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철 사회 디렉터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28시간 만에 낙마한 뒤 벌써 한 주가 흘렀다. 그 사이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상정됐는데 ‘가결 같은 부결’이라는 보기 드문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온통 정순신에 쏠린 국민 시선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럴 만한 게, 이번 사태는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요소를 두루 갖췄다. 우선 만인의 관심사란 점. 학교폭력은 학창 시절 본인 또는 친구들이 한 번쯤 겪었을 수 있고, 혹시 내 아이가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사안이다. 둘째 권선징악의 전복. 피해자는 극단 선택까지 하는데 가해자는 전학 가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했다. 셋째는 아빠 찬스. 전학 처분 피한답시고 대법원까지 소송을 벌였는데 배후엔 현직 검찰 고위 간부 아빠가 있었다. 그 아빠가 3만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하며 학폭과 소송 이력을 숨겼다는 거짓말이 뒤를 잇는다. 마무리는 그런 사실을 걸러내지 못하는 부실 검증 시스템이 장식했다.
통렬한 반성, 진심 어린 사과라도 있었다면 씁쓸한 마음 누르고 다음 조치를 기다릴 텐데, 인선과 검증에 관계된 사람들의 반응은 오히려 염장을 지른다.
정순신 낙마 사태 후유증 계속
임명·검증 관계자 사과도 없어
국수본부장, 또 검사 출신 우려

서소문 포럼
대통령실의 첫 반응은 “상황을 매우 엄중히 보고 있다”(26일)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 “추천권자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윤희근 경찰청장의 발언은 무능과 무책임의 고백이다. 사실 추천권자인 경찰청장의 역할은 서류 전달밖에 없었다.
“아들이 국수본부장에 임명된 게 아니잖아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의 엄호 발언은 적반하장의 끝판왕. 28일 검증 책임자인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내 책임이 크고 피할 생각 없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같은 날 “정무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법무부 인사검증단의 상관이니 책임감은 느낀다는 것인데, 책임지겠다는 뜻인가란 질문엔 곧바로 “아니다”라고 잘랐다.
결국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게 된 정순신 본인의 해명은 더 압권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형으로 알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공직후보자 사전 질문서는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는 이 문항을 현재 있느냐는 뜻으로 해석했기에 “지금은 없다”는 의미로 답했다는 것. 이 와중에 조문을 분석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찾다니, 과연 ‘법 기술자’다운 풍모다.
그의 ‘현재형’은 한 장관의 ‘등’과 오버랩된다. 지난해 8월, 법무부는 검사의 수사 개시 대상을 법이 규정한 부패와 경제범죄에서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 범죄로 넓힌 시행령을 내놨다. ‘경제범죄 등’이라고 쓰인 법 조항(검찰청법 4조)에서 ‘등’을 한껏 활용해 검수완박 법안을 무력화한 것이다. 시행령 쿠데타라는 비판에 한 장관은 “법률의 문언이 법률 해석의 원칙적인 기준임은 확립된 대법원 판례”라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순신 변호사의 사임 입장문도 우려스럽다.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 판결”이라고 언급한 대목이다. 많은 법률가들이 수사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보는데, 그에게 이런 가치 지향적 판단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일단 유죄 심증을 가지면, 증거가 나올 때까지 사돈의 8촌까지 탈탈 터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는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 바로 아래 직급이다. 청장 지휘를 받지 않지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수사 후엔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경찰 지휘에 익숙한 검사들에게 썩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다. 실제 2년 전 초대 국수본부장을 공모할 때 검찰 출신은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검찰총장이 사임 후 곧장 대통령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요직을 익숙한 측근들로 채웠다. 검수완박 법안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며 야당은 무력해진 상태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경찰국을 만들어 인사권을 장악했다.
남은 돌발 변수는 경찰의 수사권 정도. 혹시 예상치 못한 수사 결과를 들고나오면 골치 아프다. ‘김학의 사건’에서 충분히 경험한 바다. 만약 검사 출신 측근이 경찰 수사총책이 된다면 그 가능성도 차단된다. 정 변호사가 지원 동기로 밝힌 경찰의 수사역량 강화는 그냥 ‘수사(修辭)’일 뿐이다. 같은 이유로 다음 국수본부장도 검찰 출신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