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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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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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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훈 칼럼] 분노와 심판은 또 다른 기대다

    최훈 주필 투표에 나선 2966만2313명만큼의 각기 다른 심경과 판단이 있었을 터다. 그 시점 거기 존재했던 정치의 객관적 실체야 물론 하나다. 그러나 각자의 렌즈로 판단한 다수 민심은 정권 심판이었다. 선택의 여지 없는 소선거구제, 3번부터 시작한 왜곡된 위성정당 제도를 탓할 것도 없다. 선수들 스스로 합의한 룰이었으니. 각각 몇십 초의 날인들이 모여 심판으로 분출되기까지 2년여 기억의 축적이 있었다.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문재인 정부의 진영 편가르기에 대한 실망에서였다. ‘공정’ ‘정의’ ‘균형’ ‘통합’ ‘소통’ ‘협치’의 가치를 이뤄내 주길 고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서서히 의문에서 실망을 거쳐 좌절로 이어져 왔다. ‘아빠 찬스’ 의혹의 보건복지장관 강행, 특수부 검사 중심의 편향 인사 논란부터였다. 야당과의 대화 기피, 말 잘 듣는 여당 만들기는 포용과 민주적 리더십에 의문을 낳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수사와 디올백 사건의 처리는 ‘공정’ ‘정의’의 기대를 사그러들게 했다. 으뜸의 오류는 국민 소통의 단절이다. 질문 외면과 일방 소통은 국민과 대통령 중 누가 나라의 주인인지 좌절을 안겨 주고 말았다. 다수 지지를 받는 의대 증원 역시 진정한 대화와 설득의 이슈 관리 부족에 “독선”의 역풍에 직면해 있다.     ■  「 2년여 용산의 불통·독선적 태도에 누적돼온 실망·좌절·무력감이 분출   상대의 변화를 지켜보는 게 분노 용산·여야 모두 협치로 응답하길  」    세 차례쯤의 기회야 세상 모두에게 주어진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가 첫 번째였다. 그러나 “구청장 선거 하나 갖고 무슨 심판이냐”며 혁신의 시간을 허송했다. 이재명 민주당의 친명 공천 후유증 속 대통령 지지도가 39%(한국갤럽)를 찍었던 3월 초중반은 두 번째 찬스였다. 3월 6일에 이종섭 호주대사 논란, 14일엔 황상무 수석의 ‘횟칼 테러’ 발언이 돌출했다. 그 시점 의대 증원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낼 결단과 함께, 신속히 이 대사·황 수석 문제를 수습해 민심을 다독여야 했다. 총선 아흐레 전. 의대 증원 대국민 담화는 화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해결의 물꼬를 기대했다가 51분의 인내심 실험을 당한 허탈함에 선거는 거기까지였다. “역시 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좌절·분노가 굳어졌다. 2년여 굳어져 온 용산의 자기 집착, 편향의 관성이었다.   대통령실의 한계가 노출된 건 오래다. 총선을 치른 시점의 실장·수석급 이상 중 자신이 선거를 치러 본 이란 한 명도 없었다. 늘 고시 출신 관료·검사들 이 주인이었다. 시험 권력으로 삶을 시작, 윗 분 기호에 맞을 페이퍼 워크로 살아온 이들이 다수다. 가장 수직적인 검찰 문화에서 지내 온 보스 밑에 역시 톱 다운 마인드 관료들의 조합이다. 현장을 느낄 수도, 그럴 필요도, 느껴 달라는 기대도 힘든 구조다. 내각·비서실 어느 곳에도 민심을 수렴하며 정치를 조율해 갈 지혜로운 스핀 닥터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판단은 늘 우월하다”는 엘리트·특권 편향과 집착이 거리의 정서·상식과 동떨어지니 예측조차 안 되는 판단들이 이어져 왔다. 159명 희생된 이태원의 충격에도 “법조문상 귀책이 없지 않느냐”며 정무적 책임이 사라진 게 용산의 문화였다.   분노는 상대에의 기대와 요구가 꺾일 때 생긴다. 실망, 억울함, 좌절과 상실, 우울, 두려움이 얽힌다. 그 복잡한 감정들이 병목 현상에 이른 마지막 단계는 무력감이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주저앉을 가장 위험한 상태다. 그러면서 “너도 한번 나의 무력감을 느껴보라”는 심리가 발동한다. 모든 도덕과 정의의 황금률은 “그러므로 남이 너에게 대접해 주길 원하는 대로 너도 남에게 그렇게 대접하라”는 ‘호혜’와 ‘상호 존중’ 아닌가. 투표만이 무력감 속에 분노를 분출할 유일한 출구였다. “권력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란 걸 똑똑히 보여주자는 게 바로 이번 총선의 정신이다.   분노와 심판은 또 다른 기대다. 공동체의 생존에 필연적인 정서와 욕구다. “더 이상 그리 가면 모두 위태로운 파국”이라는 경고다. “인간에 두려움과 분노가 없었다면 벌써 멸종했을 것”이듯, 오히려 인간 관계나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있을 전기다. 분노 안엔 그러니 상대에의 관심과 사랑도 존재한다. 어느 쪽에도 투표 안 한 유권자 3분의 1(1400만 명)이 그들 여야엔 훨씬 두려운 무관심이다. 반드시 분노와 심판에 뒤따라오는 특성이 있다. “당신이 내 뜻을 주목해 달라” “나는 너를 계속 지켜볼 거야”다. 상대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려는 본능이다.   총선의 총 득표 차이는 5.4%(민주 50.5%, 국민의힘 45.1%)뿐이다. 투표율 67%이니 어느 쪽도 유권자 과반엔 턱없는 지지다. 대통령실과 여야 모두 “왜 내게 분노했을까”를 곱씹으며 영혼이 달라져야 할 이유다. 무엇보다 나라가 힘들지 않은가. 민생·경제, 미 대선, 어제 이란까지 가세한 전쟁 등의 국제 정세, 북한 등 어느 하나 편안치가 않다. 국정 기조 쇄신은 윤석열 정부엔 마지막으로 주어질 세 번째 기회다. 그만들 싸우고 협력해 국민 좀 편안하게 해달라는 게 심판의 기대다. 그대들의 권력이란 덧없이 짧다. 영원한 분노와 심판의 힘 지닌 전지전능은 단 하나, 국민뿐이다.     최훈 주필

    2024.04.15 00:38

  • [최훈 칼럼] ‘용산 리스크’의 재구성

    최훈 주필 모든 정치의 정답은 꿈틀거리는 민심의 현장이다. 이종섭 호주 대사 거취 논란이나 황상무 수석의 ‘횟칼 테러’ 발언 여파로 총선은 다시 출렁거리고 있다. 황 수석 사퇴와 이 대사 귀국으로 임시 봉합한 국면이지만 싸늘한 여론과 수도권 지지도 폭락에 놀라 수용한 터라 효과조차 미미한 듯하다. 여당은 애써 잠재웠던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되살아나면서 총선이 다시 ‘윤석열 대 야당’의 정권 심판 구도로 바뀌는 악재에 초긴장이다.     ■  「 민심 둔감 이종섭·황상무 사태로 오만 프레임 갇히고 만 대통령실 ‘엘리트’ 내부논리 과잉편향 접고 현장 민심 존중하는 공감 노력을 」    수도권(서울 3, 경기 2)에서 영끌하며 뛰고 있는 국민의힘 후보 5인에게 ‘용산 리스크’가 낳은 현장을 들어보았다. “다녀보면 ‘매일 친명횡재다 뭐다 이재명 욕은 다 하면서 자기들은 왜 이리 마음대로 하나’란 얘기다. ‘어린 해병이 죽었는데 책임은커녕 대사로 내보내 놓고 도대체 국민 알기를 뭘로 아느냐’란다. ‘지금도 이리하는데 국회까지 쥐여주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겠느냐’고 한다. 용산이 오만의 프레임에 갇혔다. 3%, 1천 표 차 생사라 끼니 거르고 돌아다니는 데 한 주 새 수도권 지지 15%가 빠지니 맥만 빠질 뿐이다.”(경기 A후보)   “보수층의 용산 원망이 더 많더라. ‘4년 동안 야당에 발목 잡혀 생고생을 했는데 다시 지려고 작정했느냐’며 화를 낸다. ‘왜 하필 이때 굳이 이거냐’란 절박감의 분노다. 정치 관심이 많을수록 이종섭 대사에 부정적이더라. ‘피의자인 양반을 갑자기 대사로 내보내니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침묵하라 꼬리 자른 것 아니냐’고들 한다. ‘아 이게 뭔가 있구나’라는 의심이 퍼지는 건 순간이다. 공수처 문제점 얘기해 봤자 먹고살기 바쁜 이들이야 임명한 대통령실 잘못이라 생각할 수밖엔 없지 않냐. 살판난 민주당의 빅 마우스에 막기조차 버겁다.”(서울 B후보)   “가장 걱정은 이재명 사천 파동에 가라앉던 정권심판론이 되살아난 분위기다. 민주당이 다시 으쌰으쌰다. 정권심판론 도지니 여기저기 민주당과 진보당이 후보 단일화를 한다. 선거가 기세, 바람 아닌가. 용산이 매사 독선적으로만 각인되니 과거 조국 수사도 무리 아니냐는 의심으로 뒤바뀐다. 조국당 지지율 좀 보라. 비례 조국당 찍으러 집 나선 이들이 지역구의 여당 찍을 리도 없지 않냐”(서울 C후보)   “중도층은 윤석열-한동훈 갈등에 민감하더라. 남의 말 잘 안 듣는다는 윤 대통령에게, 한 위원장이 바른말 좀 하고, 그걸 대통령이 들어주는 모양새면 ‘아 이 당은 그래도 기대는 해볼 만하네’라는 이들이 중도층이다. 중도층이 가름할 총선 보름 앞에 이 모양이니…. 며칠 전 대통령이 농협의 ‘875원 대파 한 단’ 들고 “이 가격이 합리적”이라 한 것도 말이 많더라. 왜 자꾸 시빗거리 만드는 건지. 그냥 좀 가만히 계셔줬으면 ….”(경기 D후보) “이거 의료 대란 기류도 묘해진다. 자꾸 불통 용산 이미지이다 보니 2000명 증원도 일방적 밀어붙이기 아니냐는 심리적 요동이 느껴진다. 어제 한 위원장이 의사들 만났다지만 환자들만 피해인 대란이 이어지면 다 나라님 탓일까 봐 걱정이다.”(서울 E후보)   총선의 승패 떠나 3년 넘게 국정을 더 이끌어 가야 할 용산이다. 수도권의 아우성 직전 이종섭 사태에의 대통령실 입장은 이랬다. “공수처·민주당, 일부 친야 언론이 결탁해 덫 놓은 정치 공작.” 황상무 파문 때는 “사람 그렇게 쓰는 것 아니고, 리더십 원칙이 더 중요” “언론 자유가 우리 정부 국정 철학일 뿐”이라며 6일을 끌었다. 내부의 지체된 판단은 결국 현장에 최악의 나비효과를 몰고 왔다. 바로 용산의 민심 공감(共感)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 처지에 서보고, 그들의 느낌·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통찰을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삼는” 상태다. 용산의 최대 오류는 바로 자기 내부 논리에 대한 선택적 과잉 공감이다. “공감이란 마일리지 같은 것”(과학철학자 장대익)이어서 자신에게만 쓰면 다른 이들에겐 쓸 수가 없다. 내 편에만 쓰면 다른 편에겐 해악이 될 위험이 공감의 양면성이다.   그러니 용산의 내부 소통이 늘 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격노가 다반사라더라도, 먼저 현장을 느끼며 “노”하는 참모들이 버텨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엘리트 집단이라 자부할 용산의 국가적 책무다. 도대체 안보실의 누가 이 대사를 밀어붙였나. 누가 황 수석 사퇴를 그리 끌어갔는가. “성공에는 100명의 부모가 있지만 실패는 고아”이듯 일 터지면 그 뒤로 숨기 바빠 대통령만 홀로 전면에 서 있는 게 용산의 기억이다.   최고의 비서실장이던 레이건 대통령의 제임스 베이커는 “나쁜 결과를 막을 사전 노력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 비서실장은 늘 ‘노 맨(No Man)’이자 게이트 키퍼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소중한 통찰을 그는 레이건 장례식 추모사에 남겼다. “그 누가 자신의 라이벌 선거참모를 두 차례나 했던 이를 자기 비서실장에 임명하겠는가. 늘 너그러이 (‘노 맨’을) 받아주던 그를 위해 나는 8년 매일매일을 노력할 수 있었다.” 맞다. 먼저 대통령이 달라지길 바란다.     최훈 주필

    2024.03.25 00:50

  • [최훈 칼럼] 비움이 없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그릇’

    최훈 주필 인생만사 새옹지마란 정치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직 1라운드지만 두세 달 전에 비해 총선 판세가 확 뒤집혔다. 지난 연말만 해도 “정권 견제, 야당 다수 당선 기대”가 51%를 넘어서며 죽을 쑤던 쪽은 국민의힘이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도 가능, 윤석열 정부 탄핵도 할 수 있다”며 기세등등했었다. 그러던 흐름이 요즘은 “여당 다수 당선 희망” 38%, “제1 야당 다수” 35%, “제3지대 다수” 16%(한국갤럽 2월 27~29일)로 뒤바뀌었다.     ■  「 ‘비명횡사 친명횡재’에 흐름 반전 ‘여당 다수’ 기대, ‘민주 다수’ 앞서 비우질 않아 채움도 없는 이 대표 여야 어디든 ‘오만·독주’면 필패  」    이런 반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탐욕’ 이미지 때문이다. 180석 공룡 정당을 물려받은 이 대표의 대권욕이 당내 분란과 민심 이반을 불렀다. 이미 지사·국회의원·제1당 대표의 자리에 올라선 이 대표로선 마지막 정점인 대통령에의 꿈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2년 반 뒤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당내의 절대적 지지 기반? 필수다. 백현동·대장동·대북 송금 관련 체포동의안에의 반란표? 한 번 당해 봤으니 철벽을 쳐야 한다. 조금이라도 걸림돌 될 세력과 인물들? 아예 싹을 잘라놓아야 할 터다.   소년공 시절 야구 글러브 공장 프레스에 눌려 왼쪽 팔이 굽어버린 이 대표는 “내 생에 봄날은 없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었다. 그러곤 자서전 말미에 “좌절의 밑바닥에서야 비로소 싹텄던 희망의 씨앗” “숨이 턱에 차도록 페달 밟아 올라가야만 겨우 문이 열렸던 운명의 고갯길” “결국 정상의 희열을 맛볼 수 있었던 인생의 섭리”라고 자기 삶을 정리했었다.   정치적으론 승승장구였던 그에게 요즘 네 가지 판단 착오가 드러났다. “아니 이 정도까지 할진 몰랐다”는 당심, 민심의 이반이 나타난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압승에 이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은 자만을 키운 양분이 됐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호언했다가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반대표’를 요구하자 믿지 못할 사람이 돼버렸다. ‘위성정당 금지’의 대선 공약과 달리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다시 위성정당을 수용, 불신은 더해졌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은 그 모든 욕심의 정점이다.   야당은 내려놓고 비웠을 때 승리했다. 정책·인사·예산 권력을 모두 쥔 여권과의 싸움에선 민심 얻을 명분이 유일한 무기다. 2016년 총선 직전 야권의 분열로 “여당 180석” 전망이 나올 때 민주당은 당의 주류인 이해찬·정청래를 공천에서 내치는 초강수 쇄신을 했다. 단 1석 차이 원내 1당에 올라섰다. 노무현을 대통령까지 만든 건 스스로 사지(死地)인 영남에서 두 차례나 낙선하면서도 ‘지역구도 타파’의 명분을 지킨 삶의 궤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총재 시절 ‘당내 독재’란 얘기 듣는 걸 극도로 꺼렸다. 모든 당내 경선 때마다 김상현·정대철·이기택 등 비주류 경쟁 주자들이 오히려 적절한 약진을 해주길 골몰했다. ‘대통령의 그릇’인 이가 대통령이 된다.   지금 이 대표에겐 ‘대통령의 그릇’임을 보여 줄 명분도, 원칙과 소신도, 배짱과 결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소양이 없다면 그냥 머리 안 좋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내친 공천 자리에 친명 호위무사들만 채우려 한다면 그건 나쁜 정치인이다. 탐욕이다. 대통령 꿈꾸는 이가 양지 바른 텃밭인 인천 계양을에서 금배지 한 번 더 다는 게 무슨 명분이 있는가.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니 새로 쌓아 갈 공간은 없다. 혹 자수성가형의 심리 특성인 ‘이룬 것에의 집착’은 아닐까. “정치는 노무현이처럼 버리며 해야 한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지금 이 대표를 보고 뭐라 했을까.   그의 예상 밖 두 번째 착오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상대적 선전일 터다. 큰 잡음 없이 안정적이다. 유세의 동선과 메시지 등도 중도층에 거부감이 적다. 물론 혁신이나 감동도 없다는 평가가 공존하지만…. “한 위원장 잘한다” 52%(‘잘못’ 42%), “이 대표 잘한다” 36%(‘잘못’ 61%)가 최근 민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쟁점에서 사라진 건 그에겐 세번 째 혼돈이다. 지난달만 해도 29%대 지지도의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의 대결 구도로 승리를 장담했지만 돌연 타깃이 증발해 버렸다. 이젠 이재명 대 한동훈의 대결 구도다. 더구나 사흘 전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8개월 만의 최고치인 39%(한국갤럽)로 치솟았다. “의대 증원에의 뚝심” 평가가 그중 21%다. 여당 총선 승리의 필요조건 중 하나가 대통령 지지도 40%였다. 이대로라면 총선은 ‘윤석열 심판’이 아니라 ‘이재명 심판’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이 대표의 혼란은 신당이다. 거대 정당에의 혐오로 제3지대 정당이 자리잡을 공간이 커졌다. 더구나 이준석·이낙연 신당은 물론 심지어 조국 신당까지 민주당 측의 표를 더 삭감할 구도다. 아직도 무당층·중도층은 19~29%다. 총선 결과 예측은 그러니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분명한 변수가 하나 있다. 누가 더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우며, 새로운 정치개혁 영혼을 채워가느냐다. 오만과 독주를 심판하러 기다리는 게 대한민국 선거다. 37일이 남았다. 최훈 주필

    2024.03.04 00:36

  • [최훈 칼럼] ‘강제 당론 투표’ ‘제왕적 당대표’ 폐지가 정치 혁신이다

    최훈 주필 총선 79일 앞의 예비후보들이 ‘금배지’ 꿈에 부풀어 뛰고 있다. 각자의 사회적 성취를 토대로 국가·국민을 위해 선량을 해보겠다는 멋진 포부와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 현실은 그러나 참담하다. “강경파가 박수부대를 동원해 의원총회에서 밀어붙인다. 수시로 당론을 정해 안 따라가면 가차 없이 징계다. 강제 당론이 일상이다. 당대표까지 공천권을 갖고 횡포 부리니 줄을 설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왜 하냐고…. 그냥 한 번 더 하기 위해서가 유일한 목표들이다.”     ■  「 의원 소명은 오로지 국익 위한 양심 거대정당 당론 강압, 의원 영혼 말살 공천권 횡포 당 대표직 하등 불필요 철폐 없인 어떤 정치 개혁도 공염불 」    민주당을 탈당한 조응천 의원의 ‘초선 4년’ 토로다. 정치가 왜 이 모양인지 정곡(正鵠)을 짚었다. 야도, 여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인재 영입’이다, ‘새 피 수혈’이다 마술피리에 홀려 따라간 의원들은 총선 다음 날부턴 영락없는 거대 정당의 노예 신세다. 짧은 79일의 유권자 상전 노릇이 끝나면 국민도 거대 정당 밑 노예의 길 시작이다. 지금의 총선은 후보·정당·국민 3자의 ‘노예계약서’ 서명식일 뿐이다. 영원한 악순환이다.   주범은 ‘강제적 당론 투표’와 ‘제왕적 당대표’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46조2항)고 헌법은 적시했다. “선출된 의원이 선거구민, 정당 및 이익단체 등의 특수이익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한 국가이익을 추구하도록 보장한 자유 위임의 원칙”이라고 헌법재판소는 2019년 해석했다. ‘전체 국민을 위한 국가이익’만이 ‘양심’이다.   현실은 거꾸로다. 지난 연말 쌍특검법안 통과를 보자. 야권 183명 투표에 ‘50억 클럽’ 특검은 183명 찬성,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182명 찬성. 그 찬반 논리를 차치하고, 21세기 대낮에 무슨 ‘북한식 투표’ 느낌이다. 당론에 따른 투표 추종도와 자기들끼리의 정당 단합도는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일 터다. 물론 여당 역시 당론으로 투표 전 퇴장했으니 크게 할 말도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당내 이탈표에 ‘개딸’들의 ‘수박 색출’ 난동 역시 같은 맥락.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스스로 예종하는 풍토가 생긴 건 가장 슬프다. 당대표 경선 당시 여당 초선의원 50여 명이 ‘나경원 비난’ 연판장을 돌리며 용산에 주파수 맞춘 장면은 ‘영혼 소멸’의 상징이다. 영혼들이 없어지니 민주당의 가장 보수적 의원과 국민의힘의 가장 진보적 의원 사이, 즉 중도온건파는 모두 멸종이다. 민주적인 당내 토론도 함께….   당론 강제는 우리 의회를 심각한 위헌·위법적 상태로 만들었다. 국회는 국가의 기구다. 정당은 사적 결사체일 뿐이다. 정당법 2조는 “정책 추진,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이 목적인 국민의 자발적 조직”으로 정당을 규정한다. 자발적 결사체가 국가 기구인 국회의원들의 의사를 강제 구속하는 게 바로 위헌·위법적이다. 어느 법률에도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른 암 덩어리, 제왕적 당대표다. 모든 분란·갈등의 진원이다. 박정희 시대와 군부 정치, 3김 시대의 극한 대결 속에 강력한 자기 진영 통제를 위해 만든 제도가 당 총재다. 스스로는 당권을 징검다리 삼아 차기 대권을 노린다. 그리 하려니 모든 공천권과 당직 인사, 자금 루트를 거머쥐며 의원들을 꼭두각시로 만든다. 용산이 억지로 만든 김기현 당대표의 블랙코미디 경선, 한 틈의 대선 패배 성찰도 없이 당대표로 직행, 방탄 사당화 논란을 자초한 이재명 대표의 사례를 보라. 당대표 만들어 이익 공유를 꾀했던 게 송영길 캠프의 경선 돈봉투 살포 아닌가. 하등 쓸모없는 옥상옥 계륵(鷄肋), 당대표다.   미국처럼 의원들이 선출한 여야 원내대표가 독립적인 의회의 입법·정책을 주도해 가면 될 뿐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역시 야당 대표가 아니라 입법부 소속인 여야의 원내 지도부와 정책을 협치해 가면 될 터다. 평소 국고보조금·후원금 등을 관리하다 선거나 전당대회 즈음 공정한 후보 경선의 룰과 과정을 관리해 주는 미국 정당의 ‘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 공화당 RNC, 민주당 DNC)’ 정도 느슨한 조직이면 충분하다. 인사 청탁과 민원 창구일 뿐인 지역구 당협(지구당) 또한 선거 때의 한시적 자원봉사 조직이면 족하다. 당대표 눈도장 찍으러 몰려다닐 시간, 의정에 충실토록 하자. 당론 추종과 충성심만을 공천 잣대 삼는 건 망국의 지름길이다. 물론 꼼꼼하게 의정 성과를 계량해 공천에 반영할 데이터 시스템이 선행돼야 한다. 정치 신인 충원을 위해선 당원만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여론, ‘새피’ 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새 시대의 공천 시스템이 나와야 할 시간이다.   “천국에 가더라도 정당과 함께라면 가지 않겠다”(토머스 제퍼슨)는 비유처럼 우리 공룡 정당들은 극한 혐오의 대상이 된지 한참이다. 후보들에게 “불체포 특권 포기” “금고 이상 시 세비 반납” 등 갑질만 해댈 게 아니다. 쇄신의 대상은 바로 그 거대한 기득권 정당과 그 당의 제왕들이다. 강제 당론 투표, 전횡 일삼는 당대표직을 없애겠다고 국민에게 공약하라. 그것만이 진정한 정치 교체다. 그런 혁신에 표를 주고 싶다. 최훈 주필

    2024.01.22 00:24

  • [최훈 칼럼] ‘퍼스트레이디 스트레스’ 해소하고 가야

    최훈 주필 덕담 나눠야 할 새해 아침이다. 하지만 에두를 필요도 없이 정국은 혼돈의 블랙홀 속이다. 그 중심은 야권이 단독 통과시킨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대통령실은 “이송 즉시 거부”다. 민주당·정의당이 정권의 아킬레스 건이라 본 김건희 여사를 고리로 치명타를 가하려는 총선용 전략 카드임은 분명하다.   사실 2009~2012년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별로 알고 싶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국민의 특검 찬성 여론은 매우 높다. 67%(서울경제)~70%(국민일보)가 거부권 반대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여당은 ▶야당만의 특검 추천 ▶수사 브리핑 허용 ▶총선 전후의 조사 시점을 들어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는 악법”으로 규정한다. 검사 출신답게 법규 해석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국민의 70%는 과연 앞뒤 분간 못하는 바보일까. ‘법 해석’과 ‘국민 정서’의 사이. 상황은 왜 이리 흘러온 걸까.   윤석열 대통령은 “50살이 다 돼서 아내 만나 결혼(2012년)한 것”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다. 그러나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내의 사건들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학력·경력 부풀리기 등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김 여사는 “깊이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었다.   그에 앞선 2021년 여름,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야인인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을 권하려고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 적잖은 정치인이 들렀다. 당시 이들이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전해 준 얘기가 있다. “입당을 권유하자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김 여사가 ‘우리가 입당하면 저를 보호해 주실 수 있나요’라 하더라. ‘우리’ 라는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더라.” 다른 인사가 전한 장면. “바로 옆 김 여사가 ‘오빠는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니 (이 분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 하더라.” 당시 ‘아크로비스타의 기억’은 여당 관계자들의 이런 해석을 낳았다. “김 여사 스스로는 윤 대통령의 오늘이 있기까지 적잖은 기여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 정치적 창업 동업자쯤 여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 여사는 대선 직전 공개된 한 불법도청 녹음에선 “우리 남편은 완전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하긴 모든 아내에게 남편들은 바보일 수도 있겠으니….     ■  「 김 여사 특검법, 총선용 공세 맞지만 ‘찬성 70%’ 여론의 이유도 성찰해야 사과, 특별감찰관제 등 제도 정비로 국민 납득할 ‘문제해결’노력이 우선 」  우리의 법엔 ‘대통령 부인’의 권리·책임·의무 규정이 없다. 이리 보면 공인, 저리 보면 사인이니 경계선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엔 없다. 이 정권 들어 “그 문제는 내게 맡겨 달라”는 대통령의 의중 따라 특별감찰관제나 제2부속실 등의 관리 시스템도 없었다. 그러니 사달이 이어진다. 2022년 6월엔 코바나컨텐츠 임직원 3명이 김 여사의 봉하마을 일정에 동행, 참배해 클릭이 몰렸다. 그중 한 명이 “무속인 같다”는 게 출발이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무슨 법사나 무속의 얘기가 끊이지 않던 탓에 대중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사건쯤이다. 그중 한 명은 대선 기간 논란이던 ‘개 사과’ 인스타그램을 올린 이였다.   지금껏 구설은 끊이지 않아 왔다. ‘김건희 라인’이란 인사 논란이 해외 출장의 행사 의전·홍보 등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내부에서 불거져 나왔다. 김 여사가 여당 여성 의원들을 초청한 관저에선 한 영남 의원이 “오늘 온 여성 의원들은 다 공천되도록 여사께서 배려해 달라”고 농반진반 얘기를 꺼내, 관계자들이 “쉬쉬”에 애먹기도 했다. 대통령의 나토 순방 기간 중 리투아니아 언론은 김 여사가 경호원·수행원 등 16명과 나서던 중 명품 편집매장에 들른 사실을 보도, 야권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 두 달 뒤 재미교포 친북 목사에게 디올 백을 받은 건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오였다. 물론 불법 녹음의 덫에 경계와 긴장도 풀어졌을 터다. 하지만 유튜브에 뜬 당시 대화는 대통령 부인의 격(格)과 역할의 선(線)은 어디인지 심각한 성찰을 낳게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정치는 다 나쁘다고…” “저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면 제가 적극적으로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 “남북통일을 좀 해야 되고,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할 일 하시고….”   내용도 잘 모르는 여사 특검법안의 ‘찬성 70%’는 바로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인 듯싶다. 늘 조마조마한 국민의 우려와 걱정을 해소해 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특별감찰관제를 도입, 아예 야권이 추천하라고 하는 건 어떨까. 국가기밀 접근권을 제한한 제2부속실의 공적 울타리 안에서 여사가 떳떳하게 활동할 순 없는가. 무엇보다 디올 백 수수 만은 정중히 사과해야 옳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요즘 ‘6·29선언급 쇄신’만이 살길이라 한다. 한동훈 위원장 앞의 가장 높은 허들, ‘고양이 목 방울 달기’다. 최훈 주필

    2024.01.01 02:54

  • [세컷칼럼] ‘21년 검사’ 한동훈의 정치 도전…빛과 그림자

    지난주 대상홀딩스우라는 생소한 주식 종목이 7일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정치 데뷔를 앞둔 한동훈 법무장관이 서울 현대고 동기인 배우 이정재씨와 함께 식사한 뒤였다. 이씨의 여자친구가 이 회사의 2대 주주 오너다.    한 장관의 초임은 2001년 5월 1일 서울지검. 작년 5월 정무직 법무장관이 됐으니 검사 21년이었다. 깜짝 발탁이라 화제였으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변에 “한동훈이는 (고생도 많았으니) 이제 칼잡이는 좀 그만 시키려고 그래”라고 말했다는 전언이 들렸다. “칼 거둬주고 펜을 쥐어줬다”(장제원 의원)는 낙점 이유에서 대통령의 개인적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존 F 케네디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키우려고 논란 무릅쓰고 법무장관에 앉힌 사례도 소환됐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추미애를 법무장관에 앉혀 차기군을 넓히려 했으나 그만 제 발등에 도끼를 찍고 말았다.     ■  「 여권 차기 주자 1위의 등판 임박 그 영향력이 총선 주요 변수 부상 ‘지지층 과반이 60대 이상’은 한계 관건은 중도 잡을 균형·미래·실용 」     검사 한동훈은 인정사정없었다. 선배인 윤석열 검사조차 “한동훈이는 수사에 ‘유도리(융통성의 일본 표현)’가 없어”라고 했을 정도였다. “윤석열 빼곤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더라”는 얘기도 돌았다. 당한 사람들이야 인정이 어렵겠지만 검사로선 뭐라 깎아내리기 힘든 자세겠다. 스카프·넥타이·벨트·안경·가방에 펜까지 70년대생 X세대 출신의 감각도 온라인을 장식했다. 121일 앞의 총선. 변수 중 하나가 그의 총선 영향력이다.    여당의 구원투수로 50세의 장관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지형임은 분명하다. 사흘 전 “장래 대통령감이 누구냐”는 차기 지도자 선호 조사(한국갤럽, 12월 5~7일) 결과에서 한 장관은 16%로 여권 1위, 전체 2위다. 19%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여권의 다음은 홍준표(4%), 오세훈·이준석·원희룡(각 2%), 유승민(1%) 순. 지난 대선에서 외부의 ‘정치 신인 윤석열’을 영입하며 가까스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이후 총선의 구원투수조차 다시 밖에 기대야 하는 자생력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달 말 원포인트 개각으로 한 장관에게 비춰질 스포트라이트를 극대화해야 할 다급한 구도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퍼부은 국회의 맹폭 장면들로 그는 정치적 자본을 쌓았다. 여의도 정치문법 따윈 깡그리 무시였다. 이 ‘태도 보수’의 저돌적 반란에 “사이다 같다”“똑똑하고 말 잘한다”“자기 흠 없으니 당당하다”는 박수가 나왔다. 동시에 “싸가지없다” “깃털같은 가벼움” “재승박덕”이라는 세평이 엇갈렸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여당의 기대 지점 역시 민주당에 타격을 가할 21년 칼잡이의 선거 전투력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다. 차기 여권 1위 한동훈 지지층의 과반(54%)은 60~70대 이상 고령층이다. 그들이 오래도록 공과 흠을 다 보아왔던 홍준표·오세훈·원희룡의 노련함보다 뉴페이스에 보수의 차기를 베팅한 결과다. 20·30·40 대의 한동훈 지지는 6%,12%,10%에 그친다. 여당 지지자들은 41%가 한 장관을 압도적 1위로 꼽았지만 민주당 응원자들은 1%만 그를 골랐다. 역시 윤 대통령 직무를 긍정 평가하는 이들의 42%는 대통령의 막내동생 같은 그를 압도적 1위로 올렸지만, 부정평가층에선 3% 바닥이다. 무엇보다 총선의 “야당 다수 승리” 기대가 51% 과반으로 “여당 다수 승리”(35%)를 한참이나 앞서 있다. ‘신인 한동훈’에겐 명확한 빛과 그림자다.    정치의 오랜 딜레마가 하나 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에만 오면 다 바보가 될까.’ 2013년 예일대에서 수학 더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분류해 ‘총기규제와 범죄의 함수’ 문제를 푸는 비교 실험을 해봤다. 그런데 자기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 문제에는 똑똑한 이들이 더 오답을 내는 경향을 보였다. 바로 ‘이념’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올바른 답보다 늘 자신이 옳다는 걸 뒷받침하는 답을 찾아갔다. 그 좋은 두뇌를 그렇게만 사용해 서로 싸움만 거세지니 “이념의 진영에 갇히면 똑똑한 이들이 더 바보가 된다”는 결론이었다(에즈라 클라인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똑똑한 한동훈’의 성패 가를 잣대는 명확하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거대한 30%대의 중도층에 어필할 ‘확장성’이다. 검사와 정치는 상극이다. 현실의 정치는 곳곳 선악 분명치 않은 회색 지대다. 무슨 고시처럼 정해진 답도 없다. 검사야 피의자와 타협, 조정할 일도 없다. 그러나 매번 차선, 차악을 골라가야 할 조정과 균형(balance)의 예술이 그가 부닥쳐야 할 정치다.    민주당을 좀 베 달라는 여당의 미션을 그가 피할 순 없을 터다. 하지만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의 환호에 취해 골수우파 진영의 돌격대장에 머문다면 정치적 미래란 없다. 정치의 성공 조건은 늘 ‘모든 것의 밸런스’다. ‘나라의 미래’는 바로 새 시대의 신인인 그가 향해야 할 목표다. ‘이민청’ 같은 자신만의 미래·실용 어젠다 찾아라. 막장에 다다른 우리 정치. 새로운 자극과 혁신의 ‘정치 교체’ 가 바로 갑갑한 이 시대의 이성이다. 그게 한동훈이든, 다른 누구든 말이다.       글 = 최훈 주필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2023.12.12 23:00

  • [최훈 칼럼] ‘21년 검사’ 한동훈의 정치 도전…빛과 그림자

    최훈 주필 지난주 대상홀딩스우라는 생소한 주식 종목이 7일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정치 데뷔를 앞둔 한동훈 법무장관이 서울 현대고 동기인 배우 이정재씨와 함께 식사한 뒤였다. 이씨의 여자친구가 이 회사의 2대 주주 오너다.   한 장관의 초임은 2001년 5월 1일 서울지검. 작년 5월 정무직 법무장관이 됐으니 검사 21년이었다. 깜짝 발탁이라 화제였으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변에 “한동훈이는 (고생도 많았으니) 이제 칼잡이는 좀 그만 시키려고 그래”라고 말했다는 전언이 들렸다. “칼 거둬주고 펜을 쥐어줬다”(장제원 의원)는 낙점 이유에서 대통령의 개인적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존 F 케네디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키우려고 논란 무릅쓰고 법무장관에 앉힌 사례도 소환됐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추미애를 법무장관에 앉혀 차기군을 넓히려 했으나 그만 제 발등에 도끼를 찍고 말았다.     ■  「 여권 차기 주자 1위의 등판 임박 그 영향력이 총선 주요 변수 부상 ‘지지층 과반이 60대 이상’은 한계 관건은 중도 잡을 균형·미래·실용 」    검사 한동훈은 인정사정없었다. 선배인 윤석열 검사조차 “한동훈이는 수사에 ‘유도리(융통성의 일본 표현)’가 없어”라고 했을 정도였다. “윤석열 빼곤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더라”는 얘기도 돌았다. 당한 사람들이야 인정이 어렵겠지만 검사로선 뭐라 깎아내리기 힘든 자세겠다. 스카프·넥타이·벨트·안경·가방에 펜까지 70년대생 X세대 출신의 감각도 온라인을 장식했다. 121일 앞의 총선. 변수 중 하나가 그의 총선 영향력이다.   여당의 구원투수로 50세의 장관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지형임은 분명하다. 사흘 전 “장래 대통령감이 누구냐”는 차기 지도자 선호 조사(한국갤럽, 12월 5~7일) 결과에서 한 장관은 16%로 여권 1위, 전체 2위다. 19%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여권의 다음은 홍준표(4%), 오세훈·이준석·원희룡(각 2%), 유승민(1%) 순. 지난 대선에서 외부의 ‘정치 신인 윤석열’을 영입하며 가까스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이후 총선의 구원투수조차 다시 밖에 기대야 하는 자생력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달 말 원포인트 개각으로 한 장관에게 비춰질 스포트라이트를 극대화해야 할 다급한 구도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퍼부은 국회의 맹폭 장면들로 그는 정치적 자본을 쌓았다. 여의도 정치문법 따윈 깡그리 무시였다. 이 ‘태도 보수’의 저돌적 반란에 “사이다 같다”“똑똑하고 말 잘한다”“자기 흠 없으니 당당하다”는 박수가 나왔다. 동시에 “싸가지없다” “깃털같은 가벼움” “재승박덕”이라는 세평이 엇갈렸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여당의 기대 지점 역시 민주당에 타격을 가할 21년 칼잡이의 선거 전투력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다. 차기 여권 1위 한동훈 지지층의 과반(54%)은 60~70대 이상 고령층이다. 그들이 오래도록 공과 흠을 다 보아왔던 홍준표·오세훈·원희룡의 노련함보다 뉴페이스에 보수의 차기를 베팅한 결과다. 20·30·40 대의 한동훈 지지는 6%,12%,10%에 그친다. 여당 지지자들은 41%가 한 장관을 압도적 1위로 꼽았지만 민주당 응원자들은 1%만 그를 골랐다. 역시 윤 대통령 직무를 긍정 평가하는 이들의 42%는 대통령의 막내동생 같은 그를 압도적 1위로 올렸지만, 부정평가층에선 3% 바닥이다. 무엇보다 총선의 “야당 다수 승리” 기대가 51% 과반으로 “여당 다수 승리”(35%)를 한참이나 앞서 있다. ‘신인 한동훈’에겐 명확한 빛과 그림자다.   정치의 오랜 딜레마가 하나 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에만 오면 다 바보가 될까.’ 2013년 예일대에서 수학 더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분류해 ‘총기규제와 범죄의 함수’ 문제를 푸는 비교 실험을 해봤다. 그런데 자기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 문제에는 똑똑한 이들이 더 오답을 내는 경향을 보였다. 바로 ‘이념’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올바른 답보다 늘 자신이 옳다는 걸 뒷받침하는 답을 찾아갔다. 그 좋은 두뇌를 그렇게만 사용해 서로 싸움만 거세지니 “이념의 진영에 갇히면 똑똑한 이들이 더 바보가 된다”는 결론이었다(에즈라 클라인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똑똑한 한동훈’의 성패 가를 잣대는 명확하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거대한 30%대의 중도층에 어필할 ‘확장성’이다. 검사와 정치는 상극이다. 현실의 정치는 곳곳 선악 분명치 않은 회색 지대다. 무슨 고시처럼 정해진 답도 없다. 검사야 피의자와 타협, 조정할 일도 없다. 그러나 매번 차선, 차악을 골라가야 할 조정과 균형(balance)의 예술이 그가 부닥쳐야 할 정치다.   민주당을 좀 베 달라는 여당의 미션을 그가 피할 순 없을 터다. 하지만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의 환호에 취해 골수우파 진영의 돌격대장에 머문다면 정치적 미래란 없다. 정치의 성공 조건은 늘 ‘모든 것의 밸런스’다. ‘나라의 미래’는 바로 새 시대의 신인인 그가 향해야 할 목표다. ‘이민청’ 같은 자신만의 미래·실용 어젠다 찾아라. 막장에 다다른 우리 정치. 새로운 자극과 혁신의 ‘정치 교체’ 가 바로 갑갑한 이 시대의 이성이다. 그게 한동훈이든, 다른 누구든 말이다. 최훈 주필

    2023.12.11 00:38

  • [세컷칼럼] ‘싸가지 없다’는 이준석의 신당, 왜 화제일까

    생각을 해주게 한 최근의 TV 예능 장면. BTS를 만든 방시혁(50세) 하이브 의장과 박진영(51세) JYP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의 대화다. 박진영은 자신의 AD로 일하던 방시혁의 30대를 이렇게 기억했다. “같이 일하자 했더니 대뜸 ‘뭘 해주실 거예요’라고 무뚝뚝이더라. 참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주변 이들도 화장실 가서 ‘쟨 왜 그래’ 수군거리더라. ‘형. 사람마다 사물을 담는 시각이 모두 다른데 논리로 설득이 돼요’라며 한심한 반항만 해대고…. 그땐 자존심 때문에 ‘왜 안 돼’ 우겼는데 십 수년 지나 보니 진짜 논리로만 설득은 안 되더라.”    방 의장도 “그땐 내가 세 치 혀로 천냥 빚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했었다”며 웃었다. “그 시니컬함에다 투덜투덜, 찡얼찡얼하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 해놓더라”는 게 JYP의 무마(?)였다. ‘싸가지 없던’ 방시혁을 조리돌림해 아웃사이더로 밀어냈다면 그와 BTS는 지금 어찌 됐을까….   ■  「 “기존 정당 확 바뀌어야” 열망 담겨 신당에의 시중 관심과 기대 적잖아 거대정당 기득권 집착, 누리려다간 ‘새 정치’ 희구하는 총선 심판 직면 」  곳곳 ‘이준석 신당’이 화제다. 38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얼추 그 당시 방시혁 나이다. “안철수씨 조용하세요”와 “미스터 린튼” 영어 면박으로 싸가지 논박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묘한 반전이 생긴다. 나이 좀 있는 분들조차 이런 얘기다. “아니 하버드대 학부에서 컴퓨터·경제학 배운 이준석이 싸가지가 있었으면 지금쯤 금융·IT의 고액 월급쟁이 하지, 뭔 이런 험한 꼴 겪겠느냐.” 반박이 어렵다. 선거 때면 반짝하다 아니다 싶으면 생계로 도망친 게 우리 ‘젊은 피’다. 금배지 한번 못 달았지만 12년 동안 이 꼴사나운 정치의 가시밭길을 꾸준히 걸어온 그의 궤적만은 평가하는 분위기다.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 겪어 본 ‘별종’이 메기처럼 정치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들도 스며 있겠다.    지금 말뿐인 이준석 신당(유승민이 결합한)의 지지도는 21.1%로 국회 6석의 정의당(1.8%)을 압도하고 있다.(10월 30~31일, 피플네트웍스리서치) 결국 신당을 만들지, 몇 석이나 얻을지, 여야 어디에 타격일지 설왕설래다. “거대 정당의 과반 표결을 가를 캐스팅보트 의석 만큼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화·협치의 촉매로서의 기대다. 그러나 더욱, 가장 중요한 본질은 새 정치 세력에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인요한 혁신위, 용산의 총선 차출, 이재명 사당의 친명 공천보다 훨씬 더 말이다.    바로 두 기득권 정당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진정 누가 더 싸가지가 없느냐”의 문제다. 두 재벌 정당의 ‘업보(業報)’를 한번 따져 보자. 우리 정치는 한마디로 ‘586 운동권’과 ‘검사 등 법조인’들의 결투다. 민주당 초선 81명 중 운동권이 27%(22명), 그중 10명이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국민의힘 초선의 주축은 법조인·관료 42명이다. 여야 합쳐 검사·변호사 등 법조인은 44명으로 15.8%(초선의 17.7%). 전체 인구 중 몇 %가 운동권·율사 출신이길래 이리 과잉대표돼 있을까. 일상이 된 막말 맞짱의 주인공들 보라. 십중팔구 운동권 대 검사 등 법조인이다. 투쟁이건 소송이건 전부 아니면 전무이니 대화·양보·타협의 경험과 기술이 약한 탓이다.    미국 연방 의회는 공공서비스나, 주 정부 선출직 경험의 검증된 신인이 67.4%다. 상·하원 535명 중 320명(59.8%)이 비즈니스 출신이다.(매일경제신문) 세상과 부대끼며 돈 버느라 고생 좀 해봤으니 그 현장과 입법·정책의 연결이 가능하다.    우리의 ‘세대 단절’은 더욱 심각하다. 선량들 중 20대·30대·40대가 0.7%(2명), 3.7%(11명), 12.7%(38명)뿐이다. 유권자의 비율인 20대 15.5%, 30대 15.9%, 40대 19%와 비교하면 거대 정당의 “청년 배려”란 보이스피싱 수준. 젊음이 현장에서 민주주의 체득하고, 대화·타협·조정의 능력을 키워주는 게 정치 선진국이다. 그들의 등원·출마 등 첫 정치 입문 나이? 클린턴(28), 오바마(31), 데이비드 캐머런(35), 메르켈(36), 마크롱(30), 리시 수낵(35) 등등. 60대에 본업 떠나 대통령이 되는 사건이란 그들에겐 기적 같은 일이겠다. ‘돌연변이’ 트럼프를 뺀다면….    진보와 보수의 오랜 쟁점이 세대교체이기도 하다. “전 세대에게 물려받은 정치 제도나 관행을 준수하라 한다면 신이 준 인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없다”(토머스 페인)는 게 진보다. 30년 이상 ‘한물간 법’은 모두 폐기하자고도 주창한다. 반면 보수는 “모든 세대는 앞 세대로부터 제공받은 지혜와 업적을 보존하고, 그 혜택을 후대에 전해주는 걸 목표로 필요한 부분을 개혁해야 한다”(에드먼드 버크)고 맞선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이 있다. “모든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누리기만 해선 안 된다, 늘 자신을 개혁하라”는 계율이다.    꼭 ‘이준석의 신당’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정치’란 시대정신의 용암이 분출할 심판의 임계점에 한국 정치가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 거대 정당의 쇄신과, 신당의 시원한 도전. 모두를 지켜볼 시간이다.       글 = 최훈 주필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2023.11.21 23:00

  • [최훈 칼럼] ‘싸가지 없다’는 이준석의 신당, 왜 화제일까

    최훈 주필 생각을 해주게 한 최근의 TV 예능 장면. BTS를 만든 방시혁(50세) 하이브 의장과 박진영(51세) JYP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의 대화다. 박진영은 자신의 AD로 일하던 방시혁의 30대를 이렇게 기억했다. “같이 일하자 했더니 대뜸 ‘뭘 해주실 거예요’라고 무뚝뚝이더라. 참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주변 이들도 화장실 가서 ‘쟨 왜 그래’ 수군거리더라. ‘형. 사람마다 사물을 담는 시각이 모두 다른데 논리로 설득이 돼요’라며 한심한 반항만 해대고…. 그땐 자존심 때문에 ‘왜 안 돼’ 우겼는데 십 수년 지나 보니 진짜 논리로만 설득은 안 되더라.”   방 의장도 “그땐 내가 세 치 혀로 천냥 빚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했었다”며 웃었다. “그 시니컬함에다 투덜투덜, 찡얼찡얼하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 해놓더라”는 게 JYP의 무마(?)였다. ‘싸가지 없던’ 방시혁을 조리돌림해 아웃사이더로 밀어냈다면 그와 BTS는 지금 어찌 됐을까….     ■  「 “기존 정당 확 바뀌어야” 열망 담겨 신당에의 시중 관심과 기대 적잖아 거대정당 기득권 집착, 누리려다간 ‘새 정치’ 희구하는 총선 심판 직면 」    곳곳 ‘이준석 신당’이 화제다. 38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얼추 그 당시 방시혁 나이다. “안철수씨 조용하세요”와 “미스터 린튼” 영어 면박으로 싸가지 논박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묘한 반전이 생긴다. 나이 좀 있는 분들조차 이런 얘기다. “아니 하버드대 학부에서 컴퓨터·경제학 배운 이준석이 싸가지가 있었으면 지금쯤 금융·IT의 고액 월급쟁이 하지, 뭔 이런 험한 꼴 겪겠느냐.” 반박이 어렵다. 선거 때면 반짝하다 아니다 싶으면 생계로 도망친 게 우리 ‘젊은 피’다. 금배지 한번 못 달았지만 12년 동안 이 꼴사나운 정치의 가시밭길을 꾸준히 걸어온 그의 궤적만은 평가하는 분위기다.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 겪어 본 ‘별종’이 메기처럼 정치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들도 스며 있겠다.   지금 말뿐인 이준석 신당(유승민이 결합한)의 지지도는 21.1%로 국회 6석의 정의당(1.8%)을 압도하고 있다.(10월 30~31일, 피플네트웍스리서치) 결국 신당을 만들지, 몇 석이나 얻을지, 여야 어디에 타격일지 설왕설래다. “거대 정당의 과반 표결을 가를 캐스팅보트 의석 만큼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화·협치의 촉매로서의 기대다. 그러나 더욱, 가장 중요한 본질은 새 정치 세력에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인요한 혁신위, 용산의 총선 차출, 이재명 사당의 친명 공천보다 훨씬 더 말이다.   바로 두 기득권 정당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진정 누가 더 싸가지가 없느냐”의 문제다. 두 재벌 정당의 ‘업보(業報)’를 한번 따져 보자. 우리 정치는 한마디로 ‘586 운동권’과 ‘검사 등 법조인’들의 결투다. 민주당 초선 81명 중 운동권이 27%(22명), 그중 10명이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국민의힘 초선의 주축은 법조인·관료 42명이다. 여야 합쳐 검사·변호사 등 법조인은 44명으로 15.8%(초선의 17.7%). 전체 인구 중 몇 %가 운동권·율사 출신이길래 이리 과잉대표돼 있을까. 일상이 된 막말 맞짱의 주인공들 보라. 십중팔구 운동권 대 검사 등 법조인이다. 투쟁이건 소송이건 전부 아니면 전무이니 대화·양보·타협의 경험과 기술이 약한 탓이다.   미국 연방 의회는 공공서비스나, 주 정부 선출직 경험의 검증된 신인이 67.4%다. 상·하원 535명 중 320명(59.8%)이 비즈니스 출신이다.(매일경제신문) 세상과 부대끼며 돈 버느라 고생 좀 해봤으니 그 현장과 입법·정책의 연결이 가능하다.   우리의 ‘세대 단절’은 더욱 심각하다. 선량들 중 20대·30대·40대가 0.7%(2명), 3.7%(11명), 12.7%(38명)뿐이다. 유권자의 비율인 20대 15.5%, 30대 15.9%, 40대 19%와 비교하면 거대 정당의 “청년 배려”란 보이스피싱 수준. 젊음이 현장에서 민주주의 체득하고, 대화·타협·조정의 능력을 키워주는 게 정치 선진국이다. 그들의 등원·출마 등 첫 정치 입문 나이? 클린턴(28), 오바마(31), 데이비드 캐머런(35), 메르켈(36), 마크롱(30), 리시 수낵(35) 등등. 60대에 본업 떠나 대통령이 되는 사건이란 그들에겐 기적 같은 일이겠다. ‘돌연변이’ 트럼프를 뺀다면….   진보와 보수의 오랜 쟁점이 세대교체이기도 하다. “전 세대에게 물려받은 정치 제도나 관행을 준수하라 한다면 신이 준 인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없다”(토머스 페인)는 게 진보다. 30년 이상 ‘한물간 법’은 모두 폐기하자고도 주창한다. 반면 보수는 “모든 세대는 앞 세대로부터 제공받은 지혜와 업적을 보존하고, 그 혜택을 후대에 전해주는 걸 목표로 필요한 부분을 개혁해야 한다”(에드먼드 버크)고 맞선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이 있다. “모든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누리기만 해선 안 된다, 늘 자신을 개혁하라”는 계율이다.   꼭 ‘이준석의 신당’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정치’란 시대정신의 용암이 분출할 심판의 임계점에 한국 정치가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 거대 정당의 쇄신과, 신당의 시원한 도전. 모두를 지켜볼 시간이다. 최훈 주필

    2023.11.20 00:42

  • [최훈 칼럼] 대통령이 달라지면, 그게 혁신이다

    최훈 주필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운전까지 해주었다. UAE·카타르까지 올 들어 107조원의 중동 투자 이끌어 냈다. 세일즈 나선 국가 CEO에의 예우로 밖의 윤석열 대통령은 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귀국 뒤 접한 지지율은 33%(한국갤럽 10월 24~26일, 부정평가 58%)였다. 보수의 아성이던 60대에서조차 긍정 48%·부정 47%(전주엔 46%·47%)의 반반이었다. 선거의 대주주인 수도권(서울 32% 대 59%, 인천경기 28% 대 63%)은 험악하다. 보수 텃밭이던 부산울산경남도 42% 대 47%. 미세 우위인 대구경북(49% 대 43%) 제외한 전 지역이 경고등이다. 보수 진영조차 대통령을 미더워해 하지 않는다. 정권의 위기이자 고비다.     ■  「 고비맞은 민심의 대통령 지지 추이 불만 대부분이 ‘독단·일방적·불통’ 큰 포용, 넓은 인사, 친절 설득으로 국민 모두의 ‘공화국 대통령’ 기대 」    애써 온 대통령이야 섭섭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잘못의 이유를 다시 수치가 일러준다. 경제·민생·물가(23%)라는 실물을 빼고는 독단적·일방적(9%), 외교(8%), 소통미흡(6%), 전반적으로 잘못(5%), 인사(4%), 통합협치 부족(4%) 등 모두 대통령 개인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다. “너무 거칠다”였다. 독선·불통·고집과 동의어다. 63세의 대통령이 그럼 어떻게 달라지란 얘기일까.    대통령이 더 커져야 한다. 27년 검사였던 대통령은 “새의 왼쪽 날개가 자꾸 뒤로 가려는데” 무슨 협치냐 했다. 싸우라고 한다. 대통령은 그러나 새의 오른쪽 날개가 아니다. 몸통의 방향과 좌우 날갯짓을 이끌 새의 머리다. 12명의 역대 대통령 모두 결말이 불행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란 자기 사명 망각해서였다. 5155만 모두의 대통령이 되라는 건 헌법의 명령이다. 모두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게 공화(共和) 아닌가.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지도자다. “어떤 이유든 특정한 계층·신분·세력을 차별·소외 말라” “공동체 구성원으로 모두를 인정·포용하라” “그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라”는 정신이다. 설득과 소통으로 갈등 풀어 통합과 상생공존 이루라는 건 그의 선택 아닌 의무다.   7월 초 38%의 우상향이던 대통령 지지가 하향한 결정타는 이후 “공산주의 추종, 반국가 세력”과의 전쟁 선언한 ‘적(敵) 만들기’였다. 하필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이념이 제일 중요하다”며 오른쪽으로만 가니 가운데 몰려 있던 중도층의 마음이 멀어져 버렸다. 공화국의 대통령에겐 모두가 집토끼다. 무슨 집토끼·산토끼가 따로 있는가. 보수 대통령은 농촌 대가족의 가장(家長) 같은 존재다. 농사 잘 지어 배부르고 등 따습게 가족을 위한다. 말 안 듣고 성치 않은 자식까지 모두 열 손가락이다. 씀씀이 아껴 후손들까지 배려하는 속 깊고 도량 넓은 큰 어른이다. 진즉 대통령이 야당에 먼저 손 내밀어 도와 달라 했다면…. 지금 심판의 칼날은 이재명 대표와 168석의 공룡 민주당을 겨누고 있을 터다.   인사가 넓어져야 한다. 총리·비서실장·여당대표 등 빅3는 물론 지휘부 대부분이 고시·관료·검사 출신이다. 아니면 캠프 출신, 대통령과 학연 등의 개인 친분이다. “고시와 비고시, 대통령의 단 하나 인재 기준”이란 얘기 나온 지 한참이다. 자기 임기 사고 안 나게 관리에 능한 관료들만 북적이니 도전적·창의적·장기적 그랜드 국가 비전은 하세월이다.   워낙 좁은 인력 풀의 돌려막기에 ‘MB 2기 정부’ 꼬리표 달린 것도 모자랐던가. 요즘엔 “간신들이 많은 것 같다”는 시중의 의구심마저 들린다. 자리·출세·연명·공천 등 결국은 자기 이익 목적인 논리를 그럴듯하게 뒤섞어 제언한다. 자꾸 적을 만들라 부추긴다. 대통령 빛날 때는 옆에 서 있다 화살 빗발치면 바람처럼 사라진다. “대통령께서 관련 수사를 많이 하셔서 그 분야엔 해박하신 전문가다.” 듣는 모두를 ‘바보’로 여긴 최악의 아부였다. 국정의 말썽마다 실명과 책임이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말했다”라는 커튼 뒤 변조음뿐이다. 유튜브엔 국회의 야당과 맞짱 뜨는 장관들의 전투 일색이다. ‘정의의 사도’인 양 자신은 멋져 보이겠지만 그 모든 부담 다 대통령의 몫으로 돌아온다. 선거의 심판대에 덩그러니 홀로 오를 이 누구겠는가. 퇴임 대비 총선에 대통령 사람 심기라…. 참으로 허망한 정치공학일 터다. 보라. 그 많던 친박·친이·친문들 다 어디 가 있는가. 대통령 스스로 민심을 얻으면 알아서 줄 잘 서는 게 국민의힘, 아니 정치의 오랜 습성일 뿐이다.   친절한 대통령이 보고프다. 국민과의 대화가 가물가물하다. 위임 CEO가 오너인 국민에게 하는 보고는 의무다. 정권의 치적일 일본과의 관계개선 역시 5700자 일방 담화로 끝내니 맥락 모를 국민들만 갑갑하다. 가장 잘하는 것? 가장 못하는 것? 그러니 다 외교다. 국민 70%가 불안하다는 일본 오염수, 개혁적 결단으로 상찬받았어야 할 긴축 건전 재정 역시 공화국 대통령의 육성 설명이 잘 안 들린다. 그러면 모든 게 ‘독선적’으로 뒤바뀌고 만다.   중동, 1%대 잠재성장률, 내년 트럼프 복귀 조짐까지…. 위기다. 극복할 대통령의 자본과 동력은 국민의 믿음뿐이다. 혁신위라…. 민심 되찾을 혁신은 단 하나. 대통령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다. 최훈 주필

    2023.10.30 00:56

  • [최훈 칼럼] 민주당을 기웃거리는 오래된 유령

    최훈 주필 168석 제1 야당의 실망스럽고 섬찟한 장면은 지난달 국회의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였다. 당내 30여 반란표가 표적이었다. “검찰과 한통속 의원들은 속죄하라”“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끝까지 추적해 정치 생명을 끊을 것”이란 친명계와 개딸들의 ‘색출’‘숙청’ 협박이 이어졌다.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들을 다 박살내자”며 개딸은 14명의 실명 좌표도 찍었다. “라이플 소총” 살해 협박이 뜨고, 비명계 의원들의 사무실로 몰려갔다.   공천 생존이 다급한 일부 의원들은 “난 부결이었다”는 고백에 이어 부결 기표 인증샷까지 올렸다. 비밀투표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은 무너졌다. “살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모두 다 인증하라”는 개딸의 압박은 더욱 기세등등하다.     ■  「 수박색출·낙인찍기·부결 인증샷 ‘다름’ 억누른 전체주의 징후 속출 민주화 기여 정통·정체성 회복해   ‘다름’ 인정할 자유·민주 모델 돼야 」    마치 1930년대 정점을 찍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전체주의의 유령이 21세기의 벌건 대낮에 되살아나 기웃거리는 분위기다. 이 거대 정당은 팬데믹이 강제한 전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었다. 미증유의 공포 속 정부엔 비상 대권이 주어졌다. 마스크와 QR코드, 동선 추적의 족쇄 속에 이동, 경제 활동, 집회의 자유에 제약이 가해졌다. ‘위기 극복’‘전체의 이익’에 복종하며 개인은 사라졌다. 이 공황 상태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여당에 180여 석을 안겨주었다. 코비드란 괴물에의 두려움이 빚어낸 돌연변이 공룡이다. 코로나 피해 보조란 거부 못할 명분 아래 물 쓰듯 돈을 쓴 문재인 정부였다. 집권 중 416조원 늘어난 965조원(GDP의 47%)의 국가부채를 쌓았다. 지구상 최악의 전체주의인 북한엔 어떤 비판 의식도 없었다. 당내에선 당론(공수처 신설)에 반대한 금태섭 의원을 축출시켰다. ‘자유’란 단어는 자취를 감췄다. 표현의 자유까지 통제하려던 ‘언론중재법’만 불발로 그쳤다.   전체주의는 다름을 용납지 않는다. 집단이 곧추세운 특정 신념, 이데올로기 외엔 반역이다. 그 신념이란 적당한 사실과 통계, 과학을 허구와 섞어 버무려져 대중을 현혹한다. 대개는 선전선동에 능한 영악한 독재자와 결합된다. 제1의 계율은 “지도자는 항상 옳다”다. 나머지는 “파블로프의 개”다. 자유·민주의 반대가 전체주의·독재이니 그야말로 자유·민주와 상극이다.   늘 안팎의 적도 필요하다. 히틀러에겐 유대인, 스탈린에겐 차르·부르주아·지주였다. 논리적 토론, 표현의 자유, 공정한 선거, 독립된 사법부를 경멸했다.   지금 민주당의 제1 계율. ‘이재명 무오류’다. 어떠한 내려놓음과 멈춤, 성찰의 시간도 없이 그는 대선 패배 직후 손쉬운 등원, 당 대표의 길로 갔다. 권력욕·방탄·생존·생계형 궤적 외에 그의 삶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어떤 헌신을 했었는지 명확한 기억이 없다. 규제와 경제위기, 사회의 불공정·불평등, 북한 핵 등 타깃 삼아 극복해야 할 제1당이 오로지 대통령과 일본만을 주적으로 삼는다. ‘묻지마’ 비난의 ‘외눈박이 공룡’이다.   전체주의의 특성은 적에 대한 표지(標識) 낙인이다. 나치는 ‘다윗의 노란 별’을 유대인에게 달았다. 중국 홍위병들은 ‘주자파(자본주의 앞잡이)’‘삼반분자(반마오쩌둥, 반당, 반사회주의적)’가 적힌 나무 팻말과 고깔모자를 씌웠다.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인민의 적’이었다. 독재자의 비밀부대들이 어슬렁거리며 분출 대상을 찾는 공격성이 전체주의다. 지금 민주당을 위협하는 ‘수박’의 낙인과 문자폭탄, 좌표찍기의 심리적 테러 조짐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밀고(密告)와 고백은 또 다른 징후다. 1936~38년 스탈린 치하의 ‘모스크바 재판’이 사례. 숙청·처형된 고위 공산당원들이 “트로츠키, 제국주의자와 공모, 소련 체제를 전복할 음모를 꾸몄다”고 자백한다. 짓누르는 공포 속에 동료의 반당을 고하고, 처벌을 낮추려 먼저 적당한 실토를 한다. 요즘 민주당의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소신있게 가결의 명분을 설파한 의원들의 실명이 동료들로부터 누출된다. ‘부결 인증샷’ 강요에 이어 “강성파 의원들과는 (녹음이) 두려워 대화조차 못하겠다”는 토로도 들린다.   스스로의 행위가 왜 잘못인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집단 최면의 상태인 때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범 재판에 붙잡혀 온 아돌프 아이히만의 진술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깨달았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며 무비판적으로 명령을 수용하는 일상의 평범함이 큰 악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악은 생각지 않는 것이며, 깨우치지 못한 무관심야말로 악의 기원”이란 지적이다.   민주당은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 개인의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 온 전통과 긍지의 정당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보수 정당을 견제할 세상의 소금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그러니 스스로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모델이 돼야 한다. 이렇듯 자기 정체성을 무너뜨리면 민주당은 과연 무엇으로 존재하려는가. 어슬렁거리는 악령(惡靈)을 내쫓고, 다름을 포용할 진짜 ‘민주당’으로의 복귀를 촉구한다. 최훈 주필

    2023.10.09 00:51

  • [세컷칼럼] ‘양날의 칼’ 대통령의 이념 전쟁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국정 이념을 반복 강조해 왔다.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그 세력은 늘 민주주의·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광복절), “공산 전체주의의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8월 29일 민주평통), “이념적으로 극과 극이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싸워라”(29일 국무회의),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이념” “1 더하기 1을 100이라 하는 세력들하고는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8월 30일 여당 연찬회).   ■  「 ‘공산전체’ ‘반국가세력’ 잇단 비판 “확고한 자유민주 체제” 선의겠지만 자칫 ‘자유 위축’ 가져올 위험 공존 헌법과 민생, 이념 논쟁 잣대 삼기를 」   놀랍고 느닷없다는 일감(一感)이 자연스럽다. 가장 정보 많고 생각 많을 대통령의 말인지라 그 전후 맥락이 궁금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이념에 조언·상담 역할을 해온 한 측근에게 물어봤다.    -톤이 강하다. “윤 대통령이 숙독한 책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 등)다. 같은 언어, 핏줄인데 한국은 왜 세계적 성공을, 북한은 비참한 실패로 갔는가. 바로 제도·체제 차이다. 제도를 선택한 게 이념이다. 왠 뜬금없는 이념 타령이냐 하겠지만 민생경제를 위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작동해야 하고, 올바른 이념이 확고해져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번영·빈곤의 관건은 지리·문화적 요인이나 무지(無知)의 수준이 아니라 경제제도가 착취적이냐, (사유재산, 공평한 법체계처럼) 포용적이냐의 차이라고 강조한다.    -오랜만의 ‘공산전체주의’ 단어다. “당연히 북한이다. 가짜 민주주의인 북·러·중을 포괄하지 않겠는가.”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의 뿌리는 한민당 아닌가. 한민당은 그래도 반공·친미 노선을 견지했다. 김성수·송진우·신익희·조병옥 선생들을 보라. 그러나 언제부터 민주당은 변질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무리한 ‘종전선언’ 추진이 대표적이다. 종전이 선언되면 유사시 한반도의 병참 보급선인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등은 존립근거가 없어진다. 문 정부는 독일·덴마크의 유엔사 참여, 역할 확대 요청도 거부했다. 유엔사를 불편해 한 탓이다.”    -여당, 장관들엔 왜 싸우라 주문하나.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전문성·과학성만 갖고는 국정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여권은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는 보신주의가 팽배하다. 용산 주변에선 ‘전투적 자유주의’가 권력 이너서클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인간적으론 친해도 가치가 맞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    - 그게 총선 공천 기준도 되나. “정당도 동지(同志)라 하지 않는가. 국민의힘이 과연 이 같은 핵심 이념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해낼 가치집단인지…. 윤 대통령은  확신이 없다. 총선에선 ‘가치에 대한 헌신’도 고려되지 않을까 싶다.”    -도움이 될까. “보수 내에서도 헷갈리는 건 맞다. 홍범도 건도 긁어부스럼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거북하다고 이리저리 피하는 건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 마이너스라도 바로잡을 건 바로잡는다는 고집이 강하다.”    보수우파야 박수칠 일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맨 앞인 십자군식 이념 전쟁이란 양날의 칼이다. 살아 있는 최고권력이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 ‘반(反)국가’를 단정하는 순간, 앞의 모든 중간지대는 사라진다. 생각과 영혼을 명확히 이분하기엔 세상도 너무 복잡해졌다. 그러니 이념이란 바둑의 정석처럼 “열심히 공부한 뒤 다 잊어버려야 최선”일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엔 과거 ‘색깔론’ 트라우마도 잠복돼 있다. 정부나 정책을 감시·비판해야 할 야권과 언론 등의 심리적 위축도 불가피하다. 행여 검경 등 사정기관까지 ‘전투적’으로 대통령을 따라간다면 불안, 갈등의 확산 역시 걱정을 피할 길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지키자는 애초의 ‘선의’가 거꾸로 자유를 제약하며 길을 잃을 위험들이다.    우리 공동체의 합의된 이념은 이미 헌법에 잘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바로 자유·민주·공화다.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를 택했다. 개인의 자유들이란 늘 충돌하니 ‘다수의 지배’인 민주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는 늘 싸운다. 그래서 공동선(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자율이 조화를 이루도록 할 시민적 덕성, 갈등의 조율과 통합, 즉 상생공존을 지향하는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깔았다. 그러니 이념을 다투려면 헌법의 잣대로 충분할 터다. ‘헌법 가치의 수호냐 반헌법이냐.’    측근 취재 하루 뒤 “대통령의 직접 워딩”이라며 그가 세 문장을 전해 왔다. “이념 발언은 다 잘먹고 잘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뚜렷해지지 않으면 잘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국가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한번 명확히 하고 가자는 게 의도였다.” 다행이다. ‘잘먹고 잘사는’ 민생. 그게 그 모든 이념이란 것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 아니겠는가.     글 = 최훈 주필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2023.09.19 23:00

  • [최훈 칼럼] ‘양날의 칼’ 대통령의 이념 전쟁

    최훈 주필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국정 이념을 반복 강조해 왔다.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그 세력은 늘 민주주의·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광복절), “공산 전체주의의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8월 29일 민주평통), “이념적으로 극과 극이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싸워라”(29일 국무회의),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이념” “1 더하기 1을 100이라 하는 세력들하고는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8월 30일 여당 연찬회).     ■  「 ‘공산전체’ ‘반국가세력’ 잇단 비판 “확고한 자유민주 체제” 선의겠지만 자칫 ‘자유 위축’ 가져올 위험 공존 헌법과 민생, 이념 논쟁 잣대 삼기를 」    놀랍고 느닷없다는 일감(一感)이 자연스럽다. 가장 정보 많고 생각 많을 대통령의 말인지라 그 전후 맥락이 궁금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이념에 조언·상담 역할을 해온 한 측근에게 물어봤다.   -톤이 강하다. “윤 대통령이 숙독한 책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 등)다. 같은 언어, 핏줄인데 한국은 왜 세계적 성공을, 북한은 비참한 실패로 갔는가. 바로 제도·체제 차이다. 제도를 선택한 게 이념이다. 왠 뜬금없는 이념 타령이냐 하겠지만 민생경제를 위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작동해야 하고, 올바른 이념이 확고해져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번영·빈곤의 관건은 지리·문화적 요인이나 무지(無知)의 수준이 아니라 경제제도가 착취적이냐, (사유재산, 공평한 법체계처럼) 포용적이냐의 차이라고 강조한다.   -오랜만의 ‘공산전체주의’ 단어다. “당연히 북한이다. 가짜 민주주의인 북·러·중을 포괄하지 않겠는가.”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의 뿌리는 한민당 아닌가. 한민당은 그래도 반공·친미 노선을 견지했다. 김성수·송진우·신익희·조병옥 선생들을 보라. 그러나 언제부터 민주당은 변질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무리한 ‘종전선언’ 추진이 대표적이다. 종전이 선언되면 유사시 한반도의 병참 보급선인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등은 존립근거가 없어진다. 문 정부는 독일·덴마크의 유엔사 참여, 역할 확대 요청도 거부했다. 유엔사를 불편해 한 탓이다.”   -여당, 장관들엔 왜 싸우라 주문하나.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전문성·과학성만 갖고는 국정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여권은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는 보신주의가 팽배하다. 용산 주변에선 ‘전투적 자유주의’가 권력 이너서클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인간적으론 친해도 가치가 맞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   - 그게 총선 공천 기준도 되나. “정당도 동지(同志)라 하지 않는가. 국민의힘이 과연 이 같은 핵심 이념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해낼 가치집단인지…. 윤 대통령은  확신이 없다. 총선에선 ‘가치에 대한 헌신’도 고려되지 않을까 싶다.”   -도움이 될까. “보수 내에서도 헷갈리는 건 맞다. 홍범도 건도 긁어부스럼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거북하다고 이리저리 피하는 건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 마이너스라도 바로잡을 건 바로잡는다는 고집이 강하다.”   보수우파야 박수칠 일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맨 앞인 십자군식 이념 전쟁이란 양날의 칼이다. 살아 있는 최고권력이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 ‘반(反)국가’를 단정하는 순간, 앞의 모든 중간지대는 사라진다. 생각과 영혼을 명확히 이분하기엔 세상도 너무 복잡해졌다. 그러니 이념이란 바둑의 정석처럼 “열심히 공부한 뒤 다 잊어버려야 최선”일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엔 과거 ‘색깔론’ 트라우마도 잠복돼 있다. 정부나 정책을 감시·비판해야 할 야권과 언론 등의 심리적 위축도 불가피하다. 행여 검경 등 사정기관까지 ‘전투적’으로 대통령을 따라간다면 불안, 갈등의 확산 역시 걱정을 피할 길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지키자는 애초의 ‘선의’가 거꾸로 자유를 제약하며 길을 잃을 위험들이다.   우리 공동체의 합의된 이념은 이미 헌법에 잘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바로 자유·민주·공화다.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를 택했다. 개인의 자유들이란 늘 충돌하니 ‘다수의 지배’인 민주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는 늘 싸운다. 그래서 공동선(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자율이 조화를 이루도록 할 시민적 덕성, 갈등의 조율과 통합, 즉 상생공존을 지향하는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깔았다. 그러니 이념을 다투려면 헌법의 잣대로 충분할 터다. ‘헌법 가치의 수호냐 반헌법이냐.’   측근 취재 하루 뒤 “대통령의 직접 워딩”이라며 그가 세 문장을 전해 왔다. “이념 발언은 다 잘먹고 잘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뚜렷해지지 않으면 잘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국가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한번 명확히 하고 가자는 게 의도였다.” 다행이다. ‘잘먹고 잘사는’ 민생. 그게 그 모든 이념이란 것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 아니겠는가. 최훈 주필

    2023.09.18 00:31

  • [최훈 칼럼] ‘잼버리 화장실’의 재구성

    최훈 주필 새만금 잼버리 직후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영국 대표단이 캠프 철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장실 문제를 더욱 부각시킨 것 같다.” 행사 초반 현장의 한덕수 총리가 화장실을 거론하자 곁의 김현숙 공동조직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화장실 문제, 그건 (조직위의 거버넌스 혼선 등에 비해) 마이너한 문제다.” 과연 그런 것일까.     ■  「 가장 복잡, 불안한 심리 공간의 첫인상에서 잼버리 운명 결정돼 인간 원초적 욕구의 현장 못챙긴 공직 사회, 반면교사로 성찰하길 」    잼버리의 종주국 영국은 개막 닷새 만에 4400여 명의 스카우트들을 가장 먼저 캠프에서 철수시켰다. 맷 하이드 영국 스카우트연맹 대표는 직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철수의 일성으로 화장실을 거론했다. “청소가 충분히 자주 이뤄지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비누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았으며,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영국은 잼버리뿐 아니라 수세식 양변기 화장실의 종주국이다. 근대적 수세식 변기를 1596년 영국의 존 해링턴 경이 처음 고안했다. 윗부분에 물통이 있고, 물을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 배설물을 분뇨통으로 흘려보낼 밸브로 구성됐다. 밑에서 올라온 냄새가 심한 게 단점이었다. 1775년 영국의 시계제조공인 알렉산더 커밍스가 요즘 우리가 보는 S자형 밸브 같은 구부러진 배수 파이프를 보완했다. 분뇨를 밀어낸 파이프 중간엔 새 물이 고여 악취를 차단했다. 200여 년에 걸친 개량으로 ‘배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 영국이었다.   영국인들에게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 뭔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화장실이 산업혁명 시대를 연 ‘열기관(10위)’을 누른 9위였다. 역시 배설의 욕구와 관련된 두루마리 휴지가 22위, 기저귀는 62위.(닉 해즐럼, 『화장실의 심리학』) 두루마리 휴지는 기차·펜·신발보다 위였다. 기저귀는 식빵(70위), 페이스북(82위)보다 더 소중했다. 일상의 기본 욕구를 편리, 편안하게 도와준 게 가장 소중하다는 얘기다. 화장실에 관해선 할 말이 꽤 많을 선진 영국의 청소년들이 이역 만리의 불결을 마주친 첫인상에서 이미 잼버리의 운명은 결정됐다.   화장실은 매우 복잡한 심리의 공간이다. 기본 욕구를 해소하며 생각을 정리해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수도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서양에서 휴식의 공간(rest room)이라 부른 이유 같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정랑(淨廊), 정방(淨房), 매화간(梅花間)이라는 고상한 이름도 붙여주었다. 불교 사찰의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해소하는 장소)야말로 절정이다. 요즘은 화장실의 첫인상이 거꾸로 그 레스토랑 요리와 숙소 주인의 품격을 일러준다.   반면 과민성대장증후군, 변비 등의 질병과 병균 등 위생에 초점이 옮겨가면 화장실은 순식간에 불안의 공간이 돼 버린다. 집 안에서조차 “양변기 깔개를 왜 안 올리느냐”는 다툼이 가정 평화를 깨트리곤 한다. 이게 공중화장실로 옮겨가면. 그 불안감은 폭증한다. 상상 속의 찝찝함 탓이다.   다시 새만금. 인간의 하루 평균 용변은 6분씩 4~7회. 6회로 잡고 4만2000여명의 스카우트와 8000명의 자원봉사자 등의 하루 화장실 이용은 30만 번이 넘는다. 그런데 설치한 건 달랑 354개. 이 불쌍한 화장실 한 개가 하루 1000회 가까운 용변을 버텨내야 했다. 관리 인원은 70명. 2개 조이니 1인당 10개씩 관리다. 2019년 새만금개발청이 참관한 웨스트버지니아 잼버리의 화장실은 8배에 가까운 2700여 개. 전문관리요원들이 함께 배치됐다. 우리 공무원들? 가서 보곤 그냥 끝이다. 그러니 여기서 터졌다.   한덕수 총리가 다급하게 점검에 나섰다. 변기 청소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예전 시대 같으면 “74세 고령 총리가 오죽 답답했으면 직접 나섰겠는가”다. “솔선수범” “현장 행정”으로 상찬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시대의 여론은 초점이 달랐다. “얼마나 공직사회가 영(令)이 안 서고, 안 움직이고, 현장 챙기는 이도 없으면 총리가 변기 오물까지 닦는 지경인가”였다. 전북 주변 공무원들 청소 동원령이 내려지자 공무원 노조에선 “우리가 뒤처리 공노비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부랴부랴 일당 20만원의 화장실 청소 알바를 급구하면서 오랜 공문서 양식대로 ‘경력자 우대’를 병기했다. “정말 코미디 같은 공직자들”이란 조소가 나왔다. 충격이 컸던지 한 총리가 상암 월드컵경기장 폐영식에 가장 먼저 들른 곳도 화장실이다.   ‘공(公)’자 들어간 것치고 괜찮은 게 없어진 사회다. 뭔가 좀 모자라고 갑갑한 상태의 상징인지 오래다. ‘공무원스럽다’ ‘관공서 일처리하듯’ ‘공공 화장실 냄새’ ‘공교육’ ‘공립학교 교실’ ‘LH 순살 공공 주택’ 등등. 심지어 ‘공영방송’도 “볼 게없다”며 받은 외면 한참이다. 치열한 경쟁과 자기 혁신 속의 ‘민간’과 갈수록 대척이다. 그런데도 기득권·규제 등 공(公)이 누리는 것은 물론 그대로다. 우리 공직 사회가 진정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게 이 ‘잼버리 화장실’이다. 작은 일 못하는데 어찌 큰일 해내겠나. 성찰 없이 무슨 미래가 있나. 전북지사님, 여가부 장관님께 되묻는다. “화장실이 진짜 철수의 핑곗거리인지” “그렇게도 마이너한 건지”. 최훈 주필

    2023.08.21 00:58

  • [세컷칼럼]유리 천장 깨부순 두 여성…"남은 한계 하늘뿐이길"

    지난달 미국 해군 참모총장(대장)에 처음으로 여성이 발탁됐다. 리사 프란체티(59) 제독이 여기에 오르는 데 걸린 미 해군의 시간은 248년. 해군 전투함은 원래 일본 스모의 도효(씨름판)처럼 “여성이 오르면 부정 탄다”는 미신이 가장 오래 지배하던 금녀의 공간이었다. 미 해군은 1994년에야 전투함·전투기에 여성을 허용했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 허용이 1920년이니 이후에도 여성을 가장 거부해 온 성역이었다. 한국 역시 2012년 고속함장을 시작으로, 2020년에야 여성이 최전방 전투함장에 임명됐었다.     ■  「  248년 만의 여성 참모총장 프란체티 “삶의 멘토들, 사람·팀워크 가장 소중” 노예 후손 첫 흑인여성 대법관 잭슨 “내면의 목소리, 선택 믿고 따라가라” 」     미 해군 참모총장은 병력 43만 명, 항공모함·이지스함 등의 주요 전투함 302척, 핵추진 잠수함 74척, 항공기 3700대 등으로 오대양을 지배해 온 세계 최강의 무력을 지휘한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 연방대법관에 첫 흑인 여성을 지명했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53) 대법관은 원래 농장 노예(‘존 그린’으로 추정, 워싱턴포스트)의 후손. 변호사의 4.7%만 흑인이고, 전체의 2% 미만인 70명의 흑인 여성만이 연방 판사로 재직했을 뿐(뉴욕타임스 통계)인 대법관의 유리천장을 그녀가 깨부수는 데 233년이 흘렀다. 무엇보다 이 두 여성들이 후배들에게 일러 주는 도전·성장과 성공으로의 조언이 소중하다.    프란체티 제독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며 중동 전문기자를 꿈꿨던 언론학도였다. 장학금을 주는 해군 ROTC의 매력이 행로를 바꾸었다. 군인이라 노출이 거의 없던 그녀는 중장 시절 ‘노스웨스턴대 동문 인터뷰’(2019년)에서 처음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선택한 일에 확고한 믿음을 지니라는 게 으뜸의 조언이었다. “인생은 탄탄한 직선 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강이다.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에 흔들리지 말고 목표에의 믿음을 고수하라. 그러면 결국 찾아올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 이 총장 지명자는 너무나 즐겁게 일하던 NASA 청소부에게 누가 이유를 묻자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했던 일화도 거론했다. 잭슨 대법관 역시 “살면서 늘 정말로 원하는 것과, 다른 이들의 기대를 따르라는 압력에 직면한다”며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 ‘아 이거 대단해, 난 이걸 하고 싶어’를 따라 가라. 스스로의 모험 말이다”(조지타운대 졸업식 연설)고 조언한다.    사람의 중요성과 관계, 팀워크, 그리고 인생의 ‘멘토 갖기’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덕목. 프란체티 제독의 기억이다. “해군에 와 보니 여성 제독은 단 한 명이더라. 그녀는 훌륭한 멘토였다. 나는 먼저 그 길을 가며 장애물을 헤쳐나가 내가 그 장애를 겪지 않게 해 준 모든 여성의 수혜자였을 뿐이다.” 초급 시절 비전투 장교로 밀려난 게 미래 총장감의 첫 번째 좌절이었다. “책상이나 조종하러 군에 온 건 아니니…. 의무복무 뒤 제대하겠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더라. 당시 상관이 ‘이봐, 넌 꼭 배에 필요한 존재야.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을 거야. 함께 그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 뒤 마법처럼 정원이 빈 곳에 한 자리가 났고, 결국 전투함 장교가 되는 기회를 맞게 됐다.”    유리 천장을 깬 건 ‘함께’였다는 얘기는 여성끼리에게만 국한된 조언은 아니었다. “좋은 멘토가 없었다면 난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 결코 홀로 치르지 못하는 게 전투다. 당신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고, 조언이나 비판도 해 줄 사람, 당신의 분야뿐 아닌 외부의 목소리들을 만들어 늘 귀 기울여라. 여성만이 아니다. 남성이나 동료, 때론 후배 멘토가 꼭 필요하기 마련이다.”    잭슨 대법관 역시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등학교 토론코치 선생님부터 인종차별 속에 자라신 부모님, 서기로 모셨던 여성 지방법원 판사 등 많은 삶의 멘토가 있었다. 특히 4명의 자녀와 일을 병행했던 그 판사 선배는 일과 삶의 균형, 집에 돌아와 유치원생 아이의 전화를 받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워킹맘의 방식 등에 적잖은 배움을 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그들의 멘토처럼 이 두 여성은 거친 장애를 돌파해 왔다. 최후의 생존자란 늘 숱한 고통의 산물. 후배들도 기회가 오도록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을 터다. 이들은 그럼에도 절제와 균형, 내려놓음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모든 장미가 동시에 피는 건 아니지 않으냐. 너무 공로를 내세우진 말라. 그냥 자기 일을 하면 사람들은 알아차리고, 기회가 찾아온다. 성공이란 임종 직전 ‘이 세 가지는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들일 뿐.”(프란체티) “모든 것에 늘 완벽하진 못할 수 있다는 데 익숙해져라. 놓아줘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된다.”(잭슨, WP 인터뷰) 잭슨의 하버드 로스쿨 흑인여성 후배인 브리아나 뱅크스의 소감(NYT 인터뷰)이 걸작이다. “이제 남은 한계는 하늘뿐이네요.” 모든 여성의 도전과 성장을 기원한다. 온 사회가 모두 꿈꾸는 여성들의 좋은 멘토가 될 날도 함께….   글=최훈 주필 그림=임근홍 인턴기자

    2023.08.10 23:00

  • [최훈 칼럼] 유리 천장 깨부순 두 여성 …“남은 한계 하늘뿐이길”

    최훈 주필 지난달 미국 해군 참모총장(대장)에 처음으로 여성이 발탁됐다. 리사 프란체티(59) 제독이 여기에 오르는 데 걸린 미 해군의 시간은 248년. 해군 전투함은 원래 일본 스모의 도효(씨름판)처럼 “여성이 오르면 부정 탄다”는 미신이 가장 오래 지배하던 금녀의 공간이었다. 미 해군은 1994년에야 전투함·전투기에 여성을 허용했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 허용이 1920년이니 이후에도 여성을 가장 거부해 온 성역이었다. 한국 역시 2012년 고속함장을 시작으로, 2020년에야 여성이 최전방 전투함장에 임명됐었다.     ■  「 248년 만의 여성 참모총장 프란체티 “삶의 멘토들, 사람·팀워크 가장 소중” 노예 후손 첫 흑인여성 대법관 잭슨 “내면의 목소리, 선택 믿고 따라가라” 」    미 해군 참모총장은 병력 43만 명, 항공모함·이지스함 등의 주요 전투함 302척, 핵추진 잠수함 74척, 항공기 3700대 등으로 오대양을 지배해 온 세계 최강의 무력을 지휘한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 연방대법관에 첫 흑인 여성을 지명했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53) 대법관은 원래 농장 노예(‘존 그린’으로 추정, 워싱턴포스트)의 후손. 변호사의 4.7%만 흑인이고, 전체의 2% 미만인 70명의 흑인 여성만이 연방 판사로 재직했을 뿐(뉴욕타임스 통계)인 대법관의 유리천장을 그녀가 깨부수는 데 233년이 흘렀다. 무엇보다 이 두 여성들이 후배들에게 일러 주는 도전·성장과 성공으로의 조언이 소중하다.   프란체티 제독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며 중동 전문기자를 꿈꿨던 언론학도였다. 장학금을 주는 해군 ROTC의 매력이 행로를 바꾸었다. 군인이라 노출이 거의 없던 그녀는 중장 시절 ‘노스웨스턴대 동문 인터뷰’(2019년)에서 처음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선택한 일에 확고한 믿음을 지니라는 게 으뜸의 조언이었다. “인생은 탄탄한 직선 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강이다.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에 흔들리지 말고 목표에의 믿음을 고수하라. 그러면 결국 찾아올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 이 총장 지명자는 너무나 즐겁게 일하던 NASA 청소부에게 누가 이유를 묻자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했던 일화도 거론했다. 잭슨 대법관 역시 “살면서 늘 정말로 원하는 것과, 다른 이들의 기대를 따르라는 압력에 직면한다”며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 ‘아 이거 대단해, 난 이걸 하고 싶어’를 따라 가라. 스스로의 모험 말이다”(조지타운대 졸업식 연설)고 조언한다.   사람의 중요성과 관계, 팀워크, 그리고 인생의 ‘멘토 갖기’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덕목. 프란체티 제독의 기억이다. “해군에 와 보니 여성 제독은 단 한 명이더라. 그녀는 훌륭한 멘토였다. 나는 먼저 그 길을 가며 장애물을 헤쳐나가 내가 그 장애를 겪지 않게 해 준 모든 여성의 수혜자였을 뿐이다.” 초급 시절 비전투 장교로 밀려난 게 미래 총장감의 첫 번째 좌절이었다. “책상이나 조종하러 군에 온 건 아니니…. 의무복무 뒤 제대하겠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더라. 당시 상관이 ‘이봐, 넌 꼭 배에 필요한 존재야.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을 거야. 함께 그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 뒤 마법처럼 정원이 빈 곳에 한 자리가 났고, 결국 전투함 장교가 되는 기회를 맞게 됐다.”   유리 천장을 깬 건 ‘함께’였다는 얘기는 여성끼리에게만 국한된 조언은 아니었다. “좋은 멘토가 없었다면 난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 결코 홀로 치르지 못하는 게 전투다. 당신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고, 조언이나 비판도 해 줄 사람, 당신의 분야뿐 아닌 외부의 목소리들을 만들어 늘 귀 기울여라. 여성만이 아니다. 남성이나 동료, 때론 후배 멘토가 꼭 필요하기 마련이다.”   잭슨 대법관 역시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등학교 토론코치 선생님부터 인종차별 속에 자라신 부모님, 서기로 모셨던 여성 지방법원 판사 등 많은 삶의 멘토가 있었다. 특히 4명의 자녀와 일을 병행했던 그 판사 선배는 일과 삶의 균형, 집에 돌아와 유치원생 아이의 전화를 받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워킹맘의 방식 등에 적잖은 배움을 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그들의 멘토처럼 이 두 여성은 거친 장애를 돌파해 왔다. 최후의 생존자란 늘 숱한 고통의 산물. 후배들도 기회가 오도록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을 터다. 이들은 그럼에도 절제와 균형, 내려놓음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모든 장미가 동시에 피는 건 아니지 않으냐. 너무 공로를 내세우진 말라. 그냥 자기 일을 하면 사람들은 알아차리고, 기회가 찾아온다. 성공이란 임종 직전 ‘이 세 가지는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들일 뿐.”(프란체티) “모든 것에 늘 완벽하진 못할 수 있다는 데 익숙해져라. 놓아줘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된다.”(잭슨, WP 인터뷰) 잭슨의 하버드 로스쿨 흑인여성 후배인 브리아나 뱅크스의 소감(NYT 인터뷰)이 걸작이다. “이제 남은 한계는 하늘뿐이네요.” 모든 여성의 도전과 성장을 기원한다. 온 사회가 모두 꿈꾸는 여성들의 좋은 멘토가 될 날도 함께…. 최훈 주필

    2023.08.07 01:00

  • [세컷칼럼] 이민 자석 국가로의 시작 ‘웰컴 투 코리아’

    팬데믹 이후의 메가 트렌드는 바로 ‘이주(migration)’다. 장벽 완화와 개방, 유인이 전쟁 수준이다. 성경을 빗대면 “내가 너희의 하느님 될 터이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거라”다. 봉쇄에 따른 일손 부족, 성장 지체, 임금·물가 폭등, 인플레이션의 트라우마에 저출산·고령화 위기감이 겹쳤다. 독일은 취업 전이라도 최대 1년 머물며 구직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유치법’을 제정했다. “배우자·자녀 외에 부모까지 동반 가능”의 인센티브도 파격이다. 100만 명의 인력 부족을 겪은 캐나다도 2025년까지 매년 50만 명 이민을 받아들이겠다고 가세한다. 특히 미국에서 H-1B(컴퓨터·IT 등 전문직 취업) 비자를 받은 이들이 캐나다로 오면 지체 없이 일자리를 준다는 ‘인재 빼내기’도 노골적이다.   ■  「 팬데믹 뒤 전 세계 ‘이민 유인’ 전쟁 ‘기업·세제·교육’의 모델 싱가포르 고숙련 전문직·부자 유인 병행하고 인구·이민 총괄 전권부서 서둘러야 」   지난해 말부터 밀물과 썰물은 본격화됐다. 영국은 중국 속박에서 탈출하려는 홍콩 주민과 우크라이나 난민 등을 적극 수용,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120만명을 받았다. 반이민 정서로 브렉시트(EU 탈퇴)까지 찬성했던 그들이었다. 호주·캐나다로의 순이주는 코로나 이전의 두 배. 스페인 역시 사상 최고치다. 미국으로는 올해에만 팬데믹 이전보다 3분의 1이 많은 140만 명의 이주자가 몰려들 전망이다. 독일은 난민 홍역을 치렀던 2015년보다도 순이주 비율이 훨씬 더 높아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대한민국? 참 한가하다. 세계 꼴찌 출산율(0.78명)에 2070년엔 인구가 26.7% 준 3765만 명의 ‘소멸 1위’ 예상 국가다. 외국인(164만 명) 비율은 3.2%, 다문화 가구(38만5000) 역시 전체 가구의 1.7%. ‘단군의 자손 단일 민족’은 이제 긍지가 아니라 불안의 상징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정도는 10점 만점에 5.3점. 직장동료(42.3%)나 이웃(29.8%)으론 받아들여도 절친(16.6%)이나 배우자(1.3%)로 수용하겠다는 비율은 바닥이다. 어떤 경우든 외국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율? 10.1%다.    역사 때문일까.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효종 때) 조선인들은 12개의 국가만 알았고, 중국 황제가 만국의 국왕”이었다. 조선 말 체류했던 스코틀랜드 여류화가 콘스탄스 테일러는 그러나 “조선인들은 중국인과 달리 낯선 사람에게 천성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 나라의 외국인 배척은 전적으로 정부의 (쇄국)정책 때문”이라고 했다(『Koreans at home』). 흥미로운 건 네델란드 표류 난민으로 강제 정착된 박연(벨테브레이)과 하멜 모두를 ‘총포·화약 기술자’로 활용하려 했던 장면. “제주의 하멜을 서울의 금려(국왕호위군)로 편입했는데 대개 그 사람들이 화포를 잘 다루기 때문”(『효종실록』)이었다. 조선 여인과 1남1녀를 얻은 박연은 외인부대 지휘관, 화포 개량에 기여하고 병자호란에도 참전했으니 우리도 ‘숙련 기술자 이민’의 역사가 없지는 않았다.    정말 시급히 이민 정책의 큰 틀을 짜야 할 때다. 그간 농어업·요식·단순 제조·간병 등의 저숙련 노동력이 초점이었다. 이제는 동시에 자산가(mega-rich), 고숙련 전문 기술인력을 함께 끌어당길 투트랙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그들의 신기술·투자·소비에의 기여 때문이다.    모델은 싱가포르. 명문대 진학률 높은 국제학교들, 아시아 1위(세계 11위)의 싱가포르국립대(NUS), 난양공대(NTU) 등 교육 인프라가 탁월하다. 영어·중국어는 상용. (패밀리)비즈니스 설립이 너무 편하다. 법인세율은 최고 17%(한국은 24%)지만 최초 과세액 1억9000만원까진 감면. 그 외 이자·양도·배당, 증여 및 상속 대부분이 다 비과세다. 그러니 중국 본토의 부자와 전문직들이 대거 몰려든 이 나라의 요즘은 이렇다. “중국 부자들은 한 병 80만 달러(약 10억원)인 산토리 야마자키 55년 위스키, 6만1000달러(8000여만원)어치 시가를 즐긴다. 센토사 골프클럽의 1년 회원권 67만 달러(8억7000만원)를 흔쾌히 지불한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그들의 아파트 구입이 올해 10%를 넘어선다.    가장 교훈이 될 국제정치적 관점은 싱가포르가 미·중 모두와 원만하고 균형적 관계를 유지해 온 대목. 미·중 갈등 시대에 “편안한 중립지대”가 매력 국가의 새 요건으로 부각된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관계 관리가 중요한 이유겠다. 최근 부유층 유출은 러시아·중국·인도·홍콩·우크라이나 순. 정치적 안정이 참으로 중요해진 증거다.    기술·비용 측면의 세계 최고 수준인 의료, 안전한 치안, K컬처, 한식, 배달 등은 우리의 장점이다. 면적도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138배. 그러나 북한 디스카운트, 규제와 세금, 물가, 파업, 교육의 질 등은 힘든 과제다. 청(廳) 수준을 넘어 아예 최상위 전권을 줄 이민부나 인구부 설립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그 중심부에 유능한 외국인들을 앉히는 파격은 또 어떨가.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 자산일 이주자를 마음속에 받아들여 줄 ‘웰컴 문화’가 확산돼야 할 시간이다. 그게 소멸을 늦출 ‘이민 자석(immigration magnetic) 국가’로의 열쇠다.   글=최훈 주필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7.18 23:00

  • [최훈 칼럼] 이민 자석 국가로의 시작 ‘웰컴 투 코리아’

    최훈 주필 팬데믹 이후의 메가 트렌드는 바로 ‘이주(migration)’다. 장벽 완화와 개방, 유인이 전쟁 수준이다. 성경을 빗대면 “내가 너희의 하느님 될 터이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거라”다. 봉쇄에 따른 일손 부족, 성장 지체, 임금·물가 폭등, 인플레이션의 트라우마에 저출산·고령화 위기감이 겹쳤다. 독일은 취업 전이라도 최대 1년 머물며 구직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유치법’을 제정했다. “배우자·자녀 외에 부모까지 동반 가능”의 인센티브도 파격이다. 100만 명의 인력 부족을 겪은 캐나다도 2025년까지 매년 50만 명 이민을 받아들이겠다고 가세한다. 특히 미국에서 H-1B(컴퓨터·IT 등 전문직 취업) 비자를 받은 이들이 캐나다로 오면 지체 없이 일자리를 준다는 ‘인재 빼내기’도 노골적이다.     ■  「 팬데믹 뒤 전 세계 ‘이민 유인’ 전쟁 ‘기업·세제·교육’의 모델 싱가포르 고숙련 전문직·부자 유인 병행하고 인구·이민 총괄 전권부서 서둘러야  」    지난해 말부터 밀물과 썰물은 본격화됐다. 영국은 중국 속박에서 탈출하려는 홍콩 주민과 우크라이나 난민 등을 적극 수용,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120만명을 받았다. 반이민 정서로 브렉시트(EU 탈퇴)까지 찬성했던 그들이었다. 호주·캐나다로의 순이주는 코로나 이전의 두 배. 스페인 역시 사상 최고치다. 미국으로는 올해에만 팬데믹 이전보다 3분의 1이 많은 140만 명의 이주자가 몰려들 전망이다. 독일은 난민 홍역을 치렀던 2015년보다도 순이주 비율이 훨씬 더 높아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대한민국? 참 한가하다. 세계 꼴찌 출산율(0.78명)에 2070년엔 인구가 26.7% 준 3765만 명의 ‘소멸 1위’ 예상 국가다. 외국인(164만 명) 비율은 3.2%, 다문화 가구(38만5000) 역시 전체 가구의 1.7%. ‘단군의 자손 단일 민족’은 이제 긍지가 아니라 불안의 상징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정도는 10점 만점에 5.3점. 직장동료(42.3%)나 이웃(29.8%)으론 받아들여도 절친(16.6%)이나 배우자(1.3%)로 수용하겠다는 비율은 바닥이다. 어떤 경우든 외국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율? 10.1%다.   역사 때문일까.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효종 때) 조선인들은 12개의 국가만 알았고, 중국 황제가 만국의 국왕”이었다. 조선 말 체류했던 스코틀랜드 여류화가 콘스탄스 테일러는 그러나 “조선인들은 중국인과 달리 낯선 사람에게 천성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 나라의 외국인 배척은 전적으로 정부의 (쇄국)정책 때문”이라고 했다(『Koreans at home』). 흥미로운 건 네델란드 표류 난민으로 강제 정착된 박연(벨테브레이)과 하멜 모두를 ‘총포·화약 기술자’로 활용하려 했던 장면. “제주의 하멜을 서울의 금려(국왕호위군)로 편입했는데 대개 그 사람들이 화포를 잘 다루기 때문”(『효종실록』)이었다. 조선 여인과 1남1녀를 얻은 박연은 외인부대 지휘관, 화포 개량에 기여하고 병자호란에도 참전했으니 우리도 ‘숙련 기술자 이민’의 역사가 없지는 않았다.   정말 시급히 이민 정책의 큰 틀을 짜야 할 때다. 그간 농어업·요식·단순 제조·간병 등의 저숙련 노동력이 초점이었다. 이제는 동시에 자산가(mega-rich), 고숙련 전문 기술인력을 함께 끌어당길 투트랙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그들의 신기술·투자·소비에의 기여 때문이다.   모델은 싱가포르. 명문대 진학률 높은 국제학교들, 아시아 1위(세계 11위)의 싱가포르국립대(NUS), 난양공대(NTU) 등 교육 인프라가 탁월하다. 영어·중국어는 상용. (패밀리)비즈니스 설립이 너무 편하다. 법인세율은 최고 17%(한국은 24%)지만 최초 과세액 1억9000만원까진 감면. 그 외 이자·양도·배당, 증여 및 상속 대부분이 다 비과세다. 그러니 중국 본토의 부자와 전문직들이 대거 몰려든 이 나라의 요즘은 이렇다. “중국 부자들은 한 병 80만 달러(약 10억원)인 산토리 야마자키 55년 위스키, 6만1000달러(8000여만원)어치 시가를 즐긴다. 센토사 골프클럽의 1년 회원권 67만 달러(8억7000만원)를 흔쾌히 지불한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그들의 아파트 구입이 올해 10%를 넘어선다.   가장 교훈이 될 국제정치적 관점은 싱가포르가 미·중 모두와 원만하고 균형적 관계를 유지해 온 대목. 미·중 갈등 시대에 “편안한 중립지대”가 매력 국가의 새 요건으로 부각된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관계 관리가 중요한 이유겠다. 최근 부유층 유출은 러시아·중국·인도·홍콩·우크라이나 순. 정치적 안정이 참으로 중요해진 증거다.   기술·비용 측면의 세계 최고 수준인 의료, 안전한 치안, K컬처, 한식, 배달 등은 우리의 장점이다. 면적도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138배. 그러나 북한 디스카운트, 규제와 세금, 물가, 파업, 교육의 질 등은 힘든 과제다. 청(廳) 수준을 넘어 아예 최상위 전권을 줄 이민부나 인구부 설립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그 중심부에 유능한 외국인들을 앉히는 파격은 또 어떨가.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 자산일 이주자를 마음속에 받아들여 줄 ‘웰컴 문화’가 확산돼야 할 시간이다. 그게 소멸을 늦출 ‘이민 자석(immmigration magnetic) 국가’로의 열쇠다. 최훈 주필

    2023.07.17 01:00

  • [최훈 칼럼] 백 살 키신저의 팁 ‘중국과 함께 살아가기’

    최훈 주필 요즘 한국의 가장 찜찜한 불안 중 하나는 중국과의 향후 관계다. 이 즈음 지난달 100세를 맞은 헨리 키신저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이코노미스트 인터뷰, ‘3차대전 피해가기’)를 남겼다. 49세에 미·중 수교를 이룬 외교관이자 탁월한 중국연구 학자인 그의 식견은 339㎞ 거리의 중국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도 생각할 실마리들을 주고 있다.   ▶대만=키신저의 미·중 수교 회고. “마오쩌둥 주석은 현안마다 ‘나는 철학자다. 그런 주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런 건 저우언라이 총리와 얘기하라’ 하더라. 그런데 대만 문제만은 노골적이더라. 마오는 ‘그들은 반혁명 분자의 무리다. 우리는 지금은 그들이 필요치 않다. 100년을 더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그들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하더라.” 키신저는 “마오가 100년은 기다리겠다고 했던 닉슨과의 공감대가 트럼프에 의해 50년 만에 뒤집힌 것”이라고 현 대만 위기를 분석한다.   저서 『중국 이야기(On China)』에서도 그는 비슷한 분석을 했었다. “베이징에 타이완은 외세 동맹과 손잡은 변절자들의 성이다. ‘굴욕의 세기’의 마지막 잔재다. 외국의 지원을 받는 별도의 행정당국이 있는 한 ‘새로운 중국 건설’이란 영원히 미완이다.” 서구에선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베이징에선 ‘새 중국의 완성’이란 얘기다. 그러니 대만 문제만은 우리도 분쟁 등의 가정적 질문엔 말을 아끼는 게 평화적이겠다.     ■  「 중국의 가장 민감 이슈는 대만 문제 ‘보편적 가치의 질서’에도 모욕 느껴 중국은 해체 아닌 영구 대화가 해법 우리도 중국 연구·이해 성숙 접근을 」    ▶유교, 그리고 중화(中華)=인터뷰의 키신저는 “마르크시스트라기보다 유교적(more Confucian than Marxist)”이라고 중국을 평가했다. 북한을 지원한 그들과 전쟁을 치렀고, 북핵에도 방관적이니 우리로선 언뜻 이해할 수 없다. 키신저의 강조점은 그러나 ‘우주의 중심’ ‘유일한 황제’라고 여겼던 중화사상이 그들의 외교에 미쳐 온 영향 같았다.   그의 이전 연구(『중국이야기』)가 더 구체적이다. “청나라 동치제는 링컨 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1863년)에서 ‘우주를 통치하라는 하늘의 명을 받들어, 그 중심의 중국이나 주변국들이나 조금도 차별 않고, 한 가족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설혹 타 민족이 너무나 방대한 중국을 점령하더라도 오히려 동화돼 중국의 한 부분이 될 뿐이라는 가치관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의 가치·사상을 해외로 퍼뜨릴 필요도 없었다. 변방에서 침입하려는 야만족들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분열된 주변부’로 관리만 하면 되는 배부른 제국이었다. 황제에의 조공(朝貢), 고두(叩頭)로 중국이 세계의 중심임을 준수케 하고, 감히 그 힘을 시험하지 못하게 하는 세계관이었다.”   체크메이트(외통수)로 상대의 킹을 없애야 이기는 서양의 체스와 달리 부분에선 패해도 전체의 집이 더 많으면 이기는 웨이치(바둑),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인 손자병법도 그런 맥락이었다. 키신저의 인터뷰 결론은 이렇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룰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성취하고, 그에 대해 존경을 받으려는 것이다. 떠오르는 강대국으로서의 특권 자체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워싱턴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고 믿지만 중국이 히틀러 식의 세계 지배를 향해 가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미국보다) 우월해져도 중국 문화를 외부에 강요하는 지점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다. (내 본능으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시진핑 중국주석은 지난주 방중한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이런 얘기를 꺼냈다.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대체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중국을 존중하고,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기를 바란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국익에 대한 중국 스스로의 판단·결정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세계에서 중국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란 조크를 듣던 우리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화두다.   ▶보편적 가치의 세계 질서=그러니 중국이 화낼 서구의 표현은 ‘글로벌 규칙 기반의 질서(a global rules-based order)’라는 게 이 노(老)학자의 얘기다. “그건 그냥 미국의 규칙이자 질서”라는 베이징엔 “중국이 행동에 나서면 걸맞는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모욕이란 논리다. 최근 민주주의·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 는 나라들의 연대’라는 표현을 부쩍 강조해 온 우리 정부였다.   ▶“공동의 가치 찾아 영구적 대화를”=백 살의 이 학자는 “인류의 운명은 미·중 공존에 달렸다”며 “체제 교체나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중국에 미국의 이익이 있다는 점을 수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함께 협력할 공동의 가치, 전략적 역할을 찾아낼 영구적 대화가 관건”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 5년 이내 모든 적을 파멸할 수 있을 AI의 관리를 대화의 대상으로 꼽았다.   육지의 15분의 1, 인류의 18%인 중국.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연구하고, 이해하려 해 보라.” 아마도 키신저의 가장 소중한 ‘공존’의 노하우일 터다. 물론 중국 역시 한국에 그래야만 하겠다. 최훈 주필

    2023.06.26 01:01

  • [세컷칼럼] “악마와의 거래”, 그러나 AI에 올인해야 하는 이유

    “인간은 지금 전능을 얻어 신이 되려는 욕망에 악마와의 어떤 흥정도 불사하는 포스터스 박사(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극 중 인물)를 닮아간다. 인간은 포스터스 박사다. 동시에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이다. 이 때문에 악마와의 거래인 AI(인공지능) 혁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의 비유다.   ■  「 PC·스마트폰 넘는 챗GPT의 충격 일자리, 윤리·가짜뉴스 위협까지 AI 특성은 ‘전 분야 발전의 플랫폼’ 시대의 게임체인저 AI혁신 총력을 」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챗GPT의 충격이 거세다. ‘기회’와 함께 일자리 불안, 윤리·오류·가짜뉴스 등의 ‘위협’이 뒤섞인 파장이다. 사상 최초인 미 의회의 AI 청문회에 불려 나온 챗GPT의 창시자 샘 올트먼(오픈AI의 CEO)조차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개선할 것이란 믿음으로 시작한 AI지만 동시에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내 인생에서 혁명적이라 생각한 두 가지 기술은 1980년 PC의 윈도 운영 체제 근간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의 시연, 그리고 두 번째가 챗GPT”라고 했다. PC 이후 인류의 진화가 AI라는 얘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순간과 비슷한 충격”이라며 “이제 컴퓨터에 뭔가 말하기만 하면 모두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규정했다.    AI의 기술 척도는 인간 뇌의 시냅스(신경세포인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접합부)와 비슷한 역할인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숫자다. 2020년 공개된 챗GPT 3.0은 1750억 개의 파라미터였지만 올 초 출시된 챗GPT 4는 1조 개로 인간 시냅스(성인 기준 100조~150조 개)의 1%까지 쫓아온 것으로 국내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런데 “이 파라미터가 5조~10조 개 이상(인간 시냅스의 5~10%)을 넘어서면 어떤 일이 생길지, 얼마나 빨리 거기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김병필 KAIST 교수)는 예측이 나온다. 샘 올트먼이 ‘심각한 위험’으로 걱정한 통제 불능의 그 지점이겠다.    사람들의 근심이야 물론 일자리다. 인간의 직업과 자동화 기술혁신과의 관계를 심층 분석한 데이비드 오터 MIT 교수 등의 보고서(‘뉴프런티어:새로운 일자리의 기원과 내용’ 2022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일자리의 60%가 1940년에는 없던 직업들이다. 1980년 이후 40년 동안엔 대졸자의 경우 중위직업에서 전문직으로의 이동이 증가했다. 비대졸자는 저소득 직장으로의 하향 이동이 가팔랐다. 중간이 비어가는 양극화 현상이었다. 지난 40년간은 자동화가 일자리 수요를 억누르는 쪽의 영향이 훨씬 더 컸다는 결론이다. 마틴 울프는 “1900년 영국엔 동력, 기병용인 말이 330만 마리(1910년 조선의 말은 4만 마리)였으나 지금은 75%가 사라졌다”며 “인간 역시 보다 지능적, 창의적인 기계에 대체돼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기술이 되진 않을까”라고 되묻고 있다.    올 4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역시 “AI는 3억 개의 정규 일자리를 자동화에 노출시킬 것”이라며 “미국 일자리의 3분의 2가 어느 정도 자동화에 노출되고, 그중 4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가 대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AI가 전 세계 GDP의 7%(7조 달러)를 상승시키고, 노동생산성 역시 향후 10년간 연 1.5%씩 올라갈 것”이라며 “대부분의 일자리는 부분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모두가 정리해고되는 대체보다는 보완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위로의 말’을 잊지는 않았다.    AI의 역사적 의미와 그에 따른 통찰을 제공해 준 이는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이다. ‘이노베이션 파워’란 기고(포린어페어스 4월호)를 통해 그는 AI를 시대의 ‘게임체인저’로 선언했다. “이전 청동에서 강철, 증기동력에서 핵분열까지 지정학의 우위를 좌우한 기술에는 명확한 문턱이 있었다. 한 국가가 그곳에 도달하면 다시 경기장이 평평해졌다. AI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더 빠른 비행기가 더 빠른 비행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AI는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다른 분야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플랫폼이다. 온 세상을 재편한다. 자신의 생성적(generative) 특성 때문이다. 이는 산업·경제·군사 등 모든 권력의 토대가 돼 5~10년 내 전 세계 패권 경쟁을 좌우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와 정부란 늘 표를 얻을 단기 성과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미래를 좌우할 신기술에의 만성적인 과소 관심, 과소 투자를 못 하도록 하는 게 이 시대 우리의 과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AI 국가다.(영국 토터스 인텔리전스, 2022년) 앞이 미·중·영국·캐나다·이스라엘·싱가포르다. 기술 개발 역량 자체는 3위, 인프라는 6위다. 그런데 인재는 28위, 운영 환경은 32위다. 교육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적극적 이민과 인재 유인이 관건이다. 데이터 규제 환경의 혁신도 급하다. 초거대 규모의 AI 경쟁보다는 스마트폰부터 심어서 쓸 실용적 경량화, 저전력, 빠른 속도 특성의 ‘한국형 AI’ 전략의 목소리도 들린다. 피할 수 없는 악마와의 흥정이라면 차라리 먼저 가자. 이제 AI의 진도를 늘 점검할 상설 ‘NSC on AI’(인공지능 국가안전보장회의)도 필요해질 시대다.'       글=최훈 주필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6.06 23:00

  • [최훈 칼럼] “악마와의 거래”, 그러나 AI에 올인해야 하는 이유

    최훈 주필 “인간은 지금 전능을 얻어 신이 되려는 욕망에 악마와의 어떤 흥정도 불사하는 포스터스 박사(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극 중 인물)를 닮아간다. 인간은 포스터스 박사다. 동시에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이다. 이 때문에 악마와의 거래인 AI(인공지능) 혁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의 비유다.     ■  「 PC·스마트폰 넘는 챗GPT의 충격 일자리, 윤리·가짜뉴스 위협까지 AI 특성은 ‘전 분야 발전의 플랫폼’ 시대의 게임체인저 AI혁신 총력을 」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챗GPT의 충격이 거세다. ‘기회’와 함께 일자리 불안, 윤리·오류·가짜뉴스 등의 ‘위협’이 뒤섞인 파장이다. 사상 최초인 미 의회의 AI 청문회에 불려 나온 챗GPT의 창시자 샘 올트먼(오픈AI의 CEO)조차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개선할 것이란 믿음으로 시작한 AI지만 동시에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내 인생에서 혁명적이라 생각한 두 가지 기술은 1980년 PC의 윈도 운영 체제 근간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의 시연, 그리고 두 번째가 챗GPT”라고 했다. PC 이후 인류의 진화가 AI라는 얘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순간과 비슷한 충격”이라며 “이제 컴퓨터에 뭔가 말하기만 하면 모두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규정했다.   AI의 기술 척도는 인간 뇌의 시냅스(신경세포인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접합부)와 비슷한 역할인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숫자다. 2020년 공개된 챗GPT 3.0은 1750억 개의 파라미터였지만 올 초 출시된 챗GPT 4는 1조 개로 인간 시냅스(성인 기준 100조~150조 개)의 1%까지 쫓아온 것으로 국내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런데 “이 파라미터가 5조~10조 개 이상(인간 시냅스의 5~10%)을 넘어서면 어떤 일이 생길지, 얼마나 빨리 거기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김병필 KAIST 교수)는 예측이 나온다. 샘 올트먼이 ‘심각한 위험’으로 걱정한 통제 불능의 그 지점이겠다.   사람들의 근심이야 물론 일자리다. 인간의 직업과 자동화 기술혁신과의 관계를 심층 분석한 데이비드 오터 MIT 교수 등의 보고서(‘뉴프런티어:새로운 일자리의 기원과 내용’ 2022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일자리의 60%가 1940년에는 없던 직업들이다. 1980년 이후 40년 동안엔 대졸자의 경우 중위직업에서 전문직으로의 이동이 증가했다. 비대졸자는 저소득 직장으로의 하향 이동이 가팔랐다. 중간이 비어가는 양극화 현상이었다. 지난 40년간은 자동화가 일자리 수요를 억누르는 쪽의 영향이 훨씬 더 컸다는 결론이다. 마틴 울프는 “1900년 영국엔 동력, 기병용인 말이 330만 마리(1910년 조선의 말은 4만 마리)였으나 지금은 75%가 사라졌다”며 “인간 역시 보다 지능적, 창의적인 기계에 대체돼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기술이 되진 않을까”라고 되묻고 있다.   올 4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역시 “AI는 3억 개의 정규 일자리를 자동화에 노출시킬 것”이라며 “미국 일자리의 3분의 2가 어느 정도 자동화에 노출되고, 그중 4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가 대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AI가 전 세계 GDP의 7%(7조 달러)를 상승시키고, 노동생산성 역시 향후 10년간 연 1.5%씩 올라갈 것”이라며 “대부분의 일자리는 부분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모두가 정리해고되는 대체보다는 보완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위로의 말’을 잊지는 않았다.   AI의 역사적 의미와 그에 따른 통찰을 제공해 준 이는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이다. ‘이노베이션 파워’란 기고(포린어페어스 4월호)를 통해 그는 AI를 시대의 ‘게임체인저’로 선언했다. “이전 청동에서 강철, 증기동력에서 핵분열까지 지정학의 우위를 좌우한 기술에는 명확한 문턱이 있었다. 한 국가가 그곳에 도달하면 다시 경기장이 평평해졌다. AI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더 빠른 비행기가 더 빠른 비행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AI는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다른 분야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플랫폼이다. 온 세상을 재편한다. 자신의 생성적(generative) 특성 때문이다. 이는 산업·경제·군사 등 모든 권력의 토대가 돼 5~10년 내 전 세계 패권 경쟁을 좌우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와 정부란 늘 표를 얻을 단기 성과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미래를 좌우할 신기술에의 만성적인 과소 관심, 과소 투자를 못 하도록 하는 게 이 시대 우리의 과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AI 국가다.(영국 토터스 인텔리전스, 2022년) 앞이 미·중·영국·캐나다·이스라엘·싱가포르다. 기술 개발 역량 자체는 3위, 인프라는 6위다. 그런데 인재는 28위, 운영 환경은 32위다. 교육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적극적 이민과 인재 유인이 관건이다. 데이터 규제 환경의 혁신도 급하다. 초거대 규모의 AI 경쟁보다는 스마트폰부터 심어서 쓸 실용적 경량화, 저전력, 빠른 속도 특성의 ‘한국형 AI’ 전략의 목소리도 들린다. 피할 수 없는 악마와의 흥정이라면 차라리 먼저 가자. 이제 AI의 진도를 늘 점검할 상설 ‘NSC on AI’(인공지능 국가안전보장회의)도 필요해질 시대다. 최훈 주필

    2023.06.05 01:00

  • [세컷칼럼] “중국과 디커플링 아니다” 설리번이 한·중 관계에 준 팁

    47세 젊은 백인의 입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의 말 따라 지구촌의 불안과 안도가 교차한다. 44세의 역대 최연소로 바이든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된 제이크 설리번. 요동치는 새 국제질서의 설계자다. 한·미 동맹의 강화 속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의 대응 역시 그를 이해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최근 설리번은 ‘미국의 새 경제적 리더십’이란 브루킹스연구소 특강(4월 27일)을 통해 중국에 대한 접근의 관점을 분명히 했다. 결론부터 보자.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니다. 교역의 규제는 (중국과의)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려 미국 안보에 해가 될 기술의 좁은 영역에만 국한될 것이다. 기술의 봉쇄(technology blockade)가 아니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겨냥해 도전하는 소수, 극히 세부적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  「 “대중 교역 자체 금지 아니다” 강조 지난해 미·중 교역·투자 역대 최고 한국도 제로섬·이분법의 접근 말고 “중국과의 윈윈 관계 지속” 강조를 」   이 바이든의 브레인은 “미국과 중국은 충분한 교역·투자 관계를 유지 중이며 지난해 양국 교역은 역대 최고였다”고 소개했다. 실제 2022년 미·중 교역액은 6906억 달러(약 870조원, 블룸버그)로 기존 최대였던 2018년의 6615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전년에 비해서도 5.0% 증가. 미국으로선 그 전해보다 8.3% 늘어난 3829억 달러(483조원)의 역대 두번째 큰 적자도 감수했다. 과연 ‘Made in China’ 없이 물가 관리 등 미국과 세계경제가 돌아갈 수 있을는지를 보여준 현실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과의 분리, 탈동조(decoupling)를 하자는 게 아니라 (과도한 중국 공급망 의존에 대한) 위험 해소(derisking)와 다변화(diversification)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관계를 ‘제로섬’ ‘이분법’으로 바라다 본 ‘디커플링’ ‘제2의 냉전’ 구도를 거부한 셈이다.    “경쟁을 서로 책임감있게 관리하고, 가능한 지점에선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설리번은 덧붙였다. 협력의 대상으론 기후변화, 거시경제의 안정성, 인류의 보건, 식량의 안전 등을 꼽았다. “모든 영역에서의 전방위 대중 전면전이 미국, 특히 미국 중산층의 이익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 특강 이전 ‘설리번의 새 국제 설계도’는 2020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펴낸 ‘미국의 중산층에 더욱 도움될 대외정책’ 보고서에서도 윤곽을 드러냈었다. 현 국무부의 정책기획국장으로 발탁된 살만 아메드와 설리번이 공저자로 참여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바이블이다. 이 보고서의 핵심 논리 역시 “중국은 안보의 위협, 경제적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파트너”다. 논리가 이랬다. “세계 인구의 96%가 미국 밖에 있다. 광대한 해외 시장은 우리 기업엔 상품·서비스를 팔 기회다. 어떤 영역에선 강경한 입장이 필요하겠지만 중국과는 상호이익이 될 건설적 접근을 할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세계경제 양대 축 간의 무한 대치와 충동적 확전이라면 미국민의 우려를 증폭시켜 투자가 움츠러들고, 일자리를 줄게 해 미국의 중산층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 경쟁 속에서 ‘줄서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유럽과 일본·한국 등의 동맹들에 47세 보좌관의 현실적 인식도 주목할 만하다. 브루킹스 특강에서 그는 “미국 내의 제조업 역량 복원과 건설이 최우선이지만, 자립국가(autarky)가 미국의 목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 다음 단계는 우리의 동맹·협력국 모두의 제조업 역량, (경제·안보 위기의) 회복 능력 등을 함께 증진시켜 그들을 결코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카네기재단 보고서 역시 “냉전 시기 소련에 비해 중국은 미국의 협력국들에 대한 경제적 레버리지가 훨씬 더 크다”며 “모든 영역의 대중 전선으로 국가들을 미국 편에 줄세우기는 어려우니 미·중의 경제적 경쟁에서만은 보다 명백한 준거를 제시해 주길 선호할 것”이란 인식도 드러냈었다. “동맹을 무임승차자라 조롱·방기하며 관세 남발로 자유무역을 역행한 트럼프식 ‘미국 우선(America First)’은 미래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중·러와의 전면적·소모적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게 하면서 그들과의 전략적 경쟁을 동맹들과 함께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트럼프 이후의 세계’, 포린어페어스 2018년 5월)는 게 설리번 자신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이는 한국의 향후 중국 외교에도 도움될 ‘설리번의 팁’이기도 하겠다. 거칠고 험한 자기암시적 얘기를 먼저 꺼내 감정 자극→자국 내 여론 악화→경제 보복→대치, 봉쇄로 갈 악순환은 피해야 하겠다. 중국을 잘 설득해 선순환 구도를 만들 최선의 메시지. 이 정도가 어떨까 싶다.    “중국은 우리에겐 늘 기회였다. 양국의 자유 교역·투자는 모두의 경제와 두나라 중산층의 이익에도 윈윈이자 지속돼야 할 핵심 기둥이다. 이웃의 협력 지점 역시 기후변화·보건·환경으로 한층 넓어져야 할 시간이다. 미국의 안보 동맹이라 해서 결코 중국을 디커플링·봉쇄하려는 게 아니다. 모두의 기회와 이익을 키울 건설적 외교의 공간을 넓혀 나가자.”     글=최훈 주필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5.16 23:00

  • [최훈 칼럼] “중국과 디커플링 아니다” 설리번이 한·중 관계에 준 팁

    최훈 주필 47세 젊은 백인의 입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의 말 따라 지구촌의 불안과 안도가 교차한다. 44세의 역대 최연소로 바이든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된 제이크 설리번. 요동치는 새 국제질서의 설계자다. 한·미 동맹의 강화 속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의 대응 역시 그를 이해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최근 설리번은 ‘미국의 새 경제적 리더십’이란 브루킹스연구소 특강(4월 27일)을 통해 중국에 대한 접근의 관점을 분명히 했다. 결론부터 보자.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니다. 교역의 규제는 (중국과의)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려 미국 안보에 해가 될 기술의 좁은 영역에만 국한될 것이다. 기술의 봉쇄(technology blockade)가 아니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겨냥해 도전하는 소수, 극히 세부적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  「 “대중 교역 자체 금지 아니다” 강조 지난해 미·중 교역·투자 역대 최고 한국도 제로섬·이분법의 접근 말고 “중국과의 윈윈 관계 지속” 강조를 」    이 바이든의 브레인은 “미국과 중국은 충분한 교역·투자 관계를 유지 중이며 지난해 양국 교역은 역대 최고였다”고 소개했다. 실제 2022년 미·중 교역액은 6906억 달러(약 870조원, 블룸버그)로 기존 최대였던 2018년의 6615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전년에 비해서도 5.0% 증가. 미국으로선 그 전해보다 8.3% 늘어난 3829억 달러(483조원)의 역대 두번째 큰 적자도 감수했다. 과연 ‘Made in China’ 없이 물가 관리 등 미국과 세계경제가 돌아갈 수 있을는지를 보여준 현실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과의 분리, 탈동조(decoupling)를 하자는 게 아니라 (과도한 중국 공급망 의존에 대한) 위험 해소(derisking)와 다변화(diversification)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관계를 ‘제로섬’ ‘이분법’으로 바라다 본 ‘디커플링’ ‘제2의 냉전’ 구도를 거부한 셈이다.   “경쟁을 서로 책임감있게 관리하고, 가능한 지점에선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설리번은 덧붙였다. 협력의 대상으론 기후변화, 거시경제의 안정성, 인류의 보건, 식량의 안전 등을 꼽았다. “모든 영역에서의 전방위 대중 전면전이 미국, 특히 미국 중산층의 이익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 특강 이전 ‘설리번의 새 국제 설계도’는 2020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펴낸 ‘미국의 중산층에 더욱 도움될 대외정책’ 보고서에서도 윤곽을 드러냈었다. 현 국무부의 정책기획국장으로 발탁된 살만 아메드와 설리번이 공저자로 참여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바이블이다. 이 보고서의 핵심 논리 역시 “중국은 안보의 위협, 경제적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파트너”다. 논리가 이랬다. “세계 인구의 96%가 미국 밖에 있다. 광대한 해외 시장은 우리 기업엔 상품·서비스를 팔 기회다. 어떤 영역에선 강경한 입장이 필요하겠지만 중국과는 상호이익이 될 건설적 접근을 할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세계경제 양대 축 간의 무한 대치와 충동적 확전이라면 미국민의 우려를 증폭시켜 투자가 움츠러들고, 일자리를 줄게 해 미국의 중산층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 경쟁 속에서 ‘줄서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유럽과 일본·한국 등의 동맹들에 47세 보좌관의 현실적 인식도 주목할 만하다. 브루킹스 특강에서 그는 “미국 내의 제조업 역량 복원과 건설이 최우선이지만, 자립국가(autarky)가 미국의 목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 다음 단계는 우리의 동맹·협력국 모두의 제조업 역량, (경제·안보 위기의) 회복 능력 등을 함께 증진시켜 그들을 결코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카네기재단 보고서 역시 “냉전 시기 소련에 비해 중국은 미국의 협력국들에 대한 경제적 레버리지가 훨씬 더 크다”며 “모든 영역의 대중 전선으로 국가들을 미국 편에 줄세우기는 어려우니 미·중의 경제적 경쟁에서만은 보다 명백한 준거를 제시해 주길 선호할 것”이란 인식도 드러냈었다. “동맹을 무임승차자라 조롱·방기하며 관세 남발로 자유무역을 역행한 트럼프식 ‘미국 우선(America First)’은 미래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중·러와의 전면적·소모적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게 하면서 그들과의 전략적 경쟁을 동맹들과 함께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트럼프 이후의 세계’, 포린어페어스 2018년 5월)는 게 설리번 자신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이는 한국의 향후 중국 외교에도 도움될 ‘설리번의 팁’이기도 하겠다. 거칠고 험한 자기암시적 얘기를 먼저 꺼내 감정 자극→자국 내 여론 악화→경제 보복→대치, 봉쇄로 갈 악순환은 피해야 하겠다. 중국을 잘 설득해 선순환 구도를 만들 최선의 메시지. 이 정도가 어떨까 싶다.   “중국은 우리에겐 늘 기회였다. 양국의 자유 교역·투자는 모두의 경제와 두나라 중산층의 이익에도 윈윈이자 지속돼야 할 핵심 기둥이다. 이웃의 협력 지점 역시 기후변화·보건·환경으로 한층 넓어져야 할 시간이다. 미국의 안보 동맹이라 해서 결코 중국을 디커플링·봉쇄하려는 게 아니다. 모두의 기회와 이익을 키울 건설적 외교의 공간을 넓혀 나가자.” 최훈 주필

    2023.05.15 01:05

  • [세컷칼럼] 한·미 동맹 70주년…믿음이 강화돼야 할 시간

    동맹 70주년의 미국이 이번 주 윤석열 대통령을 국빈 초청했다. 141년 전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의 1조는 ‘거중조정’ 약속이었다. “양국은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 통지)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그 우의를 표시한다”였다. 1896년 당시 이범진 주미공사의 외교일지로 올 초 복원, 발간된 『미사일록』에 따르면 클리블랜드 미 대통령은 고종의 국서를 전달받자 “처음에 조약을 맺을 때처럼 한결같이 영구히 친목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127년 전 조선 공사의 눈에 비친 미국 민주주의·자유의 첫인상은 이랬다. “(의사당에선) 교묘하게 변론하며 상대방을 비평하고, 부통령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많은 사람의 논의를 취한다.” “대통령과 장관·상원의장이 한자리에 서 맞담배를 피우는 평등이라니, 괴상한 일이로다.” “모두 화기애애하고 스스로 만족하니 더할 나위 없이 잘 다스려지는 지치(至治, 이상적 사회)의 세상이로다.”   ■ 이번 주 워싱턴은 동맹 70년의 축제수교 141년 축복과 갈등의 교차 속“미국 잣대는 늘 자기 이익” 교훈도확장억제 강화, 한국 기업 배려 기대 「   」   미국의 승전과 해방, 건국, 공산화 남침의 격퇴, 안보 보장 속 경제발전·민주화에까지의 인연(因緣)은 한국엔 분명 축복으로 여겨질 국운의 지렛대였다. 워싱턴의 70주년 축제를 양국 모두 즐길 자격이 충분한 이유다. 그럼에도 늘 잊지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미국의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국제정치적, 현실적 이익이 잣대일 뿐이다. 늘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할리우드 영화의 잔상일 뿐이다. 크고작은 70년의 축복과 갈등 속에서 얻은 우리의 성찰은 단 하나. ‘자구(自救)’.  “스스로 강해져 살아남아야 한다.” 미국통이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확고부동의 신뢰에도 우리는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 1945년 한반도의 양분 등 과거 두 번씩이나 미국에 배신을 당했다”고 미국 특사를 쏘아붙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전쟁 재개에 아무런 방지책도 없는 정전협정문이란 한국에는 사형집행 영장”이라고 동맹의 출발인 상호방위조약을 밀어붙였다. ‘배신’이란 우남(雩南)의 지적대로 미국은 러일전쟁 직후 조선, 필리핀을 일본과 나눠먹기 하는 현실을 택했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역시 미군 철군이 거론되자 “평화를 지키려면 독자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결단했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느냐”며 독자 핵무장을 추진했던 드골 식 내셔널리즘의 영향도 컸지만 미국의 감시와 그의 죽음으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야당 총재 김영삼이 의심한 건 ‘민주주의 미국’이었다.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란의 전철을 밟지 말라. 주한미군을 내정간섭으로 볼 수 없다면, 한국 민주화를 위한 압력 역시 내정 간섭으로 볼 수 없다. 국민과 유리된 정권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수 국민 중 선택하라”고 촉구했었다. 냉전이 최고조이던 레이건 정권이 전두환 신군부의 5·18 학살과 정권 탈취를 방임하자 ‘민주주의 십자군’으로서 미국의 정체성엔 의문이 확산되기도 했었다.    효순·미선양 사건 직후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도 동맹엔 긴장 요소였다. 2003년 첫 방미 당시 “53년 전 미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으로 극적 반전을 보인 연유는 지금도 미스터리. 그 이틀 전 미국행 전용기의 대통령 침실을 핵심 외교 관계자가 찾아갔다. “반미면 어떠냐 유의 얘기는 않으셔야 대화가 진행된다”고 운을 떼자 노 대통령은 벼락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당황한 권양숙 여사가 말려보다 “지금은 나가계시는 게 좋겠다”고 해 그대로 쫓겨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라크 파병, 한·미 FTA로 자신의 말을 입증했다. 부시가 직접 그린 초상화를 들고 10주기의 노무현을 참배한 장면은 이 영화의 엔딩이었다.    바이든과 윤석열의 이번 회담은 국제정치 구도의 격변 속에서 진행된다. 중국의 대만 위협, 푸틴의 핵 협박, 중·러의 밀착, 북한의 틈새 핵도발 등의 큰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동맹들이다. 앞서 2021년 미국의 철군 직후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도 동맹의 믿음을 감소시킨 외교적 실패로 지적됐다. 최근 중국의 주재로 이뤄진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장면엔 “사우디가 바이든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워싱턴 포스트)는 냉소도 나왔다. IRA법, 칩스법 등으로 트럼프 이래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동맹의 불만도 가시지 않고 있다. 섬유류·신발·철강·TV·지식재산권 등 경제적 손실엔 미국의 관대함이 부족했던 게 지난 70년이기도 했다. 지난달 조사에서 한국민의 64%는 독자 핵무기를 찬성했다.    지금 미국은 동맹 70년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고히 굳혀 주길 기대받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 내 자유민주주의 보루로 세계 10번째(GDP 비율론 5번째) 국방비를 쓰는 게 우리의 고군분투다. 북핵에 한층 강화된 확장억제를 반드시 문서로 보장해야 할 시간이다. 중국과의 경쟁으로 우리 기업의 희생이 없도록 하는 배려 역시 믿음의 징표일 터다. 다시금 “한결같이 영구한 친목”을 기원해 본다.     글=최훈 주필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4.25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