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선발, 탁구공 색깔 따라 울고 웃은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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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학년도 국제중학교 신입생 선발의 마지막 단계인 공개추첨이 26일 서울 중곡동 대원중 강당에서 열렸다. 추첨 결과가 발표되자 합격한 수험생과 학부모가 환호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26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국제중학교 강당. 이 학교 김일형 교장이 강단에 마련된 추첨함 곁으로 올라갔다. 순간 70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는 숨을 죽였다. 김 교장이 추첨함에서 주황색 탁구공을 꺼내 번쩍 들었다. 주황색· 흰색·녹색 세 가지 탁구공 중 주황색을 뽑은 학생들이 합격한 것이다. 주황색 푯말 뒤에 앉아 있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흰색과 녹색 탁구공을 들고 있던 이들은 절망했다.

서울 토성초 6학년 김민희양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머니 하연실(40)씨가 딸을 끌어안으며 “울지 마. 일반 중학교 가서 열심히 하면 되잖아”라며 등을 토닥거렸다. 그래도 김양은 계속 울었다. “실력이 아닌 추첨으로 뽑는 걸 이해할 수 없어 억울하고 허탈하다”는 것이었다.

내년 3월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여는 대원·영훈 국제중의 최종 합격자가 작은 ‘공’의 색깔로 결정됐다. 대원국제중은 2차전형까지 합격한 366명 중 138명이, 영훈국제중에선 475명 중 160명이 운으로 합격했다. 우수 인재를 뽑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겠다는 취지로 개교하는 국제중의 신입생 선발이 ‘로또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841명 중 298명 ‘행운’잡아=김양은 초등학교 시절 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에 소질을 보였다. 국제중이 다른 중학교에 비해 외국어를 더 잘 가르쳐 줄 것이라는 기대로 지원한 것이다. 탈락이 확정되자 김양은 “꿈을 이루려면 학원밖에 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하씨도 “이런 로또식 전형에 대해 아이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수요가 많다면 국제중을 더 많이 세워서라도 뒷받침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영훈국제중에서는 수험생들이 빨간 공을 뽑으면 합격, 하얀 공을 뽑으면 불합격됐다. 아들이 공을 잘 뽑아 합격했다는 학부모 이모(41·여)씨는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며 “아이들에게 실력보다는 운이 좋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 사교육업체는 대원중 정문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중국 소재 J국제중학교 유학 안내 전단지를 나눠줬다. 탈락한 수험생의 학부모 박모씨는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중국이든 어디든, 유학을 보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며 전단지를 읽었다.

◆추첨으로 뽑지 말라=부산국제중과 경기도 청심국제중은 추첨으로 학생을 뽑지 않는다. 추첨 전형은 서울시교육청의 지시로 시행됐다.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 단체가 국제중을 ‘귀족학교’라고 비판하자 시험을 치르지 않기로 하고 도입한 것이다. 김경회 부교육감은 9월 “3배수 정도면 국제중의 모든 교육과정을 소화할 수 있다”며 “우수인재 교육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과) 교수는 “국제중의 설립 취지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라며 “실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해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데 비판을 줄이기 위한 정치적 결정으로 추첨제를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진주교대 박용조(47) 교수도 “무리하게 국제중 설립을 추진하다 보니 공정한 선발 방식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줄 수 있는 추첨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민동기·박수련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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