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훈
필진본사 칼럼니스트 · 중앙대 교수
한국정당학회장
중앙대 사회과학대학장
(재)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이사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미국 민주주의 재단 레이건_파셀 펠로우
미국 존스홉킨스대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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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마지막 아웃소싱? 인요한 혁신위의 딜레마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이제는 식상할 때도 되었건만, 선거철이면 나타나는 기구들이 다시 돌아왔다.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매년 수백억원의 세금 지원을 받는 공적 기관이지만 스스로 뭘 해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우리 정당들이다 보니, 선거철이면 아웃소싱된 혁신위가 무대의 주연이 된다. 종교인, 법조인, 정치인 등이 주로 등판하던 아웃소싱 정치에 이번에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 등장했다. 건장한 체격에 남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귀화 한국인. 게다가 이 땅에서 수대에 걸쳐 봉사를 펼쳐온 집안이라는 배경에 말솜씨까지 더해지니,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요즘 여당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를 만 하다. ■ 「 정당 무기력이 아웃소싱 불러와 당내 기득권 세력 압박에는 성공 근본적 변화 이루기는 쉽지 않아 궁극적 성패는 윤 대통령에 달려 」 #2 당장의 관심은 인요한 위원장의 광폭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이준석 전 대표 끌어안기는 성공할까?), 당 안팎의 관심을 얼마나 끌고 갈지에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은 필자의 몫은 아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좀 더 구조적인 이슈들을 짚어보려 한다. 아웃소싱 현상의 뿌리, 아웃소싱 정치가 안고 있는 지속가능성의 문제, 여당의 궁극의 리더로서의 윤석열 대통령의 과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3 먼저 아웃소싱 정치가 선거철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배경부터 따져보자. 정치학자들 표현을 따르자면 정당들이 인물과 정책을 아웃소싱하는 현상의 뿌리는 정당 카르텔 체제에 있다. 그들만의 아늑한 담합체제에서 안주하다 보니 정당들은 인물도, 생각도 늘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 결국 고인 물의 악취를 가리고 잠시나마 새롭게 단장해 보려는 제스처가 곧 아웃소싱 정치이다. 여러 번 나온 이야기이지만, 지난 30여년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정당사는 두 정당의 오랜 독과점의 역사이다. 철마다 당의 이름을 바꾸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호소하고 천막 당사를 치고는 했지만 변치 않는 본질은 양대 세력의 독과점이다. 세계적인 기업가도, 시민운동가도, 벤처투자가도 양대 세력의 아성을 허물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태섭-양향자 신당, 이준석 신당 등 여러 움직임이 꿈틀거리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첫째 관문은 양대 정당들이 쳐놓은 진입 장벽이다. 정당법 17·18조는 모든 정당이 중앙당 이외에 다섯 개 이상의 시도 당을 유지해야 하며 각 시도 당에는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결국 전국적인 네트워크와 엄청난 돈이 없다면 정당정치에 진입할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기성 정당 담합체제의 본 모습이다. 경쟁 없는 담합 체제는 반드시 곪게 마련이다. 스스로 변할 수 없으니 외부 인물을 모셔와 새 단장을 하고 골치 아픈 이슈들을 떠넘기는 것이 담합체제 정당들이 살아온 방법이다. #4 요즘 상당한 바람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인요한 위원장은 권력의 삼각지대 안에 외롭게 갇혀 있다. 권력 삼각형은 ①국민의힘의 변화를 바라는 지지자들의 기대 ②선거철 쇄신 바람을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당내 기득권 세력 ③그리고 여당의 궁극의 리더, 윤 대통령으로 이뤄져 있다. 이 삼자가 각자의 방향으로 팽팽히 잡아당기는 원심력 삼각형 안에 서 있는 것이 인요한 혁신위의 위태로운 위상이다. 요즘 혁신위의 초점은 삼각형 1변(지지자들의 변화 기대)을 동력으로 삼아 삼각형 2변(당내 기득 세력)을 압박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편하게 경력을 쌓아온 기득권 중진들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비례대표에 청년후보들의 우선 배치 방안 등은 1변과 2변의 힘겨루기의 결과들이다. #5 삼각형 1변, 2변과의 줄다리기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인요한 혁신위와 윤 대통령의 관계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윤 대통령은 스스로가 아웃소싱 정치를 몸소 체험해 본 경험이 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던 검찰총장이 홀연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서고 곧이어 대통령직에 올랐던 길은 바로 아웃소싱 정치의 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고질적인 문제들, 폐쇄적이고 무기력한 현실들을 충분히 경험하였을 터이다. 경험과 기억이 바탕이 된다면, 윤 대통령의 이해와 지원은 인요한 혁신위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당의 체질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 원군이 될 수 있다. 근본적 변화의 예를 들자면, 소란스러운 중진 용퇴론보다는 지역구 의원 연임 제한의 제도화(최대 3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라는 얄궂은 제스처보다는 의원 소환제의 전면 도입 등이다. 혁신위가 삼각형 1변과 3변의 지지를 모두 끌어모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여당에 대해 무언가 실질적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실은 윤 대통령에게도 절실하다. 개인화된 통제→통제의 약화→여당의 반란이라는 과정을 반복해온 대통령-여당 관계가 변화하려면 윤 대통령도, 여당도 아울러 변해야만 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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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대통령의 두 얼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지난주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표정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2차 냉전 시대를 헤쳐 갈 대외전략의 큰 그림을 완성했다는 자부심. 다른 하나는 별반 달라지는 일이 없는 국내 정쟁을 떠올리면서 드는 피곤함, 외면하고 싶은 마음. 모든 대통령은 내심 대통령직의 두 얼굴(외교와 내정)이 매끈하게 분리되기를 바란다. 대외적으로 국가의 이익·위신을 추구하는 외교 전선에서 대통령은 국익의 수호자로서 자유롭게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나아가 국내정치의 분열과 혼란이 국익을 논하는 근엄한 외교무대를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캠프 데이비드의 한적한 숲속에는 가짜 뉴스도, 삼각지의 확성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터.) ■ 「 외교와 내정의 분리는 가능할까 소통이 내정과 외교 선순환 조건 시민 지지가 한미일 협력의 관건 국회·시민사회에 두루 설명해야 」 #2 윤석열 대통령 역시 외교와 내정의 분리를 누구보다도 열망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두 가지 논점을 짚어보려 한다. ①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은 외교와 내정의 분리라는 우아함을 누릴 수 없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대통령의 모든 권력 기반은 국내정치에 있다. 선거를 통해 막대한 권력을 준 것은 국내정치다. ②외교와 내정이 분리될 수 없으니 야당의 협조를 구하라는 상투적 주문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넓고 긴 호흡에서 외교와 내정의 선순환을 모색해야 한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캠프 데이비드 원칙이 신냉전 시대 우리의 생존전략이라는 점에 한 점 의심이 없겠지만, 중대한 외교적 결단은 국내 정치과정이라는 험난한 시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한때 요란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전임자들의 ‘동북아 균형자론’(노무현 정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운명을 돌아보라. 캠프 데이비드 원칙이 윤 대통령의 굳건한 신념의 소산이라면 그 합의 도출에 쏟은 만큼의 에너지와 정열을 국내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데에 쏟아야 한다. 화려한 외교무대와 처절한 국내정치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잇는 것은 대통령 권력의 숙명이다. #3 먼저 외교와 내정이 분리될 수 없다는 교과서적인 얘기를 윤 대통령이 존경하는 정치인 처칠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때는 1945년 2월(4~11일), 장소는 크림 반도 남쪽의 휴양지 얄타. 독일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우세가 굳어지자 승전 연합국인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은 얄타에 모여 전후 질서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쟁을 벌였다. 전후 독일의 처리방안, 동유럽의 국경선 획정 등을 놓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던 처칠 수상은 불현듯 스탈린에게 신세 한탄을 털어놓았다. “나는 다음번 회담에 오지 못할 듯하오.” 나치즘의 괴물에 맞서 영국과 유럽을 구한 전쟁 지휘관인 처칠이 다음번 회담에 못 나온다니? 독재자 스탈린으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충격이었다. 2차 대전 종전의 와중에 실시된 1945년 7월 하원 선거에서 영국 유권자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보수당을 버리고, 복지국가, 의료 국유화, 실업 대책 등을 약속한 노동당에 다수 의석을 안겨주었다. 전쟁은 끝났고 승리에 대한 보상보다는 미래 삶의 질이 더 중요했다. 결국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담 중간에 영국 대표는 처칠에서 노동당의 애틀리 수상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민주정치의 리더들에게 외교와 내정의 분리라는 여유로움은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4 그렇다면 캠프 데이비드의 원칙과 합의가 2차 냉전시대의 대외 전략으로 생존하려면 국내 정치에서 어떻게 소화되어야 하는가? 첫째, 먼 훗날 역사가 캠프 데이비드의 외로운 결단을 평가해주리라고 믿는 방안이 있다. 험악한 우리 정치 현실 속에서 이는 낭만적인 희망에 불과하다. 둘째, 이제라도 야당과 협치를 추진해서 신외교 노선에 대해 초당파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하지만 요즘 민주정치의 한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야당과 직접 대화하기는 타협정치의 지존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필자가 권하고 싶은 방안은, 진부하게 들리겠으나, 폭넓은 대화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장단,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캠프 데이비드 정신과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아울러 레거시 언론과 뉴미디어를 통해서도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독자 276만 명의 중도 유튜브 경제 채널 ‘슈카월드’도 지난 주말 캠프 데이비드 회담 해설을 긴급 편성했었다. 하지만 진행자는 합의 내용을 요약 해설만 할 뿐, 방송 내내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였음을 유의해야 한다. 윤대통령의 적극적인 소통은 단순히 신외교전략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립, 기만, 적개심으로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우리 민주정치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이기도 하다. 민주정치가 숨을 쉬어야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 오래 살아남을 여지도 넓어진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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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윤석열 정부가 가는 길, 신발전국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미리 당겨서 걱정하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자 취미이다. 아직 9개월이나 남은 내년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진작부터 뜨거운 관심거리다. 이에 몇몇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다. 임기 15개월 차인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반응은 이러했다. “정부의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는 대강 알겠다. 동의하는 부분도 많다. 문제는 국정이 향하는 방향을 압축할 개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 「 탈세계화 시대, 국가 역할 커져 전략산업 지원 등 큰 방향 옳아 추진 방식에는 개선 여지 많아 옛날식 통제와 감독 벗어나야 」 #1 필자는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탈세계화 시대의 ‘신(新)발전(neo-developmental) 정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그동안 개방과 통합의 길을 달려왔던 세계는 분리된 두 세계로 급선회하고 있는데, 이 흐름을 재빨리 포착한 것이 윤석열 정부 국정 방향의 핵심이다. 분리된 세계, 탈세계화의 흐름은 우리에게 기회와 도전의 양날이다. 윤 정부는 탈세계화가 진행되는 세계 안의 우리 위상을 4차산업 제조업 대국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적 대응을 주도하는 리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1970·80년대 냉전 시기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국가를 발전국가라 불렀듯이 윤석열 정부는 탈세계화의 환경 속에서 또 한 번의 대도약을 조율하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신발전 정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태생적 반(反)시장주의자를 제외한다면 여기까지는 대체로 동의하리라. 문제는 신발전 전략을 추구하는 방식에 있다. 신발전 정부가 핵심 파트너인 기업과 민간을 대하는 태도에 필자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대기업, 중소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 격의 없는 장면들을 종종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 방식은 엄숙하다 못해 가끔은 권위적으로까지 비친다. 최근 경제부총리가 라면 제조사들을 공개적으로 압박하여 가격 인하를 유도한 것이 한 예다. 달리 말해 정부가 독려하는 신성장 섹터는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등으로 탈바꿈했지만, 발전을 독려하는 방식은 한강의 기적을 주도하였던 발전국가 시대의 모습을 다 털어냈다고 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큰 방향은 타당한데 일을 꾸려가는 방식에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나 할까. #3 윤 정부가 주도하는 탈세계화 신발전 국가의 면모를 핵심 숫자 몇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19.6%, 15%, 5%. 먼저 19.6%가 가리키는 탈세계화 질서. 지난 4월 기준으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19.6%를 기록하면서, 대미 수출과 대중 수출 비중이 20년 만에 재역전되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첫해에 대중 수출이 대미 수출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지 20년 만에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미국 중심으로 항로를 급선회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구조의 변화를 넘어서는 일이다. 1위 수출국의 변화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과 1989년 냉전 붕괴를 기점으로 개막된 중국 개방과 세계화 개방 시대의 종언을 가리킨다. 지난 20년 우리는 중국 경제의 굴기를 타고 G10 국가로 도약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의 물줄기가 대선회하는 시점이다. #4 2022-23년을 거치면서 변곡점의 양상은 분명해졌다. 세계는 자유 세계와 권위주의 세계로 급격히 분리 중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분리와 재편의 주역은 정부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공을 들였던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감축법(IRA), 인프라법 등은 결국 국가가 적극적 산업발전 정책을 들고 수십 년 만에 전면에 재등장하는 현실을 집약해 보여준다. 신발전 국가로서의 윤 정부를 상징하는 두 번째 숫자는 15%다. 야당 반대를 뚫고 지난 3월 통과된 K-반도체 법에서 정부는 대기업, 중견기업의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에 최대 15%의 세액 공제를 부여했다. 8%냐 15%냐의 지루한 논쟁이 15%로 귀결된 것은 윤 정부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5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신발전 정부의 주도자 역할이 전략 산업 선정과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있다. 탈세계화 시대의 난제인 인플레와의 전쟁에서 정부는 발전국가 시대를 연상케 하는 관료적 지도를 감행하기도 한다. 경제부총리는 라면의 주재료인 밀가룻값이 인하되었는데 라면값 인상이 계속된다며 라면 제조사들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제조사들은 결국 라면값을 5% 인하했다. 물론 생활 물가와의 전쟁은 민생과 직결되는 승부처다. 하지만 예전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물가지도 외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6 이제 결론. 탈세계화, 경제안보 시대에 윤 정부의 신발전 전략은 공감할 만하다. 관건은 정부의 작동 방식에 있다. 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 소통이 중심 역할이 될 것인가? 기업들에 대한 통제와 지도가 주력이 될 것인가? 전자가 신발전국가의 길이라면 후자는 관료적 발전국가의 길이다. 윤 대통령은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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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누리호와 G8: 국가의 실력, 위신, 그리고 위험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누리호가 푸른 하늘로 시원하게 솟구치면서 눌려 있던 우리의 마음도 함께 날아올랐다. 세계 7번째의 독자 발사체 국가라는 긍지는 그동안 북한 핵에 주눅 들어있던 우리 가슴을 활짝 펴주는 사건이었다. 누리호의 쾌거를 지켜보며 필자는 ①국가의 실력 ②대외적 위신 ③그 안에 도사린 위험이라는 삼차 방정식을 다시 생각한다. 실력, 위신, 위험의 트릴레마는 얼마 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 회의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미·중 기술경쟁에서 한국 반도체 실력과의 협력이 절실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환한 미소로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군수 물자가 부족한 유럽의 주요국들이 방위산업 강국, 한국의 대통령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우리 실력의 징표이다. 문제는 G7 강국들이 우리에게 손을 벌리기는 하지만 정작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리스크는 같이 떠안으면서 발언권은 약한, 다소 위험한 상태. ■ 「 누리호가 보여준 국가의 실력 늘어난 실력만큼 위신에 목말라 G8 가입에는 위험도 적지 않아 내향적 자아도취의 정치가 문제 」 #2. 높아진 실력과 대외적 위신으로 고무된 분위기에서, 필자는 그 안에 도사린 위험을 생각해 보려 한다. 30년 전의 역사를 잠깐 돌아보자. 민주화를 막 이룬 대한민국은 1993년 글로벌 주요국 반열에 오르고자 열망하였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 목표를 제시한 지 3년 만에 우리는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이뤄진 급격한 시장 개방과 금융감독 체계의 부재라는 실력 부족은 1997년 국가 부도 위기와 IMF 관리 체제라는 혹독한 결과로 이어졌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시원찮은 체력으로 국제적 위신을 성급하게 추구하다가 추락해 본 경험이 있다. #3. 이제 늘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G8 국가라는 궁극의 위신을 열망하고 있지만, 필자는 여전히 우리가 높이 날아오르기에는 위험한 허약 체질이라는 염려를 갖고 있다. 허약함의 핵심은 ①자유 정신의 빈곤과 ②내향적 자아도취이다. 먼저 30년 전 주요국 진입의 트릴레마를 돌아보고 G8 진입 희망국으로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4. 1993년 무언가 원대한 대통령 프로젝트를 갈구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지구촌 주요국가들의 모임인 OECD 가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테슬라, 애플의 주가를 확인하기 바쁜 요즘의 2030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이겠지만, 30년 전 우리는 OECD 가입의 조건으로 비로소 자본시장, 외환시장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5. 김혜수 배우 주연의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보여주듯이, 시장 개방화 몇 년 만에 우리 경제는 단기 대외 부채라는 유혹에 급격히 빠져든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이자는 싸지만 리스크는 큰 단기 외채를 급격히 늘려갔다. 하지만 이를 제어하는 금융감독 체계는 없었다. 영화 속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배우 김혜수)은 홀로 동분서주하지만, 행정부와 여야 정당들이 금융개혁법을 통과시킬 능력은 전혀 없었다. 결과는 500억 달러의 긴급구제 금융을 받아서 겨우 국가 부도를 면하는 것이었다. #6. G8 회원국은 글로벌 (무)질서를 좌우하는 수많은 결정에 참여하는 권력과 위신을 함께 누리게 된다. 우크라이나 지원문제, 전후 복구 프로젝트에서부터 대만 위기 대응, 미·중 기술 전쟁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인 결정의 책임 있는 주연이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배타적이고 치열한 클럽(G8) 안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강대국들은 실리를 따져 우리의 반도체 실력, 배터리 실력, 방산 실력을 인정하고 손을 내밀지만,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존경받는 파트너인가? #7. 자유주의 강대국들은 우리의 허약함 두 가지를 주시하고 있다. 첫째, 희미한 자유의 정신. 입으로는 자유의 가치와 연대를 외치지만 과연 한국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회인가? 코로나 3년, 우리는 대표적으로 자유를 저당 잡히고 보건안보를 추구한 사회였다. 코로나보다 더 엄혹한, 자유를 지키기 위한 큰 전쟁이 벌어진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두 번째 허약함은 내향적이면서 자아도취적인 정치세력의 문제이다. 한편에 대외지향적이고 자유 가치 연대에 공감하는 바른 한국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 내향적 정치세력이 있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저 자신의 좁은 관심사(남북한, 평화, 민족)를 지루하게 늘어놓을 뿐이다. 마치 귀는 어둡고 눈은 흐려진 사람처럼. 늘어난 물리적 실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더 높은 위신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하지만 물리적 실력만으로 최선진국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태도를 가다듬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물리적 실력보다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최선진국을 향한 실력, 위신, 위험의 트릴레마는 이제 시작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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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20년의 베팅, 윤 대통령 방미와 신냉전 동맹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70주년 팡파르를 위한 준비는 완벽했었다, 얼마 전까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였던 우리가 한미동맹 70년을 거치며 반도체·배터리·군수산업의 글로벌 강국으로 올라섰기에 이달 말 워싱턴에 가는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동맹 70주년을 자축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언할 만했다. 수 조원 단위로 미국 곳곳에 투자를 하는 대기업 리더들과 함께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 대통령이 기세를 올리는 것은 당연할 터였다. #2. 하지만 대통령실 주변의 들뜬 분위기와 달리 시민들 반응은 심드렁하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단기 요인. 동맹관계에서도 종종 불거지는 도청 의혹이라는 난기류와 그에 대한 서투른 봉합. 둘째는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한미동맹 심화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프레이밍의 결핍. 단기 요인부터 보자면, 10여년만의 워싱턴 국빈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핵심 참모인 국가안보실장을 교체하였다. 이어서 한국 대통령실 참모들에 대한 미국 측의 도·감청 의혹이 대대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스라엘이나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서둘러 봉합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당황한 기색을 시민들은 알아채고 있다. ■ 「 70주년 맞은 한미동맹의 새 출발 윤 대통령, 자유 동맹에 미래 베팅 역사적 결단에 설득 프레임 결핍 동맹의 꿈과 리스크를 제시해야 」 #3. 단기적인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앞으로 20년 우리 미래를 좌우할 역사적 베팅이라고 본다. 1961년 워싱턴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러 갔던 박정희 의장의 방미가 이후 20년 가까운 고속 산업화의 기틀을 다지는 베팅이었듯이. 반미 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단행한 한미 FTA도 이후 20년 한국이 제조업 선진국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이었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부각할 한미 간 4차산업 동맹, 인도-태평양 지역전략 등은 신냉전 시대 한국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베팅이다. 경제안보, 반도체 공급망, AI 협력을 새삼 재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 시점에서 신냉전 자유 동맹에 베팅하는 것은 불가피하고도 명백한 선택이다. #4.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베팅을 설명하는 대내적 프레임이 빈곤하다는 점이다. 중도층과 청년세대는 한미관계의 심화·확대를 조건 없이 지지하지는 않는다. 명백하고 불가피한 선택일지라도 이를 정당화하는 설득의 언어는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은 마땅히 국가 대전략의 큰 그림과 한미동맹의 심화를 묶어서 제시해야 한다. #5. 당대 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면 역사적 베팅도 얼마든지 퇴색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작고 단단한 체구에 강렬한 눈빛을 지닌 박정희 의장이 1961년 11월 백악관으로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하였을 때, 워싱턴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한국의 새 리더를 맞이하였다. 케네디의 의심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쿠데타 이전부터 박정희 의장이 미국 인맥을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한국군 장성들에 대해 반감이 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군대를 동원한 5·16 쿠데타는 당시 한국군 작전권을 통제하던 미국에는 체면을 크게 구긴 일이었다. 이 방문에서 박정희는 냉전시대 한미동맹의 기틀을 다지는 역사적 베팅을 던짐으로써 워싱턴과 국내를 놀라게 만들었다. 박 의장은 미국이 빠져들고 있던 베트남 전쟁에 한국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선제 제안했다. 아시아 냉전 동맹에 적극 뛰어드는 이 베팅이 이후 한국 산업화의 토대가 된 점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바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박 의장도 이러한 베팅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국군 베트남 파병과 한일회담 재개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파병과 한일회담으로 촉발된 1963년 위기는 결국 박정희 체제 전반기 최대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졌다. #6.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이후 한미동맹의 글로벌화에 과감한 베팅을 감행하였다. 주변 참모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미국 부시 대통령이 요청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였고 이어서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노 대통령의 결단은 이후 20년간 우리가 제조업의 글로벌 선도 국가로 올라서는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지지층은 돌아서고 여당 내에서는 파병 반대, 한국의 식민지화를 울부짖는 이들이 속출하였다. 역사적 베팅으로 G10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던 노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는 쓸쓸하였다. #7.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윤 대통령에게 한미동맹 강화는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궤도를 이탈했던 한미관계를 정상화시킨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 베팅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해양 자유주의 세력과 대륙 권위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있다. 자유주의 동맹은 우리에게 ‘명백한 선택’이지만, 리더는 역사적 선택의 빛과 그림자, 꿈과 리스크를 압축하는 ‘설득의 프레임’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큰 프레임 없는 역사적 베팅이란 없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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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여당 전당대회, 법치와 인치의 시험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0. 본론에 앞서 독자들과 만나는 이 지면에 대한 필자의 소회부터 나눠보자.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의 약 5분. 독자들께서는 2400자짜리 이 칼럼을 끝까지 읽는 데에 대략 5분 정도의 시간과 집중력을 쓰게 된다. 불과 수십초 짜리 쇼츠가 콘텐트 세계를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디지털 쇼츠 시대에 살아남은 외로운 근대인들이다. 자세를 잡고 앉아 무려 2400자의 문자에 집중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읽기’ 행위는 오늘날 천연기념물처럼 귀해지고 있다. 200여년을 이어온 이 근대적 행위는 요즘 챗GPT에 대한 환호와 경배, 릴스와 쇼츠의 홍수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독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에도 읽고 쓸 것이다. 짜릿한 것들은 찰나의 매혹이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긴 호흡의 이성적 행위들이라고 믿기에. ■ 「 법치주의자 대통령의 난제 여당 인적 지배로도 법치로도 못 풀어 법치, 인치, 정치세계를 구분하는 유연한 ‘수시변역’ 권력이 해결책 」 #1. 긴 호흡과 장기 맥락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 근대 독서인들이 요즘 생각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먼 훗날 한국 민주주의의 흥망성쇠를 돌아보게 되는 날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기록될까. 윤 대통령 본인의 희망도, 대다수 지지자의 바람도 하나로 모일 것이다. 법치주의 정부. 민주주의를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인 다수의 변덕스럽고 무지한 횡포에 맞서 법질서를 고수했던 정부. 역대 정부들이 슬그머니 타협하거나 외면해온 조직화한 강자들(강성 노조, 시민단체)의 반칙에 맞섰던 정부. 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질 만한 역사책 속 자신의 위상일 것이다. #2. 법치주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픈 윤 대통령의 핵심 프로젝트를 좀 먹는 중대 장애물이 하나 있다. 인치(人治)의 유혹. 민주정치 체제에서 유일하게 전 시민의 참여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대통령의 숙명 같은 그림자는 제왕적 권력의 유혹이다. 그리고 그 유혹의 지름길은 절차와 투명성을 무시하는 인치(人治)의 유혹이다. 윤 대통령에게 인치의 덫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이번 주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에 대한 인적 지배의 유혹이다. 확고한 물증은 없다. 하지만 어지간한 정치 관심층들 사이에서 의구심은 널리 퍼져 있다. 당 대표 경선규칙의 돌발 변경, 일부 인사들의 경선 포기 과정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3. 여당 전당대회의 결과가 어떤 색깔로 나타나든 간에 대통령-여당 관계는 앞으로도 윤 대통령의 정치 자산과 법치주의 프로젝트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견 흡족해 보이는 일사불란한 여당도, 집안싸움에 허우적거리는 여당도 모두 윤 대통령에게는 짐이다. 일사불란해 보이던 여당이 총선 이후 돌연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배신의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또한 자중지란 속의 여당이 대통령에게 큰 부담인 것은 굳이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터. #4. 그렇다면 대체 윤 대통령은 대통령-여당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인가. 여당에 대한 인치(人治)도 안 되고 방치도 곤란하다니! 명확한 규정, 엄격한 집행이 몸에 밴 법치주의자 대통령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윤 대통령이 주변을 맴도는, 권력의 꿀이 발린 속삭임을 멀리하고,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역사의 휘파람에 귀 기울인다면 대통령-여당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의 휘파람? 역대 대통령들의 고단한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대통령-여당 관계는 정답이 없는 영역이다. 한때 서슬 퍼렇던 전직 대통령도, 정치9단이라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모두 실패했던 문제가 대통령-여당 관계이다. 너무 꽉 쥐려 해도 실패하고 너무 느슨해도 되는 일이 없는 것이 여당과의 관계다. #5. 결국 역사가 주는 교훈은 대통령-여당 사이의 민주적 밀당(밀고 당기기)만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민주적 밀당의 세계는 법의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명확한 규칙도 분명한 선악의 구분도 없다. 대통령 리더십과 시민 삶이 걸린 핵심 이슈에서 대통령은 여야의 일치된 지지를 엄격하게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여당의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숨 쉴 공간과 여백을 주어야만 한다. 파벌을 짓고 권력 경쟁을 하는 의원들에게, 그리고 어떻게든 주목도를 높여보려는 꿈나무들에게 그들의 공간을 허(許)하라. 물론 법치주의자 대통령에게 쉽지 않은 주문이다. #6. 필자는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길 바란다. 파국적 분열과 다수결의 숭배로 비틀거리는 한국 민주주의에 법치주의라는 방파제를 착실하게 쌓아놓은 정부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윤 정부가 살고 한국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난제를 풀어야만 한다. 그 역사적 해법은 바로 법치, 정치, 인치의 세계를 섬세하게 구분하고 상황에 걸맞은 유연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마치 수시변역(隨時變易) 하듯이. 여당과의 밀당은 이러한 수시변역 리더쉽의 시험대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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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우리는 멜로니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이탈리아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는지? 마늘과 올리브가 듬뿍 들어간 이탈리아 음식? 정열적인 사람들? 피렌체? 우리네 일상적 관심을 넘어서기는 어려운 이탈리아에서 얼마 전 전 세계를 향한 경보가 울려 퍼졌다. 지난 9월 25일 총선 결과 총리에 오르게 된 이탈리아 형제당 대표 조르지아 멜로니의 등장은 극단주의 정치가 더 이상 일회적 사건도, 국지적 현상도 아님을 상징한다. 40대 중반의 환하고 매력적인 미소 뒤에는 악몽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멜로니는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이탈리아와 유럽을 전쟁과 광기로 몰아넣었던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후예를 자처한다. 이탈리아의 전통을 극단적으로 앞세우며 이민자, 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현실은 이탈리아 노동 인구의 10%가 이민자들이다.) ■ 「 이탈리아 멜로니, 극단정치 상징 부채와 양극화가 극단정치 불러 기성정치 부패와 무기력도 한 몫 윤 정부, 국가부채 악순환 막아야 」 스웨덴 총선, 프랑스 대선의 극우정당 약진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찬양 정당이 집권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리고 세계는 여전히 한가하게 바라볼 뿐이다. 한가한 비평들: 멜로니가 트럼프보다는 덜 과격하지 않을까? 세계 지정학을 좌우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젤렌스키 정부를 공개 지지하는 걸로 봐서, 멜로니가 자유주의 세계와 완전히 척질 생각은 없지 않은가? 한가한 비평의 이면에는 21세기형 극단주의 정치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있다.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20세기 극단주의 정치는 국가폭력과 테러, 군복, 공포정치로 무장하였었다.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 등. 한편 21세기 극단주의 정치는 유사 파시즘, 극우 포퓰리즘,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간에 20세기와는 다른 세련된 분장을 하고 있다. 백인 이탈리아인과 이민자들을 갈라 치면서도 극단의 분열 정치를 따듯함, 가정, 신앙의 분위기로 포장한다. “저는 조르지아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엄마입니다.”(멜로니) 안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밖으로 문을 닫아 거는 폐쇄 정치를 따듯한 말들로 포장하며 사람들 마음을 파고든다. 준비된 경제정책은 하나도 없지만 고리타분한 기성정치를 공격할 때의 예리함은 비수와도 같다. 멜로니, 트럼프, 에르도안의 사례에서 보듯이 세련된 방식으로 언론 자유를 억누르고 가짜뉴스를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퍼뜨리면서 세계를 어둠으로 몰아가는 21세기 극단주의 정치는 유럽, 미국, 아시아 곳곳에서 착착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다.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로 향한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멜로니 정권을 탄생시킨 이탈리아 증후군에서 우리는 자유로운가? ①첫째,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쌓여온 정부 부채라는 문제가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150%에 이르는 거대한 정부 부채는 이탈리아 정부를 옴짝달싹 못하도록 만드는 저주이다. 국가 빚이 이 지경에 이르면 성장은커녕 양극화만 심화될 뿐이다. 나라 경제를 옭아매는 부채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인기를 위해 빚을 내서라도 돈 풀기를 남발해온 정치인들과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무책임이 쌓이면서 빚은 감당 못하게 부풀어 오른 것이다. ②정부 씀씀이를 줄이고자 개혁정책에 나섰던 실용 정부가 이탈리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치암피 정부(1993), 디니 정부(1994)를 이끌었던 이들은 이탈리아 중앙은행장 출신으로 나름의 지출개혁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전문 관료들이 이끄는 정부는 개혁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져갔다. ③부패하거나 무능한 기성정치의 실패가 반복되면서,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반(反)정치를 앞세운 멜로니의 극단주의 정치에 빠져들었다. 지난 정부 5년간 우리 정부 빚은 660조원에서 1070조원으로 늘어났다. GDP 비중으로는 36%에서 50%로 팽창한 엄청난 숫자이다.(기획재정부) 빚이 쌓이던 지난 5년간 한가한 논쟁이 이어져왔다. 아직도 빚낼 여력이 많다느니, 주요국들과 비교하면 안전한 수준이라는 말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동안 정부와 유권자 일부는 빚잔치에 서서히 중독되어왔다. 결국 관료정부의 색채가 짙은 윤석열 정부는 인기는 없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를 떠맡고 나섰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공기업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 재촉하고 재정 건전화의 총대를 메고 나섰다. 관건은 여소야대, 낮은 지지율 등 정치 자본이 넉넉지 못한 윤 정부가 과연 반대세력의 저항을 돌파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출범 4개월이 지난 윤석열 정부가 치암피, 디니 정부가 드러냈던 관료정부의 한계에 갇히게 될 것인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빚잔치를 멈춰 세울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윤 정부가 실패한다면 이는 단지 한 정부의 좌초로 끝나지는 않는다. 빚잔치, 무기력한 정부, 시민들 삶의 양극화라는 3중 파도가 쌓이다 보면 한국의 멜로니가 등장하기에 좋은 토양이 된다. 화려한 언변과 재치로 무장하고 등장하겠지만, 멜로니가 여는 문은 세련된 21세기형 극단주의 정치로 가는 길로 통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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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윤 대통령은 책임총리가 필요하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칼럼 제목을 보시고 독자들께서는 고작 식상한 책임총리 이야기를 또 꺼내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한편 대통령실 참모들은 슬그머니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인 한덕수 총리는 아마 무표정으로 일관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추석 연휴에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현안에 파묻혀 지내기보다는 당선 이후의 지난 6개월을 조용히 반추해보길 권하고 싶다. 6개월의 기쁨, 흥분, 실망, 대통령직의 무게감 등을 두루 살펴 윤 대통령이 책임총리제의 길을 선택하기를 기대한다. ■ 「 헌법주의자 대통령이 결단해서 행정은 한 총리에 대거 맡겨야 대통령은 굵직한 어젠다에 집중 격변의 시대, 리더는 숲을 봐야 」 필자는 한덕수 책임총리가 윤석열 정부 초반의 무질서를 최소화하고 국정운영에 리듬을 불어넣는 역할을 적절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윤 대통령이 한 총리에게 책임총리의 권한을 포괄적으로 부여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이다. ① 현 정부에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의 리스크와 효과, 일의 급소와 완급을 꿰뚫고 있는 인물은 한 총리이다. ② 윤 대통령의 기본가치는 헌법정신으로 요약되는데, 우리 헌법은 “국무총리는…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헌법 86조) 헌법주의자 대통령이 헌법정신을 다시 한번 숙고해 볼 만하다. ③ 윤 대통령의 임기는 수십 년만의 역사적 결절점과 겹쳐 있는 시기이다. 연초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전쟁은 단지 지구 반대편의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이념과 경제사슬의 진영화, 불안의 일상화, 파시즘의 본격 대두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대격변의 시기에 리더는 정책의 나무보다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가늠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먼저 한 총리의 풍부한 경험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7월 29일 교육부총리가 5세 취학 학제 개편안을 발표하자마자 온라인에서 학부모들의 반응은 황당함과 분노로 뒤덮였다. 사안의 폭발성을 즉각 감지한 한 총리는 이틀 만에 “아이마다 발달 정도가 다르고 가정과 학교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한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정책 변화가 가져올 리스크,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발빠른 대응은 오랜 행정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생 검찰의 수사 서류에 파묻혀 지내온 윤 대통령이 갑자기 모든 정책 분야에서 일의 완급 조절과 경중의 구분,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정책 정당성의 확보를 능숙하게 해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풍부한 경험과 정책역량을 두루 갖춘 한 총리를 일찍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가? 행정의 달인을 발탁한 만큼, 총리가 각 부처의 일상 업무를 지휘하고 윤 대통령은 책임총리에게 큰 방향만 정해 주는 방식의 책임총리제로 가는 결단만 남아 있는 셈이다. 둘째, 윤 대통령이 한 총리에게 책임총리의 역할을 맡기는 것은 헌법주의자 윤 대통령의 성향과 목표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헌법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헌법이 천명하는 책임총리의 정신을 외면해왔다. 실제 대통령과 책임총리의 현실적 관계는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 사실이고, 과거의 일부 시도들은 대부분 흐지부지된 바 있다. 하지만 모호한 부분을 슬쩍 건너뛰는 것이 헌법주의자의 길은 아니다. 윤 대통령의 의지와 한총리의 경험이 시너지를 낸다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어젠다에 집중하고 책임총리는 일상적 국정운영에 전념하는 시스템은 서서히 정착될 수 있다. 셋째, 필자가 책임총리를 말하는 까닭은 윤 대통령이 정책 디테일에 약하니, 한 총리에게 행정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라는 뜻이 아니다. 대통령은 정책 디테일보다 긴 역사 속에서 자신의 5년이 어떻게 기억될지를 늘 고민하며 결정해야 한다. 마침 세계는 앞서 말한 대로 21세기판 30년 전쟁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초반 30년간(1914~45년) 세계는 경제 양극화와 대공황, 파시즘의 대두, 그리고 자유진영과의 대혈투를 겪은 바 있다. 우리의 21세기도 서서히 이러한 대혼란과 충돌의 시대로 한 발 한 발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경제와 안보, 기술의 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격변의 시기에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긴 호흡과 역사 감각이다. 불타는 세계 속에서 매일매일 불안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미래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불안을 잠재울 역할이 윤 대통령에게 지워져 있다. 윤 대통령은 그간 자유, 글로벌 중추국가 등을 제시해왔지만 이런 비전들이 아직까지 시민들의 일상적 감각에 와 닿지는 못하고 있다. 정리해보자. 참모들과 부처 장관들이 끝없이 들고 오는 서류 더미는 한 총리에게 맡기면 된다. 그 시간에 윤 대통령은 DJ와 YS, 박정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하나하나 되돌아봐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곧 대통령학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참모들이 오늘의 일을 처리하는 존재라면 리더는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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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윤 대통령과 국민의 ‘가상’ 대화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역대급 물난리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조금 더 빠질 수도 있다. 지난 3월 필자가 이 지면에서 논의했던 바와 같이, 지지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현대의 대통령들이 통치를 끌어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 지지율이다. 이것이 충분하면 대통령은 선출된 제왕이 되기도 하고 부족하면 레임덕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 임기 초반부터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당황하고 있지만, 결국 해법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지지율 만회를 위해 대통령들이 취하는 전략은 보통 민심의 현장으로 직접 뛰는 것인데(going to the public) 아직 대통령실에서 체계적인 움직임은 나오지 않고 있다. ■ 「 두 정치 주역의 솔직한 대화 필요 민심은 대통령의 조정능력에 의문 경직된 법치주의, 인사난맥의 문제 직접 대화 통해 새 계기를 찾아야 」 이에 필자는 오늘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가상 토론회를 열어보려 한다. 화가 난 민심은 윤 대통령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을까? 윤 대통령은 성난 민심에 대해 어떤 자기 변호를 할 수 있을까? 두 주제에 집중해보자. 첫째 대통령의 리더십 실종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 그리고 윤 대통령의 답변으로서의 탈제왕적 대통령 프로젝트. 둘째, 인사 문제를 통해 드러나는 윤 대통령의 경직된 법치주의와 그에 대한 민심의 실망. 1. 민심 : “청와대 이전 자체는 괜찮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공간 이전과는 별개로 대통령실이 내각, 여당, 대통령실의 역할을 조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여당의 자중지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지지층마저 이탈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또한 내각은 5세 취학 학제 개편의 섣부른 추진에서 보듯이 어설픈 정책으로 시민들의 혼란과 불안을 낳고 있다. 결국 최종 조율자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중도층마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 : “그 문제에 대해 저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많은 시민들께서 아시다시피 우리 민주주의의 최대 문제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입니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실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정부의 세세한 일에 개입하면서 효율성과 책임성, 헌법정신 등이 훼손되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청와대 직원들의 무책임한 전횡이 극에 달하였었다는 것을 국민들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국민과 동떨어져 있는 청와대를 이전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탈피를 추진해왔습니다. 대통령실 인원을 자발적으로 크게 줄인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실의 개입 여지를 줄일 뿐만 아니라 내각의 장관님들에게 정책 자율성을 폭넓게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법무부의 새로운 이민 정책의 추진 검토 등 내각에서 자율적으로 잘 해내는 일들도 있지 않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의 낡은 관습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정책 혼선도 탈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혼선이라는 점을 널리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심 : “제왕적 대통령실의 탈피라는 명분에는 공감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의 로드맵을 상세히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당과 정부, 대통령실의 새로운 관계도 떳떳이 밝혀야 한다.” 2. 민심 : “교육부총리 사퇴에서 보듯이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갖는 기대가 무너진 큰 원인이 인사 난맥이다. 단지 검찰 출신 인사들이 많다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의외의 인물들이 덜컥 기용되는 차원을 넘어선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를 내세웠던 윤 대통령이 인사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채 몇몇 장관들을 임명하는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이런 사례들이 형식적으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법과 절차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매우 크다고 느끼고 있다. 100일 여를 겪어보니 윤 대통령의 법치주의는 한 마디로 딱딱하고 경직된 고체(固體) 법치주의에 머물러 있다. 법과 절차의 형식 요건만 갖추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를 국민들은 깊이 우려한다. 그래도 법과 절차 자체가 엉망으로 망가졌던 전임 정부에 비해서는 지금이 낫지 않느냐는 윤 대통령의 무심한 발언에 국민들은 절망감마저 갖게 된다.” 윤 대통령 : “저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국민께 큰 걱정을 끼친 점에 사과를 드립니다. 100일을 지내보니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자칫하면 고립되기 쉬운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저 스스로가 오랜 세월동안 굳어진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점도 절실히 느낍니다. 저를 한번 더 믿어주십시오. 제가 검사 신분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바라는 대통령 후보로 변신하였을 때 국민들께서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이제부터 경직된 법치주의를 넘어 유연한 법치주의로,그리고 널리 민심을 들어 전문성, 공감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발탁하겠습니다.” 민심 : “가상으로나마 대화를 나눈 것에 의미를 둔다. 앞으로 직접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해가 넓어지길 기대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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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지지율 하락과 내러티브의 빈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한 문장. 공직자의 소신을 강렬하게 담은 이 한 마디는 윤석열 검사가 9년 후 대통령에 오르는 드라마의 출발점이 되었었다. 간결하고 강렬하게 소신을 피력하던 윤 대통령의 언어는 올 여름 들어 흔들리고 있다. 일부 장관 지명자들에 대한 언론과 민심의 따가운 비판 앞에서 대통령은 잠시 평정심을 잃었다. 자제력과 설득력이 주춤하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워싱턴과 베이징에서도 예민하게 포착되었을 것이다. ■ 「 윤 정부 초반 위기는 소통 위기 정책을 전달하는 내러티브 빈곤 내러티브에 위기의식을 담아야 청년 참모에게 내러티브 맡기자 」 대통령의 메시지가 겉돌기 시작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은 초반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가 눈부신 속도의 사회임은 분명하지만, 60일의 성과로 모든 걸 재단하기에는 다소 이르지 않을까? 윤 정부가 짊어진 역사적 좌표를 생각하면, 실패는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윤 정부의 실패는 수년간 흔들려온 법치와 민주주의가 아예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시민들 살림살이를 옥죄는 극심한 인플레를 잡지 못한다면, 증오와 극단의 정치의 문은 활짝 열릴 것이다. 20세기 초반 바이마르 독일의 비극적 역사에서 보았듯이, 극심한 인플레는 사람들 마음 속의 어두운 충동을 부추긴다. 초반의 혼돈을 수습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대통령스러운 내러티브를 복원하는 것이다. 사진이 아무리 예뻐도 인스타그램 조회 수가 나와야 좋은 사진이듯이, 대통령의 정책 노력도 내러티브를 통해 민심과 접속할 때에만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 노력과 인정은 별개인 셈이다.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①경제, 안보, 공공부문 개혁 등 여러 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 정부의 정책들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통일된 내러티브가 고안되어야 한다. ‘문제는 경제야’처럼 간결한 내러티브가 개발되어야 하고, 대통령 메시지는 이 내러티브 안에서 일관되게 반복, 변주되어야 한다. ②보통사람들이 자신들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판단과 대통령의 현실 판단이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러티브만이 지지율을 되돌릴 수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통령과 보통사람들의 현실 판단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줬을 뿐이다. ③새로운 내러티브의 개발은 대통령실의 가장 젊은 스태프들에게 맡겨야 한다. 대통령실의 숱한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능한 인물들이겠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언어와 라이프 스타일 혁명의 국외자들일 뿐이다. 먼저 정책 내러티브부터 살펴보자. 사실 윤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굵직한 정책을 숨 가쁘게 결정해왔고,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도 있다. 수도권 부동산은, 금리 인상과 자산 거품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뚜렷하게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 정부가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천문학적 규모의 빚잔치를 멈춰 세우고, 윤 정부는 공공부문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정책 수행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계속 하향세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러 정책들의 의미를 전달할 중심 내러티브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대통령의 여러 정책들의 의미를 평가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공포,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망의 꼬임과 원자재값 폭등, 미중 반도체 전쟁이 중첩된 위기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몰두하고 있는 일은 모두 ‘위기 관리’이다. 다발적으로 터지는 빨간불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면서도 정작 시민들에게 위기 상황과 대응을 전달하는 내러티브는 매우 부실하다. 초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내러티브 빈곤의 두 번째 측면은 보통 시민들의 판단에 눈높이를 맞추는 언어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과 일탈 등이 문제시될 때, 시민들의 비판은 자신들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매일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르면서 체득한 생활세계의 판단을 대통령이 헤아리지 못할 때, 대통령의 말은 허공을 맴돌 수밖에 없다. 셋째, 윤 대통령의 주요 참모들이 대부분 서오남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라도 대통령실의 내러티브 TF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도록 재정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봐오던 구색 맞추기식 청년 기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나는 윤 대통령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 “헌법가치, 윤 정부의 역사적 의미에만 충성”하겠다는 각오를 가진 젊은이들부터 삼고초려 해야 한다. 주변 인물들의 사천(私薦), 화려한 스펙으로 승부하는 청년들의 기용으로는 지리멸렬한 메시지를 벗어날 수 없다. 9년 전 윤 대통령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돌이켜 보면 이는 한국 정치의 한 변곡점이었다. 그 때의 자세를 돌아보며, 대통령의 메시지부터 추스를 때 임기 초반의 동요는 진정될 수도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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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규제혁파의 시대, 정당도 예외 아니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지방선거가 마무리 된지 보름 남짓, 연극의 시간은 끝나고 권력투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정치인들에게 일을 맡기고 주권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자, 여야 정당들(실제는 정당을 지배하는 의원들)은 비대위, 혁신위, 처럼회, 초금회 등을 가동하며 권력투쟁에 돌입하고 있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당개혁을 외치지만, 대한민국에서 얼마간 지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안다. 개혁과 쇄신의 민낯은 결국 당권, 다가올 총선 공천권 다툼이라는 것을. 필자나 독자들이나 그들만의 말잔치의 표준 공정은 익히 알고 있다. 1.격렬한 내부 다툼 끝에 일부 낡은 인물들의 퇴진 2.새로 주도권을 장악한 이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당내 경선규칙 변경 3.새 규칙에 따라 MZ세대 등 새 인물들이 일부 수혈되지만, 이는 새로운 권력의 입지를 강화, 포장하는 데에 그침 4.궁극적으로 정치귀족의 정당 지배는 계속되고 시민과 정당정치의 괴리는 여전. ■ 「 선거 이후 내부 권력투쟁에 몰두 독과점 체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 정당법 17조 진입 규제 철폐하고 비례대표 후보는 추첨으로 뽑자 」 독자들에게 식상한 이야기일 테지만 우리가 정당들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정치학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정당들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관차까지 되지는 못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객차임은 분명하다. 정치경험이 전무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깜짝 당선되는 데에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객차가 중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화두가 규제 혁파이니만큼, 오늘 필자는 두 가지 정치규제 개혁안을 제안하려 한다. 첫째 정당 독과점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정당법 17조, 18조 규제의 철폐. 둘째, 개방형 공천이니 전략공천이니 하는 복잡한 공천절차를 없애고, 시민들의 눈높이를 가감없이 반영하는 비례대표 의원후보 추첨제 도입. 먼저 우리 정당정치의 온갖 병폐가 거대 정당들의 독과점 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부터 살펴보자.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생활물가(리터당 2천원을 훌쩍 넘은 휘발유 값, 어느덧 한판에 1만원에 육박하기도 하는 계란값)속에서 시민들의 주름살은 늘어가지만, 여의도 정치귀족들이 한가하게 권력투쟁에만 몰두할 수 있는 배경은 하나로 모아진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기성정당들은 망해서 문을 닫는 일이 없다. 개인도, 기업도 부채, 금리 상승의 광풍 속에서 파산할 수 있지만, 정당은 절대 파산하지 않는다. 상황이 정 어려워지면 정당들은 간판을 바꿔다는 신장개업으로 살아남아왔다. 정당 독과점체제에는 두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신규 경쟁자의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둘째는 기성정당들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국고보조금을 비롯해 독과점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합법적으로 과점하는 것. 정치시장에 신규 정당진입이 어려운 이유는 정당법에 잘 나와 있다. “정당들은 5(개) 이상의 시, 도당을 가져야 한다.”(정당법 17조) “시, 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정당법 18조) 또한 시, 도당은 사무소를 가져야 한다. 거대한 자금력, 인적 네트워크, 조직력 등을 갖추지 않으면 정당경쟁에 뛰어들 수 없다. 지난 3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주영, 문국현, 박찬종 등 소수의 리더들이 새로운 바람으로 기성정당 카르텔을 부숴보려 했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정당법 17조는 메말라가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도 바뀌어야만 한다. 엊그제 강준만 교수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서울에 중앙당 소재를 규정하고 5개 시도당 요건을 규정하는 정당법을 없애야 한다고 『무등일보』 칼럼에서 주장하였다.) 신규 경쟁자 진입을 봉쇄하는 동시에 기성정당들은 국고보조금 나눠먹기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존립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수백억 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의 절반은 우선 국회 안에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성정당들이 똑같이 균등하게 나눠받는다. 이어서 복잡한 공식을 거쳐서 군소정당을 포함한 정당들과 함께 국회 의석수, 득표율 비율 등에 따라 나머지 절반을 배분받는다. 이런 독과점은 철폐되어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또 하나의 방안은 비례의원 후보 추첨제이다. 복잡한 절차와 경쟁을 거쳐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방식을 혁신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이 혁신적이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화려한 경력, 소신을 갖추었다던 새 인물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보여주는 것은 주로 입법폭주와 난폭 의정이었다. 뜬금없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추첨제도는 사실 2천년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장 오래되고, 단순하며, 심지어 정의로울 수도 있는 선출방식이다. 모든 성인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비례후보를 뽑는다면, 젠더, 세대, 능력 모든 기준에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균등하게 대표된다. 추첨으로 뽑히는 이들은 당연히 보통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는 이들로 구성되게 마련이다. 2024년 총선까지 앞으로 2년. 마침 우리 삶을 옭아매는 온갖 규제들을 해소하려는 흐름이 커지는 만큼, 정치에서는 두 가지가 먼저 혁파되어야 한다. 정당법 17조, 18조 폐지와 비례대표 추첨제 도입.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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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바이든 대통령의 서울 일기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일 만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첫 번째 손님으로 2박 3일 한국을 방문한다. 한미 정상이 다뤄야할 정책의제 분석은 이미 넘쳐난다. 복잡다단한 정책논의를 반복하기보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가상 일기를 통해 그의 인식과 미국의 전략을 유추해보자. 이번의 2박 3일이 앞으로 3년을 좌우하게 된다. #5월 20일.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윤석열 신임 대통령의 취임사를 한번 더 읽어보았다. 나는 부통령 재임 시절부터 네 분의 한국 대통령을 경험해 봤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가장 높다. 취임사 첫머리에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연설이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시민 여러분”에게도 발신하는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 메시지는 1919년 한국의 3·1 독립 운동을 정서적으로 지원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주주의 세계의 평화” 관념과 공명하는 것이다. ■ 「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 적극 공감 한·미는 이제 4차산업 핵심 동맹 깊어지는 협력만큼 견제 늘 것 난관을 넘는 의지가 리더의 조건 」 자유주의 세계의 평화가 윌슨 대통령 이후 미국 외교의 중핵으로 자리 잡았으니, 윤 대통령의 글로벌 자유주의 지향과 미국 외교 교리는 궁합이 맞는 셈이다. 검찰총장 출신의 법률가 대통령이 국내 문제, 남북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경쟁의 심화를 거치면서, 세계는 자유주의 블록과 그에 대항하는 대안 블록으로 재편중이다. 자유무역의 원칙은 중요하지만 나는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패널, 석유, 가스 등 핵심 상품들의 공급망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재구축중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은 한미 양국이 양자컴퓨팅, 우주개발, 친환경 기술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동맹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다. #5월 21일. 오늘은 공식 정상회담의 날이다. 용산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 참모들은 높은 기대 못지않게 리스크도 없지 않다는 점을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대통령에게 정책 리스크를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게 그들의 할 일이다.) 윤 대통령과 나는 큰 틀에서 지향하는 바가 같지만, 한국의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해온 백악관 참모들에 따르면 한국 정치의 안팎으로 리스크 요인들도 적지 않다. 리스크는 두 가지다. ①첫째 한국의 여소야대 정부의 리스크 ②둘째 북한과 중국의 윤 대통령에 대한 역량 테스트. 먼저 여소야대 정부 리스크부터 생각해보자. 여야 정당이 극한 대립을 벌이는 것은 요즘 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 야당의 전투력은 각별하다고들 한다. 국회 170여석을 거느린 한국의 야당은 국내 정책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변화를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의 거대 야당은 예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한국군(비전투병) 이라크 파병 등을 거세게 반대한 바 있다. 실제로 이 정책을 추진한 대통령은 같은 당 소속의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이들과의 대립으로 인해 통치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진하였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거대 야당은 윤 대통령과 내가 지나치게 밀착한다며, 아마도 핵심의제 중의 하나를 골라 윤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려 할 것이다. 그 대상이 한국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이 될지, 한미일 협력강화가 될지 혹은 AUKUS(미국-영국-호주 협력체)에 대한 한국의 합류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마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젊은 세대들이 윤 대통령의 새 외교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참모들이 내게 상기시켜 준 윤 대통령 외교의 두 번째 리스크는 북한과 중국이 시도할 것이 확실한 윤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력 테스트이다. 한미 관계가 안보동맹을 넘어 4차 산업혁명 동맹으로 진화하고 한국과 미국의 파트너십이 동남아시아, 인도양 지역으로 확장되어 갈 때, 북한, 중국으로서는 견제구를 하나쯤 꽂아 넣을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예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북한과 중국은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 연대’ ‘글로벌 중추국가’에 대한 의지를 시험하려 들 것이다. 이 때 윤 대통령은 예전 검찰총장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인내심과 의지를 국제정치의 무대에서도 발휘할 것인가? 그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나는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 아마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일본의 기시다 총리도 조용하지만 면밀히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5월 22일. 한국 방문 마지막 날. 한국에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Well begun is half done.) 그동안 험난한 길을 걸어왔던 안보동맹, 경제동맹을 넘어 4차산업 과학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는 한미 두 나라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제 윤 대통령이나 나나 이러한 대외전략 변화를 뒷받침할 국내 기반을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관건이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정치양극화라는 국내 정치의 격랑에서 살아남아야 윤 대통령도, 나도 서울 정상회담의 성과들을 기쁘게 돌아보는 날이 올 수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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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국회는 리콜이 안되나요?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간단한 퀴즈로 시작해보자.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 가운데 면직(탄핵)으로 내몰렸던 사례는? 6명 중 2명(33%). 같은 기간 연인원 2000여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의원직 제명으로 물러난 사례는? 0. (의원을 탄핵할 헌법적 근거는 없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 국회의원은? 한 번에 4년씩이며 연임 제한이 없다. 현재 5선 이상 국회의원만도 10여 명이다. 이 간단한 숫자들에 따르면, 대통령직은 극한 직업이고 국회의원은 한국정치 최고의 직업이다. 제명의 위험도, 실패의 책임도 없는 헌법기관이 국회의원이다. 견제를 받지 않으니, 폭주는 여의도의 다반사이다. 요즘 두 가지 엇갈린 폭주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절박하게, 또 한편으론 한가롭게. ■ 「 견제 장치 없는 다수파의 독주 민생 외면한 채 정치이슈 올인 의원 국민소환제 다시 논의해야 소환제 전제는 의원평가 체계화 」 절박한 폭주는 검수완박이라는 이름하에 형사소송법, 검찰청법을 개정하려는 거대 야당의 폭주. 또 다른 하나는 얼마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국회연설 때 드러난 여야 합동의 무책임의 폭주. 두 사태에 대한 날선 비판은 차고 넘친다. 비판을 더 보태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폭주를 멈춰 세우고 의원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길을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대안들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필자는 ①국민소환제 논의 부활과 ②의정활동 평가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변화의 대안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연설 참사를 통해 드러난 의원들의 무책임과 직무 태만부터 돌아보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비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차가운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다. 첫째,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세계화, 경제통합이라는 근사한 말들은 짓밟히고 있다. 그럴싸한 말의 자리를 메꾸는 것은 강대국, 군사력, 동맹, 첨단무기로 상징되는 살벌함과 힘의 위력이다. 공동체의 생존 방식이 바뀌고 대결과 동맹의 단층선이 새로 그어지는 결정적 전환 앞에서 의원들은 한가하게 뒷짐을 지고 있다. 냉전의 구도를 뒤집어놓았던 미-중 데탕트(1972) 글로벌 금융위기(2008) 때에도 그랬듯이. 둘째,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장 우리 시민들의 삶을 옥죄는 글로벌 애그플레이션의 뇌관이다. 이미 슬금슬금 오르는 조짐을 보여 왔던 세계 농산물 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지난 두어 달 사이 대략 40% 가량 올랐다. 마트나 재래시장에 한번만 나가보면 보통사람들의 쪼그라드는 장바구니를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 삶은 어둡건만 국회는 검수완박 법안을 둘러싼 대충돌에 몰두할 뿐이다. 의원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가장 일반적 대안은 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이다. 실제로 몇몇 의원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해 노력해왔다. 의원소환제와 관련한 현직 의원의 발언을 옮겨보자.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은 동의자 수가 벌써 20만 명을 넘겼고,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을 퇴출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이 77.5%에 달한다.”(2019년 6월 5일 박주민 의원) 실제 박주민 의원뿐 아니라 김병욱 의원도 국민소환법을 발의해왔다. 우리는 고전적인 딜레마와 다시 마주한 셈이다. 시민 여론은 국민소환제라는 개혁에 압도적으로 찬성하지만 정작 이를 입법화해야 하는 다수 세력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결국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첫째,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둘째, 국민소환제를 포함해 국회개혁을 압박하는 시민들 요구의 조직화. 그간 의원 개개인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려는 시도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본회의, 상임위 출석률, 법안 발의 건수와 같은 기계적 잣대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무성의하게 시도된 의원평가는 결국 발의 건수 늘리기 위한 중복, 유사 법안들의 폭발(양적 기준으로만 보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과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 들여다보기로 귀결되어왔다. 단순한 양적 잣대보다는 헌법에 충실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민생을 돌본다면서 정작 시민들 부담만 늘리는 법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규제만능 입법으로 개인, 기업, 단체의 자유를 옥죄면서 규제권력만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평가 잣대들이 검토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국민소환제의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둘째, 국민소환제를 포함하여 국회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일반 의지는 늘 조직화된 이익, 특수 이익에 패배해왔다. 이 딜레마를 넘어서려면 각별한 성공 방정식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조직화하는 시민사회의 힘, 개혁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핵심 주제어(국회의원도 리콜이 되나요?)의 부상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진영 대립을 넘어 책임 있게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보자는 바램은 그저 순진한 바램인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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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무한교착의 정치와 당선인의 상시 캠페인 통치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아름다운 허니문이 이어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부족전쟁처럼 치러진 선거 이후 정치 휴전이 얼마나 지속될 지가 관심거리였다. 역시나 거대 야당은 압도적인 프레이밍 능력을 앞세워 대통령 당선인과 대립 국면을 만들어냈다. 신구 정부 간에 수렴형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슈는 선거 이후 여야의 첫 대치선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 이후 우리가 종종 봐왔던 여소야대 무한교착의 익숙한 풍경이다. 과거 사례를 떠올려 보자.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린 금융위기 속에서 출발한 김대중 대통령도 여소야대를 헤쳐 나가느라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는 이념, 지역 갈등을 떠나 시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뜨겁게 동참하던 순수의 시대였음에도. 임기 초반 탄핵 소추까지 몰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사례였다. ■ 「 여소야대 무한교착의 정치 여전 허니문 없이 바로 대치 국면으로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통치전략 청년들은 더 섬세한 소통 기대 」 여소야대 하의 무한 교착이 우리 정치의 상수라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한편에는 새 당선인이 포용과 통합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규범적 시각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특히 새 권력 써클 안에는 초반부터 어정쩡하게 나가다가 아무 일도 못할 거라는 경계감이 도사리고 있다. 필자는 새 당선인이 규범론과 경계론 사이에서, 상시(常時) 캠페인 통치의 길을 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여소야대가 일상사인 미국의 정치학자들이 대통령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이 상시 캠페인 통치다.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선거 캠페인 하듯이 국정운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지지율 관리에 몰두해야 하고 수시로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기(Going to the Public)”를 통치의 주된 전략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두 가지 초점을 생각해 보자. ⓛ여소야대 교착의 구조에서는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의 크기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새 당선인은 임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힘, 이슈 주도력 등의 자산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자산은 유한하며 모든 자산을 떠받치는 것은 시민들의 지지율이다. 결국 대통령은 시시각각 지지율을 의식하며 행동하던 선거 캠페인 시기와 다름없는 통치전략으로 기울게 된다. ②지지율 관리 정치에서 주목할 점은 수도권 젊은 시민들의 움직임이다. 모든 시민들의 한 표 한 표가 존엄하고 동등하지만, 윤 당선인은 보수 후보로는 드물게 서울에서 승리하였고 선거과정에서 젊은 층의 온라인 이슈 몰이의 덕을 적지 않게 보았다. 관건은 이들 수도권 젊은 층들이 새 정부의 첫 번째 중대 이슈로 떠오른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엊그제 여론 조사에서 20대의 약 6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먼저 지지율 정치와 직접 다가가기 전략부터 살펴보자.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일요일 오전 용산 지역 조감도를 놓고 한 시간 가까이 직접 설명을 하고 질의 응답에 응하였다. 지난 10여 년간 여러 대통령들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은둔하기보다는 보통사람들과 어울림을 선호하는 새 당선인의 성향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거대 야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트레이드 마크인 의료보험 개혁정책이 표류하자 미국 전역을 돌며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타운홀 미팅을 통해 여론의 반전을 꾀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요일 당선인이 선보인 ‘직접 다가가기’의 성적표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한편에는 오랜 만에 직접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진 리더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는 지지자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여전히 준비와 소통이 부족하다고 꼬집는 비판자들이 있다. 당선인은 귀중한 정치 자산의 일부를 투입하였지만, 여론의 극적인 반전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두 번째 초점, 수도권 청년층의 여론 추이와 연결된다. 윤 당선인에게 투표했던 청년들 중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시큰둥한 유권자들이 상당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이들의 눈에는 집무실 이전보다 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이 쌓여 있다. 코로나 3년 동안 피폐해진 자영업자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정서적 지원, 청년들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정책들이 이들에게는 더 절박하다. (물론 인수위는 준비 중이겠지만) 또한 이들 청년 시민들이 기대하는 민주적 소통이란 섬세하고도 끈질기며 상대를 충분하게 배려하는 대화다. 이 점에서 청년 시민들은 집무실 이전 이슈가 더욱 섬세하게 다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요약해보자. ①여야 교착의 정치 속에서 지지율은 대통령 통치의 핵심 동력이다. ②당선인이 지지율 제고를 위해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 때에는 유한한 정치 자산이 같이 투입되는 것이다. ③따라서 절실한 경우 또는 자산투입의 효과가 분명할 경우에 한해서 아껴 써야 한다. ④지난 해 보궐 선거 이후 판세를 좌우하는 스윙 투표자로 부상한 청년 유권자들의 소통의 눈높이는 높다. ⑤배려, 기다림, 상호성이 이들이 기대하는 소통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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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3·1절, 안중근 의사의 전쟁과 평화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며칠 후면 103주년 3·1절을 맞는 가운데,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약소국의 비애를 지켜보고 있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나라지만, 우크라이나의 자주 평화는 강대국 파워 게임 속에서 바람 앞 촛불 신세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인간 삶의 근본 문제 앞에서, 필자는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 마침 며칠 앞으로 다가온 3·1절은 대한 독립운동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남기신 전쟁과 평화의 사상을 돌아보기 좋은 시점이다. ■ 「 우크라이나 자주평화의 위기 독립영웅, 강대국 권력정치 비판 “국제법, 중립이 평화 못 지켜” 안 의사 통찰 다시 돌아봐야 」 물론 우리 사회 평범한 이웃들은 우선 본능적인 삶의 대응에 나서고 있을 것이다. 더 높이 치솟을게 뻔한 장바구니 물가가 첫 번째 걱정일 것이다. 천연가스, 에너지 시장의 위기, 곡물 시장의 위기를 정교하게 예측하지 않더라도 생활인의 감각은 다가오는 충격을 예감한다. 독립영웅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의 하얼빈 거사 이후, 뤼순 감옥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남겨놓았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는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동양평화론』은 10여 쪽 안팎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는 20세기 초 강대국 권력정치 속의 자주와 독립, 국가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빛나는 통찰이 가득하다. 우리의 기억은 독립투쟁에 몸을 던진 영웅으로서의 안중근 의사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는 그 고결한 정신의 첫째 이미지일 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동양평화론』, 뤼순 고등법원장과의 대화를 담은 『청취서』에는 국가들 간의 야만 상태로서의 20세기 제국주의, 서구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있다. 달리 말해, 안중근 사상의 두 번째 축은 “세계는 동서로 갈라지고 서로 경쟁하기를 밥 먹듯 하며… 날이면 날마다 무력만을 일삼는” 폭력과 무질서의 세계라는 현실주의 세계관이다. 안중근 사상의 각별함은 냉혹한 권력정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를 뛰어넘는 꿈을 꾼 데에 있다. 재판정에서 스스로를 대한독립 전쟁의 의병 참모중장(中將)으로 부르라고 의연히 요구했던 30세 청년은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자이기도 하였다. 평화의 꿈은 그저 막연하고 희미한 몽상이 아니었다. ‘동양평화회’, ‘공동은행’, ‘공동화폐’ ‘공동 군대’ 설립을 제시하는 실천적 비전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안 의사가 목숨을 던져 구하려던 “인약(仁弱)의 나라”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지만 그의 전쟁과 평화관은 오늘날에도 무궁무진한 토론과 성찰의 바탕이 된다. 먼저 안 의사가 예리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인식했던 ‘폭력과 무질서의 세계’의 현대적 의미부터 돌아보자.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의 권력자들은 전통적인 사대교린 질서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고자 애처로운 혼란을 거듭했지만, 안 의사는 낡은 세계는 붕괴했다고 보았다. 이어서 서구의 열강들이 들여온 만국공법(국제법)의 시대가 열렸지만 “이른바 만국공법이니 엄정중립 등의 설은 최근 외교가의 교활한 술책이니 말할 것이 못된다.” 각 국가의 주권을 말하지만 그것은 “경쟁의 설(說)로서 동서양 육대주에 포연탄우가 그치는 날이 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윽고 이웃 나라 일본은 “가장 가깝고 친했던 인약한 같은 종족인 한국을 억지로 탄압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요즘 말로 옮기자면, 경제사회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상호의존이 깊어지면, 이웃 나라들끼리 평화가 유지된다는 이른바 민주평화론은 허황된 이론인 셈이다.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지만, 신뢰 없는 겉치레 교류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안중근 사상의 절정은 국가간 힘의 경쟁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평화를 구체적으로 꿈꾼 데에 있다. 『청취서』에서 안 의사는 “은행을 설립해 각 나라가 공유하는 화폐를 발행하면 반드시 신용을 얻게 되니 금융은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한·중·일 “세 나라의 능력 있는 자들을 모아 동양평화회를 조직하고 세계에 공표하자”고 제안한다. “중요한 지역마다 평화지회를 마련하는 동시에 은행 지점을 두자”는 것이다. 또한 “세 나라의 강건한 청년들을 모아서 군단을 편성”하고 청년들에게 “각각 두 나라 언어를 배우게 하면 형제나라라는 관념이 강고해질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안 의사가 제안했던 선진 제도들 대부분은 오늘날 유럽연합에서 채택되어 있다. 서울 남산 중턱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서면, 100여 년 전 ‘풍진 시대’ 속에서 전쟁과 평화, 자주독립의 본질을 꿰뚫어 본 그의 뜨거운 꿈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인약’의 나라를 벗어나 세계 10대 무역대국에 오른 우리는 어떤 비전을 아시아와 세계에 내놓고 있는가? 우리는 그저 순수하게 달콤한 평화의 꿈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즘 세계가 박수쳐주는 K의 모습에 취한 것은 아닐까? 혹은 그저 그때그때 불끄기에 급급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번 3·1절에는 『동양평화론』을 다시 읽자.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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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후보들, 시대정신에서 밈으로 이동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칼럼 제목에서 ‘시대정신’에 눈길이 먼저 가는 독자들은 아마도 필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셨을 듯하다. 정치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믿던 세대. 한편 밈(meme)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띄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독자일 듯하다. (원래는 하나의 문화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세대를 넘어 보존, 전파되는 것을 밈이라 불렀었다. 최근 들어 밈은 온라인에서 모방과 변주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는 생각, 스타일, 행동을 일컫게 되었다.) 최악의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이번 대선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것은 시대정신이라는 핵심어다. 여야 후보들은 대동 세상, 공정, 상식 등을 내세우지만 보통의 중도층들이 기대하는 시대정신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 「 엄숙한 시대정신 담론 사라지고 경쾌하고 단순한 밈 던지기 선거 분산, 소통, 개방이 밈의 기반 당선 이후 밈의 정치가 관건 」 후보들도 안다. 시대정신 같은 거창한 말보다 가볍고 단순한 온라인 밈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재명 후보는 이달 초에 탈모 치료를 의료보험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으로 대박을 쳤다. 찬반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동영상 속 이 후보의 표정은 수백 가지의 패러디 영상으로 확장되며 한동안 온라인을 달구었다. 윤석열 후보가 내놓은 59초짜리 동영상, 페이스북 메시지 시리즈 역시 청년 유권자들을 겨냥한 밈 던지기이다. 어제 페이스북 메시지는 ‘주식 양도세 폐지’ 일곱 자였다. 실제 윤 후보의 청년층 지지율은 밈 던지기와 더불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우리 모두 하루에 몇 시간씩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지내는 요즘, 스마트폰 속의 밈이 시대정신을 대체해 가는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필자는 밈 정치는 과연 우리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가 궁금하다. 라디오, TV, 이메일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밈이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에 대한 찬양과 기대는 차고 넘친다. 내용이 단순해서 쉽게 전달된다. 수많은 이들이 쉽게 참여해서 원래의 콘텐츠를 변형하거나 뒤틀면서 무한 확장되고, 이를 통해 재미와 공감이 퍼져나간다 등등. 그렇다면 밈 던지기에 성공한 새 대통령은 온라인 밈이 상징하는 가치들, 즉 개방, 참여, 창의, 평등의 정치를 열어 갈 것인가? 예전에 시대정신을 내세웠던 선거운동이 하향식이고 엘리트 주도적이었다면, 밈의 정치는 시민들과 대통령 권력이 수평으로 소통하는 세계로 가는 길인가?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 ①첫째, 밈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개방, 참여, 창의의 가치와 선순환을 이루면서, 그동안 권력만 움켜쥔 채 경직되어 있던 기성 정치를 바꾸어 가는 희망의 시나리오. ②둘째, 후보들의 밈 던지기는 표를 얻기 위해 잠시나마 젊은 층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고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다시 과거의 제왕적 권력으로 돌아가는 회색 시나리오. 외국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밈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다가 흐지부지된 경우는 허다하다. 예를 들자면, 수십 년 만에 터진 엄청난 금융위기(2008년) 속에서 “그래 우리는 할 수 있어(Yes, we can)”라는 희망의 밈을 던졌던 미국의 오바마 후보는 처음에는 소통과 분산의 가능성을 가진 밈 리더로 보였다. 젊은 유권자들과 소외 계층은 오바마가 내뿜는 매력과 결합된 희망의 밈 던지기에 열광하였다. 하지만 백악관에 들어간 후, 공화당의 끝없는 견제와 오바마 본인의 고독하고 고고한 캐릭터가 드러나면서 오바마의 밈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다시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보면,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이번 봄에 선출되는 당선자가 과연 선거 이후에도 밈의 가치, 개방, 소통, 시민참여를 지켜갈 수 있는가에 있다. 우리 유권자들은 이미 여러 차례 부도난 약속을 경험한 바 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에는 온갖 소통과 분권, 참여를 약속했지만 당선 이후에는 청와대 깊은 곳에 홀로 파묻힌 대통령들을 여러 차례 겪어왔다. 40일 후면 등장하게 될 새 대통령 당선인이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소통의 밈을 이어가려 할 때 부딪치는 난관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가장 강력한 난관은 이미 알려져 있다. 바로 여야 정당의 ‘핵관’들이다. 여야 주요 후보 모두 정당정치의 경험이 짧기에 기성 정당에 포진하고 있는 중진의원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기는 어렵지 않다. 수십 년을 갈고 닦은 매끄러운 충성스런 태도와 말솜씨는 대통령의 판단과 시야를 가리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여야 정당의 핵관들이 득세하던 시기에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맥락 없는 발언과 시행착오로 어지러웠었다. 정리하자면, 밈이란 그저 스쳐가는 유행은 아니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 세대에게 밈은 일견 가벼워 보이지만, 그 발랄함은 부럽기도,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태어난 세대에게 밈은 뻣뻣하게 굳은 채 부스러져 가는 기성 권력의 해체이고 흥겨운 난타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밈 속에서 그들이 주인공이다. 결국 선택은 3월에 등장하는 새 당선인의 몫이다. 선거 때에만 밈을 이용했던 디지털 정치인으로 남을 것인지? 개방과 참여를 통한 밈 리더의 시대를 열 것인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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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예고된 재난, 인플레와 버블 공약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2년째 코로나에 갇혀 지내다보니, 재난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를 곰곰 돌아보게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뿌리는 우리 안에 있다. 코로나 위기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대하던 자연관(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앞의 욕망과 승부심으로 또 다른 재난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첫째는 세계 곳곳을 강타할 것이 확실한 글로벌 경제 인플레. 둘째는 무책임한 대선 경쟁이 키우는 버블 공약의 정치다. ■ 「 돈의 가치 추락하는 인플레 말의 가치 추락하는 버블 공약 버블 공약 누구도 제어 안해 솔직함과 용기가 리더의 요건 」 경제 인플레는 이미 생활세계 곳곳을 휘감고 있기에 우리 대부분이 고통스레 체감중이다. 수도권 부동산 폭등이 가져온 박탈감과 분노는 이미 재난 급이다. 게다가 마트의 식재료 값에서, 줄줄이 예고된 공공요금 인상에서, 솟구치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에서 우리는 인플레 폭풍이 몰려오고 있음을 안다. 얼마 전 미국 연준(FRB)이 인플레 관련 보고에서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표현을 지웠다는 뉴스는 그저 대폭풍 속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인플레가 몰고 오는 정치태풍을 감지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농무부, 연방무역위원회까지 총동원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이들 기관이 곡물 회사들의 반독점 행위를 뒤지면서까지 인플레 잡기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돈의 가치가 추락하는 글로벌 인플레에 더해 지금 우리 대선은 공약의 거대한 버블을 통해 정치 인플레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지난 10여년 역사적 저금리 시대에 무지막지하게 풀린 돈이 경제 인플레의 주요인이라면 정치 인플레는 대선 후보들이 쏟아내는 ‘약속의 홍수’ 때문이다. 세 가지를 짚어보자. ①유독 우리 대선에서 공약 버블이 극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②공약 인플레는 어떻게 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가? ③공약 버블-정부 능력약화-정치 불신의 악순환은 누가 끊을 것인가? 첫째, 공약 버블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까닭은 우리 정치에서 ‘말의 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감세를 요구하는 계층에게는 감세를, 일자리를 찾는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정부의 지원금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지원금 약속이 아낌없이 베풀어지고 있다. 30대 부부 직장인을 위한 맞춤 지원, 20대 취준생을 위한 맞춤 공약, 전국 방방곡곡에서 뿌려지는 다종다양한 지역개발 공약. 약속은 무제한으로 공급되지만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요즘 적지 않게 흔들리고는 있지만, 민주주의를 오래 운영해온 미국, 독일 등은 돈과 말의 가치를 유지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국, 독일 사람들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신주 떠받들 듯 하는 데에는 돈의 가치를 조절해 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그들이라고 항상 잘 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 국가들은 또한 대통령후보, 정당들이 내놓는 공약이 저렴하고 무책임하게 유통되는 것을 억제하는 데에도 노력해왔다. 오랜 역사와 전문성을 갖춘 언론과 싱크탱크들은 선거 공약들이 기존 법체계와 충돌하지는 않는지, 예산 확보의 현실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정밀히 따져보는 관행을 나름 갖추어왔다. 새해는 민주화 35주년이라지만, 후보들의 말의 값어치를 제대로 제어하는 곳은 우리 사회에 없다. 언론, 전문가, 싱크탱크들은 침묵하거나 후보들의 말잔치를 거들 뿐이다. 양식 있는 관료들은 걱정은 많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둘째, 버블 공약의 1차 피해자는 대통령 후보들 자신이다. 화폐가치가 추락하는 경제 인플레는 자산이 적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부터 타격한다. 반면에 버블 공약은 내년 봄에 당선되는 새 대통령의 발목부터 잡는다. 온갖 지원 공약, 개발공약 등이 뿌려졌지만 새해 5월 취임하는 대통령의 주머니에는 기존에 짜여진 2022년도 예산의 절반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권자들은 공약이 공약(空約)이었음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머지않아 대통령과 유권자들은 서로 등을 돌린다. 결국은 모두가 버블 공약의 피해자가 된다. 그렇다면 버블 공약-대통령 운영능력 추락-정치 불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누가 끊을 것인가? 네거티브로 얼룩진 우리 선거 현실을 돌아보면, 필자의 질문은 한가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한가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을 우리가 방치하는 동안 정치는 계속 추락해왔다. 역대 대통령들의 국정운영 능력이 후퇴한 배경에는 버블 공약이 있다. 또한 공약(空約)으로 쌓인 정치 불신이 오늘날 막무가내 정치의 밑거름이 되었다. 새해 아침부터는 화려하고 빈 약속보다는 솔직한 현실인식을 듣고 싶다. 거친 언어보다는 포용의 말을 듣고 싶다. 오래전 민주주의의 생존을 걸고 독일 파시즘과 대전을 벌이던 시기에 수상 직을 맡게 되자, 영국의 처칠은 시민들에게 솔직하게 약속하였다. “저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외에는 드릴 게 없습니다.” 처칠이 역사 속의 처칠로 등장한 순간이었다.(에릭 라슨, 『폭격기의 달이 뜨면』) 새해에는 선거판의 피투성이 승자보다, 솔직함과 용기를 갖춘 리더가 등장하는 꿈을 꾸고 싶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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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굿바이 2021, 움츠렸지만 희망도 있었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12월은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한해를 결산하는 시간이다. 정치 사회를 중심으로 보자면, 올해 연말결산은 이런 숫자들로 요약된다. 80%. 558조원. 7538회. 16억 시간. 42억8000만원. 앞의 세 숫자가 걱정과 우려의 수치라면, 16억 시간과 42억8000만원은 희망의 숫자이다. 80%는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율이며(엊그제 기준) 558조원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확정했던 올 정부 예산액이다. 역대 최대 규모이며 2018년의 447조원에 비하자면 무려 30% 늘어난 액수이다. 그리고 7538회는 올 3~6월 사이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소방청이 구조 출동했던 횟수이다.(소방청 자료) ■ 「 위축과 희망이 교차한 2021년 코로나 위기 속 국가는 팽창 시민들의 삶은 더욱 위축돼 정치오염 없는 곳에 희망 있어 」 한편 16억 시간은 세계인의 TV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역사를 바꿔놓으며 한국 드라마가 세계의 흐름을 쥐고 있음을 알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총 시청 시간이다.(11월 중순 집계 기준) 42억8000만원은 그룹 BTS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다”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아동, 청소년 폭력이 없는 세상을 향한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에서 모은 기부 금액이다. 걱정과 우려의 숫자들을 들여다보면 ①국가는 무서운 속도로 팽창한 반면 개인들은 움츠러든 한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접종 완료율이 80%에 달했는데도 끈질기게 괴롭히는 코로나 공포와 위기 속에서 개인들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위축되어 왔다. 반면에 방역 대응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국가의 역할은 마치 우주 빅뱅처럼 급격히 팽창해왔다. ②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발견한다.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그룹 BTS의 노래 ‘Answer: Love Myself’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세계 구석구석에 울려 퍼진다. 또한 K드라마는 올해 양극화(‘오징어 게임’), 작은 바닷가 마을 삶의 아름다움(‘갯마을 차차차’)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먼저 팽창하는 국가와 움츠러드는 개인들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대표적 방역 성공 국가인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은 진작부터 코로나는 전 세계인들의 삶의 증폭기가 될 거라고 예측한 바 있다. 권위주의 국가는 더욱 권위적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처할 것이고 코로나 위기 속에서 삶의 양극화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코로나 증폭기는 우리 사회에서 국가와 개인 간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크고 강력한 국가는 사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메말라가는 이중 경제화 흐름 속에서 예견되어왔던 일이다. 삶이 팍팍해질 때 사람들은 국가를 최후의 피신처로 여기고 의탁하려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재분배를 촉진하고 사회안전망을 짜는 역할들을 전부 국가가 해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수년 사이 국가 예산이 급팽창한 것은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과 끝없는 팽창을 즐기는 정부조직의 본능이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팽창하는 국가의 역할은 예산 씀씀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 보건 위기 속에서, 국가는 개인들의 일상생활을 두루 모니터링하고 추적하는 디지털 데이터 국가로 진화해가고 있다. 법에 근거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정부는 가족·친구·동창들이 언제, 어디서, 몇 명이 모일 수 있는지까지도 정해주는 24시간 라이프 매니저로 변신하고 있다. 문제는 급팽창한 국가는 시민들 삶을 섬세하게 살필 만큼 유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수백만 자영업자들이 그동안의 영업제한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을 입체적으로 추산하는 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더욱이 그들이 겪어온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과연 따듯한 손길을 제대로 내민 적이 있는가. 희망의 노래는 국가권력, 정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들려온다. 탈북민, 신용불량자 등 다양한 약자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양극화로 고통 받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 모았다. ‘갯마을 차차차’ ‘지옥’ 등으로 이어지는 K드라마는 다양한 이야기로 세계인을 웃고 울리는 글로벌 메신저가 되었다. 국내에서 힘깨나 쓴다는 공영방송, 드라마 제작사들이 외면했던 K드라마들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정치 권력에 기대지 않고 세계가 마주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끌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올해 우리가 확인한 희망이다. 그룹 BTS가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그 또한 너의 일부 너이기에/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BTS, Answer: Love Myself) 무한 팽창 중인 국가,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위기가 우리를 옥죄고 있지만 정치와 권력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청년들은 사랑과 내일을 노래한다. 희망은 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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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스트롱맨 후보들과 좁은 문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오늘 오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내년 3월 대선의 주요 구도는 스트롱맨 후보들 간의 대결로 짜이는 셈이다. 참으로 대조적인 인생 길을 걸어왔지만, 여야 1, 2번 정당 대선 후보들은 서로 간에 닮은 점이 없지 않다. 후보들의 캐릭터, 대표 공약, 지지자들의 기대를 들여다보면, 바야흐로 한국 정치에 스트롱맨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부드러운 덕장의 이미지보다는 강렬한 투사의 이미지가 이들을 대선 무대의 주연으로 끌어올렸다. 실제 대표 슬로건 역시 저는 “합니다” “정권교체 하겠습니다”로 요약된다. 스트롱맨 리더는 요즘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바람이다. 미국의 트럼프는 잠시 밀려나 있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대표적인 스트롱맨 리더들이다. 민주주의 세계에서도 스트롱맨 바람은 거세다. 세계 최대의 민주국가 인도는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형적인 스트롱맨 리더인 나렌드라 모디가 8년째 이끌고 있다. ■ 「 여야 모두 스트롱맨 후보 내세워 삶의 불안과 정치 불신이 요인 강한 리더십은 절반의 정치일 뿐 강한 리더, 사회의 기를 되살려야 」 지구촌 곳곳에서 스트롱맨들이 등장하고 우리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는 현상이 우연일 수는 없다. 두 가지 논점을 생각해보자. 첫째는 원인. 스트롱맨 현상은 고단한 삶에 대한 피로와 무능한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태풍이다. 삶의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박탈감과 기성정치의 파탄이 이들 강한 리더를 불러내고 있다. 둘째는 스트롱맨 리더의 역설적인 과제. 강한 리더는 미래로 가는 엔진의 한 축에 지나지 않는다. 뻣뻣한 나무가 태풍에 먼저 부러지듯이, 강한 리더만으로는 정치경제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누릴 수 없다. 강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사회(자율적인 시민사회와 언론)가 반드시 같이 기를 펴야만 한다. 과연 우리의 여야 스트롱맨 후보들은 강한 정부와 강한 사회가 함께 통과해야 할 좁은 문, 즉 삶의 질을 제대로 누리는 소수의 나라들만이 통과한다는 그 좁은 문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까. 먼저 스트롱맨 시대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흔하게 거론되는 이유를 이미 충분히 들어왔다. 경제 양극화, 빈곤층의 증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정치 양극화, 청년 실업의 폭발과 청년들의 좌절, 이민자들을 포함한 소수자들에 대한 적대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나 최근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배경 역시 양극화 사회의 허무와 좌절을 그려낸 까닭이다. 결국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정부와 정치의 역할이지만 사람들은 정부와 정치로부터 꾸준하게 배신당해왔다. 정부는 수백 조원의 돈을 교육, 주거, 실업해소, 청년고용에 쏟아 붓고 있지만,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져 왔다. 사람들은 안다. 복잡한 이론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그 수많은 돈이 관료제의 미로 속에서 그리고 경직되고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사실을. 정부를 감독하고 이끌어야 할 정치 역시 사람들을 배신해왔다. 여야 정당들의 무한 대립, 다수파의 이념 실험의 폭주 속에서 가난을 구제하고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정부의 정책은 덩치만 커졌을 뿐 실제 사람들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 쌓이고 쌓인 허무와 분노가 스트롱맨 후보들을 불러낸 셈이다. 기존에 정부가 일하는 방식, 기존에 정치가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트롱맨 후보들의 쾌도난마를 응원하고 있다. 복잡한 절차에 얽매이기보다는 당장 가시적 결과를 내놓겠다는 여당 후보의 공언은 적지 않게 메아리친다. 기존의 상식과 법 규범을 넘어서라도 폭주하는 부동산과 자영업 위기를 잡겠다는 약속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야권의 스트롱맨 후보 역시 기존의 쌓인 문제들을 속 시원히 정리했으면 하는 지지자들의 바람을 안고 부상하였다. 정부가 추진했던 최저임금 정책, 에너지 전환 정책, 부동산 정책, 사법 개혁정책 등이 불러온 혼란과 불안을 단번에 정리했으면 하는 것이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결국 여야의 열성 지지자들 모두 스트롱맨 후보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거대한 권력의 망치로 지금의 무질서와 좌절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당 스트롱맨 후보에게 바라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평준화의 망치라면, 야당 후보에게 기대하는 것은 질서 회복의 망치일 것이다. 어느 후보가 내년에 승리하든 우리는 스트롱맨 대통령과 5년을 함께하게 된다. 당파적 지지자들은 강한 대통령, 강한 정치에 열광하겠지만 강한 정치는 반쪽짜리 정치이다. 분명한 목표와 집요한 실행력을 지향하는 강한 정치는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민주정치에 질서를 부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강한 리더가 언론과 시민의 강한 견제를 받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이야기에 그치고 만다. 학자들은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은 강한 정치와 강한 사회가 공존하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이제 우리는 스트롱맨들과 함께 그 좁은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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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부족 전쟁의 정치, 냉담층이 멈춰세워야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이 글의 제목을 접하는 순간, 정치에 냉담한 독자들은 아마도 페이지를 넘겨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오늘 정치 냉담층만이 우리 정치를 구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거듭된 실망으로 냉담한 태도를 갖게 되었지만, 이들 냉담층의 역할을 통해서만 여야 정당이 벌이는 원시적인 싸움, 부족전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를 세 단락으로 나누어 이어가 보자. 첫째, 내년 대선을 겨냥하여 벌어지고 있는 여야 정당간의 살벌한 전쟁은 우리 민주정치가 30여 년 전 출발점에서 세웠던 타협과 공존의 정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렸음을 가리킨다. 둘째, 타협과 공존이 사라진 곳에 남은 것은 오로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으로서의 부족 전쟁뿐이다. 셋째, 이른바 ‘더불어족’과 ‘힘족’이 벌이는 부족전쟁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이들은 중간에 서 있는 정치 냉담층이다. 이들이 냉소와 외면을 떨쳐버리고 정치에 개입할 때에만 양극화된 부족전쟁을 멈춰 세울 수 있다. ■ 「 YS·DJ, 의회 토대로 타협과 공존 그 뒤로는 정치보복 진흙탕 싸움 ‘더불어족’ ‘힘족’ 권력투쟁 몰두 냉담층이 이분법 정치 완화해야 」 먼저 한국 민주주의가 타협의 정신에서부터 출발하였던 뿌리를 되돌아보자. 1987년 봄,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을 때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김대중, 김영삼 두 지도자는 군부세력의 절충안인 6·29 선언을 수용하였다. 민주화 세력 내부에서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양 김씨는 군부세력과 협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경제,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민주화로 나아간다는 데 합의하였다.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었고 수년간 해외 망명길로 내몰았던 군부세력과도 타협했던 리더가 김대중이라는 인물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단식투쟁, 의원직 제명 등의 험난한 길을 걸어왔지만 협약의 민주화를 함께 이끌었다. 각각 20대와 30대의 나이에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들은 근본적으로 의회민주주의자였다. 이들은 그동안 저항과 극복의 대상이었던 정치군인들과도 협상을 하는 타협의 민주 원칙을 온 몸으로 실천한 거인들이었다. 비록 불완전한 민주화와 내분으로 인해 1987년이 아니라 1992년이 되어서야 차례로 대통령직에 오른 김영삼, 김대중 시대에 굴곡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우리가 어쨌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누렸던 시대였다. 두 번째 이야기. 2002년 양김 시대가 저물면서 민주화의 주춧돌이었던 타협과 공존의 정신도 급격히 메말라갔다. 엉성한 논리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처음 시도된 것이 2004년이었다. 이후 정치보복과 법치, 진실과 거짓, 정의와 권력은 서로 엉망으로 뒤엉킨 채 우리 정치를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제 우리 정치에 남은 것은 양대 진영을 중심으로 한 정치 부족간의 권력전쟁뿐이다. 민주적 경쟁과는 거리가 먼 원시 부족 전쟁이 대선을 짓누르고 있다. ①선거는 우리와 저들의 전쟁이고 승부에 따라 권력을 쥐거나 죽게 되는 경기라는 믿음 ② 부족 내부의 결속은 엄중하며 한 치의 일탈이나 희미함은 용납되지 않는다. ③상대 부족은 없어져야 할 적폐이며 따라서 공격의 대상일 뿐이다. 부족 전쟁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관찰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은 파슈툰족, 타지크족, 우즈벡족, 하자라족 사이의 뿌리 깊은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정치 역시 오늘날 레드족(공화당)과 블루족(민주당)간의 부족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레드족은 아직도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선거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주별 선거결과를 연방의회가 승인하던 날 워싱턴 의사당을 습격한 강성 레드족의 난동은 부족전쟁의 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세 번째 이야기. 고대의 원시 전쟁처럼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살벌한 부족 전쟁을 지켜보며 중간층 시민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냉담층으로 변해가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외면의 결과는 혹독하다. ‘더불어족’이 승리하든 ‘힘족’이 승리하든, 중간층, 정치 냉담층은 점차 숨쉬기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과거 최상의 민주 헌법을 갖췄다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는 과정 그리고 지금 미국의 정치가 구제불능의 부족 전쟁으로 흔들리는 배경에는 모두 냉담층의 정치 거리두기가 작용해왔다. 부족 전쟁의 이분법 세계를 완화하고 순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은 오직 정치 냉담층에게 있다. ‘더불어족’이든 ‘힘족’이든 스스로의 세력만으로는 내년 봄의 승리를 가질 수 없다. 조만간 당내 경선이 끝나자마자 두 부족은 중간층과 중간지대를 향한 온갖 달콤한 약속을 내놓을 것이다. 이때 중간의 냉담층이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 민주화의 정신이었던 타협과 공존의 희미한 불씨나마 되살려낼 후보는 누구인가? 야당, 중간지대와도 대화하고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취임 이후에도 쉽게 저버리지 않을 인물은 누구인가? 청년세대의 42%를 차지하는(한국갤럽) 정치 냉담층이 부족 전쟁을 멈춰 세워야한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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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9·11 20주년과 아프간…두려움과 흥분을 넘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힘의 공백은 순식간에 혼란과 폭력으로 메꿔졌다. 우리가 지켜본 대로 미군이 떠나는 아프간 카불에서 테러, 탈주, 혼란, 공포가 한꺼번에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지난달 카불 공항의 아비규환의 뿌리는 20년 전의 끔찍했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은 초가을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던 세계경제의 수도였다. 가을 하늘만큼이나 미국인들의 자부심도 높이 솟아 있었다. 사회주의 소련은 무너졌고 미래의 경쟁자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었다. 미국은 세상 꼭대기에 홀로 서 있는 듯 보였다. 아침 8시 45분 알카에다 행동대원들이 보잉 767 여객기로 세계무역센터(WTC) 북쪽 타워를 들이받기 전까지는. ■ 「 혼란스런 철군이 두려움, 흥분 불러 하지만 한미동맹은 결속 강화 중 양국 대통령 5월에 동맹강화 합의 철군은 미국의 새 균형전략 시작 」 104층짜리 WTC 빌딩이 두 시간 만에 완전히 녹아내리는 동안, 미국의 자부심은 불같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해 초에 취임한 W 부시 대통령은 경험보다는 경박함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었다. 며칠 후 방송에 나타난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국가 간의 정규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쟁이었다. 곧 이어 알 카에다가 숨어 있다는 중앙아시아의 아름답고 척박한 땅,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미군이 탈레반 정권을 단숨에 무너뜨릴 때만 해도, 이 전쟁이 20년짜리 수렁인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지루한 전투와 지지부진한 국가건설 사업이 계속되는 동안 미군과 민간용역 전사자는 6000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아프간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들 20년 전쟁에 지쳐갈 무렵, 허풍장이 트럼프는 탈레반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평화협정 한 장을 덜컥 사인해놓고는 퇴장해버렸다.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부통령으로 아프간 전쟁을 다뤄봤던 바이든 대통령도 철군 날짜를 9월 11일로 못박을 때, 정치적 도박이라는 짐작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과 참모들은 미국 중산층의 회복과(아프간 군비의 절약!) 외교안보 정책을 연계한다는 새로운 외교 교리에 대한 믿음으로 기울었다. 미국 유권자들의 철군 지지 여론(50%) 역시 중대 결정의 불안감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효율적이고 평화적인 후퇴란 것이 역사에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카불 공항의 참상을 지켜보며 세계인들의 감정은 종종 두려움과 흥분으로 갈라졌다. ①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을 믿을 수 있는가? 미국은 언제든 일방적으로 떠날 수도 있는 동맹인가라는 의심과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②다른 한편 온 세계 일에 참견하던 미국이 이제 자기 앞가림에 바쁘고 바야흐로 미국의 시대는 기울고 있다는 반미(反美)의 흥분 또한 적지 않게 퍼져가고 있다. 두려움과 흥분은 늘 우리 곁을 맴도는 감정이지만, 국익과 안보를 챙겨주지는 않는다. 먼저 두려움의 감정부터 돌아보자. 가장 손쉬운 길은 지난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발표한 정상회담의 공동성명문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이 공동성명은 서울과 베이징, 평양, 도쿄의 전략가들을 깜짝 놀라게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공동성명에 그려진 한국은 미국의 신안보, 경제전략의 핵심 파트너다. 예컨대 문 대통령의 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세안 지역에서 만난다. 두 대통령은 아세안 지역에서 경제발전, 에너지 안보, 수자원 관리 등등의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를 넘어 수천㎞ 밖, 동남아까지 확장되고 있다. 또한 공동성명은 6G 네트워크, 친환경 EV 배터리, 전략물자, 바이오테크, 인공지능, 양자(Quantum) 기술 등 첨단 분야에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약속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의 선도자 격인 미국은 반도체, 모빌리티, 화학 등의 제조업 강국인 한국과 4차 산업혁명 동맹을 확고하게 다지려는 중이다.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은 화려한 외교문서로 끝나지는 않는다. 공동성명의 문구 하나 하나를 갖고 씨름하던 양국 관료들은 이제 합의사항들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면서 자신들의 정책 영역을 넓혀간다. 양국 기업들은 서로의 이익이 맞닿는 지점에서 밸류 체인을 더욱 강하게 결박해 가는 중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리스크는 미국이 어느 날 덜컥 떠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미 결속 강화에 따르는 주변 관리가 우리의 리스크이다. 다른 한편, 미국 패권이 못마땅한 반미주의자들이 혼란스런 미군 철수를 보며 느끼는 흥분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아프간 철군으로 체면을 구겼지만, 미국의 기술력, 압도적인 군사력은 달라진 바가 없다. W 부시 시절처럼 넘쳐나는 돈과 허영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좌충우돌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쇠퇴를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처럼 미국 내부의 양극화 해소, 중산층 회복에 힘을 집중한다면, 미·중 경쟁 시대는 꽤나 오래 지속될 것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가게 될 미·중 시대에 두려움이나 흥분이 우리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감정의 절제, 큰 흐름의 주시를 통해서만 미·중 경쟁의 시대를 헤쳐갈 수 있지 않을까.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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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내향적인, 너무나도 내향적인 대선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최고의 국경일인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드는 느낌은 숙연함과 착잡함이다. 수십 년 압제의 시대를 넘어 광복을 맞이했던 부모, 조부모 세대의 불굴의 의지는 여전히 존경스럽다. 하지만 광복을 전후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했던 강대국 정치의 구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점을 돌아보면, 착잡하다. 강대국 정치의 주체가 미국-소련에서 미국-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의 힘겨루기와 그 파장을 관리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은 그대로다. 여전한 강대국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광복절을 맞으면서, 필자가 주목하는 현실은 요즘 우리 정치의 내향적 흐름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이번에도 대통령 예비선거전을 지배하는 것은 대내 이슈들이다. 경쟁 후보에 대한 저열한 네거티브 공세가 잠잠하다 싶으면, 뉴스라인을 도배하는 것은 장밋빛으로 채색된 부동산 정책, 일자리 정책, 복지정책들뿐이다. 후보들에게 북핵, 미중 신냉전, 사이버 안보, 한미연합훈련 등은 부차적인 관심사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0위권의 통상국가로 올라선 우리의 시선과 태도가 내향적으로 흐르건 말건, 냉혹한 국제정치는 우리 삶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76년 전 독립 운동가들과 평범한 한국인들은 독립을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바쳤지만, 해방의 형식은 결국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권력정치의 입김에 좌우되었다. 2차 대전에서 40만 명의 전사자를 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 제국주의를 분쇄하는 최후의 싸움에서 소련 지도자 스탈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럽 전선에서 1천만 명의 전사자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생을 치르며 히틀러를 제압하고 독일 파시즘의 심장 베를린에 먼저 도달하였던 스탈린 군대는 부리나케 방향을 바꾸어 일본 제국주의를 꺾는 대일 전쟁의 막바지에 급히 뛰어들었다. 이는 결국 우리의 해방이 남북으로 허리가 잘리는 해방으로 이어지는 통한의 결과로 이어졌다. 2022년 대선이 대외 이슈보다는 국내이슈에 몰두하는 내향형 선거로 흘러가는 데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여야 주요 후보들이 대부분 법률가 출신들이라는 배경. 둘째, 후보들의 정책캠프 안에서 벌어지는 ‘위대한 대통령 프로젝트 신드롬’. 첫째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야 구분 없이 법률가 출신 후보들이 압도하는 특이한 선거이다. 선두권 후보들 가운데 다른 길을 걸어온 이는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 이낙연 전 총리뿐이다. 여당의 이재명 지사, 야당의 윤석열, 홍준표, 최재형 후보는 모두 법률가로 출발하여 공직, 정치인 경험을 쌓아온 후보들이다. 이들 후보들이 부상한 데에는 저마다의 배경이 있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외관계의 경험, 지식, 훈련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법률가 출신들이 전쟁과 평화의 줄다리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체득하기는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미·중 경쟁의 본질, 그에 대응하는 전략을 깊이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은 법률가 출신들에게는 벅찬 과제이다. 결국 주요 후보들은 강대국들이 부딪치는 사나운 바다를 항해해 본 경험을 쌓지 못한 채, 5년간 한국호를 이끌고 거친 바다를 헤쳐 가는 선장이 되어야 하는 처지다. 둘째, 사정이 이렇다보니, 후보들의 정책 준비를 조력하는 이른바 정책캠프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각 후보들은 나름의 전문성을 갖춘 전직 외교관, 국제정치학 교수들을 부지런히 충원하고 있고 이들의 규모는 후보 캠프들마다 수십 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가 걱정하는 바는 각 후보 캠프에서 벌어지게 마련인 ‘위대한 대통령 프로젝트 신드롬’이다. 대통령 연구자들은 모든 대통령들이 자신이 역사에 너무 늦게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초조함에 시달린다고 주장해왔다. 한국 외교사에는 이미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큼직한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다. 결국 후보들은 역대 대통령들을 뛰어넘을 ‘통일 대통령’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킨 대통령’이라는 거대 비전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정책 캠프 안의 충성 경쟁, 무책임성이 더해지면서, 각 후보의 정책캠프들은 화려하지만 비현실적인 대외정책 공약들을 쏟아내게 된다. 가을쯤이면 우리는 ‘비핵개방 3000’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한반도 평화’보다 더 거창한 공약들을 듣게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정책의 연속성, 현실적합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물론 민주주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내향적인 체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유, 인권, 평등을 중시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한 대외적 싸움은 애써 외면하거나 소심해지는 것이 글로벌 민주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년 3월 선출되는 대통령은 글로벌 통상국가, 미·중 경쟁의 한복판에 선 한국을 이끌어가야만 한다. 후보들이 역사책 속에 족적을 남기고자 한다면, 화려하고 무책임한 공약을 만들기보다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한·미 FTA,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앞에서 고뇌하던 전임자들의 번민을 한번 더 돌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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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내년 대선, 초(超) 대통령제 해소가 관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선거는 민주주의라는 변덕스런 정치가 정기적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타이다. 유권자들은 5년마다 과거의 선택들을 곱씹으며 공동체의 항로를 리셋해왔다. 선거는 또한 민주주의라는 백화제방 사회의 용광로이다. 저마다 중요한 수십, 수백 가지의 요구, 희망, 제안들은 후보들 몇 사람의 공약집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정치 시계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이니만큼, 막이 오른 2022년 대선 무대에 우리 사회의 온갖 고민거리와 걱정거리가 쏟아지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 중산층 경제, 지속가능 경제라는 공약부터 공정과 상식이라는 추상적 원칙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약속과 정책의 홍수 속에서, 필자는 앞으로 8개월간 초대통령제의 해소라는 관점에서 선거를 지켜보려 한다. 기왕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있지만, 지난 10여 년 한국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슈퍼맨 대통령이 이끄는 초대통령제로 변화해왔다. 대통령은 국회와 사법부 위에 우뚝 선 초월적 권력으로 어느덧 변신하였다. 대통령은 또한 시민 자유의 범위, 내용을 결정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정의 내리는 철인왕으로 올라섰다.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어쩌다 세계적 흐름이 되어버린 초대통령제의 길에 들어서게 됐을까? 둘째, 거대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초대통령은 왜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까? 셋째,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초대통령의 등장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초대통령제의 세계적 흐름부터 짚어보자.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꽤 오래 전부터 대통령제 정부에서 가장 위험스런(영어로 표현하자면 dangerous and disruptive) 존재로 대통령을 지목해왔다. 모든 정치체제는 권력을 최대한 끌어 모아 구심력을 발휘하려는 힘과 그에 맞서 저항하는 힘 사이의 줄다리기 과정 속에 있다. 대통령제 정부에서 권력을 과도하게 끌어 모으는 권력집중의 중심에는 바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대통령들은 헌법상 의회의 독점 권력인 입법 권력을 우회하는데 전념해왔다. 의원들과 끝없는 줄다리기를 해야만 하는 입법화 노력 대신에, 전임 트럼프나 현직 바이든 대통령 모두 법을 대체하는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남발해왔다. 트럼프는 임기 4년간 220건의 행정 명령을 발령하였다. 그 악명 높은 테러 위험국가로부터 미국으로의 여행금지 명령을 포함해서. 바이든 대통령의 페이스는 더 빠르다. 임기 6개월 만에 벌써 51건의 행정명령을 뿌려대고 있다. (7월 10일 기준) 입법, 사법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초대통령제(내각제 국가에서는 초수상제)는 중유럽, 남미에서는 훨씬 노골적이고 위험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의 카친스키나 헝가리의 오르반 등이 즐겨 사용한 수법은 이를테면, 갑작스레 법관들의 정년퇴임 연령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추고 퇴임에 따른 수많은 자리를 정권에 우호적인 법관들로 채우는 식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라는 책에서 한국의 초대통령제 현상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보수, 진보정부 구분 없이 청와대 조직과 예산은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초대통령제의 기반을 닦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통령이 국회, 정당을 대하는 방식이다. 탄핵으로 물러나기 전까지 전임 대통령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의 반대파까지 철저하게 외면하고 초대통령의 독주를 이어갔었다. 『청와대 정부』는 이런 양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한낱 대통령의 참모가 여당 의원들에게 ‘개혁입법’을 주문하고 독려하는 것은 입법부를 거느린 초대통령제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둘째, 모든 정책결정이 대통령의 손에 집중되는 초대통령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정치사회경제 이슈를 풀어가기에 부적합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의 결정적 특징은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매우 솔직한 체제라는 점이다. 자유롭고 솔직하게 제기되는 다양하고 방대한 이슈들을 대통령과 50~60대 남성 중심의 청와대 참모들이 해결해보겠다고 씨름하는 것은 낡은 계산기 한 대를 들고 21세기 우주개발 계획을 세우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셋째, 초대통령제라는 위태로운 흐름을 멈춰 세우기 위해, 필자는 후보들의 정책보다는 성품에 주목할 것이다. 내년 3월까지 쏟아지는 달콤한 정책 약속들은 실은 우리를 배신할 운명을 타고난 것들이다. 5000만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각자의 삶을 돌보는 거대한 사회에서 정책을 통한 삶의 기적이란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설익은 정책들이 삶을 흔들거나 혼돈 속에 몰아넣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안도할 따름이다. 정책과 달리 성품은 후보자들 스스로와 유권자를 속이기 어렵다. 후보들은 마음을 열고 두루 듣는 자세를 지녔는지? 민주 정치의 일상사인, 언짢은 이견을 계속 수용할 참을성과 도량을 갖췄는지? 단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겸손함을 체득했는지?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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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이준석, 도덕·담합·위선 정치를 넘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지난 일주일 뉴스피드를 도배하다시피 한 분석들을 모아보면 이렇다. ‘이준석 현상은 통쾌한 세대반란이다’ ‘이준석 현상은 파괴적 정치혁신이다’. 열광적 분석들이 쏟아지자 36세 젊은이의 도약에 대한 우려와 질투도 따라붙었다. 또한 시장 자유주의로의 퇴행일 뿐이라는 당파적 비판도 곁들여졌다. 젊은 야당 대표의 선출에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이준석 현상의 파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리라. 50대 후반의 필자가 이준석 현상에 담긴 MZ세대의 꿈과 희망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회과학적 해석 몇 가지를 독자들과 나눌 뿐이다. ①이준석 현상은 정치귀족들이 겹겹이 쳐놓은 담합 체제를 뚫는 혁명적 반전이다. ②이준석 현상은 불공정한 국가 개입과 간섭을 질타하는 청년들의 반란이다. ③이준석 현상은 우리 정치의 DNA에 깊이 새겨진 도덕과 명분 정치의 종언이다. 첫째 이준석 대표는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강한 맛 버전이다. 2017년 40세의 마크롱은 앙 마르슈(En Marche)라는 미니정당을 창당하고 그 후보로서 대통령 자리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새로운 인물의 제도정치권 진입을 저지하는 카르텔 정치의 장벽은 프랑스보다 한국이 월등히 높고 험하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주 당대표 선출을 위한 여론조사에서 2위 후보자를 두 배 이상 앞서고도 당원 투표에서 다소 뒤져 종합 집계로는 6%포인트 차로 승리하였다.(조직의 벽) 앙 마르슈와 같은 신생정당의 창당은 한국에서 더더욱 견고한 진입장벽과 마주친다. 우리 정당법은 정당설립 요건으로 최소 5개 이상의 시, 도당 조직과 각 시, 도당별 1천명 이상의 당원 확보를 규정하고 있다.(법의 벽) 결국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정당정치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집권당과 야당이 간판만 바꿔단 채 그들끼리의 카르텔을 유지하는 역사가 이어져왔다. 현 담합체제의 여당에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기득권을 이어왔고 국민의힘은 사회 각계의 명망가들이 주를 이루는 명사정당으로 이어져왔다. 이준석 대표의 선출은 이러한 명망가들의 담합체제를 흔드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후련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둘째, 적잖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준석 표 능력주의는 불공정한 국가의 개입과 이른바 586들의 가족 세습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청년들의 처절한 외침에 대한 메아리이다. 2019년에 펴낸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이준석 대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유”이며 “공정은 그 위에서 하는 달리기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당연히 그는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 쓰듯 진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소리 높여 반대해왔다. 수년간 고시원 골방에서 고생한 끝에 통과한 정규직 일자리를 그렇게 내주면, 그동안의 노력으로 통과한 사람은 뭐가 되느냐는 청년들의 절규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효율과 자유경쟁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준석 대표와 청년 지지층의 공명을 자유주의 연합의 탄생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대학생 작가 임명묵은 이렇게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임명묵,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공정에 대한 90년대 생들의 외침은 그들이 처한 심리적 압박과 가치의 퇴조라는 배경 하에서 형성된 정서적 기초가 특정이슈와 맞물려 터져 나오는 현상에 가깝다.” 시험과 그에 기반한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느끼는 불안 속에서 유일하게 예측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처연한 현실을 앞에 두고 이준석 현상을 그저 삭막한 시장주의로의 퇴행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말의 사치가 아닐까. 셋째, 이준석 대표의 말과 행동은 그동안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도덕의 정치, 명분의 정치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다. 일본학자 오구라 기조의 예리한 지적대로, 한국의 정치경쟁은 도덕과 명분을 차지하는 싸움이었다. 여당은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에 이어 인권, 환경 등으로 도덕 규범을 넓히며 세력을 확장해왔다. 야당은 산업화와 선진화라는 발전주의 규범을 권력경쟁의 축으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민주화의 이념과 역사가 성역화 되고, 다른 편에서는 박정희 모델이 신화화되어왔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더 이상 명분과 도덕에 기대지 말라고 외친다. 그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빗대어, “도덕주의 국가운영과 리더들의 도덕적 강박”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판한다.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실력을 갖춘 리더이며, 도덕과 명분의 탈을 쓴 정치는 퇴장하라는 그의 주장에 청년들은 박수를 치는 중이다. 결국 이준석 현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느덧 뻣뻣해지고 무감각해진 채 심통만 늘어난 제도권 정치에 대한 반란이다. 반란의 에너지는 사실 오랫동안 생활세계의 바닥에서 축적되어 왔다. 다만 이제야 논리와 순발력, 판단력, 마키아벨리적 냉정함을 두루 갖춘 젊은 리더를 통해서 폭발하고 있을 뿐이다. 이 폭발에는 여야가 따로 없을 것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