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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생노] 회식 뒤 2차 가다 실족사···법원이 산재 인정한 근거

중앙일보

입력

일하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다치거나 숨졌을 때 산업재해로 판정받으면 급여는 물론 치료비와 요양비, 유족 연금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 보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업무상 재해(산재)로 인정받으려면 요건이 부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업무와의 연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회식과 같은 사안으로 다치거나 사망할 경우에는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닙니다. 언뜻 일과 무관하게 보여서입니다.

회식과 산재의 관계, 법원의 판례로 풀어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출근한 곳입니다. A씨는 사업주의 자택으로 출근했습니다. 이때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봐야 하고, 사업주의 자택이 회사인 셈입니다.

일을 마치고 사업주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회사로 복귀한 것과 같습니다. 출근했던 장소로 온 것이니까요. 퇴근하기 전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회식을 했습니다. 회사로 치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술을 곁들였습니다.

근로자 1명은 귀가(퇴근)했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2차로 자리를 옮기다 사고가 났습니다.  그러니 나머지 직원끼리의 자발적인 회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사업주 입장에선 퇴근 뒤 친목 모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근로복지공단은 "사고 당시 회식은 단순 친목 행사로 확인된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망 장소도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와 무관해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법원은 "퇴근 전에 가진 업무상 회식"이라고 봤습니다. 왜 그럴까요? "작업을 마치고 사업주 거주지로 이동한 것은 아직 퇴근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A씨는 사업주의 집으로 출근했습니다. 그러니 사업주의 집으로 복귀한 것은 회사로 돌아온 것과 같고, 이는 업무 중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1차 회식 비용을 사업주가 치렀습니다. 근로자 1명은 1차 회식 뒤 퇴근했지만, 나머지 직원과 가진 2차 회식지로의 이동 또한 사업주와 함께였습니다. 법원이 사업주의 지배 또는 관리하에 이루어진 업무상 행위로 보는 이유입니다. 사업주의 주도 하에 이뤄진 회식, 즉 퇴근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취했고, 그로 인해 실족사했으므로 업무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사고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판례를 소개합니다.

2017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회식 뒤 만취해 도로변에서 자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근로자 B씨에 대해 업무상 재해(산재)라고 판결했습니다.

B씨는 회식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조직 개편 뒤 직원들을 독려하려 대표이사가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표이사를 비롯한 상사가 직원들에게 술을 권하는 등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회식이 끝난 뒤 B씨는 동료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 모 역에 하차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B씨는 하차한 역에서 한참 떨어진 역 근처 도로변에 누워있다 지나가던 차에 깔려 숨졌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조직개편에 따른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회사가 회식자리를 마련했고, 회식비 품의서를 결재했다. 회사의 지배·관리하에 이뤄진 회식이다"고 판결했습니다. 따라서 이로 인한 사고 또한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사례를 회사 내부가 아니라 거래처로 확장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래처 담당자와 회식하다 만취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해도 업무상 재해가 됩니다.

회식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모임의 목적이나 내용, 주최자, 지시와 같은 강제성 여부, 참가 인원, 비용 부담, 사업주나 상사의 승인 여부 등을 따져보세요. 회사의 지배나 관리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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