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여운형과 김규식의 만남과 헤어짐
」② 해방정국에서의 인연과 야망
」미군정사령관 하지의 고민
해방정국에서의 삶이 누구인들 격동이 아니었을까마는 정치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모두 곧 국회의원이 될 것 같았고, 저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권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 가운데 야망이라는 점에서는 단연 여운형(呂運亨)의 꿈이 가장 컸고, 그런 난세에 꿈을 접었으면서도 잠재의식의 저 밑바닥에서는 “나라고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가냘픈 꿈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장래를 지켜보던 사람이 곧 김규식(金奎植)이었다. 난세는 사람들의 심성을 들뜨게 한다.
1945년 9월 8일에 미군정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가 인천에 상륙해 입성하고 보니 상황이 좀 막막했다. 야전에서 뼈가 굵은 그에게 정무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도 없이 한국 주재 관동군의 항복을 받으라는 지침만 있을 뿐이었다.
한국에 관한 역사·지리·문화적 견문도 없이 가져온 것이라고는 부하들이 도쿄에서 베껴온 무슨 백과사전의 ‘한국편’ 몇 쪽이 모두였다. 다행히 언더우드 가문(Underwoods)과 윔스(C Weems) 등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과 그 자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이승만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만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