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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더 줄게"…몸값 오른 외국인 두고 어민끼리 불법 쟁탈전도 [이제는 이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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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5월3일 오전 10시 여수항. 조기를 주로 어획하는 24t급 유자망 어선 선주 정행수(47)씨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새 지원자가 보낸 이력서를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기 적힌 글자는 한글이 아니라 베트남 문자였다. 지원자는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

베트남 문자로 적힌 이력서와 프로필 사진을 보며 정씨는 “괜찮은 놈이려나…빨리 한국에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에게는 매우 익숙한 상황이었다. 이미 그의 선원들이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정씨 곁에선 갓 출근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적의 외국인 선원 7명이 갑판 위에서 쉴새 없이 그물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날 작업은 총 12km 길이에 이르는 유자망을 배에 모두 싣고 난 뒤에야 끝났다.

지난 3일 여수시 여수항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적의 외국인 선원이 그물을 갑판 위로 싣느라 분주하다. 이영근 기자

지난 3일 여수시 여수항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적의 외국인 선원이 그물을 갑판 위로 싣느라 분주하다. 이영근 기자

월급은 3년 차 기준 외국인 400만원, 한국인 500만원이다. 그는 “월 500만원을 줘도 한국인은 안 온다. 어쩌다 와도 죄다 노인이며 20대 한국인 지원자를 본 건 5년도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쿼터 7명을 꽉 채우지 않으면 출항조차 못 한다”고 덧붙였다. 정씨 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내국인 선원은 주로 50~60대, 외국인 선원의 평균 연령대는 30대 초반이었다.

한국인 선원 평균 임금 497만원, 그래도 안 온다  

어촌의 일손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령화와 어가 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이 소멸할 위기라는 지적만 반복될 뿐 대책은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어가 인구는 2018년 11만6900명에서 지난해 9만800명으로 5년 만에 23% 감소했다. 임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내국인 선원의 평균 임금은 497만원으로 5년 전인 2018년(460만원)과 비교해 36만원 올랐지만, 내국인 선원 수는 3만2510명으로 5년 전(3만5096명) 대비 2586명 감소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은 어촌에 특히 치명적이었다. 포항에서 과메기를 생산하는 수산물 가공공장 2곳을 운영하던 A씨는 재작년에 한곳을 폐업했다.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외국인 노동자 수급이 끊겨서 공장을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자조차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A씨는 “남은 한 곳은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을 계절근로자로 초청해 겨우 살렸다”며 “이주민 없이는 어촌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력난에 ‘귀하신 몸’ 된 외국인 노동자 

어민끼리 외국인 노동자 쟁탈전을 벌이는 웃지 못할 광경도 연출된다. 성어기 조기 어획의 경우 조업을 한 번만 못 나가도 4000만~1억원의 손해를 본다. 이 기간이면 외국인 노동자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일부 외국인 선원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조업 중 몽니를 부리거나 이탈을 감행한다. “일당을 10만원 더 주지 않으면 배에 안 타겠다”는 식이다. 베트남에서 온 6년 차 외국인 선원 르 띤 삥(35)은 “브로커나 같은 국적의 외국인 선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접근해 ‘불법 사람’이 되면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유혹한다”고 했다. 불법 사람은 불법 체류자를 의미한다.

30t급 유자망 어선 선주 박성만(72)씨는 “인력을 빼앗아가면 괘씸하지만 같은 밥 먹고 사는 사람끼리 신고하기도 그렇다”며 “그랬다가는 괜히 나 때문에 조업을 못 했다는 뒷말만 돈다”고 말했다.

여수항에서 30t급 유자망 어선을 보유한 박성만(72)씨가 지난 2일 "요즘 배 타는 젊은이가 어디에 있나"라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여수항에서 30t급 유자망 어선을 보유한 박성만(72)씨가 지난 2일 "요즘 배 타는 젊은이가 어디에 있나"라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이 같은 상황을 악용하는 내국인도 있다. 선원취업제(E-10)로 외국인을 고용한 선주는 이탈자가 발생하면 1년간 이탈 인원만큼 고용이 제한된다. 갑작스러운 외국인 이탈자가 생긴 선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내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씨는 “급한 사정을 뻔히 아는 한국인 선원이 ‘한철 제대로 맞춰주겠다’며 접근해 선금 2000만원을 요구했다. 그래서 돈을 줬는데 딱 한 번 나온 뒤 잠적했고 돈은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외국인이 없으면 큰일 나는 건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말 찾은 광주광역시 소재 금형제조 업체 ‘피스템코’의 인사 담당자는 “70명이 돌릴 공장을 46명이 돌린다”고 하소연했다. 사람 구하기가 어렵단 말을 반복하면서다. 이 회사는 금형(금속으로 만드는 거푸집), 자동차부품, 전자부품 제조 등을 하는 중소기업으로 삼성전자에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2019년 130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179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매출은 올랐어도 인력 구하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인사 담당자는 “지난해 한국인 5명을 뽑았는데 3~6개월 사이에 전부 관뒀다”며 “1년 365일 구인 광고를 올려도 한국인 지원자는 없다. 그나마 인기 있던 설계, 조립 분야조차 없다”고 말했다. 직원 46명이 70명치 일을 하며 공장을 지탱하는 상황. 그마저도 9명은 외국인이다. 그는 “한국인 지원자는 없고, 뽑을 수 있는 외국인 고용 정원을 꽉 채워 외국인도 더 뽑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 3월 광주광역시 소재 금형업체 피스템코의 장춘배 부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월 광주광역시 소재 금형업체 피스템코의 장춘배 부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E-9) 인력을 지난해 8만 4000명에서 올해 11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해수부도 선원취업제(E-10) 도입 규모를 지난해보다 1200명 늘어난 1만 9500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 인원(44만 9402명)이 코로나 직전인 2019년(56만 7261명)보다 11만 7859명 줄어든 점을 고려할 때 인력난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외국인 노동자 관리할 콘트롤타워가 없다

현장은 아우성인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중구난방이다. 이민을 확대해 외국인 노동자 공급을 늘려도 이들을 관리할 콘트롤타워조차 없다. 한국은 부처별로 외국 인력을 도입해왔다.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법무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제각기 인력을 도입하고 관리하는 식이다. 산업별 필요 외국인의 수요 파악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우니 외국 인력 공급의 유연성과 적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부처 간 관리 영역이 겹치거나 공백이 생기는 일도 빈번하다.

어업이 대표적이다. 어업은 이원화된 외국 인력 관리체계를 운용한다. 20t 미만에 승선하는 어선원은 고용노동부의 고용허가제(E-9)를 따르고, 20t 이상은 해수부가 관리하는 선원 취업제(E-10)에 따라 체류자격이 나뉜다. 각각 외국인고용법과 선원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임금, 체류 기간, 도입 인원, 시기 등이 모두 다르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20t 미만과 20t 이상 선박에서 선원이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지만, 각각 다른 비자로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이 상당하다”며 “제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업 분야 외국인력 관리 예산, 전라도 0원 VS 경상북도 5억6500만원

콘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관련 예산도 복불복이다.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지자체 어업 분야 외국인력 전담부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남·북도와 제주도를 통틀어 어업 분야 외국인력 관리에 편성된 예산은 0원이었다. 반면 경북도와 소속 시·군 예산은 5억65000만원이었다. 전남·북도와 제주도에서 총 1만4182명의 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하는 공무원 수는 7명에 불과했다. 1인당 2026명을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력도 제각각이었다. 비슷한 수의 외국 인력이 종사하고 있는데도 전남 완도군의 외국인 전담인력은 4명이고 전남 여수는 0명이었다. 이에 비해 경북도는 시군별로 1명씩 전담인력을 두고 있다. 전남도청 수산자원과 관계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계절근로자 현황 관리를 하는 데 머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관련 통계를 받기조차 쉽지 않다. 윤재갑 의원실 관계자는 “외국 인력 관련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그때마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에 일일이 연락해야 한다”며 “그마저도 인력 등을 핑계로 자료를 안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감사 대비를 위한 의원실 자료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데 일선 현장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훨씬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력 관리체계 ‘일원화’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기간 양 늘리기에 급급한 이민정책이 아니라 관리체계 일원화와 유연화를 목표로 한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 취업이민정책의 장점인 공공의 투명성은 살리되 분절성은 줄이는 통합적 외국인력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국 통합 외국인력도입센터(가칭)를 설치해 숙련기능(E-7), 계절근로자(E-8), 고용허가제(E-9), 어선원(E-10) 등으로 도입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원스톱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별·지역권역별 노동력의 합법적 이동순환을 가능케하는 유연한 관리 체계 역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외국인 수용 확대에 앞서 엄격한 불법 체류 단속을 통해 사회 안정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3월 기준 불법체류자는 41만 4045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체류 외국인이 233만 5595명인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5명 중 1명은 불법체류자인 셈이다. 출입국 분야 전문인 강성식 변호사는 “코로나19와 인권 중시에 따른 단속 자제로 불법체류자가 지난 정부에서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이번 정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불법체류자부터 획기적으로 줄여야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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