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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다크 브랜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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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박형수 국제부 기자

지난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9초짜리 동영상을 올렸다.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난 커피를 다크하게 즐기지”라고 읊조린 게 전부다. 그 머그컵엔 숫자 ‘2024’와 눈에서 적색 레이저 빔을 내쏘는 바이든의 캐릭터가 그려졌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다크 브랜든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단정하며 다소 유약한 이미지의 본캐(본래 캐릭터)를 뒤집은 부캐(서브 캐릭터)로, 근육질 몸매와 쾌도난마 스타일의 터프가이다. 커피색 얼굴, 붉은 광선을 뿜어내는 눈,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음험하게 웃는 다크 브랜든의 모습은 강인하고 공격적이다.

다크 브랜든은 바이든 반대자들의 조롱에서 탄생했다. 2021년 미국 남부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한 기자가 우승자 브랜든 브라운을 인터뷰할 때 관중들이 일제히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구호를 외쳤다. 기자는 “관중들이 ‘레츠 고 브랜든’을 연호한다”고 얼버무렸고, 이 문장 자체가 ‘바이든에 대한 욕설’을 뜻하는 은어가 됐다.

여기에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띄우기 위해 만든 ‘다크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가 결합하면서 다크 브랜든이 완성됐다. 미국 매체 복스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바람과 달리, ‘브랜든’은 더 이상 바이든을 조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신 고령의 바이든에 ‘어둠의 영웅’ ‘초사이언’ 이미지를 덧입혀 젊은층과 유색인종 사이에서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크 브랜든 밈(meme)의 인기가 다크 마가를 앞서자 바이든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펜주립대 제시카 마이릭 교수는 “캐릭터가 잘될수록 이를 만들어준 트럼프 지지자의 고통이 증폭되고, 이는 바이든 지지자의 기쁨을 배로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가상 대결 결과는 43대 43으로 팽팽했다. 아슬아슬한 승부에서 후보들이 정책 대신 밈 대결에 집중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선거철엔 소셜미디어를 끊고 신문을 읽으며 사실을 치열하게 수집하라”고 조언했다. 유권자가 확인할 건 다크 브랜든과 다크 마가가 아닌 바이든과 트럼프의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