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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세상, 루저들 고통 ‘데스게임’에 버무려…외국인도 “바로 내 얘기” 공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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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08면

[SPECIAL REPORT]
‘오징어 게임’ 대해부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미국의 진보성향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는 지난 15일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The worst Squid Game memes completely miss the point of the show.’ 인터넷 용어를 쓰면, 최악의 ‘오징어 게임’ 짤(meme·3~4초 동영상)들이 드라마의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전체 게임 참가자 456명 가운데 200명 넘게 죽어 나간 드라마 속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장면이 각종 패러디·놀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인터넷을 달구는 현상을 지적했다. 틱톡 같은 동영상 SNS가 모든 것을, 심지어 재정적 좌절에 대한 소름 끼치는 사회적 코멘트인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까지 농담으로 둔갑시킨다는 비판이었다.

젊은 세대는 왕성한 식욕으로 드라마를 놀이화하고 기성세대는 심각한 표정으로 의미화하는 상반된 현상은 드라마 공급자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황동혁 감독은 지구촌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요인으로 “게임 자체의 매력”을 꼽으면서도 결국 드라마가 “루저들의 얘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사회의 승자는 결국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그 패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와 감동. 작품성과 오락성. 하나도 얻기 어려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드라마의 모순과 분열은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부른다. 자고 일어나면 드라마와 관련된 지구촌 뉴스가 전해지는 형국이다. 중앙SUNDAY는 보다 다양한 시청자 반응을 들었다. ‘오징어 게임’은 도대체 어떤 드라마인가. ‘오징어 게임 ’현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각각 10명씩의 내·외국인, 각계 전문가, 모두 30명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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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인한데, 잔인하지 않다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역시 드라마의 폭력성을 언급한 응답자가 많았다. 부정적 반응도 있었다. 드라마 PD 김모(28)씨는 “보는 내내 불쾌하고 불편했다. 잔상이 강해 보고 난 후 일주일가량을 시달릴 정도였다”고 했다. 중앙대 위정현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물총이나 물감 총을 맞고 아웃되는 정도로만 예상했을 텐데 실제로 총에 맞아 죽어 나가는 장면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성을 중화시키는 요소로 게임적 특성, 동화 같은 화면 구성을 꼽았다. 직장인 강모(27)씨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 구조에 녹아 있어 그리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2012년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 등 인간의 목숨을 걸고 경쟁하는 포맷의 데스 게임 장르에 익숙한 경우 ‘오징어 게임’의 폭력성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얘기다. 대학생 김모(23)씨는 “현실 세계 배경이 아니라 세트장 같은 건물 내부에서 게임이 진행돼 덜 자극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강렬한 장면은 어쨌든 손님을 부른다. 위정현 교수는 “게임성과 폭력성이 결합해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몰입을 부른다”고 분석했다.

2 빠져들다 보니 내 얘기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명지대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본주의의 계층 구조와 문제점을 이 정도로 문제 삼은 영화나 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메시지에 새로울 게 없다고 지적해 온 뉴욕타임스와 비슷한 시선이다. 하지만 신 교수는 “게임 주최 측은 평등을 얘기하지만 실은 평등하지 않은 드라마 속 세계가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진보를 얘기하면서도 진보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기득권층을 보는 것 같았다”는 얘기다.

대학생 윤모(25)씨는 “재미있게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떤 메시지가 담겼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공정과 평등은 참가들 사이에서나 통용될 뿐 주최 측과 참가자가 공정하고 평등한 상태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역시 우리 사회 단면이 담겨 있다는 거다.

외국인들의 감상평도 비슷했다. 브라질인 구스타보는 “‘오징어 게임’이 한국사회를 보여주고 있지만 불행히도 전 세계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했고, 인도네시아인 인기타는 “인도네시아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돌아볼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인 김유리(25)씨는 “드라마 속 게임이 취업시장을 연상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고려대 박지훈 미디어학부 교수는 “비판적인 관점에 공감해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이었다.

3 디테일 강한 웰메이드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조회수 500만을 넘긴 넷플릭스 코리아의 ‘오징어 게임’ 코멘터리 유튜브 영상에서 주인공 기훈역의 배우 이정재는 이런 말을 한다.

“사소하지만 남이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는 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모습들을 (감독님이) 시나리오 곳곳에 다 배치를 해놓으셨어요.”

전체 아홉 개 가운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기훈이 사채업자에 쫓기다 소매치기 강새벽(정호연)과 부딪쳐 경마장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을 언급하면서다. 이때 기훈은 경마에서 딴 456만원을 새벽에게 털린다. 그런데 이를 모른 채 오히려 새벽을 챙긴다. 이런 디테일, ‘오징어 게임’의 최종상금 456억원과 같은 숫자로 이뤄진 경마 수익금. 이런 것들이 인물을 살리고 드라마를 풍부하게 한다. 드라마가 설계부터 세밀했다는 얘기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참가자들의 투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대학살극을 목격한 참가자들은 과반 이상이 원할 경우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해 일단 빠져나온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드라마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전이다. 정씨는 “그 장면부터 드라마의 무게감, 게임 참가자들의 절실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4 유니크한 K코드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대중음악 평론가 김영대씨는 “엄청난 장치와 스토리로 포장돼 있지만 결국 ‘오징어 게임’은 한국형 신파극”이라고 평했다.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인공 기훈이 왜 게임 상금을 누리려 하지 않는지 서양 시청자들은 납득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드라마의 가족애 강조도 마찬가지다. K신파다.

평론가 강유정씨(강남대 교수)는 “‘헝거 게임’ 같은 할리우드 생존 서사에 익숙한 서양 시청자에게 ‘오징어 게임’의 서사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먼 미래나 가상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생존과 일확천금을 모두 얻는 익숙한 이야기와 달리, ‘오징어 게임’은 현실이 배경이라는 점에서다. K코드다.

5 넷플릭스·SNS 황금시대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이제 TV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 트위터·틱톡 등 SNS의 강력한 위력이 이번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서 재확인됐다는 의미다.

특히 틱톡은 ‘오징어 게임’이 바이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중문화 매체 벌처는 지난 15일 ‘SquidGame’ 해시태그(#) 게시물들이 틱톡에서 자그마치 390억회 조회됐다고 보도했다. 믿기 어려운 수치다. 넷플릭스의 TV 책임자 벨라 바하리아의 발언처럼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에 관해 듣고 얘기하고 사랑하는 게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돼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입소문은 더이상 국경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하게 증폭된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넷플릭스는 글로벌한 콘텐트 발굴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반대로 “‘오징어 게임’이 국내 시장에 갇혔더라면 폭력성 논란 등으로 방영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경희대 박종민 미디어학과 교수는 “넷플릭스를 통해 이제는 모든 나라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콘텐트의 품질이 문제지 생산국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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