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진정으로 강해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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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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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드디어 제1 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난다. 잘된 일이지만 황금 같은 지난 2년의 국정동력 손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총선 참패 엿새 만에 국무회의 모두발언 형식으로 나온 대국민 메시지도 실망스러웠다. 번역기로 돌린다면 본심은 “나의 국정 방향은 옳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하다”였다. 네 시간 뒤 참모들이 전해 준 “죄송하다”는 표현에는 진정성이 없었다.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드러난 민심 이반에도 불구하고 정신 승리의 초현실적 세계에 머물고 있었다. “경제적 포퓰리즘은 마약과 같은 것”이라며 야당을 거칠게 공격했다. ‘포퓰리즘 파이터’였던 윤희숙 의원조차 대통령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총선에서 낙선해 수도권 민심을 체험한 그는 “재정건전성을 어느정도 허물어서라도 한계에 몰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지혜로운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누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가.

비선 정리하고 쓴소리 경청을
김건희 여사 문제 무겁게 다뤄야
이재명 대표 국정 운영 동반자로
불완전함 인정하고 달라져야

항간에는 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탓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윤 정부의 국정 성과를 알리지 않고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자기 장사만 한 것이 총선 패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실상과는 차이가 있다. 김건희 여사 논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도피 출국, 대파 875원 논란은 모두 용산발 대형 악재였다. 용산의 내부 혼선도 끝이 없다. 대국민 메시지 작성 과정에서 비서실장·정무수석·홍보수석 등 공식 라인이 배제됐다.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카드를 흘린 것도 비선 실세들이었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회의해 결정한 뒤 관저에만 다녀오면 전혀 다른 말씀을 한다. 관저 정치를 없애는 것이 급선무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니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 농단이 드러난 직후 지지율 25%보다도 낮은 23%로 추락한 것이다.

용산에서는 “직언하려면 직을 걸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심없이 쓴소리를 한 원로나 친구는 연락이 끊어진다. 예스맨이 득세하고 용산 3적(賊), 6적, 8적 리스트가 떠돈다. 세종대왕 재위기에도 직언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오죽하면 세종이 “아직 과감한 말로 면전에서 쟁간하는 자나 중론을 반대해 논란하는 자가 없다”고 탄식했을까. 윤 대통령은 비선을 정리하고 참모들의 쓴소리를 권장하고 경청해야 한다. 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야당(opposition party)은 정당정치에서 반대의견을 제도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야당을 무시하면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사안은 무겁게 다뤄야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명품백 수수 사건을 둘러싸고 용산과 검찰 수뇌부는 갈등하고 있다. 국민 다수도 야권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반대한다. 대통령 부인이라고 적당히 덮고 넘어간다면 입시비리로 ‘멸문지화’를 당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일가 수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헌법 11조 1항에 명시된 ‘법 앞의 평등’이라는 근대 문명국가의 대전제가 무너지게 된다.

윤 대통령은 마음을 비우고 몸을 낮춰야 한다. 정상회담의 화려한 의전과 환호에 가려졌던 서민의 고단한 일상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중생을 구제하기 전까지는 지옥을 떠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연민이 발심(發心)할 것이다. 남루한 범부(凡夫)의 아픔을 당장 치유하지는 못하겠지만, 군중의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몸을 맡기는 예수의 심정으로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은 거대 신전(神殿)을 축조하면서 기둥을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만들었다. 안구의 망막이 곡면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생적 시각의 왜곡까지 감안해 결과적으로 직선을 구현해 냈다. 데카르트는 세상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이런 지독한 분별의 힘으로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의 새벽을 알린 철학자·수학자·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 권력은 타인을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일이다. 그래서 본질은 폭력이다. 대통령은 그 정점에 선 정치인이다. 막스 웨버가 말한 책임윤리를 다해 성공해야만 용서받는다. 그러기에 나의 불완전함을 메우기 위해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일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미국과 소련은 파시즘에 맞서 제2차 세계대전을 끝장낸 양대 강국이었다.  두 동맹국이 불과 5년 만에 중국까지 끌어들여 ‘미니 3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만든 사나운 지정학의 공간인 한반도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핵을 가진 호전적인 북한과 중국·러시아는 그때처럼 밀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로를 향한 내부 총질을 중단하고 통합을 이뤄야 한다. 여소야대지만 야당을 파트너로 활용하면 수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다. 비슷한 조건의 노태우 정부는 내치와 외교에 모두 성공했다. 정성을 다한 협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고,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강해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