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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Gyeran Bap'에 빠졌다…"마법의 맛" 저격한 한국계 셰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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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스타 기자, 에릭 준호 김. [본인 제공]

뉴욕타임스의 스타 기자, 에릭 준호 김. [본인 제공]

“이번 주말엔 Gyeran Bap(계란밥)에 도전하세요.”  

지난 9월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랭킹 1위 제목이다. 한국계 미국인 2세인 셰프 겸 푸드 라이터, 에릭 김(Eric Kim)이 “계란을 부쳐서 뜨거운 흰 밥 위에 간장과 참기름을 뿌리고 때론 버터를 약간 곁들여 먹는 한국의 대표적 간편식”이라고 소개한 기사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나 자신도 어린 시절 계란밥을 먹으며 자랐기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며 자신의 이름을 ‘에릭 준호 김’이라고 강조했다.

NYT 쿠킹의 '계란밥' 기사. 지난 9월말 '가장 많이 본 기사' 중 하나였다. [NYT 캡처]

NYT 쿠킹의 '계란밥' 기사. 지난 9월말 '가장 많이 본 기사' 중 하나였다. [NYT 캡처]

에릭 김은 “김(gim)과 같은 해조류를 솔솔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고 소개하며 한국어를 영어로 그대로 옮겨 ‘gim’ ‘gyeran bap’이라고 표기했다. 의도적이다. NYT의 인기 코너인 쿠킹(NYT Cooking)의 대표주자인 그의 전매특허는 ‘gochujang(고추장)’이며 ‘bulgogi(불고기)’, 때론 ‘ganjang gejang(간장 게장)’ 등 한국어를 그대로 등장시킨 레서피들이다. 한국어의 감칠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장치다.

‘계란밥’ 기사엔 미국인 독자들이 “아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요리한다”(윌슨) “(인도계인) 나는 김 대신 볶은 시금치를 넣어봤다”(프라카쉬) “오우 와우, 그냥 와우, 이 레서피 평생 찜”(질리)라는 댓글을 달았다. NYT 쿠킹의 에디터인 샘 시프턴(Sam Sifton)도 뉴스레터에서 “에릭이 소개했던 냉면도 훌륭했지만 이번 주말엔 계란밥을 요리해볼 작정”이라고 썼다.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한식은 특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걸 ‘계란밥’ 레서피가 시원하게 깨줬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아무도 큰 목소리로 말하진 않지만 진정 중요한 기본이 있지 않나. 내겐 계란밥이 그렇다. 심플한 요리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누구에게나 친숙함을 불러 일으키는 그 특유의 감칠맛 덕이다. 계란밥처럼 먹으면 편안한 요리(comfort food)를 하면 누구든 훌륭한 집밥 요리사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어떤 요리에든 참기름이 들어가 있으면 바로 집 생각이 난다.”  
한식의 매력은.  
“한국 음식의 맛 그 깊은 곳엔 마법 같은 게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력을 갖고 있는 마법이다. 내 레서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마법을 전파하고 싶다. 미국인에게 맞추기 위해서 한식 고유의 맛을 약하게 바꾸거나 조절할 필요 없다. 미국은 너무 오랜 기간 미국인의 입맛을 중심에 놓아왔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미국인도 이젠 글로벌한 재료로 팬트리를 채우고 다양한 요리를 하고 싶어한다. 고마운 변화다.”  

최근엔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이라는 첫 책도 냈다. 한국계 미국인 셰프이자 푸드라이터로서의 자신의 스토리와 한식 레서피를 녹였다. 미국 애틀랜타로 이주한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차남으로 자란 그는 계란밥뿐 아니라 스팸을 넣은 김치볶음밥부터 간장게장 등을 먹으며 자랐다. 김치볶음밥엔 특별한 스토리도 녹아있다. 그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부모님에게 털어놓은 날 밤에 얽힌 일화다. 그의 얘기를 옮긴다.

“부모님에게 ‘나는 게이야’ 다섯 글자를 말하는 게 참 어려웠다. ‘그럴 리 없다’고 우시는 부모님과 밤늦게까지 얘기하다 어느 순간 엄마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김치볶음밥 먹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김을 솔솔 뿌린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엄마의 이 김치볶음밥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신다는 의미가 녹아있구나.’”  

에릭 김의 어린시절 함께 한 어머니. 그는 "어머니야말로 최고의 한식 셰프"라고 말했다. [에릭 김 제공]

에릭 김의 어린시절 함께 한 어머니. 그는 "어머니야말로 최고의 한식 셰프"라고 말했다. [에릭 김 제공]

미국으로 이주해 열심히 가족을 꾸리고 뿌리를 내린 부모님 스토리는 영화 ‘미나리’를 연상시킨다.  
“‘미나리’처럼 한국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참 멋지다.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에서 자리잡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도 ‘한국 음식에 대해 글을 쓰는 미국 사람’이 되려고 갈등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다.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의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많은 이민자 가정의 공통된 이슈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한국 음식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거 맞아?’”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연합뉴스]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연합뉴스]

그의 한식 소개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NYT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한식이라는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글로벌 푸드의 맥락에서 소개하기 때문이다. 계란밥 기사도 그랬다. “일본에선 뜨거운 밥 위에 날달걀을 그대로 깨뜨려 젓가락으로 저어 부드럽게 먹는 ‘다마고 가케 고항’이 있고 인도네시아와 푸에르토리코에도 계란을 넣어 쌀과 함께 먹는 요리가 있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한식만의 고유한 매력은 그대로 지킨다.

그는 “나는 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 그리고 한국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며 “가장 좋았던 때는 ‘감자 사라다’ 기사를 보고 한 한국계 독자가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해줬을 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사는 한국계 또는 비(非) 백인 아이들은 누구나 내적 갈등을 겪는다”면서도 “하지만 이젠 하나의 정체성만을 진짜라고 느끼지 않고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에 안도한다”고 전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또다른 스타 한식 유튜버인 ‘망치’나, ‘미나리’의 주연배우 스티븐 연 등의 인기가 반갑다고 했다.

에릭 김이 펴낸 책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에릭 김 제공]

에릭 김이 펴낸 책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에릭 김 제공]

첫 책이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는 벌써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식과 관련한 에세이라고 했다. 그는 “한식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며 “김치찌개가 김칫국에서 부대찌개 등 다양한 요리 레서피로 간다는 게 한식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실패한 요리 아닌 요리가 하나 있다. ‘오징어 게임’에 나온 달고나다. 그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달고나 사진에 대해 묻자 “찍어낸 모양을 남기며 먹는 데 실패했다, SOS”라고 농담을 덧붙였다.

셰프가 지치고 배고플때 한 가지를 요리해 먹는다면 뭘 먹을까. 그에게 묻자 그는 이런 천상 ‘한국 사람’다운 답을 내놨다.

“당연히, 계란밥! 음 근데, 라면도 맛있는데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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