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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발리나'도 콩쿨 무대 섰다, 부캐 여럿 둔 슬래시족 등장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6.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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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발레 콩쿠르엘 나가다니요. 이 나이에, 이 몸으로 무대에 선다니. 관객은 물론 심사위원들에게도 못 할 짓 아닐까 싶었죠. 하지만 최근 어느 토요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 저는 무대 위에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만 발레리나이고 몸은 누가 봐도 ‘취발리나’죠. 네, 취미발레인이요. 직업병인 어깨 통증에 괴로워하던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발레학원을 다닌 지 벌써 10년째. 발레에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인 원장님의 엄격한 지도 덕에 실은 이번이 콩쿠르 첫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무대에 서는 건 약 80초. 다리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보려고 나름 짬짬이, 때론 새벽까지 낑낑댔건만 몸은 정직합니다. 나름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티튀드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니 에계계, 찔끔 올렸더군요. 부끄럽습니다. 프로 발레 무용수분들, 존경합니다.

발레 연습슈즈 비포 & 애프터. 전수진 기자

발레 연습슈즈 비포 & 애프터. 전수진 기자

흥미로웠던 건 해가 갈수록 저처럼 발레 콩쿠르에 도전하는 일반 직장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제 앞에만 해도 주중은 회사원 ‘본캐’로 살았을 청장년층 취발인들이 여럿이었으니까요.

비단 발레뿐이겠습니까. 저희야 어쩌다 발레를 마주쳤지만, 많은 분이 본업 아닌 다른 취미로 ‘부캐’를 갖고 있죠. 지난주 중앙일보 피플팀에 등장한 두 명의 인터뷰이도 그랬죠. ‘중화 요리의 달인’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울릉도를 누비는 자유인으로 등장했고,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보안을 담당하는 니콜라 르코르 씨는 인천부터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완주한 사이클리스트로 이름을 빛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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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본업 본캐뿐 아니라 부업과 부캐를 중시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트렌드인가 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인 CNBC가 최근 소개한 용어 중에 ‘슬래쉬(Slashie)’라는 게 있습니다. ‘슬래시 인간(a slash person)’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네요. 하나의 풀타임 본업만 가지는 게 아니라, 여러 부업을 한꺼번에 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CNBC에서 소개한 홍콩의 게리 청이라는 인물은 태권도 강사도 하고 동시에 스포츠 용품 판매 영업도 한다고 합니다.

‘줄이다’ ‘베다’ ‘낮추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 ‘slash’를 써서, 본업 하나에 쓰는 시간을 줄였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 같네요. 게리 청은 CNBC에 “나도 풀타임으로 하나의 직업에 올인한 적이 있지만 야근도 너무 잦고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며 “다양한 직업을 한꺼번에 하면서, 안정성은 덜하지만 인생을 더 충실히 산다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신계숙 교수가 '본캐'인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상선 기자

신계숙 교수가 '본캐'인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상선 기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울릉도를 질주하는 신계숙 교수. 전수진 기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울릉도를 질주하는 신계숙 교수. 전수진 기자

슬래시 족은 좀 극단적 케이스겠죠.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 특히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현 20대~30대 초반)에겐 본캐만큼이나 부캐도 중요한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부캐를 통해 본캐의 효율도 높아졌어요. 이름은 밝히기 어렵지만, 업계 남자 대 선배 중 한 명은 몇 년 전 “탱고를 배우고 있는데 미치도록 재미있다”고도 하셨죠. 시간이 있어서 부캐 취미를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재미가 있다 보니 없는 시간도 만들게 되는 거겠죠.

신계숙 교수의 말이 계속 맴돕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가 있다면 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모두 화이팅!” 

중앙일보 독자분들, 다가오는 한 주도 모두 화이팅입니다.

전수진 투데이ㆍ피플뉴스 팀장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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