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는 남조선 혁명하시오”...18세 김동식, 인간병기 되다 [간첩전쟁 1화]

  • 카드 발행 일시2024.05.01
<남북 ‘간첩전쟁’ 탐구> 연재를 시작하며

간첩의 세계는 화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비정함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간첩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나 영화는 허구의 옷을 입힌 스파이 오락물, 즉 스파이테인먼트(Spytainment)에 불과하다. (에이미 제가트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알고리즘』)

대한민국에서 간첩을 들먹이면 세대와 이념 지향성에 따라 각자의 선입견을 소환한다. 어떤 이는 주사파와 종북세력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빨갱이 프레임’ ‘낡은 매카시즘’이라며 불순한 정치적 꿍꿍이를 의심한다. 간첩 담론은 그만큼 논쟁적이다.

한국 사회가 겪는 심각한 이념 양극화의 뿌리를 캐다 보면 간첩 문제와 직결돼 있음을 발견한다. 간첩전쟁의 과거와 오늘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이런 반목과 대립을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음침한 골방에 갇힌 간첩 담론을 환한 대화의 광장으로 끌어내듯 말이다. 진짜 간첩, 대공 수사관, 주사파 인사를 만나 축적한 취재 노트를 꺼내 간첩의 실존적 세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미화도 편견도 없이.

〈제1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1화. 간첩, 끝나지 않은 전쟁

🔎 ‘간첩’ 김동식 파일

·출생 : 1962년 황해남도 용연
·대학 :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직업 : 남조선 혁명가, 대남 공작원
·경력 : 대한민국에 두 차례 침투한 남파간첩
·특징 : 10년의 지옥훈련으로 완성된 인간 병기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첩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올 법한 화려한 경력이 신비감을 더했다. 지난 2월 29일 오후 서울의 모처에서 그를 기다렸다. 묘한 긴장감과 흥분이 교차했다.

험난한 그의 삶이 투사된 눈빛과 표정은 거칠고 매서워야 했다. 전사(戰士)의 날카로움을 기대했다. 그러나 반가운 실망이었다. 인상은 친근하고 담백했다. 평양 톤이 살짝 섞인 서울 말투는 과장이나 꾸밈이 없이 솔직했다. 168㎝의 몸매는 여전히 다부졌지만 61년 세월의 무게를 피할 순 없었다.

김동식(61, 이하 존칭 생략). 1995년 국내 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부여 무장간첩 사건’의 장본인이다. 당시 국내에 침투한 그는 암약 중이던 북한 고정간첩과 접선하려다 발각되자 경찰과 총격전 끝에 장딴지에 관통상을 입고 생포됐다. 교전 중 총상을 입은 경찰관 2명이 순직하자 사회적 공분이 김동식을 덮쳤다. 사형수의 갈림길에 섰던 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전향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착했다.

김동식씨가 4월 인터뷰에 앞서 시내 한 건물 앞에서 하늘을 응시하며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동식씨가 4월 인터뷰에 앞서 시내 한 건물 앞에서 하늘을 응시하며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조선 혁명가의 진솔한 고백

취재팀은 김동식과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남조선 혁명가’로, 한국식으로는 ‘남파간첩’으로 완성되는 여정을 그는 생생하게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