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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쥴리’ 아닙니다…한가위에 돌아온 1인3역 '쉰살' 줄리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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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줄리. 1995년 작 '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영화 공식 스틸컷]

우리가 사랑했던 줄리. 1995년 작 '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영화 공식 스틸컷]

벽화의 그 ‘쥴리’가 아닙니다. 배우 줄리 델피,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인 그가 돌아왔습니다. 지난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부터 시작일까(On the Verge)’의 주인공이자 각본가 겸 감독 1인 3역으로 말이죠. 미국에선 14일(현지시간) 현재 많이 본 콘텐트 7~8위를 달리는 화제작입니다.

신작 드라마에서 1995년작인 ‘비포 선라이즈’에서 빛났던 줄리, 아니, 델피의 청초한 이미지는 없습니다. 삶에 찌들고 세상에 지친 중년의 워킹맘으로, 뿔테 안경에 넉넉해진 체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실제 나이 만 51세인 그는 뉴욕타임스(NYT) 14일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다들 왜 자기 나이로 보이는 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죠? 왜 ‘지금의 50세는 옛날로 치면 30세야’라는 말을 하는지. 나는 ‘신(新) 서른’ 따위가 아니라 그냥, 쉰살이에요.”  

줄리 델피가 뉴욕타임스(NYT) 기사를 공유한 인스타그램. 그의 신작 드라마에선 "페이스북은 죽었어! 이젠 인스타의 시대야"라는 대사도 등장한다. [Julie Delpy Instagram]

줄리 델피가 뉴욕타임스(NYT) 기사를 공유한 인스타그램. 그의 신작 드라마에선 "페이스북은 죽었어! 이젠 인스타의 시대야"라는 대사도 등장한다. [Julie Delpy Instagram]

한 살이라도 어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싶지만, 그는 프랑스판 ‘내 나이가 어때서’를 이어갑니다. 현실 인식도 똑 부러집니다. 델피의 극 중 남편은 그에게 이렇게 돌직구를 던지죠. “미안하지만 (당신) 또래 여성에게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명도 없다고.”

델피는 NY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년 여성에게 세상은 잔인해요. 가임기가 지나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니까. 그러다 70세쯤 돼서야 할머니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그 사이는 사각지대(dead zone)란 말이죠.”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 이중국적자인 그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동안에 집착하는 한국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겠죠. 이번 추석에도 일부 몰지각한 친지 및 지인은 팬데믹을 뚫고 어렵사리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 외모 평가에 바쁘실 겁니다. 추석 지나면 아뿔싸 곧 2022년이 성큼, 한 살 더 먹네요.

이 영화 포스터들 알면 옛날 사람이겠네요. 가운데가 줄리 델피가 주연한 '블랑(화이트)'. [영화 공식 스틸컷]

이 영화 포스터들 알면 옛날 사람이겠네요. 가운데가 줄리 델피가 주연한 '블랑(화이트)'. [영화 공식 스틸컷]

줄리 델피는 수년 전부터 각본가와 감독으로도 외연을 넓혀왔습니다. ‘비포 선라이즈’로 시작된 일명 ‘비포’ 시리즈에서도 상대 배우 에단 호크와 함께 각본에도 참여했고, 직접 연출한 작품도 여러 편입니다. 동시에 '비포' 시리즈의 상대 배우인 호크와 동등한 출연료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도 하는 등, 세계 영화계의 성평등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델피가 직접 참여한 작품의 키워드는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여성’으로 수렴합니다. 그는 드라마 공개를 앞두고 W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도 “난 뭔가를 꾸미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죠.

그렇다고 “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이렇게 늙읍시다”라는 교훈 가득 드라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섹스 앤 더 시티’와 같은 화려함도 전무하죠. 40~50대 여성인 주인공 넷은 모두 삶이 버겁습니다. 인턴 면접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불합격하고는 “난 46세야, 96세가 아니라고” 버럭하거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날 남편이 집을 나가버리는 사업가, 아버지가 모두 다른 세 아이를 혼자 기르는데 실직해서 용돈도 주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델피는 성공한 오너셰프이지만 “40대에 커리어를 바꾸려면”이라는 구글링을 몰래 계속합니다. NYT가 “보다 보면 불편하고 묘하게 모욕감마저 느껴지는데, 동시에 현실감이 넘쳐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된다”고 평한 이유죠.

'지금부터 시작일까'의 스틸컷. 왼쪽에서 두 번째가 델피다. [넷플릭스]

'지금부터 시작일까'의 스틸컷. 왼쪽에서 두 번째가 델피다. [넷플릭스]

현실을 사는 것만도 힘든데 굳이 왜 현실을 드라마에서까지 봐야 할까요. 델피는 NY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나이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뭔가라도 되는 것처럼 굴 필요도 없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죠.”

‘줄리’라는 이름에 괴상한 흥분을 했던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옵니다. 2022년 한살을 더 먹기 전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성장하며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평온한 명절 되시길-.

'비포' 시리즈 중 최근작인 '비포 미드나잇.' 중년이 된 부부의 솔직한 대화가 매력. [영화 공식 스틸컷]

'비포' 시리즈 중 최근작인 '비포 미드나잇.' 중년이 된 부부의 솔직한 대화가 매력. [영화 공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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