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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평] 신념과 고집 사이: 의대 증원 2000명의 경우

    이현상 논설실장 읽는 데 51분 걸린 지문 뒤 질문이 나왔다. 이 글의 요지는? ①2000명 증원 의지를 고수하겠다 ②2000명 증원을 꼭 고집하는 건 아니다.   이만하면 킬러 문항이다. 1만4000자 원고 중 ‘2000명’과 관련해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고 해석될 부분은 정확히 191자(띄어쓰기 및 문장부호 포함)였다.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구절을 포함한 네 문장이다. 그나마 이들 문장 바로 뒤에는 ‘하지만’이라는 역접 부사가 이어진다. 앞 네 문장이 전하고 싶은 요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담화문의 대부분은 ‘2000명’의 도출 근거와 정당성, 의료 카르텔 타파 및 국정 개혁 의지 등으로 차 있다. 보통의 문해력을 가진 수험생이라면 ①번을 택하는 건 당연할 터. 그런데 그날 저녁 KBS에 나온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②번이 정답이란다(“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 출제 미스인가, 독해력 부족인가. 혹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건가.     ■  「 대통령 개혁 의지 평가할 만하나 ‘2000명 마지노’가 해법 막아버려 소통하지 않는 의지는 고집일 뿐 총선 뒤 더 절실해질 정치의 공간 」    2000명이 절대적 숫자가 아니라면 왜 대통령 본인이 명쾌하게 말하지 않는 걸까. 자존심 때문인가. 지금이 제왕무치(帝王無恥)의 시대도 아닐진대,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돌아설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리더십이다.   국민에게 문해력 ‘킬러 문항’을 냈다고 어깃장을 놓아봤지만, 사실 킬러 문항에 갇힌 이는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다. 여러 차례 2000명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하는 바람에 퇴로가 막혀 버렸다. 전장에서 가장 어리석은 진법이 배수진이다. 죽을 각오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때 택하는 마지막 방법일 뿐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너무 구체적 수치를 정해버림으로써 협상과 조정이라는 정치의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대통령은 건폭과 화물연대를 제압한 개혁 사례를 들었지만, 의사 집단은 이들보다 훨씬 교섭력이 강하다. 무엇보다 대체 가능성이 없다. 본분을 팽개친 의사의 집단행동에 국민은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거칠게 진격했다가 총선 앞에서 오히려 의사들에게 대화하자고 매달리는 양상이 됐다. 이러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망언이 명언이 될까 두려울 지경이다. 좀 더 정교한 접근이 필요했다.   답답한 것은 국민이다. 지난 2월 초 윤 대통령이 2000명 증원 카드를 꺼냈을 때 여론은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지금도 의사 대폭 증원에 대한 지지 여론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건 당위성이나 의지의 되풀이가 아니라 해법이다. 취임식 넥타이를 매고 나온 대통령은 ‘초심’을 역설했지만, 국민 귀엔 잘 들리지 않았다. “그건 알겠고, 그래서 어떻게 풀려고?”를 국민은 묻고 있다.   정치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 오직 의정 갈등에서뿐이랴. 윤 대통령 집권 2년 내내 협상과 조정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멈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엔 혐오와 배제가 판을 쳤다. 거대 야당의 횡포가 이유라지만, 국정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내키지 않더라도 야당에 손 내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드물었다. 자신을 대통령 자리에 올린 선거연합마저 해체해버리고 오직 ‘의지’에 기대 국정을 돌파하려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그 과정에서 오만과 불통의 이미지가 입혀졌다. 3대 개혁 같은 굵직한 국정과제의 해결 동력마저 사라져 버렸다. 지금 총선에서 여당이 고전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유권자의 회의일 것이다.   정치인에게는 ‘신념 윤리’만큼 중요한 것이 ‘책임 윤리’라고 베버는 강조했다.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신념에 따른 정열, 그에 따른 책임감, 그리고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직업으로서의 정치』) 국민이 정치인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은 본인의 신념뿐 아니라 그 신념을 어떻게 현실화하겠다는 해법(solution)이다. “잘하겠습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데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외치는 신입사원을 보는 상사의 답답함을 국민은 윤석열 정부에 느끼고 있다.   고집이 신념으로 승화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신념이 고집으로 여겨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소통하지 않는 신념은 제3자의 눈에는 고집일 뿐이다. 버락 오바마는 “나의 신념은 어느 정도의 의심은 인정하는 신념”이라고 말했다. 소통의 달인이라는 오바마의 말을 신념의 정치인을 자부하는 윤 대통령이 참고했으면 한다. 니체는 “열정으로부터 견해가 생기고, 정신적 태만이 이를 신념으로 굳어지게 한다”고 설파했다. 의심하지 않는 신념은 신념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향해 팔을 뻗는”(‘맨 오브 라만차’ 중) 낭만주의가 아니라면 신념은 현실에서 벼려져야 한다. 여의도 정치를 욕하지만, 그게 정치의 현실이다. 어쩌면 총선이 끝난 뒤 더 절실해질지 모를 현실이다.     이현상 논설실장 leehs@joongang.co.kr

    2024.04.04 00:55

  • [중앙시평] 의료 개혁, 결기만으론 어림없다

    이현상 논설실장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파업 사태가 소환되고 있다. 관제사들의 파업에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규모 해고를 포함한 강력 대응으로 노조를 패배시킨 사건이다. 정부가 의사들의 진료 거부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981년 관제사 파업은 노동운동사에서 의미가 크다. 1970년대 서구를 휩쓸었던 노동운동이 퇴조하고 그 자리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침을 알린 상징적 사건이었다. 임금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을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하던 항공관제사연합 노조는 협상이 결렬되자 8월 3일 아침 7시를 기해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휴가철로 공항이 한창 붐빌 때였다. 그날 당장 미국 전역에서 7000대의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노조는 “우리가 없으면 하늘길이 마비될 것”이라며 자신했다. 그러나 레이건의 조치는 단호했다. “48시간 내로 업무에 복귀하라. 불복 땐 해고다. 재고용은 없다”고 못 박았다. 설마 했으나 진짜였다. 미복귀자들에게 가차 없이 해고통지서가 날아갔다. 노조원 1만4000여 명 중 1만1400여 명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12년 뒤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일부가 재고용되긴 했지만 해고 인원의 6%에 지나지 않았다. 노조의 완벽한 패배였다.     ■  「 레이건 승리한 1981년 관제사 파업 그 뒤에는 원칙·여론·계획의 삼박자 의사는 여론 외면, 정부는 거칠기만 길어지면 정부·의사 모두 지는 싸움 」    이 사건에서 ‘엄정한 법과 원칙’만 읽는 것은 단편적이다. 두 가지를 더 봐야 한다. 하나는 여론, 또 하나는 준비다. 레이건의 강경 조치가 가능했던 것은 시민들의 호응 때문이었다. 당시 갤럽조사 응답자의 70% 가까이가 관제사들의 파업은 잘못이라고 봤다. 정부의 강경책을 지지한 비율이 60%나 됐다. 2년 전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거대노조의 횡포에 염증을 낸 유권자들이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에 표를 던졌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레이건은 이런 여론을 믿고 그 난리통에 캘리포니아에서 느긋하게 휴가까지 즐겼다.   레이건이 여론만 믿었던 건 아니다. 시민 불편이 장기화하면 여론의 화살은 거꾸로 돌아올 수 있다. 레이건은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전직 관제사 및 관제 감독관 3000여 명, 파업 불참자 2000여 명, 군 관제사 900여 명을 전국 공항과 주요 관제센터에 배치했다. 파업 전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불편을 견딜 정도는 만들었다. 몇 달 후에는 20년간 200억 달러를 들여 첨단 관제 시스템을 새로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치밀한 사전 준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처가 1984년 영국병의 상징이었던 탄광노조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요인도 결기가 다는 아니었다. 대처는 석탄 비축을 지시하며 발전소에 쌓아 놓도록 했다. 수송 철로가 막히는 사태까지 대비한 것이다. 긴급 석탄 수입 계획은 물론이고, 석유발전 확대 계획도 짰다. 시대의 물줄기를 바꿀 요량이라면 굳건한 의지, 우호적 여론, 치밀한 계획의 삼박자를 갖춰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를 다루는 정부가 이런 삼박자를 갖췄나. 의지와 여론은 모르겠지만, 치밀한 계획은 ‘글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5년간 매년 2000명을 늘려 놓겠다고 발표했지만, 5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시간표가 없다. 지역의와 필수의에 대한 보상 강화, 지역 공공의료 확충 계획 같은 명세표도 없다. 갑자기 늘어난 의대생들 교육은 어떡할 건가. 대통령은 “2000명이 최소”라는 말만 던진 채 요지부동이다. 여론만 믿는 듯하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어떤 플랜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총선은 넘기고 보자는 전략인가.   의정갈등이 아직은 ‘공공선 대 사익’의 성격으로 비치는 듯하다. 정부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방증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의사들의 책임이 크다. 의사들이 든 손팻말에 “일방적인 정책추진 국민건강 위협한다”는 문구가 보인다. 10년 뒤쯤 위협받을 국민건강은 걱정되고, 지금 당장 아픈 환자들은 걱정되지 않는가. 공익을 표방한 사익 추구에 속을 국민은 없다. 의사들은 자기들끼리 가까워질수록 여론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설사 이번 갈등에서 의사가 정부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 해도 여론은 이를 ‘정부의 패배’라기보다 ‘국민의 패배’로 느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 정책의 초점은 ‘반개혁 기득권 세력’ 의사집단의 힘을 약화하는 데 맞춰질 것은 뻔하다. 벌써 비대면 진료 확대, 의료행위의 의사 독점 완화 등에 대한 요구가 높다. 지지율에도 도움이 되는데, 이런 정책 추진을 마다할 정권은 없다. 이는 앞으로 의사 직역에 의대 정원 수호보다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돌아가는 판세가 의정 일방의 승리는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유리한 점만 보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약점을 직시해야 타협할 수 있다. 정부는 여론의 지지가 철회될 가능성은 없는지, 장기전이 진짜 가능한지 돌아봐야 한다. 의사는 여론을 적으로 돌리는 이 싸움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에 유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든, 의사든 과유불급이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이현상 논설실장 leehs@joongang.co.kr

    2024.03.07 00:38

  • [세컷칼럼] ‘욕망 열차’에 정치가 올라탈 때

     한국은 사기 공화국이다. 2022년 전체 범죄 중 22.6%가 사기였다. OECD 국가 중 1위다. 몇 년 전 검찰 수사관이 쓴 『속임수의 심리학』이란 책에는 사기에는 세 가지 심리가 활용된다고 한다. 욕망, 신뢰, 불안. 선거가 사기라면 지나친 냉소지만, 선거판에 대입하면 ‘신뢰=팬덤’ ‘불안=흑색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 심리 중 핵심은 ‘욕망’이다. 선거철 쏟아지는 개발 공약은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  「 현실성 의심나는 ‘노후도시 특별법’ 교통·이주 대책은 제대로 마련했나 질러 놓고 보자는 선거철 개발공약 사기극 아닌지 유권자가 판단해야 」    공약이 으레 그런 것 아니냐고? 그렇긴 하다. 하지만 공수표가 남발되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숱한 사례가 있지만, 최근 나온 것 중에는 ‘노후 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들겠다. 구멍이 숭숭 뚫린 허점투성이 법을 총선을 넉 달 앞둔 지난해 말 여야 합작으로 통과시켰다. 선거에 목맨 무책임 정치가 출발시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이 법은 지난 대선 때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건축 공약에서 시작됐다. 조성 30년이 넘은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200% 정도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상 아파트 지역(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 한도는 300%. 상한선을 도정법의 1.5배(450%)로 늘린 것이 특별법의 핵심이다.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바꾸면 70층짜리 주상복합도 들어설 수 있다.   문제는 현실성. 기반 시설과 이주 대책이 모호하다. 각각 40만과 30만 명 수용을 전제로 만든 분당과 일산 신도시는 주변에 위성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교통과 도시 인프라가 이미 포화 상태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주민들은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을 감내한다. 용적률 제고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주는 더 큰 문제다. 이미 고밀도인 신도시를 헐었을 때 발생하는 이주민은 저밀도 지역의 재개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셋값은 물론이고 집값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 이들을 수용할 주거 단지를 새로 만드는 것도 힘들다. 땅도 없고 시간도 걸린다. 어찌어찌 마련해도 추후 활용 방안이 마땅찮다.   구획을 나눠 차근차근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욕망의 전차’가 기다려줄까. 기존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는 데 3년쯤 걸린다고 치자. 도시 전체를 10등분해 사업 공백 없이 군사 작전하듯 착착 추진해도 최소 30년은 걸린다. 그때 닥칠 인구 감소를 생각하고나 이런 정책을 짰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문제를 눈 밝은 의원들도 모르진 않았다. 지난해 2월 법안이 발의된 후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실현 가능성 없는 희망 고문법”이라고 했고,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법은 1기 신도시 양두구육법”이라고 지적했다. 둘 다 국토부 차관까지 역임한 전문가들이다. 이때만 해도 나름의 합리성이 작동하는 듯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당 지도부의 연내 통과 독려에 휩쓸리고 말았다. 오히려 왜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불만에 대상이 전국 108곳으로 늘어났다. 해당 지역 출마 의원들은 홍보물에 자신의 치적이라 자랑할 것이다.   특별법이 믿을 만한 약속인지는 유권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단, 지금 같은 부동산 경기로는 서울 시내나 분당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재건축 사업성이 낮다는 사실만은 알았으면 한다. 정부는 안전진단 완화로 재건축 걸림돌을 치웠다고 생색내지만, 지금 재건축 사업 부진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건설비 상승 및 집값 하락 때문이다. 현재로선 안전진단 완화 카드는 고가 노후 아파트에만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재건축 완화 정책은 오히려 신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던 리모델링 사업에 차질을 주고 있다. 이제라도 재건축으로 돌아서자는 주장 때문이다. 주민들 스스로 어렵게 찾은 주거 개선 방법이 갑자기 나타난 ‘욕망 전차’에 치인 꼴이다.   이 와중에도 공수표 공약은 계속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동료 시민들께서 원하는 대로” 하겠단다. 이미 파투(破鬪)난 서울 편입 카드를 다시 꺼내는 것도 우습지만, 이 대목에서 ‘동료 시민’의 어휘 구사는 어이없다. 존 F 케네디는 “동료 시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라고 했다. ‘동료 시민’은 이럴 때 쓰는 단어다. 욕망이 아니라 책임과 연대가 필요할 때.   욕망의 열차에 편승한 공약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국토 균형개발, 인구 감소 대비 같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엔 눈감아 버렸다. ‘갈라치기’라는 비난을 받지만, ‘여성 병역’ ‘무임승차 폐지’처럼 우리 시대의 불편한 화두를 던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공약에 그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거대 양당의 이런 무책임 때문이다. 유권자의 욕망에 무책임한 정치가 올라타면 그게 바로 사기가 된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이유정 인턴기자  

    2024.02.10 23:00

  • [중앙시평] ‘욕망 열차’에 정치가 올라탈 때

    이현상 논설실장 한국은 사기 공화국이다. 2022년 전체 범죄 중 22.6%가 사기였다. OECD 국가 중 1위다. 몇 년 전 검찰 수사관이 쓴 『속임수의 심리학』이란 책에는 사기에는 세 가지 심리가 활용된다고 한다. 욕망, 신뢰, 불안. 선거가 사기라면 지나친 냉소지만, 선거판에 대입하면 ‘신뢰=팬덤’ ‘불안=흑색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 심리 중 핵심은 ‘욕망’이다. 선거철 쏟아지는 개발 공약은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  「 현실성 의심나는 ‘노후도시 특별법’ 교통·이주 대책은 제대로 마련했나 질러 놓고 보자는 선거철 개발공약 사기극 아닌지 유권자가 판단해야 」    공약이 으레 그런 것 아니냐고? 그렇긴 하다. 하지만 공수표가 남발되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숱한 사례가 있지만, 최근 나온 것 중에는 ‘노후 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들겠다. 구멍이 숭숭 뚫린 허점투성이 법을 총선을 넉 달 앞둔 지난해 말 여야 합작으로 통과시켰다. 선거에 목맨 무책임 정치가 출발시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이 법은 지난 대선 때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건축 공약에서 시작됐다. 조성 30년이 넘은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200% 정도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상 아파트 지역(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 한도는 300%. 상한선을 도정법의 1.5배(450%)로 늘린 것이 특별법의 핵심이다.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바꾸면 70층짜리 주상복합도 들어설 수 있다.   문제는 현실성. 기반 시설과 이주 대책이 모호하다. 각각 40만과 30만 명 수용을 전제로 만든 분당과 일산 신도시는 주변에 위성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교통과 도시 인프라가 이미 포화 상태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주민들은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을 감내한다. 용적률 제고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주는 더 큰 문제다. 이미 고밀도인 신도시를 헐었을 때 발생하는 이주민은 저밀도 지역의 재개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셋값은 물론이고 집값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 이들을 수용할 주거 단지를 새로 만드는 것도 힘들다. 땅도 없고 시간도 걸린다. 어찌어찌 마련해도 추후 활용 방안이 마땅찮다.   구획을 나눠 차근차근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욕망의 전차’가 기다려줄까. 기존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는 데 3년쯤 걸린다고 치자. 도시 전체를 10등분해 사업 공백 없이 군사 작전하듯 착착 추진해도 최소 30년은 걸린다. 그때 닥칠 인구 감소를 생각하고나 이런 정책을 짰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문제를 눈 밝은 의원들도 모르진 않았다. 지난해 2월 법안이 발의된 후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실현 가능성 없는 희망 고문법”이라고 했고,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법은 1기 신도시 양두구육법”이라고 지적했다. 둘 다 국토부 차관까지 역임한 전문가들이다. 이때만 해도 나름의 합리성이 작동하는 듯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당 지도부의 연내 통과 독려에 휩쓸리고 말았다. 오히려 왜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불만에 대상이 전국 108곳으로 늘어났다. 해당 지역 출마 의원들은 홍보물에 자신의 치적이라 자랑할 것이다.   특별법이 믿을 만한 약속인지는 유권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단, 지금 같은 부동산 경기로는 서울 시내나 분당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재건축 사업성이 낮다는 사실만은 알았으면 한다. 정부는 안전진단 완화로 재건축 걸림돌을 치웠다고 생색내지만, 지금 재건축 사업 부진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건설비 상승 및 집값 하락 때문이다. 현재로선 안전진단 완화 카드는 고가 노후 아파트에만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재건축 완화 정책은 오히려 신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던 리모델링 사업에 차질을 주고 있다. 이제라도 재건축으로 돌아서자는 주장 때문이다. 주민들 스스로 어렵게 찾은 주거 개선 방법이 갑자기 나타난 ‘욕망 전차’에 치인 꼴이다.   이 와중에도 공수표 공약은 계속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동료 시민들께서 원하는 대로” 하겠단다. 이미 파투(破鬪)난 서울 편입 카드를 다시 꺼내는 것도 우습지만, 이 대목에서 ‘동료 시민’의 어휘 구사는 어이없다. 존 F 케네디는 “동료 시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라고 했다. ‘동료 시민’은 이럴 때 쓰는 단어다. 욕망이 아니라 책임과 연대가 필요할 때.   욕망의 열차에 편승한 공약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국토 균형개발, 인구 감소 대비 같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엔 눈감아 버렸다. ‘갈라치기’라는 비난을 받지만, ‘여성 병역’ ‘무임승차 폐지’처럼 우리 시대의 불편한 화두를 던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공약에 그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거대 양당의 이런 무책임 때문이다. 유권자의 욕망에 무책임한 정치가 올라타면 그게 바로 사기가 된다. 이현상 논설실장 leehs@joongang.co.kr

    2024.02.08 01:03

  • [중앙시평] 공인의 꿈,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이현상 논설실장 사귀는 사람이 결혼 상대로 긴가민가할 때는 2박3일 같이 등산해 보라는 인터넷 우스개를 본 적이 있다. 힘들 때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이유였다. 이 우스개에 달린 댓글 중 하나는 “그런 테스트가 필요한 사이라면 헤어지는 게 낫다”였다. 인간관계든 신앙이든 시험은 들지 않는 게 좋은 법. 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이 주시받는 정치인들이야 그럴 수 있겠나. 명예와 권력이라는 보상을 위해 ‘시험 듦’을 자청하는 행위가 정치 아닌가.     ■  「 이재명 대표 헬기 특혜 뜻밖 논란 새삼 돌아보게 되는 공인의 무게 공익과 사익의 경계에 선 정치인 용산·여당도 당면한 무거운 질문 」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은 당사자도 모른 채 치러진 시험이었다. 다급한 상황 대처가 뜻하지 않게 응급의료 체계 붕괴, 헬기 특혜 이용 논란으로 번졌다. 이 대표 본인과 민주당으로서는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게다. 위급한 상황이었으면 사건 현장인 부산에서 수술받아야 하고, 위급하지 않았으면 응급헬기를 타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판은 나름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 지방의료 홀대 불만까지 녹아 있는 예민한 문제다. 사태를 키운 것은 측근들의 경솔함이었다. “잘하는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정청래 최고위원의 말이 사태를 키웠다. 개딸로 상징되는 민주당의 사당화 현상이 빚어낸 몰감각이다. 오버액션으로 충성을 과시하는 사(邪)가 낀 측근을 가려내는 능력도 정치 공인이 치러야 할 시험이다.    사람은 어려울 때 본성이 드러난다고 하지만, 제3자가 쉽게 할 말은 아니다. 모든 정치인 보고 총을 맞고도 “내가 피하는 걸 깜빡했소”라는 농담을 던졌던 로널드 레이건이 되라고 할 수는 없다. 피습 대처 논란은 곁가지 문제다. 본질은 당연히 폭력과 증오의 정치다. 이런 불행한 일에서조차 관용과 품격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진 세상이 문제다. 이 대표로서도 각박한 인정을 서운해하기보다 통합과 치유의 노력을 게을리했던 자신의 정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새삼 느끼는 것이 공인이 짊어진 무게다. 시험은 공인의 숙명이다. 이에 따르는 비난과 시비는 감수해야 할 비용이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풍자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비난은 유명해진 사람이 대중에게 바치는 세금”이라고 했다. 한국 정치의 비극 중 상당수는 ‘유명세(稅)’를 ‘유명세(勢)’로 여긴 리더들의 착각에서 비롯됐다. 흐릿한 공사의 경계선 위에서 편리하게 공인의 권세와 사인의 익명성을 함께 누리려던 행태가 문제였다.   시선이 용산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더 혹독한 시험에 든 것은 여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를 겨냥한 특검법을 거부했지만, 여당으로선 이 문제가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할 뜨거운 감자가 됐다. 야당은 “사상 초유의 가족을 위한 거부권 행사”라며 국민의 공정 감정선을 자극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의도 문법과 사뭇 다른 화법으로 이런저런 행보를 보이지만, 최종 시험대는 결국 이 문제다. 이 허들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면 그의 뒤에 붙은 ‘용산 아바타’란 꼬리표는 떼기 힘들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한국 사회에서 공정은 이제 거의 신앙에 버금가는 화두가 됐다. 갈수록 닫혀 가는 기회의 문 앞에서 공정에 관한 대중의 민감성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때 빚어진 논란이 대표적 예다. 민족, 평화, 통일 등 아무리 좋은 뜻도 공정이라는 기준은 넘기 힘들다는 것이 입증됐다. 결정적으로는 조국 사태였다. 공인과 사인의 경계를 줄타기했던 스타 정치인의 행태가 대중의 환멸로 이어지며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이 가로막혔다. 물론 공정 개념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과 약자가 배려받아야 한다는 ‘보편의 원칙’이 충돌한다. 그러나 공정의 당위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대립도 결국 공정성 인정 투쟁이다. ‘총선을 겨냥한 거대 야당의 불공정한 횡포’로 인식될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부당한 권력 행사’로 비칠지의 싸움이다. 문재인 정부는 울산시장 개입 사건,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사 구절을 블랙 코미디로 만들어버렸다. 윤 정부는 그런 위선의 극복을 표방하며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출범했다. 지금 그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는 데 동의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 거부권 행사 반대가 훨씬 많은 여론조사는 뭘 말해 주고 있는가.   공익과 사익의 충돌에서 용산과 여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 국민이 보고 있다. 정세균 전 총리가 이재명 대표에게 ‘절벽에서 손을 놓으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낭떠러지에서 손 놓으라는 게 죽으라는 말은 아닐 게다. 끝까지 잡고 있는다고 수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현실적 고언이다. 키신저는 “위기에는 가장 대담한 방법이 때로는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비단 야당 대표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현상 논설실장 leehs@joongang.co.kr

    2024.01.11 00:40

  • [세컷칼럼] 여당에는 왜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나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 과정에서 당내 초선의원들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서병수·하태경 등 중진들이 김 전 대표 사퇴를 촉구하자 일부 초선들이 ‘자살특공대’ ‘진짜 X맨’ ‘퇴출 대상’ 같은 표현을 써가며 이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김 대표 전격 사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 전개에 졸지에 길을 잃고 말았다. ‘윤심’이 실렸다는 김 전 대표에게 줄을 서다 시쳇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렸다.   이런 ‘웃픈’ 해프닝은 우연이 아니다. 여당의 취약한 중도층 기반이 회복 탄력성(resilience)의 약화로 이어짐을 보여준 사건이다. 번지수 잘못 짚었던 문제의 초선들은 대개 여권의 양지인 ‘양남’, 즉 영남과 서울 강남 지역구 출신이다. 여당 내 짙은 위기감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서울 강남 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지역구 초선 의원은 단 세 명(최재형, 배준영, 최춘식)이다. 중도층이 판세를 좌우하는 수도권 민심을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수정당 내부 정풍운동의 대표적 사례였던 16대 국회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18대 국회 ‘민본 21’의 주도 세력이 거의 다 수도권 지역구 초선이었다는 점과 대비된다.   ■  「 거듭되는 징조에도 경고등 안 켜져 위기는 어느덧 ‘검은 코끼리’로 변해 당내 둔감과 계산속이 사태를 키워 한동훈 카드가 반전 계기 될 수 있나 」    위기는 도둑처럼 온다는 말은 둔감하고 게으른 자의 변명이기 쉽다. 대부분의 위기는 숱한 징조와 경고를 앞세운다. 대형 재해가 나기까지는 평균 29번의 ‘소(小) 재해’와 300건의 자잘한 사건들을 앞세운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왜 생겨났겠는가.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는 법이다. 지금 여당의 위기가 있기까지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중도층 기반이 약한 당내에서 경고등은 울리지 않았고, 이는 다시 중도층 이탈이라는 위기를 심화시켰다. 악순환이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며 보수 정당은 중도층 지지 회복에 간신히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흐름은 잠깐이었다. 그 승리가 자신의 매력과 역량 덕분이 아니라 상대의 오만과 독선 때문임을 잊어버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 ‘서오남’과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인사, ‘체리 따봉’으로 불거진 당무 개입 논란 등은 사실상 ‘소재해’ 수준이었지만 무시됐다. 대선 전부터 대통령 부인 관련 문제가 떠올랐지만 유야무야됐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시할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거나, 하다못해 제2부속실을 설치해 배우자의 활동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명품백 논란 같은 리스크는 그 둔감의 결과다.   특히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두 달 사이 여권의 모습은 ‘집단 착각’에 빠진 듯한 느낌마저 준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부산 엑스포 유치로 난국을 타개한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국정 시스템의 허점만 드러내고 말았다. 대통령 뒤에서 떡볶이 접시를 들고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도열한 기업 총수들의 사진만 남았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건만 외교 라인과 참모진에 대한 이렇다 할 문책조차 없다. 이들이 도대체 무슨 ‘고생’을 했는지, 마치 보상받겠다는 듯 선거판 양지를 기웃거리고 있다.   ‘검은 코끼리’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조어(造語)다. ‘검은 백조’와 ‘방 안의 코끼리’를 합친 말이다. 검은 백조는 가능성은 작지만 터졌다 하면 대재앙이 될 사건을 말한다.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터진 코로나 팬데믹 등이 그 예다.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나 뻔히 알고 있지만 그냥 모른 척 덮어 두는 문제를 말한다. 이 둘을 합하면? 내버려두면 대재앙이 될 만한 위험의 존재를 알면서도 짐짓 외면하는 일을 말한다. 나서봤자 좋을 일 없다는 계산속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기후위기에 이 말을 썼지만, 여권 상황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묻고 싶다. 정말 이런 위기의 징후를 읽지 못했나. 위기 신호에도 비상벨이 울리지 않은 것은 둔감함이거나 계산속, 혹은 이 둘 다 때문일 것이다. 여당 초선들의 소극(笑劇)은 어느 쪽일까.   여당 위기의 근원은 ‘윤심’으로 상징되는 수직적 당정 관계다. 그런데도 그 위기의 타개책으로 윤 대통령의 황태자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비상대책위원장 기용이 거론된다. 논리적으로 맞는 수습책일까. 친윤계에선 “히딩크도 한국 축구를 몰랐지만 4강 신화를 만들지 않았느냐”는 논리를 편다. 글쎄. 히딩크가 ‘한국 축구’는 몰랐겠지만, 축구에는 도사였다. ‘여의도 문법’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가 여의도를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잠재력 있는 여당의 정치적 자산마저 괜히 조기 소모하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방 안의 코끼리가 이미 검은 코끼리가 됐건만 아직도 그 존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여당에서 넘친다. 어떤 계산속이 깔렸는지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2023.12.21 23:00

  • [중앙시평] 여당에는 왜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나

    이현상 논설실장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 과정에서 당내 초선의원들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서병수·하태경 등 중진들이 김 전 대표 사퇴를 촉구하자 일부 초선들이 ‘자살특공대’ ‘진짜 X맨’ ‘퇴출 대상’ 같은 표현을 써가며 이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김 대표 전격 사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 전개에 졸지에 길을 잃고 말았다. ‘윤심’이 실렸다는 김 전 대표에게 줄을 서다 시쳇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렸다.   이런 ‘웃픈’ 해프닝은 우연이 아니다. 여당의 취약한 중도층 기반이 회복 탄력성(resilience)의 약화로 이어짐을 보여준 사건이다. 번지수 잘못 짚었던 문제의 초선들은 대개 여권의 양지인 ‘양남’, 즉 영남과 서울 강남 지역구 출신이다. 여당 내 짙은 위기감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서울 강남 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지역구 초선 의원은 단 세 명(최재형, 배준영, 최춘식)이다. 중도층이 판세를 좌우하는 수도권 민심을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수정당 내부 정풍운동의 대표적 사례였던 16대 국회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18대 국회 ‘민본 21’의 주도 세력이 거의 다 수도권 지역구 초선이었다는 점과 대비된다.     ■  「 거듭되는 징조에도 경고등 안 켜져 위기는 어느덧 ‘검은 코끼리’로 변해 당내 둔감과 계산속이 사태를 키워 한동훈 카드가 반전 계기 될 수 있나 」    위기는 도둑처럼 온다는 말은 둔감하고 게으른 자의 변명이기 쉽다. 대부분의 위기는 숱한 징조와 경고를 앞세운다. 대형 재해가 나기까지는 평균 29번의 ‘소(小) 재해’와 300건의 자잘한 사건들을 앞세운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왜 생겨났겠는가.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는 법이다. 지금 여당의 위기가 있기까지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중도층 기반이 약한 당내에서 경고등은 울리지 않았고, 이는 다시 중도층 이탈이라는 위기를 심화시켰다. 악순환이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며 보수 정당은 중도층 지지 회복에 간신히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흐름은 잠깐이었다. 그 승리가 자신의 매력과 역량 덕분이 아니라 상대의 오만과 독선 때문임을 잊어버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 ‘서오남’과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인사, ‘체리 따봉’으로 불거진 당무 개입 논란 등은 사실상 ‘소재해’ 수준이었지만 무시됐다. 대선 전부터 대통령 부인 관련 문제가 떠올랐지만 유야무야됐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시할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거나, 하다못해 제2부속실을 설치해 배우자의 활동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명품백 논란 같은 리스크는 그 둔감의 결과다.   특히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두 달 사이 여권의 모습은 ‘집단 착각’에 빠진 듯한 느낌마저 준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부산 엑스포 유치로 난국을 타개한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국정 시스템의 허점만 드러내고 말았다. 대통령 뒤에서 떡볶이 접시를 들고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도열한 기업 총수들의 사진만 남았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건만 외교 라인과 참모진에 대한 이렇다 할 문책조차 없다. 이들이 도대체 무슨 ‘고생’을 했는지, 마치 보상받겠다는 듯 선거판 양지를 기웃거리고 있다.   ‘검은 코끼리’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조어(造語)다. ‘검은 백조’와 ‘방 안의 코끼리’를 합친 말이다. 검은 백조는 가능성은 작지만 터졌다 하면 대재앙이 될 사건을 말한다.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터진 코로나 팬데믹 등이 그 예다.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나 뻔히 알고 있지만 그냥 모른 척 덮어 두는 문제를 말한다. 이 둘을 합하면? 내버려두면 대재앙이 될 만한 위험의 존재를 알면서도 짐짓 외면하는 일을 말한다. 나서봤자 좋을 일 없다는 계산속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기후위기에 이 말을 썼지만, 여권 상황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묻고 싶다. 정말 이런 위기의 징후를 읽지 못했나. 위기 신호에도 비상벨이 울리지 않은 것은 둔감함이거나 계산속, 혹은 이 둘 다 때문일 것이다. 여당 초선들의 소극(笑劇)은 어느 쪽일까.   여당 위기의 근원은 ‘윤심’으로 상징되는 수직적 당정 관계다. 그런데도 그 위기의 타개책으로 윤 대통령의 황태자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비상대책위원장 기용이 거론된다. 논리적으로 맞는 수습책일까. 친윤계에선 “히딩크도 한국 축구를 몰랐지만 4강 신화를 만들지 않았느냐”는 논리를 편다. 글쎄. 히딩크가 ‘한국 축구’는 몰랐겠지만, 축구에는 도사였다. ‘여의도 문법’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가 여의도를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잠재력 있는 여당의 정치적 자산마저 괜히 조기 소모하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방 안의 코끼리가 이미 검은 코끼리가 됐건만 아직도 그 존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여당에서 넘친다. 어떤 계산속이 깔렸는지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현상 논설실장 leehs@joongang.co.kr

    2023.12.19 00:55

  • [중앙시평] 게릴라전 닮아 가는 여권의 선거 전략

    이현상 논설실장 물과 물고기의 관계. 마오쩌둥(毛澤東)이 했다는 이 말은 게릴라전의 핵심을 찌른다. 물자와 병력이 부족한 비정규군은 인민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후 급격한 태세 전환을 하는 정부·여당을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게릴라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은 무조건 옳다”며 참모와 각료들에게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부족한 의석수와 30%대에 머무르는 지지율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쏟아내는 이런저런 정책들은 의표를 찌른다. 그러나 다른 말로 하면 느닷없고 뜬금없다. 시작은 김포의 서울 편입이었다. 주식 공매도 금지, 업소용 전기료 동결과 대용량 산업용 전기료 인상, 일회용품 규제 백지화, 대주주 주식양도세 기준 완화 등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연금 개혁이나 근로시간 개편 같은 골치 아픈 문제들은 국회나 경사노위로 슬쩍 넘겼다. 사이사이 간주곡처럼 탐욕스러운 기업과 은행 때리기로 박자를 맞췄다. 그야말로 게릴라전을 닮았다.     ■  「 민심 명목으로 쏟아지는 정책들 변신보다는 급조·후퇴로 비쳐져 임기응변이 최종 승리 보장 못해 결국 비전·리더십으로 승부 내야 」    태세 전환의 속도와 내용이 어지럽다. 정부가 수행하던 ‘정규전’과는 180도 다르다. 환경이나 균형발전 등 우리 사회가 합의했던 미래 그림과도 모순된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가령,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는 국토 균형발전이다. 지난 7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했고, 9월에는 ‘지방시대 선포식’까지 열었다. 여당에서 김포 편입론이 나오고 사흘 뒤 윤 대통령은 대전에서 열린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행사’에 참석해 지역 교육과 의료를 강조했다. 그러나 김포의 그림자에 묻혀 대통령의 메시지는 존재감이 없어졌다.   불과 얼마 전 “공매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소리 높였던 금융위원장은 당과 용산의 채근에 입장을 바꿨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쯤이야 별거 아니라고 치자. 한국 경제의 ‘군사 교리’가 흔들리는 것이 진짜 문제다. 한국은 곡절이 있긴 했지만 시장경제라는 전투 지침에 따라 분투해 세계 10위권 경제를 일구었다. 선거철마다 이 지침이 요동치는 게 이제 당연해졌다. 대용량 산업용 전기료 외 인상 유보, 대주주 주식양도세 완화 등도 정공법을 벗어난 변칙 전술이다. 그 와중에 보인 사소한 작전 미스는 차라리 애교다. 카카오 갑질을 호소했던 택시운전기사가 대선 때 국민의힘 당직자였고, 은행 갑질에 눈물짓던 자영업자의 실체는 매출 100억원대 기업인이었다.   급조된 정책의 효과도 의심스럽다. 공매도 금지 다음 날 폭등했던 주가는 일일천하로 끝났고, 묘수로 여겼던 김포 편입은 다른 지역의 반발로 역효과를 걱정하게 생겼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날 기미가 없고, 여당 지지율도 제자리다. 그래도 뭔가 변하려는 노력, 민심 가까이 가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결과는 신통찮지만 노력은 가상하다고나 할까.   도덕 교과서처럼 총선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표를 얻어야 권력을 쟁취하는 정치제도에서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은 불가피하다. 정책 전환이 필요하면 해야 하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고민의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와 스토리텔링 또한 필요하다. 그런 전략과 노력이 없다면 유연한 변신이 아니라 무책임한 후퇴로 여겨질 뿐이다. 즉흥적이고 파편적인 정책은 어렵게 쌓아온 보수의 정체성마저 흔들 수 있다.   게릴라전은 분명 유용한 전술이지만 임기응변의 몇 개 전투가 전체 국면을 바꿀 수는 없다. 역사상 게릴라전이 효과를 거둔 전쟁이 몇몇 있지만, 최종 승리는 언제나 정규군의 몫이었다. 파리의 레지스탕스, 2차대전 때 이탈리아의 파르티잔은 훌륭하게 싸웠지만 연합군이 없었다면 의미 없는 희생에 그쳤을 것이다. 베트콩은 북베트남군이 밀고 내려와 승자로 남았고, 만주 유격대는 소련군의 힘으로 북한 장악에 성공했다. 앞으로 5개월 남은 총선이 게릴라전을 연상케 하는 무(無)맥락 정책 몇 개로 좌우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현재 여당의 모습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 문법에 익숙지 않고,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정치 경험이 사실상 없다. 혁신의 목표가 뭔지도 분명치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 스스로 정치 초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문가나 경험자의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 꼬일 가능성마저 있다. 지금 여권에서 전체 상황을 조망하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가 있는지 의문이다. 선거전이 파편적 게릴라전이 돼서는 승산이 없다.   본질은 정치 리더십의 혁신이다. 얄팍한 정책으로 본질을 가린다면 역풍이 불 가능성이 크다.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전쟁 중 “정규군은 이기지 못하면 지는 거고, 게릴라는 안 지면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저성장과 양극화 위기에 빠진 한국을 ‘안 지면 그만’이라는 자세의 리더십이 이끌어 간다면 서글프지 않은가. 승부는 미래 비전과 이에 어울리는 리더십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즉 ‘정규전’에서 결정된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11.16 00:53

  • [세컷칼럼] 저절로 통하는 정치는 없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즐겨 쓰던 붓글씨는 ‘경청’이었다.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도 가끔 선물했다고 한다. 기업을 취재하던 시절, 관련 기사를 썼더니 다음 날 삼성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敬聽(경청)이 아니라 傾聽(경청)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다’와 ‘몸을 기울여 듣다’의 차이다. 둘 다 사전에 나오긴 한다. 듣는 건 마음의 행위라고 생각해 무심코 ‘敬聽’으로 썼는데, 아니었다. 홍보실 직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몸 기울이지 않으면 듣고 있다는 걸 상대가 어찌 알겠습니까.”   ■  「 마치 민심 몰랐다는 듯 호들갑 쌍방향 소통 부족했다는 증거 “보여주기 정치는 없다”는 고집 ‘침묵의 권력’ 행사한 것 아닌가 」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여권 안팎에서 쇄신 요구가 쏟아진다. 국민의힘은 잠시나마 요란했는데, 용산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내심 충격을 받았을진 몰라도 내색은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였다. ‘변화’보다는 ‘차분’이라는 단어에 더 힘을 실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태도가 여당에서 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와 임명직 당직자 교체라는 어정쩡한 수습책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표하는 태도 중 하나는 “쇼하지 않겠다”다. 수사로 말한다는 검사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인의 과시성 이벤트를 싫어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 정치에 남북통일 문제를 이용하는 쇼는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TV 생중계하며 “쇼를 연출하거나 이런 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고비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때는 “책임이라는 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치적 문책’을 거부했다. 검사 출신의 한계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었다. 취임 1년 즈음 분위기 쇄신을 위한 개각론이 제기됐을 때도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지지율이 갑자기 내려가도 ‘보여주기 정치’는 없다는 메시지를 낼 뿐이다. 비교적 담담한 보선 패배 반응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쇼 혐오’는 ‘쇼통’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는 차별화 포인트다. 탁현민이라는 ‘걸출한’ 연출가를 뒀던 문재인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화려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광화문 호프집에서 시민들과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임기 중 두 차례 ‘국민과의 대화’를 TV 생중계했다. 그럼에도 문 정부가 ‘불통’ 딱지를 못 뗀 것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했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대화’는 우호적인 패널 구성으로 ‘팬미팅’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안정론’을 펼쳐 빈축을 샀다.   문제는 이런 쇼마저 아쉽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윤 대통령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이었다. 지난해 11월 18일 중단된 출근길 질의응답(도어스테핑)은 재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통의 기본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데, 국민은 국무회의나 국가 행사에서나 대통령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듣는다. 몸은 청와대를 나왔지만, 마음은 청와대보다 더한 구중심처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말이 권력이듯 침묵도 권력이다. 말하고 싶을 때 입 열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입 다물 수 있는 것이 힘이다. 윤 대통령은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을 국민에게 행사한 셈이다. 용산은 이를 ‘묵묵함’이라고 쓰지만, 국민은 ‘답답함’이라고 읽는다. ‘의연함’이라고 말하지만, ‘오만’이라고 느낀다.    “용산만 쳐다보지 말고 쓴소리도 하라.” 여당의 강서 패배 후 한 신문에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의 반응이다.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정말 대통령실이 분위기를 몰랐단 말인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여론조사는 쌓아두기만 하는 건가. 맥줏집에서 옆자리 테이블에 잠깐만 귀 기울이면 쉽게 짐작했을 민심이다. 집단편향에 빠져 듣고 싶은 것만 들었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이 나온다.    “용산이 민심을 못 읽으면 시정을 요구해 관철시키겠다.” 2기 체제를 시작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말했다. 여당으로서 당연한 역할이다. 그러나 장삼이사라도 알 만한 이야기를 집권 정당이 큰마음 먹어야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상황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에 종속돼 자율성을 잃은 우리 정당 시스템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땅히 할 말을 대단한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조직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나. 팬덤 정치에 오염된 우리 정치가 어느새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나 야나 마찬가지다.    쓴소리는 하는 쪽의 용기가 우선이겠지만, 듣는 쪽의 용기가 더 필요하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반응해야 한다. 쇼라도 해야 한다. 몸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국민을 상대로 ‘침묵할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       글 = 이현상 논설실장,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2023.10.21 23:00

  • [중앙시평] 저절로 통하는 정치는 없다

    이현상 논설실장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즐겨 쓰던 붓글씨는 ‘경청’이었다.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도 가끔 선물했다고 한다. 기업을 취재하던 시절, 관련 기사를 썼더니 다음 날 삼성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敬聽(경청)이 아니라 傾聽(경청)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다’와 ‘몸을 기울여 듣다’의 차이다. 둘 다 사전에 나오긴 한다. 듣는 건 마음의 행위라고 생각해 무심코 ‘敬聽’으로 썼는데, 아니었다. 홍보실 직원의 말이 걸작이었다. “몸 기울이지 않으면 듣고 있다는 걸 상대가 어찌 알겠습니까.”     ■  「 마치 민심 몰랐다는 듯 호들갑 쌍방향 소통 부족했다는 증거 “보여주기 정치는 없다”는 고집 ‘침묵의 권력’ 행사한 것 아닌가 」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여권 안팎에서 쇄신 요구가 쏟아진다. 국민의힘은 잠시나마 요란했는데, 용산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내심 충격을 받았을진 몰라도 내색은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였다. ‘변화’보다는 ‘차분’이라는 단어에 더 힘을 실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태도가 여당에서 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와 임명직 당직자 교체라는 어정쩡한 수습책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대표하는 태도 중 하나는 “쇼하지 않겠다”다. 수사로 말한다는 검사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인의 과시성 이벤트를 싫어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 정치에 남북통일 문제를 이용하는 쇼는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TV 생중계하며 “쇼를 연출하거나 이런 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고비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때는 “책임이라는 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치적 문책’을 거부했다. 검사 출신의 한계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었다. 취임 1년 즈음 분위기 쇄신을 위한 개각론이 제기됐을 때도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지지율이 갑자기 내려가도 ‘보여주기 정치’는 없다는 메시지를 낼 뿐이다. 비교적 담담한 보선 패배 반응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쇼 혐오’는 ‘쇼통’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는 차별화 포인트다. 탁현민이라는 ‘걸출한’ 연출가를 뒀던 문재인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화려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광화문 호프집에서 시민들과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임기 중 두 차례 ‘국민과의 대화’를 TV 생중계했다. 그럼에도 문 정부가 ‘불통’ 딱지를 못 뗀 것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했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대화’는 우호적인 패널 구성으로 ‘팬미팅’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안정론’을 펼쳐 빈축을 샀다.   문제는 이런 쇼마저 아쉽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윤 대통령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이었다. 지난해 11월 18일 중단된 출근길 질의응답(도어스테핑)은 재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통의 기본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데, 국민은 국무회의나 국가 행사에서나 대통령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듣는다. 몸은 청와대를 나왔지만, 마음은 청와대보다 더한 구중심처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말이 권력이듯 침묵도 권력이다. 말하고 싶을 때 입 열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입 다물 수 있는 것이 힘이다. 윤 대통령은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을 국민에게 행사한 셈이다. 용산은 이를 ‘묵묵함’이라고 쓰지만, 국민은 ‘답답함’이라고 읽는다. ‘의연함’이라고 말하지만, ‘오만’이라고 느낀다.   “용산만 쳐다보지 말고 쓴소리도 하라.” 여당의 강서 패배 후 한 신문에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의 반응이다.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정말 대통령실이 분위기를 몰랐단 말인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여론조사는 쌓아두기만 하는 건가. 맥줏집에서 옆자리 테이블에 잠깐만 귀 기울이면 쉽게 짐작했을 민심이다. 집단편향에 빠져 듣고 싶은 것만 들었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반응이 나온다.   “용산이 민심을 못 읽으면 시정을 요구해 관철시키겠다.” 2기 체제를 시작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말했다. 여당으로서 당연한 역할이다. 그러나 장삼이사라도 알 만한 이야기를 집권 정당이 큰마음 먹어야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상황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에 종속돼 자율성을 잃은 우리 정당 시스템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땅히 할 말을 대단한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조직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나. 팬덤 정치에 오염된 우리 정치가 어느새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여나 야나 마찬가지다.   쓴소리는 하는 쪽의 용기가 우선이겠지만, 듣는 쪽의 용기가 더 필요하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반응해야 한다. 쇼라도 해야 한다. 몸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국민을 상대로 ‘침묵할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10.19 01:00

  • [중앙시평] 감세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이현상 논설실장 7, 9월마다 나오는 주택분 재산세 고지서를 받고 놀랐다.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20% 정도 경감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는 있었지만, 훨씬 더 큰 폭이었다. 집값 내린 탓이 컸다. 그러나 공시가격현실화율이나 공정시장가액비율 같은 부과 기준도 내렸다. 세금 적게 내는 건 좋은데, 이래서 나라 살림이 제대로 될까 살짝 걱정됐다.     ■  「 경제 침체로 세수 펑크 59조 예상 저성장 시대 구조적 문제 될 수도 재정 역할 커지는데 감세만 고집 경제에 득일지 실일지 따져봐야 」    종부세 내보는 게 소원(?)인 처지에서 이런 걱정이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자의 체감 경감 폭은 훨씬 더 크다. 국회예산정책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공시가격 15억원인 1주택자의 보유세(종부세 포함)는 2021년 450만원에서 올해 265만원으로 줄었다. 조정대상지역에 공시가격 7억5000만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사람의 보유세는 1473만원에서 358만원으로 1115만원이나 깎였다.   올해 ‘세수 펑크’가 59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가 나왔다. 작년 예산을 짤 때 생각했던 국세 수입과 14.8%나 차이 난다. 세금이 너무 많이 걷힌 재작년과 작년에도 두 자릿수 오차율이었다. 대규모 나라 살림을 정확히 가늠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오차율은 통상 5~6% 정도였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요동쳤다는 방증이겠지만, 세수 당국의 실력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부족분을 지난해 남긴 돈(세계잉여금), 올해 남길 돈(불용액), 다른 주머닛돈(기금 여유 재원) 등으로 막겠다는 생각이다. 미봉책이다.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외환 방파제 격인 외국환평형기금을 허물어서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조차 하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멈추고 약달러 기조로 돌아서면(환율 하락) 외환 대책의 손발이 묶일 수 있다.   세수 펑크로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 것이 감세 정책이다. 야당은 세수 펑크의 원인 중 하나로 ‘부자 감세’를 지적한다. 정부는 억울해 한다. 감세 때문이 아니라 예상 밖 경기 침체와 부동산 위축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 전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피크 코리아’라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만성적 세수 부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감세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는 경제학계의 묵은 논쟁거리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 감세 정책의 근거에는 ‘래퍼 곡선’이 있었다. 세수와 세율의 관계를 ‘역(逆) U’ 자 모양으로 그린 곡선이다. 적정 세율(뒤집어 놓은 U자의 정점)을 지나면 세율이 높을수록 세수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설명 틀이다. 직관적으론 그럴듯해 보여도 현실 적용은 ‘글쎄’였다. 무엇보다 세수가 정점을 이루는 적정 세율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이건 정부는 최고 소득세율을 70%에서 28%로 낮추는 등 감세 정책을 폈지만 임기 중 재정 적자는 더 커졌다. 그 고통을 빈곤층이 떠안았다. ‘복지 여왕’이라는 말로 조롱당하기까지 했다. 민주당 성향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부자 감세론에 대해 ‘때만 되면 되살아나는 좀비 경제학’이라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런 독설까진 아니더라도 감세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생각은 따져볼 게 많다. 윤석열 정부는 지속적 감세 정책을 펴면서 법인세, 소득세, 종부세, 가업상속공제 등을 손봤다. 자녀 결혼 자금에 매기는 증여세까지 완화했다.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5년간 줄어드는 세수가 6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작년만큼 크진 않지만 올해도 2028년까지 5년간 3조원 넘는 감세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곳간이 비면서 꼭 써야 할 데도 못 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16.6%나 삭감한 게 대표적이다. R&D 예산은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줄어든 적이 없었다. 농부가 굶어 죽어도 베고 죽는다는 종자 같은 것이었다. 이런 예산이 ‘카르텔’ 딱지가 붙어 싹둑 잘려나갔다.   감세를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지난해 9월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총리는 섣부른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후폭풍으로 취임 50일 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부족한 세수 대책이 없어 파운드화 폭락 등 대혼란을 겪었다. 세출을 줄이고 이런저런 방편으로 막아 보겠다는 우리 정부와는 다르다지만, 결국 임시변통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부자 감세’라는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지만, 쉽게 볼 프레임이 아니다. 세금이란 게 본래 부자들의 몫이 큰 만큼 감세 혜택 역시 이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감세의 낙수 효과가 진짜 있는지, 거둘 덴 거두고 깎을 덴 깎고 있는지, 사회적 위화감 같은 부작용은 없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재정의 역할은 외면한 채 감세라는 사탕만 남발하면 경제는 기능 부전(不全)에 빠지고 만다. 우파=감세, 좌파=증세라는 낡은 도그마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유연하게,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9.21 00:50

  • [세컷칼럼]피크 차이나, 피크 코리아

    우리에게는 흔히 ‘IMF 사태’로 통용되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는 세계 경제학계에서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불린다. 전 세계적 위기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위기의 원인에 경제 후발 주자로서 아시아 국가의 발전 특성이 결부됐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시각의 대표적 경제학자가 당시 위기를 예견했던 미국의 폴 크루그먼이다.   ■  「 부동산·부채 주도 성장 중국 경제 효율 낮은 화차에 석탄 퍼부은 격 우리 경제도 생산성에 의문부호 경제활력 되살릴 큰 그림 나와야 」    크루그먼은 ‘총요소생산성 정체’에서 위기의 징후를 읽었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 자본 같은 단일 요소로는 파악하기 힘든 복합적 생산성을 말한다. 기술 혁신, 노사·경영체제, 법·제도 등 한 국가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개념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노동력과 자본력 투입을 늘려 빠른 성장을 이뤄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했다. 석탄으로 달리는 화차에 비유해볼 수 있겠다. 석탄을 퍼넣으며 속도를 내던 화차가 석탄이 떨어지자 뚝 멈췄다. 세상은 낡은 증기 기관 시대에서 고속 열차 시대로 이미 바뀐 걸 몰랐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크루그먼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할까.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중국이다. 중국은 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피했다. 시장은 개방했지만 금융의 문은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비껴간 중국은 한국이 경제위기 충격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 든든한 시장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누적된 모순과 문제점이 이제 슬슬 나타날 조짐이다. 헝다(恒大)나 비구이위안(碧桂園) 같은 부동산 위기가 그 현장이다.      2015~19년 중국의 총요소생산성 평균 증가율은 OECD 국가보다 1.8%포인트나 낮았다(한국경제연구원). 덩치는 커졌지만 효율성이 한참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08~21년 중국의 인프라 및 경질 자산(hard asset)에 대한 투자는 GDP의 44%. 전 세계 평균 25%, 미국 20%의 배 수준이다. 중국 경제는 석탄을 퍼부어 질주하는 화차였던 셈이다. 점점 세지는 미·중 갈등은 중국에 불리한 요소다. 미국에 맞서 자립경제를 추구할수록 기술혁신이 더 어려워지는 딜레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첨단기술 약소국의 비애다. 중국의 GDP 대비 수입 비중이 1%포인트 줄어들면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0.3%포인트 감소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가 당장 무너져 내릴 부실 건물은 아니다. 부채 비율이 높거나 유동성이 떨어지는 업체에 대한 은행 대출을 막은 ‘3개 레드라인’(三道紅線)이 부동산 위기를 불렀지만, 중국은 의외로 느긋하다.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도 찔끔 내리는 데 그쳤다. 최근 공산당 기관지 추스(求是)가 한동안 사라졌던 시진핑 주석의 정치구호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살자)를 다시 꺼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위기가 어렵긴 하지만 관리 가능하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최근의 경제 상황을 ‘기복 있는 발전, 곡절 있는 전진(波浪式發展, 曲折式前進)’의 과정이라고 정리했다.      중국 경제가 정점을 쳤다는 ‘피크 차이나’론은 섣부르다. 최근 중국 경제 난맥을 ‘차이나 런’의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중국 같은 거대 경제가 중진국까지 오른 이상 성장률 하향은 불가피하다. 중국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위치가 과거만 못 한 것이 중국의 위축 때문인지, 우리 상품의 경쟁력 저하 때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아직도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중국의 40년 호경기 성장 모델’이 끝났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에 등장한 전망치 중 하나가 향후 수년간 중국 성장률이 4% 미만일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이다. 중국을 불안한 눈으로 보는 한국은? 2020년대엔 2.2%, 2030년 이후에 1%대가 IMF 전망이다. 이 수치로만 놓고 보면 ‘피크 차이나’보다는 ‘피크 코리아’가 더 눈앞에 와 있다. 중국도 걱정이지만, 진짜 걱정해야 할 건 우리 처지다.      한국이 ‘IMF 사태’로부터 빠르게 회복했고 금융 체질도 개선된 건 사실이지만, 경제 효율성은 여전히 의문의 대상이다. 지난 2월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G5 국가(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1이라면, 우리는 0.614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차이가 큰 항목은 ‘사회적 자본’과 ‘규제 개혁’이었다. 정부나 제도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고, 규제가 민간의 투자 활력을 옭아매고 있다는 이야기다. GDP보다 많은 가계 부채가 소비를 짓누르는 데도 부동산 연착륙 명분으로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다. 대통령의 ‘카르텔’ 서슬에 연구개발(R&D) 예산은 확 깎일 조짐이다. 경제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의 활력을 키울 담대한 정책 구상이 없으면 ‘피크 코리아’는 그만큼 더 가까워진다. 폴 크루그먼의 경고는 아직 우리 주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임근홍 인턴기자

    2023.08.29 23:00

  • [중앙시평] 피크 차이나, 피크 코리아

    이현상 논설실장 우리에게는 흔히 ‘IMF 사태’로 통용되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는 세계 경제학계에서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불린다. 전 세계적 위기로 전이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위기의 원인에 경제 후발 주자로서 아시아 국가의 발전 특성이 결부됐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시각의 대표적 경제학자가 당시 위기를 예견했던 미국의 폴 크루그먼이다.     ■  「 부동산·부채 주도 성장 중국 경제 효율 낮은 화차에 석탄 퍼부은 격 우리 경제도 생산성에 의문부호 경제활력 되살릴 큰 그림 나와야 」    크루그먼은 ‘총요소생산성 정체’에서 위기의 징후를 읽었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 자본 같은 단일 요소로는 파악하기 힘든 복합적 생산성을 말한다. 기술 혁신, 노사·경영체제, 법·제도 등 한 국가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개념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노동력과 자본력 투입을 늘려 빠른 성장을 이뤄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했다. 석탄으로 달리는 화차에 비유해볼 수 있겠다. 석탄을 퍼넣으며 속도를 내던 화차가 석탄이 떨어지자 뚝 멈췄다. 세상은 낡은 증기 기관 시대에서 고속 열차 시대로 이미 바뀐 걸 몰랐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크루그먼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할까.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중국이다. 중국은 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피했다. 시장은 개방했지만 금융의 문은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비껴간 중국은 한국이 경제위기 충격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 든든한 시장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누적된 모순과 문제점이 이제 슬슬 나타날 조짐이다. 헝다(恒大)나 비구이위안(碧桂園) 같은 부동산 위기가 그 현장이다.   2015~19년 중국의 총요소생산성 평균 증가율은 OECD 국가보다 1.8%포인트나 낮았다(한국경제연구원). 덩치는 커졌지만 효율성이 한참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08~21년 중국의 인프라 및 경질 자산(hard asset)에 대한 투자는 GDP의 44%. 전 세계 평균 25%, 미국 20%의 배 수준이다. 중국 경제는 석탄을 퍼부어 질주하는 화차였던 셈이다. 점점 세지는 미·중 갈등은 중국에 불리한 요소다. 미국에 맞서 자립경제를 추구할수록 기술혁신이 더 어려워지는 딜레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첨단기술 약소국의 비애다. 중국의 GDP 대비 수입 비중이 1%포인트 줄어들면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0.3%포인트 감소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가 당장 무너져 내릴 부실 건물은 아니다. 부채 비율이 높거나 유동성이 떨어지는 업체에 대한 은행 대출을 막은 ‘3개 레드라인’(三道紅線)이 부동산 위기를 불렀지만, 중국은 의외로 느긋하다.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도 찔끔 내리는 데 그쳤다. 최근 공산당 기관지 추스(求是)가 한동안 사라졌던 시진핑 주석의 정치구호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살자)를 다시 꺼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위기가 어렵긴 하지만 관리 가능하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최근의 경제 상황을 ‘기복 있는 발전, 곡절 있는 전진(波浪式發展, 曲折式前進)’의 과정이라고 정리했다.   중국 경제가 정점을 쳤다는 ‘피크 차이나’론은 섣부르다. 최근 중국 경제 난맥을 ‘차이나 런’의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중국 같은 거대 경제가 중진국까지 오른 이상 성장률 하향은 불가피하다. 중국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위치가 과거만 못 한 것이 중국의 위축 때문인지, 우리 상품의 경쟁력 저하 때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아직도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중국의 40년 호경기 성장 모델’이 끝났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에 등장한 전망치 중 하나가 향후 수년간 중국 성장률이 4% 미만일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이다. 중국을 불안한 눈으로 보는 한국은? 2020년대엔 2.2%, 2030년 이후에 1%대가 IMF 전망이다. 이 수치로만 놓고 보면 ‘피크 차이나’보다는 ‘피크 코리아’가 더 눈앞에 와 있다. 중국도 걱정이지만, 진짜 걱정해야 할 건 우리 처지다.   한국이 ‘IMF 사태’로부터 빠르게 회복했고 금융 체질도 개선된 건 사실이지만, 경제 효율성은 여전히 의문의 대상이다. 지난 2월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G5 국가(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1이라면, 우리는 0.614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차이가 큰 항목은 ‘사회적 자본’과 ‘규제 개혁’이었다. 정부나 제도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고, 규제가 민간의 투자 활력을 옭아매고 있다는 이야기다. GDP보다 많은 가계 부채가 소비를 짓누르는 데도 부동산 연착륙 명분으로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다. 대통령의 ‘카르텔’ 서슬에 연구개발(R&D) 예산은 확 깎일 조짐이다. 경제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의 활력을 키울 담대한 정책 구상이 없으면 ‘피크 코리아’는 그만큼 더 가까워진다. 폴 크루그먼의 경고는 아직 우리 주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8.24 01:00

  • [중앙시평] 무엇이 그들의 뇌를 게으르게 만들었나

    이현상 논설실장 독고다이. 홍준표 대구시장의 별명이다. 일본어로 ‘특공대’를 뜻한다고 한다. 홍 시장도 은근히 이 별명을 좋아하는 듯하다. 독불장군이라는 비판에 “독불장군은 부하라도 있지, 나는 적진을 단독으로 휘젓는 일당백 용사”라고 맞받아친 적도 있다. 그 별명답게 홍 시장은 정치적 고비를 개인기와 정치감각으로 넘어왔다. 지난 대선 당내 경선에서는 당심(선거인단)에서 패했지만, 민심(여론조사)에서는 앞섰다. 특히 2030 표심에서는 특유의 입심과 소통으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  「 여야 정치권의 잇따른 실언 논란 진영 정치에 기댄 안일함 아닌가 ‘쉬운 길’ 가지 않겠다는 윤 정부 정치 언어에서도 차별점 보여야 」    그런 홍 시장이 물난리 중 골프로 물의를 빚은 것은 의외다. 골프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그게 무슨 문제냐’는 오만한 태도였다. 당의 징계 절차에 응한다면서도 SNS에 ‘과하지욕’(跨下之辱·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이라는 단어를 올렸다가 삭제했다. 자신이 한고조 유방의 대장군 한신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태도를 탓하기 전에 감각이 의심된다. 몸담은 지역의 정치적 지형이 일방적으로 기우는 곳이 아니었다면 그의 오기가 이렇게 작동했을까. 예민했던 정치 감각이 안온한 둥지 속에서 어느새 무뎌진 걸까.   최근 여야 정치권의 실언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실수는 잠재의식의 표출”이라고 했다. 말실수의 한자락만 들치면 말 주인공의 무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급여는 시럽급여”라는 말이다. 그 말이 나온 공청회에서 노동부 직원이 “남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용센터로) 오시는데, 여자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실업급여 받는 중에 해외여행 가서 선글라스를 사서 즐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 여당 정책위원장은 ‘시럽급여’라는 멋진(?) 카피(문안)를 만들었다. 여성·청년·계약직에 대한 편견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실업급여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재정도 걱정이고, 도덕적 해이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진지하게 검토해 고쳐나가면 된다. 가벼운 말 한마디로 실업자의 상처를 헤집을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안전망에 기대어 힘들게 고개를 넘는 사람들에게 실업급여가 달콤한 시럽은커녕 쓰디쓴 모멸이 됐다.   양평고속도로 백지화를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한 국토부 관계자의 말도 불쾌하다. 양평군민과 국민이 실험 대상인가. 사업재개의 뜻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무례하기 짝이 없다. 사실 무례함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느닷없이 백지화 선언을 할 때부터였다. 아무리 야당의 시비가 터무니없다 해도 설명 대신 다짜고짜 싸움을 건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당사자야 정치적 존재감을 뿜뿜 드러냈겠지만, 국민 편익에 기여할 조(兆) 단위 국책 사업이 존재감 과시의 도구가 돼버렸다.   한심한 것은 이런 실수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탄핵 기각으로 복귀하긴 했으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관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은 헌법재판소로부터도 지적받을 정도로 부적절했다. 그런데도 수해 중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서둘러 귀국한다고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그 며칠 뒤 김영환 충북지사가 “(오송 참사 현장에) 갔다고 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고 똑같은 실언을 했다. 뭐가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물론 실언이 여당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 나라를 궁평지하차도로 밀어 넣는다” 식의 막말은 민주당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렸다. ‘핵 폐수’ ‘세슘 우럭’ ‘× 먹을지언정’ 같은 선동의 언어도 서슴지 않는다. 여당으로선 거대 야당의 언어폭력, 가짜뉴스에 ‘공자 같은 말씀’으로만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객관화다. 정치란 결국 언어 행위다. 그것도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미디어에 증폭돼 나타나는 언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정치 언어다.   뇌는 인체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장기다.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20%의 열량을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이 이성과 논리보다는 편견과 느낌에 더 의존하는 것은 그 방법이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기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도층 설득보다 힘과 노력이 덜 들기 때문이다. 진영 논리는 사람의 뇌를 게으르게 한다. 우리/상대의 이분법 속에 논리 회로는 멈춘다. ‘진영 논리’라곤 했지만, 사실 진영 싸움은 ‘논리의 빈곤’을 걱정하지 않는다. ‘싸움의 빈곤’을 걱정할 뿐이다. 여야의 잦은 실언은 진영 논리에 기대어 쉽고 즉자적인 정치에 몰두하는 ‘게으른 뇌’의 소산은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처럼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거에 지더라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나랏빚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비판에 대한 대응 방식은 문 정부의 ‘전 정부 탓’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는다는 니체의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7.27 01:02

  • [세컷칼럼] 대한민국 조롱하는 벌처펀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폴 싱어 회장은 명문 로체스터대 심리학과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투자 기법은 심리와 법이 교묘하게 얽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각한 채무 위기를 겪던 아르헨티나 국채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도 그런 예다.    엘리엇은 1990년대 중후반 액면가 20% 수준에 아르헨티나 국채를 사들였다. 2001년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뒤 채권자 93%가 액면가 3분의 1 정도만 받기로 타협했지만, 엘리엇은 요지부동이었다. 다른 국채 보유자들이 사라질수록 끝까지 버틴 자신은 유리해질 것으로 봤다. 죄수의 게임이었다.   ■  「 ISDS 소송서 승리 선언한 엘리엇 한국을 부패국 묘사, 오만한 태도 정부는 당연히 불복 절차 밟아야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대책 절실 」   이런 배짱을 받친 것은 ‘창조적’ 소송 기법이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준비금, 연기금은 물론이고 미국 소재 아르헨티나 위성발사대, 아프리카 가나에 입항한 군함까지 압류를 시도했다(군함은 실제로 두 달간 억류됐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아르헨티나에 압박을 주기엔 충분했다. 엘리엇은 14년 소송전 끝에 2015년 아르헨티나로부터 24억 달러를 받아냈다. 투자 원금 대비 1270%의 초고수익이었다.    이런 ‘심리와 법’의 고수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도발했다. 정부의 1300억원 배상 책임(이자 및 소송비용 포함)으로 결론 난 삼성물산 관련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중재판정 직후 ‘승리 선언문’을 냈다. “아시아에서 주주행동주의 투자회사가 최고위층의 부패 범죄행위에 대해 승리한 최초의 분쟁 사례”라는 자랑과 함께 “한국 정부가 이번 판정을 교훈 삼아 부패와 계속 싸워나가기 바란다” 같은 주제넘은 충고까지 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름까지 들먹였다. “(이들의) 검찰 재직 시절 수사로 위법이 입증된 사건.” 세계 경제 10위에 자유민주주의 동맹의 한 축을 자부하는 국가가 일개 투기자본으로부터 조롱받은 꼴이 됐다. 자기 땅에 공장을 지으라는 미국 정부 요구에 사업 기밀 공개 압박까지 받으면서도 냉가슴만 앓는 우리 기업 처지와 대비되지 않는가. 도를 넘는 방자함으로 우리 정부의 평정심을 흩트려 놓겠다는 전략인가.    수모의 빌미를 우리가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2015년 엘리엇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는 우여곡절 끝에 엘리엇의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였던 엘리엇은 손실을 본 채 한국을 떴다. 그러나 이듬해 시작된 이른바 국정농단 수사가 반전의 계기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묵시적 청탁’ ‘제3자 뇌물’이라는 이례적 혐의가 적용됐다. 수사와 재판 결과에 시비 걸기는 힘들지만, 그런 혐의 적용이 ‘정치적’이라고 의심하는 국민도 상당수 있다. 이 수사 및 재판 결과를 엘리엇은 중재 과정에서 자신들의 논거로 이용했다. 우리 스스로 엘리엇에 무기를 쥐어준 셈이 됐다.    PCA(국제상설중재재판소) 중재판정부의 공정성과 법 논리도 따져볼 게 수두룩하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 등이 위법 행위가 확정됐지만, 그 행위가 국민연금의 합병 찬반 의사를 굴절시켰는지는 증거가 없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은 삼성물산 개인투자자 72명이 낸 국가 상대 손배소에서 “찬반 최종 결정권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에 있었다”는 1심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이번 중재판정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일대 사법적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령 국민연금의 선택이 굴절됐다 치자. 그러나 그 굴절이 주총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는 또 따져봐야 한다. 2015년 5월 17일 삼성물산 주총에서 나온 합병 찬성률은 69.53%였다. 당시 주총 참석률(83.57%) 등을 고려했을 때 전체 지분의 55.71%가 찬성하면 합병 건은 통과될 수 있었다(합병 특별결의의 경우 참석주 3분의 2 찬성이 필요). 당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1.21%였다. 설혹 국민연금이 반대했더라도 58% 찬성률로 합병안 통과가 가능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물론 지나친 단순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의 위법 행위가 결정을 뒤집었고, 이 바람에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엘리엇의 주장에 쉬 동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정부의 조처’로 봤다. 판정이 그대로 확정되면 기금 규모가 10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투자 활동에 큰 제약이 걸릴 수 있다. 자신들에 불리한 결정이 날 때마다, 혹은 관련 공무원의 개인적 비리·일탈이 벌어질 때마다 해외 투기자본이 시비 걸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당연히 불복 절차에 나서야 한다. 낮은 이의제기 수용률, 소송 비용이나 이자를 따지기에 앞서 국가의 체면이 걸린 문제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의 미래엔 아무 관심 없이 알짜배기 기업의 현재 빼먹기에만 몰두하는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벌처펀드의 봉이 돼서는 우리의 성장과 일자리가 위험해진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7.02 23:00

  • [중앙시평] 대한민국 조롱하는 벌처펀드

    이현상 논설실장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폴 싱어 회장은 명문 로체스터대 심리학과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투자 기법은 심리와 법이 교묘하게 얽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각한 채무 위기를 겪던 아르헨티나 국채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도 그런 예다.   엘리엇은 1990년대 중후반 액면가 20% 수준에 아르헨티나 국채를 사들였다. 2001년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뒤 채권자 93%가 액면가 3분의 1 정도만 받기로 타협했지만, 엘리엇은 요지부동이었다. 다른 국채 보유자들이 사라질수록 끝까지 버틴 자신은 유리해질 것으로 봤다. 죄수의 게임이었다.     ■  「 ISDS 소송서 승리 선언한 엘리엇 한국을 부패국 묘사, 오만한 태도 정부는 당연히 불복 절차 밟아야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대책 절실 」    이런 배짱을 받친 것은 ‘창조적’ 소송 기법이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준비금, 연기금은 물론이고 미국 소재 아르헨티나 위성발사대, 아프리카 가나에 입항한 군함까지 압류를 시도했다(군함은 실제로 두 달간 억류됐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아르헨티나에 압박을 주기엔 충분했다. 엘리엇은 14년 소송전 끝에 2015년 아르헨티나로부터 24억 달러를 받아냈다. 투자 원금 대비 1270%의 초고수익이었다.   이런 ‘심리와 법’의 고수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도발했다. 정부의 1300억원 배상 책임(이자 및 소송비용 포함)으로 결론 난 삼성물산 관련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중재판정 직후 ‘승리 선언문’을 냈다. “아시아에서 주주행동주의 투자회사가 최고위층의 부패 범죄행위에 대해 승리한 최초의 분쟁 사례”라는 자랑과 함께 “한국 정부가 이번 판정을 교훈 삼아 부패와 계속 싸워나가기 바란다” 같은 주제넘은 충고까지 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름까지 들먹였다. “(이들의) 검찰 재직 시절 수사로 위법이 입증된 사건.” 세계 경제 10위에 자유민주주의 동맹의 한 축을 자부하는 국가가 일개 투기자본으로부터 조롱받은 꼴이 됐다. 자기 땅에 공장을 지으라는 미국 정부 요구에 사업 기밀 공개 압박까지 받으면서도 냉가슴만 앓는 우리 기업 처지와 대비되지 않는가. 도를 넘는 방자함으로 우리 정부의 평정심을 흩트려 놓겠다는 전략인가.   수모의 빌미를 우리가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2015년 엘리엇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는 우여곡절 끝에 엘리엇의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사들였던 엘리엇은 손실을 본 채 한국을 떴다. 그러나 이듬해 시작된 이른바 국정농단 수사가 반전의 계기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묵시적 청탁’ ‘제3자 뇌물’이라는 이례적 혐의가 적용됐다. 수사와 재판 결과에 시비 걸기는 힘들지만, 그런 혐의 적용이 ‘정치적’이라고 의심하는 국민도 상당수 있다. 이 수사 및 재판 결과를 엘리엇은 중재 과정에서 자신들의 논거로 이용했다. 우리 스스로 엘리엇에 무기를 쥐어준 셈이 됐다.   PCA(국제상설중재재판소) 중재판정부의 공정성과 법 논리도 따져볼 게 수두룩하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 등이 위법 행위가 확정됐지만, 그 행위가 국민연금의 합병 찬반 의사를 굴절시켰는지는 증거가 없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은 삼성물산 개인투자자 72명이 낸 국가 상대 손배소에서 “찬반 최종 결정권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에 있었다”는 1심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이번 중재판정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일대 사법적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령 국민연금의 선택이 굴절됐다 치자. 그러나 그 굴절이 주총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는 또 따져봐야 한다. 2015년 5월 17일 삼성물산 주총에서 나온 합병 찬성률은 69.53%였다. 당시 주총 참석률(83.57%) 등을 고려했을 때 전체 지분의 55.71%가 찬성하면 합병 건은 통과될 수 있었다(합병 특별결의의 경우 참석주 3분의 2 찬성이 필요). 당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1.21%였다. 설혹 국민연금이 반대했더라도 58% 찬성률로 합병안 통과가 가능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물론 지나친 단순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의 위법 행위가 결정을 뒤집었고, 이 바람에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엘리엇의 주장에 쉬 동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정부의 조처’로 봤다. 판정이 그대로 확정되면 기금 규모가 10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투자 활동에 큰 제약이 걸릴 수 있다. 자신들에 불리한 결정이 날 때마다, 혹은 관련 공무원의 개인적 비리·일탈이 벌어질 때마다 해외 투기자본이 시비 걸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당연히 불복 절차에 나서야 한다. 낮은 이의제기 수용률, 소송 비용이나 이자를 따지기에 앞서 국가의 체면이 걸린 문제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의 미래엔 아무 관심 없이 알짜배기 기업의 현재 빼먹기에만 몰두하는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벌처펀드의 봉이 돼서는 우리의 성장과 일자리가 위험해진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6.29 01:03

  • [세컷칼럼] 거부권에 갇힌 민주당의 부조리 정치

    승산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에겐 비장미가 있다. 알베르 카뮈가 수필 ‘시시포스 신화’에서 조명한 부조리의 철학이다. 그러나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정당이 무망한 싸움을 반복한다면 어떨까. 자신들의 정치 철학을 과시하고 지지 기반을 넓히는 효용이 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상대에 가할 타격만 생각하면서 자기가 입는 내상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해의 셈법이라면. 이건 비장미도 뭣도 아니다. 그냥 부조리일 뿐이다.   ■  「 실패 알면서 덤비는 시시포스인가 최선 힘들면 차선 모색이 책임정치 대안 정당의 이미지만 갈수록 훼손 대통령실도 자제의 덕성 발휘해야 」   “이 법에 정부와 여당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입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했다.” 5월 24일 민주당 소속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 표결을 강행하면서 한 말이다. “옳든 그르든 답이 있어야 책임지는 것이 입법부의 역할”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무슨 말일까. ‘그른 답’이라도 일단 내놓으면 책임을 다했다는 이야기인가. 이거야말로 ‘면피 정치’ ‘알리바이 정치’ 아닌가. 파업 장려법이라는 이 법이 용산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곤 전 위원장도 생각지 않았을 터다. 굴러내릴 줄 알면서도 밀어 올린 시시포스의 바위인가. 비장미는커녕 자기 합리화만 보인다.    21대 국회 후반기 들어 법사위 심사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은 모두 11건이다.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이미 양곡법, 간호법은 대통령 거부권 문턱에서 폐기됐다.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방송법, 화물자동차법(안전운임제) 개정안도 비슷한 길을 밟을 공산이 크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 논란의 법안에 서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임기가 끝나도 당장 사정이 바뀌기는 어렵다. 내년 총선 결과가 야당에 유리하게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툭하면 국회 일을 법대(法臺)로 가져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문제지만, 사법 환경도 야당에 녹록지 않다. 윤 대통령 임기 중 대법관과 재판관 상당수가 교체될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점점 보수적 색채가 짙어질 게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타협을 통해 차선이라도 모색하는 게 원내 1당의 책임 정치 아닌가. 베버식 표현대로라면 ‘신념 윤리’를 위해 ‘책임 윤리’를 저버린 꼴이 됐다. 당 대표 안위에 매달리는 당 상황을 생각하면 그 ‘신념’조차 의심스럽지만.    민주당은 특정 직역의 표도 겨냥하면서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로 몰아넣는 ‘일석이조’를 노렸다. 효과가 있을까. 간호법은 의사 표보다 간호사 표가 더 많다는 계산에서 강행됐지만, 간호사 숫자의 두 배 가까운 간호조무사들을 돌아서게 했다. 물리치료사·응급치료사 등의 다른 직역 의료단체가 민주당을 보는 눈도 싸늘해졌다. 벼농사 농업인, 노조, 간호사 등 특정 직역 편을 드는 과정에서 균형과 보편성을 잃어버린 모습이 과연 중도층에 어떻게 비칠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우락부락 입법 과정에서 대안 정당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이 민주당으로선 더 큰 손실이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양이원영 의원은 “통치세력으로서 유능함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거부권 앞에서 소리 나지 않는 도돌이 연주만 거듭하는 정당에 썩 어울리는 발언은 아닌 듯하다. 신화에 따르면 시시포스를 쉼 없는 도로(徒勞)로 내모는 것은 복수와 징벌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채찍질이라고 한다. 민주당을 끝없이 부조리로 모는 세력은 누구인가.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다.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참가한 독립 13개 주 대표들은 인류 사상 새로운 정치 체제인 대통령제에 합의하면서 거부권이란 무기를 그 자리에 부여했다. 군주제 회귀에 대한 강한 경계심에도 불구하고 행정 수반에게 강력한 헌법상 권리를 인정했다. 의회가 민중의 대의기구임은 분명하지만, 무소불위 입법부가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행정 수반이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의 암호해독자’(제임스 매디슨의 표현)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장치라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목숨을 걸고 침을 쏘는 벌처럼 거부권은 신중하게 행사되는 것이 맞다. 헌법기관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자제할 줄 알아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법이다(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 경위야 어떻든, 대의 기구인 국회의 결론을 국민의 또 다른 대표인 대통령이 거부하는 장면은 보통 상황이 아니다. 그 자체로 집권 세력의 부담이다. 미 제헌회의 13개 주 대표들이 결국 대통령제에 합의한 것은 그 자리의 첫 번째 주인공이 조지 워싱턴이란 ‘덕성의 정치인’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 세력으로서는 야당이 쳐놓은 거부권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제와 인내, 대화와 타협이라는 ‘덕성’을 발휘해야 한다. 야당의 불모(不毛) 정치와 차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6.04 23:00

  • [중앙시평] 거부권에 갇힌 민주당의 부조리 정치

    이현상 논설실장 승산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에겐 비장미가 있다. 알베르 카뮈가 수필 ‘시시포스 신화’에서 조명한 부조리의 철학이다. 그러나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정당이 무망한 싸움을 반복한다면 어떨까. 자신들의 정치 철학을 과시하고 지지 기반을 넓히는 효용이 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상대에 가할 타격만 생각하면서 자기가 입는 내상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해의 셈법이라면. 이건 비장미도 뭣도 아니다. 그냥 부조리일 뿐이다.     ■  「 실패 알면서 덤비는 시시포스인가 최선 힘들면 차선 모색이 책임정치 대안 정당의 이미지만 갈수록 훼손 대통령실도 자제의 덕성 발휘해야 」    “이 법에 정부와 여당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입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했다.” 5월 24일 민주당 소속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 표결을 강행하면서 한 말이다. “옳든 그르든 답이 있어야 책임지는 것이 입법부의 역할”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무슨 말일까. ‘그른 답’이라도 일단 내놓으면 책임을 다했다는 이야기인가. 이거야말로 ‘면피 정치’ ‘알리바이 정치’ 아닌가. 파업 장려법이라는 이 법이 용산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곤 전 위원장도 생각지 않았을 터다. 굴러내릴 줄 알면서도 밀어 올린 시시포스의 바위인가. 비장미는커녕 자기 합리화만 보인다.   21대 국회 후반기 들어 법사위 심사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된 법안은 모두 11건이다.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이미 양곡법, 간호법은 대통령 거부권 문턱에서 폐기됐다.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방송법, 화물자동차법(안전운임제) 개정안도 비슷한 길을 밟을 공산이 크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 논란의 법안에 서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임기가 끝나도 당장 사정이 바뀌기는 어렵다. 내년 총선 결과가 야당에 유리하게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툭하면 국회 일을 법대(法臺)로 가져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문제지만, 사법 환경도 야당에 녹록지 않다. 윤 대통령 임기 중 대법관과 재판관 상당수가 교체될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점점 보수적 색채가 짙어질 게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타협을 통해 차선이라도 모색하는 게 원내 1당의 책임 정치 아닌가. 베버식 표현대로라면 ‘신념 윤리’를 위해 ‘책임 윤리’를 저버린 꼴이 됐다. 당 대표 안위에 매달리는 당 상황을 생각하면 그 ‘신념’조차 의심스럽지만.   민주당은 특정 직역의 표도 겨냥하면서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로 몰아넣는 ‘일석이조’를 노렸다. 효과가 있을까. 간호법은 의사 표보다 간호사 표가 더 많다는 계산에서 강행됐지만, 간호사 숫자의 두 배 가까운 간호조무사들을 돌아서게 했다. 물리치료사·응급치료사 등의 다른 직역 의료단체가 민주당을 보는 눈도 싸늘해졌다. 벼농사 농업인, 노조, 간호사 등 특정 직역 편을 드는 과정에서 균형과 보편성을 잃어버린 모습이 과연 중도층에 어떻게 비칠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우락부락 입법 과정에서 대안 정당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이 민주당으로선 더 큰 손실이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양이원영 의원은 “통치세력으로서 유능함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거부권 앞에서 소리 나지 않는 도돌이 연주만 거듭하는 정당에 썩 어울리는 발언은 아닌 듯하다. 신화에 따르면 시시포스를 쉼 없는 도로(徒勞)로 내모는 것은 복수와 징벌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채찍질이라고 한다. 민주당을 끝없이 부조리로 모는 세력은 누구인가.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다.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 참가한 독립 13개 주 대표들은 인류 사상 새로운 정치 체제인 대통령제에 합의하면서 거부권이란 무기를 그 자리에 부여했다. 군주제 회귀에 대한 강한 경계심에도 불구하고 행정 수반에게 강력한 헌법상 권리를 인정했다. 의회가 민중의 대의기구임은 분명하지만, 무소불위 입법부가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행정 수반이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의 암호해독자’(제임스 매디슨의 표현)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장치라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목숨을 걸고 침을 쏘는 벌처럼 거부권은 신중하게 행사되는 것이 맞다. 헌법기관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자제할 줄 알아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법이다(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 경위야 어떻든, 대의 기구인 국회의 결론을 국민의 또 다른 대표인 대통령이 거부하는 장면은 보통 상황이 아니다. 그 자체로 집권 세력의 부담이다. 미 제헌회의 13개 주 대표들이 결국 대통령제에 합의한 것은 그 자리의 첫 번째 주인공이 조지 워싱턴이란 ‘덕성의 정치인’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 세력으로서는 야당이 쳐놓은 거부권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제와 인내, 대화와 타협이라는 ‘덕성’을 발휘해야 한다. 야당의 불모(不毛) 정치와 차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6.01 01:02

  • [이현상의 직격인터뷰] 획일적 ‘플랜테이션’ 대학에선 거목이 클 수 없다

     ━  ‘일대 혁신’ 내걸고 취임 100일…유홍림 서울대 총장   이현상 논설실장 캠퍼스는 몰라보게 변했다. ‘샤’자 정문 밑을 지나던 차로는 옆으로 비켜났고, 교내는 새로 들어선 건물로 빽빽해졌다. 중앙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계단’은 그대로지만, 축제장으로 쓰였던 행정관 앞 잔디광장은 새로 들어선 지하 주차장과 캐스케이드(계단형 수경시설)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 대학의 질적 변화는 이런 외양의 발전을 따라가고 있을까. 인공지능(AI), 4차 산업혁명, 융복합 같은 단어가 난무하는 지금, 우리 대학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가. 그 발걸음의 속도는 또 어떤가. 지난 2월 1일 4년의 임기를 시작한 유홍림 서울대 총장을 찾은 것은 이런 궁금증 때문이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집무실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  「 규제와 칸막이로 다양성 잃어…생태계 숨쉬는 ‘자연림’ 돼야 1, 2학년 대상 융합형 교육하는 ‘학부대학’ 2025년 설립 준비 신설되는 첨단융합학부, 새로운 교육 모델의 실험장이 될 것 」    혁신 대학 특징은 다양성과 융합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자연림 같은 대학 환경에서 큰 인재가 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취임 후 100일이 지났다. 취임사에서 ‘대전환 시대 서울대의 일대 혁신’을 내걸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앞으로 대학이 어떻게 가야 하나, 존재 이유는 뭔가, 서울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총장 출마 결심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10년 후 서울대가 지금 같아서는 안 된다는 젊은 교수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울대는 이런저런 발전계획이 있었다. 1975년 종합화, 2011년 법인화 때도 그랬다. 작년에는 ‘중장기발전계획’도 발표됐다. 그러나 큰 틀의 변화를 체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진짜 변화가 필요하다.”   가장 변하지 않은 게 무엇인가. “관료제형 대학의 모습이다. 서울대가 국립대인 데다, 국가 주도의 대량 인력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다. 그러나 규제가 획일적으로 적용되다 보니 다양성을 잃었다. 농업으로 치면 단일 작물을 대량으로 경작하는 ‘플랜테이션’이다. 학생 및 교수로 서울대에서 40여년을 보냈는데, 규정집이 점점 두꺼워졌다. 규정은 기본적으로 불신의 산물이다. 지나치게 강조되면 유연성이나 탄력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 교육이 ‘플랜테이션 경작’을 닮았다는 진단이 인상적이다. “미래에 필요한 지식과 인재의 형태는 과거와는 다르다. 엄청난 능력을 갖춘 개인(super-empowered individual)에 의해 세계가 바뀔 수 있는 시대다. 스티브 잡스가 좋은 예 아닌가.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네르바 대학, 애리조나 주립대 같은 세계적 혁신 대학의 목표는 그런 개인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런 개인은 지금의 ‘플랜테이션’ 같은 대학에선 나올 수 없다.”   혁신적 대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자연림(natural forest) 같은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대학들은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 그런 다양성을 이어주는 연결성이 또 다른 특징이다. 공간적 캠퍼스가 아니라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요체다. 그 위에서 유연성, 자발성, 자생성 등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연림 하면 약육강식에 대한 거부감이 앞서지만, 오해다. 모든 게 연결돼 결국 균형을 이루는 생태계가 자연이다. 경쟁도 물론 있지만, 경쟁과 함께 협업이 가능한 에코 시스템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대학이다.”   학문의 출발은 연결성에 대한 인식   지난 2월 8일 총장 취임식에서 유홍림 총장이 오세정 전임 총장(오른쪽)으로부터 서울대 상징 열쇠를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유 총장은 총장 출마의 변으로 J.S.밀의 ‘자유론’을 인용한 바 있다. “인간은 틀에 맞춰 제작돼 주어진 작업을 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오직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만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   총장 출마하면서 학부대학 신설 구상을 밝혔는데. “입학 후 1~2년이 가장 중요하다. 진로와 가치관이 결정되는 시기다. 학부대학은 1~2학년 학생에게 문제해결 능력, 소통 및 공감 능력, 비판적 사고력, 시민성 같은 공통 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이다. 지금도 교양과정이 있지만, 이 역시 분절적이고 플랜테이션적 학사과정이라 한계가 있다. 학생들은 거대한 우주로부터 내면의 사소한 감정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우고 싶어한다. ‘존재의 거대한 사슬’에 대한 인식이다. 이를 배우는 게 큰 대(大)자 쓰는 대학 아닐까. 철학자 칸트도 출발은 천체 물리학이었다. 최첨단 로보틱스, 하이테크 등이 인간의 행복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연결성에 대한 시선이 학문의 출발이라고 본다. 서울대 종합화(1975년) 50주년인 2025년에 맞춰서 학부대학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 생기는 첨단융합학부, 기존의 자유전공학부와 기초교육원이 학부대학에 포함될 것이다.”   서울대는 최근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218명 규모의 첨단융합학부 신설을 확정했다. ▶디지털헬스케어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지속가능기술 ▶혁신신약 ▶융합데이터과학 등 5개 전공 과정이다. 유 총장은 “내년부터 신입생을 뽑는 첨단융합학부를 새로운 교육 실험 모델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첨단융합학부는 기존 공과대학 교수진뿐 아니라 인문·사회대학 교수진도 참여시킨다는 구상이다.   “공간이 교육이다”는 말이 있다. ‘레지덴셜 칼리지(RC·기숙형 대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서울대에서 ‘LnL’(Living & Learning)이라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미국 스탠퍼드 등 서양의 전통 명문 대학들은 애초부터 RC 형태지만, 우리는 아직 실험 단계다. 캠퍼스 내 기숙사(관악사) 한 동을 리모델링해서 다양한 학과 학생을 입주시켰다. 지난해 300명을 모집했는데, 경쟁률이 4대 1이 될 만큼 높았다. 장기적으로 기숙사를 학부대학 과정과 결합할 구상도 있다. 단과대 학생을 섞어서 입주시켜 융복합형 인재로 키우고 싶다. 모든 비(非)교과 프로그램은 학생들 스스로 개발하게 해 자연스럽게 시민성과 리더십 함양으로 연결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기숙사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별도로 캠퍼스 내에 학내 구성원의 학습, 교류, 소통의 공간으로 ‘SNU Commons’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총장은 멀티형 리더십 요구돼   작년에 발표된 중장기발전계획에는 ‘서울대엔 2200명의 총장이 있다’는 표현이 있다. 혁신은 좋지만, 구성원의 생각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게 총장 리더십의 핵심이다. 교수, 학과, 단과대 등 자율적인 주체가 워낙 많으니까. 서울대 총장은 ‘선출직’과 ‘임명직’이라는 상반된 성격이 있다. 이사회가 최종 결정을 하지만, 교수들은 자신들이 선출에 사실상 간여한다고 생각한다. 총장이 강한 장악력을 쥐어야 한다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맞선다. 결국 소통과 설득이 중요하다. 명분과 비전이 합의를 이끌 원동력이다. 지금의 대학 총장은 멀티태스킹(다중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하고, 때로는 세일즈를 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진의 연구가 평균적으론 우수하지만, 아주 탁월한 실적(Only One)은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교육도 그렇지만, 연구도 ‘자연림’ 환경이 중요하다. 전임 교원을 학과부 소속으로 두는 학칙부터 바꿔야 한다. 전체 대학 소속도 있어야 하고, 단과대 소속도 있어야 한다. 소속을 유연화하면 융합·소통이 쉬워진다.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동료 교수에 대한 감사부터 표했다. 선진국 대학처럼 ‘브라운백 미팅’(샌드위치 등을 들며 하는 모임) 등을 통해 교수들끼리 교류하는 문화가 활성화해야 한다.”   제도혁신위원회가 신설됐는데. “두 가지가 목표다. 규정집을 줄이는 것과 ERP(전사적 자원관리) 도입. 규제는 ‘포지티브 형’에서 ‘네거티브 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명시적 규제를 빼고는 기본적으로 모두 푼다는 뜻이다. ERP는 효율적인 행정지원 체계를 위해서 필요하다. 그래야 관료제형 대학에서 플랫폼형 대학으로 갈 수 있다.”   입시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대학별 특성화가 제대로 되려면 대학별로 입시 자율성이 커져야 한다. 서울대 입시 제도가 초중등 수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조심스럽긴 하나, 큰 방향은 자율 강화다. 앞으로 AI나 하이테크의 발전으로 ‘기초학력’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다. 수학 문제 푸나 못 푸나가 기초학력의 기준이 아니게 될 수 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시구가 유명하다. 그 시구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나. “이 시구는 1971년 종합캠퍼스(관악캠퍼스) 기공식에 부친 축시다. 다양성·유연성·연결성·포용성 같은 개념은 어쩌면 캠퍼스 종합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칸막이가 문제 된다. 그걸 넘어서는 것이 이 시구를 유효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본다.”    ◆유홍림 총장=1961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럿거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정운찬 전 총장에 이어 21년 만의 사회대 출신 총장. 포용력과 온화한 성품을 지닌 외유내강형 학자라는 평. 이현상 논설실장, 정리=김홍범 기자

    2023.05.19 00:54

  • [세컷칼럼] 외교는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국빈을 불러놓고선 회담의 주목도를 흐리는 일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 건 당연했다. 이에 대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의 대답. “세계 무대에서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점, 그리고 한국의 선한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는 기간이 될 것이다.” 돌려 말했지만,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과 바이든의 출마 선언이 ‘윈-윈’할 것이라는 뉘앙스다. 외교가 우선인지, 정치가 우선인지 알쏭달쏭하다.   ■  「 바이든의 정치에 기여한 국빈방문 기시다는 정상회담 후 인기 급상승 외교 성과가 정치적 결실 맺으려면 절제된 말과 ‘반 발자국 정신’ 필요 」   아닌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바이든으로서는 훌륭한 정치 이벤트였다. 43분간 진행된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는 자유가 46번, 동맹이 27번, 민주주의가 18번 언급됐다.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 미국의 역할이 강조됐다. 미국적 가치에 대한 헌사였다. 바이든 입장에서는 중·러에 맞선 동맹 확보의 성공을 과시하는 기회가 됐다. 양국의 경제 현안이었던 반도체 문제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언급되지 않았다. IRA와 반도체법은 바이든의 재출마 포석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 중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민을 화나게 했던 IRA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윤 대통령에게 내심 고마웠을 법하다.    정상회담 효과를 즐기는 것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20%대 지지율이 최근 50%대를 돌파했다(니혼게이자이 여론조사). ‘나가타초(永田町·의사당이 있는 일본 정치 중심지)의 재미없는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기시다의 존재감이 확 뛰었다. 낮은 지지율로 중의원 해산 걱정을 하던 기시다는 이제 오히려 높은 지지율 때문에 의회 해산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참에 선거를 다시 치러 안정적 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행복한 고민’이다.    7일 방한하는 기시다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발언을 할지 관심이다.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기시다가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 의지를 표명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구체적 표현 수준은 지켜봐야 한다. 지난 3월 정상회담 때는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뜨뜻미지근한 언급에 그쳤다. 당내 입지가 약한 기시다로서는 당내 강경 우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난달 치러진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이겼다고는 하나 자민당보다 더 오른쪽인 일본유신회가 약진한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우파의 주장은 논리가 아니라 ‘정념’이다. ‘합리적’ 기시다가 이를 돌파할지가 주목된다.    윤 대통령도 한미정상회담 이후 지지율이 올랐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한 주 전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한일관계 논란, 도·감청 시비 등으로 잃어버린 지지율의 회복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지율 하나로 외교 성과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미·일의 지도자가 즐기는 외교 효과를 우리 대통령은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결국 섬세함이다. 문제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의 지나치게 직설적인 화법에 기인한다. 엊그제(2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나온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 안 하면서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 “적대 행위만 안 하면…” 등의 발언도 외교적 용어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지나친 공격적 언어는 중국이 중시한다는 ‘체면 외교’의 여지를 없애버릴 수 있다. 아무리 잘못한 상대에게도 최소한의 체면은 남겨둔다는 ‘류몐즈(留面子)’라는 중국 단어도 있지 않은가. 중국의 눈치를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한 용어만이 국가적 자존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말은 참모의 입을 통해 나오게 해도 충분하다. 외교야말로 ‘굿캅배드캅’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과의 ‘반 발자국’ 거리다. 영국의 외교관 로버트 쿠퍼는 “국가는 머리가 조언하는 대로보다는 심장이 요구하는 대로 반응한다”고 했다. ‘100년 전 일 무릎’ 발언은 말하자면 국가의 심장을 건드린 셈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일했던 이 노(老) 외교관은 “대외 정책도 결국 국내 정치에 의해 좌우되며, 대외 정책이 항상 이익을 두고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는 조언을 남겼다(『The Breaking of Nations』, 이상돈닷컴 참조).    외교의 목적은 ‘국익’이다. 하지만 국익의 개념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외교가 국가라는 ‘단일 행위자’가 한다는 생각도 순진하다. 외교는 안보·경제·여론 등이 정치 지도자의 인식을 통해 구체화하는 복합적 과정이다. 지도자의 인식이 국민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 거리부터 좁히는 것이 외교의 첫걸음이다. 지도자가 생각하는 국익이 종래엔 국민의 이익에 닿는다는 점을 절제된 언어로, 끈기 있게 설명해야 한다. 전쟁이 외교의 연장선에 있듯이 외교는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5.07 23:00

  • [중앙시평] 외교는 정치다

    이현상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국빈을 불러놓고선 회담의 주목도를 흐리는 일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 건 당연했다. 이에 대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의 대답. “세계 무대에서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점, 그리고 한국의 선한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는 기간이 될 것이다.” 돌려 말했지만,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과 바이든의 출마 선언이 ‘윈-윈’할 것이라는 뉘앙스다. 외교가 우선인지, 정치가 우선인지 알쏭달쏭하다.     ■  「 바이든의 정치에 기여한 국빈방문 기시다는 정상회담 후 인기 급상승 외교 성과가 정치적 결실 맺으려면 절제된 말과 ‘반 발자국 정신’ 필요 」    아닌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바이든으로서는 훌륭한 정치 이벤트였다. 43분간 진행된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는 자유가 46번, 동맹이 27번, 민주주의가 18번 언급됐다.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 미국의 역할이 강조됐다. 미국적 가치에 대한 헌사였다. 바이든 입장에서는 중·러에 맞선 동맹 확보의 성공을 과시하는 기회가 됐다. 양국의 경제 현안이었던 반도체 문제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언급되지 않았다. IRA와 반도체법은 바이든의 재출마 포석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 중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민을 화나게 했던 IRA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윤 대통령에게 내심 고마웠을 법하다.   정상회담 효과를 즐기는 것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20%대 지지율이 최근 50%대를 돌파했다(니혼게이자이 여론조사). ‘나가타초(永田町·의사당이 있는 일본 정치 중심지)의 재미없는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기시다의 존재감이 확 뛰었다. 낮은 지지율로 중의원 해산 걱정을 하던 기시다는 이제 오히려 높은 지지율 때문에 의회 해산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참에 선거를 다시 치러 안정적 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행복한 고민’이다.   7일 방한하는 기시다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발언을 할지 관심이다.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기시다가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 의지를 표명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구체적 표현 수준은 지켜봐야 한다. 지난 3월 정상회담 때는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뜨뜻미지근한 언급에 그쳤다. 당내 입지가 약한 기시다로서는 당내 강경 우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지난달 치러진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이겼다고는 하나 자민당보다 더 오른쪽인 일본유신회가 약진한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우파의 주장은 논리가 아니라 ‘정념’이다. ‘합리적’ 기시다가 이를 돌파할지가 주목된다.   윤 대통령도 한미정상회담 이후 지지율이 올랐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한 주 전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한일관계 논란, 도·감청 시비 등으로 잃어버린 지지율의 회복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지율 하나로 외교 성과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미·일의 지도자가 즐기는 외교 효과를 우리 대통령은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결국 섬세함이다. 문제의 상당 부분은 대통령의 지나치게 직설적인 화법에 기인한다. 엊그제(2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나온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 안 하면서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 “적대 행위만 안 하면…” 등의 발언도 외교적 용어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지나친 공격적 언어는 중국이 중시한다는 ‘체면 외교’의 여지를 없애버릴 수 있다. 아무리 잘못한 상대에게도 최소한의 체면은 남겨둔다는 ‘류몐즈(留面子)’라는 중국 단어도 있지 않은가. 중국의 눈치를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한 용어만이 국가적 자존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말은 참모의 입을 통해 나오게 해도 충분하다. 외교야말로 ‘굿캅배드캅’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과의 ‘반 발자국’ 거리다. 영국의 외교관 로버트 쿠퍼는 “국가는 머리가 조언하는 대로보다는 심장이 요구하는 대로 반응한다”고 했다. ‘100년 전 일 무릎’ 발언은 말하자면 국가의 심장을 건드린 셈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일했던 이 노(老) 외교관은 “대외 정책도 결국 국내 정치에 의해 좌우되며, 대외 정책이 항상 이익을 두고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는 조언을 남겼다(『The Breaking of Nations』, 이상돈닷컴 참조).   외교의 목적은 ‘국익’이다. 하지만 국익의 개념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외교가 국가라는 ‘단일 행위자’가 한다는 생각도 순진하다. 외교는 안보·경제·여론 등이 정치 지도자의 인식을 통해 구체화하는 복합적 과정이다. 지도자의 인식이 국민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 거리부터 좁히는 것이 외교의 첫걸음이다. 지도자가 생각하는 국익이 종래엔 국민의 이익에 닿는다는 점을 절제된 언어로, 끈기 있게 설명해야 한다. 전쟁이 외교의 연장선에 있듯이 외교는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5.04 01:04

  • [중앙시평] 노적봉이라도 쌓자는 건가

    이현상 논설실장 양곡관리법 개정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주요 명분은 식량안보다. 이재명 대표는 “양곡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식량안보 전략 포기 선언”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식량안보란 어떤 걸까. 한반도 주변에 전쟁이 나서 갑자기 식량 수입이 뚝 끊어지는 상황을 상정한 걸까.   한국의 쌀 자급률은 90%가 넘는다. 나머지 10%도 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WTO(세계무역기구) 규약에 따라 의무 수입하는 TRQ(저율관세할당물량) 때문이다. 고립된 성(城)을 놓고 벌이는 사극 전투 장면을 너무 열심히 본 탓일까. 민주당의 식량안보론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 국토가 좁다지만 성 한 채와 비교할 수는 없다. 식량 수입이 위협받을 정도의 극단적 상황이라면 한국이 거의 전량 수입하는 에너지는 더 위험하다. 염화칼륨·요소 같은 비료 원자재도 끊어질 가능성이 높다. 농지가 널려도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쌀이 넘쳐도 유통할 방법이 사라진다.     ■  「 민주당의 시대착오 식량안보론 국가를 좁은 성쯤으로 여기는 듯 정책 정당으로서 밑바닥 드러내 식량안보 강국 어딘지부터 보라 」    2005년 ‘공공비축제’ 도입 이후 정부는 매년 6000억~1조원을 햅쌀을 사는 데 쓴다. 이렇게 쌓아둔 쌀은 3년쯤 지나면 가공용으로 헐값에 넘어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보관 비용으로 매년 수천억 원이 들어간다.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물량을 사들이는 ‘시장 격리제’도 운영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공공비축제 도입 이후 17번의 시장격리를 위해 23조원이 들었다. 다 국민 세금이다. 식량안보를 위한 보험료쯤으로 생각하자고? 보험료는 적정 요율이란 게 있다. 위험 대비랍시고 밑도 끝도 없이 보험을 늘리는 건 어리석은 살림꾼이나 할 짓이다.   사실 민주당이 식량안보의 개념을 정확하게 아는지조차 의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표한 2022년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1위 국가는 핀란드다. 동토의 이 나라가 식량 자급률이 뛰어나 1위를 했을 리는 없다. 핀란드는 구매능력, 공급능력, 식품안전 및 품질, 지속가능성 등 평가 네 부문 모두 상위권이다. 식량 수입을 위한 높은 경제력과 안정적 네트워크가 있고, 그 위에 소비자 기호와 건강을 고려하는 식량 관리 체계까지 골고루 갖췄다는 뜻이다.   식량안보를 자급률로만 따지는 건 좁은 시야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급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에서 들여오는 다양한 식재료와 맛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식량자급률이 80%에 달했던 1970년대 말 우리 식탁이 지금처럼 풍성했던가. 자급률이 90%에 이른다는 북한의 만성적 식량 부족은 또 어떤가. 식량안보를 칼로리의 보급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소득 4만 달러를 바라보는 국가라면 영양 균형, 식습관, 기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규모 곡물 생산국 대신에 아일랜드·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 같은 북유럽 고소득 국가가 식량안보 10위권에 포진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GFSI 순위에서 한국은 39위다.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비(非)농업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비관할 수치도 아니다. 한국의 순위를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수입 농산물 관세다. 이 부문에서 한국은 0점을 받았다. 수입쌀 관세율 513%가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국제가보다 6배나 비싼 쌀이 우리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만은 직시해야 한다. 쌀 산업에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벼농사는 100% 가까이 기계화됐다. 정부가 수매해주니 판로도 걱정할 필요 없다. 큰돈은 못 벌어도 ‘쉬운 농사’가 되다 보니 고령의 농민들이 논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바람에 부농의 꿈을 꾸는 젊은 상품작물 재배자의 밭일은 더 힘들어졌다.   우리 식생활과 기후가 비슷한 일본은 GFSI 6위다.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한국과 큰 차이 없다. 그런데도 상위를 점한 것은 월등한 수입 역량 때문이다. 일본은 2000년대부터 미쓰이·마루베니·미쓰비시 등 종합상사들이 산지의 곡물엘리베이터(곡물의 저장·이송 인프라)를 확보해왔다. 일본 농협 격인 젠노(全農)만 해도 60개를 확보했다고 한다. 한국은 이제 겨우 2개를 확보한 상태다.   성안에서 노적가리 쌓듯 든든하게 식량부터 확보해놓자는 전략은 시대착오적이다.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자급하자는 생각만큼 터무니없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개방과 네트워크 활용 덕분 아니던가. 물론 수입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식량 자급률을 일정 정도로 올리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자급률 100% 가까운 쌀은 아니다. 밀·콩 같은 자급률 낮은 곡물로 정책의 눈을 돌려야 한다.   민주당으로선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이 농심의 덫에 걸려들었다며 쾌재를 외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책 정당으로서 역량 바닥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쌀 농가의 불만을 다독이며 전체 농업 발전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확실한 건 “밥 한 공기 더 먹자”는 한심한 대책으로는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4.06 01:02

  • [세컷칼럼] 트루먼 명패의 뒷면

    한·일 과거사 문제는 지뢰밭이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함부로 들어갔다간 길을 잃는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문을 열었다가 중상을 입었고, 문재인 정부는 슬며시 되돌아 나와 그 문을 닫고는 지지율 호재로 사용했다. 그 지뢰밭에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들어갔다. 무사귀환할 수 있을까.   결단은 필요했다. 막혀버린 한·일 관계의 물줄기를 터야 했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두 나라의 과거 문제에 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를 위태롭게 하고 미래를 좁히는 일이다. 당장 미국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very much support),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가 결정됐다. 한미동맹이 한 단계 더 진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현재로선 ‘대승적 결단’의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해외 여론은 우호적이지만, 국내 여론은 갈린다. ‘동냥은 필요 없다’는 피해자 당사자의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다. 문제는 일본이다. 박근혜 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했던 아베는 합의문 외엔 한 톨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에 사죄 편지를 보내는 방안이 거론되자 “털끝만큼도 생각 없다”고 차갑게 대꾸했다. 그 순간 합의문은 한국민의 마음속에서 지워져 버렸고, 박근혜 정부 입장이 난처해졌다. 일본의 4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비슷한 망언이 돌출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절반을 채운 잔이 더 차기는커녕 깨져버릴지 모른다.     ■  「 “책임은 내가 진다”는 명패 뒤쪽엔 “나는 미주리주 출신이다”는 문구 현실도 당위만큼 살피겠다 의지 과거사 해결, 당위·현실 함께 봐야 」    총론이 옳다고 해서 각론을 안 짚어볼 수는 없다. 우리 패를 성급하게 보여줘 일본에 주도권을 넘겨줬다는 지적은 새길 필요가 있다. 한·미·일 삼각 공조를 앞세운 미국의 채근에 마음이 급했겠지만, 쫓기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포커판에서 실력과 운 외에 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돈이 적거나 일찍 일어나야 하거나. 실무진이 ‘속도 조절론’을 주장했으나 윤 대통령은 “책임은 내가 진다”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윤석열식 리더십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 만큼 정치적 부담은 오롯이 대통령의 어깨에 얹힐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결단하면 떠오르는 것이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명패(정확하게는 좌우명패)다. 명패에 적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대통령의 자세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2차 대전 중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급서(急逝)로 부통령에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이 명패 뒤에서 여러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두 차례의 원폭 투하, 마셜 플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베를린 공수 작전, 한국전쟁 파병 등.   그러나 트루먼의 명패에는 책임을 강조한 멋진 문구만 있었던 건 아니다. 명패 뒷면에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I’m from Missouri)”가 적혀 있었다는 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이다. 결단을 앞둔 트루먼은 왜 자신의 출신을 되새겼을까.   지금은 공화당세가 완연하지만, 20세기 미주리는 전형적인 ‘스윙 스테이트’(민주당과 공화당을 번갈아 지지하는 주)였다. 그만큼 현실주의 기질이 강한 지역이다. 주의 별명이 ‘쇼 미(Show Me) 스테이트’다. “거품 문 공허한 웅변은 나를 설득하지 못한다. 나에겐 보여줘야 한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는 이 곳 출신 연방 하원의원 윌러드 던컨 밴디버의 1899년 연설이다. 미주리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라는 숨은 좌우명은 “따져볼 건 따진다”는 현실 중시 다짐은 아니었을까. 주세(州勢)가 약한 중부 출신으로 트루먼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성공한 것도 이런 현실주의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명패의 앞면이 대통령의 ‘당위’였다면, 명패의 뒷면은 정치인의 ‘존재’였던 셈이다.   지도자의 결단은 고독하다. 그래서 비장미를 띤다. 그러나 ‘결단’과 ‘독단’ 사이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흐릿하다. 대통령은 개인이지만, 대통령직은 제도다. 공화적 가치가 집약된 헌법 기구다. 최종적 의사 결정은 지도자의 몫이지만, 마지막까지 듣고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놓은 의사 결정 과정은 종종 “나에겐 보여줘야 한다”는 날 선 목소리와 맞닥뜨린다.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렇다. 5년 단임제의 숙명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강제징용 해법은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큰 결단이다. 정권의 지지 여부를 떠나 이 결단이 실패하면 한국 외교는 갈 길을 잃는다. 이를 위해서라도 당위와 존재(현실)의 조화를 찾아야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일을 결단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책상 위에는 트루먼의 명패를 본뜬 명패가 있다. 지난해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것이다. 그 명패 뒷면에 어떤 문구가 있는지, 혹은 비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만일 비어 있다면 어떤 문구를 써넣을지 윤 대통령이 고민해봤으면 한다. 결단은 현실과 결합할 때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글=이현상 논설실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2023.03.12 23:00

  • [중앙시평] 트루먼 명패의 뒷면

    이현상 논설실장 한·일 과거사 문제는 지뢰밭이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함부로 들어갔다간 길을 잃는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문을 열었다가 중상을 입었고, 문재인 정부는 슬며시 되돌아 나와 그 문을 닫고는 지지율 호재로 사용했다. 그 지뢰밭에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들어갔다. 무사귀환할 수 있을까.   결단은 필요했다. 막혀버린 한·일 관계의 물줄기를 터야 했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두 나라의 과거 문제에 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를 위태롭게 하고 미래를 좁히는 일이다. 당장 미국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very much support),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가 결정됐다. 한미동맹이 한 단계 더 진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현재로선 ‘대승적 결단’의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해외 여론은 우호적이지만, 국내 여론은 갈린다. ‘동냥은 필요 없다’는 피해자 당사자의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다. 문제는 일본이다. 박근혜 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했던 아베는 합의문 외엔 한 톨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에 사죄 편지를 보내는 방안이 거론되자 “털끝만큼도 생각 없다”고 차갑게 대꾸했다. 그 순간 합의문은 한국민의 마음속에서 지워져 버렸고, 박근혜 정부 입장이 난처해졌다. 일본의 4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비슷한 망언이 돌출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절반을 채운 잔이 더 차기는커녕 깨져버릴지 모른다.       ■  「 “책임은 내가 진다”는 명패 뒤쪽엔 “나는 미주리주 출신이다”는 문구 현실도 당위만큼 살피겠다 의지 과거사 해결, 당위·현실 함께 봐야 」    총론이 옳다고 해서 각론을 안 짚어볼 수는 없다. 우리 패를 성급하게 보여줘 일본에 주도권을 넘겨줬다는 지적은 새길 필요가 있다. 한·미·일 삼각 공조를 앞세운 미국의 채근에 마음이 급했겠지만, 쫓기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포커판에서 실력과 운 외에 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돈이 적거나 일찍 일어나야 하거나. 실무진이 ‘속도 조절론’을 주장했으나 윤 대통령은 “책임은 내가 진다”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윤석열식 리더십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 만큼 정치적 부담은 오롯이 대통령의 어깨에 얹힐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결단하면 떠오르는 것이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명패(정확하게는 좌우명패)다. 명패에 적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대통령의 자세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2차 대전 중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급서(急逝)로 부통령에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이 명패 뒤에서 여러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두 차례의 원폭 투하, 마셜 플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베를린 공수 작전, 한국전쟁 파병 등.   그러나 트루먼의 명패에는 책임을 강조한 멋진 문구만 있었던 건 아니다. 명패 뒷면에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I’m from Missouri)”가 적혀 있었다는 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이다. 결단을 앞둔 트루먼은 왜 자신의 출신을 되새겼을까.   지금은 공화당세가 완연하지만, 20세기 미주리는 전형적인 ‘스윙 스테이트’(민주당과 공화당을 번갈아 지지하는 주)였다. 그만큼 현실주의 기질이 강한 지역이다. 주의 별명이 ‘쇼 미(Show Me) 스테이트’다. “거품 문 공허한 웅변은 나를 설득하지 못한다. 나에겐 보여줘야 한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는 이 곳 출신 연방 하원의원 윌러드 던컨 밴디버의 1899년 연설이다. 미주리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라는 숨은 좌우명은 “따져볼 건 따진다”는 현실 중시 다짐은 아니었을까. 주세(州勢)가 약한 중부 출신으로 트루먼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성공한 것도 이런 현실주의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명패의 앞면이 대통령의 ‘당위’였다면, 명패의 뒷면은 정치인의 ‘존재’였던 셈이다.   지도자의 결단은 고독하다. 그래서 비장미를 띤다. 그러나 ‘결단’과 ‘독단’ 사이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흐릿하다. 대통령은 개인이지만, 대통령직은 제도다. 공화적 가치가 집약된 헌법 기구다. 최종적 의사 결정은 지도자의 몫이지만, 마지막까지 듣고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놓은 의사 결정 과정은 종종 “나에겐 보여줘야 한다”는 날 선 목소리와 맞닥뜨린다.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렇다. 5년 단임제의 숙명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강제징용 해법은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큰 결단이다. 정권의 지지 여부를 떠나 이 결단이 실패하면 한국 외교는 갈 길을 잃는다. 이를 위해서라도 당위와 존재(현실)의 조화를 찾아야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일을 결단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책상 위에는 트루먼의 명패를 본뜬 명패가 있다. 지난해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것이다. 그 명패 뒷면에 어떤 문구가 있는지, 혹은 비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만일 비어 있다면 어떤 문구를 써넣을지 윤 대통령이 고민해봤으면 한다. 결단은 현실과 결합할 때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이현상 논설실장

    2023.03.09 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