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사랑한 클림트, 황금빛 추상 패션 선도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0 00:21

업데이트 2021.11.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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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26면

[영감의 원천] ‘키스’와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①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1907~8), 빈 벨베데레 미술관. [사진 문소영]

①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1907~8), 빈 벨베데레 미술관. [사진 문소영]

황금빛 바탕에 대담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벽면, 주홍·심청·보라색 바탕에 황금빛 소용돌이나 동심원 무늬가 반짝이는 커튼과 쿠션, 반투명 천에 수놓인 금빛 물결 무늬가 몸의 선을 타고 흐르는 관능적인 원피스…. 이런 디자인을 보면 우리는 “클림트 같아!”라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동시대 디자이너들이 ‘키스’(사진 1)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특히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2008년 오뜨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에서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은 모델들은 아예 걸어 다니는 클림트 그림이었다(사진 3).

③ 클림트에게서 영감 받은 의상으로 구성된 크리스티앙 디오르 2008년 봄/여름 오뜨 쿠튀르 컬렉션. [AP=연합뉴스]

③ 클림트에게서 영감 받은 의상으로 구성된 크리스티앙 디오르 2008년 봄/여름 오뜨 쿠튀르 컬렉션. [AP=연합뉴스]

클림트와 패션 디자인의 긴밀한 관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클림트가 주축이 된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가 집단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는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미술 기준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해서 생활과 사회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미술, 즉 회화·건축·공예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을 추구했으니 말이다. 아버지와 동생들이 귀금속 세공사였던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에 황금을 얇게 펴서 입히고 동생과 협업해 그림과 연결된 금빛 액자를 만들곤 했다. 그만큼 그에게 회화와 공예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혼 안 하고 연애 즐긴 바람둥이

풍경화를 제외한 클림트의 그림에는 반드시 인간 특히 여성이 등장한다. 그들의 의상에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영감 받은 눈동자 무늬부터 소용돌이·동심원·삼각형·사각형까지 다채로운 패턴이 황금빛을 주조로 해서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무늬들이 화면을 지배하며 리드미컬하게 춤추듯 펼쳐지기 때문에, 종종 클림트 그림의 의상은 옷으로 보이기보다 인물을 휘감고 주변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 폭의 추상화,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패턴으로 상징하는 추상화처럼 보인다.

또한 미술사학자 질 네레의 말처럼, 화려한 금빛 추상 패턴으로 가득 찬 화면은 하나의 ‘낙원’ 같은 모습이다. ‘키스’를 보면 비잔틴 제국 성당들의 금빛 모자이크 천장화가 연상되어 천상의 ‘영원한 낙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물에 깃든 클림트 특유의 초췌한 에로티시즘과 꿈틀거리는 패턴의 불안함 때문에 세기말 시들기 직전 만개한 꽃 같은 ‘찰나의 낙원’이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클림트는 ‘낙원’의 몽환적 패턴이 현실 세계에 나타날 수 있도록 여성복 옷감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의상이 살아 움직이는 추상화가 되도록 디자인한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선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클림트는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 플뢰게(1874~1952)와의 협업으로 이런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에밀리는 바람둥이 클림트가 유일하게 평생에 걸쳐 정신적인 사랑과 우정과 신뢰를 바친 연인이었다.

클림트는 일생 동안 결혼하지 않고 많은 여인과 관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가 ‘100년 전의 팬데믹’이었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을 때 무려 14명의 사생아가 나타났을 정도였다. 상대 여인들은 주로 그의 아틀리에에 상주하는 직업 모델들이었다. 클림트는 그들과 친밀하게 지냈고, 그들의 거리낌 없는 포즈를 스케치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랑을 나누곤 했다.

또한 클림트가 그리는 초상화의 주요 고객이었던 상류층 부인들 중에도 그와 은밀히 연애를 즐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영화 ‘우먼 인 골드’(2015)에 나오는 유명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의 주인공도 그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빈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그림 ‘유디트 I’의 모델이 아델레로 추정되는 데다가, 이런 그림의 모델을 설 정도면 보통 사이가 아니었겠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유디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의 여걸이다. 자신이 사는 도성이 적군에게 포위당해 주민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자 미인계로 적장에게 접근해 그 목을 베고 주민들을 구했다. 수많은 화가들이 유디트를 그렸는데, 성스러운 애국 용사로 그리거나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로 몰아넣는 팜 파탈(femme fatale)로 그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클림트는 팜 파탈로 그린 것만으로 모자라 유디트가 적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황홀경에 빠진 표정까지 짓고 있으니 엄청난 물의가 빚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떠들썩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여인들이 여럿임에도 불구하고 클림트가 죽기 직전 애타게 찾았고 유산의 절반을 남긴 여인은(나머지 절반은 형제자매에게 남겼다) 오직 25년 넘게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였다.

에밀리는 본래 클림트의 사돈이었다. 클림트의 동생 에른스트가 에밀리의 언니와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에른스트가 갓난 딸을 남기고 요절하는 바람에 클림트가 조카의 후견인이 되었고, 그러면서 에밀리를 비롯한 사돈 집안과 더욱 가까워져 매년 여름을 사돈댁의 호숫가 별장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둘은 결혼하지 않았고, 양쪽 다 다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클림트와 에밀리의 관계가 평생 플라토닉했을 것이라고 한다. 즉 클림트는 많은 여인들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지만 에밀리와는 정신적인 사랑만을 나누며 가장 믿고 의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의 관계가 플라토닉 러브였다기보다 쿨한 사실혼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한다. 실질적인 부부이되 각자 타인과의 관계에 별로 간섭하지 않는, 그러나 예술과 생활에서 누구보다도 서로 의논하고 의지하는 관계였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들이 이렇게 급진적이고 독특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은 클림트보다도 에밀리의 의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에밀리는 그 시대 드문 커리어우먼, 그것도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었기 때문이다. 클림트와 결혼하면 당시의 시대상에 따라 에밀리는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을 해야 했을 것이고 커리어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② 구스타프 클림트의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1902), 빈 미술관. [사진 위키피디어]

② 구스타프 클림트의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1902), 빈 미술관. [사진 위키피디어]

에밀리는 언니와 함께 ‘플뢰게 자매’라는 고급 양장점을 경영했고 상류층 여인들의 유행을 선도했다. 에밀리가 디자인하는 여성복은 전통적인 꽉 끼는 코르셋과 폭넓은 치마에 대항해 하의는 실루엣이 느슨하면서 슬림하고 허리선이 높은 반면 상의는 소매가 여러 장식으로 나풀거리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점들에서 짐작할 수 있는 에밀리의 캐릭터가 클림트의 초상화(사진 2)에 잘 나타난다. 지성과 활기가 넘치는 얼굴의 에밀리가 아마도 자신이 디자인했을, 관능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의상을 입고 후광 같은 멋들어진 모자를 쓴 채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서 있다.

‘키스’에 대한 미술계 시각 엇갈려

이상하게도 클림트가 일생의 연인인 에밀리를 그린 초상화는 이것 하나뿐이다. 그 대신 에밀리는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키스’에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남자는 클림트 자신이고 여자는 에밀리라는 것이 미술사학계의 통설이다. 사실 ‘키스’는 처음 발표되었을 때 클림트의 기존 작품들과 많이 다르다는 평을 받았다. 기존 작품에는 ‘유디트 I’에서와 같이 에로스(삶의 충동 혹은 성적 충동)과 타나토스(죽음 충동)의 사이에 선 팜 파탈이 등장했다. 이런 팜 파탈은 남성을 잡아먹을 듯 끌어안거나 반대로 남성에게 알아서 꿇으라는 듯 거만하고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키스’에서는 남성이 주도적이고 여성은 수줍게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바닥엔 꽃이 만발해서 온화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고조되며 두 사람의 몸은 갈등 없이 하나의 황금빛으로 합쳐지고 있다. 그간 클림트의 팜 파탈을 불편해하던 보수적인 빈 대중은 ‘키스’에 열광했다.

하지만 어떤 평론가들은 이 그림에서 여성이 양손을 꽉 쥐고 긴장한 발가락을 절벽에 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연인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심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의상은 하나의 황금빛으로 합쳐지는 것 같지만, 옷 무늬가 각각 직사각형과 원형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해석을 일생의 연인이면서도 결코 결혼하지 않았던 클림트와 에밀리의 관계에 적용해 보면 무척 재미있다.

아무튼 클림트와 에밀리는 하루에도 몇 통씩 수많은 편지를 교환하며 서로의 예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처럼 패션 디자이너가 일생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였으니 클림트의 미술이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패션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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