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정부에서 최고의 여류 화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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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헌터 드로호조스카필프 지음
이화경 옮김, 민음사, 704쪽, 3만8000원

2001년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에서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유화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가 620만달러(당시 62억원)에 팔렸다.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는 최고가 기록이었다. 오키프는 국내에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모더니즘 화단의 독보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특히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커다란 꽃 그림은 성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선정적인 형태와 대담한 색채로 유명하다.

이 책은 오키프의 생애와 작품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제가 『Full Bloom: The Art and life of Georgia O’Keeffe』다. 그런데도 번역판 제목에 ‘스티글리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국내에서는 그녀보다 스티글리츠가 더 유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남편인 앨프리드 스티글리츠((1864~1946 )는 유명한 사진작가로 20세기 초반 미국 예술계를 쥐락펴락 하는 유명인사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스물 세 살이나 연상인 그의 정부가 되어 세간의 비난과 수치를 견디면서도 위대한 화가로서의 포부를 꼭 틀어쥔 채 평생을 버틴, ‘의지의 여성’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오키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가 가운데 한 명이면서도 가장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예술가”였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자료수집에만 10년이 걸렸다. 오키프를 아는 사람들 수 십명을 만나 인터뷰했고, 그녀에 대해 쓰인 편지 수 천통을 읽었다고 한다.

왼쪽 사진은 자신의 그림 앞에 선 오키프. 오른쪽 사진은 60세에 가까운 나이 차를 극복하고 동반자 관계를 맺었던 오키프와 존 해밀턴. [민음사 제공]

오키프는 스티글리츠를 만나기 전까지는 미술 교사를 꿈꾸던 무명의 시골뜨기 여성이었다. 반면 스티글리츠는 사진잡지 ‘카메라워크’를 발간했고, 실험적인 신인 작가들과 로댕·마티스·세잔 등 뉴욕의 전위적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뉴욕 5번가에서 ‘291화랑’을 운영했다. 오키프의 전시를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과 예술 열정에 이끌려 연인이 됐다.

스티글리츠는 뉴욕을 기록한 사진으로도 유명하지만, 자신의 연인인 오키프를 모델로 찍은 수많은 작품으로도 주목받았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사랑을 한다”라고 말했듯이 그는 오키프를 향한 열정을 많은 초상 사진에 담았다. 1918~1919년 사이의 작품만 200점이 넘는다. 그가 오키프를 통해 그려내고자 한 여성은 ‘연약하고 수동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였다.

그러나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모델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장시켰다. 대상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단순화시켜 “사물이 지닌 핵심적인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능력은 스티글리츠의 카메라 작업에 큰 영향을 받았다.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분홍색 위에 두 송이의 칼라’(1928). [민음사 제공]

저자에 따르면 오키프는 자신에게 화가라는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스티글리츠를 ‘선택’했다. “그녀는 그게 어떤 거래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열정과 카리스마를 갖춘 스티글리츠를 사랑한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 했다. 24년 결혼하기 전까지는 정부라는 사실에 수치를 느꼈고, 결혼 후에는 50세 연하의 유부녀인 도로시 노먼과 사랑에 빠진 남편 때문에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았다. 90세가 넘어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연약한 여신의 이미지보다는 성실함으로 평생을 버틴 인간이었다.

저자는 오키프가 꽃의 ‘여성적’ 이미지에서 전복의 가능성을 읽어낸,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예쁜 꽃그림은 ‘꽃’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여성성을 넘어서 남성의 시기와 두려움을 자극할 정도라는 것이다.

오키프의 삶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남자가 있었다. 여든 다섯의 오키프에게 나타난 스물여섯의 젊은 예술가 존 해밀턴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약하고 힘들 때 나타난 그는 그녀가 죽기 전까지 곁에서 지켜준 진정한 동반자였다.

원제 『Full Bloom』은 우리말로 ‘활짝 핌’, 즉 ‘만개’란 뜻이다. 이는 그녀가 즐겨 그린 꽃의 이미지에 대한 암시만은 아니다. 사랑의 열정과 고독까지 모두 끌어안고 ‘활짝 피고’ 간 그녀의 삶에 대한 은유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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