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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영의 직격인터뷰

88세 신구 "죽은 뒤 시신 기증해 의대생들 공부에 도움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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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흥행 돌풍 ‘고도를 기다리며’ 주인공 88세 배우 신구

지난 11일 서울 잠실에서 만난 배우 신구.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1일 서울 잠실에서 만난 배우 신구.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88세 노배우는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63년 차 배우 신구. 그는 지난해 12월 개막해 연일 만원사례 역사를 쓰고 있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의 주인공이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고도’는 울산·춘천·세종·강릉·대구·고양·화성·대전 등을 다니며 지금까지 총 69회 공연 전 회차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오는 26일엔 국립극장으로 돌아와 서울 앵콜 공연에 들어간다. 앵콜 공연 이후에도 부산·부천·이천 등 기다리는 무대가 줄을 섰다. 다음달 7일 시상식을 하는 제60회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내 연극 인생에서 이렇게 관객들이 호응해 준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배우 신구를 지난 11일 그의 서울 잠실 집 근처 음식점에서 만났다.

총 69회 매진…서울선 앵콜 공연
“63년 연기 인생 이런 호응 처음”

급성 심부전에 심장박동기 삽입
“탈진할 때까지 온 힘 쏟을 각오”

자랑도, ‘라떼’도, 잔소리도 질색
“사후 시신 기증해 도움 되고파”

이지영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우리 연극사에 유례없는 흥행 바람이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너무 고맙다. 사실 난 요즘 이 ‘고도’ 때문에 산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도’를 계속 하고 싶다.”

부조리극의 대명사 ‘고도’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이다. 고도(Godot)라는 미지의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숙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역을 그와 박근형(84) 배우가 나눠 맡았다.

관객들이 왜 이렇게 ‘고도’에 열광할까.
“다 내 얘기고 우리들 얘기여서다. 우리 일상이 늘 그렇지 않냐. 각자 다 바라고 기다리는 게 있고, 자고 나면 뭐가 달라지겠지 기대하며 살고, 안 달라져도 또 달라지겠거니 하면서 살고…. 그러면서 나이 드는 게 아니겠나.”
매회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번번이 소름이 끼칠 만큼 전율을 느낀다.”
한물 간 것처럼 보였던 연극이란 장르로 이렇게 관객을 열광시킬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음식도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들어내면 장소가 어디라도 맛집이라고 찾아간다.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성을 다해 작품을 만들면 볼 만한 연극이라고 관객들이 인정해주신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이번 ‘고도’ 의상처럼 마음에 드는 연극 의상은 처음이다. 안에 입는 속옷까지 진짜 노숙자 옷처럼 구멍을 내고 찢어놨다.”

그는 ‘처음처럼’이란 말을 좋아한다. ‘고도’ 공연 시작 전 출연진들끼리 외치는 구호도 ‘언제나 처음처럼’이다. 그는  ‘처음’의 의미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설명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을 연기하는 배우 신구. 누군지도 모르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는 역할이다. [사진 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을 연기하는 배우 신구. 누군지도 모르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는 역할이다. [사진 파크컴퍼니]

처음 ‘고도’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망설였다. 건강 문제가 컸다. 지난해 4월 그는 인공 심장박동기를 몸에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다. 급성 심부전증으로 느려진 심장 박동을 정상 리듬으로 조절해 주는 장치다. 시술 전후 그는 체중이 8㎏나 줄어들며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고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걸 놓치면 앞으로 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42㎞를 뛰고 결승선에 들어와 탈진해 쓰러지는 마라토너처럼, 그렇게 온 힘을 다 쏟아내기로 했다.”

교체 배우 없는 원캐스트로 장기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건강은 괜찮나.
“공연을 시작하면서 체중도 늘고 더 건강해졌다.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 매일 1시간반씩 실내 자전거와 레그프레스를 한다. 체력 보강용으로 두 차례 링거도 맞았다.”
그야말로 ‘올인’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나.
“연극은 내게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먹고 사느라 연극에 올인하지 못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니 연극만 해선 먹고살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불러주니까 거기 가서 돈 벌어 우선 살자 했다. 연극을 하고 싶은데 자꾸 시간이 밀렸다. 그래도 틈을 봐서 해마다 한 편씩은 연극을 하려고 했다.”

그는 남산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서울예대 전신) 1기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경기중·고 출신인 그는 서울대 상과대학를 목표로 치른 입시에서 두 차례 낙방한 뒤 군대에 갔다. 제대 후 우연히 신문에서 아카데미 1기생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운명같은 끌림이었다. 그곳에서 동랑 유치진(1905∼74) 선생으로부터 체계적인 배우 훈련을 받았다. 이름 ‘신구’도 동랑이 지어줬다. 그의 본명은 ‘신순기’다. 동랑의 추천으로 1년간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ast West Center)로 유학도 다녀왔다.

그의 연기 인생은 순탄했다.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뒤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1966, 69, 71년 세 차례나 받았고, 1972년 TV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근엄한 아버지상의 대표 얼굴이 됐다.

인터뷰가 자신의 ‘활약상’으로 흐를 기미가 보이자 그는 불편해했다. “60년 해서 이 정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고도’에도 ‘저마다 끊임없이 제 인생 얘기 지껄여댄다’는 대사가 있다”면서 화제를 바꾸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트라우마가 됐다”는 실패담을 끄집어냈다. 2020년 연극 ‘라스트 세션’ 초연 무대에 섰을 때 일이다.

“공연 중에 대사를 잊어버려 서너 페이지를 건너뛴 적이 있다. 전문용어가 생각이 안 나서 막히니까 그 뒤가 전부 막혀버렸다. 겨우 기억해낸 게 서너 페이지 뒷부분이었다. 연극이 엉망이 됐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2인극인 ‘라스트 세션’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 C S 루이스가 신(神)과 양심, 행복과 고통, 성(性)과 억압 등에 대해 논쟁을 펼치는 내용이다. 공연 시간 90분 내내 두 배우의 설전이 마치 학술 대담이라도 하듯 쉬지 않고 이어진다. 배우의 대사 암기 부담이 상당한 작품이다.

관객들도 눈치를 챘을까.
“물론 알았을 거다. 무대는 거짓말을 못 한다. 관객들이 얼마나 불쾌했겠는가. 너무 미안하다. 그 마음의 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날 관객들 박수 소리가 평소와 좀 달랐나.
“기억 안 난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다.”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했나.
“그걸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기가 생겼다. 연습하고 연습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후 새 작품 ‘두 교황’(2022)에 출연하면서는 난생 처음 인이어(in-ear)까지 사용했다. 혹 대사를 잊어버릴 때를 대비해 무대 밖 스태프와의 소통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인이어가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됐다”고 했다. 다시 반복 연습이란 정공법으로 돌아왔다. 자다가도 ‘고도’ 대사를 할 수 있게 된 요즘에도 “공식 연습과 별도로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집에서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후배 배우들과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기로 유명하다. 함께 연극 공연을 했던 이상윤·조달환·박소담·권유리 등과는 생일파티도 함께 하는 사이다. 작품 속에서 그의 아들 역할을 여러 번 했던 조달환은 그를 평소에도 ‘아버지’라고 부른다.

잔소리 안하는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다. 후배 연기자들에게 못마땅하거나 걱정스러운 부분이 보일 법도 한데.
“나이 들었다고 자기 세대만 잘 하고 살았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옛날에도 늘 어른들은 ‘라떼’ 얘기 하면서 ‘세상이 망했어’ 그랬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발전했다. 내가 어렸을 땐 이맘 때가 딱 보릿고개였다. 먹을 게 없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곤 했다. 내가 차를 갖게 될 거라론 상상도 못했다. 우리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자라는 애들에게 굳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필요 없다. 물어오면 알고 있는 것 대답해주기만 하면 된다.”
주례도 안 한다고 들었다.
“주례 하면 다 좋은 말 해야 할텐데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다.”

그는 충고나 제언을 이렇듯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연극 지원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강한 목소리를 냈다.

“좋은 창작 연극이 안 나온다고 그러는데 10억쯤 고료를 주면 호응해 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 세상은 돈도 따라야 한다. 현재 상태론 좋은 작가를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 정책으로 창작 희곡 작가를 육성하는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 한 작품이라도 건질 수 있게. 우리나라가 옛날처럼 못 사는 나라도 아니지 않냐. 우리도 예산이 적지는 않다. 그러니까 누가 정책만 잘 세우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인터뷰 내내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다시 연기하고 싶은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도, 평생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있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못박았다. 다음 작품 계획도 “없다”고 했다.

“내일이 되면 오늘이 역사고, 오늘이 미래의 모멘텀이 되는 것 아니냐. 오늘을 어떻게 지내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지금 하고 있는 작품만큼 중요한 게 없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도 없나.
“그냥 살 때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다. 누가 알아주고 말 것도 없다. 다만 시신 기증은 하려고 마음이 거의 기울었다. 살면서 쌀 한 톨 생산해 본 적 없는데 죽어서 의대생들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신구=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2년 데뷔한 이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파우스트’‘3월의 눈’, 드라마 ‘개국’‘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나의 아저씨’,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천문’ 등 2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2002년 롯데리아 광고의 ‘니들이 게맛을 알아’는 아직도 회자되는 유행어다. 평양냉면을 즐겨 먹고, 커피는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