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종 몰 때 관숙비행 "여객기 대신 화물기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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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숙비행’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아시아나항공 OZ214편 사고 발생 이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고 항공기인 B777 기종 운항 경력이 43시간인 이강국(46) 기장이 관숙비행 중에 공항 충돌 사고가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되면서다.

 ‘관숙(慣熟)’은 손이나 눈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조종사들은 운항 기종을 바꿀 경우 새 항공기에 맞는 기종면허증(면장)을 새로 따야 한다. 그러나 면허 취득은 거의 대부분 모의비행장치(시뮬레이터) 조작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실제 비행기는 면허 취득 이후에야 처음 몰아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면허 취득 후 항공기 조종에 능숙해지기까지 여러 차례의 훈련비행이 필요한데 이것을 관숙비행이라고 한다.

기종을 바꾼 뒤 해당 항공기의 기장이 되려면 20회의 실제 비행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강국 기장은 이번 비행에 앞서 총 아홉 차례 B777을 운항했다. 관숙비행에는 해당 항공기에 숙달된 조종사가 교관으로 동석한다. 이번 관숙비행에서는 B777 운항 경력이 3220시간에 달하는 이정민(49) 기장이 교관이었고, 이강국 기장이 교육훈련생이었다. 경력상 보조 역할에 어울리는 이강국 기장이 부기장석이 아닌 기장석에 앉아 조종간을 잡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관숙비행은 법적·관행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최정호(55)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8일 “관숙비행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절차”라며 “관숙비행 중에는 부기장(이강국 기장)이 기장의 역할을 맡고 베테랑 기장이 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윤영두(62) 아시아나항공 사장도 “이강국 기장의 조종 실력 미숙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관숙비행의 최종 책임은 교관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조종 미숙과 관련된 시각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기를 직접 운행하는 조종사들 사이에서도 모의비행장치와 실제 비행기 조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험이 일천한 조종사에게 착륙 조종간을 맡긴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경우 특수공항으로 분류될 정도로 구조가 까다롭고 착륙유도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착륙만큼은 처음부터 이정민 기장이 맡았어야 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강국 기장은 사고 발생 당시 B777을 조종해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을 시도했었다. 이강국 기장의 운항교육을 담당했던 이정민 기장 역시 지난달 15일 교관 발령을 받은 후 이번이 교관으로서는 첫 비행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6년 동안 대형항공기를 운항한 김모 조종사는 “모의비행장치와 실제 비행, 중형기와 대형기, 텅 빈 비행기와 꽉 찬 비행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며 “더구나 B777과 같은 대형기의 ‘고어라운드’(1차 착륙 실패 후 재상승)를 처음 시도하면 모의비행장치 때와 달리 비행기가 제대로 뜨지 않아 조종사가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차제에 면허 취득 이후에야 처음 비행기를 몰게 돼 있는 현행 면허 취득 절차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 조종사는 “면허 취득 후 실제 비행기를 처음 운항한 순간 ‘내가 승객들을 태워도 되나’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한 전직 비행기 조종사는 “관행이라 하더라도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훈련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처음엔 시뮬레이션, 다음엔 화물기 조종 등으로 같은 기종으로 단계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항공사 관계자는 “비행기를 한 번 운항하는 데 조종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며 “모의비행장치가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교육실습이나 면허 취득 시험용으로 실제 비행기를 운항한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라고 말했다.

박진석·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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