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 잊은 채 승객 대피 돕고 … 다친 아이 업고 뛰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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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관계자들이 7일(현지시간) 아시아나 사고 항공기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 NTSB 트위터 캡처]
이윤혜(左), 김지연(右)

“진정한 영웅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 하루 뒤 해외 언론과 SNS를 달군 건 화염에 휩싸인 위기 속에서 활약한 영웅들의 이야기였다. AP통신은 “승무원들이 불타는 여객기 속에서 경찰이 건넨 다용도칼을 받아 안전벨트를 자르고 승객의 탈출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죽음을 무릅쓴 승무원들은 이윤혜(40)씨와 유태식(42)·김지연(30)·이진희(32)·한우리(29)씨. 샌프란시스코의 헤이스 화이트 소방국장은 “승무원들이 놀라운 팀워크로 많은 이의 생명을 구출했다”며 이윤혜씨에 대해 ‘영웅’이라 칭했다. 캐빈매니저(최선임 승무원)인 그는 사고기에 마지막까지 남아 승객 대피를 도왔다.

 7일 오후 9시 샌프란시스코 홀리데이인 시빅센터에서 만난 이윤혜씨는 인터뷰 내내 앉지 못했다. 사고 충격으로 꼬리뼈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사내 우수승무원 포상 등 14회 우수승무원상을 받은 베테랑이다.

 “처음에는 일반 착륙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착륙 직전 이륙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굉음을 내며 충돌했고 비행기가 좌우로 흔들렸다.”

 이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장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비상탈출’이라 소리친 뒤 문을 열고 승객을 탈출시켰다. 한 승무원은 다리가 끼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씨는 손님을 모두 탈출시킨 뒤 동료와 함께 빠져나왔다. 승객 라유진씨는 김지연씨를 가리켜 “작은 체구의 소녀 같은 승무원이 기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부상자를 부축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열두 살 어린이를 업고 500m를 달렸다.

 승무원들은 탈출 뒤에도 승객의 병원 이송을 도왔다. 이윤혜씨는 “당시에는 몰랐는데 병원에서 꼬리뼈가 골절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비상상황 대비 훈련을 받은 대로 하니 생각이 뚜렷해지고 몸도 자동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일촉즉발의 위기 속 ‘영웅’이 된 비결은 평소 강도 높은 비상 대비 훈련이었다. 흔히 객실 승무원을 단순 서비스 직원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항공법은 ‘비상시 승객을 탈출시키는 등 안전업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으로 정의한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모든 승무원에 대해 신입 직무 훈련 때 총 504시간 중 179시간(36%)을 비상탈출·응급조치 등 안전 훈련에 투자한다. 특히 비상탈출 훈련은 남자 신입 사이에서도 “군대 시절 유격훈련 같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강도가 세다. 1차 심사에서 평균 10%가 탈락할 정도다.

 기존 승무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승무원은 최근 12개월 안에 정기 안전훈련을 통과해야 탑승근무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매년 잘 짜인 매뉴얼에 따라 혹독한 훈련을 수행한다”며 “특히 올해 정기훈련에서 비상탈출 프로그램을 수행해 이번 사고에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비상탈출 훈련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건 ‘90초’다. 사고 시 슬라이드가 펼쳐진 뒤 1분30초 안에 모든 승객을 탈출시켜야 한다. 이 시간을 넘으면 사상자가 발생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샌프란시스코=이지상 기자,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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