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 프로필 사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편집인 뉴스총괄
JTBC 보도총괄
JTBC 보도국장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중앙일보 런던특파원

응원
178

기자에게 보내는 응원은 하루 1번 가능합니다.

(0시 기준)

구독
248
  • [오병상의 라이프톡] 정치는 ‘증오의 조직화’다

    라이프톡 정치를 정의하는 말은 여러가지다. 7일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대담을 보면서 ‘통치란 실망시키기다 (Governing is disappointing)’란 말이 와닿았다.   핵심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이다. 대통령은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했다. 명품백 사건과 관련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과반을 훌쩍 넘는다. 당연히 사과발언을 예상했는데, 전혀 없었다.   여권에선 실망감을 드러내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김건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던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은 8일 “대통령이 계속 ‘아쉽다’고 했는데 나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겠습니다. 아쉽습니다”라고 답했다. 김경율 처지에선 용기 있는 ‘실망’ 표현이다.   대통령 부부를 지지해온 신평 변호사는 8일 SNS글에서 ‘이 사건은 절대 이대로 지나가지 않을 것 같다’ 며 ‘획기적인, 뼈를 깎는 개선안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을 잘 아는 재야 인사의 충심이 느껴진다. ‘정치는 증오의 조직화(Organization of hatred)’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호감을 사기는 어렵지만 반감을 얻기는 쉽다. ‘윤석열이 좋아서라기보다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찍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명품백은 증오를 조직화하는데 활용하기 좋은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4.02.09 00:17

  • [오병상의 라이프톡] 러시아 민요 ‘스텐카 라친’

    라이프톡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 강물 위에 / 스텐카 라친 배 위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1970년대 통기타 가수 이연실이 불렀던 ‘스텐카 라친’은 러시아 민요다. 스텐카 라친은 17세기 러시아 농민반란 지도자로 볼가강 유역에서 활약했다. 그는 전제군주의 폭정에 저항한 영웅이 되었고, 그를 기리는 마음은 민요가 되었다. 그 영웅서사를 드라마틱하게 장식한 건 페르시아 공주 에피소드다.   ‘돈코사크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스텐카 라친이 페르시아 지역을 공략하던 중 얻게 된 공주와 사랑에 빠져 초심을 잃었다. 그를 따르던 무리(돈코사크)들은 교만한 공주 때문에 굶주리게 됐다며 아우성이다. 결국 스텐카 라친은 공주를 강물에 던진다.   ‘꿈을 깨친 스텐카 라친 장하도다 그 모습.’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볼가강처럼 도도히 흐르는 멜로디에 비장한 서사는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여러모로 불온한지라 군사정권 시절 내내 금지곡이었다.   오래된 금지곡이 떠오른 건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김웅 의원(국민의힘)의 파격 해법 탓이다. 김웅은 24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가) 사저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해서 잠시 외국에 나가 있겠다랄지 하면 이 국면이 뒤집어진다”고 말했다. 파격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야당의 공작에 시달리다 총선에서 패배한다는 주장이다.   ‘정치를 위해 사랑을 내치라’는 주장은 매정하게 들린다. 그만큼 김건희 리스크가 심각하고, 여당의 사정이 절박하다는 아우성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4.01.26 00:20

  • [오병상의 라이프톡] 설마 했던 ‘트럼프 시즌 2’

    라이프톡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15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트럼프가 역대급 압승을 거뒀다. 51% 득표로 2위 후보(21%)와 30% 초격차 기록을 세웠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바이든 대통령과의 본선 대결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높다.   설마했었다. ‘설마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까’ 했던 건 트럼프의 황당한 범죄행각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21년 1월 6일 극우시위대의 국회의사당 습격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짓밟는 초유의 사건은 사실상 트럼프의 선동이었다.   이후에도 트럼프는 대선결과에 불복하면서 온갖 협박과 선동을 계속했다. 성추행과 성매매 관련 너저분한 사건도 이어졌다. 트럼프는 91가지 범죄혐의로 4차례 기소됐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발언을 추적해 ‘집권 4년간 3만건의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정도면 당연히 유권자들이 외면할 줄 알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모든 비리의혹을 ‘민주당 정권의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되받아쳤다. 객관적 사실이나 정황과  무관하게 트럼프의 선동은 통했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 정치의 퇴락를 보여준다. 토크빌이 예찬했던 ‘미국식 민주주의의 미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배운 한국은 미국의 정치행태에 민감하다. 한국정치가 트럼프식 포퓰리즘과 거짓선동에 휘둘릴까 무섭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4.01.19 00:10

  • [오병상의 라이프톡] 노인정치와 세대 갈등

    라이프톡 노인정치(Gerontocracy)란 노인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기형적 정치형태다. 과거 공산권 독재자들의 종신 집권을 비판하던 용어다. 최근엔 미국 바이든(81) 대통령과 트럼프(78) 전 대통령의 대권도전을 비판할 때 흔히 사용된다.   노인정치의 문제는 노년층의 기득권이 강화되면서 젊은층의 발언권이 축소되는 세대 간 불균형이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역동성을 잃고 퇴행하게 된다.   지난 10일 행정안전부 발표 인구통계에 따르면, 올 4월 총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가 20, 30대 유권자보다 많아졌다. 60대 이상의 높은 투표율까지 감안하면 세대 간 정치불균형이 심각해지게 됐다.   노년층 유권자의 비중이 높아지면 정치권은 당연히 이들을 위한 정책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젊은층은 정치를 불신하고 외면하게 된다. 방치하면 세대갈등이 더 심각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유권자의 고령화가 한국형 노인정치를 재촉하고 있다. 인구문제는 ‘정해진 미래’라고 한다. 충분히, 그리고 정확히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피하지 못한다. 뻔히 알면서도 대책 마련엔 소홀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장기 발전전략보단 선거용 땜질 처방에 매달린다. 4월 총선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사투를 벌일 것이다. ‘회색 코뿔소’와 같은 현존 위험인 세대갈등은 요란한 정쟁에 묻힐 것이다.   코뿔소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젊어 본 적 있는 노년층이 청년층을 이해하는 것이, 늙어본 적 없는 청년층이 노년층을 이해하는 것보단 쉽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4.01.12 00:25

  • [오병상의 라이프톡] 나홀로 볼링…정치 유튜브

    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회의실에 이재명 대표의 자리가 비어있다. 강정현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공격한 테러범은 은둔형 외톨이, 유튜브 과몰입자다. 뿌리 깊은, 전형적인 사회 병리현상으로 풀이된다.   이 문제를 분석한 명저가 2000년 출간된 ‘나홀로 볼링’이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1950년 이후 미국사회의 변화를 분석했다. 단체 볼링은 줄고 ‘나홀로 볼링’이 늘었다. 공동체 붕괴와 개인주의 확산으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심각해졌다.   학자들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감소했다고 표현한다.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신뢰와 연대다. 자본(돈)이 있어야 시장이 돌아가듯, 사회적 자본(신뢰)이 있어야 사회가 잘 돌아가고 개인이 행복할 수 있다.   20세기말 시점에서 퍼트남이 지적한 문제의 대표적 원인제공자는 TV였다.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TV를 보는 바람에 공동체 활동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현시점에서 TV를 대신한 원인제공자는 유튜브다. 유튜브는 TV보다 맹독성이다. 유튜브는 혼자 몰입해서 보게 되며, 무한대 채널이 무한경쟁하면서 자극적 선택을 강요하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쳐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게 된다.   사회적 자본이 사라지면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해진다. 사회구성원들의 공감대 영역이 줄어들면 그만큼 분열의 공간은 커진다. 극단 정치성향 유튜브는 그 틈을 파고드는 유해가스다. 중독되면 자신도 모르게 망상에 사로잡힌다. 정치적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한다.   TV나 유튜브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선용하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유튜브를 끊고 골방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4.01.05 01:15

  • [오병상의 라이프톡] 슬픈 이선균

    오병상의 라이프톡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1990년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부르던 가수(김완선)는 폴짝폴짝 토끼 춤으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웃음 뒤, 아무도 모르는 눈물과 같은 페이소스가 대박의 비밀코드다.   연예인은 일반인보다 감정선이 예민해야 한다. 섬세한 감정전달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야 하는 업(業)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크고 흔들리기 쉽다. 더욱이 최근 K 컬처의 부상으로 연예인들이 가진 것도 많아졌다.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출렁이는 환호에 맡겨진 운명인지라 작은 불운에도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끼기 쉽다. 불안은 두려움을 거쳐 공포로 자란다. 공포는 공격성으로 전환되며 막다른 상황에선 스스로를 공격한다.   배우 이선균의 죽음에 피에로가 떠올랐다. 일반인이었다면 주목받지 않았을 것이다. 마약 복용이 확인되더라도 단순 초범인지라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 이선균에겐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더욱이 이선균은 시종일관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했다. 유흥업소 종업원의 꼬임에 넘어갔고, 협박에 시달려 3억5000만원을 뜯겼다고 주장했다. 통화내용 등으로 미뤄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그를 유죄로 단정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2.29 00:12

  • [오병상의 라이프톡] 한동훈 출사표 “맹종한 적 없다”

    오병상의 라이프톡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1일 퇴임하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수락했다. 앞서 19일 국회 도어스테핑에서 던진 출사표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 아바타’라는 지적에 이렇게 반박했다. 오늘의 윤석열 대통령을 있게 만든 2013년  ‘충성’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은 국정감사장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윤석열은 실제로 사람(박근혜·문재인)에 충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한동훈의 발언은 맥락상  ‘윤석열에게 맹종한 적 없다’와 같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한 가지 기준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윤석열이 아니라 ‘공공선’이 그의 판단기준이란 얘기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다짐하는 출사표인 셈이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답변도 일통한다. 답변의 첫머리는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국민이 보고 느끼기에도 그래야 한다”였다. 이어 “(김건희 특검법은) 민주당의 총선 선전·선동용이기에 악법”이라고 반대를 분명히 했다.   맥락을 감안하면 뉘앙스가 다르다. 김건희 여사도 법 앞에 예외는 아니다.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선거 이후 특검을 할 수도 있다 등등의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판에서 2인자의 숙명은 1인자의 극복이다. 한동훈도 알고 있다. 그의 출사표엔 윤석열로부터의 독립의지가 조심스럽게 담겨 있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2.22 00:30

  • [오병상의 라이프톡] 민심의 바다 위 김건희 리스크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박5일 일정으로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기 위해 1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오르며 환송객들에게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선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사퇴로 드높아진 여론의 눈길이 김건희 여사를 향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김건희 리스크에 보수진영까지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최근 김건희 리스크에 불을 지핀 건 명품백 동영상이다. 유투브채널 '서울의소리'가 지난달 공개한 동영상에서 김건희 여사는 친북성향 재미 목사로부터 300만원 짜리 명품백을 받는다. 목사가 '서울의소리'와 짜고 김건희가 좋아하는 명품을 미끼로 몰카촬영했다. 취재윤리상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취재내용(김영란법 위반)이 사라지진 않는다.  동영상은 여러모로 악성이다. 대통령의 부인은 지난해 9월 개인사무실로 친북 목사를 불러 '(남북문제 관련) 같이 일하자'며 명품백을 받았다. 보수진영이 왈칵할만 하다. 김건희 리스크를 계속 뭉개고 갈 수 없는 것은  '김건희 특검법'으로 이어지는 야당의 파상 공세 때문이다. 민주당은 28일 국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관련 특검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검법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민심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결과 '특검법 거부'를 반대하는 여론이 70%다. 이럴 경우 민주당이 내세우는 '윤석열의 내로남불' 프레임이 맞아 떨어진다. '이재명 민주당대표는 탈탈 털면서 김건희는 감싸고 돈다'는 주장이 민심을 파고들게 된다.   내년 4월 총선에 치명적일 수 있다. 선거의 승패는 프레임에 민감한 스윙보터(중도표)에 달렸기 때문이다. 김건희 리스크가 민심의 바다에 던져졌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2.15 00:18

  • [오병상의 라이프톡] 정치인 한동훈과 프레임 정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6일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서 '출입국 이민관리청 신설 방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6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장에서 이민청 설립안을 설명했다. 사실상 정치입문 신고식이라니, 타이밍이 좋았다. 이날 인터넷의 화제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교통사고였다. 전날밤 귀가 중 유동규 차를 트럭이 추돌했다. 유동규는 "내가 죽으면 극단선택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사고나 자살로 위장된 피살 가능성을 경고한 셈이다. 유동규는 지난달 30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사건의 결정적 증언자다. 유동규는 김용이 받은 대장동 일당의 돈은 결국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김용의 법정구속은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현실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유동규 교통사고와 김용 유죄선고를 엮으면 영화 '아수라'가 된다. 2016년 개봉된 영화는 노골적으로 성남시장 이재명을 연상하게 만드는 범죄스릴러다. 영화속 악덕시장은 부패경찰을 사주해 결정적 증언자를 처리함으로써 선거법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는다. 아수라가 회자되는 타이밍에 한동훈의 등장은 '범죄자와 검사'라는 프레임을 강화시킨다. 프레임은 유권자의 생각을 지배하는 정치언어의 틀이자, 선거를 좌우하는 정치판의 구도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되듯이, '범죄자와 검사'란 구도가 만들어지면 한동훈은 정의의 사도가 된다. 정치신인 윤석열 검사가 백전노장 이재명을 이긴 데도 이런 프레임이 작동했다. 범죄피의자 이재명이 야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주자인 상황에서 이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주인공이 윤석열에서 한동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2.08 00:12

  • [오병상의 라이프톡]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14년 7월 울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송철호(왼쪽) 전 울산시장의 지지를 호소하며 함께 유세하는 모습. 문재인은 대통령 시절 송철호의 울산시장 당선을 '소원'이라 말했고, 결과적으로 울산시장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해 송철호를 당선시킨 선거범죄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문재인 정권 최악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적 논란을 떠나 명백한 중대범죄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이 29일 관련자 12명에게 무더기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청와대의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징역 2년,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징역1년. 주범에 해당되는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3년형. 선거 범죄는 민주주의 뿌리를 흔들기에 심각하다. 청와대가 범죄의 중심이니 최악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를 당선시키기위해 청와대가 경찰을 동원해 유력 상대후보(김기현 현 국민의힘 대표)를 범죄자로 몰아 떨어트렸다. 유권자의 신성한 주권행사를 방해한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더 억울한 것은 범죄자들이 권력을 누리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유죄선고가 나오기까지 5년 넘게 걸렸다. 대통령의 입김 탓에 검찰도, 법원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결과 송철호는 울산시장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현직 경찰로 금뱃지를 단 황운하도 대법원 확정판결 이전에 임기를 무사히 마칠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큰 탓이다. 대법원장 임명권을 통해 사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법부를 통한 견제와 정의구현이 지체되는 사이 유권자의 주권과 정의는 실종됐다. 유죄선고가 나오자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수사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잘잘못을 밝혀 대통령의 권력남용에 경종을 울려야한다. 정의가 더이상 지체되어선 안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2.01 00:26

  • [오병상의 라이프톡] 실패한 쿠데타, 고삐 풀린 AI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오픈AI의 개발자 회의에 참석한 샘 올트먼 오픈AI CEO(왼쪽)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최대주주다. 올트먼을 쫗아내는 쿠데타를 진압한 것도 사티아 나델라다. 연합뉴스.   지난 한 주 세계가 주목한 빅뉴스는 오픈AI의 실패한 쿠데타다. 오픈AI 이사회가 17일 CEO 샘 올트먼을 전격해고 했지만 5일만에 뒤집어졌다. 이번 사태는 AI의 미래를 예고하기에 의미심장하다. 쿠데타의 뿌리는 AI라는 기술을 보는 상반된 시각이다.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극적으로 갈린다. AI가 편리한 수단이기에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낙관론자는 부머(Boomer)라 불린다. 반대로 AI가 인간을 파괴할 수 있기에 신중하게 개발해야 한다는 비관론자는 두머(Doomer)다.  오픈AI 공동창업자 중 사업가 출신 올트먼은 부머, 원천기술을 개발한 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두머다. 원래 오픈AI는 2015년 '안전한 AI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다. 두머 조직인 셈이다.  AI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업적 활용가능성이 높아졌다. 2019년 올트먼이 돈벌이(영리)용 자회사를 만들었다. 부머 조직이다. 올트먼은 지난해 챗GPT를 선보인 이후 더욱 적극적인 상품개발과 사업확대에 나섰다. 올트먼의 행보를 '과속'이라 판단한 수츠케버 등 두머 이사 4명이 부머 이사 2명을 전격해고했다.  급반전의 동력은 영업용 오픈AI 최대주주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 두머의 급브레이크는 영업방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트먼과 동조 직원을 몽땅 영입, 사실상 오픈AI를 자사 내부조직으로 흡수하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두머들은 막강 자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사회가 부머로 물갈이됐다. 두머들이 잡고 있던 고삐가 풀렸다. AI가 실험실을 탈출했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1.24 00:18

  • [오병상의 라이프톡] 토사구팽 윤핵관

    윤석열 정권 창업공신 장제원 의원의 기세등등하던 인수위원회 시절 모습. 차기정부 내각구성이 한창이던 2022년 5월 5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핵관하면 뭐니 뭐니 해도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구)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권후보가 되기 전부터 집을 찾아가 정치현안을 브리핑했으며, 대선 승리 직후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인수위원회를 좌우했으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내세우고 지탱해온 김장연대 당사자다. 그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위기에 처했다. 토사구팽은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고사성어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대통령과 가까운 영남중진의 험지출마'를 요구했다. 창업공신 장제원에게 정치적 자살을 강요한 셈이다. 장제원은 반발했다. 11일 지지자 모임에 이어 14일 올린 교회 간증 영상에서 거듭 거부의사를 밝혔다. 간증의 주제는 '아버지 장성만'이었다. 고 장성만은 목사이자 동서대 설립자로서 민정당 창당발기인으로 정치입문, 1987년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 장제원으로선 뿌리를 두고 맹서한 셈이다. 그러자 인요한은 15일 "대통령실에서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밝혔다. 버티는 장제원에게 '어명이요'라고 윽박지르는 듯하다. 토사구팽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정계은퇴하면서 남긴 탄식으로 유명해졌다. 김재순은 민정계 출신이면서 민주계 수장인 김영삼을 지지해 당선시킨 창업공신이다. 재산공개 과정에서 축소신고 물의가 일자 청와대에서 손절했다. 토사구팽은 2500년전 중국 춘주전국시대 고사에 등장한 이래 동서고금 정치사의 곡절마다 반복돼온 정치판의 상식이다. 세상이 변해도 권력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권력은 나눠가질 수 없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1.17 00:11

  • [오병상의 라이프톡] 방통위원장은 왜 탄핵당하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9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자신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 관련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231109   민주당이 9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하기로 했다.  탄핵은 간단치 않다. 최종심판권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 헌재는 7월 용산참사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을 기각했다. 이동관 탄핵까지 기각될 경우 민주당은 '탄핵 남발'이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탄핵을 밀어붙이는 것은 그만큼 방통위원장의 역할이 정치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 둔 현시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방통위원장은 정쟁의 최전선인 각종 미디어를 쥐락펴락하는 자리다. 현시점 핫이슈는 양대 공영방송 KBS와 MBC 사장 교체. 방통위원회는 KBS 사장을 뽑는 이사회와 MBC 사장을 뽑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구성을 결정한다.  방통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남영진 KBS이사장을 해임하고, 새 사장으로 박민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추천해 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쳤다. 위원회는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해임했으나 가처분소송에서 졌다. 권태선의 버티기로 총선전 MBC사장 교체는 어려워졌지만, 방통위는 소송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동관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되면 헌재결정이 나오기까지 직무정지 된다. 내년 4월 총선까지 방통위가 사실상 마비된다. 민주당 입장에선 설령 헌재에서 기각되더라도 당장 남는 장사라 판단한 셈이다.  방통위가 행정기관이면서도 독립성을 중시하는 합의제 형식의 위원회로 만들어진 것은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기위해서다. 1988년 개신교 거물 강원룡 목사를 방송위원장(방송통신위 전신) 으로 모신 것도 그런 취지의 파격이었다. 그러나 독립성과 합의정신은 그 이후 뒷걸음질만 쳐왔다. 정치 탓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1.10 00:27

  • [오병상의 라이프톡] 빈대의 돌연변인 '수퍼버그' 되다

      2차 대전 이후 전세계에 파견된 미군들이 빈대와 이를 박멸하기위해 DDT를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만 해도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이 안 알려져 사람 몸에 직접 뿌렸다. 자료사진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들려준 독특한 일화는 '빈대 이야기'다.  공사장 막노동하던 젊은 시절 빈대 소굴인 숙소 대신 구내식당 테이블 위에서 잠을 청했다. 한밤중 가려워 보니 빈대가 천장으로 기어올라가 자신의 몸을 겨냥해 떨어졌다. 이를 보고 '빈대도 살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라는 생각에 더욱 분투노력한 결과 성공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하지만 정주영은 '빈대 이야기'에 진심이었다.  '빈대만도 못한 놈'은 그가 구사하는 극강 모멸감의 표현이었다.  빈대가 40년만에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을 점령한 빈대 뉴스가 황당했는데 어느새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빈대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살기에 인간과 숙명적 생존투쟁을 벌여왔다. 2차 대전 이후 인간은 '기적의 살충제' DDT를 개발해 빈대를 거의 멸종시켰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화학물질은 환경파괴범이었다. 인간에게도 치명적이었다. 1970년대에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금지됐다. 이후 수십년간 빈대는 살충제를 견뎌내는 돌연변이를 했다. 외골격 (껍질)을 두껍게 만들어 독성물질의 침투를 최소화하고, 체내로 들어온 독성의 확산을 차단하고, 나아가 해독하는 효소까지 장착했다. 그 사이 인간은 빈대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빈대의 천적 바퀴벌레를 박멸해주고, 지구온난화로 빈대가 좋아하는 기온을 만들었고, 해외관광에 열광하면서 전세계로 빈대를 실어날랐다.  빈대가 DNA를 바꾸는 환골탈태의 분투노력으로 인간과의 생존투쟁에서 승리한 꼴이다. 정주영이 저승에서 '빈대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꾸짖는 듯하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1.03 00:29

  • [오병상의 라이프톡] 아야톨라의 나라· 이란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 시아파 종교지도자가 다스리는 신정국가다. 지난해 9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친정부 성향의 시위대가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오른쪽 위)와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아래쪽 좌우)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이 연일 이란에 경고하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이 24일 유엔 회의석상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최후통첩성 경고를 날렸다.   미국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장세력 모두의 배후라고 판단한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물론 요르단의 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 반군까지 모두 이란의 군사적 지원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동시에 이라크·시리아 등에 주둔한 미군기지도 함께 공격하고 있다.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 시아파 종주국이다.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무장세력을 묶어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라 부른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규정한 ‘악의 축’이 아니라, 정반대로 미국·이스라엘을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벌이는 정의세력의 중심이란 뜻이다. 이란은 이들 무장세력을 전쟁대리인(Proxy)으로 내세워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해왔다. 따라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확전여부는 이란의 의지에 좌우될 수 있다.   이란은 종교지도자 아야톨라가 다스리는 신정국가다. 1979년 팔래비 왕조를 무너트린 혁명지도자가 아야톨라 호메이니며, 그의 후계자인 현재 최고지도자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4)다. 아야톨라는 무슬림이 따라야하는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가지고 신의 뜻에 따라 현세를 지배하는 절대권력자다.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25일 “미국은 이스라엘과 공범”이라고 비난했다. 아무래도 미국은 두 곳(우크라이나·이스라엘)에서 동시전쟁을 치러야할 듯하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0.27 00:25

  • [오병상의 라이프톡] 전쟁판도 흔드는 허위조작정보

      지난 5월 14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로켓탄(오른쪽)을 쏘자 이스라엘이 아이언돔(왼쪽)을 발사해 공중에서 요격하고 있다.연합뉴스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가 진짜 전쟁터를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7일 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이 폭격당하자 하마스는 즉각 '이스라엘 폭격으로 500명이 숨졌다'며 현장 영상을 SNS로 공개했다. 이슬람권이 발칵 뒤집어졌다. 18일 전쟁협상을 중재하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요르단 방문은 퇴짜 맞았다.  그런데 하마스의 주장이 허위조작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공개한 영상과 녹취 등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군사조직의 오폭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의 폭격이라고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하마스의 주장은 정확히 허위조작정보에 해당된다. 허위조작정보는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가짜 정보를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하마스는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을 이스라엘에 떠넘기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이슬람권 전체를 자극함으로써 전쟁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중재와 협상의 기회를 없애버렸다.  IT기술이 발전하면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은 그 파괴력 때문이다. 악성일수록 더 빨리 퍼지며, 일단 허위조작정보를 믿는 사람은 거짓으로 드러나도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극한상황일수록 파괴력은 더 커진다. 이번 병원 폭격이 전형적이다. 민간인 납치와 살상으로 이미 극한을 치닫고 있는 전쟁상황에서 가장 인도주의적 공간인 병원에 떨어진 불덩이는 가공할 충격이다.  허위조작정보로 진실조차 진영으로 나뉜 상황에서, 그 책임공방은 전쟁을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갈 것이다. 통제불가능한 인터넷 공간은 치명적일 수 있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0.20 00:25

  • [오병상의 라이프톡] 예루살렘 지옥도

    솔로몬 왕이 세운 유대교 성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이슬람 황금사원이 서 있다. 황금 돔 안에는 4천년전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했던 장소로 알려진 큰 바위가 있다. 중앙포토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수천년 역사와 문명, 신화와 전설이 이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곳은 없다. 3천년전 솔로몬 왕이 만든 성전의 흔적이 눈 앞에 펼쳐진다. 2천년전 예수의 행적은 곳곳에서 손에 잡히며, 1천400년전 이슬람 황금사원(사진)은 지금도 수많은 순례객으로 붐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역사와 신화가 박제화된 관광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도 모두의 삶 속에 퍽떡펄떡 살아 있다. 수천년 역사와 신화는 모두 그들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따르는 자들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생명력을 더해왔다.  이들의 종교는 같은 뿌리의 유일신 사상이다. 4천년 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눕혔던 바위를 최고의 성지로 여긴다. 솔로몬 왕은 그 바위 위에 유대교 성전을 지었다. 무슬림 칼리프는 같은 자리에 황금사원을 세웠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사원의 서쪽 벽에 기대어 사라진 성전을 그리며 통곡한다.  종교가 정치와 얽히면 각자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인다. 구약성서 속 다윗(이스라엘)과 골리앗(팔레스타인) 이후 3천년간 전쟁은 이어져 왔다. 로마제국에 의해 추방된 이후 2천년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도 종교의 힘이다. 그 2천년간 예루살렘을 지켜온 팔레스타인 무슬림은 이스라엘 건국 당일 선전포고를 했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신의 집(예루살렘)’이 또 지옥이 됐다. 아무도 물러서거나 떠나려 하지 않는다. 신이 내린 땅이기 때문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0.13 00:38

  • [오병상의 라이프톡] 성큼 다가온 '트럼프 대통령' 시즌2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공화당 정치집회에서 2024년 대선 캠페인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마'했는데 진짜로 미국 하원의장이 3일 해임됐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출신 케빈 매카시 의장이 공화당 강경파 8명의 반란표에 저격당했다.  미국 정치가 강경 극한대립으로 치달은 결과다. 매카시 의장도 원래 강경파다. 그런데 의장이 되는 과정에서 '더 강경파' 20명이 반대하는 바람에 15번이나 투표를 거쳐야 했다. 더 강경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의장 해임안 제출권'이라는 당근을 주었다. 그 바람에 이번에 해임결의안이 제출됐고, 더 강경파 중 '초강경파' 8명이 해임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이 전원 해임찬성표를 던진 것도 그간 쌓인 여야 강경대립의 산물이다. 매카시는 민주당과 행정부를 배려한 예산처리과정에서 공화당 강경파의 공격을 받게됐다. 민주당은 매카시를 철저히 외면했다. 미국 정계의 강경대립으로  '트럼프 대통령 시즌2'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앞으로 의회에서 공화당 강경파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에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사실 트럼프는 이미 공화당 대선후보나 마찬가지다. 내년 11월 대선 공화당 후보 가운데 트럼프는 50%대 지지율로 압도적 1위다. 2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10%대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재선은 이미 유력하다. 재출마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보다 앞서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조사결과 트럼프 지지율 51%, 바이든 42%. 워싱턴포스트는 칼럼에서 "트럼프 재선을 막기위해 바이든은 재선 출마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내 바이든 대안도 마땅치 않다.  '설마'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 시즌2를 대비해야 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10.06 00:24

  • [오병상의 라이프톡] 분노는 나의 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촉구 집회 참가자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다. 뉴스1 21일은 정치적 분노가 절정에 이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영장에 대한 국회 찬반투표를 두고 여의도 의사당 주변을 에워싼 인파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화가 났을 것이다. 분노는 인간의 감정 가운데 가장 격렬한 에너지다. 가장 본능적이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분노는 위기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비롯된다. 진화과정 중 파충류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생존본능이다.  흔히 '파충류 뇌'라 불리는 편도체가 관장한다. 본능의 영역이기에 두려움과 공포를 피할 수는 없다. 공포상황을 벗어나기위한 본능적 선택은 '도망(Flight)' 아니면 '공격(Fight)'이다. 분노는 공격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분노의 직접적 발산은 인간을 극도로 흥분시킨다. 편도체는 물리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기위해 심박수를 높이고 근육을 긴장시킨다. 분노 감정은 과거의 부정적 기억을 총동원해 스스로 전투력을 높인다. 분노는 전염되기에 주변에서 흥분하면 더 흥분한다. 분노는 학습되기에 사소한 일에도 흥분이 잦아진다.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이성으로 통제가능하다. 분노는 강력한 감정 에너지이기에 이성적으로 활용되면 훌륭한 성취동기가 된다. 그러자면 시간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분노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분노한 옆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현대사회에서 물리력으로 해소할 수 있는 분노 상황은 많지 않다. 정치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만들어진 분노 해소법이 투표다. 불만스럽지만 그게 최선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9.22 00:26

  • [오병상의 라이프톡] 역사는 돌고돈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내 로켓조립 시험동을 시찰하면서 현장 브리핑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말고,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들(중국) 돌아온다, 조선사람 조심해라.' 해방직후 만들어진 도참(예언)성 유행어로 추정된다.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얘기인데 지금도 생생한 것은, 70여년전 도참이 현실로 확인된다는 신통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과 푸틴 정상회담은 오래된 도참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키 플레이어(Key Player)' 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다시 러시아로 국명은 바뀌었고, 국제적 위상은 부침을 거듭했지만, 러시아는 여전한 4대 강국이다.  러시아는 조선말인 1896년 고종이 정동 러시아공사관으로 들어간 '아관파천'  당시 최강의 존재감을 보였다. 그러다 1904년 러일전쟁 패배로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1945년 소련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해 한반도 북쪽을 접수하고 한국전쟁을 사주했다. 남한 입장에서 철천지 원수였던 소련은 1990년 수교로 갑자기 절친이 되었다. 이듬해 러시아로 이름을 바꾸고 더 친근해졌다. 볼쇼이 공연마다 관객이 미어터졌다. 러시아는 탱크와 유도탄까지 한국에 넘기는 군사기술협력(불곰사업)을 자원했다. 미국도 알려주지 않는 우주로켓 핵심 엔진기술을 넘겨준 곳도 러시아다. 덕분에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남한은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러시아는 북한 손을 잡았다. 4대 강국은 그대로인데, 역사의 수레바퀴가 한바퀴 돌아 다시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조선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9.15 00:22

  • [오병상의 라이프톡] '단식'이라는 이름의 절규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카톨릭 지역에 남아 있는 보비 샌즈 벽화. 연합뉴스   평화협정 이전인 1995년 북아일랜드에서 겨울을 난 적이 있다. 영국이 지배하는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는 도시가 철조망으로 양분돼 있었다.  한쪽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즉 아일랜드 공화국으로의 통합을 주장하는 카톨릭 지역. 다른 쪽은 아일랜드 통합을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 지역. 아일랜드공화국군을 자처하는 IRA는 무장투쟁(영국 입장에선 테러) 중이었으며, 영국 왕실에 충성하는 프로테스탄트 과격파들도 보복살인을 서슴치 않던 시절이다. 이들은 종교가 달랐고, 조국이 달랐고, (노년층에선) 언어가 달랐고, 계층(빈부차)이 달라 섞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지역갈등도 심각하다’고 말하자 아일랜드 친구가 3가지 질문을 해왔다.  "(갈등 지역간) 종교가 다르냐?" "민족이 다르냐?" "언어가 다르냐?"  대답은 전부 "No." 그러자 아일랜드 친구가 되물었다. "다른 게 없는데 왜 싸우냐?" 긴 설명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벨파스트 카톨릭 지역의 상징은 주요 길목마다 마주치는 거대한 벽화였다. 1981년 옥중 단식투쟁으로 숨진 IRA 지도자 보비 샌즈 초상이다. 순교자 보비는 IRA 무장투쟁의 동력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을 보면서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이 대표는 단식 일주일만인 6일 인터뷰에서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끌어내려야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달라는 유세다.  단식은 극한의 감정적 투쟁이다. 이 대표 입장에선 절규다. 그러나 보비와 너무 다르다. (영화 'Hunger' 참조)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9.08 00:15

  • [오병상의 라이프톡]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러시아에 정착한 말년의 홍범도 장군. KBS제공 연합뉴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E. H. 카) 역사는 과거에 묻혀있지 않고, 현재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해석된다. 과거를 발굴하는 것은 역사학이지만, 그 결과를 현재에 활용하는 것은 정치인이다. 역사는 정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이데올로기가 된다.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 논란이 바로 그렇다. 그의 삶은 현대인으로서 상상불가능한 곡절의 연속이다. 조선말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을미사변에 함경도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을 일으켰다. 일제 식민탄압을 피해 만주로 무대를 옮겼다. 일제의 만주침략에 밀려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갔다. 공산당에 가입했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홍범도의 투쟁은 세계사의 격동 현장을 관통하기에 복잡하고 까다롭다. 특히 러시아에서의 행적은 모호한 대목이 많아 정치적으로 활용되기 쉽다.  본지(31일자 12면)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국군의 뿌리를 '한미동맹'에서 '항일무장투쟁'으로 바꾸기위해 홍범도라는 역사에 주목했다. 정치적 의도 탓인지 홍범도 띄우기는 성급하고 지나쳤다.  왁자지끌했던 유해봉환 9개월만에 정권이 바뀌었다. 윤석열 정권은 미국·일본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외교안보철학을 펼쳤다.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우파 역사해석이 정치적 힘을 얻었다. 이번엔 홍범도 지우기다. 공산당원 홍범도에 주목한다면 육사 교정에서 흉상을 제거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이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담론을 장악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9.01 00:21

  • [오병상의 라이프톡]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다. 나도 그렇다.

    24일 오후 일본 도쿄 시내에서 '후쿠시마 처리수 방출 개시'라는 제목의 속보가 TV화면으로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1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다.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원전 폭발 사고부터 이후 수습과정까지 문제가 많았다. 일본 입장에서 오염수 방류는 가장 손쉬운 해법이지만 해양오염으로 주변국에 폐를 끼치는 행위다. 그런데, 이런 모든 비판과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과학적으로 오염수가 우리 건강을 해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결과나 한국 해양과학기술원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그렇다.  그럼에도 여론이 분분한 건 다분히 정치적이다. 국제적으로 서방국가들은 우호적이다. 환경문제에 까다로운 유럽연합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제한을 풀었다. 주일 미국 대사는 후쿠시마에 생선 먹으러 가겠단다. 반면 중국은 일본을 맹비난하며 수산물 수입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정부여당은 우호적이다. IAEA 조사결과 '안전'을 강조하는 우회적 방식으로 일본정부를 편들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오염수 투기 공범'이라고 공격하며 탄핵까지 들먹이고 있다.  오염수 방류를 보는 시각은 대개 정치적 성향과 맞아떨어진다. 오염수 방류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찬반으로 쏠린다. 인간본성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기에 정치적 세몰이에 휩쓸리기 쉽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스스로 '이성적'이라 자부하며,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비이성적'이라며 배척한다. 착각이다. 이성적인 인간이 되려면 먼저 스스로 비이성적 존재임을 인정해야한다. 나는 비이성적이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8.25 00:38

  • [오병상의 라이프톡] 지상천국 하와이, 왜 화염지옥 됐나

      지난 8월 9일 마우이 섬 화재진압 지원에 나선 미군 헬기가 공중에서 물을 뿌리고 있다. 아래쪽으로 보이는 화재현장을 뒤덮고 있는 건초가 이번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외래종 잡초들이다. 마우이 서쪽 일대는 태평양 열대우림이 아니라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같다. 연합뉴스 하와이는 지상천국인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8일 마우이 섬에서 산불이 일어나 1천여명이 실종됐다. 완전히 잿더미로 변한 마을은 '폼페이 최후의 날'같다.  하와이 초유의 참변은 왜 일어났을까. 발화의 직접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불이 이런 규모의 참사로 커진 배경에 대해선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크게 4가지. 첫째는 강수량의 감소. 강수량이 1990년대부터 줄기 시작해 2015년의 경우 우기(겨울)엔 31%, 건기(여름)엔 6% 줄었다. 이번 산불이 일어난 마우이 서쪽 지역은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둘째는 기온상승. 2016년의 경우 100년전보다 0.92도 상승했다. 셋째는 외래종 식물의 확산. 아프리카 원산 풀들이 엄청난 생명력으로 섬의 4분의 1을 뒤덮었다. 특히 과거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이 문을 닫으며 방치된 지역이 잡초 천국이 됐다. 이들 잡초는 우기 동안 웃자랐다가 건기가 되면 바짝 말라 불쏘시개가 된다. 숲으로 불덩이를 옮기고, 타고나면 나무보다 먼저 생태계를 장악해 열대우림을 사바나로 바꾼다. 넷째는 잦아진 허리케인의 강풍. 마침 하와이 남쪽을 지나던 허리케인이 최대시속 130Km 강풍으로 불길을 퍼트렸다.   이상 네가지는 모두 기후위기 증상들이다. 날은 뜨겁고, 비는 안오고, 외래종 식물이 퍼지고, 폭풍이 잦아진다. 하와이에서도 이런 환경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점이 이번에 완전히 타버린 서쪽 해변 라하이나 지역이다. 라하이나는 ‘잔인한 태양’이란 뜻이다. 19세기까지 번창했던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다. 태양은 죄가 없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8.18 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