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료, 어디든 갈 수 있지만 … 취업 위해 특혜 주면 감옥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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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도 우리나라의 ‘관피아’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공무원의 민간기업 취업이 자유로운 미국에선 관료가 민간으로 이동했다 다시 공직에 복귀하는 것을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였던 2009년 1월 취임하자마자 ‘정부 인력의 윤리 준수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퇴직한 관료가 영향력을 활용해 종전 근무했던 부처를 상대로 로비하거나 정책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자는 게 골자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사전에 취업을 제한하기보다 불법 로비 행위에 대한 사후 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직자는 원칙적으로 퇴직 후 어떤 직장이든 갈 수 있다. 전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가 퇴임 후 사모펀드의 사장으로 간 것이나, 로버트 루빈이 재무장관을 마친 뒤 씨티그룹 회장을 맡은 것도 공직자의 재취업 자체를 봉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퇴직 전 맡았던 직위를 부당하게 활용하는 것은 엄격히 규제한다. 퇴직 전 보고 의무는 가장 강력한 차단 장치다. 재직 중 전직을 위해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은 허용하되 어떤 업체와 접촉했는지는 ‘공직자윤리국(OGE)’에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다.

  규정을 어겼을 때 처벌도 강하다. 취업을 위해 재직 중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행위는 형사처벌까지 한다. 최근 사례로 2009년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인적자원부 국장이던 티머시 캐넌이 대표적이다. 그는 퇴임 후 채용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FEMA가 발주하는 6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갤럽에 밀어줬다 발각돼 곤욕을 치렀다. 2년간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공공부문 채용도 금지됐다. 미국에서 관피아 봉쇄의 핵심 기구는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인 OGE다. 우리의 공직자윤리위원회보다 훨씬 강하다. 산하에 130개 조직을 거느리고 5600명이 활동한다. 우리나라 공직자윤리위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것은 안전행정부 윤리담당관 휘하 20여 명 정도다.

 일본에선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를 ‘아마쿠다리(天下り)’라 부른다. 신이 천상에서부터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의미다. 퇴직한 관료를 출신 관청의 산하 단체나 관련된 민간기업 등에 취직하도록 후배들이 뒤를 봐주는 게 관행이었다. 일본이 아마쿠다리에 본격적으로 수술칼을 들이댄 건 2007년이다. 그해 6월 무분별한 아마쿠다리 규제를 위해 공무원법을 개정했다. 각 정부 부처가 인사관리 차원의 목적으로 직접 나서서 자기 부처 관료들의 낙하산 일자리를 알선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2008년 공무원 재취업 지원을 위한 ‘관민인재교류센터’를 발족시켰다. 민간기업으로 재취업을 원하는 공무원과 관료를 채용하기 원하는 기업을 중간에서 맺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능력 있는 공무원과 그렇지 못한 낙하산을 걸러냈다.

 영국의 고위직 공무원(외교관·군인도 포함)도 퇴직 후 2년 내에 취업할 경우 총리 산하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Business Appointment)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위직 공무원은 해당 부처에서 심사한다. 대체로 재취업 신청은 수용된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2년 동안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에 관여하지 말도록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김원배·박현영·강병철·유지혜·이태경·최선욱·윤석만·허진·김기환 기자,
뉴욕·런던·도쿄=이상렬·고정애·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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