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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캠프 보건총괄 "정부 2000명 고집 말고, 의사 사직서 거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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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윤 캠프 보건위원장 박은철의 의료사태 해법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혼란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 이탈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의 집단 사직이 줄을 잇는다. 의대 교수는 피로 누적을 이유로 외래 진료까지 축소하고 있다. 수술이 무기한 연기된 환자들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나중에라도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라 의사 눈치 보느라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의료계의 대화 참여를 촉구하고 예산 편성까지 협의하겠다고 나섰지만, 의사들은 요지부동이다.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증원 철회”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은 오히려 의대 정원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2000명 고수하면 대화 불가능, 대화 의제에 포함해야
급격히 늘리면 줄이기 힘들고 기초의학교육 부실해져
‘1000명 10년 증원’ 바람직, 의과학과 400명 검토 필요
의대 교수는 마지막 보루, 의사 본분 벗어나지 말아야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2022년 대선 캠프 정책총괄본부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 위원장을 지낸 박은철(62)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에게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방안을 들었다. 박 교수는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복지분과 자문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지역필수의료혁신TF 민간위원을 맡고 있다. 박 교수는 의료계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동훈 위원장 역할 더 필요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지난 2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의료 혼란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지난 2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의료 혼란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사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2000명 증원 방침’을 수정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의료계도 환자를 떠나 있으면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진료에 복귀해서 대화를 개시해야 한다.”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2000명이라는 숫자를 고정한 상태에서 대화하자고 하니 잘 풀리지 않는다. 정원 문제를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2000명 선 시행, 후 조정’ 비현실적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일단 2000명을 시행하고 내년에 재조정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충북대 의대의 경우 49명 정원을 200명으로 늘렸다가 다시 줄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럴 바에 차라리 2000명을 계속 늘리는 게 낫다.”
의사를 늘려야 하지 않나.
“서울·수도권에서 일상적인 진료를 받을 때는 부족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필수의료 의사, 지역 의료 의사는 분명히 부족하다. 이건 현재 시점의 문제이다. 의대 증원과 관계없이 당장 풀지 않으면 안 된다.”

박 교수는 왜 ‘2000명 증원’을 풀자고 주장할까. 박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 등의 3개 보고서와 별도로 인구·의료이용·진료량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향후 의사 인력을 추계했다. 3개 보고서처럼 2035년 의사가 1만명 부족하다고 나왔다.

1만명 부족해서 1만명 늘리자는 게 잘못인가.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그다음 해가 더 심해진다. 의사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지만 2035년 이후를 잘 봐야 한다. 조금씩 의사 부족(의료 수요) 현상이 줄어들고, 2045년에 의사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 이후 의사가 남기 시작해 2070년 10만명 넘친다. 정부 계획대로 가면 수요·공급 일치 시점이 2040년께로 당겨진다.”
수요가 급격히 느니 의사도 급격히 늘려야 하지 않나.
“의료 수요가 가파르게 느는 건 맞다. 다만 2010~2020년 노인 인구 증가율이 그전보다 떨어지는 추세다. 2000명씩 가파르게 늘리면 나중에 줄일 때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출산율이 0.6명대로 급락하지 않았느냐. 이런 게 의료 수요에 다 영향을 미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그는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가 나올 때마다 그 전 추계보다 평균수명은 조금 늘고, 출산율은 훨씬 낮아진다”며 “이런 현상 탓에 예측보다 의료 수요가 더 줄어 의사가 더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또 “대폭 증원이 교육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의대생이 본과에 들어가는 2027년까지 여건을 맞추겠다는데.
“시설과 장비는 어떡하든 맞추고 임상 진료 의사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초의학 담당 교수는 당장 구하기 어렵다. 기초의학은 20년 동안 곪을 대로 곪았다.”
이공계 박사를 활용할 수 없나.
“한계가 있다. 그들이 전공한 심장을 가르칠 수는 있으나 이와 관련된 폐까지 짚어주기는 힘들다.”

서울 0명, 나머지 50% 증원이 적정

대안이 있나.
“정부가 40개 의과대학에 배정한 증원 규모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서울은 0명)에서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1안은 현 정원의 두 배까지만 늘린다. 그러면 1494명 증가한다. 2안은 60%까지만 늘리는 안이며 1093명 증가한다. 3안은 50%까지 늘리며 956명 늘어난다.”

박 교수는 “1안도 교육 여건이나 향후 감축 과정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쉽지 않다. 3안, 2안 순으로 적합하다”며 “1000명을 10년 늘리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다 2026학년도에 50명 정원의 의과학과(의사과학자 양성)를 4개 대학에 신설해 200명을 뽑고, 이듬해 4개 대학을 추가해 400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경희대·부산대·원광대·동국대 등 의대·한의대를 둔 5개 대학의 한의대 정원 350명을 의대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2000명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특히 신설 의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지금 40개 의대도 통합해야 할 텐데 더 늘려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정원 문제까지 포함해 대화해야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필수 패키지 대책 95점, 지역의료 80점

필수의료 패키지를 어떻게 보나
“잘 만든 대책이다. 필수의료 대책은 95점, 지역의료 대책은 80점이다. 교통사고특례법처럼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법 제정을 제시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들을 빠짐없이 담았다. 2000명 증원 빼고는 크게 문제 삼을 게 없다. 그런데 2000명 증원을 좀 더 일찍 공개했으면 시뮬레이션을 해서 따져볼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오는 바람에 토론할 기회가 없었다. 적정 의사가 어느 정도인지 토론회 한 번 한 적이 없다.”
보완할 점은 뭔가.
“수가 인상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 또 응급·야간은 무조건 올려야 한다. 진료 과목이 아니라 세부 과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뇌 수술 같은 신경외과 분야를 지원하고 척추 같은 데는 뺄 수 있다. 뇌·심장·암 등의 고난이도 행위는 돈을 더 주는 게 맞다. 골든 타임이 있는 분야는 어떡하든 수가를 크게 올려야 한다.”

박 교수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에도 일침을 가했다. 박 교수는 “의료계가 2020년 의대 정원 파업에서 완벽한 KO승을 거둔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도 밀어붙이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정부를 굴복시키고 백기 투항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2020년 파업 때와 이번이 다른가.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 스타일이 다르다. 이번 사태의 환경도 2020년 파업 때와 다르다. 당시 정부가 공공 의대를 만들되 시민단체가 추천한 학생을 뽑게 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전사(의사)를 힘들게 한다는 동정적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없다. 다만 이번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2000명까지 높게 잡지 않았으면 의료계의 큰 반발 없이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아쉽다.”

아무리 억울해도 환자 외면 안돼

의대 교수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본분을 벗어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눈앞의 환자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대화가 시작되려는데 물리적 행동을 하는 건 곤란하다. 협상 도중에 망치를 들어서야 되겠나. 사직서를 낸 게 잘못이다. 이를 취소하고 협상하는 동안 보류해야 한다.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의 최후의 보루이다. 쓸 수 있는 무기가 사표밖에 없는데 아껴야 한다.”
의료계가 흩어져 있다.
“의사협회·병원협회·교수·전공의·의대생 등 5개 직역 대표단을 구성해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유사하게 10인 소위원회를 꾸려 타협을 끌어냈다.”
환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의료 파행이 더 길어지면 의사 집단이 국민 신뢰를 크게 잃게 될 것이고 이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태가 끝나면 전공의가 돌아올까
“전공의는 50%, 의대생은 80% 돌아올 것으로 본다. 이참에 대형병원도 전공의 의존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입원환자 전담 의사를 비롯해 전문의와 진료 지원 인력(PA)을 늘려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정부는 조속히 법률과 수가로 뒷받침해야 한다.”

◆박은철(62)=연세대 의대 출신의 예방의학 전문의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연구실장, 한국보건행정학회장,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등을 거쳤다. 현재 기재부 서비스산업발전TF 위원,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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