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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전체를 예술작품으로 채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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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빨간 호박(red pumpkin)’.

이코노미스트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남쪽으로 1시간 10분. 시코쿠(四國) 가가와(香川)현의 다카마쓰(高松)공항에 내려 택시로 30분 이동하니 나오시마(直島)로 들어가는 페리 선착장이 나타났다. 페리를 타고 북쪽으로 50분을 가니 선착장에서 승객들을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호박’이었다.

가가와현 나오시마 #기업인 집안의 2대에 걸친 헌신 … 폐기물 시설 유치로 일자리 늘려 #일본 낙후지역 개조 대탐구

높이 4m, 직경 7m의 ‘빨간 호박(Red Pumpkin)’. 알고 보니 세계적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작품이었다. 옆에는 의자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고 보니 페리를 맞이하는 항구의 터미널도 예사 건축물이 아니다. 정사각형 형태의 널따란 지붕으로 덮인 이 건물은 일본의 대표적 건축사무소인 ‘사나(SANAA)’가 2006년 설계해 만든 ‘바다의 나오시마’였다.

그뿐인가. 교통표지판으로 쓰는 삼각 고깔, 거대한 쓰레기통, 나무 보트 등도 모두 이 섬에서는 작품으로 변해 있었다. ‘예술의 섬’다운 발상이다. 일본 혼슈(本州)와 시코쿠 사이에 떠있는 인구 3470명의 자그마한 섬 나오시마. 크고 작은 27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의 한 조그만 섬이다.

남북으로는 5km, 주변 둘레는 16km로, 차로 천천히 섬을 다 돌아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일단 섬 안에 돌아다니는 택시가 한 대밖에 없다는 사실이 입을 쫙 벌어지게 만든다. 데미즈 히데키(出水秀樹·58) 사장이 종업원 없이 혼자 묵묵히 대형 택시를 몰고 섬을 누비고 다닌다. 그렇다고 이 섬에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버스가 곳곳을 수시로 연결해준다. 요금도 100엔으로 도쿄에 비하면 매우 싸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도 섬 전체를 누비고 다닌다. 페리에서 내려 섬을 순회하는 버스에 올라타 가장 먼저 스친 느낌은 “어, 여기가 일본의 외진 섬 맞아?”라는 것이었다. 버스 안에는 영어, 불어, 독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가 한데 섞여 있었다.

호텔 예약 3개월 치 밀려

나오시마의 5가지 성공 비결

1. 기업인의 헌신적 투자
2. 주민에 대한 기업의 배려
3. 예술인들의 적극적 참여
4. 주민들의 열성적 동참
5. 혐오시설 수용하는 ‘역발상’

온갖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이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극히 평범한 풍광의 이 외진 섬을 보고자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섬 안의 유일한 호텔 ‘베네세 하우스’는 예약이 3개월 이상 밀려 있다고 한다.

지난해 이 조그만 섬을 찾은 관광객은 28만5000명. 올해는 이미 30만 명을 돌파했다. 섬 인구의 100배 가까운 수치다. 5년 전만 해도 관광객은 2만~3만 명에 불과했다. 나오시마의 홈페이지 방문 건수도 5년 사이 7배가 늘었다.

주민들의 솔직함과 순박함 때문에 이름에 곧을 직(直)자가 붙었다는 이 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실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는 19년에 걸친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결실이었다.

일본 최대의 출판·교육사업 그룹인 ‘베네세’의 오너 후쿠타케(福武)가의 2대에 걸친 헌신적 투자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나오시마가 가능했다. 베네세의 창업자인 후쿠타케 데쓰히코(福武哲彦)는 나오시마의 온화한 날씨와 주민들의 순박함에 한눈에 반해 “나오시마를 예술작품으로 넘쳐나는 ‘아트 아일랜드(art island)’로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그 첫 단계로 1989년 국제 어린이캠프장을 이곳에 설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오시마는 그냥 벌거숭이 산에 불과했다. 인구도 70년대 한때 8000명에 달했지만 속속 섬을 빠져나가 섬 안에는 고령자를 중심으로 3000여 명만 남아 있던 상태였다. 이후 92년 2단계 작업으로 후쿠타케 회장은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 “나오시마를 함께 예술의 섬으로 만들자”고 제안, 현대 미술품 전시관과 숙박 기능을 복합한 독특한 형태의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만들었다.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프랭크 스텔라 등 현대 미술계 거장들의 걸작을 여기에 한데 모았다. 여느 여행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문화적, 예술적 정취를 듬뿍 담은 것이다. 이어 2004년에는 안도 다다오에게 부탁해 건물을 땅속에 묻은 ‘지중 미술관’을 선보였다. 건축물의 형태도 형태지만 인상파의 거장 클로드 모네, 월터 데 마리아의 작품이 기존의 평면적인 전시 개념을 탈피한 공간적인 개념의 전시로 구현된 것이다. 한마디로 섬 마을이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아트(예술)의 섬’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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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시가지의 전통 가옥촌, 혼무라(本村) 지구에 있는 세계적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공간작품 전시관.

세계적 예술가 작품 ‘즐비’

이때부터 관광객은 급증했다. 전 세계에서 건축을 연구하는 이들, 그리고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이 섬이 하나의 ‘성지’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오시마의 기적’이 미술관 몇 개 짓는다고 가능했던 일일까? “턱도 없는 이야기지요. 우리라고 외지 사람이 뭐가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섬 발전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고, 일할 기회도 주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다나카 하루키·76·관광 안내 자원봉사자)

베네세는 98년부터 나오시마에 내버려지다시피 있던 200년 지난 목조 민가나 신사를 통째로 미술작품으로 복원했다. 이름하여 ‘집 프로젝트’. 그 안에 섬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각종 예술작품을 설치했다. 마을 한가운데 고오(護王)신사에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 스기모토(衫本)가 유리 계단 37단을 설치해 지하에서 바다 건너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설치했다.

제임스 터렐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도 나오시마의 한복판 혼무라(本村)지구에 섞어 놨다. 나오시마를 취재하러 간 10월 28일은 평일이었음에도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이 30여 명에 달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어디 그뿐일까. 제임스 터렐의 가옥 작품 옆에는 커다란 ‘화장실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예술작품이다.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무려 900만 엔을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나오시마의 골목 골목을 살아있는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섬 전체가 거대한 미술관으로 탈바꿈하게 한 것이다. 나오시마 읍사무소의 하마나카 미쓰루(浜中滿) 총무과장은 “나오시마 지역 활성화의 기본 철학은 전통과 현대미술이 동시에 숨 쉬게 하는 주민 참여형 섬 개발”이라고 말했다.

섬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자 식당과 찻집이 늘어나고, 나오시마를 테마로 한 향토요리와 ‘나오시마’ 브랜드의 소주 등 특산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50년 전 시집온 후 줄곧 나오시마에 살고 있다는 사카이다니 아키코(堺谷明子·74)는 “나오시마에 관광버스가 넘치고 식당에 손님이 가득 찰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주민 모두 싱글벙글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고 활짝 웃었다.

마을을 취재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스스로 ‘자원봉사단원’이란 글자가 쓰인 완장을 차고 마을을 누비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집 밖을 나서지 않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도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길을 청소하고 현관 앞에 꽃을 장식하는 운동도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집 앞의 명패도 모두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바꿨다. 섬 전체의 발상 전환이었다.

흔히 관광객이 몰리고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면 ‘난개발’이 고개를 쳐들지만 이곳은 그런 것이 없다. 예컨대 특별한 규제가 없음에도 섬 주민들은 어떤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주변 경관과 조화되도록 주민들과 상의하는 지역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터뷰 하마다 다카오 나오시마 정장

“섬 주민 전부가 관광 안내원”

가가와현 가가와군 나오시마의 정장(町長)은 우리로 따지면 읍장이다. 하마다 다카오(濱田孝夫) 정장은 1999년부터 10년째 읍장을 맡아 ‘나오시마 활성화 중장기 플랜’을 수립, 나오시마를 일본 전국이 주목하는 마을로 활성화시킨 주인공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지난 10월 28일 바쁜 일정의 그를 나오시마 읍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본인 입으로 이야기하기 쑥스럽지만 나오시마는 관(官)·민(民)의 협력 면에서 일본 최고”라고 자랑했다.

- 페리를 타고 오다 보니 외국인들이 많던데요.
“프랑스 등 유럽 국가 관광객이 많고, 미국과 한국 관광객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공무원)들이야 외국어가 잘 안 돼 고민이지만 다행히 숙소(베네세 하우스)에 있는 분들이 외국어가 능통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옆 섬인 데시마에서 나오는 산업 폐기물의 중간처리장 시설을, 누구나 기피하던 시점에, 나오시마가 ‘우리에게 달라’고 한 건 대단한 역발상인데요, 주민들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당시만 해도 나오시마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섬 안에 있는 미쓰비시(三菱) 메터리얼 제련소였는데, 경기 후퇴로 그나마 공장이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섬 인구도 피크 때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있었지요. 이러다간 섬의 존망이 위태롭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때 주민들과 여러 차례 설명회를 갖고 함께 역발상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폐기물도 자원이다’라는 운동을 펼쳤지요. 그리고 2000년에 수용의사를 확정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산업 폐기물 중간처리 및 재활용 비즈니스를 섬에 있는 미쓰비시 메터리얼 공장이 맡아 일으켜 세우면서 섬 전체에 활기가 되살아났습니다. 3~4년 전부터는 중단 상태였던 종업원 신규채용까지 생겨나 섬 주민들의 고용증대로도 이어졌지요.”

- 베네세가 섬을 개발해 이렇게 나오시마가 활력이 넘치게 될 줄 예상했습니까?
“솔직히 몰랐습니다. 후쿠타케 회장이 개발안을 설명할 때 ‘이런 큰 프로젝트가 과연 우리 섬에서 가능할까’라고 되물었을 정도지요. 그러나 이후 국제캠프장이 생기고 베네세 하우스와 지중미술관이 속속 건립되면서 ‘야, 이거 엄청난 일이 돼버렸군’이란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러더니 오래전에 빈 집이 돼 무너질 위험까지 있던 섬 내의 고민가(古民家)를 베네세가 사들인 후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키는 걸 보고 ‘아, 역시 공무원보다 민간에 맡겨야 되겠구나’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 섬에는 일단 사람이 넘쳐났습니다. 한적했던 섬에 여러 음식점이 생기고 특산물이 날개 돋친 듯 팔려가면서 경제 효과도 짭짤했습니다.”

- ‘나오시마의 기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계획이 있습니까?
“2010년에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세토나이 연안의 6개 섬을 연계해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섬들에 여러 대표적 예술 작품을 전시해 나오시마뿐 아니라 가가와현 전체의 지역 활성화로 이어가려는 의도입니다. 또 이 행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해 가가와현 섬들을 명실상부한 ‘예술의 섬’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합니다.”

- 인구 3400명의 작은 섬에 외지인들이 몰려와 반발이나 갈등 같은 건 없었나요?
“나오시마를 주도적으로 개발한 ‘베네세’ 측에서도 섬 주민들에 대해선 지중미술관 등의 시설을 무료 관람하게 해주는 등 꼼꼼한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섬 주민들도 나서서 관광가이드 자원봉사를 자처했지요. 지금은 나오시마 주민 전원이 안내원이 됐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정장과 베네세그룹 회장, 그리고 미쓰비시 메터리얼 제련소장이 정기적으로 모여 논의하는 ‘마을 꾸미기 서밋(summit·정상회담)’도 구성했지요. 또 하나 우리로선 다행이었던 게 나오시마를 문화와 예술을 테마로 개발한 덕분에 관광객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가 거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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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시설인 베네세 하우스 정원의 예술작품과 산책로가 조화롭다.

영화 007 촬영지로도 각광

이런 노력들이 힘을 발휘해 나오시마는 미국의 여행잡지 ‘트래블러(traveller)’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보고 싶은 7곳’의 하나로 뽑혔다. 또 입 소문이 퍼지면서 영화 007시리즈의 촬영 후보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이미 007 책에는 나오시마가 주요 8개 선진국(G8) 정상들이 모여 회담을 여는 장소로 설정됐다.

나오시마의 ‘창조적 발상’은 이뿐 아니다. 2003년에는 5㎞ 떨어진 인근 데시마(豊島)에서 나오는 산업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전격 수용했다. 당시 데시마의 산업 폐기물은 일본 최대의 산업 폐기물 투기사건으로 기록될 정도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들은 결사 반대했다. 나오시마는 달랐다. 스스로 “우리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오시마는 첫눈에는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 산업 폐기물 재처리 시설 건립으로 나오시마의 재활용 산업은 쑥쑥 커나갔다.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섬 주민들의 취업도 늘어났다. 20명을 모집하는 데 150명이 몰리기도 했다.

이 같은 ‘나오시마식 역발상’ 덕분인지 나오시마의 1인당 평균소득은 지난해 가가와현 내 35개 지자체 중 1위로 올라섰다. 예술뿐 아니라 환경친화적 섬으로 거듭나면서 나오시마는 ‘에코(eco)타운’으로도 소문났다. 그래서 나오시마의 사례를 배우려는 다른 지자체들의 ‘나오시마 에코투어’까지 생겨났다.

해가 저무는 나오시마를 떠나 다카마쓰항으로 돌아가는 페리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과연 한국에 ‘나오시마의 기적’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일까.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홍도, 그리고 진도와 보길도의 풍광이 어찌 나오시마만 못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문제는 개발 의지다. 정부의 측면지원과 기업인들의 창조적 마인드만 있다면 ‘홍도의 기적’ ‘보길도의 기적’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나오시마가 그것을 먼저 보여줬을 뿐이다.

가가와현 나오시마=김현기 중앙일보 도쿄특파원·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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