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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젊공’ 대탈주, 공직 개혁 절박성 일깨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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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중앙일보가 최근 기획 연재한 ‘젊공(젊은 공무원) 엑소더스’는 MZ 세대 공무원들의 일상과 내면을 바닥까지 훑어본 현장 보고서였다. 그들의 입직부터 이직까지, 공직 생활의 단면을 야무지게 솎아내 행정 연구자로서 큰 관심을 갖고 읽었다.

기사에서 ‘젊공’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직 이탈 추세가 심상치 않았다. 작년 기준으로 근속 기간 5년 미만 공무원 중 1만3566명이 공직을 떠났다. 이 중 3020명은 1년 차에 그만뒀다, 5급 이상만 떼보면 더 심각하다. 20대의 72.7%, 30대의 52.7%가 이직 의향을 가지고 있다.

하위 공무원 처우 극히 열악해
널 뛰는 정책에 소신은 단죄 우려
일할 맛 나게 임금·조직 개혁을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무엇이 문제인가? 요약하면 세 가지다. 악성·고질 민원에 시달리는 격무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왜곡된 보상 체계,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와 비효율적 인사 관리, 그리고 ‘공노비’의 자괴감을 부추기는 공직 가치 훼손이다.

그렇기에 MZ 세대 눈높이에 부응하는 조직문화 개선과 인사 혁신이 당면 과제로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 이래 규제 개혁과 전자정부에 몰입하느라 정작 사람을 돌보지 못한 우리 정부의 조직 운영 방식과 인사 관리 방식을 MZ 맞춤형으로 혁신하자는 맛깔나는 제언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할 것은 MZ 세대의 공직 이탈이 MZ 세대 고유의 특성에서 비롯한다는 세대론적 관점이다. MZ는 기성세대와 달라 워라벨을 추구하고, 권위주의 문화에 저항하며, 집단보다 개인의 가치를 더 추구한다는 식의 해석 말이다. 과연 그럴까?

기성세대라고 해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며 워라벨을 기꺼이 희생하고 ‘꼰대 문화’에 자발적으로 편입한 괴물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MZ 만큼이나 워라벨을 소망하고, 권위주의에 저항하며,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받기를 기대했다. 흔히 MZ의 특성으로 분류되는 여러 속성이 MZ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공직을 지켰고 후자는 떠나고 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두 세대를 넘나드는 기저에는 세대 특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기회 구조의 차이가 있다. 기회 구조란 자기가 속한 사회 내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 되기도 하고 방해되기도 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적 맥락과 환경을 말한다.

베이비 붐 세대는 공직을 때려치울 수 있을 만큼 바깥세상이 여유롭지 못했다. 반면 MZ 세대의 공직 밖에는 무한한 기회와 가능성이 넘실댄다. 누구나 가난하고 모두가 못살던 시절의 공직 동기와 누구는 금수저인데 누구는 흙수저인 시대의 공직 동기가 똑같을 수 없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혁신의 주역이 될 것인가 ‘월급 루팡’이 될 것인가는 개인의 일신 전속적인 심리적 결단이지만, 어떤 기회 구조를 향유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같은 MZ라도 연차가 오래될수록 이직 의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기회비용에서 매몰 비용을 뺀 값에 더한 기회 구조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기회 구조의 무게를 금방 가늠할 수 있다.

기회 구조는 MZ 세대 공무원처럼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능동적 집단에서 더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따라서 미래의 정부 개혁은 이 기회 구조의 진화를 염두에 두고 행정 체계와 일반 사회 체계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는, 매우 포괄적인 개혁이 되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급여와 연금이 그렇고, 노동과 복지가 그렇다. 군필 9급 공무원의 급여가 육군 병장 월급보다 적다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게 다가 아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극에서 극으로 널뛰는 정책 기조를 충실히 수행한 공무원들이 감사와 송사에 직면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통일 정책이 그렇고, 문화 정책이 그러하며, 원자력이든 아니든 에너지 정책은 더하다. 비대해진 대통령실과 국회의 뒤치다꺼리만으로도 바쁜 현실에서는 ‘적극 행정’은 구호고, ‘소신’은 직권남용으로 단죄받는 지름길이 되기 십상이다. 행정의 책무와 정치의 책임을 명확히 가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애국심만으로 일하는 공무원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무원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