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피맺힌 돈 떠올렸다…박정희 “자네 생각 기막히군”

  • 카드 발행 일시2024.06.20

포철 창업요원 39명… 나 말고는 용광로 본 적도 없었다 

 1968년 4월 1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업식을 개최했다. 조촐한 자리였다. 나까지 포함해 창업요원은 39명. 나를 빼고는 모두가 용광로를 구경조차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밖에 없었다.

‘그들이 차관을 준다고 했으니 주겠지….’

막연한 기대에 의지한 출범이었다. 포스코는 이렇게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우리에겐 확고한 정신이 있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한 구석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39명의 창업요원들이 포항제철 창립식에서 불퇴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 박태준 전 국무총리

필자를 포함한 39명의 창업요원들이 포항제철 창립식에서 불퇴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 박태준 전 국무총리

그해 포스코의 제일 중요한 업무는 KISA와의 예비계약서와 1만 쪽이 넘는 장비 구매 리스트 검토, 영일만의 부지 수용이었다. 계약서나 장비 구매 검토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본 철강자문용역단을 따로 고용했고, 부지 수용은 거의 행정관청에 위탁했다.

우리는 비관적 전망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부지 안의 가옥과 논·밭·묘지들을 싹 밀어낸 뒤, 만에 하나 KISA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끔찍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68년이 다 지나도록 KISA에서 돈 나올 구멍은 흔히 하는 말로 ‘가물치 콧구멍’이었다. 거대한 몸통에 뚫려 있는 건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작은 가물치 콧구멍-. KISA가 약속한 차관은 도통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기도 했다. 세계은행의 한국 담당자인 영국인 자페가 “한국의 제철소는 경제성이 없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한마디로 “한국 제철소에 돈을 빌려주면 떼이니 금고를 열지 말라”는 경고였다.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