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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저널리즘 팔았다? 억만장자가 산 美신문사들의 지금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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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AP=연합뉴스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AP=연합뉴스

“호화 요트를 왜 사? 그 돈으로 신문사를 사지.”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4월 실었던 억만장자의 신(新) 소비 풍속도 분석기사 제목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고 억만장자의 숫자도 늘었는데, 이 신흥 부자들이 눈독 들이고 있는 핫한 매물 중 한 분야가 언론사들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일부 군소 매체들 얘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부터 보스톤글로브와 같은 유수 매체도 포함돼 있습니다. 저널리즘 영화의 대표적 수작으로 꼽히는 ‘스포트라이트’(2015)는 보스톤 글로브 기자들의 실화였죠. 지역 성직자들의 아동 성폭행의 진실을 파헤치는 지난한 과정을 담았습니다. 넘쳐나는 명대사 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들. 배우 리브 슈라이버(왼쪽 두 번째) 가 마틴 배런 보스톤글로브 편집국장 역할을 연기했다. [사진 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들. 배우 리브 슈라이버(왼쪽 두 번째) 가 마틴 배런 보스톤글로브 편집국장 역할을 연기했다. [사진 팝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억만장자들이 사들인 신문사들은 독립성을 잃은 것 아니냐고요? 신문사들이 억만장자의 돈에 항복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저널리즘을 희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죠. 하지만 NYT 기사 내용은 달랐습니다.

NYT는 “억만장자들은 보통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운을 뗐지만 “하지만 그들 일부는 언론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시민사회에 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합니다.

보스톤 글로브를 사들인 억만장자는 존 헨리입니다. 부인인 린다 헨리도 신문사 경영 일선에 함께 뛰어들었습니다. 존 헨리는 콩 농사를 대규모로 짓던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나 투자가로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보스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서 보스턴 현지 야구팀인 레드삭스부터 보스톤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보스톤 글로브까지 수중에 넣었죠. 그의 부인 린다가 편집국을 총괄하는 매니징 에디터를 맡았습니다.

'보스톤'의 인터뷰에 응한 린다 헨리. 남편 존 헨리가 보스톤 글로브를 매입한 뒤 신문사를 총괄하는 매니징 에디터를 맡은 직후 사진입니다. [보스톤 기사 캡처]

'보스톤'의 인터뷰에 응한 린다 헨리. 남편 존 헨리가 보스톤 글로브를 매입한 뒤 신문사를 총괄하는 매니징 에디터를 맡은 직후 사진입니다. [보스톤 기사 캡처]

그렇다고 보스톤 글로브가 존 헨리 부부의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추락했을 거란 지레 짐작은 틀렸다고 합니다. 세상사, 그리 간단하지 만은 않으니까요. 보스톤 현지 매체인 (이름도) ‘보스톤’은 부인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죠.

“가장 중요한 건 보스톤 글로브를 인수해서는 돈을 못 번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이 부부가 인수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성공을 비는 게 우리 모두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부유할만큼 부유한 이들이 위기에 몰린 저널리즘의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거였죠.

LA타임스를 인수한 인물은 자수성가한 중국계 의사 패트릭 순시옹(黃馨祥)입니다. 그는 외과의로 이름을 알린 뒤 당뇨병 관련 의료 특허를 다수 취득해 의료 사업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오른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LA타임스를 인수했죠. LA타임스의 노먼 펄스타인 전 편집국장은 NYT에 “주인이 바뀐 뒤 LA타임스가 더 나아졌다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편집권의 독립은 보장됐고, 오히려 자금 안정성이 확보되면서 더 나은 저널리즘을 추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죠. 유료화부터 디지털까지, 저널리즘이 목도한 새로운 도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워싱턴포스트(WP)는 이미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에게 매각됐었죠.

패트릭 순시옹 박사의 트위터 대문. [트위터 캡처]

패트릭 순시옹 박사의 트위터 대문. [트위터 캡처]

그나마 미국은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이 기사를 쓴 NYT는 유료 디지털 구독자가 이미 500만을 넘어섰고 1000만명이 목표죠. 한국은 어떨까요. 2021년 8월25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 박탈)’이라는 말도 나오는 형국입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지요. 자본이 아니라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도 보장 받지 못한 것, 그게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은 아닌지 씁쓸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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