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양다리를 못 참았다, 중도파 고집한 여운형 최후

  • 카드 발행 일시2024.05.08

〈제2부〉 여운형과 김규식의 만남과 헤어짐 

 ③ 한국에서 중도파가 설 자리는? 

중도파는 누구? 빨강과 파랑 사이

격동기의 정치적 양상은 ‘질주’다. 그것이 오른쪽으로 치닫든 왼쪽으로 치닫든, 격정의 소음 속에서 민중에게 호소하려면 먼저 크게 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태를 관망하며, 야심을 버리지 않고 처신을 조심하는 무리가 있는데, 해방정국에서 그들을 중도파라 부른다.

온건파(Moderate)라는 용어는 들어봤지만 중도파(Middle-of-the-Road)라는 용어에 생소했던 미군정은 저들이 ‘왔다 갔다 하는 무리(wobbler)’인가 의심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우선 미국인들이 보기에 저들이 ‘뻘갱이(pinko)’인지 ‘퍼랭이(blue)’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낮에 보면 퍼랭이 같고 밤에 보면 뻘갱이 같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했다.

1945년 12월 '신탁통치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우익 시위대의 모습. '매국노 (여운형의) 인민당 박살'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인다. 중앙포토

1945년 12월 '신탁통치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우익 시위대의 모습. '매국노 (여운형의) 인민당 박살'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인다. 중앙포토

정치사상사의 이론에 따르면 중도파는 “이념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氣質)”이라고 분석한다.(Leon P Baradat) 그들이 이념 앞에서 중도를 지키겠다는 확신에서 처신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이 좀 어정쩡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중심을 잡고 소신이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회색분자(gray area)로 보여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십자포화를 맞기에 딱 좋은 무리다. 생사가 그토록 위험하고 기약할 수 없는 처지다. 우익과 좌익은 서로 저들이 자기편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는 내 편으로 만들려고 애쓰다가 결국에는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암살로 관계를 청산한다.

내 고향 충청북도 괴산(槐山)에 느티울[槐江]이라는 강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이쪽 강변에서 저쪽 강변으로 날아가던 꿩이 물에 빠져 죽는 일이 가끔 있었다. 강폭은 넓지 않았지만, 강물 위를 날던 꿩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나머지 마음을 바꿔 되돌아가다가 빠져 죽었다. 꿩이 그냥 날아갔더라면 능히 강을 건널 수 있었을 텐데 우물쭈물하다가 빠져 죽는다. 마을 어른들이 죽은 꿩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도 저러하단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