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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생노]상여금 600% vs 450%···근로자 600%가 이긴 이유

중앙일보

입력

임금이나 근로시간, 복지 수준, 휴가와 같은 근로조건을 정하는 규율은 여러 가지입니다.

근로조건과 관련된 법령으로는 가장 높은 단계에 헌법, 이어 근로기준법이 있습니다. 사업장 단위에선 취업규칙이 있고, 단체협약이 있으며, 개별 근로자와 회사가 맺은 근로계약서가 존재합니다.

한데 이들 규율 가운데 두 개 이상이 충돌을 하면 어떤 게 우선 적용될까요. 어느 것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집니다.

근로계약서는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규율입니다. 그러나 계약 자율·자치 원칙에 따라 계약 당사자 간에 반드시 지켜야 하고 존중되어야 하는 약속입니다.

상여금을 깎는 것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일입니다. 이를 불이익 변경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바꿀 때는 반드시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동의를 받지 않으면 취업규칙은 효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을 놓고 비교했을 때 근로계약서가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작성됐다면 근로계약서가 우선 적용된다는 판결은 그동안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노사가 집단적 협상의 결과물로 도출한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서가 상충할 때는 어느 것을 적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결은 없었습니다. 노사 단체협약은 일종의 집단 계약에 해당하기에 대체로 우선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이 충돌할 경우 단체협약을 우선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부 근로자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회사가 정한 취업규칙과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의 상여금 규정이 같다는 점을 들어 이를 모든 직원에게 적용하려 한 것 같습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지난달 말 대구지법에서 나온 판결입니다.

회사는 노조법 제33조 제1항의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는 규정을 내세웠습니다. 유·불리를 따질 것 없이 단체협약이 우선한다는 주장입니다.

일반적인 법 해석과 적용은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릅니다. 헌법〉관계 법률(근로기준법)〉단체협약〉취업규칙〉근로계약의 순서입니다.

하지만 고용관계에서는 일반적인 법 적용 원칙이 다르게 인용됩니다. '유리한 조건 우선 원칙'입니다.

법원의 이번 판결도 이 원칙을 인용한 것입니다. 근로조건을 정하는 방식이 서로 충돌할 때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것을 택해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조건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앞서 적용해야 합니다. 반대로 근로계약서의 내용보다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의 조건이 더 좋다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노조법 제33조 제1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떠했을까요. 법원은 "단체협약보다 불리한 내용의 근로계약에 한해 이를 무효로 하겠다는 취지일 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용관계에서 법을 적용할 때도 이런 법 해석 방향은 유지됩니다.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조건은 최소한의 조건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된 것보다 낮은 수준의 근로조건은 위법한 것으로 무효라는 것이지요.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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