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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쇼처럼, 참가자가 진짜·가짜 헷갈리게 공간 설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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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10면

[SPECIAL REPORT]
‘오징어 게임’ 대해부

채경선 미술감독. [사진 넷플릭스]

채경선 미술감독.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공간들은 놀이공원이나 동화처럼 환상적인 분위기지만 그 안에선 목숨을 건 잔인하고 냉혹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런 기묘한 대조와 모순이야말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주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놀라운 비주얼을 만들어낸 채경선(42) 미술감독을 온라인으로 만났다.

참가자들의 초록색 운동복과 진행요원들의 분홍 유니폼의 대조가 강렬했다.
“초록색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라든가 그 시절 어렸을 때 입었던 운동복의 보편적인 색으로 결정했다. 레트로하고 키치적이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분홍색은 굉장히 유아적이고 동화적인 색채를 대표한다.”  
진행요원들은 참가자들의 초록색 운동복과 대비되는 분홍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진행요원들은 참가자들의 초록색 운동복과 대비되는 분홍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마스크의 동그라미·세모·네모의 의미는.
“실제 오징어 게임을 할 때, 땅 위에 그리는 오징어 모양의 판에서 영감을 받았다. 진행요원들의 직책을 도형 꼭짓점 개수로 구분했다. 각 도형들은 드라마 속 오브제들에 숨겨두었는데, 많이들 찾으셨을지 모르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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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감독과 감독의 영역 구분은.
“감독님으로부터 줄거리 텍스트를 받아 먼저 읽으면서 시리즈 전체가 어떻게 영상물로 나올 것인지 예감하는 것이 내 일인 것 같다. 감독님 머릿속에 있는 그림들을 시각화하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희 로봇. [사진 넷플릭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희 로봇. [사진 넷플릭스]

각 게임 세트장의 콘셉트는.
“영화 ‘트루먼 쇼’(1998)처럼 참가자들이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설정했다. 참가자들이 처음에는 이 공간이 가상일 거라고, ‘내가 설마 죽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수백 명이 이미 죽었다.

하늘 뚜껑이 닫히면서 새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참가자들이 앞으로 목숨 걸고 게임을 해야 되는, 바깥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참가자들은 새들처럼 이 공간을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 이 가상의 세계에서 목숨을 걸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도록 설계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영희 로봇이 서 있는 나무는 처음엔 울창하고 푸르른 모습을 생각했다가, 게임에 실패한 참가자들이 여기서 죽는 장면을 고려했을 때 생명력 없는 나무 오브제가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잎이 하나도 없도록 기괴한 포인트를 넣었다.”

줄다리기는 왜 끊긴 도로에서 진행됐나.
“이 게임의 콘셉트는 처음부터 ‘길 위에 버려진 사람들’로 설정됐다. 빚도 많고 책임져야 할 가족도 많으나 갈 곳이 없어 도로 위에 버려진 사람들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아스팔트 위에서 이 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암흑 같은 공간 속에 도로를 높이 만들어 진행했다. 사실은 초등학교 건물 두 개의 옥상에서 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줄을 당기면 학교가 너무 무섭게 보이는 거 아니냐 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참가자들 간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숙소. [사진 넷플릭스]

참가자들 간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숙소. [사진 넷플릭스]

구슬치기 세트장에 가장 많이 공을 들였다고 했는데, 이유가 뭔가. “삶과 죽음, 가짜와 진짜가 공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970-80년대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리고 향수 가득한 유년 시절을 표현하고 싶다는 감독님의 생각에서 나왔다. 이 세트장에서 특히 삶과 죽음이 더 극대화됐다. 참가자들은 서로 친한, 이를테면 부부처럼 애정하는 사람들끼리 짝을 짓게 되는데, 상대가 바로 본인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나란히 있는 느낌을 주게 됐다. 이 부분을 처음 읽고 나도 오열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애정하는 세트다.

위에서 세트장을 보면 연극에서 볼 법한 단면 구조를 서로 붙여 골목길을 만들고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문을 열면 가야 할 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담벼락이 나오고, 다른 문이 열리기도 하는 반복적인 상황에 부닥쳐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 지영(240번)과 강새벽(067번)이 같이 앉아있는 위치에 죽은 꽃과 죽지 않은 꽃이 각각 세팅돼 있다. 어느 쪽에 죽지 않은 꽃을 세팅했는지는 시청자들이 찾아봐 달라(웃음).”

디테일에 강한 것 같다.
“참가자들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릴 정도로 만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팔지 않는 물건들은 직접 디자인해 제작했다.

집집마다 대문이 가장 포인트였는데, 손잡이도 당시 디자인을 차용해 재현했다. 기훈(456번) 같은 인물이 한없이 착했다가도 갑자기 죽음 앞에 서게 되니까 상대방을 죽여야 되는, 그래서 어둡고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간 자체가 진짜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가짜인, 그런 양면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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