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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바꿔줘 네가 죽었잖아" 20년 지나도 안마르는 9·11 눈물[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9.11 05:00

업데이트 2021.09.1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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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순간.

9·11 테러 순간.

비행기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를 꿰뚫은 지 꼭 20년 되는 날입니다. 3000명이 넘는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테러가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과, 우리 모두의 여행 방식을 바꾼 그 후, 강산은 두 번 바뀌었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들 손쉽게 말하지만, 이들의 상처는 진행형입니다.

9·11 테러 당일. 건물이 무너지자 속수무책이었던 이들은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이렇게. AP=연합뉴스

9·11 테러 당일. 건물이 무너지자 속수무책이었던 이들은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이렇게. AP=연합뉴스

미국 매체들이 쏟아낸 특집 기사들 중 추려서 재구성했습니다.

현장에 모여든 자원봉사자들과 소방관들. AP=연합뉴스

현장에 모여든 자원봉사자들과 소방관들. AP=연합뉴스

“그날 죽었어야 했던 건 나야”   

내 이름은 레이먼드 파이퍼. 뉴욕 남부 로어 맨해튼 담당 소방서에서 일했지. 2001년 9월 11일 WTC 담당 소방관은 나였어. 하지만 와이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됐고, 막역한 동료인 머카도에게 부탁해 당직을 바꿨지. 잘생기고 호감형에다 성격까지 좋았던 머카도 녀석. “임마, 당연히 바꿔줘야지”라고 했어. 덕분에 여행지에서 골프를 치는데, 11일 오전에 미친듯이 호출이 오는 거야. 당장 복귀하라고. 뭐? 비행기가 WTC를 관통했다고? 설마. 골프채를 던지고 달려가는데 머릿 속이 하얬어. 머카도는? 도착해서 알았어. 현장에서 바로 죽었어.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테러 발생 후 몇 달을 집에 안 들어갔어. 현장에서 지냈고 와이프가 옷가지를 가져다줬지. 머카도의 와이프도 현장에 종종 왔는데, 우리 모두 그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 그날 이후 내가 웃은 것을 본 기억이 없다고, 와이프가 말하더군. “당신 괜찮은 거 맞아?”라고 와이프가 물으면 난 이렇게 대꾸했어. “자기야, 바보같은 질문인 거, 알잖아.”
그래도 와이프 덕에, 애들 때문에 살았지. 근데 수년 전, 암 진단을 받았어. 어떤 기분이 들었는 줄 알아?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 다행이다. 이런 고난을 나는 받아 마땅하다고, 내 죗값을 치르는 기분이었지. 다행히 회복은 했어. 이젠 조금이나마 농담도 하곤 하지. 하지만 아직도 미안해.

(워싱턴포스트 9월10일자 기사에서 재구성)

9ㆍ11 현장의 소방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AFP=연합뉴스

9ㆍ11 현장의 소방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AFP=연합뉴스

“멍!멍!멍! (여기! 사람! 있어요!)”

110층 짜리 쌍둥이 건물, WTC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대활약을 했던 존재들은 소방관들 외에 또 있었습니다. 구조견들이죠. 이효리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아지는 사람보다 조금 빠른 시간의 속도로 삽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생명과 시신을 구해냈던 구조견들은 모두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뉴욕타임스(NYT)의 지난달 30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들 구조견을 추모하는 전시가 지금, 맨해튼에서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구조견들이 매캐한 공기를 가르고 흙더미 속에서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키가 43㎝에 불과한 랫테리어인 리키는 몸집이 작은 덕에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고요. 저먼 셰퍼드인 트래커는 용맹하게 현장을 누비다가 그만 독성 가스 물질을 잘못 흡입해 이틀만에 숨졌습니다. 골든리트리버인 라일리는 유독 한 장소에서 계속 짖었는데요, 그 밑을 수색해보니 여러 명의 소방관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답니다. 라일리의 반려인 크리스 셀프릿지는 NYT에 “현장에 달려가면서 우리는 적어도 수백명을 구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고 허망해했습니다.

테러의 잔해를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한 행인. AFP=연합뉴스

테러의 잔해를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한 행인. AFP=연합뉴스

“나는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내 이름은 거넬 구즈만. 하지만 많은 이들은 나를 9ㆍ11의 마지막 생존자라 부른다. WTC의 북쪽 타워의 64층에서 사무실 임시직으로 근무 중 변을 당했어.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와 잠시 베이글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굉음이 들렸거든. 멀리에서 뭔가 폭발물이 터지는 소리 같았지. 창밖을 내다보니 글쎄, WTC가 강풍에 시달리는 야자수처럼 휘어지는 거야. 수천장의 종이가 날리고 사람들이 떨어지고. 그 다음은 기억이 없어. 나도 떨어졌으니까.
눈을 떠보니 캄캄했어. 잔해물 사이 완전히 갇혀있었지. 몸 한 쪽은 마비가 됐고 건물 잔해에 깔려서 숨도 쉬기 어려운 지경이었어. 가장 무서운 건 이대로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죽을 수 있다는 공포였어.
“살려주세요”라고 계속 힘껏 목소리를 냈어. 움직일 수 있는 손을 휘적였더니 다행히 그리 깊게 묻힌 건 아니었나봐. 곧 누군가가 “갑니다, 조금만 버텨요!”라고 하더군. 그 이후엔 기억이 잘 안나. 몇일 후 병원에서 깨어났지. 내 다리에 강철 빔이 박혀있었대. 수술도 여러 번 했지.
20년이 지나 난 올해 쉰 살. 50년을 살았지만 WTC 잔해에 갇혀있던 27시간이 더 길게 느껴져. 그 이후 삶은 모든 순간이 기적이야.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
(WP 9월10일자 기사에서 재구성)

잔해로 인해 뿌옇게 된 뉴욕 맨해튼. 행인들이 테러 현장을 충격에 싸여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잔해로 인해 뿌옇게 된 뉴욕 맨해튼. 행인들이 테러 현장을 충격에 싸여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인 생존자도 여럿 있었습니다. 제가 햇병아리 시절 영어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한 분을 인터뷰하기도 했죠(https://koreajoongangdaily.joins.com/2003/01/06/features/--it-was-a-Hollywood-blockbuster/1908380.html?detailWord=). 한국 대기업의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던 분이었습니다. WTC 북쪽 타워 68층에서 비상계단으로 필사의 탈출을 했죠. 20년 지나 그 분을 다시 찾아볼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당시 그 분의 표정에 서렸던 고통이 떠올랐습니다. 굳이 찾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테러 현장을 바라보며 서로를 부둥켜안은 행인들. AP=연합뉴스

희생자 추모 명패에 적힌 남편 앞에서 아직도 오열하는 부인. 로이터=연합뉴스
테러 다음날 희생자를 추모하는 뉴욕 시민들. AFP=연합뉴스
2001년 12월, 석달전의 테러를 추모하며 성조기 앞에 선 미국 해군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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