국 관계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답하지 못하는 여러 질문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공식 채널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이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그로부터 드러날 세계 질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0.04.16 01:4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국경 초월 바이러스 막을 국제적 협력 정비해 나가야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한국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막 워싱턴으로 돌아왔습니다.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는 여정 중 비행기 좌석은 듬성듬성 비어 있었고 공항들은 묘하게 숨죽인 듯 조용했습니다.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계속 퍼져 나가는 와중에 여행하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저는 현 상황을 면밀히 검토했고 바이러스 확산을 둘러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당할 만한 곳으로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명확한 조치들을 발표했고, 무엇보다 국민들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한국 공중보건 정책에 대한 저의 믿음은 한국이 앞서 이 분야에 뼈저린 경험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습니다. 저는 2009년 한국이 충격적인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에 시달릴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습니다. 한국이 이런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연구한 다양한 노력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서울에 머물면서 제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물론 본분을 다해 손씻기 등의 수칙을 모두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의 위험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고 특히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늘고는 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한국 당국의 상대적인 투명성과, 사실에 근거한 효과적인 소통 노력, 그리고 정보에 기반한 국민의 협조는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겐 긍정적 본보기 입니다.   중국도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울 점이 많습니다. 중국 당국은 첫 감염 환자가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난 후에나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발병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로 인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지연되었습니다. 중국은 또한 지난달 2일에서 28일 사이 신규 확진자 보고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는 후베이성 외의 지역에서 새로운 사례가 발견된 후에야 비로소 방대한 규모의 격리와 극단적 조치를 취했지만 이는 너무 늦었습니다.   일본과 미국 당국도 올바른 대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격리 조치는 바이러스를 막지 못했고 오히려 감염 확산의 인큐베이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부터 시작해 당국자들이 내보내는 모순된 메시지와 정책, 그리고 대중들이 느끼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불안을 키워 중국계나 다른 아시아계에게 불똥이 튀는 현상을 부추기기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중국과 기타 지역의 코로나19 감염 경로에 대해 아직도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공중보건뿐만 아니라 정치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얼마나 중대할지 모릅니다. 지금은 나라간 비교 우위를 따질 때가 아니고 그것 역시 이 글을 쓰는 제 의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 것은 이르지 않다고 봅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코로나19를 비롯해 미래에 발병할 질병 모두 국적이나 정치적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모두 국제 협력이 절실합니다. 이 같은 공조는 즉각적인 임시 방편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와 기관을 기반으로 할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가장 불안을 주는 요인 중 하나는 이 같은 사태에 나서야 할 협력 관계와 국제기관이 미비했다는 점입니다.   이번 위기에서 국가들은 WHO 같은 기관들이 고유 업무 수행에 드는 자금과 인력, 정치적 지원을 갖추도록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의 보건 전문가들은 다음 위기가 발발하기 전에 협력, 투명성 및 공조를 실현하는 관계를 만드는데 드는 재정적·정치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같은 바이러스 전염의 위기는 분명히 또 올 것이고, 바이러스는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는 외교를 원예에 빗대곤 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일의 대부분은 관심과 주목을 끌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주로 땅을 갈고 씨앗을 심고 토양에 영양과 물을 공급하며 매일 화초의 틈새로 불거지는 잡초를 뽑아내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손을 더럽히고 묵묵히 잡초 속에 파묻혀 현지 지도자와 지역사회에 힘을 실어주는 일입니다. 동시에 가장 높은 단계의 국제 정치력에 필요한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이것은 금세기의 가장 심각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의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에너지 문제 그리고 요즘의 전염병 방역, 공중보건 같이 전세계적인 파급력이 있고 대책을 요구하는 대형 과제들의 협력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당분간은 우리 모두 남탓만 하기 보다는 서로를 챙겨주며 손씻기를 열심히 합시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20.02.20 00:4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한 해를 돌아보며: 걱정하기, 산책하기, 관람하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저는 ‘연말’이란 한국어 표현을 좋아합니다. 제게 연말은 한국과 미국 어디서든 항상 즐거웠습니다. 상쾌하고 차가운 공기, 잎새를 떨군 조각 같은 나무, 도시의 축제 조명과 시골의 칠흑 같은 하늘로 활기가 더해져 긴 산책에 안성맞춤인 때입니다. 어두워지면 영화와 책을 보고 가까운 이들과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내다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올해 연말에는 미국 국무부 벤저민 프랭클린 룸에서 열린 우아한 점심에 초대 받았습니다. 그날 점심은 미국 외교 아카데미의 연례 시상식  행사였습니다. 퇴직 고위 외교관들이 전직 외교관·정치인 또는 언론인·작가 중 미국 외교에 공헌한 이들을 치하하고 ‘외교의 오스카상’을 주는 자리입니다.   특히 올해는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의회의 탄핵 조사에 소환돼 증언한 외교부 관계자, 공무원, 군 종사자 등 현직에 있는 동료들의 용기와 프로 의식에 대한 대화가 길게 이어져 조용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점심 대화의 주요 관심사는 미국이 직면한 도전,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외교적 과제에 대한 불안과 걱정의 수위였습니다. 수상자들도 소감에서 이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전 국무부 차관이자 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회장인 빌 번즈는 저서 『비공식 루트: 미국 외교 회고와 개선의 필요성』에서 우리의 불안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우리는 국제 무대에서 한 세기에 몇 번 오지 않는 아주 드문 소성(塑性) 모멘트(plastic moment·전체 단면이 항복 응력에 다다른 순간을 뜻하는 건축용어)를 살고 있다. 1945년과 89년이 그랬고 지금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힘의 균형과 정치·경제·기술·환경적 대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존 네그로폰테 전 국무부 차관은 평생을 외교에 바친 공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감에서 미·중 관계의 주요 과제를 언급하며 세계의 교역 구조와 환경에 미치는 위협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짚어냈습니다.   저를 포함한 청중들 사이에는 이런 문제와 함께 비확산이나 세계 불평등과 같은 과제들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조합하든 ‘완벽한 폭풍(퍼펙트 스톰)’이란 표현은 외교뿐 아니라 정치 제도와 가치를 뒤덮은 지금의 위기 의식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제가 워싱턴 D.C.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네인 로건 서클로 오후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우아하게 복원된 19세기 타운하우스인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이 공들여 되살린 옛날 외교 공관 겸 사택을 자주 갑니다. 이곳에서 헌신적으로 연구하는 직원들로부터 1세대 주미 한국 외교관들의 희망과 노고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을 더 잘 알리고 외세 침략에 대항해 자국의 힘을 키워나가는데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 노력들 말입니다. 비참하게도 이런 노력은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당시 지정학적 세력의 힘에 의해 완벽한 폭풍 속으로 휩싸였습니다. 일본의 점령과 합병으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개인에게 팔렸고 최근에서야 되찾아 복원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회복력과 뿌리깊은 한·미 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는 워싱턴에 오는 모든 한국인 친구들에게 로건 서클 방문을 추천합니다. 이 지역은 20세기 후반 대부분 쇠퇴했지만 현재 가장 앞서가고 인기있는 동네입니다. 최초의 한국 외교관들은 부동산 보는 눈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의 12월 ‘걱정하기, 걷기, 관람하기’ 3부작 중 마지막입니다. 이번 연말 미국인 친구들에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일찍부터 봉준호 감독의 팬이라는 사실을 즐겨 자랑했습니다. 2008년 한국의 워싱턴 특파원들에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라고 말했으니 말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영화 평론가 A.O. 스캇은 ‘2019년 최고의 영화’ 목록에 ‘기생충’을 올리며 ‘이처럼 세계 현황에 대해 더 슬퍼하게 만들고 영화업계 현황에 대해 더 기뻐하게 만드는 영화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평했습니다.   이것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곳곳에서 미국인들과 한국의 모든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교차했던 만감을 정리해주는 듯 합니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정치적 변화, 깊어지는 불평등과 좁아지는 기회에 따른 분노, 북한과의 평화·화해·비핵화를 향해 한 발자국 전진하거나 현상을 유지하는데 따르는 최근의(주로 내리막길이지만) 우여곡절과 북한 주민들의 더 나은 삶, 한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와 두 나라가 얽혀있는 관심사와 가치, 도전 과제 등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감정들 말입니다.   ‘기생충’은 저를 웃고 울고 애도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2019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더 문제투성이에 그 파급력도 훨씬 심각할 것입니다. ‘기생충’이 오스카 상을 타기를 바랍니다. 한반도에서 상을 받을 만한 외교를 성취해내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12.26 00:3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삐걱대는 린치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올가을 미국의 여러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대학과 지역사회, 기업에서 한국 관련 강연 요청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항상 동맹과 북한, 문재인 정부 등에 대한 미국의 의견을 묻는 질문을 받습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 정책, 미·중 경쟁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저는 늘 명쾌하게 답변할 수 없어 답답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미국인들이 한국에 갖는 관심에 비해 훨씬 더 큰 것은 사실입니다. 방위비 분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동맹 관계 전반에 대해 한국 언론이 보인 큰 관심이 그 예입니다. 미국에서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미 동맹의 긴장 상태입니다.   9월 초 저는 클리블랜드에서 ‘한·미 동맹: 삐걱대는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습니다. 한국에선 많이 논의되지만, 미국인들에겐 친숙하지 않은 한·미 관계의 껄끄러운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엔 고도화된 미·중 경쟁으로 변화하는 지정학적 환경, 독단적인 중국 그리고 동맹을 거래로 생각하며 의심하는 미국 대통령도 포함됐습니다. 더 나아가 한·일 관계는 극도로 악화해 지소미아 문제로 이어졌고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미국의 막대한 인상 요구는 한국의 분노와 미국의 책무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후 휴스턴과 보스턴 같은 몇몇 도시에서, 그리고 지난 21일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강연 제목에서 물음표를 없앴습니다. 한·미 관계가 분명히 틀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하던 바로 그날 뉴욕타임스의 사설 제목 역시 ‘트럼프의 백전백패 대(對)한국 제안: 한국에 대한 무리한 요구로 인해 위험 지역에 또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였습니다.   다행히 그다음 날 한국은 지소미아의 종료를 유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아시아 전문가였던 리처드 아미티지와 빅터 차의 공동기고를 실었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한국의 66년 동맹이 곤경에 처해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충돌 사건들이 트럼프로 하여금 주한미군의 일부를 철수시키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게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려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한·미 동맹에 폭넓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직접 접하고 있습니다.   한·미 국방부 장관이 15일 그랬듯이 정부 지도자들이 한·미 동맹을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린치핀이라고 단언할 때 워싱턴에선 익숙한 수사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중서부의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시민들은 이런 표현을 들을 때 린치핀이 뭐고 그 기능이 어떤 것인지 생각할 것입니다. 린치핀이란 바퀴가 차축에서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트랙터에 농기계를 고정할 때 필수적인 부품을 가리킵니다. 더 크고 복잡한 무언가의 필수적 일부인 것입니다. 미국인 중 자신과 자녀들을 위한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그리고 안전한 미국의 미래가 현명하고 성공적인 아시아 정책에 달려있음을 아는 이들은 이런 이미지에 공감합니다.   지난 70년간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쌓아온 깊은 유대관계도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밀워키 마케트대학교에서 ‘존 기창 오(John Kie-chiang Oh) 기념 강연’을 할 때 일입니다. 오 박사는 1954년 이 대학에 학부생으로 입학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했으며 당시 만난 미국 기자의 권유로 학업을 위해 미국 중서부에 왔습니다. 마케트대 대학원장, 가톨릭대 정치학 교수 및 대학원장을 지냈고 『한국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탐구』를 비롯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역시 저명한 교수이자 저술가인 아내 보니 오와 그 자녀들을 만나 한국계 미국인 3대가 장학제도·법학·의학·예술 등 여러 분야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 씨 가족과 같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인 사회가 거둔 놀라운 성장과 성공은 또 다른 린치핀을 만들었고 인간적인 유대를 결속시켰습니다.   미국은 현기증이 나고 불안할 정도로 위기가 고조된 정치적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민주주의의 기관들과 그 가치의 정당성 및 힘이, 국제적으론 미국이 이끄는 같은 생각으로 뭉친 동맹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의 생존 및 안위가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밀워키에서는 내년 여름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립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에 위스콘신을 잃었기에 대통령 당선도 놓쳤습니다. 위스콘신은 2020년 대통령 선거의 가장 뜨거운 중심이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동맹은 이 모든 문제에 참여할 준비가 된 정보를 가진 시민들에 달려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그런 미국인들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11.28 00:40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거짓의 시대에서의 진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이달 중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0일을 맞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40%대 지지율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조차 그가 정부를 혼란스럽게 통치하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내각 원년 멤버 중 반이 떠났고 백악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고위직을 대행하는 공직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공보국장은 여섯 차례 바뀌었고 국가안보보좌관도 네 명째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취임 이래 1만3000개 이상의 거짓 또는 호도하는 주장을 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싫어하는 언론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하며, 이를 보도하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이 모든 상황이 피곤하고 불안합니다. 금기가 사라져 가고 공적인 영역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언어와 행동들이 일반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주 사이에 워싱턴, 어쩌면 미국 전체의 정치적 맥락을 변화시킬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시리아 북부에 주둔하던 미군을 철수시키고 신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가장 유력한 민주당 경쟁 후보를 조사하게끔 압박을 가했다는 증거가 쌓이며 트럼프 행정부에는 새로운 위기를, 국가 기관들에게는 또 다른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군과 연합해 이슬람국가(IS)에 맞서고 터키군의 쿠르드족 공격까지 막던 미군을 철수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결정의 영향은 그 처참함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미치 맥코넬 상원 원내대표를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조차 트럼프의 분노를 무릅쓰고 이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방부 장관이자 널리 존경받는 제임스 매티스가 올 초 사임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미 하원은 철수 결정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354 대 60이란 압도적인 양당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책무에 대한 국제적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동맹국들은 우려하는 반면 러시아는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원의 탄핵 조사를 촉발한 것은 또 다른 외교정책 사안인 우크라이나 이슈입니다. 이것은 한 정부 내부고발자에 의해 촉발됐습니다. 언론에 유출한 것이 아니라 정부 지휘체계에 필요한 절차를 신중히 밟았습니다. 백악관 측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새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자신의 반대파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한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한 것도 그의 폭로 이후 벌어진 일입니다. 이 사건은 정부에서 안보 직책을 역임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탄핵 조사에 동참하도록 이끌어낸 변환점이 됐습니다. 민주당이 우세한 하원에서는 탄핵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유죄 선고 및 하야에 필요한 투표는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닉슨과 클린턴의 탄핵 정국과는 달리 이번 쟁점은 외교정책을 둘러싼 것입니다. 의회가 탄핵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사실과 배후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외교관과 공직자들의 몫입니다. 직업 외교관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자리입니다. 30년 넘는 세월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를 위해 직업 외교관으로 일한 저는 압니다. 군과 마찬가지로 외교의 핵심 가치는 초당파주의입니다. 1980년대 제가 한국에서 모셨던 리차드 워커 주한 미 대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극보수 공화당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미국 국내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워커 대사였습니다. 미국을 대표해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는 초당파적 공직자로서 ‘모든 국내외 적에 대항해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옹호하겠다’는 서약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11일 마리 요바노비치 전 주 우크라이나 대사는 바로 이 격언으로 하원 청문회에서 그의 증언을 시작했습니다. 열흘 후 요바노비치 대사의 갑작스런 본국 소환으로 대행을 맡게 된 윌리엄 테일러 대사 대행의 성명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테일러 대행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테일러 대행과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물론 정직하게 발언하기 위해 나선 수많은 민간과 군 관계자들의 전문성과 애국심에 저는 감탄합니다. 양극화된 환경에서도 초당적 입장을 고수하며 진실을 말함으로써 미국의 핵심 가치와 기관들을 강화하려는 투지에 감명받았습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84’와 ‘동물농장’ 작품에서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했습니다. 그 이유로 그의 이름은 ‘오웰 같은’(Orwellian)이란 형용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날 그의 책을 읽는 밀레니얼 세대는 “보편적인 기만의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라는 그의 주장이 획기적이라기 보다는 오웰이 단지 관찰을 잘 했다고 할 것 입니다. 제가 알고 지낸 외교관과 관료 중 혁명가는 없지만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선 공직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로운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10.31 00:43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비무장 DMZ를 꿈꾸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이번 여름은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후덥지근한 8월의 워싱턴을 벗어나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는 몬태나 산속의 통나무집으로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조차 외부 소식을 피할 수 없어 괴로웠습니다. 얼마 전 어느 인도 외교관이 내게 말한 것처럼 어쩌면 세계는 지금 전례없는 동시다발적 위기를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제도와 관계의 회복력과 타당성을 모두 위협하는 위기 말입니다. 지난달 말 한반도 평화경제의 전망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하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학자와 정치인 및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여느 국제행사와 다르게 이 행사는 토론 전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포함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와 달리 나는 JSA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방문했던 1975년 8월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에 새로 온 30여 명의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필수 예비 훈련 코스였습니다. 우리는 단정한 용모와 옷매무새로 올바른 이미지를 심어주도록 지침과 검사를 받았습니다. 청바지나 티셔츠 차림, 샌들 착용, 남성의 장발은 금지였습니다. 서울 외곽으로 달리다 가이드가 가리킨 곳에는 침략을 막기 위한 대전차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판문점에선 키 큰 미군들이 브리핑을 읊었고 그에 만만치 않게 큰 북한군들이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미군 스낵바에서 한국에 온 후 처음 본 햄버거를 사먹도록 허락 받았을 때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습니다.   이듬해인 1976년 충청남도에 살 때 미군 장교 두 명이 JSA에서 북한군의 도끼에 살해당한 충격적 영상을 흑백 텔레비전으로 접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 80년대에 젊은 외교관으로, 또 몇 년 후 대사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곳을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로 미국 정치인과 함께였고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는 스탠퍼드대 학생들과 방문했습니다. 판문점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 인상이 한국의 분열과 안보를 해석하는 방식의 틀을 만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앞서 함께 갔던 이들보다 구성이 다양하고 규모가 큰 그룹과 38선에 초청을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오두산에 도착하자 우리는 꿈 같이 펼쳐지는 논과 강을 가로질러 북한을 바라봤습니다. 임진각에서는 부산을 평양뿐 아니라 파리까지 연결시키는 기차 노선을 상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여전히 성조기가 태극기·유엔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는 JSA와 판문점에 갔습니다. 그곳은 10여 년 전부터 미군이 아닌 한국군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9일 채택된 남북군사합의서 덕분에 JSA에 주둔하는 양측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으며 주변의 감시초소는 모두 폐쇄됐습니다.   우리는 여러 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를 둘러봤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둘만의 회담 장소로 사용한 도보다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평온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감정과 생각이 소용돌이 치는 하루였습니다. 한국의 격동적인 현대사와 그간 이룬 모든 성과,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시작할 때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점차 파괴적인 분단이 돼버린 한반도의 깊은 비극과 그로 인한 인적·경제적 비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지난해부터 판문점과 DMZ는 1953년 남북휴전협정 서명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외교의 장이 됐습니다. 판문점은 남북 예비회담과 정상회담의 장소이자 한·미 대통령이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가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을 향한 유례없는 발걸음을 함께 내디딘 화합의 장소입니다. 이곳이 비판의 장이나 최악의 경우 폭력의 장이 아닌 대화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른 긴장 완화 조치는 특히 비핵화 대화가 중단된 지금 같은 시기에 신뢰와 추진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는 DMZ 비무장화를 위한 초기 단계지만 환영할 일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지속돼야 하며 확장돼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간의 협상 재개와 비핵화 협상 재개를 동반해야 합니다.   1975년의 JSA와 2019년의 JSA사이에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에 상처를 남긴 DMZ의 실상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 군인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경제란 말은 아직 너무나 먼 꿈 혹은 환상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내가 수십년간 그랬듯 DMZ에 서서 고립된 북한을 바라보며 이곳이 한국을 어떻게 가상의 섬으로 만들었는지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고립 상태를 보완하기 위한 훌륭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나아가 동북아의 성공과 운명의 최대치는 인프라, 경제적 기회, 비핵화 그리고 너무 오랜 세월 분열된 민족과 땅을 이어줄 평화경제의 비전에 달려있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09.05 00:20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단발적 쇼에서 실질적 진전으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미국인들은 국제 뉴스에 관심 없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6월 30일 일요일 아침은 달랐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접한 비무장지대(DMZ) 영상에 다들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년의 리얼리티 TV쇼 스타이자 현재는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맞이하러 공동경비구역(JSA)을 반으로 가른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북한에서 만났다는 사실과 자신이 북한땅을 딛은 첫 현직 미국 대통령이란 사실이 영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일요일 내내 뉴스와 케이블 채널 그리고 SNS에 올라온 논평이 대부분 부정적이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의 변칙적 외교 스타일을 좋아하는 지지자들조차 방문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시도했던 어떤 방법도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통적 접근 방식에 기회를 주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지자들의 논평을 제외하고 이번 만남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습니다. 지적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국민을 잔인하게 다루면서 핵무기를 비축하는 무자비한 독재자에게 미국 대통령이 알랑거리는 모습이 좋지 않다. 이는 김정은에게 엄청난 국내용 선전효과의 승리를 안겨줄 뿐 미국이 대가로 얻는 건 없을 것이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김정은 위원장을 위협하다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전략으로 노선을 갑자기 돌렸을 때 일었던 논쟁이 여기선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전의 외교적 금기 사항이었던 것이 많이 정상화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방식은 ‘톱다운(top-down)’이란 이름까지 붙었습니다. 미국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생각이나 성공 전망에 대한 평가를 떠나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직접 외교하는 것에 대해 정치성향을 넘어 폭넓은 지지를 보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은 위원장과 DMZ에서 찍은 생생한 영상과 공개적 만남에서 보인 능글맞은 모습이 갑작스런 정상회담의 효용성과 도덕성에 대한 열렬한 논쟁에 불을 지폈는지 모릅니다.   DMZ 북·미 회담에 있어 사람들이 간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에 따른 교착상태에서 외교를 재개한 실질적 돌파구였다는 점입니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톱다운 외교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DMZ의 즉흥적인 만남은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다시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취한 맥시멀리스트(타협을 배제하고 최대한 요구하는) 태도에서 후퇴해 비핵화에 있어 보다 점진적인 접근 방식을 논의할 준비가 돼있음을 암시했습니다.  또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DMZ 회담에 함께 참여시켜서 힘을 실어줬습니다.   오는 8월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대화의 물꼬를 터줄 장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환영할 소식입니다. 진전이 있기 위해서는 북한의 협상가들에게 비핵화 단계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권한과 전문 지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미국 측은 북한이 결정을 내리고 약속을 이행할 수 있도록 평양이나 북한 내 다른 장소에서 어쩌면 장기간이 될 회의를 갖는 데 대해 생각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미국도 난관이 있겠지만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평양이나 그 근교에서 회의가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다양한 계기로 다양한 사람들과 판문점에 다녀왔습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처음으로 판문점을 방문한 것은 1975년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한국에 도착한 직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걸어 넘어간 시멘트 턱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끔찍했던 1976년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주한 미국대사로 재직하던 2010년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후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가장 최근 방문인 지난해 봄에는 스탠퍼드대 학생들과 함께 남북 대화를 촉진시킬 희망의 준비를 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30일 그의 ‘친구’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북한에 잠시 들른 역사적 사건은 스타일과 내용으로 봤을 때 제가 상상했던 미국 대통령의 첫 방북 장면과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협상이 시작된 것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주목 받지 못했지만 못지않게 의미 있는 대목은 바로 이번 회담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동맹국으로서 결의와 화해의 메시지를 안고 함께 DMZ를 방문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번 판문점의 장면들이 단지 쇼에서 끝나지 않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실직적 성과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일 것입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07.11 00:12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미국 여성 6명 대선 출사표, 여권 신장은 이제부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6월은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시(戰時) 유럽 동맹국들과 함께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름다운 사진을 남겼습니다. 모순되는 이야기지만, 자연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래와 미국의 신뢰도를 향한 걱정스런 비관이 따라옵니다.   이번 달은 북한군이 남쪽에 기습 공격을 가해 한국전쟁이 비극적인 갈등으로 치닫게 한 지 69년이 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또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지 30년, 한국의 6월 민주항쟁이 큰 성과를 거둔 지 32년이 되는 달입니다. 1989년 6월 서울에 있던 저는 중국에서 2년, 한국에서 6년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과 중국의 커다란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두 나라에 일어나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변화가 때로는 희망으로 가득했고 때로는 기대에 어긋났지만, 세계에 지속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달엔 앞서 말한 기념일들만큼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100년 전인 1919년 6월 4일 미국 상원은 여성 투표권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9조를 통과시켰습니다. 각 주(州)의 비준을 받는데 14개월이 더 걸렸지만 여성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1920년 총선에서 첫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여성의 투표권은 투쟁 없이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1919년 표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무시를 받으며 백악관 앞에서 조용히 배너를 들고 시위를 했습니다. 일부는 체포돼 감옥에 갇혔습니다. 당시 여성 선거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병적이고 위험하며 심지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제게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의 마지막 십 년을 경험하고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야심 찬 이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본인이 완전한 미국인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힘든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를 상상해봅니다. 그들은 끈질겼고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주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딸과 아들에게 똑같이 어떠한 미래든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자랑스러운 할머니들입니다.   저보다 십 년 앞선 1960년대에 국무부에 지원한 친구가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통과하고 면접을 봤을 때 남성 면접관으로부터 “결혼하면 그만둬야 하는 걸 알고 있나요?”란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네”라고 대답했고 몇 년 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일이 없는 남성 외교관과 결혼했습니다. 부부는 규칙에 도전했고 결국 모두 대사가 됐습니다.   지난 4일 워싱턴에서 한국 여성 기자단을 만났을 때 이 모든 것이 떠올랐습니다. 기자들은 미국 국무부의 ‘성평등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란 프로그램으로 방문 중이었습니다. 미국이 정치와 비즈니스 분야에서 어떻게 여성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반가운 동시에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성평등은 국가 경쟁력과 상관없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닐까요.  미국은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 중 특히 보육과 유급 육아 휴직을 거의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와 비즈니스 분야에서 높은 유리 장벽을 깨지 못했기에 이 주제에 겸손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정치·경제적으로 부상한 한국 여성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전쟁 후 작은 가게를 꾸리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한 분들, 가정법률상담소를 운영하며 법률적 권리가 전혀 없는 여성들을 도운 이태영 변호사 같은 선구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지냈던 당시에 비해 한국의 여권이 얼마나 신장했는지, 미국에서 할머니 세대에 비해 우리 세대의 여권이 얼마나 신장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워싱턴에는 한국에서 온 여성 특파원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똑똑한 신임 한국인 외교관의 성별이 여성일 확률도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의회와 주지사 선거에 나섰습니다. 내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여성은 6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이나 워싱턴에서 열리는 회의는 ‘매널(맨+패널)’들로 가득합니다. 재능있는 여성 전문가가 있음에도 버젓이 남성으로만 연사를 구성합니다. 권위 있는 목소리의 조건에 어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기자든 정치인이든 여성들은 이중 잣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외모·호감도·전문성·자격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 은밀하게 퍼져있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갑니다.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에 국한된 문제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에 축하를 보냅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06.13 00:09

  • [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19세기 한·미의 가교였던 외교관의 호기심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지난 한 달 동안 여러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비핵화, 평화협정, 인권, 동맹 관리 등 주제는 달랐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좌절과 미국 국내 정치의 지속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위해 꼭 필요한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성적으로 감정적으로 힘이 빠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고리타분한 입장을 재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에 산소를 공급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슬럼프가 오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봅니다. 최신 정책 보고서를 읽는 대신 역사나 전기, 문학 서적을 찾아봅니다. 정책적 딜레마의 직접적인 해답을 얻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얻곤 합니다. 이런 동기로 미국의 19세기 천문학자로 잘 알려진 퍼시벌 로웰에 대해 알아보게 됐습니다. 로웰의 집안은 하버드대학교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또 제가 자란 애리조나주의 로웰 천문대로도 익숙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조선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1883년 조선의 수호통상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가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외교 비서관 퍼시벌 로웰’이란 미국인이 함께 있습니다. ‘과연 이 젊은 미국 청년은 누구였으며 왜 보스턴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애리조나로 갔을까’란 의문이 생겼습니다.   로웰은 보스턴의 부유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수학으로 학위를 받았지만 출생이 정한 전통적 진로에서 벗어났습니다. 남동생인 애보트는 24년간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고 두 여자 형제들은 보스턴에서 예술가와 활동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퍼시벌은 아시아로 훌쩍 건너가 조선과 일본에서 10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 쓴 책 중 400쪽짜리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 한국의 스케치』란 책이 있습니다. 조선의 외교 대표단과 미국 여행을 하고 왕실의 초대로 1883~84년 한양에서 시간을 보낸 뒤 쓴 책입니다. 현대 미국 독자에게는 글의 스타일이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지만 1970년대 제가 처음 한국을 경험했던 기억과 유사한 삽화와 서술이 감명 깊었습니다. 로웰은 한국의 날씨와 난방 시스템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한양의 놀라운 자연 경관, 겨울에 반짝 빛이 나는 푸른 하늘, 개울에서 옷을 빨고 있는 여성의 강인함, 경이로운 봄, 남성에게 모자가 갖는 중대한 의미(“남자는 그의 배우자보다 모자에 더 강하게 묶여있다”), 상대적 성과주의에 기반한 과거제도(“시험을 치르는 것이 극히 힘들지만 고귀한 출생의 행운을 가진 자에게는 조금 덜 힘들 수 있다”) 등의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저 역시 충청남도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일할 때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이런 주제를 모두 묘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로웰은 음식이 조선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조선 요리가 어떻게 일본 요리보다 우월한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조선인은 살기 위해 먹지 않고 먹기 위해 산다. 이런 삶의 목표는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두드러진다. 여행길 준비가 끝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실제로 길에 오르기 시작하지만 조선인들은 가벼운 식사를 하기 위해 앉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저도 여러번 들었던 것이 생각나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로웰의 서술은 과학적이었다 서정적이기도 하고 좌절에서 감탄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통찰이 빛나다 무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관성 있게 호기심이 넘쳐납니다. 이 지칠 줄 모르는 폭넓은 호기심과 수학적이고 서사적인 사고 능력 덕분에 아시아에서 돌아온 후 애리조나로 건너가 천문학에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조선에 관한 글을 쓸 때처럼 별을 연구할 때도 로웰의 관측은 온전히 다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화성에 생명체의 증거인 운하가 있다고 믿었고 그 신념을 대중화했습니다. 행성X에 대한 탐구 역시 행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궁극적으로 명왕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 것은 맞습니다. 그의 연구는 우주가 팽창하는 성질을 조기에 발견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로웰은 외교관이나 아시아 전문가보다 천문학자로 더 많이 기억됩니다. 19세기 후반 한국에 대한 그의 특이한 묘사는 역사적 가치가 있지만 오늘날 한국이나 한·미 관계를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전쟁 이전의 한·미 관계에 깊은 역사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고 경험하고 이해하려 했던 그의 확고한 의욕과 호기심이 마음에 듭니다.   그는 19세기 독자층에 만연했던 한국·중국·일본 등 극동아시아에 대한 인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기분 좋은 동시에 절망적으로 이상하다.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이 같은 비이성적인 이상함에 놓여있다. 우리는 눈은 뜨고 있지만 머리를 닫고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 관심은 실제로 막 잠에서 깨어났다. 그 생명력과 힘은 이제 곧 나타날 것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2019.05.1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