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싸들고 잠수정 탔다…‘할머니 간첩’ 월북 때 생긴 일 [간첩전쟁 1부-남파간첩 ⑥]

  • 카드 발행 일시2024.06.05

〈제1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6화. 독배를 든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은 1990년 8월 초 평양 공작지도부에 무전기로 긴급 타전했다.

새 포섭 대상으로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손병선을 선정했으니 승인해 주기 바란다.

손병선은 김부겸(전 국무총리, 2021년 5월~2022년 5월 재임)의 대타였다. 김부겸 포섭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돌려막기 표적이었다. 손병선은 부산대 정치학과 재학 중이던 60년 4·19 혁명 때 부산권 학생시위를 주도했던 운동권 출신이었다. 당시 50세로 민중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몸담고 있었다.

손병선은 민중당 창당을 지원하던 이선실과 친분을 쌓았다. 북한 권력 서열 22위의 거물 여간첩이란 정체를 모른 채 통일 문제에 관심 있는 독지가로 알았다. 이선실은 민중당 창당 헌금 2000만원과 500만원 상당의 대형 복사기를 기부했다. 다음은 김동식이 ‘남북 간첩전쟁 탐구’ 취재팀에 전한 간략한 포섭 과정이다.

8월 중순 어느 날, 이선실이 민중당 사무실이 있던 서울 서교동의 한 커피숍으로 손병선을 불러냈다. 안면이 있던 터라 단도직입적으로 밀어붙였다.

실은 나는 북한에서 파견된 노동당 정치위원이다. 북의 국가 정책을 도와주는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손 선생의 협조를 얻고 싶다. 북한과 협력해 투쟁하자.(이선실)

손병선은 너무도 뜻밖의 제안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1주일간 생각할 말미를 달라.(손병선)

1주일이 지나 이선실은 손병선을 다시 만났다. 단호한 어조로 설득했다.

도와주세요! 조국 통일을 위해 같이 일해 봅시다.(이선실)

알겠다.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손병선)

며칠 후 김동식은 이선실과 함께 민중당 사무실 근처 지하 레스토랑에서 손병선과 첫 대면했다. 이선실은 손병선에게 “이분(김동식)은 평양에서 손 선생님을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노동당 연락대표”라고 소개했다. 이미 얘기를 들은 탓인지 손병선은 어색해하지 않았다. 김동식은 “나이도 어리고 부족한 것도 많으니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포섭 공작은 성공했다.

김동식씨(오른쪽)가 최근 중앙일보 취재팀과 만나 1990년 남파공작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김동식씨(오른쪽)가 최근 중앙일보 취재팀과 만나 1990년 남파공작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손병선, 암호명 ‘비봉산 11호’ 부여  

1차로 포섭된 ‘80년 사북항쟁’의 노동운동가 황인오와 마찬가지로, 손병선도 북한 노동당 입당식을 치렀다. 이선실과 김동식이 입회했다. “당과 수령을 위해, 조국 통일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할 것”을 맹세하고 ‘비봉산 11호’라는 대호(암호명)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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