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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낮·밤 알 수 없는 ‘빛의 제국’ 선악 공존 ‘가면남’ 심리 상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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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12면

[SPECIAL REPORT]
‘오징어 게임’ 대해부
영감의 원천-‘오겜’의 명화 코드

②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3-4). [사진 페기구겐하임 컬렉션]

②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3-4). [사진 페기구겐하임 컬렉션]

(스포일러 있음). 넷플릭스 사상 최대 흥행작이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경찰 준호(위하준)는 실종된 형을 찾을 단서를 얻기 위해 형이 머물렀던 고시원을 찾아간다. 비좁은 책상 위에 라캉과 니체의 철학서와 함께 미술책이 여러 권 있는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화집이 특히 눈에 띈다. 책의 표지는 그의 대표작 ‘빛의 제국’이다. 책상 옆에 또 다른 버전의 ‘빛의 제국’ 그림엽서가 붙어있고, 창문에도 커다란 ‘빛의 제국’ 그림이 붙어있다.

실종된 형은 왜 ‘빛의 제국’(사진2)에 꽂혔을까? 드라마 후반부에서 형이 바로 456억 원짜리 데스게임을 주관하는 검은 가면의 남자 프론트맨(이병헌)임이 밝혀진다. 전직 경찰이었던 그는 몇 년 전 이 게임에 참가해 우승자가 되었고 지금은 게임의 주관자가 된 상태다. 이 그림은 그것을 암시하고 있을까.

기이한 느낌 초현실주의 기법 영화미술  

① ‘오징어 게임’에서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나오는 고시원 장면. [사진 넷플릭스]

① ‘오징어 게임’에서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나오는 고시원 장면.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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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은 중앙SUNDAY의 이같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보내왔다. “그게 빛의 제국인데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상태죠. 화창한 하늘 아래 야경의 땅. 그게 이 세상에 대한 프론트맨의 시선이며 그의 심리상태에 대한 하나의 상징입니다.”

‘빛의 제국’ 그림 상단은 햇빛 가득한 대낮의 하늘이지만 그림 하단의 집과 가로수는 햇빛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밤의 상태다. 이것을 보며 프론트맨은 세상이 아무리 밝은 공정과 평등을 외쳐도 그로부터 소외되어 어둠 속에 방치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상기했을 수 있다. 또는, 햇빛에도 밤에 머물러 있는 집이 성악설의 인간 내면 같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외국 네티즌 중에는 ‘빛의 제국’이 선악이 공존하는 프론트맨의 내면을 상징하거나, 무엇이 빛이고 무엇이 어둠인지 혼란스럽게 된 그의 심리를 나타낸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프론트맨이 사실 이 게임을 분쇄하기 위해 잠입한 스파이라거나, 또는 스파이였다가 도리어 이 게임에 설득당해 추종자가 되었다는 등의 가설을 펼치고 있다.

극 중에서 프론트맨은 이렇게 말한다.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 이길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 모순이다. 이 게임은 패배할 확률이 훨씬 높고 패배의 대가가 너무 크게 설계되어 있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만이 ‘자발적으로’라는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된다.

또한 게임의 룰은 ‘VIP’ 관람객의 재미를 위해 무작위 추첨 대신(운이 진정한 평등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리력과 패 가르기가 작용하도록 되어 있어 약자에게 불리하다. 한 마디로 ‘현실의 대안’이라는 이 게임은 부분적으로 볼 땐 공평한 것 같지만 전체로 보면 불공평의 극치인 파라독스다. 그림 상단과 하단을 따로따로 봤을 때는 이상할 게 없지만 전체로 보면 모순인 그림 ‘빛의 제국’처럼.

‘빛의 제국’에서 밤거리 풍경에 대낮의 하늘을 병치시킨 것처럼 어떤 대상을 상식적으로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서 모순되는 것과 결합시키는 것을 초현실주의 미술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한다. 〈중앙SUNDAY 2021년 3월 20일 본 연재 “흰 천 뒤집어쓰고 키스, 코로나시대 사랑법 예견한 듯” 참고〉 충격과 기이한 느낌을 주는 데페이즈망 기법은 ‘오징어게임’의 영화미술 전반에도 나타난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코리아중앙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년 시절에 하던 게임들이 나오니까 전체적인 비주얼에서 기존의 생존게임 영화들과 달리 동화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자는 게 저와 감독님의 목표였습니다. 일부러 기괴하게 만들려고 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선물 포장처럼 생긴 관 같은 의외의 오브제들과 동화적인 공간에서 잔인한 게임이 벌어지는 것 자체에서 오는 기괴함이 컸던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 ‘오징어 게임’의 미장센들은 전반적으로 마그리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놀이동산 같은 파스텔톤, 몰입 극대화

③ ‘오징어 게임’의 계단 장면(사진 왼쪽)과 ④ M.C. 에셔의 ‘상대성’(1953). [사진 넷플릭스, 에셔 재단]

③ ‘오징어 게임’의 계단 장면(사진 왼쪽)과 ④ M.C. 에셔의 ‘상대성’(1953). [사진 넷플릭스, 에셔 재단]

한편 황 감독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의 미로 같은 계단 공간은 네덜란드 판화가 M. C. 에셔(1898~1972)의 ‘상대성’을 비롯한 계단 그림들을 참고한 것이다(사진 4).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간을 예술적 기교와 수학적 이해로 구현해낸 에셔는 수많은 영화감독과 수학자·과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는 ‘인셉션’을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있다. 〈중앙SUNDAY 2021년 2월 20일 본 연재 “‘수포자’ 에셔의 그림, 수학자 일깨워 노벨상 원동력 됐다” 참고〉

⑦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사진 왼쪽)과 ⑧ 에드바르 뭉크의 ‘비명(절규)’(1893). [사진 넷플릭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⑦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사진 왼쪽)과 ⑧ 에드바르 뭉크의 ‘비명(절규)’(1893). [사진 넷플릭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외국 팬들은 그 밖에도 여러 유명 미술 작품을 ‘오징어 게임’의 장면들과 연관 짓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다른 희생자의 피를 뒤집어쓰고 비명을 지르는 참가자의 모습에서 에드바르 뭉크의 유명한 ‘비명(절규)’을 떠올리기도 하고(사진 8), 5번째 게임에서 살아남은 3인이 독특한 삼각형 테이블에 앉아 만찬을 대접받는 모습에서 현대미술가 주디 시카고의 기념비적 설치미술 ‘디너 파티’를 연상하기도 한다.(사진 6)

이들 또한 감독과 미술감독이 실제로 참고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우연한 일치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튼 국제적으로 열띤 숨은그림찾기가 일어난다는 것은 ‘오징어 게임’의 미장센들이 그만큼 탐구할 것이 많고 공들여 만들어졌음을 방증한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성공에 영화미술이 큰 몫을 한 셈이다.

⑤ ‘오징어 게임’의 만찬 장면(사진 왼쪽)과 ⑥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1974-9). [사진 넷플릭스, 미국 브루클린 뮤지엄]

⑤ ‘오징어 게임’의 만찬 장면(사진 왼쪽)과 ⑥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1974-9). [사진 넷플릭스, 미국 브루클린 뮤지엄]

사실 ‘오징어 게임’의 설정과 캐릭터는 별로 새롭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목숨을 건 게임을 하는 설정과 여기에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는 것은 감독 자신이 영향받았다고 밝힌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소설이 원작인 일본과 미국의 영화 ‘배틀 로얄’이나 ‘헝거 게임’ 등에서 이미 한 것이다. 또 강제해고 노동자 출신 주인공을 비롯해 탈북자, 실패한 엘리트 증권맨, 외국인 노동자 등 주요 캐릭터들의 상황과 성격도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오징어 게임’의 강점은 그런 뻔한 요소들을 뻔하지 않게 한국의 옛 어린이 놀이와 결합했다는 것이다. 이런 놀이들은 외국인에게는 참신하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한국인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게 죽음의 게임이 되니 시청자들이 더 강하게 몰입하고 잔혹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미술감독이 말한 대로 놀이동산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파스텔톤 게임 공간들이 이런 몰입과 반어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진부한 요소와 독창적인 요소를 적절히 섞어서 전 세계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는 콘텐트를 만드는 일은 최근까지 미국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의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그 배경에는 감독과 미술 감독이 서구 미술에서 받은 영감도 한몫을 했다.

그러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보며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평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오징어 게임’은 한국적인 동시에 한국적이지 않기 때문에, 즉 한국의 현실과 정서에 바탕을 두되 우리가 고정관념적으로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억지로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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