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이후락 싸움에 대한중석行…박태준 ‘포스코 신화’ 예행연습

  • 카드 발행 일시2024.05.30

“천하의 명의도 혼자 수술 못 한다” 대한중석 개혁

대한중석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임원들과 축하연을 연 필자(왼쪽에서 둘째). 맨 왼쪽이 고준식 전무다. 사진 박태준 전 국무총리

대한중석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임원들과 축하연을 연 필자(왼쪽에서 둘째). 맨 왼쪽이 고준식 전무다. 사진 박태준 전 국무총리

1964년 12월 8일 나는 대한중석 사장으로 내정됐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치 쪽으로 진출하라는 권유를 내 스스로 뿌리친 것, 이런 나의 생각을 알아준 박정희 대통령의 고려, 그리고 모종의 권력게임이 그것이다.

권력게임은 권세가 커지는 대통령비서실장 이후락과 그를 견제하려는 김종필이 벌이는 것이었다. JP는 나를 이후락과 교체하고 싶어 했으나, 대미 관계의 끈을 가진 이후락이 눈치 빠르게 대통령에게 나를 대한중석 사장으로 추천했다는 후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정치 방면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기에 그런 신경전과는 거리를 둬야 했다.

대한중석이란 이름을 나의 뇌리에 새긴 사건은 52년 6월 한국전쟁 중에 터져나온 ‘중석불 사건’이었다. 부패한 정권의 고위 관료와 정치권이 장사치들과 결탁해 전쟁의 곤궁에 빠진 농민들을 등쳐먹은 파렴치한 범죄였다. 텅스텐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重石弗)로 밀가루와 비료를 수입해 몇 배나 비싼 가격에 되판 것이다. 굶주리는 농민의 피를 빨아먹은 범죄였다. 당시 나는 25세 청년장교로 전방을 지키고 있었다. 결혼도 안 한 나의 피끓는 손이 그 뉴스에 몇 번이나 허리의 권총을 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