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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필진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원장·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학사 및 석사
하버드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전 서울대 대외협력처장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 방문교수
전 대통력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전 감사원 자문위원장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송호근 칼럼] 방역정권의 정신구조를 묻는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뒤죽박죽이었다. 정권의 전방위적 싸움이 코로나와 가세해 일상을 들쑤셨다. 2020년이 그렇게 가고 신생의 해가 솟았다. 시간에 마디를 두는 것은 혼란을 묻고 가슴 벅찬 개활지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힘든 세월이었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갇혔다. 이중의 벽이다. 코로나가 명령한 동선 금압의 벽과 집권세력이 강박한 절대이념의 벽. 두 벽의 공통점은 바이러스 박멸, 곧 방역(防疫)이다. 3년 반이 경과한 요즘 현 정권은 ‘방역정권’이란 생각이 맴돈다. 적을 호명해 척결하는 것으로 정당성을 쌓는 정권. 모든 적수를 바이러스, 박멸 대상으로 간주했다. 언술과 행동, 민생정책의 본질이 그랬다. 국민들은 정권의 확증편향 울타리에 갇혔다. 코로나 장벽은 백신접종으로 낮아질 터, 집권층의 편집증 망탈리테(정신구조)를 치유할 통치학적 백신은 나올 것인가?   인고의 터널은 연장될듯하다. 적어도 한번쯤 진솔한 사과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면 생각을 달리 했을지 모른다. 정책엔 항상 부작용, ‘의도치 않은 결과’가 발생한다. 현 정권은 그 보편적 법칙을 줄곧 부정했다. 변명도 자책인정이 아니라 만회의 술수였다. 백신 확보를 위한 대통령의 느닷없는 퍼포먼스가 그랬다. 전화 한통으로 ‘물량 확보 끝!’이라면 왜 그 전에는 손 놓고 있었을까. 3년 반 동안, 청와대발(發) 사과를 딱 한번 들었다. ‘추·윤 대립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렸다’까지는 흐뭇했는데, 검찰개혁 운운에서 그만 악몽이 되살아났다. 대저, 거대여당과 실세가 목메어 합창하는 검찰개혁은 무엇을 위함인가? 전국민이 겪은 일년 스트레스 총량을 보상하고도 남는가?   사법부를 백번 불신해도 직권정지 무효라면 한 달쯤은 자성기간을 가져야 양심정치다. 거대여당의 집단 포화는 새벽이 밝자 개시됐다. ‘촛불혁명을 훼손한 사법부의 쿠테타’ ‘검찰과 법원의 선명한 선민의식’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반법치적 울분에도 모자라 총장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다. 179대 1, 어딘가 치졸하지 않은가? 필자는 거꾸로 읽게끔 됐다. ‘촛불혁명을 왜곡한 독선행보’ ‘정권실세의 유별난 선민의식’ ‘삼권분립 존중이 민주주의’라고. ‘대통령이 외로워’ 안쓰러운가? 코로나에 시달리고 생계가 막막한 국민들이 더 외롭다.   적수와 경쟁자에 대한 뒤틀린 경계의식과 확증편향은 군사정권이 이들에게 아로새긴 ‘저항적 생체지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1980년대 청년시절, 군부가 가한 물리적 폭력이 이항대립적 민주신념의 절대화를 낳았다. 우리들의 민주!는 순도 백 프로다. 타협도 양보도 없다. 적수의 비난과 경쟁자의 도전은 구악(舊惡)과 적폐 잔치일 뿐. 소득주도성장, 주택정책, 기업규제 모두는 하층과 약자를 위한 십자군 출정이라는 확신. 부작용은 시간이 해결한다는 비이성적 신념. 그리고 사회 경제계의 엘리트 카르텔은 공공의 적.   소주성을 주도한 일단의 부역꾼들은 면책 마을로 은퇴했고, 하층과 무주택자를 난도질한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집값이 오른 아파트로 어리둥절 귀환했다. 두 배로 오른 종부세는 어쨌든 즐겁게 납부할 것이다. 토지소유 금지를 주장한 헨리 조지, 토마스 페인의 철지난 급진사상가를 액자에 걸고 말이다. 팬데믹으로 일자리는 고갈되는데, 기업규제 3법은 벌써 통과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계류 중이다. 해고노동자가 노조로 귀환해 자해라도 한다면 고용주는 처벌대상이다. 문명과 자본의 구조법칙이 완전히 뒤바뀐 AI시대에 의기양양 휘두르는 방역정권의 1980년대식 생체지식은 한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가.   ‘타협과 양보’는 권력재창출의 지혜이거늘 생체지식 리스트에는 없다. 중간지대는커녕 멀고 먼 ‘이상적 민주’의 극단에서 꼼짝달싹 않는다. 군부독재가 그랬듯, 절대적 관념론 신봉자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최고의, 최후의 관념론 군주국이었던 조선의 후예다. 양극의 진자운동을 관할하는 것은 절대적 관념론. 노론(老論) 수장 송시열의 존주론(尊周論)은 유럽 관념론의 원조인 헤겔(Hegel)을 능가한다. ‘국가는 역사의 구현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법철학』에서 그래도 헤겔은 충돌하는 시민주권의 조정기구(의회)가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조선의 노론(老論)은 만인을 강상명교(綱常名敎)의 울타리에 가뒀다. 국민을 ‘그들의 민주관념’에 가둔 현 정권의 망탈리테다.   노론의 원혼(冤魂)이 21세기 한국에 옮겨 붙었는가?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그것은 무사고(無思考)의 원천이다. 박근혜가 애국심 하나로 모든 일탈을 치장했듯이, 현 정권은 유토피아적 민주! 하나로 독선의 길을 간다. 현실은 증발, ‘사고(思考)없음!’이다. 사고(事故)를 치고 있다는 것은 알까. 이 정권이 일찌감치 해양을 등지고 절대론의 발상지 대륙으로 돌아선 것도 이제 조금은 이해된다. 그곳엔 중국과 북한이 있다. 대한민국을 대륙사상의 하수인, 대륙정치의 출납계로 만들고 싶은 게다.(17년간의 집필을 잠시 멈추려 합니다. 독자들께 심심한 양해를 구합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1.01.04 00:31

  • [송호근 칼럼] K-구재는 어디에?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나는 이즘 확신한다. 더 무서운 현실이 대기 중임을. 일 년이면 끝날 거라는 낙관적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현대과학은 무력했다. 나노 몸통에 돌기를 두른 코로나 바이러스는 과학의 담장을 마음껏 뛰어넘었고, 초연결 문명의 급소를 공격했다. 일 년을 빼앗겨 지칠 대로 지친 세모(歲暮)에 다시 빼앗길 일 년을 예약해야 하는 시대의 운명은 처참하다. 내년 3월이면 세계 확진자 1억 명, 사망자 2백만 명에 근접한다. 1919년 스페인독감 이후 세계가 뽐낸 과학은 확진자 규모를 5분의1밖에 줄이지 못했다. 인류는 저주를 받았다.   홀로 휴대폰을 보는 횟수가 확실히 늘었다. 만남의 갈망, 접촉해야 할 생존방식, 함께 하는 동행의 습관을 만족시킬 대체물은 마땅치 않다. 인파가 넘쳤던 지난 시대의 세모는 풍요했다. 지금, 철시한 겨울밤의 도시는 적막하다. 크리스마스캐럴도 구세군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말라리아에 습격당한 밀림 속 원시부족처럼 웅크렸던 긴 세월을 묻고 활기찬 시간을 예약해야 할 이 때 인류사회의 진로를 밝혀줄 신호등은 보이지 않는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문명의 문법이 무너졌음을, 이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 일 년 간 속절없이 망가진 일상과 생계토양의 황무지화(化)를 각오해야 할 이 시점에 향수(鄕愁)는 사치다. 망가진 일상이 정상,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   등하교, 출퇴근 같은 단어는 2020년 타임캡슐에 묻혔다. 올해 입학생은 담임선생의 다정한 얼굴, 벗이나 친구, 캠퍼스 낭만을 아예 포기했다. 얼떨결에 진급하는 신입생은 저주받은 현실의 선두주자다. 신입사원도 팀워크를 발휘할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정보네크워크로 연결된 가상공간에서 ‘그들’과의 가상연대를 확인할 뿐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2021년 교육계획에서 ‘비대면 강의 50%’를 제안했는데 낙관적 발상이다. 캠퍼스와 교실이 없는 신개념의 학교, 교사와 교수가 분산된 채로 강의가 이뤄지는 네트워크학교가 이른바 위급한 시대의 뉴노멀이다. 지덕체(智德體)는 알아서 할 일, 보육원부터 대학까지 돌봄과 교육방식이 요동치고 있다. 대면, 접촉 방식은 끝났다.   취업시장은 이미 쑥대밭이다. ‘11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작년 대비 15~59세 취업자 규모는 63만 명이 줄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연령층은 구직자가 몰려 있는 20대와 30대. 대기업 채용은 쥐꼬리만큼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에서 55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력서를 백번 냈지만 여전히 백수, 합격과 대기통지를 동시에 받는 일이 다반사다. 일터가 소멸된 임시직과 서비스직의 생계는 더 혹독할 것이다. 점포를 접은 가장이 배달 사고를 당한 비극, 마트에서 쫓겨난 점원이 노숙자로 전전하는 비극은 빠르게 퍼져 나간다.   한국의 활력소 자영업은 더 무너질 것도 없다. 벌써 도소매 16만 명, 숙박·음식업 16만 명해서 32만 명 가량이 거리로 내몰렸다. 자영업주는 손해를 감수하고 문을 연다. 다른 방도가 없다. 거기에 임대료와 각종 보험료가 급등했으니 일찍 접고 구직자 대열에 동참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내년 말, 300만 점포 중 얼마나 살아남을까.   선진국은 국가적 구재(救災)에 시동을 걸었다. 숙박업, 식당, 오락실, 관광, 도소매업, 술집, 건강관리, 미용실 등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업체 지원에 나섰다. 일상의 저변을 지켜준 시민의 벗이다. 한국에선 과열경쟁에 지친 마스크 생산업체도 파산 행렬에 끼었다. 생필품, 일용품 기근현상에 대비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단언컨대 아니다. 백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차례가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백신도 서너 차례 맞아야 한다. 세계에서 접촉 밀도가 가장 높은 한국사회는 코로나 ‘장기지속’에 취약하다. 방역은 기본, 범국가적 구재(救災)에 나서야할 이 때 독주하는 정권의 정의(正義) 행진곡에 국민은 더 지쳤다. ‘닥치고 봉쇄’야 견딘다 해도, 매월 날라드는 증세 공과금은 저승사자다. 종부세, 재산세, 건보료가 불쑥 올랐다. 임차인보호에 영세임대인은 악덕주가 됐고, 영세상공인은 ‘52시간 노동’ 인건비를 감당하느라 대출금을 늘려야 한다. 시정의 비탄을 아랑곳 않는 무지(無智)의 정책열병식에 취흥을 돋우는 거여(巨與) 군악대의 합주는 슬프다.   올해 마지막 칼럼에서 필자는 희망찬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런데 왜 절망적인가? 장기지속 팬데믹은 정부역량과 의료체계 담장을 이미 넘어섰다. 그걸 인정한다면 정권과 실세집단은 특단의 대책이 있는가? 중하층 시민들과 청년층의 생존 기반이 다 무너진 이 위급한 와중에 무슨 정의가(歌)인가? 뒤집힌 세계, 절반의 국민이 스러진 무덤 위에 검찰개혁의 깃발을 꽂든, 기업규제의 완결을 알리는 폭죽을 터트리든 무슨 소용이 있으랴. 1980년대 사고(思考)로 사회 붕괴 팬데믹을 감당하려 하는가? 희망을 지피고 싶은 연말, 새벽 여명은 야속하고 저녁 어둠은 우울하다. 국민 재앙, K-구재는 어디에?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12.21 00:55

  • [송호근 칼럼] 최종병기, 사약을 받을까?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그가 오던 날, 대통령의 애정 어린 미소를 기억한다. 그가 오던 날, 검찰개혁의 오랜 꿈이 이뤄진다던 민주당 의원들의 환호성을 기억한다. 선거법, 공수처법, 정부예산안을 두고 6개월을 허비하지 않았던가. 국회 문턱을 못 넘은 법안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으로 돌파하던 차였다. 마침 21대 총선이 천금 같은 출구를 뚫어줬다. 여기에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할 장수를 모셨으니 ‘20년 집권’ 같은 당찬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 정권의 기대는 한 달도 못 갔다. 총장의 칼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눈치가 없었거나, 여권이 비난하듯 정치적 욕망을 은연중 드러냈을지 모른다. 총장이 대권 주자로 직행할 수 있을까? 글쎄다. 아무튼, 좌충우돌했던 것은 분명하다. 윤 총장이 시키지 않은 일, 위험한 일에 나설 줄 예상하지 못했다. 청와대에 들이닥친 수사팀을 보고 대통령은 대노(大怒)했을 것이고, 여권실세들은 기가 찼을 것이다. 검찰개혁에 차질이 빚어졌음을 직감했다. 정권의 기대는 우려에서 적의(敵意)로 바뀌었다. 조직은 이미 친문(親文) 검사들로 장악된 상태지만, 다급해진 정권은 총장의 척후대를 해체하고 손발을 잘랐다. 고립무원 총장의 독전(獨戰)이 시작됐다. 국민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든 법문(法門) 전쟁이 일 년 넘게 극성을 부릴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대한민국의 창의적 시간은 ‘검찰개혁’ 격투기로 아수라장이 됐다.   언론, 재벌, 검찰개혁이 현 정권의 3대 숙원사업이다. 개혁은 필요한데 적정선은 어디까지? ‘장악’일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무소불위의 비대한 권한을 휘두르는 검찰’이 특히 그렇다(문재인, 『대한민국이 묻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 수사권의 경찰 이양과 친문 검사의 전진배치는 완료됐다. 공수처는 곧 출범 예정이다.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는 마당에 조국사태, 금융사기사건, 선거개입사건이 터졌다. 그냥 지나쳤으면 좋았을 텐데 검찰의 본능을 자제하지 못했다. 매를 사서 맞는 윤 총장은 지극히 눈치가 없거나 비정치적인 인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자신의 정치’를 한다고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추 장관의 말발이 서겠는가? 장관의 하명을 따르면 정치가 아니다? ‘성역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충실히 따르면 정치인가, 아닌가? 따르면 정권의 충견, 안 따르면 ‘너의 정치’로 비난받는 운명이 검찰이다.   검찰개혁의 화려한 명분을 대체로 까먹은 사람은 추 장관이다. 아들 병영이탈 의혹을 모성(母性)으로 틀어막았고, 야당의 공세를 비웃음으로 받아쳤다. 추 장관에 대한 공세는 어쩌면 부당하겠으나 행동은 밉상이고 말마다 정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언행이 그러니 개혁명분이 살아나겠는가? 개혁은 우선 환심(歡心)을 사야 한다. 논리가 정연한 것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점잖게 ‘법학개론’ 1장을 읊조렸겠는가?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몰각(沒却)한 조치! 총장은 장관을 맹종(盲從)해서는 안 된다! 몰각, 맹종 같은 통렬한 표현이 판결문에 등장했다. 후배 판사로부터 저런 핀잔을 들은 장관은 잠시라도 조신하는 게 상식적이다. 추 장관은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즉시 항고를 감행했다. 부하가 항명하는 법원을 먼저 개혁해야 할 판이다.   정권 호위대가 불어대는 호각소리도 정떨어지는 건 비슷하다. ‘징계혐의자’, ‘검찰 기득권자’라는 비방도 그렇지만 ‘임기제 뒤에 숨어 선출된 권력을 흔들고 있다’(이원욱 의원)는 힐난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총장의 뚝심에 선출권력이 진정 흔들리는가? 오점 없는 권력이 어디 있으랴만, 그의 칼을 조금만 받았더라면 오히려 후한(後恨)이 없을 터였다. 윤 총장은 정권의 달갑잖은 구세주일 수 있었다. ‘흠결제로’ 정권의 흠결이 쌓이면 과거 정권의 비극을 재발하는 불씨가 되고야 만다.   작년 6월, 그가 총장에 임명됐을 때 필자는 ‘적폐청산의 최종병기가 왔다’고 썼다(중앙일보 2019년 6월 24일자 31면). 정권과 검찰, 통치와 법치 사이에 거리두기가 가능할지를 물었다. 동상이몽은 정작 총장에겐 엄청난 모험이다. 광장 주권을 독차지한 정권이 적폐청산의 칼질을 완수하라고 보검을 쥐여 줬다. 그때 과연 중종 초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의 운명을 피해 갈 수 있을까를 물었다. 조광조는 반정공신 76명을 쫓아냈고, 중종의 첫 부인 단경왕후를 폐위했다. 그는 결국 유배지 전라도 화순에서 중종의 사약을 받았다. 관련기사[송호근 칼럼] 최종병기, 그가 왔다   최종병기, 윤 총장은 사약을 받을까? 정권의 압박에 몰리고 몰린 덕에 그는 은연중 헌법과 공익적 명분에 충성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상징이 됐다.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저지하는 역적인가, 아니면 민주독재를 막는 국민의 최종병기인가? 민주국가가 독재로 기우는 ‘포퓰리즘 매뉴얼 11단계’(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다. 10일 예정된 징계위가 ‘사법권 장악’이란 가장 힘든 과제를 풀어낼 것이다. 언론과 재벌이 남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12.07 00:51

  • [송호근 칼럼] 수능이 위험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세계 최고의 입시공화국, 대한민국. 어지간한 정책은 잦은 정권교체로 폐지되거나 단명에 그쳤지만, 입시 하나만큼은 고목(古木)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입신출세의 길목마다 설치된 시험의 장벽은 이웃나라 중국, 일본과 비할 수 없이 단단하다. 한국에 태어난 이상 어쨌든 뛰어넘어야 한다. 고위관료를 시험으로 선발해온 나라는 드물다. 대기업 좁은 문에도 서류심사, 적성시험, 심층 면접시험이 부비트랩처럼 설치돼 있다. 잘 못 건드리면 인생이 산산조각난다. 실패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꿈에 나타날 정도다. 온 국민이 식은땀을 흘린 대가로 자원 없는 나라가 인재(人材)국가로 우뚝 섰다.   수학능력시험(수능)은 인생의 빛깔을 가르는 첫 번째 관문이다. D-10일, 잔뜩 긴장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열기를 감지했는지 코로나 바이러스도 덩달아 세를 올린다. 하루 확진자가 300명을 돌파했다. 질병청장의 경고를 몇 번 새겨도 3차 유행의 기세가 무섭다. 전 세계 확진자는 누적 5천 6백만 명, 사망자는 140만 명에 달한다.     1919년 스페인 독감이 그랬듯이 코로나 3차 유행 역시 겨울 내내 극성을 부릴 것이다. 한반도에서 14만명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3월에 일본 열도로 건너가 소멸됐다. 세계가 칭찬한 K-방역의 방호벽을 뚫고 다시 확진자 숫자가 1천 명대로 치솟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 할 시점에 딱 수능이 걸린다. 수험생 49만 명을 밀접, 밀집, 밀폐의 공간에 8시간 가둬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연기 혹은 강행?   과시(科試)를 천명으로 여겼던 조선도 국가대사를 몇 번 연기했다. 정변, 천재지변, 역병 등이 이유였다. 전국 각지에서 상경하는 1만 명 유생 대이동 행렬은 장관인데 막상 과시연기 방(榜)이 나붙은 광화문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광해군 12년(1620년), 기근이 덮쳐 과시가 다섯 차례 연기됐다. 하필 다시 잡은 날이 거둥일이었다. 정원(政院)이 임금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 달 25일로 정하여 먼 지방 선비와 수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재차 연기하니 먼 도(道)의 선비들은 양식이 떨어져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 연기한다면 전대의 돈을 다 쓴 선비들이 식량자루를 여관방에 걸어두고 발을 동동 구르며 과거 날짜만 애타게 기다릴 것입니다”. 그래도 광해군은 궁중 의례를 위해 날짜를 다시 물렸다. 역병이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고작 기근과 의례 때문에 그랬으니 조정의 기강과 군주의 품격이 떨어졌다.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는 아니다. 일년 내 계속된 개혁 공방전과 볼썽사나운 정책으로 정권의 기강과 신뢰는 이미 바닥이니까. 다만 우리의 미래세대를 고위험 공간에 밀어 넣어야 하는지가 문제다. 수능 일주일 전 모든 학생에게 원격수업을 명하고 고사장 방역작업에 돌입하고는 있지만 공중에 퍼진 바이러스 포자까지를 요격하기는 난망이다.     고사장 방역은 시작에 불과하다. 수능 후 해방감에 젖은 젊은 혈기가 전국 상가와 식당을 두루 누비면 동선 추적은 아예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본시험이 닥친다. 논술과 면접은 밀집, 밀접, 밀폐를 감행할 또 다른 모험이다. 응시자 한 사람이 수시와 정시까지 평균 5차례 밀접 리스크를 감당한다고 보면 올겨울은 그야말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철을 만난다. 코비드-19 사령부가 한국 공습 특명을 내릴지 모른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어떤 경우도 수능 연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과거(科擧)공화국 수장다운 단호한 책임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연기로 빚어질 사회적 비용’은 감당불능이지만, 강행비용은 코로나 확산, 그것도 수험생과 국민 몫이다. 연기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올 대학입시틀을 바꿔야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학기 일정도 늦춰야 한다. 졸업과 입학이 늦춰지면 취업, 유학, 군입대, 승진 등 사회적 일정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6·25 전쟁기에도 부산에 임시 천막학교를 열었던 나라다. 길거리에 전시(戰時)학교를 차렸고 임시수도 부산에서 치러진 대학입시는 진학과 입대(入隊)를 갈랐다. 1951년 2월에 발표된 ‘대학생 징집연기조치’로 패전 와중에도 입시열풍이 불었다.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팬데믹의 기세를 어쨌든 꺾어야 한다. 대재앙 여부가 수능과 입시에 달렸다. 청소년들과 한국 운명을 고위험지대에서 구출하는 동시에 입시요건을 맞추는 비책은 없을까? 필자는 두 시험 중 하나를 생략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를 권한다. 그것도 올해만 한시적으로 말이다. 첫째, 수능을 예전처럼 시행한다면 대학본고사는 수능, 학생부, 비대면 면접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논술과 대면 면접은 절대 금지다. 둘째, 아예 수능을 전면 취소하고 학생선발을 대학에 일임하는 방식이다. 역시 밀집 논술과 대면 면접은 불허다.   수능을 고수하면 팬데믹이 한국을 강타할 공산이 크고, 수능을 취소하면 입시 공정성 대혼란이 발생한다. 그래도 양자택일? 공론과 정치적 일대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11.23 00:51

  • [송호근 칼럼] 두 중국(衆國)으로 갈라선 합중국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성조기가 불탔다. IS대원이 아니다. 성난 미국 시민의 손에 의해, 유색인종과 미국에 빌붙는 모든 나라에 장벽을 치라는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2차 대전 이오지마 전투에서 3만 명 사상자 투혼을 기리려 미해병대가 수리바치산 정상에 꽂은 그 성조기였다. 6·25 당시 중공군에 밀려 퇴각하던 장전호 병사들을 혹한에서 막아주던 성조기, 극한 대립으로 치닫다가도 애국의 눈물로 합중(合衆)을 일궈내던 그 성조기였다. 합중국은 두 중국(衆國)으로 갈렸다. 민주의 나라와 공화의 나라로, 자성(自醒)의 나라와 폭력의 나라로.   미국 대선은 일단락됐지만 단절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패배한 트럼프가 끝내 승복하지 않을 것이고, 성난 군중이 곳곳에 무장 바리케이트를 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회복할 수 있을까? 후진국에 ‘미국 민주주의’는 일종의 신앙이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잉태한 국가이고 근대 문명기 동안 민주정치의 최전선을 일궈온 혁명국가였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결합한 인류문명 최선의 체제는 미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줄 알았다. 시대가 바뀌면 신앙도 무너지듯, 미국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굉음을 견뎌야 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OK목장의 결투’보다 못했다. 그곳엔 총잡이의 품격이라도 있었으니까.   대통령 후보를 선과 악으로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악인이 선정을 낳을 수도, 그 역도 가능하다. 닉슨은 선한 이미지였지만 결국 거짓말쟁이로 판명났다. 아들 부시는 선정을 펼치는 듯 했지만 대량학살의 주범이 됐다. 경제적 치적에서 트럼프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줄곧 나쁜 사람 행세를 떨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세계인의 민주주의 신앙을 망가뜨린 악인,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발아시키는 토양과 ‘마음의 습관’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무뢰한이다. 서부활극은 악인필망(惡人必亡)으로 끝난다. 총잡이 한방으로 석양의 무법자는 무릎을 꿇는다. 오늘날 종이돌(paper stone)은 총알보다 더 강력하다. 미국이 모범을 보였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부패했기에 폭동과 칼부림이 난무하고, 얼마나 노쇠했기에 선거로도 마무리되지 않는가.   아버지 부시와 마이클 두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맞붙었던 1988년 대선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기점으로 시카고, LA, 애틀란타를 들러 유세현장과 투표민심을 살폈다. 우연히 지역 방송과 인터뷰 자리에 섰는데 군부독재 후진국 청년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맑스도 예수도 없는 혁명’. 이 말은 프랑스 정치학자 르벨(J.F. Revel)의 책 제목이다. 20세기 세계혁명은 오직 미국에서만 가능함을 역설했다. 과학기술, 경제력과 풍요한 사회, 언론자유, 이 세 가지를 겸비한 유일한 국가였던 것이다. 한 가지를 덧붙이면 ‘자치제도’, 프랑스 사회학자 토크빌이 부러워하던 민주주의적 습속은 어디에도 없는 미국의 고유자산이었다.   프랑스 68혁명의 주역인 앙리 레비(Lévy)가 토크빌 탄생 200주년(2005년)을 기념해 미국대륙을 두루 돌아봤다. 『아메리칸 버티고(현기증)』란 여행기 서문에서 그는 폭탄발언을 했다. “만약 50년 전에 미국을 체험했다면 레닌과 마오쩌둥을 일찌감치 버렸을 텐데.” 레비는 ‘인간의 얼굴을 한 혁명’을 그곳에서 목격했던 것이다. ‘모든 조건의 평등’이 자유주의에 대한 무한 존경으로 발현되고, 충돌하는 개인적 신념을 조절하는 결사체적 생활예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치권력이 인민주권의 도그마(dogma)에 굴복하는 ‘미국의 미덕’은 왜 증발해 버렸는가.   타인종에 대한 백인 중산층의 관용심이 고갈됐다. 1980년대만 해도 백인들은 여유가 있었고, 최강의 문명국가를 일궜다는 자부심이 양보와 절제의 미덕을 길러냈다. 민주주의는 풍요시대의 총아였다. 그런데 불평등이 치솟기 시작했다. 2019년 미국연방통계국은 소득불평등이 50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상위 10%가 하위 90% 총소득의 4배, 뉴욕의 상위 1%가 하위 99% 소득의 수십 배에 달했다. 디지털자본과 금융자본이 일자리를 먹어치웠다. ‘다운사이징!’ 해고열풍이 중산층을 타격한 1990년대 이후로 마음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유색 인종은 일자리의 적이었다. 여기에 디지털자본이 만들어낸 SNS가 공론장을 사분오열시켰다. 언론과 방송에 대한 신뢰는 급전직하했다. 경제성장, 관용심, 공론신뢰 - 민주주의를 발효하는 요건들이 벌레 먹은 사과처럼 떨어져 내렸다. 양보와 절제가 사라진 공간에 갈등과 반목이 판치는 것은 인류사회의 공통된 현상, OK목장의 혈투가 벌어진 배경이다.   기관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일상적 풍경이 된 OK목장 미국에서 민주주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두 중국은 합중국이 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종주국을 바라보는 태평양 서안 국가 한국인들 마음에 불안과 절망이 고이는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11.09 00:33

  • [송호근 칼럼] 안정세라니까요!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조선은 인민의 머리를 지배했던 지식국가였다. 500년 통치에 인민봉기나 민란이 없는 나라는 드물지만 조선은 예외였다. 19세기 후반, 드디어 민란이 발생했다. 1862년, 나무꾼 집단인 초군과 빈농이 주도한 진주민란에 신흥부자와 몰락양반이 합세했다. 관아와 사족들의 집이 불탔다. 조정은 사간원 정언을 지낸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했다. 직언으로 명망이 높은 그가 사태를 왜곡할 리 없었다. 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렸다. “진실로 그 이유를 따져보면, 탐학관원과 사족들이 결탁해서 과도한 세금을 부당 징수한 까닭입니다. 묘당이 품처하게 해주소서.”   부랑자와 무뢰지배의 난동이어야 했다. 그러니 고관의 가렴주구와 부세 모순을 지목한 박규수의 간언을 조정이 순순히 받을 리 없었다.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조정은 앓아누운 철종의 승계에만 열을 올렸다. 박규수는 파직됐다. 민란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1860년대에 삼남지역에만 70여 군데, 1876년에서 1893년까지 북부지방에서 50여 차례 민란이 발생했다. 패휼(悖譎)을 일삼는 무리는 다름 아닌 조정이었다. 사란(思亂)이 싹텄고, 사란은 창란(創亂)으로 급기야 작변(作變)이 됐다. 패휼, 도리에 어긋나며 남을 기망하는 일. 망국의 작태가 민주화 33년된 나라의 현실과 겹치는 요즘이다.   세상의 도(道)에 어긋나며 국민을 기망하는 일, 김현미 국토부장관의 말을 듣다보면 ‘패휼’이 떠오른다. 집값은 안정된다는데, 진정 안정세인가? 도봉구와 노원구에도 전용면적 84㎡에 10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가 나왔다. 강남 잔혹사는 서울 전역으로 퍼졌고, 지방 도시에도 아파트 값이 치솟는다. 불과 5년 전만해도 10억원 아파트는 부자의 징표였다. 내 집이 10억원을 돌파해도 반갑지 않다. 종부세와 재산세만 더 물게 생겼다. 서민층과 젊은 세대에게 아파트 단지는 진입이 차단된 성(城)이다. 전세물량도 씨가 말랐다.   ‘안정세에 들어섰어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국토부장관과 길에 나앉을 판인 홍남기 부총리의 천연덕스런 답변에 억장이 무너진다. 촛불광장에서 시민주권을 외치던 대통령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실상을 알고는 있는지를 되묻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현정권이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 부은 정책들이 하나같이 서민생계에 치명적인 부실공사였음이 드러나도 묵묵부답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자영업과 영세업자를 결단내고 끝났다. 책임자는 흩어졌다. 기회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실현한다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정규직 진입의 문이 닫힌 지 오래다. 코로나 충격으로 정규직 대상자들의 비정규직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도대체 노동시장 개념은 있는가? 누구의 손에 기안되어 어떻게 국책으로 옮겨지는가?   숲을 파헤치고 벼랑에 위태롭게 늘어선 태양광발전 시설들은 태풍에 뒤집혔다. 토사가 흘러내려 민가를 덮쳐도 탈원전 시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태양광에 올인했던 대만은 이제 호수에 설치된 발전기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물이 썩고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진 탓이다. 태양광산업에 정권 배후세력이 들러붙었음은 다 아는 사실, 산자부는 탈원전 공약의 전초부대였다. 예전 같으면 암행감찰은 사헌부 소관, 요즘 감사원에 해당한다. 감사원장은 월성 1호기 폐쇄 감찰결과를 보고했다. 재정 손실 수천억 원, 산자부 직원들이 컴퓨터 저장 문서를 통째로 지웠다는 사실이 적시됐지만 조정과 세도배(勢道背)들의 활약으로 묻혔다. 탈원전 공약은 어떤 비용을 치러도 완수돼야할 천명(天命)이다. 감사원장은 ‘패휼’ 공세를 견디고 있다.   형조판서와 의금부제조(提調) 간의 드잡이는 볼썽사납다. 예전에 의금부제조는 어명은 물론 형조와 사헌부의 지시를 따라야 했지만,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국민국가 검찰총장의 헌법적 책무다. 유재수 수뢰 연루자, 울산시장 선거 불법행위는 풍설로 남았다. 정권비리 수사로 청와대 압수수색을 감행한 검찰총장은 위험천만한 수괴(首魁)다. 감히 어딜! 불경죄에 대역죄가 추가됐다. 추장관 아들 문제 난투극은 검찰개혁을 저지하려는 불온한 세력의 패휼로 규정됐다.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국민의 인내심을 그나마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다. 숱한 정권을 겪어봤지만, 현정권의 ‘흠결 제로’ 결벽증은 단연 으뜸이다. 집권 여당 이백 명 정치인의 소신이 그렇게 한결같을까. 부작용이 명약관화한 사안도 하루 밤사이 밀어붙이는 담합의 댐에 국운은 익사 직전이다. 검찰총장을 결박하면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극 라임·옵티머스 사태도 풍설로 남을 것이다. 장관의 오기와 총장의 결기, 대체 개혁대상은 누구인가? 명백한 물증을 들이대도 꿈쩍 않는 고관대작들의 이상(異常) 언행에 국민들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젠 헛웃음이 나지만 어쩌랴, 안정세라는데. 세상은 안정세다. 자꾸 성가시게 되묻지 말라. 장안에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생겼다. 정권의 항해는 무적함대다. 권력도 경제도 안정이다. 다 잘 될 겁니다, 안정세라니까요! 사란이 작란(作亂)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10.26 00:42

  • [송호근 칼럼] 언택트시대의 놀이터, 트로트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내가 트로트를 흥얼거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눈물 짜는 노래, 못다 한 사랑을 달래는 즉흥적 가락, 트로트. 가공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를 그냥 흘려보내는 뽕짝이 팝송으로 단련된 세대에겐 먼 곳의 북소리였을 뿐이다. 고령층을 제외하곤 지금의 5060은 청춘스타 클리프 리챠드, 애상의 연인 스키터 데이비스의 노래로 음악세계의 문을 열었다. 가끔은 피터 폴 앤 메리의 반전노래를 따라 부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절창에 흠뻑 젖기도 했다. 길거리 선술집에서 터져 나오는 ‘번지 없는 주막’은 소음, 또는 기껏해야 취기에 얹는 부모세대의 인생 넋두리였다.   그런데 트로트를 흥얼거리다니, 연식(年式)이 좀 된 탓만은 아니었다. 컨택트(contact)의 시간이 막을 내리던 지난 2월, TV조선이 야심차게 기획한 트로트 프로에 그만 걸리고 말았다. 설움과 탄식이 뒤범벅된 가락이 아니었다.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눙치는 청년들의 음조는 인생의 질퍽임을 가볍게 증발시켰고 애끓는 한탄을 짐짓 모른 척 했다. 70년대 팝송과 80년대 운동가요 시대를 싹둑 잘라내고 남진, 주현미, 설운도, 김연자의 색 바랜 정조를 21세기 풍으로 접속한 절창이었다. 주막집 먹태를 올리브유로 발효시켰다고 할까. 내친 김에 먼 곳의 북소리를 불러들였다. 트로트 원조들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계속 들으시겠습니까?’ 휴대폰 음악 앱이 가끔 지쳐 물으면 ‘물론!’을 꾹 눌렀다. 트로트는 급기야 내 마음의 놀이터가 됐다. 언택트시대의 놀이터, 트로트가 없었다면 지난 10개월을 어떻게 건너왔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놀이터는 밖에 있었다. 크고 작은 광장들, 골목길, 커피숍, 식당에서 빚어낸 컨택트 스토리가 감정의 질료였고 행동의 보고(寶庫)였다. 비대면 행동은 사회구성의 요소가 아니고 따라서 사회과학의 분석대상도 아니었다. 자아는 물론 인격과 품성도 모두 대면 접촉에 의해 형성되고, 제도와 규범이 사회행위를 빚어낸다는 명제 위에 사회과학이 구축됐다. 그런데 미물에 불과한 코로나가 20세기 대명제를 간단히 물리쳤다. 대면행위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내면세계로 몰려들었다. 그 공간은 우선 낯설었고 보잘 것 없었다. 위축된 대면접촉에서 수혈되지 않는 자아(自我)의 재고가 날이 갈수록 고갈됐다. 행복과 충만을 자가 발전해야 했다. 마음의 놀이터가 필요했는데 여기에 트로트가 화답했다.   트로트는 서양가곡, 아리아와는 달리 준비운동 없이 듣고 부를 수 있는 범속한 노래다. 격조 높은 수양과 성찰 없이도 서민의 심신을 아무렇게나 달래준다. 비록 사랑과 출세, 만남과 작별에 관한 싸구려 감흥이 주를 이뤄도 대면접촉의 추체험 지평을 열어주고 감정이입 끝에 웃음과 눈물을 솟게 한다. 여기에 ‘다 함께 차차차’로 몸까지 들썩이면 코로나에 대적할 언택트 시대의 저항에너지로는 손색이 없다. 내 마음의 풍차가 따로 없다.   그게 세종대왕이 바랬던 바다. 문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 마음속에 고인 한(恨)과 정(情)을 퍼내는 비행체. 문자는 불명확한 감성의 실체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발성을 통해 생명을 돋게 한다. 표음문자로 발성된 감성과 정조가 급기야 음색과 가락에 실리면 통치의 최고봉인 음악정치에 닿는다. 한자는 논리 언어, 훈민정음은 감성 언어다. 백성의 성(聲)이 조화를 이뤄 흥겨운 곡조를 이룬 것, 치세지음(治世之音)이 훈민정음 창제의 최고 목표였다.  비록 한자의 발음기호로 출발했지만, 감성을 채집한 문자는 창가와 판소리로, 심지어는 포고문으로 진화해 지금의 광화문 광장을 이뤘다.   그런데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스물여덟 자를 만든’ 세종대왕은 한글날 차벽에 갇힌 채 나홀로 놀이터에서 트로트를 독창하는 백성을 굽어보고 있다. ‘보릿고개’를 열창하는 14세 소년 정동원은 초근목피가 무슨 뜻인지 모르나 발음이 전해준 조부세대의 정서를 어렴풋이 느낀다. 한글 가락이 세대의 감흥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탁이 ‘막걸리 한잔’을 외치면 한잔 걸친 듯 취기가 오른다. 언택트 시대여서 감흥은 곱절이다. 트로트는 모든 방송사로 번졌다. 마치 속요가 창가로, 창가가 포고문으로 진화하였듯, 트로트로 분출되는 내면의 용암은 어디로 향할까. 세종대왕은 눈치 채셨을지 모른다. 서민적 에너지를 가득 실은 합주(合奏)가 광장을 막아선 차벽과 전경에 밀어닥치고, 나홀로 논리에 젖은 실세의 비답(批答)을 밀어제칠 징후를 말이다.   논리는 오류를 품지만, 감성은 흘러넘친다. 감흥보다 원성이 높은 논리는 분명 오류다. 외로운 세종대왕상, 광화문 광장이 텅 빈 한글날의 풍경은 성(聲)과 운(韻)에 충실했던 촛불혁명이 불과 3년 만에 퇴색하고 있음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 그래서 사람들은 노(老)가수 나훈아에게 몰려갔다. 인심에서 나온 음(音)을 서민적 가락에 실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감동을 전하는 한 예인(藝人)의 열창에서 초심을 읽은 것은 행복이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10.12 00:33

  • [송호근 칼럼] 청명한 하늘에 마음은 먹구름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예로부터 민족 사명절(四名節)은 설, 단오, 추석, 동지, 그중 으뜸이 추석이었다. 여름의 땡볕과 산골 물소리가 잦아들면 산천초목에 산고(産苦)의 결실이 저마다 색깔을 드러내는 절기. 폭풍과 폭우에 시달린 기억이 곡식 낱알에 스며들어 고된 노동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은근히 일러주는 추석의 달빛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조상 묘소에 머리를 조아려 묵언의 위로라도 받고 싶은데 마스크 쓴 얼굴로 헷갈리게 하는 것은 불경죄일 터. 게다가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만류하는 시국이니 고향길을 나설 수도 없다. 이번 추석엔 방콕이다. 송구하지 않을 충분한 사유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제사장에 해당하는 조선의 군주도 천재지변엔 추석제(祭)와 배릉(拜陵)을 과감하게 연기한 사례가 많았다. 기근, 홍수, 역병에 유난히 시달렸던 숙종이 특히 그랬다. 숙종 조는 지구적 소빙기와 겹쳤다. 숙종 44년(1718), 콜레라가 도성을 습격했다. 신료의 현장보고는 참혹했다.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넘쳐 강시(殭屍)가 도로에 서로 잇대 있다고 했다. 호열자는 일 년 넘게 도성민을 괴롭혔다. 이듬해 비변사가 한성부 상황을 올렸다. 온 가족 몰사가 1천 1백호, 독거사 4백 18호에 달하는데 감염을 두려워한 관원들이 손을 놓아 방치돼 있다 했다. 그해 군주는 제례는 물론 참배를 취소했다.   추석제와 배릉은 조선 헌법인 『경국대전』에 명시된 것이지만 참배행렬로 추수 못 한 밭이 망가질까 저어해서, 잇단 재변과 흉년에 굶주린 백성이 안쓰러워 국가 예법을 거둔 군주가 많았다. 민유방본(民有邦本)에 철저했던 것이다. 인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안민(安民) 정치가 아니었다. 중종 19년(1524) 추석, 참배를 나서는 임금을 대신들이 말렸다. 여역(癘疫)에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 재난이 전국을 휩쓰는 시국에는 궁중에 고요히 수성(修省)하고 하늘의 견책에 답하는 것이 예치(禮治)의 근본이라고. 어두운 중세에 역병과 재변은 ‘하늘의 견책’이었고, 군주가 인민을 대신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천벌이었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재변은 수재와 한재, 기근과 역병 등 다양했다. 심지어는 며칠간 휘몰아치는 황사와 토우(土雨)는 덕치의 결핍이었고, 개기일식과 월식조차 군주가 수기(修己)를 멀리한 징표로 여겼다. 해와 달이 박식(薄蝕)하고, 여름에 눈이 오고 겨울에 천둥 치며 안개가 어둡게 끼는 것, 기괴한 별이 무리를 지었다가 혜성이 떨어지는 것이 변괴의 전형이었다. 그러면 군주는 종묘사직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쑥덕대는 신료들은 입을 모아 임금께 진언했다. 전조(田租)를 감하고 군포를 면제하고 장사치들의 세금을 가볍게 하라고 말이다.   그래도 재변이 잇달자 숙종 3년(1677) 영의정 허목(許穆)이 아뢨다. 군주의 성의가 진실하지 않았다! 숙종이 물었다. 어찌해야 진의가 하늘에 닿아 견책하지 않겠는가? 허목의 진차(進箚)는 안민, 백성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것. “임금의 효(孝)는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보전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니, 종 치고 북 울리며 피리 불면서 음식을 보내는 것은 다만 그 다음일 뿐입니다”라고.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대한민국, 도심은 자주 텅 비었으며 학교, 상점, 대형마트, 식당들은 문을 열었다 닫았기를 반복했다. 창궐하는 코로나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시정(市井)을 미증유의 특급 경제난이 덮쳤다. 그러는 사이 국회는 폭등한 집값에 놀라 세금을 두어 배 올렸고, 재난지원금 생색을 내느라 종 치고 북 울리고 피리 불면서 소란한 시간을 보냈다. 정쟁은 여전했다. 추(秋) 예조판서의 무치한 행동을 두둔하려 각부 대신들과 당상들이 무리 지어 상소문을 올렸는데 세간의 빈축을 샀다.   그럼에도 조정은 맞불작전을 구사했다. 케케묵은 미제 사건을 들췄고, ‘기업규제 3법’에 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초(草)해 대기업집단을 포박했다. 유치하고 섬뜩했다. 기업과 자본에 대한 80년대식 적개심을 불태울 수백 개 규제법안 중 몇 가지를 선보인 것에 불과했으나 상인과 기업인들은 아예 돈 벌 의욕을 버렸고 연약한 백성들은 어차피 쓸 돈이 말라 곤궁해진 터였다.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위민정치는 외민(畏民)에서 비롯된다. 민을 두려워하는 경외심. 그런데 권력은 소소한 쟁론에도 기어이 이기려 하고, 21세기 경제시민과 천지개벽한 21세기 자본주의를 제조시대의 마구간에 묶어두려 하니 외민은커녕 무민(誣民)이다.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활기가 공평하게 시들고, 미래는 공평하게 막막하고 암담해졌다. 허목이 숙종께 아뢨다. 허물이 쌓이면 원망을 부르고 원망은 재난을, 재난은 재앙이 된다고. 그러나 조정은 허물을 알지 못하고, 말이 민심에 닿지 않으니 백성을 어찌 안심시키리오. 마음 한켠이 떨어져 나갈밖에. 하늘은 청명한데, 왜 마음엔 먹구름인가? 코로나 탓만은 아닐 터에 이번 추석엔 방콕에 수성하면서 찬찬히 따져 볼 일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9.28 00:51

  • [송호근 칼럼] 코로나 찬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유난스런 여름이었다. 코로나에 지친 마음을 태풍이 연이어 강타했다. 강풍이 집을 흔들고 불어난 급류가 제방과 교량을 무너뜨렸다. 물에 잠긴 논밭, 침수된 집을 바라보는 이재민의 허탈한 심정은 도시로 감염됐다. 2분기에만 전국 점포 십만 개가 폐업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빚으로 버티고, 실직자와 휴직자는 사채를 쓰거나 극단적 선택에 몰렸다. 사회적 치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겹친 재난이 점화한 집단히스테리가 급기야 폭행과 범죄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술집, 커피숍, 노래방도 폐업 위기에 직면했으니 심리적 방역을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정치권은 유별난 히스테리 진원지다. 이런 때 훈풍을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만, ‘엄마의 애간장’에서 ‘엄마 찬스’로 발달한 강력 태풍이 집단 짜증을 키우는 중이다. ‘소설쓰시네!’라 했던 낭만적 거짓은 소설적 진실로 점차 바뀌었다. 집권당 대표가 그것도 군대에 민원을 넣었으니 찬스는 위압이었고, 장부의 길 일러주신 ‘전선야곡’은 ‘졸병 비가(卑歌)’가 됐다. ‘카투사는 원래 그래’는 또 뭔가. 공당(公黨)이 주고받는 욕설은 34년간 키워온 장년(壯年)민주주의를 망치는 회오리바람이다. 게다가 검찰개혁 방해음모론까지 발설됐다. 검찰개혁이 왜 거기서 나오는가. 친문 성향 검사들로 방어벽을 두루 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위험한 담합이다.   이런 때 유용한 역전 카드가 ‘코로나 찬스’다. 안민(安民)정권임을 만천하에 확증할 수 있는 정치 금광이다. 4월 초에 베푼 1차 지원금은 ‘거여(巨與)’라는 천혜의 선물로 돌아왔음을 확실히 깨달은 터에 왜 이런 기회를 마다하랴. 유권자들도 헤아린다. 정권의 하사금이 그리 기껍진 않다는 사실, ‘엄마 찬스’는 결국 ‘코로나 찬스’로 덮일 것임을 말이다. 허튼 소리를 해댄 우상호, 윤영찬이든, 기금 용처가 아리송한 윤미향이든 2차 지원금 ‘코로나 찬스’가 정권의 정의 확증편향을 강화해 줄 것임을 안다. 위태로운 생계 때문에 받아야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쪼들린 심정에도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무상(無償) 재난지원금은 포퓰리즘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무상의 경험은 강렬하다. 정권도 수혜자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터널로 들어선다. 이른바 ‘주고받는 정치’ 터널의 끝엔 매수의 정치, 우중정치가 펼쳐진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금의 무분별한 살포로 망가졌고, 칠레, 페루, 그리스 등 무상지원에 기운 나라들이 대체로 그러했다. 임의 지원금에 항상 따라붙는 선별, 보편 논란은 유권자의 정권의존성 심화로 귀결된다. 차제에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훨씬 이롭다. 최저생계비 또는 중위소득 50% 소득을 보장하는 보편복지다. 우리의 경제실력을 우선 점검해야 하지만, 그나마 매수정치가 발붙일 여지를 줄인다.   그러나 매수정치는 우리가 한눈 파는 사이 정치영역에 이미 뿌리를 내렸다. 심판매수다. 정권의 감시기관들이 친문인사로 꽉 채워졌다. 검찰과 감사원엔 그득하고, 대법원, 헌법재판소, 방통위, 통계청, 국세청, 선관위, 공정거래위는 이제 독립지위를 반납하고 정권의 하명 집행기구가 됐다. 공수처 신설로 완결판이 된다. 최근 헝가리, 폴란드, 터키 등 민주주의를 폐기한 국가가 갔던 길이다.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앞장서고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추(秋)법무장관이 어긴 것은 법 이전, 법의 본질인 규범이었다. 장관 아들의 예비역 대령 고발은 민주정신의 중추신경에 마취바늘을 꽂는 행위다. 반민주 자유주의 발상이다. 정권의 행보가 정녕 이런가. 경쟁상대를 비열한 정당, 음모꾼으로 치부하고, 언론방송사가 정권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적을 지목해 증오캠페인을 부추기는 것이 포퓰리즘의 전형적 징표다.   거여 집권당은 지지율 고공의 덫에 걸렸다. 당론에 반기를 든 금태섭의원 징계로부터 국회상임위 독식까지 과연 국민의 뜻일까. 나랏돈을 잘 못 썼다는 자성은 아직 없다. 국회는 상대의 빈 골문에 일제히 쇄도하는 닥공 축구장이 됐다. 누가 차도 골인이다. 고공 지지율이 34년 구축한 민주적 가드레일을 부순 역설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사정이 이래도 수사(修辭)는 여전히 아름답다. 신임 이낙연대표가 ‘우분투’(ubuntu,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를 어렵사리 발음하며 ‘협치’를 강조했다. 기반도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은 차라리 ‘합치로 분장한 예치(隷治)’라 해야 맞다. 집권당 시선에 야당은 아직 형기가 끝나지 않은 수형자다. 대통령이 말했다. ‘당정관계가 환상적’이라고. 176명 의원이 조건 없이 꼬리치는 애완견이라는 푸근한 현실의 다른 말이다. 일사천리 내부자 합치다. 그 길의 끝은 뭘까, 20년 집권을 향한 길 닦기?   ‘코로나찬스’는 길 닦기의 기공식이다. 무상지원금 혜택을 받더라도 민주시민이라면 절대 잊지 말 계명(誡命)이 있다. ‘코로나찬스’는 확증편향 정권의 자선 파티, 또는 전지구적 추세인 민주주의 붕괴 대열에 합류하는 시발점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9.14 00:45

  • [송호근 칼럼] 코로나를 악용한 건 정부였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지난 주말 의료계는 긴박했다. 전공의협의회 회장의 공지문이 발송됐다. 의료계 7개 단체가 국회·의료계 협상안을 두고 밤샘 토론을 벌였다. 일요일 새벽, 협상안은 부결됐다. 정부발(發) ‘정책 4안’을 원점으로 돌리고, 코로나 진정 후 논의를 시작하자는 게 국회가 내민 협상안이었다. 아쉽다. 의료계는 또 공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 의료계가 받은 상처가 그만큼 치명적이고, 정부·국회 일심동체에 대한 불신의 골은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국민은 허허벌판에서 코로나를 맞는 상황이 됐다.   정부와 여당의 의료계 때리기가 한층 가열되고 여론도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이 무엇이고, 책임소재가 누구인지 정확히 짚어야 근본적 해결책이 나온다. 이 정부의 악습인 ‘고집(固執)정치’와 ‘고소(告訴)정치’가 사태를 키웠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촛불정신과 합의정치’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없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일방적 ‘의료정책 4안’을 강행하고도 ‘면허정지’로 겁박한 주체가 정부였고, ‘바이러스 삼종 세트’(김경협의원), ‘강제동원법’을 서슴없이 발한 게 국회였다. 국회가 협상안을 내밀기 하루 전엔 전공의 열 명이 고발됐다. 죄목은 행정명령 불이행. 의료계의 자식뻘인 수련의와 학생을 징벌하는 정부의 냉혈은 부모의 자애(慈愛)가 아니었다.   경찰에 체포된 그들은 K-방역의 전사다. 지난 봄 그들은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고글자국이 선명한 간호사, 복도에 쓰러져 토막잠을 청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그런 의료진들이 2차 웨이브 앞에서 파렴치한이 됐을까? 국민 안전을 던지고 제 밥 챙기는 ‘악성바이러스’가 됐을까? 미래의 의료전사들이 돌아선 데는 필시 곡절이 있는 거다.   감염병 전문병원이라면 몰라도 ‘정책 4안’은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코로나 진압 우선’이란 의료계 호소는 꼼수로 몰렸다. 의료계 때리기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정점을 찍었다. ‘전시에 군인이 전장을 이탈하는 격!’ 이러니 가슴이 멜 수밖에.   K-방역의 공신은 왜 전장을 이탈해야 했을까? 한국의 수재집단이 어느 날 정신이 나갔을까, 세계관이 바뀌었나? 아니다. 정권이 전장에 나선 그들의 사기를 꺾었다.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코로나 호기(好機)를 틈타 ‘공약 4안’을 들이댄 것이다. 틈새전략에 능숙한 정권의 공세, 코로나 사태를 악용한 건 의사가 아니라 정부였다. 그런데 그것은 헛돈 쓰는 하책(下策)이다. 정의와 공정 명분에 낭비한 세금이 얼마인가. 제도정비 없이 무작정 시행하면 부작용이 훨씬 더 커진다. 이 정부 다른 정책들도 대체로 그랬다.   ‘의사 증원’이 지역격차를 해소할까? 의무복무 10년 후 지방근무 의사들은 도시로 몰려올 거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방벽을 세울 수도 없다.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OECD 통계? OECD 의사들은 하루 평균 열 명을 돌보고, 한국 의사들은 백 명을 진료한다. 수가가 싸서 그렇다. 동네 어귀마다 의사가 환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국가가 한국이다. ‘공공병원’? 시세엔 맞지만 민영과 공공병원의 진료비 차이는 거의 없다. 저(低)수가 보험 하에서 모두 공공병원이다. 환자들이 왜 공공병원을 외면할까? 시설과 인력보강, 처우개선이 더 시급하다. ‘첩약 급여’? 한 첩에 몇 십 만원 보약에 보험혜택을 준다? 비과학적이고 공정하지도 않다. ‘원격진료’는 시행할 필요가 있지만 상급 종합병원의 독점, 환자와 병세 확인, 진단과 처방의 정확성 등에 첨단설비와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이 시국에 계속 파업? 기득권 집단의 이기주의 아닌가? 맞다.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기를 포기하면 병의원은 쇠락한다. 결과는 의료서비스 질 악화, 국민적 재앙이다. 군인은 국가가 배양하지만, 의사는 오로지 개인 몫이다. 공익적 성격도 있지만 파업 권리도 갖는다. 파업 맹장 민노총에는 유순한 정부가 왜 유독 의료 파업엔 공공성을 내세우나? 의사 양성에 정부가 투자했는가? 병의원 개원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나? 영국처럼 의사가 청진기만 들고 부임한다면 공공의료다. 한국의 의사는 개인재산과 재능을 국가 통제의 재단에 바친 사람들이다. 영국의 건보율은 약 15%, 한국은 6.67%임에도 우리의 서비스가 몇 배 우수하다. 저수가를 의사가 몸으로 때운 결과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명품진료에 웃돈은 없다. 수가 인상 없는 증원은 하루 진료횟수를 150명으로 늘려야 하는 잔인한 현실을 예고한다. 의료체계는 더불어 붕괴한다.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학생과 전공의가 나선 이유다.   문제의 발단은 공상적 정책마인드에 매몰된 현 정권, 책임 소재는 몰아붙이기에 이골 난 청와대와 복지부, 그리고 적(敵)과 적수(敵手)를 구분 못하고 막말을 쏟아내는 국회 흥행단, 이 삼종세트가 화를 키웠다. 언제 한번 자책(自責)을 인정한 적이 있는가? 정부의 무결(無缺), 무오류, 무적(無敵) 행진을 비웃는 건 다름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다. 그럼에도 이제, 국민 안전을 위해 코로나 전선으로 돌아갈 때.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8.31 00:45

  • [송호근 칼럼] 괴로운 아파트 공화국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역대급 장마와 코로나에 지친 서민을 타격한 건 ‘집값 전쟁’이었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길 없는 김현미식(式) 답안인 임대차 보호법과 부동산 관련 세금 인상. 김 장관은 집값을 마침내 잡는다는 듯 당차게 선언했는데, 그게 또 무슨 화근일지 두려운 시민들은 각자의 셈법에 돌입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아리송했다. 번듯한 내 집은 가능할까? 세금은 겁나게 올랐다. 세무사에게 문의했더니, ‘공부 중’이라는 답변. 시민들은 근심 속에 날이 새고, 김현미 사단은 신약(神藥)을 찾아 행군 중이다. 내 집 마련에 절치부심하던 사십대가 떠올랐다. 그건 악몽이었다.   한국의 사십대는 고달프다. 인생의 장대한 꿈과 엄혹한 현실이 충돌하는 십년이 인생의 성패를 가른다. ‘사십은 불혹(不惑)’을 되새겼다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또는 찌질한 패자로 남기 십상이다. 반드시 넘어야 할 유혹의 삼봉(三峰)은 출세, 교육, 아파트다. 과장, 차장은 부장 고지를 향해 육탄 돌진을 감행하고, 가게 주인은 중형 매장, 영업직은 판매 신화에 도전한다. 그러는 사이 자녀들이 부쩍 큰다. 부부의 시간은 입시교육을 중심으로 맴돈다. 자녀가 대학에 안착해도 한시름 놓을 사이도 없다. 아파트는?   20년 전, 서울로 올라온 필자는 고덕동에서 발산동까지, 죽전에서 갈현동까지 발품을 팔았는데 안착할 곳은 없었다. 결국 일산에서 틈을 봐야 했다. 사십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서울살이를 시작했으니 한참 지각이었다. 전세금에 대출을 얹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대체로 사십대 초반, 그런데 기쁨도 잠시, 거기서 행군을 멈추는 사람은 바보다. 큰 평형, 브랜드 아파트로 두어 번 이사를 감행해야 재산과 위신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는다. 아파트는 제2의 연봉, 아니 연봉보다 힘이 세다. 사십대는 틈새 전략과 투기로 날이 샌다.   삼봉을 힘겹게 넘은 사십대는 중산층 대열에 합류한다. 부부는 주름살이 는다. 나훈아의 천연덕스런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광화문에서 봉천동까지/전철 두 번 갈아타고/졸면서 집에 간다’. 그래도 내 집이라면 좋다. ‘홍대에서 쌍문동까지/서른아홉 정거장/지쳐서 집에 간다’. 지쳐 가도 내 집이면 괜찮다. 그런데 봉천동도 쌍문동도 집값이 치솟았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10억 원, 중위가격은 8억 원, 정말 억소리 난다. 이제는 봉천동에서 군포까지, 쌍문동에서 의정부까지 가야 한다. 자녀가 결혼이라도 할라치면 대출금 신세를 또 져야 한다. 작은 내 집을 옥죄는 빚 터널을 빠져나오는 때는 대체로 오십대 말, 지천명은 알 바 없고 노후 준비에 돌입한다. 오십대는 ‘채무와 전쟁’ 기간이다.   지방은 딴판이다. 몇몇 광역시를 제외하면, 지방 아파트 중위가격은 2억 원 채 안 된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3억 원 상승한 반면, 경북·경남·강원·전북은 일제히 하락했다〈중앙일보 8월 14일자 14면〉. 어쩌다 올라도 2000~3000만 원, 투기는커녕 선방이 문제다. 아파트는 전 국민을 괴롭히는 불평등의 원흉이 됐다. ‘아파트 공화국’(전상인 교수의 작명)에서 계층을 좌우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부동산이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아파트 소유자는 중산층이 될 확률이 급상승한다. 틈새 전략과 운(運)이 중요하다. 관련기사임대차법 2주 “집 비워달라 전화 올까 두렵다”   지방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몸을 떠는 이유다. 10억 원 아파트 자산가로 등극한 서울 친구 목소리가 결코 반갑지 않다. 3~4억 원 아파트, 생활에 여유가 있지만 왠지 낙오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3차 답안인 세금 폭탄이 지방민의 쪼들린 마음을 위로할지 모르겠는데, 덩달아 폭탄을 맞았다. 세금은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 임대인 장려 혜택은 모두 말소됐고 부동산 관련 세금이 폭등했다. 세금폭탄이 ‘주거 정의’와 ‘분배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는 유일한 방식인가? 다주택자 소유 물량이 대거 풀려 나올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전세금이 폭등했고 전세 물량도 자취를 감췄다.   ‘수해 때 신선식품 값이 일시에 오른 것과 같다’는 정책수석, 집값 안정세라는 대통령의 말에 희망을 걸고는 싶은데 정부 실력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실력보다 오기가 빛나는 정부가 이번엔 공급 대책을 내놨다. 서울과 수도권에 빈터를 찾아 26만호를 다 지으려면 5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기간에 서민들은 널뛰기 시장에 적응하느라 혼쭐이 날 것이다. 삼·사십대에겐 웬 천벌인가 싶다. 7월 가계 대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더 늦기 전에 중산층에 합류하려는 몸부림이다.   세금은 소유권 이동경로를 노린다. 이게 좌파의 양식(樣式)이다. 세금 폭탄이 주택 분배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오래전 입증됐다. 종부세 투하로 의기양양하던 노무현 정부는 외려 집값 폭등에 시달렸다.   세금경제학은 정권교체의 정치학이다. ‘닥치고 증세 정부’가 벌이는 ‘주거 정의’ 전쟁에 자멸의 액운이 어른거린다. 집값 고공행진도 서민들의 고난의 행군도 끝날 기미가 없다. 아, 괴로운 아파트 공화국이여.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8.17 00:43

  • [송호근 칼럼] 소설과 교양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청년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청년 괴테가 흠모했던 귀부인 샤를로테와의 좌절된 사랑 얘기다. 1776년 당시, 시민계급 출신 괴테가 아무리 문재가 출중해도 귀족계급과의 사랑은 신분 벽에 막혔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사망 선고할 수밖에 다른 출구가 없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 사회적 고뇌(Die Leiden)였다. 귀족의 담을 넘기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시민계급은 귀족의 취향과 생활양식을 흡수했고 교양을 연마했다. 전문지식과 시민윤리는 귀족과 대항할 시민계급의 무기였다. 대학과 교회, 예술가와 과학자가 앞장서 ‘교양 시민’을 만들어냈다.   중산층의 사회적 주도권을 양성한 주역이 교양 시민이고, 이들의 성장 과정에 숨긴 애환과 고뇌를 그린 소설이 ‘교양소설’이다. 괴테의 베르테르와 만(Mann)의 카스토르프(『마의 산』의 주인공)까지 150년간 교양소설의 주인공이 쏟아낸 사회적 휴머니즘의 언어는 교양시민의 내면이 됐다. 시민사회의 품격과 가치관을 형성한 원재료다.   한국에서 그에 필적할 교양소설이 있던가? 시민계급에 교양과 자양을 공급할 본격적 시민문학은 언제 꽃피웠는가? 전후 50년대 말 손창섭이 주도한 ‘소시민 문학’이 떠오르긴 한다. 시민의식을 당당하게 발설하지 못한 움츠린 군상이었다. 박경리의 『불신시대』, 강신재의 『표선생 수난기』가 소시민 군상에 합류했다. 1960년대 김승옥, 이청준, 최인훈이 시민의 표상을 닦았고, 뒤늦게 박완서가 소시민적 행복의 원류를 파헤쳤지만 여전히 교양 시민의 원숙한 실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의 상층부가 이미 축재와 권력쟁탈전에 돌입한 공간에서 교양 시민의 실체는 실종됐다. 1970년대 후반, ‘문사철(文史哲)의 시대’가 그렇게 끝났고, 이른바 ‘행동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문학은 더 이상 유용한 무기가 아니었다.   이 시대 민주주의 전사들이 왜 ‘교양 시민’이 아닌가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민주’라는 거역하기 힘든 가치를 장악한 국회, 청와대, 정부가 발한 언어들은 왜 거칠고 천박하며, 왜 모두 ‘천민청문회’가 되는가. ‘소설 쓰시네!’ 시민의 최상층인 법무장관의 이런 발화(發話)는 한 시대의 법정신에서 폭력의 성에를 제거하는 문학의 힘을 엿보지도 못한 무지의 소산이다. 81년 법학사, 82년 사시합격. 80년대 ‘운동의 시대’로 편입된 법무장관의 대학시절은 소설보다 선언서가 더 위력적이었다. 문학보다 혁명이론서를 끼고 다녔다. 신군부의 개정헌법을 외우며 분노를 삼켰을 것이다. 분노를 행동으로 옮길 때 문학이라는 여과장치, 언어의 승화작용을 거치지 않으면 공감 능력이 저하된다. 소설은 그저 망상, 허구, 불만을 쓸어 담는 휴지통이다. 발자크는 왜 『고리오영감』의 영민한 주인공 라스티냐크를 파리 사교계로 진출하게 했을까. 사법시험을 때려 치게 만든 플롯은 타락한 세상을 타락한 방법으로 투사하는 소설적 진실이다. 그리하여 ‘소설 쓰시네!’는 시대를 고뇌하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가한 육두문자다.   문학은 추체험의 창구다. 독일어로 교양(Bildung)은 쌓는다, 짓는다는 뜻인데, 세상 이치를 터득하고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공감능력이 길러진다. 80년대 학번, 지금 청와대와 권좌에 포진한 권력집단의 청년시절은 문사철을 버리고 ‘현장’을 선택한 기억으로 가득 찼다. 서민들의 생계가 이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이념강화, 혁명의 씨앗을 배양할 전략적 동지들이었다. 정권 실세의 정책 마인드에 ‘시민적 공감’은 실종되고 ‘전술적 연대’가 돋보이는 이유다. 일종의 독전대다. 독재를 밀어붙인 무용담, 진지전의 추억이 소주성이든, 최근의 주택정책이든 정당화 카드를 들이미는 그들만의 마음의 습관을 키워냈다.   자신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는 치명적 자만의 비용은 서민의 몫이다. 지난 3년간 엄청난 세금을 공중분해했다. 소주성에 투여된 50조원은 이미 증발했고, 임대차 3법은 전세대란과 집값 폭등을 낳고 있다. 전세대란에 짓눌린 임차인의 신음소리, 집값과 종부세 폭등에 볼멘 임대인의 분노는 이들이 배양한 투쟁적 DNA에 부딪혀 곧 잦아들 것이다. 송복 교수는 저서 『특혜와 책임』(2016)에서 이런 양태를 ‘리(理)실종, 기(氣)공화국’으로 짧게 묘사했다. 이 정권이 내세운 ‘정의와 공정’은 결국 투쟁적 기싸움을 북돋우는 수단적 논리다.   법무장관의 ‘소설’개념을 정확히 실행하는 주체는 이 정권이다. 집값 잡는다고 ‘수도이전’을 느닷없이 발설한 여당 원내대표는 세계시장의 바겐세일에 나올 600년 서울의 역사와 문화창달 가치를 보상할 복안은 있는가? 문사철을 홀대한 청춘이 집권세력이 되면 이런 제안이 자랑스럽다. 이해찬 당대표는 한술 더 떴다. ‘서울은 천박하다’. 중국과 일본의 등살에도 한민족 정체성을 지켜온 서울이 그리 천박한가? 몽(蒙), 청(淸), 왜(倭), 불(佛), 미(米), 중(中)의 군사와 전함을 막아낸 한강은 오늘도 흐른다. 집권세력이 쏟아낸 천박한 언어를 받아내면서 말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8.03 00:43

  • [송호근 칼럼] 국민의 시대, 시민의 시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일제 말기, 일본문학잡지 『문예』에 조선문학특집이 게재됐다. 일본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세 작가가 뽑혔다. 이효석, 유진오, 김사량. 식민지 문학을 내지(內地)의 보편성으로 융화한다는 의도였다. 이후 세 사람의 길이 갈라졌다. 이효석은 1942년 만주기행 직후 ‘황민’(皇民)이 맹위를 떨쳤던 시기에 토속을 품고 죽었다. 유진오는 제헌헌법을 기초해 남한 ‘국민’의 틀을 다졌다. 김사량은 해방 직후 태항산 조선의용대와 함께 귀국해 고향 평양에서 북한 ‘인민’대열에 합류했다. 일제의 황민이 소멸한 공간에서 국민과 인민이 맞붙은 게 6.25전쟁이었다. 식민지 유산이자 비극이었다.   고(故)백선엽은 황민에서 국민으로 이적했다. 그가 나온 만주군관학교는 대륙침략을 대동아공영으로 미화한 천황주의의 위장술임을 통감한 후였다. 게다가 그는 김일성과 소련을 꿰뚫어본 반공주의자였다. 6.25전쟁이 터졌다. 그는 수원에서 궤멸된 1사단을 수습해 대구 방어에 나섰다. 동쪽으로 영덕, 남쪽으로 마산까지 180㎞에 이른 낙동강 방어선에서 55일간 전투가 치러졌다. 두 전선이 가장 치열했다. 왜관 다부동전투, 영산 오봉리전투.   백선엽준장의 신생군대는 항일연군과 팔로군에 소속됐던 노련한 무정(武亭) 군단을 다부동에서 대적했다. 미25사단, 1기병사단과 방어에 나섰다. T-34전차와 경기관포로 무장한 3개 사단이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동안, 남서쪽 낙동강 돌출부 영산에서는 미24보병사단이 분투했다. 서울을 최초 돌파해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리권무소장의 4사단이 영산-밀양선에 화력을 집중했다. 포항은 이미 뚫렸다. 양안에 시체가 쌓였다. 8월 말, 북한군 13사단이 다부동 협곡으로 몰려들었다. 퇴각하는 500여명의 병사들을 독려해 백선엽준장이 권총을 빼들고 앞장 선 것이 이 때였다. 미 해병이 추가 투입된 영산전투에서 리권무는 1200구 시체를 남기고 결국 패주했다.   백선엽은 막 잉태한 국민국가를 그렇게 건사했고 ‘국민의 시대’를 살았다. 국가와 개인을 잇는 정체성 연줄을 끊지 않으려면 또 하나의 정체성에 총을 쏴야하는 역설적 순간에 부딪힌다. 일제의 ‘미영귀축’ 명분에 속아서, 또는 강제 징집된 학도병 4385명 중 탈주한 항일투사는 장준하, 김준엽 외 백 수십 명에 불과하다. 광복회회장이 대전현충원 앞에서 백장군 운구행렬을 막아섰다. 에이브람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전쟁영웅 치사를 ‘내정간섭’이라고도 했다. 미군 3만6574명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산천에서 죽었다. 국민국가는 흔히 이런 모순과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 백선엽은 국민시대의 주역이었다.   영산전투 5년 후에 고(故)박원순이 거기서 태어났다. 그는 영산중학교,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로 진학했다. 1975년 5월 시위연루로 제적을 당하자 국민이라는 획일적 날줄 사회에 시민이라는 씨줄을 만들기로 작심했다. 날줄과 씨줄로 엮은 피륙이 온전하고 질기다. 유신세대는 종적 연대인 ‘국민’에 횡적 유대인 ‘시민’을 짜 넣는 것에 인생을 걸었다. 1987년을 기점으로 저항운동은 시민운동으로 전환했고 박원순은 그 상징적 인물이 됐다.   백선엽장군이 패주하는 병사를 돌이켜 세웠듯, 인권변호사 박원순은 반독재투쟁에 지친 사람들을 규합해 시민운동의 새로운 전선을 만들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는 운동가들의 활력소이자 시민권의 참호였다. 그는 최장수 시장이 됐다. 9년간 서울은 경제 이권이 시민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인권 도시로 변화했다. 서민중심의 시민권은 그의 소탈한 행보와 어울려 관료적 경직성을 깼다. 그는 거대담론을 싫어하는 살림꾼이었다. 생계현장이 시민정치 이정표이자 그의 삶 자체였다. 말하자면, 그는 ‘시민의 시대’를 개척했고 열었다.   그런데, 왜 느닷없는 작별인가. 왜 작별인사에 ‘시민’은 자취가 없는가. ‘모두 안녕’? 북악산 기슭에서 그의 주검이 발견된 이후 몇 번이고 이 말을 되뇌었다. 생명을 끊어야 했던 그 절절한 이유, 서울 야경과 북악산 밤별들이 극구 말렸을 것임에도 결행해야 했던 작별의 그 순간을 이해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모두 안녕. 친필 유서에 쓰인 ‘모두’와 ‘모든 분’에 ‘서울 시민’의 존재는 결국 흐릿했다. 서울 시민의 마음엔 구멍이 뚫렸다. 심리적 공황상태는 지금도 여전하다.   구차한 변명으로 시민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기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국민성의 핵심가치가 ‘나라 헌신’이고, 시민성의 요체는 집단양심을 위배하지 않는 ‘윤리적 코드’다. 그게 시민의 공적 성격이다. 그런데 시민과 한마디 양해도 없이 자신의 존재를 도려냈다. 그의 비장한 결행은 시민적 공공성과는 거리가 먼 사적 결단이지 결코 공적 행위가 아니다. 친일행적을 딛고 고 백선엽은 국민 약속을 지켰고, 시민시대의 상징 고 박원순은 시민 약속을 어겼다. 촛불을 켠 게 엊그제, 30년 가꿔온 ‘시민의 시대’가 일방적으로 퇴색했다. 슬프고 안타깝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7.20 00:48

  • [송호근 칼럼] 마스크 너머 여름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자진 격리 중이던 지난 2월 말, 돌밥에 지쳐 반찬 앱을 찾아 주문했다. 결재와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내일 낮 12시에 배달 예정입니다.’ 시내에서 30킬로 떨어진 산촌인데? 궁금했다. 다음 날 이른 점심을 먹고 동구 밖을 주시했다. 멀리 배송차가 나타난 것은 정확히 12시 5분. 10분 뒤 툇마루에 배달반찬이 얌전히 하역됐다. 비바 코리아!   최근 정부 부처 중 보폭이 가장 넓은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장관이 당연하지만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올해 1분기 코스닥 상장기업 중 비대면 분야 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고. 매출액 상승률 2배, 영업이익 상승률 15배, 고용창출 3배, 시가총액 상승률 1.5배, 해서 코로나가 몰고 온 경제충격을 비대면 기업이 제대로 방어했다고 말이다 (중소벤처기업부 5월 28일 보도자료).     코로나 습격을 겪은 글로벌 시장에 천지개벽을 이끌 주역은 분명 전통기업이 아니라 비대면 기업이다. 스마트자(字)가 붙는 온갖 유형의 서비스, 온라인 교육, 전자상거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물류플랫폼, 빅데이터와 클라우드서비스. 세계적 스타 BTS가 유튜브로 방구석에 고립된 영혼을 달랬다.   넉 달간 사회체험을 ‘스크린 속 사회’(Society in Screen)라고 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서울대 수학과 교수는 작년 대비 학생들 평균 학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동영상에 나타난 학생들에게 방정식만 건너갔을 뿐 감성은 스크린에 흡수됐다. 서울대 의대, 생물학은 차이가 없었으나 해부학은 학력이 저하됐다.     나의 강의에 출현한 학생들도 사회현실에 대한 세대 고민을 전달하려고 애를 썼는데 줌(ZOOM)의 냉랭한 스크린에 부딪혀 흩어졌다. 나는 ‘일타 교수’가 되고자 속도를 높였다. 농담에 반응하는 1초가 길었다. 선호도는 엇갈렸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선호하고 교수들은 강의실로 돌아가고 싶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쿨리(C. Cooley)는 일찍이 영상자아(looking-glass self) 개념을 내놨다. 자신의 마음에 비친 ‘타인의 평가’에 의해 진정한 자아가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접촉과 체험이 전제다. 지난 넉 달 동안 사람들은 ‘스크린 속 사회’, ‘스크린 속 타인’과 현실을 추체험했다.     간접 접촉으로 전달된 언어와 이미지는 영상자아의 질료가 결코 못된다. 말하자면, 성찰자원이 유달리 부족한 기간이었다. 자아가 여문 성인들은 편견이 더욱 단단해졌고, 청소년과 청년들은 마음 속 빈집을 지켰을 뿐이다. 초등학생에게 소중한 담임선생의 말투, 몸짓, 교장의 근엄한 표정, 친구들 재잘대는 소리는 체험리스트에서 사라졌다. 대학신입생들도 늙어서 추억할 첫 등교의 두근거림을 영원히 빼앗겼다.   마스크를 쓴 채 여름을 맞는다. 봄 향기는 기억에 없다. 사람들의 눈빛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큰 소득이었다. 봄 향기와 눈빛을 맞바꿨다. 그런데 눈빛에 사회에 대한 경계가 서려 있었다. 정처를 모르는 바이러스 경계심이 무작정 타인에게 들러붙었다. 타인의 눈빛을 수용할 영상자아는 반사적 경계빛을 역으로 발하느라 얼룩덜룩해졌다. 마스크 안 쓴 사람과 마음속에서 시비가 붙었다. 마스크 너머 풍경은 근거 없는 두려움이었다. 어느 날 거리에서 한 무더기 사람들을 피해 멀리 우회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 사회학자?   행복심리학자 최인철교수가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썼다. ‘내성적인 사람이 온다’ 〈중앙일보 7월 1일자 28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향성의 제국이 붕괴되고,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말이다. 내면에 쌓아둔 양식, 내면과의 대화로 버틸 여력이 풍부한 내성적 사람에게서 행복하락도가 더 낮게 나타난다고 했다. 단기적으론 그럴 법하다.   관련기사[마음 읽기] 내성적인 사람이 온다   그런데 마스크 너머 사회가 경계대상이자 두려움이라면, 그것도 오래 지속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계심의 내면화, 고갈된 체험창고로의 불가피한 도피가 발생한다. 후각, 감각, 촉각이 빠진 경계적 체험은 공감(sympathy)과 동정(compassion)을 생산하지 못한다. 오래 전 아담 스미스가 그토록 강조한 ‘도덕감정’의 두 줄기가 소멸되는 것이다.   경제는 생업 현장이자 인생을 제조하는 직기(織機)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를 주도할 비대면 기업이 아무리 번성하더라도 인생을 직조하는 현장스토리를 리얼하게 만들어낼지 의문이다. 배송차가 날라 온 그 신선한 봄나물이 재래시장 할머니가 건넨 것만 못했다.     그럼에도 마스크가 고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불길한 외부 현실의 틈입을 차단해주리라는 허망한 기대감일 거다. 화적떼처럼 출몰하는 집값 폭등, 여당의 폭주와 징징대는 야당, 시정잡배보다 못한 평양당국은 차단 1호다. 특히 정치! 포퓰리즘 확산을 주시해 온 스탠포드대학 래리 다이아몬드교수가 12개 주범을 꼽았다. ‘야당을 악마취급’, ‘사법부 장악’이 민주국가 공적 1, 2호다. 여름엔 그런 것들을 몽땅 걸러낸 마스크를 벗고 봉숭아꽃과 수국이 어우러진 화단에서 산발하는 냄새를 맡고 싶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7.06 00:42

  • [송호근 칼럼] 남(南)으로 가는 멀고 좁은 길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파묘(破墓)가 유행이다. 국립묘지 안장 자격 박탈하기. 얼마 전 도올이 뜬금없이 이승만 대통령 파묘를 주장하더니, 일파만파, 친일반민족 행위자 파묘법안을 개정 발의하겠다는 당찬 초선의원도 출현했다. 현대판 부관참시(剖棺斬屍)다. 이에 화답할세라 민족문제연구소는 대전현충원에 묻힌 51명의 ‘파묘인사 묘역찾기’ 대회를 벌였다. 현충일이었다. 대학생들은 보물찾기하듯 인증샷을 찍어댔는데, 50기를 맞춘 팀에게 포상 30만원이 수여됐다.   묘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김득모 중령, 6·25 당시 2사단 헌병대장. 주최 측이 명기한 죄목은 대전형무소 학살 핵심 가해자. 진실화해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인민군이 수원을 돌파하고 남하하던 1950년 6월 30일부터 7월 16일 대전을 내줄 때까지 형무소 재소자 700~1500여명을 처형한 사건이다. 김 중령이 대전 주둔 2사단 헌병대장이었으니 그렇게 간단히 분류했을 법하다. 그런데 이 간단한 낙인과 즐거운 인증샷이 우리가 열렬히 성토하는 역사 왜곡의 길을 열 수도 있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정의로운 외침에서 외려 역사를 짓밟는 무지한 폭력이 발원할 위험 말이다.   학살이 자행될 당시 그는 대전에 없었다. 2사단은 포천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의정부에 집결 중이었다. 6월 28일, 서울에서 인민군과 맞닥뜨린 그는 사단 병력과 함께 안양으로 퇴각하다가 수원 부근에서 인민군 탱크의 공격을 받아 대오에서 이탈했다. 야산 덤불에 포화가 쏟아졌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스미스부대가 오산·평택을 사수하는 동안 그는 수십 개 산자락을 타고 대전에 홀로 귀환했다. 7월 6일 새벽이었다. 패잔병이 따로 없었다. 2사단이 궤멸된 탓에 대기 발령 중 김백일 소장이 이끄는 1군단 헌병대장에 임명된 것이 12일, 낙동강 너머로 퇴각이 시작됐다. 인민군은 7월 16일 대전에 몰려들었다. 퇴각 2~3일간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에 ‘학살 혐의’가 찍혔을 거다.   친일반민족 행위자 색출에 혈안이 된 난시(亂視)에는 김득모 중령이 흥남부두 철수작전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인화되지 않는다. 그는 회고록 『남(南)으로 가는 길』을 남겼다. 인천상륙작전을 신호로 북진이 개시됐다. 원산과 청진을 거쳐 회령까지 밀고 올라간 국군 1군단과 미 10군단 선봉에 그가 있었다. 두만강을 코앞에 둔 회령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난 것이 12월 초, 맥아더는 비밀리에 흥남 철수를 발령했다. 흥남부두에 피난민 10만 명이 몰려들었다. 10군단 사령관인 알몬드 소장은 피난민 승선을 거부했다. 피난민이 아니라 ‘현주민’이었고, 10만 병력과 화기 철수가 우선이었다. 적의 포탄이 눈발로 덮인 흥남 시내로 날아들었다.   단호한 알몬드 소장을 감화시킨 사람이 김백일 소장과 김득모 중령이었다. 자유를 찾아 공산 치하를 탈출하는 ‘민주시민’을 엄동설한에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언에 그가 동의했다. 낮엔 병력을, 밤엔 난민을 몰래 싣는다는 조건이었다. 12월 12일, 목선 200척에 1만 5000여 명이 남으로 향했다. 김득모 중령이 징발한 낡은 어선 군단이었다. 15일엔 LST 조치원호, 20일 LST 온양호가 2만여 명씩을 태우고 어두운 동해바다로 나섰다.   24일 성탄절 이브, 알몬드 소장이 진두지휘한 세 척 상선에 최후의 피난민 3만여 명이 부산을 향해 떠났다. 흥남부두는 대기하던 미 공군에 의해 불바다가 됐다. 김득모 중령이 지휘한 LST에서 아기가 1명 태어났다. 해남(海男)이라 이름을 지어줬다. 김 중령은 부산진과 장승포에 난민을 하선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거기 어디에 끼어 있었을 거다. 국제시장을 개척한 실향민이 그렇게 생겨났다.   ‘흥남피난민탈출실록’이란 부제가 붙은 책에서 김득모 중령이 회고했다. ‘가족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전시 명령 불복종에 비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세 척의 상선에선 6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전란 속 민족대이동 대열에 희망을 준 해남이는 잘살고 있을까, 장군이 된 김 중령은 해남이를 불쑥 떠올렸다.   혹시, 인증샷을 찍은 대학생들이나 주최 측에 올해 일흔이 된 해남의 지인 자제들이 끼어 있을까. 김 중령의 묘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가져간 시커먼 조화(弔花)가 다시 걸렸다. 파묘 인증이었다. 생사를 걸었던 험난한 길, 남으로 가는 ‘먼’ 길을 실향민들과 그렇게 건너왔건만, 아직 남으로 가는 ‘좁은’ 길은 통과하지 못한 것인가. 그 좁은 길목을 지킨다는 역사의 경비대에 면허증을 내준 사람들은 누구인가.   파묘 논쟁은 누구든 옮겨붙을 기세다. 당장 백선엽 장군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만주군관학교(1940), 간도특설대 장교(1943) 경력이 다부동전투의 전사적 의미를 갈기갈기 찢었다. 칠곡이 뚫렸다면 무정의 2군단과 박성철의 15사단은 부산에 도착했을 터, 남으로 가는 멀고 좁은 길은 영원히 폐쇄됐을 것이다.   6·25 70주년, 평화시대 후손들이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우리들은 언제 대의(大義)에 생명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6.22 00:43

  • [송호근 칼럼] 리쇼어링? 꿈도 꾸지 마세요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드디어 선진국이 됐습니다. 사회학 전공 45년 만에 열등감을 극복했습니다.” 지난 주 한국일보 포럼에서 고백한 필자의 심정이다. 주변을 다시 둘러보게 됐다. 지방도시에도 빈촌은 드물고 골목은 정결하다. 농촌, 산촌 풍경도 궁색한 모습을 떨친 지 오래다. 작은 땅뙈기로도 아담한 집에 가족 생계를 꾸릴 작농 기술을 발휘하고, 자가용과 농기구를 다 갖춰 산다. 대도시 달동네는 고층아파트 숲이 됐다. 쫓겨난 사람도 있겠으나 슬럼가로 흘러들지 않는다. 슬럼가가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면, 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선진국이다.   특히 의료가 그렇다. 전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된 1989년 이후 한국 의료체제는 공공, 민간 혼합 경로를 조심스레 걸어왔는데, 어느 날 코로나 사태가 한국이 세계 최고임을 알려주었다. 감염력 초특급인 코로나가 한국의 방역망을 뚫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헛일이다. 유럽에서 수술 환자는 수만 명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1997년 영국에서 백만 번째 순번을 받은 아기가 숨졌다. 토니 블레어 당시 노동당 대표가 공공의료 개혁 공약을 내세워 총리에 당선됐다.   이후 20년 역사(役事)에도 의료 경쟁력은 후퇴했다. 이런 사정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역시 비슷하다. 미국의 의료는 돈이다. 보험회사가 일정 지역 진료병원, 의사와 간호인력, 검사전문 병원을 한데 묶어 보험상품으로 판다. 3인 가족 기준 월 2000달러 수준. 1984년, 마트 주차장에서 흑인이 울고 있었다. “딸이 아픈데 병원을 못 보내요.” 오바마케어가 도입돼 약간 나아지긴 했으나 현실은 거의 비슷하다. 코로나 확진자도 숨이 가빠져야 응급차가 달려오지만 완쾌 후 낼 돈이 더 걱정이다. MRI(자기공명영상)와 CT(컴퓨터단층) 촬영을 부담 없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부국(富國)이자 개방사회인 유럽의 속사정은 코로나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내부에 이질적 집단을 차별하는 제도적 칸막이가 무수히 쳐져 있었던 거다. 이른바 ‘칸막이 개방사회’. 이민, 난민, 계급, 인종, 종교로 나뉜 집단들이 고립된 부족(tribes)을 형성하고 있었던 거다. 외부인을 너그럽게 수용한 개방사회여도 제도적 배제 장벽이 칸칸이 쳐진 일종의 병립(竝立)사회였다. 사회적 혜택을 골고루 나누는 공존, 공생이 아니었다.   코로나는 이질적 부족들을 구획한 비무장지대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장벽을 쉽게 넘었다. 한국은 국가방역망 내에 누구나 참여했다. 혜택이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사회 내부의 동질성에서 한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한국은 선진국이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순도 100% 동질성은 어떤 일을 저지를 것인가? 두 달 전 지방도시 마트에서 목격했다. 중년 여인이 계산대 앞에서 목청을 높였다. 마스크 사이로 새나오는 말이 흐릿했는데 곧 사태를 알아차렸다. 줄 뒤에 대기한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거다. 영문을 모르는 그 외국인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크 대란에 어디서 그걸 구할까, 내게도 여분이 없었다. 아빠 손을 잡은 열 살 남짓 딸과 눈이 마주쳤다. 초롱한 눈빛에 스치는 원인모를 서러움이 순간 읽혔다.   우리가 배양한 극성맞은 동질성과 타집단에 대한 유별난 배타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코로나처럼 전국민 ‘공동의 적’이 아니라 지역풍토병의 전염사태였다면 해당지역민을 멸(滅)하라거나, 이류시민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우리가 정의롭게 참여한 온갖 갈등 사태에도 유별난 배타성이 격돌했다.   ‘한국형 뉴딜’, 시의적절한 대책이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자세가 돋보인다. 그 중 하나 리쇼어링, 각국 지도자들이 블록경제의 이점을 외치기 시작했다. 기업유턴을 호소하면서 각종 혜택을 늘어놨다. 이전 비용 70% 제공, 법인세 대폭 삭감, 부지제공, 규제 완화 등. 우리도 질세라 보조금과 부지제공을 약속했다.   그런데 돌아올까? 답은 ‘꿈도 꾸지 마세요!’다. 아예 현지 노동자들을 통째로 받아들여준다면 모를까, 최저임금제, 법인세, 100여 가지가 넘는 규제에 60%에 가까운 증여세와 상속세가 대기한 숨 막히는 공간으로 자진 회귀한다? 현지노동자를 받아줄리 만무이고, 오더라도 임금비용을 대폭 낮춰줘야 한다. 미국 자동차노조는 유턴기업에 한하여 ‘이중임금’을 허용했고, 독일은 최저임금 동결, 유연근로시간제를 약속했다. 경제에 관한 한 이질성이 경쟁력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투 잡(job) 시대다. 자율근무, 시간제 고용의 봇물이 터질 예정인데, 무서운 수비 대장인 주52시간, 최저임금제, 보험료가 눈을 번득이는 한 돌아올 기업은 없다. 더욱이, 외국인과 공생해 본 경험이 없는 나라에 어느 외국인이 몸 바쳐 헌신할까. 출범 20년, 인천 송도 경제자유지역엔 아직 규제가 그득하다. 국제병원, 영리병원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질성과 싸우느라 세월을 보냈다. 동질성, K방역을 이끈 이 유별난 심성은 경제에는 독(毒)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6.08 00:45

  • [송호근 칼럼] 사람을 찾습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광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세월이 많이 흘렀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은 모르고 육군 중령, 1980년 5월 당시 수경사 차장.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웠다. 장맛비에 벼락이 쳐서 퇴계로 수경사 전역이 정전이었으니까. 6월 17일 밤 7시. 친구가 말해준 수경사 정문에 도착한 시각, 남산에 운집한 비구름 벼락에 사방이 깜깜했다. 두려웠다. 저 속에 들어가면 나올 수 있을까. 대학원생 출정식 선언문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그걸 대필한 죄로 시국사범 A급으로 수배됐다. 그런데 수경사 부관이 우연히 나의 절친이었다. 계엄령이 발동한 5월 18일 밤, 절친이 공중전화로 알려줘서 알았다. 도망가라. 천운이었다.   나는 학생운동 근처에도 가지 않은 우유부단한 학생이었다. 단지 글발이 알려진 대학원생이었을 뿐,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의 리더 격인 김부겸, 김성식 같은 명장과는 급이 다른 보통 학생이었다.     5월 2일, ‘서울의 봄’을 맞아 학생들이 잔디밭에서 야영을 했다. 함성소리가 자주 들렸다. 후배가 찾아와 말했다. 내일 대학원생 출정식을 합니다, 선언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밤을 새워 썼다. 미국의 인권운동, 유럽 68 혁명, 남미 민주화운동에 대하여, 민주주의 필연성과 ‘서울의 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일필휘지 했다.     당시 국민소득 1천 7백 달러, 정치경제학적으로 민주주의는 멀고 먼 상황이었다. 새벽이 밝아왔다. 후배가 다시 왔다. 오늘 10시 출정식에서 낭독해 달라고. 밤을 지샌 탓에 목이 메여 거절했다. 그날 선언문을 낭독한 대학원생은 소식이 두절됐다. 30년 후, 수덕사 부근 암자 주지스님이 됐다는 후문을 들었을 뿐이다.   수경사 친구 권유를 따라 5월 18일 밤 종로 2가에서 인천 행 삼화고속버스를 탔다. 조교 선배 집이 제물포였다. 제물포에 내리자 경찰과 군인들 경계가 삼엄했다. 계엄령이 발동됐으니까. 옷가지를 챙겼던 가방 속에는 선언문 원본이 들어 있었다. 아무튼 역사문서라는 생각에서 갈무리했을 거다. 경찰과 군인들을 보자 겁이 덜컥 났다. 시장통으로 피신해서 원본을 찢어버렸다. 항구를 돌아다니면서 조교 선배와 열흘을 보냈다.     광주발(發) 피살뉴스가 텔레비전을 장식했다. 여고생이 칼에 찔려 사망한 소식이 타전됐다. 광주항쟁은 며칠 후 진압됐다. 수백 명이 희생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힘이 빠졌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집에 와도 좋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부관 친구가 손을 썼던 거다. 조건이 달렸다. 수경사에 출두해서 책임장교와 논쟁하는 것. 서울대 대학원생과 대적해 이기는 것이 그의 소원 중 하나였다. 벼락이 치던 6월 17일 밤, 수경사 정문에 출두했던 이유다.   공포에 질린 나를 구원한 것은 역시 절친이었다. ‘필승’ 견장을 단 친구가 대검을 착검한 복장으로 나왔다. 계엄령 상태였으니까. 들어가도 괜찮니? 친구가 끄덕였다. 장맛비가 쏟아졌다. 그를 따라 들어선 복도 양 옆엔 촛불이 도열했다.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복도 끝 방에 저승사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은연중 부동자세를 취했다.     논쟁, 아니 심문이 시작됐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질문은 세 가지였다. 장교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논쟁을 시작했다. 첫 질문, ‘광주사태에 북한 간첩이 대거 투입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고정간첩이 더러 끼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나? 머뭇거렸다. 친구가 눈치를 줬다. 정답은 ‘간첩소행이지요’다.   장교가 흡족한 표정으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빨갱이 김대중이 북한 첩자들과 내통해서 내란을 일으킨 거야, 어떻게 생각하나?’ 정답은 ‘맞습니다’다. 친구가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의기양양해진 그가 마지막 질문을 날렸다.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내란에 부화뇌동해서야 되겠는가?’ 정답은 ‘안됩니다’다. 세 개의 질문을 통과했다. 논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서울대 대학원생에게 내린 시혜는 ‘시국사범 A급 삭제’ 조치였다. 부화뇌동했던 선언문 대필자 대학원생은 그렇게 풀려났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얼핏 보아 당시 그 장교는 40대 초, 지금은 팔순을 약간 넘는 나이다. 광주항쟁 40주년, 그 대학원생은 정년퇴직을 앞둔 교수다. 부관 친구의 청탁을 들어줬던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당시의 신념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은 원죄(原罪)는 남아 있다.     비겁하지만 정답을 이제 말한다. ‘세 가지 답은 계엄사에서 조작한 시나리오, 수경사·정보사·계엄사가 다 그렇게 각색한 것 아닙니까.’ 당시 시국사범으로 수배된 대학생 360명은 강제 징집됐다. 광주에서 5천명 넘게 사상자가 났다. 광주 시민, 유족, 시민군의 40년은 한(恨)과 멍투성이다. 선언문을 낭독한 그는 아직 암자의 주지스님일까. 세월이 지난 지금, 솔직히 얘기하고 싶다. 광주 영령들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사람을 찾습니다. 그 육군 장교, 좀 늦긴 했지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영령들께 삼가 고합시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5.25 00:49

  • [송호근 칼럼] 지구의 시간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인간의 시간이 멈추자 ‘지구의 시간’이 시작됐다. 지구가 오랜만에 생기를 찾았다. 250년만의 일이었다. 공장 연기와 사람 이동이 멈췄다. 전쟁과 지역분쟁 화염이 걷혔다. 소말리아 해적과 이라크 쾌속정이 하릴없이 설쳐댔을 뿐, 세계 수천만 병력과 병기가 특별 휴가를 즐겼다. 전쟁없는 시간을 가져봤던가? 나비와 곤충이 찾아들었다. 미세먼지도 멀리 가버렸다. 아침 새 울음이 반가웠다. 방안에서 내다본 올 봄의 신록은 유난히 싱그러웠다. 모두 코로나 덕분, 아니 탓이었다.   지구가 생기를 찾아도 예전 상태로 복귀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코로나가 밀어 넣은 내면의 공간에서 아프게 체득한 깨달음이었다. 사회적 관계가 일시 끊기고 홀로된 공간에서야 지구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연기, 매연, 폐기물로 뒤범벅된 지구를 딛고 문명의 달콤한 이득만을 취해왔음을 말이다. 화석연료는 문명의 동력, 플라스틱을 비롯한 온갖 신소재가 문명의 화려한 옷이라면, 그 대가를 치를 때가 다가왔다는 지구의 경고를 말이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 생산과 소비가 20세기처럼 유별났던 때는 없었다. 후손이 쓸 자원까지 다 축낸 번영의 질주였다. 1990년부터 30년간 지구를 괴롭힌 오염 총량이 과거 2000년간 누적된 총량을 능가했다 (데이비드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코로나 덕에 깨달았다.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면 바이러스의 역습이 시작된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흑사병은 굶주린 쥐와 쥐벼룩이 옮겼고, 콜레라는 시궁창에서 발생했으며, 우유를 빼앗긴 젖소가 천연두로 인간 욕심을 꾸짖었다. 현대문명의 본질, 자연을 들쑤시고 착취해온 ‘땅의 문명’ 속에는 이미 지구의 거대한 반격이 내장되어 있었다. 산업혁명에서 본격화된 ‘땅의 문명’은 성장과 풍요를 향한 고속질주였다. 성장의 등급은 GDP, 실업율, 소비력 같은 가시적 지표로 매겨졌는데, 지구생태계를 고려한 환경친화적 지표(ESG)가 도입된 것은 불과 20여년도 채 못 된다. 이동성, 자원극대화, 글로벌 네트워킹으로 집약되는 ‘땅의 문명’은 마치 경쟁 레이스와 같아서 어느 국가도 쉽게 뛰어내리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기후와 바이러스, 두 개의 비(非)가시적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던 거다.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는 일란성 쌍생아다. 기후재앙은 빙산을 녹이고, 그 속에 결빙된 100만종의 바이러스가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그 중 1%만 소생해도 1만여 종이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알래스카 빙산에서 발원했다. 기후재앙?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금 지구 평균 온도 1도가 상승했음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땅의 문명이 내뿜은 온실가스와 탄소 때문인데 1.5도 상승하면 SF영화가 현실이 된다. 적도 확대와 북상, 황열 창궐은 물론 기후난민 3.6억 명이 발생한다는 것. 2016년 파리기후협약은 2050년까지 평균 온도 2도 상승을 한계치로 내놓으며 대홍수, 가뭄과 기근, 해수면 상승, 도시 침수, 바이러스 창궐을 전제로 달았다. 문명학자 제레미 리프킨(J. Rifkin)은 2028년을 ‘화석연료 문명 종말의 해’로 예견했다. 8년 남았다.   경쟁 레이스를 포기 못하는 강대국들은 애써 눈을 감았다. ‘땅의 문명’의 동력인 석탄과 석유를 누가 쓰지 말자고 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투자한 국제자본이 허용할까. OPEC이나 세계석유 거버넌스는 내일 당장 빙하 속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킨다 해도 채굴 중단을 결의하지 못한다. 백신으로 막자고? 자본주의에서 백신 개발은 이윤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기후는 공기(空氣), 공기는 누구나 공짜로 숨 쉬는 공공재다. ‘공유지의 비극’이 기후 재앙만큼 집약된 영역은 없다. 누구나 쓰고 버린다. 평균온도 4도 상승할 2100년 지구는 끝장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 경고처럼, 기후재앙이나 바이러스나 ‘플랜 B’는 없다.   코로나로 세계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우려하는데 기후재앙은 대공황, 대침체를 넘어 인류의 대멸절(Great Dying)을 뜻한다. 다섯 번의 대멸종에 이어 이제 여섯 번째 대멸절을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사우루스 공룡이 아니라 인간, 인류세의 종언이다. 그러니 싱그러운 봄 날 창밖에 찾아온 나비와 곤충과 미물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대책은 있을까? 그린 뉴딜(Green New Deal), 미국과 유럽에서 고안한 국제공조 프로그램인데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경쟁레이스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아당길 천하무적 구세주는 아직 없다.     K-방역에 성공한 한국이 나서면 어떨까. 지난 8일, 최종현학술원과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웨비나(Webinar)에서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근사한 제안을 했다. 한국이 배양한 위기관리 공동체 정신에 첨단과학을 융합한 소프트파워로 ‘K-지구방재’를 선도하자는 것. G2가 서로 겨루는 틈새에서 ‘매력국가 한국’의 세계사적 과업이다. 지구의 역습, 바야흐로 ‘지구의 시간’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5.11 00:43

  • [송호근 칼럼] 코로나가 권력을 좌측으로 밀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권력의 판도가 바뀌었다. 보수의 참패, 진보의 압승. 역대 총선에서 이런 구도는 처음이다. 견제와 심판의 집중포화를 맞은 쪽은 야당이었다. 보수의 빈약한 공적(功績)은 표심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불안했다. 보수 중진이 검증도 안 된 정치신인들에게 줄줄이 낙마한 것은 ‘묻고 더불로’ 가자는 유권자의 미래 투표였다. 태극기집회의 열혈당원이었던 70대 어느 유권자는 SNS에 이렇게 썼다. ‘이제야 내려놓네. 우리 가치관과 우리가 주역이었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네. 말없이 떠나갈 때!’   정치스타가 나와도 권력이동을 막을 수 없다. 민주화 30년 동안 한국의 정치권력은 좌측으로 꾸준하고 느리게 이동해 이제 대세를 굳혔다고 생각한다. 좌파가 잘해서가 아니다. 최종적 동력은 세계화의 누적된 모순에서 나왔다. 미국과 구소련이 1989년 몰타섬에서 선언한 ‘신질서’, 그 후 전세계가 동참했던 세계화 행진의 화려한 구호는 이제 누더기가 됐다. 부국과 빈국의 동반성장과 번영의 약속을 불평등과 양극화가 채웠다. 젊은 세대는 취업전쟁을 치르고, 기성세대도 조기퇴직과 노후 불안정에 전전긍긍했다. 세계화 주도그룹이 ‘4차 산업혁명’이란 대형 크루즈선을 띄웠지만, 생애 설계는 불가능해졌고 모두가 리스크를 안고 살았다. 세계화의 덫, 그 한계가 목까지 차오르던 중이었다.   세계화의 치부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날지 아무도 몰랐다. 많은 것들이 이미 망가져 있었다. 공공의료 선도국들이 코로나에 쩔쩔 매는 장면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민영 의료보험으로 악명높은 미국은 차치하고라도 전국민 건강서비스(NHS)를 자랑하던 영국, 스웨덴, 프랑스가 병상, 의료장비, 의료진 부족에 악몽을 겪는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거리에 넘쳤다. 하루 평균 5명꼴만 진료하던 그들의 관행은 하루 100여명을 너끈히 돌봤던 한국 의사들의 실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민간 병의원이 골목마다 지키는 한국과는 달리 중질환 진료대기자가 갈수록 늘었던 게 그들의 현실이었다. 한국이 갈 길이 아님을 일찍 알았다.   세계화가 그토록 강조했던 안전망(safety nets)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 백인 중산층이 구호점심을 기다리는 딱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기업파산과 조업중단으로 실직자가 쏟아졌다. 미국 실직자들은 파산 외에 방법이 없고, 중국은 귀촌으로 숨통을 튼다. 유럽은 1980년대 사민주의 전성기 매뉴얼을 꺼내들 것이다. 개도국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용 노동에 가족 생계가 달린 빈곤층의 필살기는 무용지물이 됐다. 코로나에 쓰러진 난민들은 국제 구호단체의 손길을 기다릴 뿐이다.   코로나 기습으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거의 망가졌다. 우리도 마스크 대란을 겪었지만 선진국의 생필품 대란(大亂)은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휴지사재기, 달걀, 우유, 의약품 사재기라니? 부국에서 치즈와 식빵난(亂)으로 폭동이 일어난다면 어디 믿겠는가? 글로벌 분업과 해외의존 100%가 낳은 허망한 결과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일본 도요타를 타도할 호기(好機)를 놓치지 말자고 결의했는데 빈말이 아니다.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부품은 해외조달, 완성차는 국내 조립하는 이원구조다. 부품 사슬이 끊기면 생산라인은 중단된다. 현대자동차는 ‘함대형 선단(船團)생산체계’를 구사해서 완성차 공장과 수십 개 협력업체가 동반 진출한다. 코로나 역경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가동률이 세계 최고(64.7%)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닛산과 혼다는 30%대, 벤츠와 GM은 10%대로 내려앉은 상태다. 반도체? 반도체 협업 생태계는 국내에 집적돼 있다.   한국은 선진국! 난생처음 개도국 열등감에서 벗어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진단키트! 씨젠을 비롯, 여러 바이오벤처가 코로나 팬데믹을 미리 읽었고 사운을 건 생산 전환에 돌입했다. 한국은 생필품 생산은 물론 제조업 포트포리오를 가장 적정비율로 발전시킨 나라였다. 세계 최고 수준인 정보통신과 모바일 산업은 코로나가 닿지 않는 언택트(untact) 문명을 주도할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   정책능력 제로로 비난받던 정부의 코로나 대응 조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재난구제금, 세금·공과금 감면, 긴급 대출은 부족하나마 실직자, 빈곤층과 자영업자에겐 단비가 될 것이다. 산업금융과 대기업 자금지원에 이익공유와 일자리유지 조건을 단 것은 현 정권이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세계 국가들은 ‘탈세계화’ 내지 ‘적정 세계화’로 유턴할 채비를 차릴 것이다. 큰 정부와 좌파정권에 기회의 창이 열렸다. 여기에 ‘한국형 좌파모델’이 화답하기를 기대한다. 의료, 안전에 민간-공공의 적정 믹스(mix), 시장경제와 생계·소득 보장의 적정 혼합, 고용체계의 유연 안정성이 관건이다. 세계가 거론하는 ‘한국형 방역’은 민공(民公)합작이었다. 지난 3년, 정치조작과 적폐청산 같은 낡은 메뉴 말고 ‘생애리스크 방역’에 정관민(政官民) 협치 코러스로 실력을 보여 달라. 진짜 좌파시대가 열렸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4.27 00:43

  • [송호근 칼럼] 코로나정국, 눈물겨운 표심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사실 나는 우리 지역구에 어떤 사람이 출마했는지 아직 몰랐다. 무책임하다. 아니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신경이 온통 코로나 사태에 꽂혀 있었다. 가족, 친지, 직장동료와 국민이 코로나 습격에 정말 안전한지 불안한 판에 정치 소식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확진자 정보가 뜨면 그곳을 피해 다녔다. 지하철, 버스도 불안했다. 식당과 편의점까지 기피 대상이 됐다. 대부분 앱쇼핑, 택배기사가 눈물겹게 고마웠다. 손소독제를 갖고 다녔다. 정치권의 언쟁은 시정(市井)의 비명소리에 비하면 한가하고 한심했다. 비례정당 37개는 너무 벅차 분간하기도 싫었다.   급기야 이런 생각도 들었다. 투표장에 줄서다 감염되지는 않을지, 좁은 투표장에 들어서서 용지를 받고 기표소를 나올 때까지 괜찮을까 하는 근심 말이다. 신경과민 탓이라 해도 투표권과 건강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더 따져봐야 했던 것은 아닐까. 정은경 본부장은 자칫 선거정국에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워 했는데, ‘조용한 전파시기’란 말이 훨씬 섬뜩하게 다가왔다. 영국은 지방선거를 1년 연기했고, 폴란드도 우편투표를 결정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스마트폰 왕국인 우리는 앱투표도 가능할 텐데.   아예, 이른 아침 사전선거에 나섰다. 중무장을 한 유권자들의 행렬은 백여 미터 정도, 2미터 간격, 체온을 재고 비닐장갑을 끼자 근심은 조금 잦아들었다. 민주시민의 행렬에 벚꽃잎이 휘날렸다. 코로나 위협을 뚫고 저 뒤틀린 정치를 어쨌든 추슬러 보겠다는 시민적 의지에 대한 봄의 위로였다. 그 순간, 시민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뒤처진 아이에 더 마음이 쓰이는 부모의 심정이 그런 것일까. 문화 한류는 세계인을 매혹하고, 경제는 글로벌 무대를 뛰어 다니고, 시민사회는 부쩍 성숙했는데, 성질부리고 발목 잡느라 제구실 못하는 발육부진 정치가 못내 안타까웠던 거다. 시민이 외려 보살펴야할 적자입정(赤子入井)정치 한국. 정치권은 이런 눈물겨운 표심을 알기나 할까.   1988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8번 총선, 그런데 이번처럼 이슈가 통째로 실종된 선거는 처음이다. 대체로 총선은 정권의 중간평가 형태를 띤다. 실정, 악정, 무능에 대한 응징이 그 자그마한 투표용지에 각인된다. 공수(攻守)에 나선 전사들간 설전 수위가 높아지고 악성 제보가 난무해도 정권 심판은 그런대로 이뤄졌다. 유권자의 표심은 놀랍도록 공평하다. 황금 분할이거나 독점 견제였다. 이슈가 살아있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는 그런 역학이 사라졌다. 정권이 코로나 뒤로 숨었다. 아니 코로나가 정권의 얼굴에 가면(假面)을 씌워줬다. 출범 후 2년 간 시행된 ‘적폐 청소’와 경제 실책은 더 이상 심판대 메뉴가 아니다. 지난 해 8월 이후 코로나 발발 직전까지 6개월은 정말 허송세월 난장(亂場)이었다. 공수처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끝내 밀어붙였다. 공수처는 정권의 사후대비 철조망이고, 연동형비례제는 민주주의 허점을 극대 활용한 독점장치다.   여기에 윤석렬총장이 정권 사수의 희생양으로 떠올려졌다. 윤총장의 정의감과 강단을 극찬해 현정권의 최종병기로 기용한 것이 불과 열 달 전 일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윤총장이 충복이었다면 과연 이랬을까. 검찰총장이 충견(忠犬)이기를 바라는가. 시민적 정의의 관점에서 검찰의 정치예속화 강요가 오히려 법치국가의 적이다. 올 가을쯤 공수처의 검찰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민주화 33년 간 쌓아올린 국민의 공덕(公德)은 허망하다.   투표용지에 후보는 잘 분간되지 않았다. 격려투표 아니면 견제투표? 그래, 미래 건사에 힘을 실어 도장을 꾹 눌렀다. 가까운 미래의 최대 위협은 아무래도 경제폭풍이다. 게오르기에 IMF 총재가 지난 금요일 폭탄선언을 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이 몰려온다고. 189개국 중 170개국이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것임을 구체적 수치를 들어 경고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대재앙에 한국경제가 견딜 수 있을까. 한국은 이미 경제역병(疫病)에 걸려 있다. 그것은 존재감없는 청와대 경제팀, 외골수 정의의 사도, 이념 기갈증이 든 정권 후방군단의 합작이었다. 정권이 목을 맨 소득주도성장은 경제활력을 무작정 제거한 표백제였다. 쓰러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코로나의 최후 일격을 받고 주저앉았다. 그들에게 베푼 재난지원금, 대출금, 세금감면, 부가 혜택 등은 사실상 경제악정으로 잃어버린 소득의 회수다. 회수치고는 초라하다. 보은(報恩)투표? 시달린 데 대한 위로금일 뿐이다.   메르스는 3파에서 종식됐다. 코로나는 이제 1파의 끝지점, 2파와 함께 경제역병이 5천만 인구를 강타할 것이다. 경제역병은 이념에 뒤틀린 시장과 기업 적대 시장에서 창궐한다. 재정 살포에도 미래 기획이 필요하다. 현정권의 실력으로 경제역병을 막을까. 총선 직후, 청와대와 여당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른다면 한국은 분명 지옥행 급행티켓을 예약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투표장을 나오는 사람들 머리 위로 벚꽃잎이 하릴없이 떨어졌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4.13 00:38

  • [송호근 칼럼] 치맥 카페에서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저는 ‘묻고더블당(黨)’ 대표 나다불(羅多拂)이올시다. 요즘 한국에 인생 파산한 사람들이 속출하니 이대론 안 되잖아요. 묻고 더블로 가자! 그런 의미에서 ‘더블당’을 창당했습니다. 제 이름이 다불, 따지지 않고 준다는 뜻이라 딱 맞더라고요.     그런데 총선 명단에 당명을 못 올렸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6개 도시 중 두 개가 펑크가 났어요. 개인 파산에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라 휴대폰도 껐더군요. 통신비가 없는 거예요. 선관위에 등록을 못 했습니다. 다음 총선을 기약하며 기분도 풀 겸 혼자 맥줏집에 갔었거든요. 텅 비었더군요. 완전 전세 낸 느낌? 그래도 홀로 치킨 씹기는 좀 궁색하지요. 한구석에 손님이 있더라고요. 서로 눈치 보다가 합석했지요. 유쾌했습니다.   명함을 내놓는데 놀랐어요. ‘창당알바당(黨)’ 대표였어요. 이름은 남지원(南支援). 남을 돕는 게 자기 팔자라나요. 전국 도우미를 모아 당을 너끈히 만들었는데 선거에 나서진 않는다나요. 창당 러시에 도우미 파견 사업이 오히려 수익이 좋대요. 남대표 신상이 훤해 보였어요. 도우미 일당 20%가 당비(黨費)래요. 신당 작명도 해준다나요. 한번에 천만 원. 요즘이 성수기랍니다. 일차 당 사업이 마무리됐기에 자축 겸 치맥 집에 왔대요. 대표끼리 합석이니 일종의 영수회담이죠. 정치에 관해 유익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진짜 민주주의다’는 데에 의견일치 했습니다. 잔을 부딪쳤죠. 얘기가 아주 잘 통했습니다. 내가 힘줘 말했죠. 미국과 유럽이 선진정치국? 천만의 말씀. 미국은 양당대립 때문에 민의가 팽개쳐지고, 트럼프 같은 선동형 정치가가 판을 치는 거다, 유럽이요? 북구 정당구도가 말만 사민주의지 사실은 민의를 다섯 개로 쪼개는 것에 불과하지요, 요즘 사람들 생각이 어디 다섯 유형뿐인가요? 남대표가 맞장구쳤어요. 맞아요, 독일은 정당이 10개인데도 코로나에 죽을 쓰잖아요, 시민정치학교를 운영하면 뭐합니까. 이탈리아요? 거기에는 정당이 20개 있는데 아직도 모자라 저 지경입니다. 한 50개 정도는 돼야 광장마다 각양각색 당원들이 넘치고 술집이 꽉 차고, 현안 문제로 주먹다짐도 하고 그러죠. 정치란 결국 활력! 코로나야 어찌 됐든, 맞죠? 또 한잔! 죽이 잘 맞았어요.   그러다 차기 총선용 창당에 들어갔죠. 유비무환! 작명도사인 남대표가 몇 개를 댔어요. ‘BTS더블당(黨)’! 새로 유권자가 된 18세 115만 명 표를 거뜬히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거예요. 20대 청년들까지도 모으면 전국 중앙당 되기는 식은 죽 먹기! 투표자 3%, 대략 60만 표를 얻으면 국회에 진출하니까요.     나는 ‘더불어트롯당(黨)’! 원래 트롯은 관광버스 안에서 춤추며 불러야 제 맛이죠. 인생 설움을 아는 사람만이 한(恨)과 흥(興)을 살려내니까. 영탁, 찬원, 영웅이를 당대표로 모시면 6070 어르신들이 난리가 날 테니 적어도 5석은 보장합니다. 공약은 트롯 스트리밍 무료, 까짓 세금으로 충당하면 되니까요. 이어 ‘다 함께 차차당(黨)’도 나왔고, ‘미래천당(天黨)’, ‘열래?민주당(黨)’, ‘미래개혁참~신당(黨)’이 치맥집에서 창당됐어요, 어제요.   20년 전, ‘.com경제’가 흥행할 때 주소 선점하는 기분이었어요. 그걸로 돈번 사람 많지요. 돈 생각하니 취기가 올랐어요. 그래서 정치를 욕하기 시작했지요. 비례당 만들어 이적하는 의원들은 파렴치범이다, 진짜 다당제 만들 용의는 있는가, 청년과 여성 발굴한다더니 고작 10%도 안 된다, 하층민은 누가 대변하나? 꼼수가 따로 없다, 위성정당은 노벨상감이다, 이건 가짜민주주의다.     ‘더불어미래당(黨)’은 왜 없어? 협치한다더니 쌈박질만 하고 우리더러 표찍어 달라고? 진짜 다당제가 돼야 도둑정치, 거짓위기로부터 해방된다고 스나이더(Snyder)인지, 슈뢰더인지가 그랬어,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과거와 미래를 구별 못하면 예속이라고, 맞지? 언프리덤(Unfreedom)! 우리는 속박을 깨는 투사야! 또 한잔.   취기가 올랐다. 그러고 말이야, 남대표, 선거를 꼭 이때 해야 하는 거야? 마스크에 장갑 끼고, 줄을 죽 서서, 기어이 표를 찍어야 하나,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우리 ‘더블당’은 비례대표 낼 때 기준을 정했거든, 당원 중 자살직전 1순위, 파산칩거 2순위, 더불로 가서 성공한 자 3순위, 어때 공평무사하지 않아. 그런데 다른 당은 뭐야, 대체 누가 나온 거야? 이거 민주주의 자살이야, 38개 정당 중에 고르라고? 38지선다형 고난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 누군지 알아야 연립내각도 꾸리고 하지. 연립내각, 멋있잖아? 문정부는 독주(獨走)가 문제야. 이해찬대표는 민주주의 화신처럼 굴더니 뭐, 사돈당, 형제당? 웃기라 그래 …   치맥 값은 나, 나다불이 낸 것 같다. 기억엔 없지만 카드사용 문자가 날아왔다. 아침에 문자가 하나 더 왔는데, 남지원대표였다. ‘우리당이 바야흐로 정당 M&A에 들어갈 건데 참여하려면 1천만 원을 입금하기 바람. 계좌번호 xxx’.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3.30 00:42

  • [송호근 칼럼] 이젠 줄도산 코로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트롯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수백 번 들어 매력이 증발한 옛 노래들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을 속절없이 후벼 팠다. 코로나 때문이었을 게다. 자고 나면 치솟는 환자 수와 정치권의 허튼 소리에 상처 난 마음을 위로한 건 틀림없이 트롯이었다. 트롯의 대부 남진이 하동 출신 신동 정동원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었다. ‘올드 트롯이요!’ 트롯도 넘어 올드까지 간 14살짜리의 취향도 웃겼고, ‘아따, 영어를 솔찮이 해불구마 잉~’도 웃겼다. 원주 출신 조명섭의 가창에 남인수, 현인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유쾌한 향수를 깨면 코로나였고, 마스크였고, 초딩 수준의 정책이었다.   미국이 지난 토요일 국가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유럽발 입국 금지가 발령되고 뉴욕증시 폭락이 이어진 직후 내린 결단이었다. 확진자 1,700명에 사망자 41명이 나온 시점, 한국에 비하면 초입 단계에서 초강수 극약을 처방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정치적 셈법을 감안하더라도 세계 최강 정책 군단을 보유한 백악관의 용단이라면 대공황에 버금가는 불길한 암운(暗雲)을 알아차린 거다. 세계의 공장 아시아, 원유생산국 중동, 금융기지 유럽이 지금 속도로 얼어붙는다면 1929년 대공황보다 더 참혹한 결과가 덮칠까.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Keynes)는 대공황 타개책으로 ‘유효수요’ 이론을 고안했다. 정부가 돈을 쏟아 붓고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것. 그런데 국가가 문을 닫아 걸고, 소비, 생산, 금융, 물류가 올스톱하는 돌발상황은 자본주의 초유의 사태다. 초특급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거다.   한국은? 이 난국에 존재감이 전혀 없는 청와대 정책팀, 자화자찬 해대는 장·차관, 거기에 생명줄에 혈안이 된 정치권, 이 ‘무능연합군’이 펼칠 난장 드라마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홧병이 도진다. 정책역량이 이렇게 바닥인 정권, 현장감각 제로인 정권은 처음이다. 대구·경북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메르스를 겪고도 공공의료는 겨우 6% 수준, 민간병원과 민간의료인의 자원봉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죽했으면 계명대 동산병원이 적자를 감수하고 코로나퇴치 전문병원을 자처했을까. 게다가 전문가불신, 기업불신 풍조는 여전해서 화선(火線)을 예상도 못하고, 마스크 하나 제대로 공급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조업 강국에서 마스크 대란이라니. 분배정의라더니, 고작 마스크 분배도 못한다. 현장을 모르는 의사(疑似) 공익주의자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마스크를 일주일 째 쓰는 데 아무 이상없다’(이해찬 대표), ‘마스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료진들이 더 갖고 싶어 하는 것’(박능후 장관). 이런 말 들으면 복장 터진다. 이런 때에는 핏대를 올리기보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중국 말투로 답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로 출퇴근 해 봤니?”, “방호복입고 온종일 땀흘려봤니?”(오성음조로 말끝을 살짝 올리면 좋다). 심리적 위안은 잠시, 먹구름은 대기 중이다.   사주경계에서 정부는 구청을 못 따라 간다. 노원구청은 마스크 대란을 예상했다. 직원들이 한달간 전국을 다니면서 마스크 백만 장을 구했다. 동사무소가 전초기지, 동장과 반장이 라이더다. 품귀를 대비해 구청 강당에 아예 마스크 공장을 차렸다. 재봉틀 자원부대, 이 얼마나 듬직한 풍경인가? 왜 민간 약사가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불가. 약국 앞에 고령자, 노약자, 환자까지 줄 세운 찬란한 무능력에 비하면 노원구청은 제갈량이다.   정부가 일개 시청(市廳)보다 못한 나라.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지급하자는 정치인들은 제발 입 좀 다물기를 바란다. 한심한 망국(亡國) 발언이다. 취약계층, 영세업자가 우선이다. 취약자 5만 명, 52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전주시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청와대에 모범을 보였다. 코로나 사태 두 달 동안 일용직, 비정규직은 소득 바닥, 영세업자(자영업, 소공장)들은 소위 ‘자살각(角)’에 몰렸다. 영세업자에겐 금융이자, 세금 경감조치가 시급하고, 영업자금의 대량 방출이 시행돼야 한다. 돈 떼일 생각하고 증빙서류에 목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파산하면 대출해 줄 곳도 없다. 긴급재정 고작 6조원, 대출에 평균 두 달이 걸린단다. 차라리 사채를 쓰고 말지. 외환위기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이다. 사채시장은 호황을 누렸고, 파산자가 속출했다. 파산은 신불자와 극빈계층 양산, 급기야 구제자금 방출로 이어졌다.   중국과 북한에 보내는 묵직한 끈기는 따를 자가 없다. 일본에 맞대응하는 빛의 속도로 경제정책과 방역종합 대책을 고안해 준다면 얼마나 믿음직할까만, 저 두 가지를 빼고 우물쩍이 장기다. 정부부처에 포진한 공무원 군단은 무얼 하고 있는가. 국책연구소 수천 명 박사들을 두고 탁상공론 기안(起案)만 만들고 있는가. 이젠 줄도산 코로나, 적어도 10개 영역 비상대책팀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다시 오성 음조로 ‘당신들 쉬세요?’ 묻고 싶은데, 그래봐야 헛일이니 차라리 트롯이 묘약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3.16 00:36

  • [송호근 칼럼] 방역독립선언서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확진자 5000명이 코앞이다. 대구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 코로나사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형의 사회적 위기, 이런 때 우유부단한 정권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혹독한 심리적 고통이다. 한 달간 5200만 국민이 체감했던 불안과 불만의 총무게는 지구를 찌그러트릴 만한 중압감을 이미 넘어섰다. 외국 공항에서 쫓겨나는 굴욕은 참는다 치자. 코로나 발원지 중국이 한인들을 억류하는 것도 일단 참자. 몇 차례 전문가그룹의 경고가 있었다. 정부는 안심발령을 거듭했고, 정치권은 총선 싸움에 열을 올렸다. 신천지에 코로나가 잠복한 20여 일간 이웃나라 걱정에 잠을 설친 정권에 위기관리 개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필자의 지난 칼럼에 보낸 수백 개 댓글 중 하나를 허락없이 공개함을 용서해 달라. 물론 욕설도 많았다. “국민들은 세월호 안 학생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중국 바이러스가 바닷물처럼 자꾸 차올라요. 어쩌지요? 꼼짝 안하면 되나요?” 이제는 늦었다. 세월호처럼 이미 선체가 기울었다. 한국은 우한사태 초입에 들어섰다. ‘중국과 한국은 운명공동체’까지는 좋았는데 급기야 ‘바이러스 공동체’가 됐다. 유례없는 동지애 덕에 한국은 판데믹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정작 중국은 알아주지도 않는다. 국민들이 되묻는다. 시진핑이 한국인의 생명을 보호해주는지를. 중국인 입국 제한이 엄청난 경제 충격과 외교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래서 국민 생명을 제물로 바쳤다.   위기란 삼초(三超)현상, 즉 초희귀성, 초파괴력, 초불확실성을 말한다. 코로나는 정확히 그렇다. 너무 희귀해서 어리둥절하고 감염속도가 너무 빨라 파괴력이 높다. 이런 경우 위기관리 매뉴얼을 꺼내들어야 한다. 경제와 생명, 양자택일 결단이 시급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심각단계’로 올렸지만 ‘심각’에 부합하는 정책은 없다. 확진자 2000명을 돌파한 28일, ‘입국금지를 하면 우리가 외국의 금지대상국이 될 수 있다’고 대통령이 말했다. 그날 70개국에서 금지 명령이 떨어졌고, 오늘 확진자 4000명에 근접했다. ‘우린 꼼짝 안하면 되나요?’   당장 7만 중국유학생이 입국 중이다. 혹여 무증상감염자가 200~300명 대형강의실에서 수강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불허. 학생식당과 도서관, 카페는 어떤가. 신천지교회 수십 개가 동시다발로 가동하는 꼴이다. 거꾸로 중국학생들이 학생교인에게서 옮을 수 있다. 벌써 강릉에서 일이 터졌다. 필자는 중국에 우호적이다. 이것과 한국인 생명은 별개 문제다. 일개 대학이 중국유학생 2000명을 관리할 능력은 없다. 서울에만 1만5000여명, 이들이 신천지 학생과 접촉해  집단발병이라도 나면 서울시장은 엎드려 빌까? 국가 과제를 대학에, 교육과 생활현장에 짐 지우는 정부는 이제껏 없었다. ‘운명공동체’는 우한코로나에 건강주권을 할양하는 비극을 낳았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방심(放心)이다. 바이러스가 환호할 환경을 우리가 십시일반 배양하고 있다. 카페에 사람이 모이고, 개인강습소, 학원이 성업 중이다. KTX와 SRT가 달리고 대중교통이 쉴 새 없이 바이러스를 퍼 나른다. 코로나균은 사회성 A+급이다. 세계 최고 초(超)연결사회인 한국을 집어삼키도록 방치한 현실에서 의료진과 방역관의 눈물겨운 사투는 증발한다. 충격요법, ‘사회적 방역’이 절박한 이유다. 초연결관계망의 한시적 중단, 15일간 ‘사회적 셧다운’을 요청한다. 단기 셧다운의 비용은 장기전보다 싸다. 물류는 제외다.   만약 더 주저한다면, 5000만 국민의 결의를 모아 ‘방역독립선언서’를 발할 수밖에 없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방역’독립국임과 조선인의 ‘방역’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하는 공약(公約) 5장. 1장. 중국인의 출입을 ‘한시적으로’ 금한다. 진정 중국으로 코로나 역수출을 막는 길이다. 2장. 국가에 코로나방역 ‘국가대책위’를 시급히 신설한다. 총리가 위원장인 대책위는 질본 본부장의 권고를 심층 논의하여 일일 대응책을 발표한다. 감염학회, 의료 및 과학전문가를 국가대책위에 초빙한다. 3장. 의료체계 붕괴를 막아야 한다. 공공의료 능력이 한계에 달한 지금 대형병원을 비상 지정해 운영한다. 일반환자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코로나 전문병원을 예비 지정한다. 4장. 전국에 15일간 ‘사회적 셧다운’을 발한다. 15일간 휴가는 공휴일, 국경일 휴일로 대체한다. 이 기간에 임시, 일용직 노동자에겐 복지비용을, 공장노동자, 영세업자, 대중교통 기사 역시 최소 생존경비를 지급한다. 5장. 국가대책위는 오후 8시 국민행동수칙을 매일 발표한다. 1가(家) 1인(人) 외출은 허용한다. 공무, 금융, 세금, 대출이자 등 기한은 15일 연장한다.   대구 경북부터 구출하자. 마스크는 품귀, 확진자가 집에서 떨고 있다. 대구 경북은 민족운동의 본산지였다.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3500명을 키워낸 독립지사의 본향이다. 1910년대엔 풍기, 안동, 상주가 참여한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가 무장투쟁을 감행했다. 그들은 옥사했다. 이제 빚 갚을 때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3.02 00:43

  • [송호근 칼럼] 내 이름은 엔터테인먼트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1980년대 중반 이역만리 미국 보스턴, 유학생 종강파티가 열렸다. 유학생과 가족들은 한 학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긴 여름 휴가에 들떠 있었다. 범생 고수들, 유아에서 대학까지 2등 기억은 없는 ‘공부의 신’ 무리는 저마다 잘난 지식을 뽐냈다. 그 때 커플이 입장했다. 뭇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삼성 가(家) 손녀라고 했다. 여학생들이 그를 맞았다. 미국학자들이 한국을 두고 ‘천민 자본주의’ 운운할 때였다. 잘난 범생들에겐 의당 냉소의 대상, 질투도 살짝 배긴 했었다.   그녀가 ‘문화산업이 어쩌고’ 하는 순간 범생들의 표정은 완전히 냉소로 바뀌었다. 그럼 그렇지, ‘날라리’가 문화를 어찌 아는고. 문화란 제조업의 흥망을 가늠하는 양념같은 것. 당시 토요타, 소니, 히타치, 도시바가 세계를 재패한 비결은 일본 고유 문화에 숨겨진 노동자의 헌신 코드, 국가와 기업에 보답하려는 마음의 유전자, ‘기리’(義理)다. 일본 작업장에 가득 찬 저 보은(報恩) 열정을 발견한 순간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재빨리 금융으로 이동했다. 문화는 제조업에 투입하는 질료라는 범생들의 확고부동한 명제는 그녀의 ‘문화산업!’ 열변을 마당쇠의 골계쯤으로 여겼다.   대학 문화관에서 공짜 영화가 상영됐다. 한창 인기를 끌던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 우수에 찬 청년 제다이의 대사는 학부생의 집단 열창에 덮여 들리지 않았다. 저걸 다 외다니, 게다가 열광이라니. 한인 유학생의 관심은 그것보다 미국에 막 상륙한 현대자동차 엑셀에 꽂혀 있었다. 가난의 설움을 씻어주듯 달리는 엑셀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귀국 후에도 범생에게 문화는 자동차, 선박, 철강, 가전제품을 만드는 윤활유였을 뿐인데, 어느 날 거리에서 CGV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번듯하게 들어선 모습을 목격했다. ET로 유명해진 스필버그감독과 제휴한다는 말도 돌았다. 그곳에서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를 관람했다. 모두 CJ Entertainment란 세련된 로고가 붙었다. 문화가 돈을 버는 현장이었다. CJ CGV는 전국에 218개 상영관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몇 년 전 중국 청두에 100호점을 개설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이 됐다.   날라리의 논지가 맞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범생들은 독점자본의 문화계 진출을 은근히 경계했고, 유서깊은 극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걸 못내 아쉬워했으며, 충무로 영화인들이 큰손에 굽실대는 걸 통 크게 비난했다. 이제는 안다. 문화는 돈이 들고, 돈이 된다는 그 명제가 선견지명이었음을 말이다. 그것은 아마 조부 이병철 가(家)의 유전자였을 것이다. 정미소에서 시작해, 물산, 제당, 가전, 반도체, 통신, IT 최고 기업으로 상승하는 매 변곡점마다 번득이는 예지가 작용했다. 재벌의 부침을 우리는 무수히 목격했다. 조부DNA와 그녀의 탁월한 감각, 끈질긴 투자가 한국영화에 눈부신 영광을 선물했고 그녀를 아카데미상의 대모(代母)로 끌어올렸다.   봉준호도 외조부 박태원을 꼭 닮았다. 1930년대 모더니스트, 삽화 형태의 문장에 식민치하 청계천변 하층민의 삶과 애환을 스케치하듯 담아낸 작품이 『천변풍경』(1938년)이다. 청계천변 사람들 일상엔 일제(日帝)가 없다. 재봉소, 이발소, 다방, 식당, 노점, 점방, 술집 주인들이 엮는 일상풍경의 줌업 화면에는 연민과 억제된 한(恨)이 철철 넘친다. 능청스럽기도 하고 나름 계획도 있다. 하층민의 체념과 욕구가 투박한 언어와 행동에 분출되고 흩날린다. 봉준호의 친부(親父)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반지하 가족의 처연한 계획은 외조부의 스토리텔링이고, 그것을 부잣집 저택 공간에서 재현시키는 기법은 아버지의 회화적 디자인이다.   봉준호 자신은 사회학을 전공했다. 한국의 정치경제적 성장통에서 습득한 그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두 유전자를 서로 접목한 접착제였다. 2020년 한국의 가장 예민한 모순의 디테일을 클로즈업한 영화 ‘기생충’이 세계의 중추신경을 건드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영화 말미 피칠갑 장면이 어쩐지 거북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을 호명하는 순간 우리는 알아챘다. 한국인의 일상 속에 세계적 공감을 자아낼 보편 코드가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화감독은 힘이 세다. 문화는 산업이자, 국경을 넘는 폭력과 증오를 녹이는 용광로다.   1920년대에서 발원하는 한국영화사, 수많은 배우들과 감독, 제작진들이 뜨고 진 열정의 외길에서 드디어 아카데미상이 탄생했다. 문화경영의 귀재 이미경과 이젠 거장 반열에 오른 봉준호가 쌓은 20여년 교감의 열매가 눈물겨운 한국영화사에 고품격의 명패를 헌정한 것이다. 과거에 엔터테인먼트는 오락, 여흥, 연예 같은 변방 직종을 일컬었지만, 문화와 감각의 시대엔 기예와 감성, 예술성을 뽐내는 최고의 직업이 됐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날라리의 창의적 놀이터에 범생들은 명함도 못 내민다. 차제에 과거의 오만과 좁은 식견을 반성할 겸 명함을 바꿔야 할까 보다. 내 이름은 엔터테인먼트.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2020.02.17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