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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AI 모델로 산업 혁신 이끌 전략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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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한국, 이집트·아랍에미리트(UAE)에도 밀렸다’,  ‘한국 AI 모델 개발 0건’. 지난주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에서 발간한 ‘AI 인덱스 보고서’의 결과를 해석한 언론의 헤드라인이다. 한국 AI 기술에 대한 위기와 자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고서 데이터 수집 방식과 신뢰성의 문제를 지적하며 과학기술정통부와 국내 전문가들이 반박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AI는 정말 위기일까?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 AI 경쟁은 기술을 넘어 시장·자본·국가 간 각축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오픈AI·구글·앤스로픽 등이 조 단위 투자를 앞세워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미국의 메타, 프랑스의 미스트랄, 한국의 네이버·LG·KT 등이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며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자본·인력이 부족한 국내 기업과 대학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전력질주를 하는 상황이다. 자체 모델을 개발하면 해외 기술에 밀릴 것이라는 비관론이 제기되고, 자체 모델 개발이 부족하다는 보고서가 나오면 위기론이 제기되니 현장의 기술 인력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 AI분야 세계적 기술력 보유
하지만 국내 AI 활용 확산은 더뎌
AI로 시장 창출하는 생태계 절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모델 개발 숫자가 적다고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위기는 AI 모델로 시장을 창출하고 산업 혁신을 이끌 전략과 비전의 부재에 있다. AI 생태계는 모델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유명 투자사인 세콰이어 캐피털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은 생성형 AI의 1막에서 2막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술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현장에서의 가치 증명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AI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모델은 일부일 뿐, 모델을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배포하는 기반 기술인 반도체와 클라우드, 양질의 데이터를 수집·정제·합성하는 데이터 기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인간-AI 협업, 에이전트, 인터랙션 등 응용 기술, AI의 안전과 신뢰를 보장하는 정책과 법 등 다방면의 기술과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이 AI 경쟁에서 가진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강점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머지않아 AI 활용의 폭발적 증가로 AI는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낼 것이다. 국내 AI 활용 확산이 더딘 것이야말로 위기라는 인식을 가지고 생태계 차원의 전략 수립과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미래에 대비해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AI 기술을 신속하고 경제성 있게 시장에 내놓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 간 협업에 기반한 연구개발과 생태계 관점을 지닌 인재 양성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보고서에 대한 사후 반박을 넘어 국내 AI 기술을 세계에 알리는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AI 기술은 소셜미디어, 논문 게재, 기술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고, 개발자 플랫폼을 거쳐 확산되며, 벤치마크와 산업 적용을 통한 검증으로 생태계에 자리 잡는다. 논문과 특허 숫자 채우기 방식으로 이러한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는 어렵다. 기업은 글로벌 개발자 행사와 학술대회 후원, 기술 강연 등으로 자체 기술의 글로벌 확장을 도모해야 한다. 대학은 AI 논문의 양적 성장보다 분야를 조망하고 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빅 임팩트’ 논문과 패러다임을 바꿀 ‘문샷’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정부는 혁신적인 AI 정책과 비전, 국내 산학연의 우수 역량을 영문으로 온라인에 공개하고 홍보해야 한다.

이런 활동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인센티브 부재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혁신을 추구하는 인센티브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논문·특허 실적을 채우지 않으면 연구비가 깎이고, 낡은 기술 기준으로 제시된 성능치를 채워야 성공으로 인정받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변화된 게임의 법칙을 외면한 채 낡은 규칙만 고수해서는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새로운 판을 짜는 리더십이다. 기업과 정부는 AI 컨트롤타워 역할의 조직을 신설해 새로운 AI 리더십을 발휘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