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 쥐 343마리 부검했다, 세계 1% 학자에 온 ‘신내림’

  • 카드 발행 일시2024.04.24

저는 좋아서 한 거지, 누가 시켰으면 못 했어요. 잠 안 자고 3박 4일 실험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렇게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는데, 그 기회가 부족한 게 안타깝죠.

박은정(56)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의 이력은 들을수록 놀랍습니다. 연구하는 분야는 인체독성학. 쉽게 말해 호흡기로 마신 환경 물질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합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 아니고요. 육아와 병간호로 8년간 경력이 단절돼 마흔 넘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8년 박사 졸업생 중 같은 전공은 0명. 남편은 시아버지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그는 실험만 할 수 있다면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았죠. "아파트에서 전기료가 제일 적게 나오는 집"이었다고 고백한 그는 현재 독성학 분야 세계 상위 1% 연구자가 됐습니다.

육아에 전념하던 그를 다시 연구의 길에 들어서게 한 건 아들의 백혈병 오진. 이후 박 교수는 365일 잠을 줄여 가며 연구에 몰두합니다. 3박 4일 동안 해부한 쥐만 343마리. 4개월간 16편의 논문을 썼을 정도였죠. 12살 어린 책임자 밑에서 연구강사로 일하면서도 '나는 내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박 교수를 만나 물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거절, 힘든 순간을 뚫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요.

💬목차

🔹삶을 송두리째 바꾼 아들의 백혈병 오진
🔹같은 전공 ‘0명’, 아무도 간 적 없는 길 가다
🔹“저는 공장장 출신 연구자예요”
🔹실패박람회 홍보대사 맡기까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정 교수. 사진 폴인, 송승훈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정 교수. 사진 폴인, 송승훈

삶을 송두리째 바꾼 아들의 백혈병 오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어떻게 시작했나요?

34년 전에 아들이 백혈병 오진 판정을 받았어요. 탈장 증세가 있어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는데, 담당 의사가 안 계셨어요. 하는 수없이 대학병원까지 갔죠. 진료했는데 백혈병이 의심된다는 거예요. 하루에 4번씩 피를 뽑았어요. 아이는 탈진하고 난리가 났죠. 그렇게 꼬박 6일 밤을 새웠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아침에 채혈한 피가 몇 시간씩 방치돼 있었거든요.

뭔가 잘못됐던 건가요?

네. 이상해서 다시 뽑은 피로 검사를 요청했는데 정상이 나왔어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백혈검 검사라는,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게 한 거잖아요. 그때 독하게 마음먹었어요. ‘공부해야겠다’. 의약학 관련 지식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석사까지는 어려움 없이 마쳤어요. 그런데 박사 과정을 하기까지 8년의 공백을 겪었어요. 박사 면접일에 엄마가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거든요. 그다음엔 시아버님이 식도암으로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가셨고요. 그렇게 병간호와 육아를 하다 보니 8년이 지나 있었죠.

공백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었나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였으니, 두려울 건 없었어요. 처음에는 파트로 1주일에 2번 강의 듣는 게 전부였죠. 살림하는 데 지장 없는 정도로요.

그런데 미국에서 열린 면역학회가 모든 걸 바꿔놓았어요. 학회장에 섰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게 신내림인가 싶을 정도로요. 그때부터 진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들어와 가족들에게 얘기했죠. “실험하고 싶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