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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딜레마와 선택’(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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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컷칼럼] 나시레마족 주술을 거부하는 서울대발 교육개혁

    나시레마(Nacirema)라는 부족이 있다. 남자들은 매일 날카로운 도구로 얼굴을 괴롭히고, 여자들은 작은 오븐에 머리를 굽는다. 입 안에 마법의 분말을 넣는 의식을 수행한다. 기이한 주술에 사로잡힌 원시종족이 연상될 것이다. 사실은 1950년대의 미국인들이 면도하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양치질하는 일상의 장면일 뿐이다.    나시레마는 허구의 소수 부족이다. 아메리칸(American)의 철자를 역순으로 쓴 언어 유희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호레이스 마이너가 다른 문화권 사람의 오해와 편견을 풍자하기 위해 쓴 글 『나시레마 부족의 몸의례(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  「 한국, 오리엔탈리즘 극복엔 성공 모방 아닌 창조형 인재 넘쳐나야 성장률 5년 1% 하락 법칙 깨져 개별성 존중, 이타성 확보가 관건 」    서구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비판한 대로 오랫동안 동양을 타자화했다. “너와 나는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하겠다”는 제국주의의 오만이었다. 서구는 문명의 주역이고, 동양은 열등하고 비논리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냈다. 동양인들은 서구의 비틀린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응시하고 정체성을 갖게 됐다. 서구를 모방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한국은 이 모욕의 과정을 뼈저리게 겪은 뒤 실력으로 절정의 국가 파워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열등생에서 우등생으로 변신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을 나타내는 장기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5년 1% 하락의 법칙’이 마법이 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루커스 교수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 비결이 인적자원의 성공적인 축적에 있다고 분석했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신생국 대통령 이승만은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전쟁 중 피란가서도 천막학교를 열고 대학 강의까지 계속했다. 선진 기술과 지식을 모방하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돼 부자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이 만든 ‘20년 특허의 벽’에 부닥쳐 모방이 쉽지 않게 됐다. 그래서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고 김세직 교수는 역설한다.    김 교수는 물리학자인 오세정 전 총장이 주도하는 국가미래전략원(원장 김병연 경제학부 교수) 교육개혁 태스크포스의 일원이다.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총장과 함께 창조형 강의를 고안했고, 18년째  적용하고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던진 ‘정답 없는 과제’ 중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화폐를 상상해 제시하시오”도 있었다. 그는 “2008년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에 누군가가 답을 제시했다면 세계 제1의 부자가 되고,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크게 도약했을 것”이라고 했다. 종강 후 스스로 창의성이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학생의 비율은 90%가 넘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토론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자세를 체화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아예 입시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쓸모없는 기존 지식을 반복해서 암기하는 모방형 시험 대신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통해 창의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조적 CEO를 배출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주입식 사교육이 무의미해져 GDP 대비 세계 1위인 사교육비도 확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학 분야에서도 창조형 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 교육개혁 태스크포스의 또 다른 일원인 김윤영 기계공학과 석좌교수는 배우는 것을 줄이고 많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공학은 기술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서구 선진국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서 정체되지 않으려면 모방이 아닌 창조를 통해 우리 문명의 표준을 우리의 언어로 세울 필요가 있다. 경제를 넘어 문화까지 강한,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인(萬人)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존중돼야 한다.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 시조(始祖) 의상(義湘)은 “작은 티끌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다(一微塵中 含十方)”고 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느낌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해진다. 비로소 타인을 존엄한 존재로 기꺼이 수용하는 이타성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자유로움 속에 창조의 에너지가 솟구치게 된다. 각기 다른 너와 내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살아남는 데 반드시 필요한 내부 통합이 가능하고, 진영논리로 병들어 있는 민주주의도 건강해진다.    독자적 문명을 건설할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서울대발(發) 교육혁신’은 관학(官學)의 타성을 거역하는 일대 사건이다. 타인의 시선, 나시레마의 최면에서 깨어나 저 눈부신 광장으로 걸어가는 과정이다. 성공해서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난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 이하경 대기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2023.11.30 23:00

  • [이하경 칼럼] 나시레마족 주술을 거부하는 서울대발 교육개혁

    이하경 대기자 나시레마(Nacirema)라는 부족이 있다. 남자들은 매일 날카로운 도구로 얼굴을 괴롭히고, 여자들은 작은 오븐에 머리를 굽는다. 입 안에 마법의 분말을 넣는 의식을 수행한다. 기이한 주술에 사로잡힌 원시종족이 연상될 것이다. 사실은 1950년대의 미국인들이 면도하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양치질하는 일상의 장면일 뿐이다.   나시레마는 허구의 소수 부족이다. 아메리칸(American)의 철자를 역순으로 쓴 언어 유희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호레이스 마이너가 다른 문화권 사람의 오해와 편견을 풍자하기 위해 쓴 글 『나시레마 부족의 몸의례(Body Ritual among the Nacirema)』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  「 한국, 오리엔탈리즘 극복엔 성공 모방 아닌 창조형 인재 넘쳐나야 성장률 5년 1% 하락 법칙 깨져 개별성 존중, 이타성 확보가 관건 」    서구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비판한 대로 오랫동안 동양을 타자화했다. “너와 나는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하겠다”는 제국주의의 오만이었다. 서구는 문명의 주역이고, 동양은 열등하고 비논리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냈다. 동양인들은 서구의 비틀린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응시하고 정체성을 갖게 됐다. 서구를 모방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한국은 이 모욕의 과정을 뼈저리게 겪은 뒤 실력으로 절정의 국가 파워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열등생에서 우등생으로 변신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경제의 진짜 성장 능력을 나타내는 장기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5년 1% 하락의 법칙’이 마법이 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루커스 교수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 비결이 인적자원의 성공적인 축적에 있다고 분석했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신생국 대통령 이승만은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전쟁 중 피란가서도 천막학교를 열고 대학 강의까지 계속했다. 선진 기술과 지식을 모방하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돼 부자나라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이 만든 ‘20년 특허의 벽’에 부닥쳐 모방이 쉽지 않게 됐다. 그래서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고 김세직 교수는 역설한다.   김 교수는 물리학자인 오세정 전 총장이 주도하는 국가미래전략원(원장 김병연 경제학부 교수) 교육개혁 태스크포스의 일원이다.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총장과 함께 창조형 강의를 고안했고, 18년째  적용하고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던진 ‘정답 없는 과제’ 중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화폐를 상상해 제시하시오”도 있었다. 그는 “2008년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에 누군가가 답을 제시했다면 세계 제1의 부자가 되고,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크게 도약했을 것”이라고 했다. 종강 후 스스로 창의성이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학생의 비율은 90%가 넘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토론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자세를 체화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아예 입시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쓸모없는 기존 지식을 반복해서 암기하는 모방형 시험 대신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통해 창의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조적 CEO를 배출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주입식 사교육이 무의미해져 GDP 대비 세계 1위인 사교육비도 확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학 분야에서도 창조형 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 교육개혁 태스크포스의 또 다른 일원인 김윤영 기계공학과 석좌교수는 배우는 것을 줄이고 많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공학은 기술로 문명을 발전시키는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서구 선진국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서 정체되지 않으려면 모방이 아닌 창조를 통해 우리 문명의 표준을 우리의 언어로 세울 필요가 있다. 경제를 넘어 문화까지 강한,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인(萬人)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존중돼야 한다.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 시조(始祖) 의상(義湘)은 “작은 티끌 하나에 우주가 들어 있다(一微塵中 含十方)”고 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느낌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해진다. 비로소 타인을 존엄한 존재로 기꺼이 수용하는 이타성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자유로움 속에 창조의 에너지가 솟구치게 된다. 각기 다른 너와 내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살아남는 데 반드시 필요한 내부 통합이 가능하고, 진영논리로 병들어 있는 민주주의도 건강해진다.   독자적 문명을 건설할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서울대발(發) 교육혁신’은 관학(官學)의 타성을 거역하는 일대 사건이다. 타인의 시선, 나시레마의 최면에서 깨어나 저 눈부신 광장으로 걸어가는 과정이다. 성공해서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난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11.27 00:30

  • [세컷칼럼] “그런데 홍범도가 누구예요?”

    근래 들어 한국 대통령은 세계 어디에서도 인기다. 튼튼한 경제력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쟁력 있는 한국 기업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원동력이 된 1960~70년대 고도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출발점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그 경제개발 계획을 탄생시킨 것은 우남(雩南) 이승만 정부였다. 1957년 부흥부 장관이 된 송인상은 이 대통령에게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개발 계획을 실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우남은 “그건 공산당, 사회주의자가 하는 짓”이라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송인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에 출장가서 전후 경제개발 이론의 선구자인 아서 루이스의 저서를 구했고, 우남에게 전달했다. 루이스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출신의 흑인 경제학자로 런던정경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냈고, 197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우남은 밤을 새워 통독한 뒤 “자네가 하려는 거 해 봐”라고 지시했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비사(祕史)는 한 원로가 생전의 송인상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   ■  「 대통령, 전투 모드서 협치 모드로 경제·안보 위기에 필요한 리더십 이견 봉쇄 위한 이념 전쟁은 금물 스타일 넘어 철학·기조 바뀌어야 」   송인상은 “5년은 너무 길다”는 우남의 뜻에 따라 3개년 계획안을 마련해 60년 4월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원래 미국은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고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공업화 성장 모델을 채택했다. 자원이 없는 최빈국(最貧國)이 살길은 수출 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경제개발 모델의 원형은 이때 축조된 것이다.    3개년 계획은 60년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이 출범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수정돼 계승됐고,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실행했다.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됐다. 지금의 정권들처럼 전 정부의 흠결을 들쑤시면서 적폐청산에 나섰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 확 달라졌다. 전투 모드에서 협치 모드로 전환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다. 야당에 협력과 협조를 부탁한다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했다. 외면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했고, 야당 국회상임위원장들의 쓴소리도 묵묵히 경청했다. 이런 통합적 자세는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다.    이젠 스타일을 넘어 국정 운영의 철학과 기조도 달라져야 한다. 백해무익한 이념전쟁과 결별해야 한다. 먹고사는 실용을 중시하는 중도는 물론 합리적 보수층도 넌더리를 내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했다.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지 않나. 제일 중요한 건 이념”이라며 전투를 독려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적대세력을 향해 위협적 언사를 쏟아내는 것은 아무런 적의(敵意)가 없는 무생물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무모한 용맹을 떠오르게 한다. 강성 지지층은 환호하겠지만 공동체는 경직과 분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이념전쟁은 이견(異見)을 봉쇄한다. 갈등의 현재화(顯在化)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를 위태롭게 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시장을 존중할 때에만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최악의 이념전쟁 장면은 홍범도 장군을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은 사건이다. 반공보수인 박정희 정부가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박근혜 정부가 해군함정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하지 않았는가. 이름 없는 어느 자영업자는 “그런데 홍범도가 누구예요?”라고 일갈했다. 서민들은 먹고살기도 바쁜데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의 영웅을 욕보일 정도로 이 정권이 한가하냐는 항변이었다. 민심(民心)은 언제나 천심(天心)이다.    우남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할 정도로 침략세력인 공산당과 사회주의자를 미워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 전쟁”(윌리엄 스툭 조지아대 석좌교수)에서 나라를 지켜낸 거인(巨人)이었다. 그러나 80대 노(老)대통령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두 갈래길 앞에서 목숨이나 다름없는 소신을 바꿨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강한 영향을 받은 수정자본주의의 산물인 경제개발 계획 수립을 승인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미워한 적의 방식을 용인했다. 이런 유연한 사고야말로 역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최고 지도자의 덕목이다. 윤 대통령의 결핍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윤 대통령의 혁신 드라이브와 협치 모드로의 전환을 환영한다. 작은 승리에 도취해 있는 민주당보다는 한 수 위다. 그러나 우남과 같은 유연함과 균형을 갖추지 않는다면 스타일 변화의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글 = 이하경 대기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2023.11.07 23:00

  • [이하경 칼럼] “그런데 홍범도가 누구예요?”

    이하경 대기자 근래 들어 한국 대통령은 세계 어디에서도 인기다. 튼튼한 경제력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쟁력 있는 한국 기업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원동력이 된 1960~70년대 고도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출발점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그 경제개발 계획을 탄생시킨 것은 우남(雩南) 이승만 정부였다. 1957년 부흥부 장관이 된 송인상은 이 대통령에게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개발 계획을 실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우남은 “그건 공산당, 사회주의자가 하는 짓”이라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송인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에 출장가서 전후 경제개발 이론의 선구자인 아서 루이스의 저서를 구했고, 우남에게 전달했다. 루이스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출신의 흑인 경제학자로 런던정경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냈고, 197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우남은 밤을 새워 통독한 뒤 “자네가 하려는 거 해 봐”라고 지시했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비사(祕史)는 한 원로가 생전의 송인상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     ■  「 대통령, 전투 모드서 협치 모드로 경제·안보 위기에 필요한 리더십 이견 봉쇄 위한 이념 전쟁은 금물 스타일 넘어 철학·기조 바뀌어야 」    송인상은 “5년은 너무 길다”는 우남의 뜻에 따라 3개년 계획안을 마련해 60년 4월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원래 미국은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고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공업화 성장 모델을 채택했다. 자원이 없는 최빈국(最貧國)이 살길은 수출 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경제개발 모델의 원형은 이때 축조된 것이다.   3개년 계획은 60년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이 출범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수정돼 계승됐고,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실행했다.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됐다. 지금의 정권들처럼 전 정부의 흠결을 들쑤시면서 적폐청산에 나섰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 확 달라졌다. 전투 모드에서 협치 모드로 전환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다. 야당에 협력과 협조를 부탁한다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했다. 외면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했고, 야당 국회상임위원장들의 쓴소리도 묵묵히 경청했다. 이런 통합적 자세는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다.   이젠 스타일을 넘어 국정 운영의 철학과 기조도 달라져야 한다. 백해무익한 이념전쟁과 결별해야 한다. 먹고사는 실용을 중시하는 중도는 물론 합리적 보수층도 넌더리를 내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했다.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지 않나. 제일 중요한 건 이념”이라며 전투를 독려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적대세력을 향해 위협적 언사를 쏟아내는 것은 아무런 적의(敵意)가 없는 무생물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무모한 용맹을 떠오르게 한다. 강성 지지층은 환호하겠지만 공동체는 경직과 분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이념전쟁은 이견(異見)을 봉쇄한다. 갈등의 현재화(顯在化)라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를 위태롭게 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시장을 존중할 때에만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최악의 이념전쟁 장면은 홍범도 장군을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은 사건이다. 반공보수인 박정희 정부가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박근혜 정부가 해군함정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하지 않았는가. 이름 없는 어느 자영업자는 “그런데 홍범도가 누구예요?”라고 일갈했다. 서민들은 먹고살기도 바쁜데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의 영웅을 욕보일 정도로 이 정권이 한가하냐는 항변이었다. 민심(民心)은 언제나 천심(天心)이다.   우남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할 정도로 침략세력인 공산당과 사회주의자를 미워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 전쟁”(윌리엄 스툭 조지아대 석좌교수)에서 나라를 지켜낸 거인(巨人)이었다. 그러나 80대 노(老)대통령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두 갈래길 앞에서 목숨이나 다름없는 소신을 바꿨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강한 영향을 받은 수정자본주의의 산물인 경제개발 계획 수립을 승인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미워한 적의 방식을 용인했다. 이런 유연한 사고야말로 역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최고 지도자의 덕목이다. 윤 대통령의 결핍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윤 대통령의 혁신 드라이브와 협치 모드로의 전환을 환영한다. 작은 승리에 도취해 있는 민주당보다는 한 수 위다. 그러나 우남과 같은 유연함과 균형을 갖추지 않는다면 스타일 변화의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이하경 대기자

    2023.11.06 00:49

  • [세컷칼럼] 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은희경의 소설 『비밀과 거짓말』에는 K읍의 ‘사형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투숙객들의 재물을 탐낸 여관 주인은 네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인다. 원귀(冤鬼)들은 자식이 없는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차례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다. 지극했던 사랑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처절한 복수를 완성하는 전복적 서사(敍事)다. 중도·청년·중산층이 여권에 등을 돌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1년7개월 전 지지했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경고였다. ‘사형제 이야기’ 속 아버지의 상실감을 여권은 제대로 느끼고 있을까.   ■  「 보선 결과는 민심의 정권 경고 방향 맞지만 태도 오만해 실망 언로 막히면 ‘벌거벗은 임금님’돼 겸손한 자세로 민심 경청하길 」    17%포인트 차 대패는 여권의 자업자득이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보궐선거에 원인제공자를 출마시키는 ‘용산’의 결정에 그 누구도 “아니되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구청장 한 사람을 뽑는 선거가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선 2라운드가 돼버렸다. 집권당은 출석 점검까지 하는 총력전을 벌였다. 어느 당협위원장은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선거 현장에 하루만 가고도 수일간 간 것처럼 옷을 갈아입고 인증샷을 올렸다. 유권자를 바보로 아는 소극(笑劇)이었다.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분노투표’까지 했다.   유권자들이 마음을 닫은 것은 집권 이후 1년5개월 동안 보여준 정권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사실 노동·교육·연금 개혁,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등 정책 목표와 방향은 잘 잡았다. 그러나 국민 설득이 부족했고, 야당과의 소통은 아예 없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자회견도 안 하고 있다. 일방통행의 독주만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만 5세 입학, 주 69시간제, 수능 킬러문항 소동이 벌어졌다. 내로남불이 아닌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는데 자질과 도덕성이 함량 미달인 인사들을 줄줄이 기용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장관 후보자가 걸어 나가는 최악의 장면까지 나왔다. 이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이다. 그런데 머슴이 주인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으면 참모들에게도 그런 결기를 허용하고 언로(言路)를 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가 충정에서 쓴소리를 했더니 “왜 너까지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반대였다. 참모들과 ‘계급장 떼고’ 격의 없이 토론했다. ‘검사와의 대화’ 때 평검사들이 무례하게 대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인사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생명줄인 언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촌로(村老)를 상대할 때도 정성을 다했다. 시시한 얘기에도 박장대소하고 맞장구쳤다. 생전의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단 둘이 국정을 의논할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치밀한 계산으로 나를 다그쳤는데 국민을 대할 때는 무장해제하고 푸근한 동네 아저씨가 되어 경청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똑똑한 사람인 걸 알게 해준 분”이라며 호감을 표시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면 순수한 성정과 결단력에 더해 날개를 달 것이다.   여권은 지금 각자도생의 분위기다. 비관적인 수도권 총선 예측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자 지도부는 “나는 안 본 걸로 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 지역구 영남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저 ‘윤심’을 거스르지 않고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영남과 보수만 바라보면 내년 총선에서도 수도권과 중도를 몽땅 내주고 참패하게 된다. 정권은 절뚝거리는 레임덕(lame duck)이 아니라 아예 죽어 있는 데드덕(dead duck)이 될 것이다. ‘사형제 이야기’ 비극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변화와 쇄신의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내부 비판과 언로가 계속 막힌다면 아부꾼의 심기경호에 길들여진 ‘벌거숭이 임금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면 보선 참패는 전화위복이 된다. 이념 대통령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실용 대통령이 돼야 한다. 범부(凡夫)의 고달픈 현실을 어루만지기 위해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표정으로 경청해야 한다. 저절로 내부 통합이 될 것이다. 첨단 방공망과 막강한 정보기관을 갖고도 게릴라 집단 하마스에 일격을 당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사사건건 발목만 잡고 내분 상태인 거대 야당과 맞서 총선에서도 이길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대통령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만년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했다. 행여 권력에 취할까 봐 자신을 경계하고 민심을 향해 직진하기 바란다.   글=이하경 대기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2023.10.19 23:00

  • [이하경 칼럼] 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이하경 대기자 은희경의 소설 『비밀과 거짓말』에는 K읍의 ‘사형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투숙객들의 재물을 탐낸 여관 주인은 네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인다. 원귀(冤鬼)들은 자식이 없는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차례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다. 지극했던 사랑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처절한 복수를 완성하는 전복적 서사(敍事)다. 중도·청년·중산층이 여권에 등을 돌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1년7개월 전 지지했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경고였다. ‘사형제 이야기’ 속 아버지의 상실감을 여권은 제대로 느끼고 있을까.     ■  「 보선 결과는 민심의 정권 경고 방향 맞지만 태도 오만해 실망 언로 막히면 ‘벌거벗은 임금님’돼 겸손한 자세로 민심 경청하길 」    17%포인트 차 대패는 여권의 자업자득이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보궐선거에 원인제공자를 출마시키는 ‘용산’의 결정에 그 누구도 “아니되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구청장 한 사람을 뽑는 선거가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선 2라운드가 돼버렸다. 집권당은 출석 점검까지 하는 총력전을 벌였다. 어느 당협위원장은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선거 현장에 하루만 가고도 수일간 간 것처럼 옷을 갈아입고 인증샷을 올렸다. 유권자를 바보로 아는 소극(笑劇)이었다.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분노투표’까지 했다.    유권자들이 마음을 닫은 것은 집권 이후 1년5개월 동안 보여준 정권의 오만한 태도 때문이었다. 사실 노동·교육·연금 개혁,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등 정책 목표와 방향은 잘 잡았다. 그러나 국민 설득이 부족했고, 야당과의 소통은 아예 없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자회견도 안 하고 있다. 일방통행의 독주만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만 5세 입학, 주 69시간제, 수능 킬러문항 소동이 벌어졌다. 내로남불이 아닌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는데 자질과 도덕성이 함량 미달인 인사들을 줄줄이 기용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장관 후보자가 걸어 나가는 최악의 장면까지 나왔다. 이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이다. 그런데 머슴이 주인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으면 참모들에게도 그런 결기를 허용하고 언로(言路)를 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가 충정에서 쓴소리를 했더니 “왜 너까지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반대였다. 참모들과 ‘계급장 떼고’ 격의 없이 토론했다. ‘검사와의 대화’ 때 평검사들이 무례하게 대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인사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생명줄인 언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촌로(村老)를 상대할 때도 정성을 다했다. 시시한 얘기에도 박장대소하고 맞장구쳤다. 생전의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단 둘이 국정을 의논할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치밀한 계산으로 나를 다그쳤는데 국민을 대할 때는 무장해제하고 푸근한 동네 아저씨가 되어 경청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똑똑한 사람인 걸 알게 해준 분”이라며 호감을 표시했다. 윤 대통령도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면 순수한 성정과 결단력에 더해 날개를 달 것이다.   여권은 지금 각자도생의 분위기다. 비관적인 수도권 총선 예측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자 지도부는 “나는 안 본 걸로 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 지역구 영남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저 ‘윤심’을 거스르지 않고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영남과 보수만 바라보면 내년 총선에서도 수도권과 중도를 몽땅 내주고 참패하게 된다. 정권은 절뚝거리는 레임덕(lame duck)이 아니라 아예 죽어 있는 데드덕(dead duck)이 될 것이다. ‘사형제 이야기’ 비극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변화와 쇄신의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내부 비판과 언로가 계속 막힌다면 아부꾼의 심기경호에 길들여진 ‘벌거숭이 임금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면 보선 참패는 전화위복이 된다. 이념 대통령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실용 대통령이 돼야 한다. 범부(凡夫)의 고달픈 현실을 어루만지기 위해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표정으로 경청해야 한다. 저절로 내부 통합이 될 것이다. 첨단 방공망과 막강한 정보기관을 갖고도 게릴라 집단 하마스에 일격을 당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사사건건 발목만 잡고 내분 상태인 거대 야당과 맞서 총선에서도 이길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대통령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만년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했다. 행여 권력에 취할까 봐 자신을 경계하고 민심을 향해 직진하기 바란다. 이하경 대기자

    2023.10.16 00:38

  • [이하경 칼럼] 여기서 대선 연장전을 끝내자

    이하경 대기자 신군부에 의해 정계 은퇴를 당한 야인(野人) 김영삼은 1983년 독재에 항거하는 23일간의 단식을 했다. 전두환 정권은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을 통해 “단식을 멈추고 해외로 나가라”고 회유했다. 김영삼은 “나를 시체로 만들어 부치면 된다”며 거부했다.   사형(死刑) 집행을 기다리다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구명돼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항의했다. 정권이 틀어막은 김영삼 단식 사실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전 세계에 알렸다. 숨죽이고 있던 국내외 민주화 세력이 하나로 뭉쳤다.     ■  「 이재명 특권적 ‘방탄’ 공감 못 얻어 거취 결단해 정치 혼돈 끝내야 국힘·민주 모두 중도보수 정당 강경파 다스리면 통합 정치 가능 」    김대중은 평민당 총재 때인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촉구하는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지자제를 36년 만에 부활시켰다.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은 사리(私利)를 초월한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국민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양김(兩金)의 단식에는 정치적 약자의 저항이라는 공통의 정당성이 있었다. 역사를 바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4일간 단식의 명분은 ‘윤석열 정권 폭주 저지’였다. 그러나 국민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입법권력을 가진 원내 1당 대표였고, 목적도 자신을 위한 동정 여론 조성이어서 공익(公益)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석 달 전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하루 전날 부결을 호소했다. 구차했고, ‘방탄’의 불명예만 남았다.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며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구속돼도 옥중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한다. 강성 지지자들은 “배신자를 색출해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고 했다. 이건 민주주의와 무관한 야만의 괴성(怪聲)이다.   이 대표가 연루된 10여 개 사안은 성남시장 시절의 뇌물·횡령 혐의 사건이다. 민주당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대선 패배 이후 성찰의 시간을 갖는 대신 서둘러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당 대표직을 움켜쥐었다. 그를 정점으로 한 거대 야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1년4개월 동안 ‘방탄’을 위해 숱한 무리수를 두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됐다. 한덕수 총리에 대한 뜬금없는 해임건의안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민주당은 일인자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정치적 공격성을 자랑하는 팬덤정치에 휘둘리고 있다. 팬덤정치는 충동과 분노의 소용돌이일 뿐,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성적인 다수를 침묵의 세계로 밀어넣는다. 이 대표는 팬덤정치에 편승해 민심과 충돌하는 폭주를 멈춰야 한다.   막스 베버의 언술을 빌리면 권력은 “나의 의지로 남을 움직이는 일”이다. 일종의 폭력이다. 잘못 사용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하필이면 그 위험천만한 권력을 다루는 직업이 정치다. 그렇기에 경전과 율법에 적혀 있지 않아도 정치인에게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양심과 윤리가 있다. 이걸 무시하면 정치가 불신받고,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민주주의가 탄생 이후 2500년 동안 줄곧 위태롭게 항해했던 이유다.   그렇기에 이 대표가 나 하나 살자고 민주당을 사유화해 분열의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흔들면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당을 분리시켜야 한다. 스스로 결백하다고 장담하지 않았는가. 특권을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당당하게 맞서 무죄를 받아낸다면 정치적으로 부활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혼돈을 정리하기 위해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길이다.   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방탄 정당이라는 오명(汚名)을 벗었다. 대통령을 세 사람이나 배출한 내공으로 복원력을 발휘해 민심을 수용한 결과다. 한동안 혼란의 시간이 있겠지만 위기를 넘기면 혁신의 기회가 올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심(尹心)’ 쫓기에만 분주하고, 수도권과 중도의 민심에는 둔감하다. 내년 4월 총선 출마 희망자들은 텃밭인 영남과 서울 강남만 기웃거린다. 민주당이 전열을 재정비해 정권심판론을 들고나오면 힘들어질 수 있다.   인간은 사물의 실체를 영원히 볼 수 없다. 그저 시각중추가 반응하는 대로 보이는 것만 볼 뿐이다. 이렇게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귀에 거슬려도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다투되 싸우지 않는’ 화쟁(和諍)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보수, 진보 정당이 아니다. 중도 우파의 범주에 사이좋게 들어가 있다. 대북정책을 제외하고는 결정적인 차이도 없다. 맹목적 강경파, 충성파의 주장을 다스리면 얼마든지 타협하고 협치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가 옳다는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 타협해 끌고 나가는 연대의 과정이다. 이제는 대선 연장전을 끝내고 통합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09.25 00:44

  • [세컷칼럼]합의가 사라진 정치, 모욕받는 역사

    . . . 한국 정치는 상대를 부정하는 협량(狹量)에 갇혀 있다. 범부(凡夫)의 상식에 부합하는 최소합의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육사에 있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흉상이 외부로 이전한다. 이번에도 여야 합의는 없었다.     ■  「 홍범도 공산당 입당 시비 건다면 루스벨트·처칠, 소련 협력도 문제 문재인 정부 일방 결정이 출발점 경직의 저주에서 풀려나야 산다 」  국방부는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자유시 참변 때의 독립군 탄압 역할을 이전 이유로 들었다. 북한 김일성이 등장하지 않았던 한 세기 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1922년부터는 소련)는 식민지 약소국의 독립을 지원했다. 한인 항일무장운동 그룹은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는 러시아와 자연스럽게 협력했다. 퇴역 후 고령이 되어 연금을 받기 위해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홍범도 장군을 시비 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손잡고 나치 독일과 싸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총리도 “조국을 배신한 공산주의자”로 매도해야 할 판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이 희생당하자 솔밭에서 땅을 치고 울었다는 기록이 제시됐다. 독립군 탄압은 사실이 아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에게 훈장을 추서했고, 노태우 정부는 유해 송환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고 명명했다. 모두 보수정부가 한 일이다.    이번 소동에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있다. 홍 장군 유해는 강제 이주됐던 카자흐스탄에서 2017년에 돌아왔다. 문 정부는 그를 포함한 다섯 분의 독립군 운동가 흉상을 만들어 육사 충무관으로 모셨다. 이들은 ‘군(軍)의 기원’이 됐다. “독립군 전통도 사관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 육사 필수과목인 한국전쟁사는 선택과목으로 격하됐다. 민족, 항일투쟁을 강조하면서 국가와 안보의 측면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야당 의견은 전혀 듣지 않았다.    우리는 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졌기 때문에 벌어진 희비극(喜悲劇)을 목도하고 있다. 숙고하고 상의했다면 이런 양 극단의 결정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여야 갈등은 내전(內戰)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신(新)삼각공조를 이끌어냈다. 최악의 한·일 관계를 과감하게 복원시켜 거둔 윤석열식 외교의 성과다. 중국과 러시아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초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닥치고 반대’ 모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배출을 “핵 오염수 배출”로 규정했고, “윤석열 심판”을 외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과 장관들에게 “싸워라”고 독려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국민항쟁’이라고 했지만 실은 방탄용이다. 200여 건의 민생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정기국회는 암초에 걸려 있다. 여야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내편하고만 손 잡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나치와 싸웠던 독일 사민당의 브란트는 나치 선전부 간부 출신인 기민당 키징어와 손잡고 최초로 대연정에 참여했다. 브란트는 키징어 총리 내각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됐다. 공산주의자였던 베너는 전독일부 장관, 나치 장교였던 슈트라우스는 재무장관이었다. 브란트는 나치 출신을 인사과 책임자로 기용해 큰 도움을 받았다. 작가 귄터 그라스는 브란트에게 편지를 보내 “나쁜 결혼”이라고 비난했지만 ‘화해의 연방정부’는 성공적이었다. “서독만이 독일을 대표하며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포용하는 브란트의 파격적 동방정책은 키징어가 수용했기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김황식)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전범(戰犯) 국가 독일은 분단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통일됐다. 지도자들의 타협과 성숙한 합의로 만들어낸 현대사의 기적이다. 키징어·브란트·슈미트·콜 총리를 거치는 동안 보수·진보 정권 모두 일관되게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은 피식민지 국가였지만 78년째 분단돼 준전시 상태로 남아 있다. 억울해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합의 능력을 잃은 정치 때문에 항일무장운동의 역사가 모욕당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달성하려면 우리도 여야와 보수·진보가 타협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유기체는 부드럽다. 뻣뻣한 것은 죽은 것이다. 자유·민주·번영, 그 무엇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없다. 정치는 전쟁터의 총검(銃劍)이 아니다. 상대의 모순까지도 포용해 차선의 합의를 이뤄내는 전환의 상호 고백이고 고해성사다. 반공의 상징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해 농지개혁을 성공시키지 않았는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이 지독한 경직(硬直)의 저주에서 풀려날 때 우리는 모두 살 수 있다.     글=이하경 대기자 그림=임근홍 인턴기자    

    2023.09.05 23:00

  • [이하경 칼럼] 합의가 사라진 정치, 모욕받는 역사

    이하경 대기자 한국 정치는 상대를 부정하는 협량(狹量)에 갇혀 있다. 범부(凡夫)의 상식에 부합하는 최소합의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육사에 있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흉상이 외부로 이전한다. 이번에도 여야 합의는 없었다.     ■  「 홍범도 공산당 입당 시비 건다면 루스벨트·처칠, 소련 협력도 문제 문재인 정부 일방 결정이 출발점 경직의 저주에서 풀려나야 산다 」    국방부는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자유시 참변 때의 독립군 탄압 역할을 이전 이유로 들었다. 북한 김일성이 등장하지 않았던 한 세기 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1922년부터는 소련)는 식민지 약소국의 독립을 지원했다. 한인 항일무장운동 그룹은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는 러시아와 자연스럽게 협력했다. 퇴역 후 고령이 되어 연금을 받기 위해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홍범도 장군을 시비 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손잡고 나치 독일과 싸운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총리도 “조국을 배신한 공산주의자”로 매도해야 할 판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이 희생당하자 솔밭에서 땅을 치고 울었다는 기록이 제시됐다. 독립군 탄압은 사실이 아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홍 장군에게 훈장을 추서했고, 노태우 정부는 유해 송환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고 명명했다. 모두 보수정부가 한 일이다.   이번 소동에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있다. 홍 장군 유해는 강제 이주됐던 카자흐스탄에서 2017년에 돌아왔다. 문 정부는 그를 포함한 다섯 분의 독립군 운동가 흉상을 만들어 육사 충무관으로 모셨다. 이들은 ‘군(軍)의 기원’이 됐다. “독립군 전통도 사관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른 일이었다. 육사 필수과목인 한국전쟁사는 선택과목으로 격하됐다. 민족, 항일투쟁을 강조하면서 국가와 안보의 측면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야당 의견은 전혀 듣지 않았다.   우리는 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졌기 때문에 벌어진 희비극(喜悲劇)을 목도하고 있다. 숙고하고 상의했다면 이런 양 극단의 결정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여야 갈등은 내전(內戰)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신(新)삼각공조를 이끌어냈다. 최악의 한·일 관계를 과감하게 복원시켜 거둔 윤석열식 외교의 성과다. 중국과 러시아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초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닥치고 반대’ 모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배출을 “핵 오염수 배출”로 규정했고, “윤석열 심판”을 외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과 장관들에게 “싸워라”고 독려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국민항쟁’이라고 했지만 실은 방탄용이다. 200여 건의 민생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정기국회는 암초에 걸려 있다. 여야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내편하고만 손 잡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나치와 싸웠던 독일 사민당의 브란트는 나치 선전부 간부 출신인 기민당 키징어와 손잡고 최초로 대연정에 참여했다. 브란트는 키징어 총리 내각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됐다. 공산주의자였던 베너는 전독일부 장관, 나치 장교였던 슈트라우스는 재무장관이었다. 브란트는 나치 출신을 인사과 책임자로 기용해 큰 도움을 받았다. 작가 귄터 그라스는 브란트에게 편지를 보내 “나쁜 결혼”이라고 비난했지만 ‘화해의 연방정부’는 성공적이었다. “서독만이 독일을 대표하며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포용하는 브란트의 파격적 동방정책은 키징어가 수용했기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김황식)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전범(戰犯) 국가 독일은 분단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통일됐다. 지도자들의 타협과 성숙한 합의로 만들어낸 현대사의 기적이다. 키징어·브란트·슈미트·콜 총리를 거치는 동안 보수·진보 정권 모두 일관되게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은 피식민지 국가였지만 78년째 분단돼 준전시 상태로 남아 있다. 억울해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합의 능력을 잃은 정치 때문에 항일무장운동의 역사가 모욕당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달성하려면 우리도 여야와 보수·진보가 타협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유기체는 부드럽다. 뻣뻣한 것은 죽은 것이다. 자유·민주·번영, 그 무엇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없다. 정치는 전쟁터의 총검(銃劍)이 아니다. 상대의 모순까지도 포용해 차선의 합의를 이뤄내는 전환의 상호 고백이고 고해성사다. 반공의 상징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해 농지개혁을 성공시키지 않았는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이 지독한 경직(硬直)의 저주에서 풀려날 때 우리는 모두 살 수 있다. 이하경 대기자

    2023.09.04 00:46

  • [이하경 칼럼] 타락한 지방자치, 최악의 잼버리

    이하경 대기자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최악의 평가를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실한 화장실 관리다. 1979년 여름의 논산훈련소 시절이 떠오른다. 부대는 훈련병들의 대변기 사용을 금지했다. 관리하기 귀찮아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변비로 고생했다. 검열을 의식해서 편지에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적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  「 지방권력 몰염치, 중앙정부 무능 일류국가 코리아 이미지 추락 감사·수사·국정조사 뭐든 다 해야 ‘내 탓이오’ 윤리적 결단이 먼저 」    40여 년이 흘렀다. 한국은 민주화됐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 세계인의 축제에서 화장실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158개국에서 온 4만3000명이 지내는데 화장실은 354개뿐이었다. 121.5명당 한 개꼴이었다. 변기가 막혀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한 사람이 2곳을 관리해야 정상인데 10곳을 담당하다 보니 벌어진 소동이다. 샤워장과 급수장도 턱없이 모자랐다. 한덕수 총리가 솔선해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사태는 겨우 진정됐다. 1171억원의 혈세를 도대체 어디에 뿌린 것일까.   잼버리 참가자들은 돈 없고 ‘빽’ 없는 훈련병이 아니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청소년들이다. 불결한 화장실과 샤워실, 배수가 안 되고 벌레가 들끓는 진흙탕, 1000명이 넘는 온열환자, 바가지 물가에 분노했다. 그래서 ‘난민 캠프’의 실상을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그리고 한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일류국가 코리아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K팝 공연이 위로가 됐을 뿐이다.   이 마당에 전·현 정권이 패를 갈라 남 탓만 할 일이 아니다. 감사든, 수사든, 국정조사든 모조리 해야 한다. 6년의 준비기간 동안 있었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성역 없는 징비(懲毖)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정치인이 잼버리 대회를 유치해 지지부진한 새만금의 인프라 개발 속도를 높이려는 한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행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생각도 없이 2조원이 넘는 예산만 노렸다면 토건세력과 결탁한 고의범으로 정죄(定罪)해야 한다.   2015년 일본 잼버리도 간척지에서 열렸다. 하지만 50년 전 간척이 끝난 장소를 선정했다. 새만금의 3분의 1에 불과한 예산으로 대회를 성공시켰다. 반면에 새만금 잼버리는 해수가 유통되는 267만 평의 해창 갯벌을 대회 장소로 정했다. 관광레저사업임에도 농지관리기금 1845억원을 받아내려고 농업용지로 매립했다. 그러니 물이 안 빠지고 염분이 남아 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 지방정부가 “잼버리 영지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필요한 면적의 두 배가 넘는 갯벌을 매립하느라 정작 대회 준비에 투입할 시간을 허비했다. 경험 많은 농어촌공사가 아니라 지역 토건업자에게 기반공사를 맡긴 것도 부실한 준비의 원인이 됐다.   지방권력은 “잼버리 행사를 위해 국제공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용(8000억원) 대비 예상 편익은 형편없었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그런데 이 비행장은 아직 착공도 하지 않았다. 개항 목표연도는 6년 뒤인 2029년이다. 애초에 잼버리와는 무관했다는 뜻이다. 수상한 흔적은 끝도 없다.   중앙정부의 책임도 무겁다. 5인 공동조직위원장 중 세 사람이 현직 장관이지만 컨트롤 타워는 없었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놓았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주일 미국대사를 지낸 역사학자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직후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만나 “우선이 지자제 실시입니다. 민주화는 지자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라고 했다(『김대중 자서전』). 이 나라의 지방자치제는 이승만이 탄생시켰고, 박정희가 살해했다. 김대중은 의정활동을 시작한 1963년부터 지자제 실시를 줄기차게 촉구했다. 1990년에는 13일간 단식 투쟁까지 했다. 그 결과 1991년 부활됐다. 그러나 김대중은 1998년 대통령이 된 뒤에는 타락한 지방자치에 실망했다. 청와대 참모를 통해 “토호와 결탁한 지방자치를 비판해 달라”는 뜻을 필자에게 전달했다. 지금의 지방권력은 그때보다 세고 몰염치하다.   “스핑크스가 묻는다. 아침에는 전(前)근대이고 오후에는 근대이며 저녁에는 탈(脫)근대인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한국이다. (중략) 이렇게 세 겹의 시간대가 착종(錯綜)돼 있는 곳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괴물이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바로 우리의 실존적 상황이다. 아주 멀리 벗어난 줄 알았는데, 어느새 물샐틈없는 전근대의 구조에 포획된 무력한 존재다. 하나가 해결되면 두 개, 세 개의 문제가 앞을 가로막는다. “장벽이 무너지자 모든 것이 장벽이었다”는 이문재 시인의 은유가 가슴을 친다.   타락한 지방자치에는 수술이 필요하다. 먼저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공동체의 윤리적 결단과 고해성사가 있어야 한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아포리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하경 대기자

    2023.08.14 00:58

  • [이하경 칼럼] ‘체호프의 총’은 불발로 끝나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중국의 초고속 부상(浮上)으로 거인(巨人) 미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전체주의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디커플링’(탈동조화) 전략은 같은 자유주의 진영인 유럽연합(EU)의 거부 때문에 ‘디리스킹’(위험제거)으로 완화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서로 뗄 수 없는 샴쌍둥이처럼 얽혀 있다”며 “테슬라는 디커플링에 반대한다”고 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도 대중국 수출통제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공화당 원로인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미국과 서구의 문명이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 의해 압도되고 지배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했다(『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     ■  「 중국 초고속 비상에 미국도 고심 북한 미사일 시위 속 미묘한 상황 국방부 전쟁, 통일부 대화 대비를 여야, 보수·진보 ‘최소 합의’ 절실 」    북한 문제도 복잡하다. 핵을 손에 쥐었지만 오랜 제재로 경제난과 식량난이 동시에 깊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올 들어 16번이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북 간에 일체의 대화 채널이 사라진지 오래고, 위험한 상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그제 “한반도는 수일 내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동시에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김여정은 “확장억제 체제를 강화할수록 우리를 회담 탁(테이블)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이라고 했다. 이 시점에 ‘회담’이라는 단어를 꺼낸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월북한 주한 미군병사 송환을 위한 교섭이 북미 대화의 단초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조속히 정상회담을 갖겠다”고 밝히자 북은 외무성 부상 담화를 통해 호응했다.   우리는 갈등하는 북한의 의도와 수순을 정확히 읽고 대비하고 있는가.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김정은 정권 타도”를 주장해 온 학자다. 대화보다는 대북 압박에 힘을 싣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 문제가 없을까.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보고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국방부의 일이다. 외교부는 북한을 외국의 일원으로 상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통일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엄혹한 대결 상황 속에서도 실낱같은 대화의 가능성, 그 미세한 신호를 제때 포착하는 것이다. 북한이 실존적 위협이지만 숙명적으로 대화해야 하는 모순적 현실이 남북기본합의서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에 반영돼 있다. 이걸 외면하면 대화 국면에서 한국만 소외된다. ‘적과 동지’라는 카를 슈미트의 단선적 프레임은 낡았다.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면서도 어느새 ‘샴쌍둥이’가 돼버린 이 시대와 불화를 일으킬 것이다.   체제가 다른 중국과 북한을 다룰 때는 열 배 더 고심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지만 중국과도 잘 지낸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막후에서 중재했다. 고(故) 리콴유 전 총리는 심지어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의 멘토 역할까지 했다. 싱가포르는 체제가 다른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했기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는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지난 70년 동안 ‘체호프의 법칙’을 깼다고 생각한다. “왕과 황제들은 새로운 무기를 획득하면 곧바로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1945년 이래 인류는 그런 유혹에 저항하는 법을 배웠다. 냉전의 1막에 등장한 총은 결코 발사되지 않았다.”(『호모데우스』)   문제는 한반도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막 끝낸 미국과 중국이 다시 총을 들고 싸우게 만든 사나운 지정학의 공간이다. 그러고도 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70년째 휴전 상태다. 만일 두 강대국이 다시 전쟁을 한다면 한반도는 대만과 함께 가장 유력한 전장(戰場)이 될 것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이 ‘미니 제3차 세계대전’이었다면 이번에는 핵무기가 날아다니는 진짜 3차대전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도 변수다. “잘사는 한국을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그가 백악관을 다시 차지하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것이다. 핵도, 미군도 없는 한국이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대적할 수 있을까. 미국은 북한과 협상하면서 과연 한국의 이익을 지켜줄 것인가. 전쟁에서 이겨 나라를 지켜야 하지만 전쟁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화의 가능성을 한 뼘이라도 확장하려면 대화하는 통일부, 협상하는 외교부가 필요하다.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가 꿰뚫어본 대로 만물(萬物)은 유전(流轉)하고, 우리는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미국도, 중국도, 북한도, 한국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지금처럼 내전(內戰) 수준의 의견대립이 계속된다면 시대의 격랑과 외환(外患)을 감당하기 어렵다. 생존을 위해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최소 합의’가 절실하다. ‘체호프의 총’은 불발로 끝나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07.24 01:00

  • [이하경 칼럼] 수능 ‘킬러 문항’ 소동에서 이승만을 생각한다

    이하경 대기자 대학입시 얘기가 나오면 죄인의 심정이 된다. 10여 년 전 둘째가 수능에서 8과목  8색(色) ‘킬러 문항’과 씨름해 원하는 대학의 2배수 합격자로 선발됐다. 논술고사 날 동행했다. 대학 캠퍼스를 한바퀴 도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는데, 아뿔싸! 엉뚱한 곳에 내리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아들은 30분 지각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입실허가는 받았지만 최악의 조건에서 황당한 ‘킬러 문제’들을 만나 악전고투했다. 부자(父子)는 아주 오랫동안 악몽을 꾸었다.   요즘도 ‘킬러(초고난도) 문항’이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괴물”(이주호 교육부총리의 표현)에 선전포고하면서 용감하게 수능 개혁에 나섰다. ‘사교육 카르텔’과 ‘일타강사’를 겨냥했다. “제발 틀려다오”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최대한 꼬아 만든 ‘킬러 문항’은 어떻게든 서열을 정하기 위한 꼼수 억지 문제다. 해당 분야 교수들도 고개를 설레설레하니 수험생들의 고통은 어떨까.     ■  「 ‘킬러’ 전멸해도 사교육 여전할 것 수능 수술…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챗GPT 시대 세상 바꿀 창의 절실 이승만 ‘교육 선견지명’ 숙고하길 」    윤 대통령은 킬러 문항 출제가 “약자인 아이들 데리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대통령발 ‘공정 입시’의 명분은 연간 26조원으로 치솟은 사교육비 경감이다. 국세청은 대형 입시학원의 장부를 뒤지고 있다. 11월 수능에서는 ‘킬러 문항’이 전멸할 것이다. 수험생들은 환호작약(歡呼雀躍)할 것인가.   그러나 악명 높은 이 나라의 입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차하면 역풍으로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 정유라 이화여대 입시비리가 박근혜 몰락의 결정타였다. 문재인 정권이 추락한 것도 조국 자녀의 입시비리 때문이었다. 두렵다면 수험생 엄마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강력한 모성(母性)으로 무장한 엄마는 어설픈 아버지와는 차원이 다른 입시 도사(道士)다. 사소한 변화도 예민하게 포착해 기민하게 반응한다.   엄마들은 수능에 메스를 들이댄 윤 대통령의 의도에는 백퍼센트 공감한다. 그러나 시기에는 불만이다. 수능을 몇 년간 뼈빠지게 준비해 왔는데 불과 5개월 앞두고 출제기준이 급변침하면서 입시전략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34조5항도 수능 전형의 기본방향과 출제형식은 4년 전에 예고하도록 하고 있다. ‘킬러 문항’ 시비로 사망선고를 받은 6월 모의평가 결과는 이제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이걸 기준으로 수시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멘붕 상태다.   대통령은 6월 모평 국어에 ‘킬러 문항’이 있다고 분노했다. 그런데 교육부가 공개한 국어 ‘킬러 문항’ 2개의 정답률은 36%를 넘었다. 만점자도 1492명으로 전년 수능 371명의 4배나 됐다. 수능 커뮤니티에는 “읽으면 다 풀 수 있는 문제던데, 왜 대통령이 난이도를 운운하지”라는 글이 올라왔다. ‘킬러 문항’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불안한 학부모들은 ‘공정 수능’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성기선 전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정밀하고 전문적인 수능 출제 시스템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정치적 입김을 타면 붕괴될 수 있다. 올해 수능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교육당국이 큰소리친 대로 사교육비가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어떻게든 40만 수험생을 한 줄로 세워야 하기 때문에 다수의 ‘준 킬러 문항’ 출현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불안해진 수험생은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 ‘물수능’ 때에도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렇다면 ‘킬러 문항’과의 전쟁은 명분도, 실익도 없고 불확실성과 혼란만 초래한 것이 아닌가.   지금은 대통령이 ‘킬러 문항’과 씨름할 때가 아니다. 대입 차원을 넘어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시기다. 어떤 난제에도 척척 대답하는 챗GPT가 널려 있는 인공지능(AI) 시대가 아닌가.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숙련공은 필요 없다. 세상을 바꾸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인재가 환영받는다. 수능 5지선다형으로 ‘한 줄 세우기’는 시대의 메가트렌드와 불화한지 오래됐다. 퇴행적 수능을 폐지하거나 자격고사로 활용하고, 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사교육 기세에 눌린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실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사회, 불평등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혁파하는 사회개혁이 나와야 한다. 경쟁·성공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관용·연대·평등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킬러 문항’ 소동이 이런 필요성을 환기시켰다면 윤 대통령은 성공한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원조로 입에 풀칠하던 시절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시작했다. 임기 내에는 성과를 누릴 수 없는 정책이었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전쟁 중에도 ‘특별요강’을 발표해 피난지에서 학교를 열었다. 남녀와 계층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교육으로 민주주의와 고도성장이라는 문명국가의 초석을 깔았다. 백년 뒤를 내다본 거인(巨人)의 탁월한 안목이었다. 윤 대통령도 ‘킬러 문항’을 넘어서 교육을 통한 국가 백년대계를 선도하기 바란다. 이하경 대기자

    2023.07.03 00:53

  • [이하경 칼럼] 뿌리치는 미국을 최고의 동맹으로 만든 이승만

    이하경 대기자 6·25전쟁 하루 전 군 수뇌부는 육군회관 낙성식에 참석했고, 만취했다. 육군참모총장은 숙취 상태에서 전쟁 발발을 보고받았다. 육사 8기 단체 회고록은 “각 분야별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던 전투력 약화 작업은 북한의 남침 직전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예비역 대장 이형근은 “육군 지휘부에 적과 내통한 인사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침(새벽 4시)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6시간30분이나 지난 오전 10시30분쯤이었다. 일요일이었는데 국방장관이 주말휴가 중이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대사는 “서울을 떠나면 한국인의 사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면서 ‘사수(死守)’를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서울에서 시가전을 펴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사수’를 결의했던 한국군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를 결정했다. 주객이 전도됐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승만의 삶과 국가』 오인환)     ■  「 6·25 때 군 수뇌부 총체적 무책임 이승만 홀로 위기대처 능력 발휘 대책 없는 휴전 반대 월남화 막아 강대국에 할 말 해야 생존한다 」    망국으로 향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이승만이 완벽한 위기대처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는 26일 새벽 3시 도쿄의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화해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라고 호통쳤다. 장면 주미 한국대사에게 “적이 문앞에 와 있다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하시오”라고 했다. 남침을 워싱턴과 유엔의 긴급 현안으로 부각시켰고, 미 의회 의결도 없이 조기 참전을 이끌어냈다. 군 수뇌부의 강권으로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서울을 탈출했고,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 과오를 제외하면 초인적 전시(戰時) 대통령이었다.   이승만은 전선을 누비면서 “우리가 계속 밀고 쳐 올라가야 우방의 원조도 꾸준히 들어올 것이고, 적군을 물리치고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호소했다. “맨손으로 싸우는 한국 장병에게 무기를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외신기자와 인터뷰했고, 외교 문서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직접 작성하는 1인 외교를 펼쳤다. 독립운동가로 쌓아 온 40여 년의 대미 외교 경험과 고급영어 구사 능력, 애국심과 두둑한 배짱이 무기였다. 유사시 부부가 자결(自決)하기 위해 권총을 침실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쉴 새 없이 항전 의지를 알렸다(『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기파랑). 우크라이나의 영웅 젤렌스키 부부의 역사적 롤 모델이다.   ‘미국의 시저’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이 ‘크리스마스 공세’(11월 24일~12월 3일)에 나섰지만 잠복해 있던 중공군에게 대패했다. “한국에서 중공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철수를 논의했다. 군 수뇌부는 “중국의 의도가 유엔군을 한국에서 몰아내는 것이 명백하다면 빠른 시일 안에 철수시키자”고 했다. 애치슨 국무장관은 “한국인들이 살육당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트루먼 대통령도 애치슨의 의견에 찬성했다. 서울에선 “미국이 한국을 팔아넘기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때 이승만은 “경무대에서 죽기로 결심했다”고 정치고문인 올리버 박사에게 밝혔다.   트루먼 행정부는 1951년 초 휴전 방침을 정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정규군을 20만 명 늘리고 연간 9억 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통일 한국을 보장하지 않으면 휴전은 수용할 수 없다. 필요하다면 한국군 단독으로 북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흘치 공격용 탄약밖에 없으면서도 소련·중공과의 제3차 세계대전을 피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승만은 1953년 6월 17일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에 잠정 합의하자 다음 날 2만70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했다. “한국전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친구가 적으로 변했다”며 격분했다. 이승만 제거 작전을 검토했으나 의회가 ‘반공투사 이승만’ 축출에 반대하자 물러섰다. 결국 로버트슨을 특사로 보냈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2억 달러 원조, 한국군 20개 사단으로 강화 등 이승만의 요구를 수용했다. 대신 이승만은 휴전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네 차례나 이승만 제거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다면 한국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의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1973년 휴전협정을 맺고 2년 뒤 패망한 월남의 운명이 되지 않았을까.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미워했지만 역량은 높이 평가했다. 프랑스인에게 “월남에 필요한 인물은 또 한 사람의 이승만”이라고 극찬했다.   이승만은 ‘전략적 가치가 없는 한국’을 손절하려던 ‘배신자’ 미국과 싸워 최고의 동맹관계를 맺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제2의 이승만’이 나올 수 있을까. 70년 전의 거인은 “강대국에도 할 말을 하는 용기, 동맹과 우방의 신뢰를 받는 외교 원칙으로 무장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서로 “내게 베팅하라”고 우리를 압박한다. 이 위험천만한 혼돈의 계절에 여전히 지구상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을 안고 있는 한국의 생존에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이하경 대기자

    2023.06.12 00:58

  • [세컷칼럼] 문명국 일본이 벗어나야 할 ‘피해자 의식’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에 통 크게 양보한 뒤 기시다 일본 총리도 전향적 자세로 나오고 있다. G7 개최지 히로시마에서 한·일 정상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처음으로 함께 참배했다. 큰 위로가 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원폭 가해국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사과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의 가해자인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피해자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전후 일본의 ‘피해자 의식’은 사죄와 반성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묘한 심리 구조를 만든 것은 전승국 미국이었다. 히로히토 천황을 퇴위시키면 일본 사회가 붕괴할 것으로 판단했고, 면죄부를 발급했다.   ■  「 미국이 도조 회유해 천황 면죄부 일, 자기 연민·과거사 외면 출발점 일본도 윤석열식 결단 내놓을 때 평화·경제공동체 함께 선도하길 」   도쿄 전범재판은 나치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딴판이었다. 『패배를 껴안고(Embracing Defeat)』의 저자인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는 “‘승자의 증거’를 조작해서 패전국의 수장을 구제해 주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A급 전범’들은 똘똘 뭉쳐 천황을 보호했지만 딱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 총리로서 전시내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가 “천황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수석검사 조셉 키넌은 천황 보좌전담 기관을 통해 증언을 철회하라고 회유했고, 도조는 수용했다. 맥아더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역사왜곡이었다. 책임자인 천황이 책임지지 않으니 국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인류 최초의 핵폭탄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겹쳐졌다.    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든 일본은 자기 연민의 알리바이를 발견했다. 끔찍한 피해를 입혀놓고 성찰도 없었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직 점령국 미국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질주했다. 무라야마, 오부치, 간 총리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사죄가 있었지만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빛이 바랬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문명국인 일본이 아시아 통합의 걸림돌이 된 이유다.    ‘피해자 의식’을 이겨낸 거인(巨人)들도 있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보수였지만 1984년 공산 중국을 방문해 수백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그 돈으로 베이징과 상하이에 공항과 지하철이 들어섰다. 그는 “전쟁 때 고난을 일으킨 것에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 원조 액수를 늘리자”고 깐깐한 관료들을 설득했다. 자오쯔양에게 “중국은 북한에게, 일본은 남한에게 밀서를 받아 남북 대화를 중재하자”고 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983년 한국을 방문할 때는 외무성 관료의 자문도 받지 않았다.    아키히토 전 천황도 “체포돼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파의 반대를 물리치고 1992년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한 것”을 시인하고 “이로 인한 슬픔을 통감한다”고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2년 평양을 방문해 식민통치에 사과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방북을 마쳤을 때 외무성 심의관 집에 ‘반역자’라는 메모와 함께 폭발물이 설치됐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결단했지만 “일본의 식민 침략에 대한 면죄부”라는 한국 내 비판은 여전하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10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던 중국의 대처 방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중국은 자기들이 참전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도 무역을 재개하자고 ‘미국의 병참기지’인 일본을 졸랐다. 이듬해 무역협정이 체결됐다.    중국 전문가 사이먼 리스는 총리로서 중국 외교를 지휘한 저우언라이에 대해 “실용주의자 앞에서는 실용주의자, 철학자 앞에서는 철학자, 키신저를 만나면 키신저가 되었다”며 “카멜레온”이라고 했다. 1961년 일본 사회당 대표를 마주한 마오쩌둥은 “중국을 침략해 고맙다”고 했다. 일본군이 촉발한 혼란 덕분에 공산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추상적 이념과 감정보다는 현실적 국익과 전략을 중시해야 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한·일은) 같은 피를 나누었고, 성장기를 함께 보낸 일란성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고 했다. 웃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를 깨야 한다. “과거에 머무른 자는 한 눈을 잃고, 과거를 잊은 자는 두 눈을 잃게 될 것”이라는 러시아 격언이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2025년을 목표로 양국은 역사 화해 프로세스에 돌입해야 한다.    두 나라가 앞장서고 중국과 손잡으면 아시아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문명의 힘이 발휘될 것이다. 유럽이 부러워할 아시아 평화·경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과의 건강한 동맹관계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일본도 윤석열식 결단을 내놓을 때다. 과거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윤석열-기시다 선언을 기대한다.       글=이하경 대기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5.23 23:00

  • [이하경 칼럼] 문명국 일본이 벗어나야 할 ‘피해자 의식’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에 통 크게 양보한 뒤 기시다 일본 총리도 전향적 자세로 나오고 있다. G7 개최지 히로시마에서 한·일 정상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처음으로 함께 참배했다. 큰 위로가 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원폭 가해국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사과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의 가해자인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피해자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전후 일본의 ‘피해자 의식’은 사죄와 반성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묘한 심리 구조를 만든 것은 전승국 미국이었다. 히로히토 천황을 퇴위시키면 일본 사회가 붕괴할 것으로 판단했고, 면죄부를 발급했다.     ■  「 미국이 도조 회유해 천황 면죄부 일, 자기 연민·과거사 외면 출발점 일본도 윤석열식 결단 내놓을 때 평화·경제공동체 함께 선도하길 」    도쿄 전범재판은 나치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딴판이었다. 『패배를 껴안고(Embracing Defeat)』의 저자인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는 “‘승자의 증거’를 조작해서 패전국의 수장을 구제해 주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A급 전범’들은 똘똘 뭉쳐 천황을 보호했지만 딱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 총리로서 전시내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가 “천황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수석검사 조셉 키넌은 천황 보좌전담 기관을 통해 증언을 철회하라고 회유했고, 도조는 수용했다. 맥아더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역사왜곡이었다. 책임자인 천황이 책임지지 않으니 국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인류 최초의 핵폭탄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겹쳐졌다.   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든 일본은 자기 연민의 알리바이를 발견했다. 끔찍한 피해를 입혀놓고 성찰도 없었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직 점령국 미국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질주했다. 무라야마, 오부치, 간 총리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사죄가 있었지만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빛이 바랬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문명국인 일본이 아시아 통합의 걸림돌이 된 이유다.   ‘피해자 의식’을 이겨낸 거인(巨人)들도 있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보수였지만 1984년 공산 중국을 방문해 수백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그 돈으로 베이징과 상하이에 공항과 지하철이 들어섰다. 그는 “전쟁 때 고난을 일으킨 것에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 원조 액수를 늘리자”고 깐깐한 관료들을 설득했다. 자오쯔양에게 “중국은 북한에게, 일본은 남한에게 밀서를 받아 남북 대화를 중재하자”고 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983년 한국을 방문할 때는 외무성 관료의 자문도 받지 않았다.   아키히토 전 천황도 “체포돼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우파의 반대를 물리치고 1992년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한 것”을 시인하고 “이로 인한 슬픔을 통감한다”고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2년 평양을 방문해 식민통치에 사과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방북을 마쳤을 때 외무성 심의관 집에 ‘반역자’라는 메모와 함께 폭발물이 설치됐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결단했지만 “일본의 식민 침략에 대한 면죄부”라는 한국 내 비판은 여전하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10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던 중국의 대처 방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중국은 자기들이 참전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도 무역을 재개하자고 ‘미국의 병참기지’인 일본을 졸랐다. 이듬해 무역협정이 체결됐다.   중국 전문가 사이먼 리스는 총리로서 중국 외교를 지휘한 저우언라이에 대해 “실용주의자 앞에서는 실용주의자, 철학자 앞에서는 철학자, 키신저를 만나면 키신저가 되었다”며 “카멜레온”이라고 했다. 1961년 일본 사회당 대표를 마주한 마오쩌둥은 “중국을 침략해 고맙다”고 했다. 일본군이 촉발한 혼란 덕분에 공산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추상적 이념과 감정보다는 현실적 국익과 전략을 중시해야 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한·일은) 같은 피를 나누었고, 성장기를 함께 보낸 일란성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고 했다. 웃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를 깨야 한다. “과거에 머무른 자는 한 눈을 잃고, 과거를 잊은 자는 두 눈을 잃게 될 것”이라는 러시아 격언이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2025년을 목표로 양국은 역사 화해 프로세스에 돌입해야 한다.   두 나라가 앞장서고 중국과 손잡으면 아시아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문명의 힘이 발휘될 것이다. 유럽이 부러워할 아시아 평화·경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과의 건강한 동맹관계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 일본도 윤석열식 결단을 내놓을 때다. 과거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윤석열-기시다 선언을 기대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05.22 00:58

  • [이하경 칼럼] 윤석열 외교, 내부 설득 실패하면 물거품 된다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 미국 의회 연설은 성공작이었다. 500여 명의 상·하원 의원은 글로벌 경제의 강자인 삼성전자·현대차·SK 총수와 함께 미국 땅을 밟은 한국의 지도자를 향해 43분 동안 23번 기립박수를 쳤다. 윤 대통령은 “내 이름은 몰라도 BTS와 블랙핑크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아이스브레이킹’ 농담으로 분위기를 장악했다. 최빈국 대한민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최강국 미국을 압박해서 쟁취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의 백미(白眉)였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한·미 동맹을 더 강화하는 역사적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  「 미국의 마음을 얻은 미 의회 연설 미국, IRA·반도체 후속조치 필요 일본, 진정성 있는 사과 표명해야 통합적 국정운영, 외교 성공 열쇠 」    미국은 한국 대통령이 정성을 쏟을 만한 특별한 나라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고 즉시로 참전을 결정했다. 맥아더 사령관이 6월29일 도쿄 극동군사령부에서 전용기로 수원에 도착했다. 한국군 일등중사를 만났다. 참호에 서서 적을 노려보는 그는 무기가 없었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이곳을 지키겠다”고 했다. 맥아더는 감동했다. 선발대로 1개 연대를 급파했고, 합참에 요청해 지상군 2개 사단을 즉각 파병했다.(『6·25전쟁과 미국』 남시욱)   1950년 12월 중공의 참전으로 전황이 불리해졌을 때 영국의 애틀리 총리가 “한국에서 손 떼고 유럽 방위에 힘써 달라”고 했지만 트루먼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장진호 전투는 30만 중공군의 기습 인해전술, 영하 40도의 강추위에 맞선 지옥의 전장(戰場)이었다. 이때 부상당해 후송된 미군 병사들은 “다시 싸우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미국은 눈물겨운 혈맹(血盟)이었다.   윤 대통령의 5박 7일 국빈방문은 전 정권 때 흔들렸던 양국의 신뢰를 복원했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한국과 확장억제를 논의하기 위한  상설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했다.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배치를 요구해온 그룹은 불만이겠지만 북핵 위협에 빈틈없이 대비하려는 2인3각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이젠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대미 외교의 성과를 국민이 체감하고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과 긴밀해져야 한다. 야당은 애초에 ‘반대하는 당(opposition party)’으로 설계된 존재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의 불완전함을 메꿔줄 것이다. 야당을 기피하면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압도적 과반수 의석으로 입법권을 쥔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외교 성과는 물거품이 된다.   윤 대통령은 일본·미국 정상과 만난 뒤 “굴욕외교” “최악의 빈손 회담”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통 크게 내준 것에 비해 받아낸 것이 빈약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에 화끈하게 투자하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 기업에 타격을 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은 고치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국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핵심 동맹국에 피해를 주려는 게 아닌가”라고 물었을까. 성의 있는 후속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7일 답방한다. 윤 대통령은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일본 전범기업에 물리지 않는 제3자 대위변제를 결단했다. 기시다 총리도 “통절한 사과와 반성” 정도의 표현으로 호응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백 년 전 일로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할 수 없다”고 해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럴 때 기시다 총리가 “백 번, 천 번이라도 무릎 끓을 용의가 있다”고 하면 어떨까.   지금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몸을 던지고 있는 윤 대통령을 각별히 배려해야 할 때다. 나치와 싸웠던 브란트 독일 총리는 나치 만행에 사죄하는 의미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 끓었다. 독일은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지만 끝없는 사과로 세계의 신뢰를 얻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통일을 성취했고, 유럽의 리더가 됐다. 일본이 가야 할 길이다.   외교의 출발점도, 종착지도 내정(內政)이다. 국민 지지 없는 외교는 모래성이다. 내부 설득을 위한 통합적 국정운영은 필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보였지만 집권 후 첫 통일부 장관에 강경보수인 강인덕을 임명해 보수를 안심시켰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멤버는 수석만 임동원으로 교체했을 뿐 전 정권 때 임명된 비서관·행정관 전원을 유임시켰다. 서독의 겐셔 외교부 장관은 제3당인 자민당 소속이었다. 그런데도 정파를 초월해 사민당·기민당 정권에서 18년간 재임했고, 독일 통일의 산파역이 됐다. 파격(破格)의 지도자인 윤 대통령이 숙고하기 바란다.   윤 대통령의 귓전에는 미 의회의 뜨거운 환호성이 맴돌 것이다. 아쉽겠지만 당분간 잊어야 한다. 싸늘한 반대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자기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외교는 뿌리 없는 나무다. 내부 설득에 실패한 외교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하경 대기자

    2023.05.01 00:58

  • [세컷칼럼] 이방인 대통령은 시대착오적 게토를 부숴야 한다

    거인(巨人)의 생애를 당대의 안목으로 재단(裁斷)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부박한 포퓰리즘을 넘어선 용기와 성취를 놓치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독재자 물러나라”고 외치다 옥고(獄苦)까지 치른 4·19 혁명 주역들이 우남(雩南)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동안 오해가 많았다. 과오도 있었지만 공적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역사적 화해와 재평가에 63년이 걸렸다.    우남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했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다. 소작농을 내땅 가진 자작농으로 만든 농지개혁은 “최초의 경제 민주화 조치”(이장규 전 서강대 부총장)였고, 북한의 남침 때 공산화를 막았다. 기습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승부수로 내켜하지 않는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제2의 6·25’를 막아 경제강국 도약의 초석이 된 ‘신(神)의 한 수’였다. 그를 친미(親美), 친일(親日)로 낙인찍는 것은 무지(無知)와 협량(狹量)의 소치다.   ■  「 ‘도로 영남당’ 극우 목사에 휘둘려 민심 이탈…총선 참패 경고등 켜져 수도권·청년·중도 품는 전환 필수 이승만·이명박 재평가 힘이 될 것 」   우남은 자신의 몰락과 퇴장마저도 연약한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올리는 제의(祭儀)로 승화시켰다. 86세의 노(老)대통령은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했다. 자신을 부정(否定)한 이들이지만 “부정(不正)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며 깨끗하게 하야(下野)했다. 그런 우남과 마주한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는 “각하는 미국의 조지 워싱턴입니다”라고 경의를 표시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이었던 이영일 전 의원은 참배를 마치고 “독재자 프레임을 씌울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수감 중 젊은이들로부터 수천 통의 위로 편지를 받았다. 광주의 고3 학생은 “사과드린다. 광우병 시위에 참가한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쁜 대통령으로 알았는데 업적을 돌아보니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퇴임 후 서울대생의 투표에서 ‘존경하는 대통령’ 1위로 선정됐다.    이승만·이명박을 잇는 보수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을 앞두고 위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동반 추락했다. 민심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민심을 대변하는 안철수·이준석이 밀려났다. 중도와 청년에 강한 인물들이다.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TK, 정책위의장이 PK인 ‘도로 영남당’이 됐다. 수도권·청년·중도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최악의 구도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이 판국에 극우인 전광훈 목사 광풍(狂風)까지 불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총사령관’인 그는 황교안 전 대표와 손잡고 지난 총선을 참패로 이끈 주역이다. 그는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우리가 김 의원 밀었잖아” “김기현 장로도 밀었잖아” “우리가 200석 만들어 주면 뭐 해줄래”라고 묻는다.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돌아왔다.    이 무슨 황당한 거래인가. 전 목사 추종자들이 권리당원으로 가입했고, 당은 3·8 전당대회 전에 ‘여론조사 30%, 당원 투표 70%’였던 경선 룰을  ‘100% 당원 투표’로 바꿨다는 사실을 알면 비로소 이해가 간다. 이러니 민심과 불화하는 시대착오가 일상이 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반대한다”고 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4·3 사건은 김일성 지시”라고 했다. 산불이 났는데 강원지사는 골프 연습을 하고, 충북지사는 술자리에 갔다. 권력에 취해 정신줄을 놓고 있다.    ‘굴러온 돌’ 윤석열 대통령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 정권이 엄두를 못 낸 강제징용 해법을 과감하게 제시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인기 없는 노동·연금·교육개혁에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박힌 돌’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되는 일이 없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지만 재·보궐선거 패배를 막지 못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지도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 황당한 가짜뉴스인 광우병 사태로 지지율이 추락하자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진보 성향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호남 출신의 합리주의자 김황식 전 감사원장을 차례로 총리에 기용했다. 덕분에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지지율 40%’를 돌파했다.    윤 대통령은 편한 자리에서 “서울대 본고사에 아주 어려운 기하 문제가 나왔는데 보조선을 그어 보니 쉽게 풀려서 합격했다”고 했다. 민심과 불화하는 집권세력의 분위기를 통째로 바꾸는 보조선도 그으면 좋을 것이다. 부당하게 폄하됐지만 마침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이승만·이명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힘이 날 것이다. 아직 4년이 남았고,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신세진 것 없는 이방인(異邦人) 대통령 특유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집권세력이 스스로를 감금하는 시대착오적 게토(Ghetto)를 부숴야 한다.       글=이하경 대기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4.11 23:00

  • [이하경 칼럼] 이방인 대통령은 시대착오적 게토를 부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거인(巨人)의 생애를 당대의 안목으로 재단(裁斷)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부박한 포퓰리즘을 넘어선 용기와 성취를 놓치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독재자 물러나라”고 외치다 옥고(獄苦)까지 치른 4·19 혁명 주역들이 우남(雩南)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동안 오해가 많았다. 과오도 있었지만 공적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역사적 화해와 재평가에 63년이 걸렸다.   우남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했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다. 소작농을 내땅 가진 자작농으로 만든 농지개혁은 “최초의 경제 민주화 조치”(이장규 전 서강대 부총장)였고, 북한의 남침 때 공산화를 막았다. 기습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승부수로 내켜하지 않는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제2의 6·25’를 막아 경제강국 도약의 초석이 된 ‘신(神)의 한 수’였다. 그를 친미(親美), 친일(親日)로 낙인찍는 것은 무지(無知)와 협량(狹量)의 소치다.     ■  「 ‘도로 영남당’ 극우 목사에 휘둘려 민심 이탈…총선 참패 경고등 켜져 수도권·청년·중도 품는 전환 필수 이승만·이명박 재평가 힘이 될 것 」    우남은 자신의 몰락과 퇴장마저도 연약한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올리는 제의(祭儀)로 승화시켰다. 86세의 노(老)대통령은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했다. 자신을 부정(否定)한 이들이지만 “부정(不正)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이 나라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며 깨끗하게 하야(下野)했다. 그런 우남과 마주한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는 “각하는 미국의 조지 워싱턴입니다”라고 경의를 표시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이었던 이영일 전 의원은 참배를 마치고 “독재자 프레임을 씌울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수감 중 젊은이들로부터 수천 통의 위로 편지를 받았다. 광주의 고3 학생은 “사과드린다. 광우병 시위에 참가한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쁜 대통령으로 알았는데 업적을 돌아보니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퇴임 후 서울대생의 투표에서 ‘존경하는 대통령’ 1위로 선정됐다.   이승만·이명박을 잇는 보수 지도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을 앞두고 위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동반 추락했다. 민심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민심을 대변하는 안철수·이준석이 밀려났다. 중도와 청년에 강한 인물들이다. 당대표와 정책위의장이 PK, 원내대표가 TK인 '도로 영남당'이 됐다. 수도권·청년·중도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최악의 구도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필패다.   이 판국에 극우인 전광훈 목사 광풍(狂風)까지 불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총사령관’인 그는 황교안 전 대표와 손잡고 지난 총선을 참패로 이끈 주역이다. 그는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우리가 김 의원 밀었잖아” “김기현 장로도 밀었잖아” “우리가 200석 만들어 주면 뭐 해줄래”라고 묻는다.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시키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돌아왔다.   이 무슨 황당한 거래인가. 전 목사 추종자들이 권리당원으로 가입했고, 당은 3·8 전당대회 전에 ‘여론조사 30%, 당원 투표 70%’였던 경선 룰을  ‘100% 당원 투표’로 바꿨다는 사실을 알면 비로소 이해가 간다. 이러니 민심과 불화하는 시대착오가 일상이 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반대한다”고 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4·3 사건은 김일성 지시”라고 했다. 산불이 났는데 강원지사는 골프 연습을 하고, 충북지사는 술자리에 갔다. 권력에 취해 정신줄을 놓고 있다.   ‘굴러온 돌’ 윤석열 대통령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 정권이 엄두를 못 낸 강제징용 해법을 과감하게 제시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인기 없는 노동·연금·교육개혁에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박힌 돌’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되는 일이 없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지만 재·보궐선거 패배를 막지 못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지도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 황당한 가짜뉴스인 광우병 사태로 지지율이 추락하자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진보 성향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호남 출신의 합리주의자 김황식 전 감사원장을 차례로 총리에 기용했다. 덕분에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지지율 40%’를 돌파했다.   윤 대통령은 편한 자리에서 “서울대 본고사에 아주 어려운 기하 문제가 나왔는데 보조선을 그어 보니 쉽게 풀려서 합격했다”고 했다. 민심과 불화하는 집권세력의 분위기를 통째로 바꾸는 보조선도 그으면 좋을 것이다. 부당하게 폄하됐지만 마침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이승만·이명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힘이 날 것이다. 아직 4년이 남았고,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신세진 것 없는 이방인(異邦人) 대통령 특유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집권세력이 스스로를 감금하는 시대착오적 게토(Ghetto)를 부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04.10 01:00

  • [세컷칼럼] 일본의 양심과 지성을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카드를 다 썼다.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한 3자 변제’라는 해법을 서둘러 제시했다. 한·일 관계 최대 장애물의 해결 실마리가 마련됐고, 정상의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해제됐고,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가가 선언됐다.    그런데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직접 사과는 없었다. 피고 기업도 배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선 “완승”이라지만 한국에선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한다. 한국 대통령은 지뢰밭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  「 ‘샌프란시스코 강화’ 참여 좌절 전승국 아닌 옛 일본 식민지 취급 한일협정으로도 다시 상처 받아 윤 대통령 용기에 일본 화답해야 」   일본은 한국인이 왜 분노하는지 알고 있는가. 한국은 카이로선언문에 적힌 대로 ‘노예 상태’로 36년을 지냈다. 그래서 패전국인 일본을 상대로 한 연합국 강화회의 정식 멤버로 참가하려고 했다. 임시정부가 2차대전 이전부터 일본과 전쟁 상태에 있었고, 중국에 일본과 싸운 한국인 사단이 있었으며, 상해 임시정부가 선전포고 한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장면 주미대사는 1951년 1월 26일 미 국무부 장관 고문 덜레스로부터 “한국의 참가를 지지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의 반대로 참가 48개국에서 제외됐다. 부당하고 원통한 일이었다.    일본은 1951년 3월 27일 강화회의 초안을 받자마자 치밀하게 준비해 4월 4일 미국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전쟁 중인 한국에선 문서가 실무자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다.  홍진기 법무부 법무국장은 4월 7일 일본 신문에서 한일관계 조항이 빠져있는 초안을 확인했다. 맥아더 최고사령관만 믿고 소극적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참가 의사와 귀속재산 처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담은 의견서가 5월 초 전달됐지만 일본보다 한 달 늦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강화조약은 한국을 대만과 함께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분류했다. 옛 식민지라는 뜻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고,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으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이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합법’이 돼버린 사실이다. 심각한 상처와 모욕이었다. 사실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던 1942년부터 국무부 극동반을 운영하면서 패전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키는 ‘관대한 평화(soft peace)’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에 부담이 될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여지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 조인 한 달 뒤인 1951년 10월 두 나라는 한일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초기에 일본은 자국민 50만 명이 한국에 두고 간 재산에 관한 권리, 역(逆)청구권을 제기했다. 조선 내 일본 재산은 85%였다. 일본 측의 구보타 전권대표가 “식민지 시절 유익한 일을 했으므로 일본에도 청구권이 있다”고 하자 한국 측 홍진기 대표는 “전통국제법에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권리가 추가돼야 한다”는 ‘해방의 논리’로 반박했다. 일본은 구보타 망언을 취소하고 역청구권 주장도 거둬들였다.    13년8개월 만인 1965년 6월 22일 협상은 타결됐다. 일본은 한국에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 이 돈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이미 무효”로 정리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로 해석했다. 일본은 “지금은 무효지만 당시에는 유효하고 합법적이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었고, 한국인에게는 상처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러니 “식민 지배는 불법이며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에 ‘65년 체제’를 뒤흔드는 쇼크였던 것이다.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다.    그래도 ‘65년 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다. 일본은 50여 차례 사과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했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당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본 양심과 지성의 힘이다.    윤 대통령은 상처받은 국민 정서와 충돌하면서까지 양국관계를 위해 용기있게 결단했다. 이제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윤석열 해법은 문희상 안과 유사하지만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 소송의 대상이 된다. 피해자의 불복 소송이 벌써 시작됐다. 법원 판결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피해자를 설득하고 위로해야 한다. 면전에서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난제(難題)를 마주한 고뇌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여론이 반전될 것이다.     한·일은 문명사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 세기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충돌했지만 화해했고, 경제·안보 공동체를 만들었다. 양국도 화해와 공존의 아시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     글=이하경 대기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3.21 23:00

  • [이하경 칼럼] 일본의 양심과 지성을 기대한다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카드를 다 썼다.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한 3자 변제’라는 해법을 서둘러 제시했다. 한·일 관계 최대 장애물의 해결 실마리가 마련됐고, 정상의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해제됐고,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가가 선언됐다.   그런데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직접 사과는 없었다. 피고 기업도 배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선 “완승”이라지만 한국에선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한다. 한국 대통령은 지뢰밭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  「 ‘샌프란시스코 강화’ 참여 좌절 전승국 아닌 옛 일본 식민지 취급 한일협정으로도 다시 상처 받아 윤 대통령 용기에 일본 화답해야 」    일본은 한국인이 왜 분노하는지 알고 있는가. 한국은 카이로선언문에 적힌 대로 ‘노예 상태’로 36년을 지냈다. 그래서 패전국인 일본을 상대로 한 연합국 강화회의 정식 멤버로 참가하려고 했다. 임시정부가 2차대전 이전부터 일본과 전쟁 상태에 있었고, 중국에 일본과 싸운 한국인 사단이 있었으며, 상해 임시정부가 선전포고 한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장면 주미대사는 1951년 1월 26일 미 국무부 장관 고문 덜레스로부터 “한국의 참가를 지지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의 반대로 참가 48개국에서 제외됐다. 부당하고 원통한 일이었다.   일본은 1951년 3월 27일 강화회의 초안을 받자마자 치밀하게 준비해 4월 4일 미국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전쟁 중인 한국에선 문서가 실무자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다.  홍진기 법무부 법무국장은 4월 7일 일본 신문에서 한일관계 조항이 빠져있는 초안을 확인했다. 맥아더 최고사령관만 믿고 소극적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참가 의사와 귀속재산 처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담은 의견서가 5월 초 전달됐지만 일본보다 한 달 늦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강화조약은 한국을 대만과 함께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분류했다. 옛 식민지라는 뜻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고,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으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이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합법’이 돼버린 사실이다. 심각한 상처와 모욕이었다. 사실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던 1942년부터 국무부 극동반을 운영하면서 패전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키는 ‘관대한 평화(soft peace)’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에 부담이 될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여지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 조인 한 달 뒤인  1951년 10월 두 나라는 한일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초기에 일본은 자국민 50만 명이 한국에 두고 간 재산에 관한 권리, 역(逆)청구권을 제기했다. 조선 내 일본 재산은 85%였다. 일본 측의 구보타 전권대표가 “식민지 시절 유익한 일을 했으므로 일본에도 청구권이 있다”고 하자 한국 측 홍진기 대표는 “전통국제법에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권리가 추가돼야 한다”는 ‘해방의 논리’로 반박했다. 일본은 구보타 망언을 취소하고 역청구권 주장도 거둬들였다.   13년8개월 만인 1965년 6월 22일 협상은 타결됐다. 일본은 한국에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 이 돈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이미 무효”로 정리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로 해석했다. 일본은 “지금은 무효지만 당시에는 유효하고 합법적이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었고, 한국인에게는 상처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러니 “식민 지배는 불법이며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에 ‘65년 체제’를 뒤흔드는 쇼크였던 것이다.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다.   그래도 ‘65년 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다. 일본은 50여 차례 사과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했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당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본 양심과 지성의 힘이다.   윤 대통령은 상처받은 국민 정서와 충돌하면서까지 양국관계를 위해 용기있게 결단했다. 이제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윤석열 해법은 문희상 안과 유사하지만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 소송의 대상이 된다. 피해자의 불복 소송이 벌써 시작됐다. 법원 판결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피해자를 설득하고 위로해야 한다. 면전에서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난제(難題)를 마주한 고뇌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여론이 반전될 것이다.   한·일은 문명사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 세기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충돌했지만 화해했고, 경제·안보 공동체를 만들었다. 양국도 화해와 공존의 아시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2023.03.20 00:56

  • [이하경 칼럼] 이재명의 마지막 승부수

    이하경 대기자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청년기에 사선(死線)을 넘나든 인물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법정에 섰다.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할 때 “하도 기가 차서”  피식 웃었다. 방청석에 있던 모친은 그 순간 졸고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생사(生死)에서조차 초연했던 저 무욕(無慾)의 인물은 정치인이 돼서도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무수석일 때 공개적으로 “대통령은 험한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직언했던 참모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가장 신뢰했다. 스무 살 무렵에 얼굴도 모르는 유인태·이철·이현배 등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여러 단체에 돌린 기억이 있다. 4년여 옥고를 치른 유신 체제의 피해자들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얼마 뒤 풀려났다. 이후 유인태는 그 험한 정치판에 뛰어들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리얼리스트로 건재하고 있다.     ■  「 불체포특권 폐지 공약 뒤집고 민주당을 방탄용으로 둔갑시켜 방탄·대표직은 치명적 유혹일 뿐 특권 포기로 ‘달라졌다’ 입증해야 」    ‘사형수’ 출신 유인태가 ‘생존’이 지상과제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일갈했다. 공당(公黨)인 더불어민주당을 한 사람을 위한 방탄용 사당(私黨)으로 둔갑시킨 그에게 “국민들에게 좀 감동을 주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돼도 검찰이 추가로 영장을 청구하면 표결 대신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 정도의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 먹으려고 세상을 그러면 되나. (구속이)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심(私心)이 없어서 민심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그러나 이재명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속해 있다. “오랑캐가 침략을 계속하면 열심히 싸워서 격퇴해야 한다” “국가 권력을 가지고 장난하면 그게 깡패지 대통령이겠느냐”며 험구(險口)를 못 참고 있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쌍방울 대북 송금, 정자동 호텔 특혜 등 비리 스캔들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공약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외면하고 있다.   민심은 썰물처럼 떠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 구속수사’가 ‘해선 안 된다’보다 한참 높다. ‘불체포특권 폐지’는 ‘유지’의 두 배다. 체포동의안 부결 움직임에 대해서도 민심이 싸늘하다. 호남에서도 가결 찬성이 반대만큼 나올 정도다. 정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쳐서 국민의 힘과 두 자릿수 차이로 벌어졌다.   실무에 밝은 한 고위 법관은 “진술은 차고 넘치는데 결정적인 직접 증거는 없어 재판이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표가 기소돼 시도 때도 없이 법정에 들락거리면 당의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은 이재명 스캔들에 흔적도 없이 파묻힐 것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시쳇말로 폭망각이다. 민주당에선 “체포동의안은 부결시키되 이재명 대표가 알아서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검찰이 기소하면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방탄 단일대오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은 내부 총질로 비호감이 된 국민의힘의 구세주, 민주당엔 재앙이 됐다.   열대 사냥꾼의 원숭이 사냥법이 있다. 나무 상자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넣은 뒤 손만 딱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뚫어놓으면 음식을 움켜쥔 원숭이의 손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원숭이는 한번 쥔 음식을 절대로 놓지 않기 때문에 눈 뜨고 잡혀 간다. 불체포특권, 당 대표라는 달콤한 열매는 이재명의 정치생명을 노리는 치명적 유혹이다.   이재명은 “어떠한 부당행위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영장에서 드러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허구의 방탄 도성(都城)에서 걸어나와 판사 앞에서 두 눈 크게 뜨고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그는 도대체 왜 성남시장 시절의 개인 스캔들로 대통령을 셋이나 배출한 공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가. 민심은 바로 이 점을 따져 묻고 있다.   이재명은 일체의 합리적 조언에 귀를 닫고 있다. 탐욕에 눈먼 원숭이처럼 사냥꾼의 포획 순간이 예정된 운명이다. 보스 A를 만난 참모가 “우리 보스는 참 유능하다”고 했다. 보스 B를 만난 참모는 “이분을 만나고 난 뒤 내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리더십 연구의 국제적 대가인 고(故) 김인수 교수는 최고의 리더는 A가 아닌 B라고 했다. 그에게 B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당사자도 몰랐던 폭발적인 능력을 끌어내는 비결은 바로 경청(傾聽)이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원직을 제명당했고, 전두환 정권에 맞선 23일간의 단식으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촌로(村老)들의 울분까지도 천심(天心)으로 받들었고, 마침내 민초(民草)가 주인이 되는 감동의 문민시대를 30년 전에 열었다.   지금 이재명의 언행에는 어떤 감동의 요소도 없다. 민심의 아우성에 귀를 닫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입을 꾹 다물고 귀를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움켜쥔 특권을 내려놓는 돌직구 승부수를 던질 용기가 생길 것이다. “이재명이 달라졌다”는 감동이 느껴진다면 사즉생(死卽生)의 반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재명도 살고, 민주당도 사는 길이다. 이하경 대기자

    2023.02.27 00:55

  • [이하경 칼럼] 연금 지옥의 도래,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이하경 대기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국민연금을 집어삼키고 있다. 연금은 일하는 사람이 은퇴자를 먹여살리는 구조의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은 줄고 은퇴자는 넘쳐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55년에 기금이 바닥난다. 1990년생이 수급 대상인 65세가 되는 해다.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면 소득의 9%인 현재의 보험료를 2060년 30%(회사가 절반 부담)까지로 계속 올려야 한다. 지금은 가입자 4명이 노인 1명을 책임지지만 2060년에는 5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드디어 “국민연금을 철폐하고 노후를 각자 책임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령자들도 선진국 평균 3배에 가까운 노인빈곤율(37.6%)에 신음하고 있다. 청년과 노인이 한목소리로 “나의 미래를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  「 2060년 가입자 부담 5배로 늘어 ‘연금 철폐, 각자 노후 준비’ 주장 희생적 결단 안 하면 해결 불가능 공산화 막은 농지개혁 본받아야 」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연금 문제를 제기하면 표가 떨어지고 여야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으나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될 연금개혁의 완성판을 만들겠다”고 했다. 비겁한 전임자들과 다른,  용감한 대통령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소득의 3%를 내면 70%를 받아 가는 구조로 탄생했다. 98년 김대중 정부의 개혁 이후 25년째 보험료가 9%에 묶여 있다. 독일(18.7%) 일본(17.9%)·영국(25.8%)·미국(13.8%)보다 훨씬 낮다. 윤 대통령의 약속대로 지체없이 수술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미래세대의 고통을 줄이려고 현 세대의 지갑에 손대는 건 정치적 자해(自害)행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개혁안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청와대 대변인)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런 직무유기가 새 정부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올해 10월 정부안 확정에 앞서 가동 중인 국회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시한이 지났지만 단일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혁명적인 사건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수천년 된 지주-소작인의 신분제를 깨고,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의 경계를 허물어 민주공화국의 대전제를 구축한 농지개혁이다. 해방 이후의 사려깊은 지도자들은 제헌헌법 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라고 꽝꽝 대못을 박았다. 신생 대한민국의 1호 개혁은 농지개혁이었다.   1950년 시행된 농지개혁법은 경작 농민이 수확량의 30%씩 5년간 상환하면 지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도록 했다. 일제 강점기 소작료는 50%였다. 유상몰수 유상분배였지만 사실상 거져 받은 셈이다. 농지 소유 상한선은 3정보(9000평)로 정하고 소작을 금지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지주계급은 사실상 해체됐다.   토지의 분배 상태가 평등할수록 식량 증산과 교육 보급이 잘 이뤄진다. 우수한 노동력의 양성과 신흥 자본가의 출현도 쉬워진다. 파격적인 개혁의 결과 농촌 인구 상위 4%의 소득이 80% 감소하고 하위 80%의 소득이 20~30% 증가했다. 불평등이 확실하게 완화된 것이다. 일제 당시 200만t 수준이던 쌀 공급량은 1960년 초 350만t으로 증가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토지혁명”으로 규정했다(『죽산 조봉암 평전-자유인의 길』 이택선).   개혁이 성공한 것은 정파를 초월해 합심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자 이승만 대통령은 뜻밖에도 전향한 공산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헌법 제정 당시 이승만이 주장한 대통령 중심제를 “독재의 폐단이 염려된다”고 결사 반대한 정적(政敵)이었다. 그런데도 “공산당의 유혹에 넘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사는 일은 조봉암이 적임”이라고 판단했다. 조봉암은 농지개혁을 “봉건적 사회조직을 근대적 자본주의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국회 속기록)으로 규정했다. 봉건 노예로 살아온 소작농은 내 땅을 가진 근대 자작농이 됐고, 6·25 남침 때 공산군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승만의 냉철한 판단이 김일성의 오판을 이기고 나라를 지켰다.   대지주인 한민당 지도자 김성수는 공산화를 막으려면 개인 재산권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교수의 설득이 있었다. 독립운동가였던 한민당 라용균 의원은 자기 농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다. 우파 문학을 대표하는 김동리도 “농지개혁과 주요 기업의 국유를 주장하는 것이 좌익이라면 조선 사람은 전부 좌익”이라며 농지개혁을 지지했다.   중환자가 된 연금을 수술하려면 농지개혁 때처럼 지도자들이 한마음으로 희생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70% 이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췄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국민 70%가 반대하지만 “올해 안에 연금개혁을 끝내겠다”며 정치생명을 걸었다. 물거품 같은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통합이다. 오늘의 눈 먼 정치인들은 과연 연금지옥의 도래를 막을 수 있을까. 이하경 대기자

    2023.02.06 00:48

  • [세컷칼럼]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

    힘든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 천지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동시에 시동 걸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전임자들이 눈치만 보고 미뤄 둔 고난도 숙제다. 정권의 명운을 건 전방위 개혁에 성공하면 이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개혁이 ‘혁명’으로 명명(命名)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다룬 소설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와 마주했다. 그는 “몸이 가벼워야 혁명을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안중근은 “이토가 하얼빈에 오는데, 함께 가서 죽이자”고만 했다. 우덕순은 바로 동의했다. 어떤 대의명분도 토론하지 않았지만 거사는 오차 없는 현실이 됐다. 윤석열도 기득권 세력에 포획되지 않았기에 가벼운 몸으로 ‘혁명’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용감한 대통령의 제1 과제는 노동개혁이다. 일자리와 경제, 인간 존엄의 문제가 걸렸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차별하는 것은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착취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딱부러지게 정리했다. ‘연대를 통한 약자 보호’라는 존재 이유를  잊은 지 오래인 타락한 노동귀족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  「 윤 대통령 기득권 무관…개혁 올인 통합·입법이 무기, 야당 손잡아야 개혁 성공, 보복 악순환 단절 가능 실패한 예언자의 길 가면 안 된다 」    윤 대통령은 광주지검 검사 시절 기아차 노조 비리를 수사했다. “노조사무실이 검찰청보다 더 좋았다. 정규직은 편안하게 버튼만 누르고 어려운 일은 하청 노동자 차지였다. 지검장은 (인권·노동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을 의식해 벌벌 떨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소신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수사가 끝난 뒤에는 ‘너무 잘했다. 수사 검사 전원을 희망하는 근무지로 보내줘라’라며 격려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몇몇 사람에게 털어놓은 일화다. 대우조선 노조를 돕다가 구속까지 됐던 노 전 대통령의 입장 전환은 국정 최종 책임자다웠다.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결단하는 데 힘이 됐을 것이다. 대통령이 앞장서면서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도 단호해졌다.   교육개혁에도 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 도중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서 총장이 눈치 보게 만드는 교육부가 정상입니까”라며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호통쳤다. 교육부 고위직의 ‘꿀보직’ 27개가 사라졌다.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후보자였을 때 “원상 복구시키면 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시켜 주겠다”고 속삭이던 ‘교육 마피아’는 납작 엎드려 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정치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찾아와서 기시다 총리를 포함한 일본 관계자 전원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개혁도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다. 흩어진 여론을 모으고 입법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무기는 통합과 입법이다. 싫더라도 절반의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해야 한다.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타자의 추방』에서 “같은 것의 창궐은 악성종양이 아니라 혼수상태처럼 작동한다”며 “동일자(同一者)는 타자(他者)에 대한 차이 때문에 형태와 내적 밀도, 내면성을 지닌다”고 했다. 타자의 공간을 허용하는 관용의 원칙을 포기할 때 민주주의는 몰락한다.   권력의 시간은 유한하다. 힘이 빠지는 순간 입안의 혀처럼 굴던 아첨꾼들은 뒤도 보지 않고 떠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어떤 가치도 공유한 적이 없다. 오직 한 줌 이익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던 군상(群像)이었을 뿐이다. 베드로처럼 첫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아니 삼백 번이라도 부인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도 유골이 자택에 머물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황혼은 무상하고, 허망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알렉산더의 결단력이 부러운가. 하지만 황제는 먼저 숙고하는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셨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베개 밑에 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를 반복해서 읽었다. 이민족을 포용하고 헬레니즘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 대통령도 특유의 결단력에 더해 숙고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   나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人)의 장막을 찢고 나와야 한다. 결사적으로 타자를 만나고, 야당과 반대자를 환대해야 한다. 내게 결핍된 다른 세계의 관점과 에너지를 수용해야 한다. 무풍(無風)은 죽음을 의미한다. 역풍(逆風)이라도 바람이 불어야 배가 전진할 수 있다. 카산드라처럼 자멸한 예언자가 되는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있다. ‘혁명’에 성공하고 퇴임 후 보복의 악순환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글=이하경 대기자·부사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1.16 23:00

  • [이하경 칼럼]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

    이하경 대기자·부사장 힘든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 천지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동시에 시동 걸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전임자들이 눈치만 보고 미뤄 둔 고난도 숙제다. 정권의 명운을 건 전방위 개혁에 성공하면 이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개혁이 ‘혁명’으로 명명(命名)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다룬 소설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와 마주했다. 그는 “몸이 가벼워야 혁명을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안중근은 “이토가 하얼빈에 오는데, 함께 가서 죽이자”고만 했다. 우덕순은 바로 동의했다. 어떤 대의명분도 토론하지 않았지만 거사는 오차 없는 현실이 됐다. 윤석열도 기득권 세력에 포획되지 않았기에 가벼운 몸으로 ‘혁명’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용감한 대통령의 제1 과제는 노동개혁이다. 일자리와 경제, 인간 존엄의 문제가 걸렸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차별하는 것은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착취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딱부러지게 정리했다. ‘연대를 통한 약자 보호’라는 존재 이유를  잊은 지 오래인 타락한 노동귀족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  「 윤 대통령 기득권 무관…개혁 올인 통합·입법이 무기, 야당 손잡아야 개혁 성공, 보복 악순환 단절 가능 실패한 예언자의 길 가면 안 된다 」    윤 대통령은 광주지검 검사 시절 기아차 노조 비리를 수사했다. “노조사무실이 검찰청보다 더 좋았다. 정규직은 편안하게 버튼만 누르고 어려운 일은 하청 노동자 차지였다. 지검장은 (인권·노동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을 의식해 벌벌 떨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소신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수사가 끝난 뒤에는 ‘너무 잘했다. 수사 검사 전원을 희망하는 근무지로 보내줘라’라며 격려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몇몇 사람에게 털어놓은 일화다. 대우조선 노조를 돕다가 구속까지 됐던 노 전 대통령의 입장 전환은 국정 최종 책임자다웠다.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결단하는 데 힘이 됐을 것이다. 대통령이 앞장서면서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도 단호해졌다.   교육개혁에도 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 도중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서 총장이 눈치 보게 만드는 교육부가 정상입니까”라며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호통쳤다. 교육부 고위직의 ‘꿀보직’ 27개가 사라졌다.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후보자였을 때 “원상 복구시키면 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시켜 주겠다”고 속삭이던 ‘교육 마피아’는 납작 엎드려 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정치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찾아와서 기시다 총리를 포함한 일본 관계자 전원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개혁도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다. 흩어진 여론을 모으고 입법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무기는 통합과 입법이다. 싫더라도 절반의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해야 한다.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타자의 추방』에서 “같은 것의 창궐은 악성종양이 아니라 혼수상태처럼 작동한다”며 “동일자(同一者)는 타자(他者)에 대한 차이 때문에 형태와 내적 밀도, 내면성을 지닌다”고 했다. 타자의 공간을 허용하는 관용의 원칙을 포기할 때 민주주의는 몰락한다.   권력의 시간은 유한하다. 힘이 빠지는 순간 입안의 혀처럼 굴던 아첨꾼들은 뒤도 보지 않고 떠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어떤 가치도 공유한 적이 없다. 오직 한 줌 이익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던 군상(群像)이었을 뿐이다. 베드로처럼 첫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아니 삼백 번이라도 부인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도 유골이 자택에 머물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황혼은 무상하고, 허망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알렉산더의 결단력이 부러운가. 하지만 황제는 먼저 숙고하는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셨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베개 밑에 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를 반복해서 읽었다. 이민족을 포용하고 헬레니즘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 대통령도 특유의 결단력에 더해 숙고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   나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人)의 장막을 찢고 나와야 한다. 결사적으로 타자를 만나고, 야당과 반대자를 환대해야 한다. 내게 결핍된 다른 세계의 관점과 에너지를 수용해야 한다. 무풍(無風)은 죽음을 의미한다. 역풍(逆風)이라도 바람이 불어야 배가 전진할 수 있다. 카산드라처럼 자멸한 예언자가 되는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있다. ‘혁명’에 성공하고 퇴임 후 보복의 악순환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이하경 대기자·부사장

    2023.01.16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