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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erenade] ‘낙제점’ 국가브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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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지금 돌이켜 보면 2007년 여름 서울에 부임할 무렵 나는 한국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웠다. 독일에서 나고 자랐고,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와 정보는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년 반 동안 이 나라에서 살면서 한국의 실제와 외부에 비친 모습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이렇게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는 나라가 왜 해외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심하게 말한다면 한 나라의 이미지가 이렇게 왜곡돼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 한국의 개인과 기업들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그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명해 왔다. 무엇보다 높은 교육열로 인해 인적자원이 우수하다.

2006년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이 82%에 달했고, 국제올림피아드나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PISA)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한다. 더욱이 세계 각국과 경쟁하는 선도적인 기업들이 있다. 2007년 포춘 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14개나 된다. 네덜란드(14개)나 스위스(13개)와 비슷한 반열이다.

한국인들은 또 국가 중대사를 맞았을 땐 말 그대로 감동적인 응집력을 발휘한다. 해외엔 독특한 근면성을 갖고 세계 각지에서 기반을 닦은 660만 명에 이르는 동포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추었고 새로운 트렌드에 높은 수용성을 보이기도 한다.

평상시엔 잠재돼 있다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창의적인 에너지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가브랜드는 어떤가? 한국이 지닌 다채로운 경쟁력과 전혀 동조가 되지 않는다. 심하게 말한다면 국가브랜드라는 것이 전무하다고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글로벌 브랜드 전략 회사인 퓨처브랜드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22개의 국가 경쟁력 항목을 제시하고 우수한 나라가 어디인지를 설문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한국이 인정받은 항목은 ‘쇼핑’ 한 가지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나 뉴욕타임스처럼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언론에 비친 한국의 모습도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은 매력적인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필요한 것은 일관된 전략과 거국적인 공조 노력, 그리고 지속적인 조율이다.

국가 브랜드는 단순한 홍보나 슬로건이 아니라 전략을 통해 탄생하는 상품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전통적이고 지속적이며 확고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타고난’ 나라를 본 적이 없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오늘날 점점 더 많은 국가 브랜드가 ‘창조’되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기존의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나라는 나라 밖의 여론이 좋아지기를 소극적으로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까지 통일된 이미지를 만들고 전략적으로 이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한국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다이내믹 코리아’ ‘코리아 스파클링’ ‘코리아 프리미엄’ 등 중구난방이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이 서울’이 있고, ‘컬러풀 대구’ ‘프라이드 경북’ ‘투어파트너 광주’가 있다. 한국에는 이런 지역 브랜드가 200개가 넘는데, 국가 브랜드에 수렴이 안 된다. 국영 방송국과 각종 정부기구 사이에도 통일된 이미지가 없이 제각각 마케팅을 펼친다.

국가 브랜드 전략에 성공하려면 전략적 목표가 있어야 하며, 강력한 이행 기구가 필요하다. 청중을 명확히 정의하고, 메시지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중앙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민간과 정부의 빈틈없는 공조도 필요하다. 최근 국가 브랜드 전략에 성공한 대표적인 지역을 말한다면 두바이를 꼽을 수 있다.

두바이는 최고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가 비전을 이끌고 관광상업마케팅부(DTCM)가 이를 총괄적으로 시행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와 ‘파이낸스 센터’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우선해서 호텔과 공항 등 외국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인프라 시설에 집중 투자했다. 에미리트항공과 DTCM 등 민관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물론 이 모든 전략 뒤에는 설득력 있고 통일된 스토리가 있었다. 두바이가 내건 ‘사막을 꿈과 비전의 도시로’라는 컨셉트는 전 세계에 어필했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조만간 정식 발족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반가웠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 발등에 떨어진 경기침체의 불이 급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번 침체는 한국이 국가 브랜드를 재정립하기에 호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번 침체를 잘 이겨 낸다면 아시아의 약진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기 때문에 중국처럼 하드웨어 및 인프라 투자를 통해 고성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소프트파워와 국가 브랜드는 한국이 도약할 발판이 돼 줄 것이다. 경제가 회복되는 2010년 즈음 한국이 G20에서 어떻게 활약할지 미래를 가늠해 본다. 그때 어떤 위상을 갖느냐는 지금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에 달렸다.

[필자인 롤랜드 빌링어는 독일인으로 매킨지&컴퍼니 서울오피스 대표다.]

[뉴스위크 8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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