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추적 60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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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호 30면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잘못 쓴 게 아닌가 다시 봤습니다. 맞습니다. ‘추적 60병.’ 북한산으로 향하면서 만난 간판입니다. 이 주점은 일단 ‘제목’으로 먹고 들어갑니다. 그러니 지상파 방송 ‘K본부’의 시사프로그램 제목을 패러디한 사장님의 의도는 성공했습니다. 어디 ‘추적 60병’뿐입니까. ‘가구만사성(가구점)’ ‘순대렐라(순댓집)’ ‘버르장머리(미용실)’도 마찬가지로 먹고살자는 사장님들의 절실함이 묻어납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긴 불황이 만든 재기발랄의 역설”로 설명합니다. 어려움 속에도 어떻게든 손님을 잡으려는 고심의 흔적이라는 것이죠. 그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길기만 합니다.

긴 불황이 만든 고심 어린 간판들
자영업자, 고금리·고물가 또 위기

소규모 유통업을 하는 정모(57)씨는 “쿠팡에다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쌀에 못 견딜 판인데 은행도, 저축은행도 대출 문턱을 높이니 막막하다”고 합니다. 지난 2월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61%. 2년 전(0.2%)과 비교하면 3배 넘게 폭등했습니다. 꽉 막힌 은행 대출을 피해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6.55%로 2015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3% 깜짝 성장했어도 체감 경기는 부진합니다. 물가상승률은 둔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1년에 3% 이상 오르고 있는 수준입니다. 지난 한 달 새 배춧값이 36%나 뛰었고, 사과는 지난해 대비 136% 올랐습니다. 게다가 서비스업의 물가 상승 압력은 거셉니다.

그래서일까요. 북한산 아래 고깃집 입간판에는 ‘삼겹살 180g 1만원’ 자리에 ‘1만2000원’이 덧써져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가격이면 ‘서울에서 둘째로 싼 집’이라고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만, 왠지 아쉽습니다. 고깃집 사장님은 “버티기 힘들다. 물가가 너무 올라 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소주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고 싶지만…”이라며 슬쩍 제 눈치를 봤습니다. 술값 인상은 음식·주점의 마지노선(최후 방어선)이기 때문이죠. 손님이 떨어져 나가 소비 부진의 악순환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한 통을 샀습니다. 사장님은 얼마 전 다른 편의점 하나를 정리했답니다. 두 곳에서 나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많다면서요. 그가 말한 비용은 인건비입니다. ‘편의점 점주보다 알바(아르바이트생)가 더 번다’는 말에는 이런 상황도 포함되겠지요. 인건비는 임대료와 함께 자영업자들의 고정비용 양대 축입니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 최근 5년간(2020~24년) 평균 인상률은 약 3.4%입니다. 1.4%인 140원만 인상돼도 1만원을 넘게 됩니다. 자영업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그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청년을 내년 이맘때도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인건비 줄인다며 아예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될까요.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19.6%(무급 가족 종사자 제외)가 자영업자인 대한민국이 펼쳐집니다. 한때 37%까지 치솟았던 자영업자 비율은 차츰 떨어져 지난해 처음으로 20% 아래가 됐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대보다 높지만, 산업 구조 변화가 아닌 경기 부진과 고금리·고물가가 이유라면 문제입니다. 정부는 최근 대형마트·편의점에 물가 안정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반면 한국갤럽은 26일 우리 국민의 경기 전망 비관론이 한 달 새 7%포인트 올라 55%가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안갯속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다시 ‘추적 60병’이 보입니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당 수첩(M본부)’ ‘그것이 마시고 싶다(S본부)’라는 간판도 어디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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