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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국민은 조정·타협의 정치 복원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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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정치분과 위원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정치분과 위원

윤석열 정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두 가지 측면에서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먼저 역대급 총선 투표율이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67.0%를 기록했다. 이것은 1992년 14대 총선 투표율인 71.9% 이후 32년 만에 최고 기록이다. 정권 심판의 기치 아래 야권 지지자가 결집하자, 선거 막판 여권 지지자도 개헌선인 200석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결집한 것이다. 또 거대 여·야당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에게 조국혁신당과 새로운미래 등 대안이 등장하면서 투표할 유인이 생겼다는 점도 투표율 상승 요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높은 투표율은 보수·진보를 떠나 한목소리로 나라를 걱정하며,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대한한국 미래에 대한 우려를 선거 참여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총선은 독단적 국정에 대한 심판
야당 및 국민과의 소통 절실해져
야당도 건설적 비판과 대안 내야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두 번째는 선거 결과이다. 여당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는 108석에 그쳤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민주연합은 175석, 조국혁신당이 12석, 개혁신당 3석 등 범야권이 192석을 얻었다. 여당 참패, 야당 압승이다. 입법부인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였지만, 올해 집권 3년 차인 윤 대통령의 임기 중 선거였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 강했다. 윤 정부는 이번 총선을 통해 여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얻어 남은 2년을 3대(노동·연금·교육) 개혁 등 여러 국정과제를 추진하고자 하였지만, 거대 야권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개혁 추진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총선은 높은 투표율과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참여와 책임성이 잘 실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통치성 측면에서는 우려가 앞선다. 보수·진보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윤 정부의 남은 3년이 지난 2년과 같이 여야 극한 대립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벌써 윤 대통령의 레임덕과 차기 대선을 위한 여야 대립이 예상된다. 미·중 패권 경쟁, 기후위기, 북핵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 초노령화와 초저출산, 의료 불균형 등으로 인한 복합적 불확실성이 커져 한국의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잃어버린 정치’ 3년으로 허비한다면 한국의 장래는 밝지 않다.

어찌 되었든 국정운영 책임은 윤 대통령과 여당에 있으니 복잡한 현안 해결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권, 특히 윤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정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은 다음 달래고 조정해서 타협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관점이 나오게 된 배경은 1950년대 중반 정치적 혼돈의 시기에 영국 정치 세력들이 특정 이념이나 세력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도구화한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치가 특정 정치적 신조에 얽매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 상황이 영국의 1950년대 크게 다르지 않아 크릭의 정치 관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치를 조정과 타협이라고 정의한 크릭에 따르면 윤 정부는 낙제점이다.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부정 평가자는 첫째 ‘경제·민생·물가’에 이어 둘째와 셋째로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을 지적했다. 지금까지 통합과 협치의 최우선 대상으로 국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과 국정을 깊이 있게 논의하고 협상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국민과의 소통에서도 신년 기자회견 대신 사전 녹화로 진행된 KBS와 대담 방식과 최근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 방식으로 일방향 소통이 주를 이루었다.

조정과 타협이라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물론 국회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 범야권도 이제 국정운영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 있는 반대 세력이 되었으므로 야당의 기본 기능인 정부 감시뿐 아니라 현안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대안을 제공하여 정부와 협의하고 타협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정치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