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의 ‘병풍’으로 기억될순 없다…누리호 해낸 ‘히든 피겨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0.23 05:00

업데이트 2021.10.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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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캐서린 존슨이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폴로 11호 달 착륙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죠. 지난 21일 한국이 쏘아 올린 작지 않은 로켓, 누리호(KSLV-ll)를 보며 모두가 감동을 나눴던 이유일 겁니다. 2020년 작고한 캐서린 존슨은 아폴로 11호 등, 미 항공우주국(NASA)의 주요 프로젝트에서 수학 계산을 담당했던 로켓 과학자입니다.

그가 계산해낸 궤도 안착 각도가 모듈 값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NASA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하죠. 물론 존슨 한 명의 성과가 아닙니다. 수백명의 동료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묵묵히 일한 결과입니다. 이 중에서도 존슨이 각광을 받는 건 그가 여성이면서 흑인으로 여러 차별을 돌파했기 때문이죠.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그의 인생 드라마를 잘 그려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회의에도 참석 못 하고 출입문도 별도로 써야 했던 이들이 실력 하나로 유리 천장을 부수고, 남성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며 인류의 우주 개발 첫걸음을 내디디는 이야기죠.

'히든 피겨스' 중 존슨이 NASA의 백인 남성 과학자들도 못 풀던 수식을 해결하는 장면. [영화 공식 스틸컷]

'히든 피겨스' 중 존슨이 NASA의 백인 남성 과학자들도 못 풀던 수식을 해결하는 장면. [영화 공식 스틸컷]

1918년생인 존슨은 2020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2015년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유 훈장’을 받았습니다. 미국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훈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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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학자들은 어떨까요. 누리호 사업을 이끌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고정환 본부장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는 21일 언론 브리핑에서 누리호가 궤도 안착엔 실패했다고 설명하면서 ”이 과정을 성공이나 실패로 규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갈라졌죠. 고 본부장 뒤엔 250여명의 항우연 남녀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국내 300여 개 기업과 500여 명의 민간 기업 관계자도 함께 했죠. 누리호가 ‘팀 코리아(Team Korea)’의 성과인 까닭입니다.

발사 당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직접 발사 현장을 찾아 힘을 실어준 것까진 좋았는데 과학자들을 병풍처럼 삼았다는 논란의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히든 피겨스’의 이 장면, 기억나시나요? NASA의 우주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박수 세례를 받던 한 남성 우주비행사가 환영 행사에서 돌발행동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당시의 인종 및 성차별 때문에 환영행사 앞줄에 못 끼고 옆에 비켜있던 존슨을 비롯한 여성 흑인 과학자들에게 성큼 다가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죠.

“이 여성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 없겠죠. 감사합니다.” 

이런 장면은 대한민국에선 언제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누리호가 탑재한 위성 모사체 이미지. 내년 5월, 기대합니다.

누리호가 탑재한 위성 모사체 이미지. 내년 5월, 기대합니다.

누리호의 성공은 누리호만의 성공이 아닙니다. 앞서 1993년의 과학로켓 1호(KSR-)부터 시작된 한국의 우주개발 역사의 맥락이 있습니다. 2013년 나로호의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 누리호, 그리고 내년 5월의 시험 발사가 가능했을 겁니다. 로켓 과학의 복잡한 수식은 모르지만, 이건 상식이겠죠.

누리호의 히든 피겨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내년 5월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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