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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부끄럽다고 숨기려는 관료들 발상 한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 홍보의 문제점과 대안을 조목조목 짚었다. 왼쪽부터 앤드루 새먼, 다니엘 튜더, 마크 러셀, 조 맥퍼슨, 마이클 브린. 조용철 기자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모든 건 ‘낭만 버섯’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뉴욕에서 한국 식재료를 홍보하며 ‘낭만적인 버섯(romantic mushroom)’ ‘엄청난 미역(fabulous seaweed)’ ‘신나는 김치(exciting Kimchi)’ 콩글리시 문구를 쓴 게 알려져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 해프닝이 한국을 제대로 홍보할 방안을 끌어내는 논의로 이어지지 못한 데 있다. 이에 중앙SUNDAY가 외국인 5명에게 솔직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청했다. 한국에 10년 이상 거주하며 한국 문화 관련 책을 낸 이들이다.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앤드루 새먼 워싱턴타임스 특파원, 마크 러셀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조 맥퍼슨 ‘젠 김치’ 블로그 운영자다. 이들은 지난달 31일 두 시간 동안 비판과 제언을 쏟아냈다.

`신나는 김치’ ‘낭만적인 버섯’ 등의 영어 문구로 한국 식재료를 홍보한 이 광고지들은 버스에 부착돼 뉴욕 곳곳을 누볐다.‘ 인생이여, 맛있어져라’는 문구도 보인다.

대담은 ‘낭만 버섯’ 캠페인에 대한 질타로 시작했다. 조 맥퍼슨이 “개그 프로그램 광고인 줄 알았다”며 포문을 열자 마이클 브린은 “난 ‘낭만 버섯’이라길래 무슨 마약 광고인가 싶었다”고 가세했다. 브린은 이어 “단어의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고 얼추 좋게 들리는 말을 무작정 쓴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크 러셀은 “영어 형용사 가운데 일반적으로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를 골라 갖다 붙인 것”이라며 “이 광고뿐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어 콘텐트들을 보면 많이 발견되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른 의혹도 제기됐다. 딱 보면 웃음거리가 될 내용인데도 그대로 나간 배경엔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것. “한국인 지인이 영어 출판물을 내는 회사에서 일했는데, 상사를 너무 싫어한 나머지 괴상한 영어 표현을 그대로 내보내는 걸로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낭만 버섯’도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브린) “요즘 한국인들은 영어도 잘하고 글로벌한 감각도 갖추고 있다. 적어도 해당 기관의 젊은 직원들은 잘못을 알고 있었을 텐데 상사를 거역하지 못해 가만히 있었을 것”(튜더)이란 것이다.

 캠페인 내용도 도마에 올랐다. 뉴욕 맨해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버스에 왜 한국의 미역·우유·파프리카를 광고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는 얘기다. 맥퍼슨은 “특히 왜 한국 우유를 ‘건강한 우유(fit milk)’란 해괴한 문구로 미국에서 광고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앤드루 새먼은 “미국인이 한국 버섯이나 배 광고를 봐도 어디서 살지, 어떻게 요리할지 알 수가 없다”며 “마케팅의 기본은 소비자 성향 파악과 상품에 대한 접근성 확보인데 기본조차 안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광고 모델로 대중음악 밴드인 ‘씨엔블루’를 쓴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선남선녀를 모델로 쓴 건 좋지만 씨엔블루가 한식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입을 모은 것. 맥퍼슨은 “미국에서 열린 한식 세계화 행사에 초대된 한국 여성 아이돌 가수에게 사회자가 무슨 요리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 가수는 ‘딸기’라고 답하더라. 어이없어 웃음만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한식 세계화를 위해선 제이미 올리버·고든 램지 같은 글로벌 스타 셰프를 키워낸 영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해외 홍보 한국인 위한 것 많아
다른 참석자들은 한식 세계화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요식업계 대기업에서 자사 레스토랑을 미국에 진출시키겠다며 자문을 구하길래 마케팅 전략이 뭐냐고 물었더니 “마케팅 전략이 왜 필요하냐”는 반응을 들은 경험 ▶한식 레스토랑에 이상한 영어 이름을 붙이고는 자신을 ‘한식업계 스티브 잡스’라고 소개한 대기업 중역을 만난 기억 ▶김치를 홍보한다며 “김치를 먹으면 장 운동이 잘 돼 변비가 없어져요”란 영어 문구를 보고 민망했던 일 등이다.

 한국 정부의 홍보 전략 부재도 도마에 올랐다. 튜더는 “정부의 해외 홍보 책임자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인데 실무자들은 이들의 눈치만 보느라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더라”며 “윗사람에게 의견을 말하면 대드는 것으로 치부되는 문화가 문제”라고 말했다. 새먼도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뭘 알고 싶어하는지 연구하는 대신 한국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상사들이 뭘 알리고 싶어하는지 궁리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꼬집었다.

 맥퍼슨은 “한국 해외 홍보 담당자들은 홍보 대신 자신들의 승진에만 관심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 결과 정부의 한국 홍보는 국민들에게 “우리가 이런 걸 홍보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수준에 그쳐 외국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거액을 들여 CNN 방송에 내고 있는 “수출 대국 한국으로 놀러오세요”란 광고가 그 전형이다.

 브린은 “이명박정부의 한식 세계화 담당자들은 내게 ‘어떻게 하면 뉴욕타임스에 (한식) 기사를 낼 수 있나. 타임스 스퀘어에 광고를 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만 하더라. 그런 기사나 광고는 한국인들에게 화제가 될 뿐, 미국인들에겐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자신들의 홍보물을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다 보니 외국인의 피부에 와닿는 홍보가 나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맥퍼슨은 “역시 이명박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어느 부처 관리가 정부 예산으로 론리 플래닛(유명 여행안내서) 편집자를 초청해 ?부대찌개 내용이 빠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는 게 삭제를 요청한 이유였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새먼과 튜더도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요리 중 하나가 부대찌개”라며 웃었다. 맥퍼슨은 이어 “한국 정부가 그토록 집중하는 궁중요리를 진짜로 즐기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나. 누가 주말 회식 메뉴로 구절판을 생각하나. 그저 한국 정부가 ‘한국도 프랑스의 푸아그라나 일본의 스시 같은 고급 요리가 있다’고 포장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막걸리’의 영어 표기가 어렵다고 ‘드렁큰 라이스(drunken rice)’란 콩글리시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역할은 문화 인프라 세우는 것
대안을 요구했다. 이들이 내놓은 답은 ▶첫째, 정부가 한국 홍보를 주도하지 말고 지원만 하라는 것 ▶둘째, 한국만이 가진 풍성한 스토리를 발굴해 상품화하란 것이다. 브린은 “영국 정부가 비틀스를 알리기 위해 한 게 뭔가? 아무것도 없다. 제임스 조이스 같은 유명 작가도 정부가 키운 게 아니다. 1870년대 영국 정부가 초등교육을 의무화하면서 노동자 계급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된 결과 자연스럽게 대문호들이 나온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눈에 띄지 않게 이런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셀은 “지난 10여 년간 문화체육 관광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결같이 나온 말이 있다. 자기들이 한식·한옥 등등을 이용해 ‘제2의 한류’를 이끌겠다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이 잘나가고 있는 분야는 정부가 주도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재능으로 된 분야다. 가수 싸이가 좋은 예”라고 말했다. 문화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top down) 아닌 상향식(bottom up)으로 퍼져야 한다는 것이다.

 맥퍼슨은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여행 프로그램을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바람에 경쟁력을 잃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대체 왜 정부가 민간 사업자들과 경쟁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심판이나 지원군 역할을 해야 산업 전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브린은 “정부에 장기 전략이 부재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마다 5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다보니 무리수를 두게 되고, 차기 정부는 이전 정부의 성과를 무시한 채 다른 일을 벌이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새먼은 대안으로 ‘히든 스토리를 찾을 것’을 제안했다. “불고기 불판이 한반도를 침략했던 몽고군의 투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스토리인가. 한식은 건강에 좋다고 해서 먹고 싶어지는 게 아니다. 한식에 얽힌 스토리를 알리는 게 진정한 브랜딩이다. 프랑스 요리가 유명해진 건 정부와는 전혀 무관하다. 프랑스 혁명 뒤 귀족들이 몰살당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셰프들이 레스토랑을 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인기를 얻은 것도 1920년대 금주법 시절 마피아들이 술을 이탈리아 식당에서 밀매했기 때문이다. 이런 스토리들이 문화를 살린다.” 새먼의 지적이다.

 브린은 대구에서 포럼을 운영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포럼 행사장 밖에 작은 산이 하나 보였다. 관료들에게 저 산에 얽힌 얘기가 없느냐고 묻자 6·25 때 전투가 벌어졌다는 얘기를 들려주더라. 그런 이야기야말로 재미를 더해준다. 영국 노팅엄의 평범한 야산이 로빈 후드 이야기로 세계적 관광지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브린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에 또 하나의 도전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다. 이건 경제발전과 달리 정부 주도론 안 된다. 한국인의 일상에 녹아 있는 스토리를 찾고 한국 문화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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