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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조금씩 커지는 한국 핵무장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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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어쩌면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 등 미국 내 손꼽히는 외교안보 전략통을 최근 인터뷰하면서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다.

이들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며 미 본토 공격 능력을 갖췄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에만 의존하는 데 대한 한국 내 우려와 의문을 이해한다는 전제도 같다. 볼턴 전 보좌관은 “확장억제 능력이 가상이 아니라 바로 한국에 있다는 확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고, 롤리스 전 부차관은 ‘나토식 핵 공유’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지난해 3월 28일자 북한 노동신문에서 공개된 전술 핵탄두 ‘화산-31’형. [노동신문=뉴스1]

지난해 3월 28일자 북한 노동신문에서 공개된 전술 핵탄두 ‘화산-31’형. [노동신문=뉴스1]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유력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거론되는 콜비 전 부차관보의 경고는 더욱 극적이다. 미국이 대(對)중국 군사적 우위를 잃은 상황에서 “뒤처진 핵 균형을 위해 핵무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을 골자로 한 ‘워싱턴선언’의 한계를 지적하며 미국이 자국의 도시를 북한의 핵공격에 희생하면서까지 한국 안보를 지켜줄 거라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한 대목은 오히려 솔직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한다”(2019년 VOA·미국의소리 인터뷰)고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간 북한의 거듭된 폭주에 지금은 “미국의 재래식 전력 지원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직접 한반도를 방어해야 한다”며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한다.

미국 정부의 공식 기조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에 맞춰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을 재확인했다. 한국 핵무장시 동아시아 핵확산의 시발점이 될 거란 우려도 미 조야(朝野)에 여전하다. 다만 금기시해 오던 한국 핵무장론이 ‘중국 견제’라는 대전제 속에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은 분명 심상치 않아 보인다.

비핵화의 길이 난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미 군사동맹을 고도화하고 자주국방 역량 또한 획기적으로 강화해 확장억제 역량에 대한 의문을 불식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남북 물밑대화에도 계속 힘써 우발적 충돌을 미연에 막아야 한다. 북핵 문제는 손이 묶인 상황에서 손을 써야 하는 난제 중 난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