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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행복이란 파랑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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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행복경제학의 창시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지적행복론』에서 행복의 3요소로 ①물질적 부 ②건강 ③가족을 포함한 사회관계를 꼽았다. 부는 다른 요소와 달리 일정 수준에 이르면 행복도를 높이지 않는다. 물질 소유로 인한 행복의 한계효용은 계속 낮아지고 결국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953년 67달러에서 2023년 3만2142달러로 480배 늘었지만 행복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유엔 ‘세계행복지수’ 순위는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2년 56위에서 2022년 59위로 떨어졌다.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여년째 1위다. 특히 30세 이상에선 감소 추세지만 10~20대에선 되레 늘고 있다. 20대 우울·불안장애 환자도 2017~2021년 13만 명에서 28만 명으로 급증했다.

외형적으론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나라지만 국민 개개인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며, 누적된 좌절 속에 열패감이 쌓이기 쉽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어쩌다 한번 잘되면 과시와 갑질을 한다. 압박과 스트레스가 일상인 ‘하이 텐션(high tension·고도불안) 사회’의 전형적 모습이다.

최근 ‘묻지마 범죄’의 급증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던 조선(33)이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정유정(24)은 ‘소용돌이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국민이 명문대와 전문직, 좋은 아파트를 향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가지만 현실의 대다수는 경쟁에서 낙오한다. 도피처로 찾는 SNS에서 물신화한 명품과 사치스러운 소비행태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만 커진다.

가장 시급한 건 사회 양극화 해소다. 하지만 개인의 의식변화도 필요하다. “산 너머 행복을 찾아 친구 따라갔다 눈물만 머금고 왔다”(Uber den Bergen, 산 너머)는 독일 시인 칼 붓세의 말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타인과 비교하는 대신 자존감을 키우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이 정한 획일적 목표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 결단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게 행복의 본질이다(존 스튜어트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